거룩한 산 예배를 추구하라
성경본문:롬12:1-3절
우리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거룩한 존재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피로 씻음받은 거룩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질적으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즉 세상 사람들은 돈이 최고이다, 출세와 성공을 목적으로 살며, 자신의 이름 석자를 위하여 몸부림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서로 사랑하며, 섬기면서 살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신이 내주하시는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라고 바울은 선포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그러므로 우리는 영광스러운 신분인 동시에 세상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할 거룩한 부담감을 간직하고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절의 말씀은 로마서 전체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로마서 1장에서 11장까지의 말씀과 그 다음 12장에서 마지막 장인 16장까지의 교훈을 서로 연결하는 구절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에서 기독교 진리의 중심인 교리를 선포하였습니다. 그 선포한 진리에 기초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한다는 기독교 윤리, 혹은 도덕적인 삶을 계시하여 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롬1-11장까지는 원리적인 측면에서 구원의 비밀과 구원의 방법을 집중하여 다루고 있다면 12-16장까지는 생활적인 측면에서 구원받은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인생의 방향과 삶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롬12:1절을 보면 ‘그러므로’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러므로”가 무엇을 가리키고 있습니까?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는 좁은 의미로서는 롬11장 마지막 36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라는 구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넓은 의미로서는 1-11장 전체의 내용과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누가 과연 이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형제들아” 여기서 형제들이라는 것은 좁은 의미로서 형제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넓은 의미로서 형제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받은 지상에 있는 모든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즉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없고 거룩한 삶을 살 수도 없습니다. 그들의 영혼이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엡2:1절에 보면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 육체도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피값을 주고 사신 바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영혼과 육체를 주께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존재와 신분입니다.
우리가 왜 거룩한 산 제사로 살아야 합니까?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를 입었으니 날마다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거룩한 산 제사라는 것은 구약시대의 제사와 방법과 신약시대인 지금의 제사 방법은 다릅니다. 구약시대는 제물을 죽여서 피는 제단에 뿌려서 바쳤고, 몸은 태워서 번제로 드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더 이상 피를 흘려 죽은 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고 이제는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바로 살아 있는 내 자신과 삶을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것은 비단 육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혼과 육체와 나의 삶 모두를 의미합니다. 전인격을 의미합니다. 신약의 제사는 삶의 예배입니다. 예배가 삶이고 삶이 곧 예배인 것입니다.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이렇게 권면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모든 자비는 로마서 11장까지의 내용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아 이성과 양심의 존재이지만, 불행하게도 그 받은바 귀한 복과 자유를 옳게 쓰지 못하고 범죄하여 모두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이 되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곧 하나도 없으며." 로마서 3장 10절에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온 성경이 같은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이러한 죄인이 어떻게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요? 무엇을 깨달음으로 할 수 없고 어떤 착한 행실로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경의 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하심으로 인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니었다면 인간은 영원히 소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죄악 가운데 있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하늘의 진리로 깨우쳐주실 뿐만 아니라 최후에는 그의 몸으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간이 죄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고 또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통하여 인간이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 큰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하며,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우리 모든 성도들은 이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의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그때에 구원의 은총이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내 속에 내주하는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거룩한 신분을 가지고 있지만 죄악된 세상에 발을 딛고 살고 있습니다. 배는 바다라는 물이 있을 때 필요한 것입니다. 물이 없는 배는 아무런 쓸데가 없습니다. 배는 물위에 떠 있을 때 그의 사명과 역할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배안에 물이 들어오면 배는 가라앉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라는 방주는 세상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속에 있을 때 가치가 있고, 빛이 들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세상의 것들과 타락과 부패함이 들어와서 교회가 변질되면 멸망하게 됩니다. 교회는 세상이라는 바다위에 떠있지만 세상의 물결이나 방식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저히 말씀으로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세상속에서 복음으로, 성령의 권능을 바꾸며,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감당해야 할 이중적인 사명입니다. 오스월드 챔버스(Oswald Chambers)는 “거룩은 모방이 아니라 부여 받는 것이요 선물이다. 거룩이 뜻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형성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 안에 내재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거룩함’이 되셨습니다”(고전1:30).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고, 주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머물러 있을 때 우리는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거룩함에 도달하는 것은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작품입니다.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레 20:8).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거룩함에 도달하기 위하여 생각과 마음과 온 몸을 집중하며,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나누어야 합니다.
