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나의 복음은...?

하나님아들 2016. 4. 20. 13:43

                                나의 복음은...?

                                                                                       성경본문:마11:28-30절

우리는 복음을 정리할 때 수고하고 무거진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에만 국한시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복음의 진수는 예수님이 내게 주신 십자가를 메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짊어지신 십자가를 내가 메고 배울 때 너희 마음의 쉼을 얻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9절) 이 말씀은 수준 높은 신앙이 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복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매우 필요합니다. 복음은 균형잡힌 성경적인 관점에서 정의하지 않고 편협적으로 정리하면 나중에는 신앙생활에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복음은 단지 내 영혼을 구원하는 것,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을 벗어나는 것, 고통과 저주의 사건들, 곤핍과 가난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주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를 따라가는 것,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을 배우는 것이 배우는 것이 복음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없는 복음은 가짜입니다. 복음속에는 반드시 십자가가 들어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의 따라가는 데 십자가 없으면 잘못된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복음은 참된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진리의 핵심이요,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할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말이 무엇을 뜻합니까? 여기서 “멍에” 라는 말은 자기 십자가 즉 사명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는 고난의 길이요 좁고 협착한 길입니다. 마16:13-20절은 베드로가 신앙고백으로 구원받은 복음을 말하고 있다면 21절은 십자가의 복음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는 장면입니다. 십자가의 죽음, 고난의 길을 말할 때 베드로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22절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향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그때에 예수님은 심히 분노하시며 베드로를 향하여 사단은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유명한 제자도를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우리는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멍에를 메고 주님을 따라갈 때 참된 평강과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짊어질 때 복음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십자가속에 담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십자가가 빠진 값싼 복음으로 흘러가면 안됩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없는 복음은 가짜입니다. 그 속에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참된 평강도 없습니다. 안식도 없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바로 천국으로 가는 것이며, 십자가의 고난에 참예할 때 천국이 보여지며, 천국의 실체를 맛보게 됩니다.

1.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수고하고 무거운 짊진 자들이 주님께로 나와서 쉼을 얻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돈이 많으면 뭐합니까? 지식이 많으면 뭐합니까? 성공하고 출세하면 뭐합니까? 평안함이 없고, 행복함이 없습니다. 먹는 것이 행복하지 않고 마음이 항상 불안합니다. 아무리 마음을 다스려 자기를 즐겁게 하려고 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비싼 침대를 사서 뒹굴어도 잠은 오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것, 땅의 것을 가지고는 진정한 안식이나 기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세상의 것, 육신의 것으로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예수님이 하늘 영광과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실 이유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님 외에는 참된 쉼을 얻을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11장28-30절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요, 하나님의 뜻이요, 우리가 반드시 붙잡아야 할 영원한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에게 가장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이 말씀은 영원한 진리이며, 가장 감동적인 메시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무엇인가 율법을 지키려고 할례와 각종 절기를 지키며 죄사함에 필요한 제물을 마련하는데 온갖 노력을 하는 것이 수고요, 그렇게 하더라도 죄의 짐은 벗겨지질 않고 오히려 우리의 인생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무리들을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매우 독특한 기사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οἱ κοπιώντες καὶ πεφορτισμένοι,)의 전자는 능동태(κοπιώντες)로 능동적인 노력이나 행위에 의한 고통을 나타내고, 후자는 피동태(πεφορτισμένοι)로 본의 아니게 짊어지게 되는 고통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28절의 “수고하고”는 능동적인 상태입니다. “무거운 짐 진”은 수동적인 상태입니다. 이런 독특한 표현법은 자의든 타의든 힘든 사람들은 다 주님에게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담과 하와의 혈통을 받은 인생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태어나자마자 죄인이요 불의한 자요 병든 자요 저주받은 자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실존적인 고통스러운 존재인 것입니다. 그 죄의 영향권에서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무거운 짐을 다 내게로 가져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한 두 명만 오라는 것도 아니고 부자와 훌륭한 사람만 오라는 것도 아니고 가난한 자도 병든자들도 오라고 하십니다. 교육 많이 받은 사람이나 못 받은 사람 갈려서 말씀하시지 아니하시고 다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을 다 맡아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우리의 무거운 짐을 맡이 주시려고 하십니까? 우리 인생들은 어찌할 수 없이 하루하루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눈물을 흘리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짐이 그렇게 무겁습니까? 우리는 밖에 드러내놓지 않지만 우리 마음속에 엄청난 근심걱정, 두려움, 죄책감, 정죄의식의 짐이 있습니다. 시편 38편 4절에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중세 카톨릭 교회의 ‘면죄부’는 16세기에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원래 면죄부는 원래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 그의 죄를 사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교회는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도 죄를 사해주는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로마의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는데 돈이 부족하자 미리 면죄부를 사면 앞으로 지을 죄도 용서 되고, 면죄부에 이름이 적힌 사람은 누구나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더구나 면죄부를 사서 이미 돌아간 조상의 죄까지 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면죄부를 샀고 교회는 극도로 타락해지고 만 것입니다. 돈 주고 죄 사함을 받고 돈 주고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술이 만취가 되어서 횡설수설 하고 있기에 “아니 당신 예수를 믿으면서 어떻게 이런 생활을 합니까?” “난 면죄부 벌써 사 놓았어. 앞으로 10년 동안 살아갈 면죄부 사 놓았기 때문에 10년 동안 얼마든지 죄 지어도 좋아.” 이렇게 부패하고 타락하였기 때문에 중세교회가 무너진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6-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의 평강이 내려와서 마음과 생각을 지켜서 스트레스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해결자이십니다. 우리 인생에 죄문제가 가장 심각하고 시급하게 때문에 그 죄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라는 직분을 수행하려 오셨는데 결코 우리 죄만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의 모든 문제와 사건, 고통을 해결해 주시기를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마11:28절을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그리고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모든 짐을 짊어지셨습니다. 이 말씀안에는 죄짐을 포함해서 우리 인생속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무거운 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짐을 죄짐으로만 국한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안에는 우리가 삶가운데 겪고 있는 모든 문제, 우리의 고민, 우리의 모든 어려움, 우리의 슬픔, 우리의 병, 우리의 모든 연약한 것, 우리가 이 땅에서 겪어야 하는 저주, 이 땅에 존재하는 어두움, 모든 악한 것들, 약한 것들, 율법의 굴레 등을 소멸하시고, 창세기 3장의 저주속에 파묻혀 사는 인생들에게 참 자유와 완전한 기쁨과 임마누엘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사렛 예수님만이 우리의 반석이시요, 우리의 구원이시요, 영원한 생명이시며, 만유의 통치자이십니다.