2.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한 예배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원하는 자들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예배를 드리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큰 요구는 거룩한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예배드리는 곳이 함께 하시며, 영광으로 임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예배는 우리의 인격과 삶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6일 동안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산 것을 믿음으로 드릴 때 영적 예배입니다. 특별히 바울은 이 육신, 너희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고 권면합니다. 또한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마땅히 드릴 영적 예배라고 지적합니다.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는 교회 안에서 드리는 예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속에서, 직장속에서, 가정에서, 사회속에서 드리는 삶의 예배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거룩한 산 제사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몇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지금은 짐승을 죽여 제물로 대신 드릴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림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너희 몸을 하나님께 산제사로 드리라는 것은 우리의 삶 전체를 온전히 하나님의 앞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갔을 때 그 곳에서 노예처럼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앞에서 거룩하게 살았습니다. 요셉은 성전안에서 거룩한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집 현장에서 정직하게 성실하게 산 것입니다. 그 삶을 보시고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고, 요셉을 인하여 보디발의 가정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 거룩한 삶과 그 복을 인하여 요셉은 보디발에 인정받아 가정총무가 된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친구들은 이스라엘 나라에서, 예루살렘 성전안에서 거룩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상의 도시요, 타락과 부패가 난무한 바벨론 나라속에서, 거짓과 술수가 가득한 정치세계속에서 거룩하고, 참되게 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바벨론 왕이 인정하였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만방에 보여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심지어는 환란과 핍박이 있는 삶의 현장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황제숭배와 우상에게 절하라고 할 때 다니엘의 셋친구들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풀무불에 들어가면서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사 풀무불에서 그들을 건져주시며, 만방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힘써 싸워야 할 영역은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 교회 밖입니다. 우리는 삶의 현장을 포기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렵지만 삶의 현장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장하며,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둘째, 산 제사란 우리의 은사와 재능을 하나님께 거룩한 예배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도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깨끗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도 정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 우리도 진실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도 사랑의 삶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는 삶이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와 삶을 분리시키는 것은 이원론적인 신앙생활을 추구하게 되면 나중에는 예배가 시시해지며, 예배의 기쁨과 감격이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예배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 진정한 영적 예배입니다. 산 제사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즉, 살아 숨쉬는 순간마다 주님 기뻐하시는 일에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오늘 말씀대로 세상속에서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는 것, 형제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는 것,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것,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는 것이 바로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
셋째, 거룩한 산 제사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몸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은 곧 봉사와 온갖 사역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이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내 가정에서도, 내 직장에서도, 내 나라에서도, 아니 전 세계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고자 하시는 뜻을 이루는데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하여 우리의 몸을 온전히 바쳐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 시간은 지키되 헌신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6일 동안 세상속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변화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존재하지만 세상을 아직도 흑암속에 있습니다. 피조물들이 탄식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순교하기 얼마 전에 디모데후서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딤후4:6)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사도 바울이 자기 몸을 관제, 곧 부어서 드리는 제사로 생각하고 하는 말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 그 기름이나 혹은 술과 같은 것은 제단 위에 부어서 제물로 드렸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이 자기 일생의 삶을 하나님의 제단 위에 붓는 제사의 행위로 생각하고 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문자 그대로 그의 삶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깨달은 후에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제단에 부어 바쳤습니다. 그의 재능도 하나님의 제단에 부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도 그의 제단에 부었습니다. 그의 문벌도, 그의 청춘도, 그의 지력도, 온갖 재능도 그에게 있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하나님의 제단에 부었습니다. 자신의 전 일생을 산 제사로 드린 사도 바울은 당시에 모든 믿는 이들에게, 아니 앞으로 오는 세대의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 지금도 권면합니다. “너희들도 나와 같이 거룩한 산 제사를 드려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3. 우리는 세상속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산 제사로 살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은 세상속에서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방법으로 3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2절을 읽겠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라” 첫째는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대를 본 받지 말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세상의 가치관과 풍조를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일2:15-16절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말씀을 보면 세상의 가치관을 세 가지로 요약해 놓았습니다. 육신의 정욕은 절제되지 않는 육체의 욕구입니다. 안목의 정욕은 눈에 보이는 대로 좇아가는 것입니다. 재물을 보고 탐욕을 갖거나 여자의 육체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입니다. 이생의 자랑은 세상 명예와 자랑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이 세대의 문화와 특징은 물질만능주의 시대입니다. 또한 성공지상주의 문화입니다. 이 세상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매우 중요하시 여기는 시대입니다. 이모든 것은 땅의 것에서 나오는 것이며, 육신의 것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것의 매력에 빠져들면 세상의 힘으로 결심으로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성령의 권능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119:9,11)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을 무장하는 것이 바로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둘째, 우리는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변화 받아야 합니다. 마음이 변화를 받지 않으면 거룩한 삶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먼저 바꾸려고 하지 말고 내 마음을 변화받는데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내 마음이 바꾸게 되면 행동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 내면의 가치관을 무엇으로 바꾸어야 합니까? 내가 결심을 한다고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힘과 의지로 새롭게 변화될 수 없습니다. 땅의 것, 육신의 것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하늘의 것, 영원한 것, 창조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만 내 마음을 변화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세요, 그 말씀을 내 마음에 두세요 그 때에 내 마음이 새롭게 변화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를 믿을 때에 이미 새롭게 된 사람들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날마다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약 이 세상과 일치하게 되면 너는 마음을 새롭게 할 수가 없고 따라서 변화 될 수가 없으며, 그 결과 너는 너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절대로 알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려면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야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나의 삶의 기준을 예수님의 기준을 맞추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속에서 거룩한 산제사가 되려고 하면 우리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사는 것입니다. 즉 나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잡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때에 조금씩 조금씩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올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면 예수님처럼 살면 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모델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 예수님의 정신으로 사는 것이 바로 거룩한 산 예배의 삶입니다. 우리가 주일날 예배만 잘 드리면 신앙생활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날 예배는 산 제사의 출발이며, 6일 동안 세상속에서 거룩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즉 주일날 경건하게 예배드리듯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함을 받는 구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이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죄악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 변화의 첫 걸음은 우리 개개인이 예수님의 새가족이 되어 함께 더블어 사랑하며,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제 교회의 한 가족, 한 공공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믿는 성도들이 각각 교회 내에서 받은 은사대로 교회를 섬기며 지체가 되어 다른 믿는이들과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 그리스도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이 가족안에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은사, 재능, 사랑은 공동체 전체에 유익이 되도록 사용되어야 합니다. 3절에 보면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하나님이 주신 은사대로 자기에게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자신이 먼저 제물로 되어 희생함으로 서로 한 몸을 이루어가는 것이 바로 산 제사입니다. 물론 이것은 교회내의 공동체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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