코카콜라의 창업주인 아더 캔들러는 알콜중독자로 늘 술에 취하여 있으면서 사람들 앞에서는 “나는 술 끊는다.”고 큰소리를 늘 했습니다. 그러나 술에 취해서 술 끊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해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벼락같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죄의 본능을 이겨야 성공할 수 있느니라.” 깜짝 놀랐습니다. 집에 와서 그 이야기를 하니까 바로 그때에 그 아내가 “주님, 우리 남편이 술중독에서 고침을 받게 하옵소서.”라며 기도하고 있을 때였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부터 시작해서 희한하게 술맛이 딱 떨어지고 아예 술을 쳐다보기도 싫었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해서 코카콜라 회사를 세웠고 오늘날 코카콜라로써 세계적인 부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를 향해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른데 가지 마라. 내게로 오라. 내게 마음을 쏟아 놓으라. 그러면 너희가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게 내가 만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도 청산하셨습니다. 불의와 추악도 청산하셨습니다. 질병도 청산하였고, 저주도 청산했습니다. 고통과 죽음도 청산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배우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밭을 갈때 소두마리가 한개의 멍에를 나눠지고 일을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주님은 너희들의 멍에를 내려놓고 나의 멍에를 같이 지자고 하십니다. 나의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멍에를 메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며, 매우 힘들 것이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멍에를 메지 않고 자유롭게 인생을 즐기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배울 때에 진정한 쉼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주시는 멍에를 메고 주님을 따를 때 천국의 기쁨을 누리며,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멍에의 비밀을 발견하고 그 멍에로 인하여 큰 기쁨과 안식을 체험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함께 2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것입니다. 왜 이것을 배우라는 것입니까?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쉼”이라는 말은 세상이 주는 달콤한 안식이나 편안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나 권력으로 얻을 수 있는 쉼이 아닙니다. 어떤 오락이나 게임을 통하여 얻어지는 쉼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너희 마음이 쉼을 얻는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진정한 안식을 의미합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와 같은 쉼입니다. 환란과 핍박속에서도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는 쉼을 의미합니다. 이런 쉼은 영원한 것이며,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진정한 안식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쉼을 우리는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나의 멍에를 메고 주님을 배울 때 얻을 수 있습니다. 즉 나의 모든 무거운 짊을 벗어 버리고 예수님이 짊어지신 십자가를 멜 때 얻어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에 동참하지 않으면 도저히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놀라운 쉼을 경험하고 체험한 제자들은 이런 찬양을 불렀을 것입니다. “주 십자가 못 박힘은 속죄함 아닌가 그 긍휼함과 큰 은혜 말할 수 없도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살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151장)

예수님은 무슨 멍에를 메고 주님을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첫째는 온유하고 겸손의 멍에를 메고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한 것입니다. 인간관계는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본을 따서 배우면 쉼을 얻는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마음이 온유하다는 것은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을 말하고 성경은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면 모든 저주를 이기고 모든 갈등과 고통을 이길 수 있습니다. 위대한 교부 성 어거스틴은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패트릭 화이트는 “인간은 진정으로 겸손해질 때 하나님과 가장 가깝게 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런 겸손과 온유가 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높이시면 낮출 자가 없고 하나님이 낮추면 높일 자도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 높이려고 하는 자는 낮아지고 스스로 겸손하게 낮아지는 자는 하나님이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멍에 아래 들어가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려면 스스로 낮아질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멍에를 메고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멍에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첫계명입니다. 1963년 인종차별 철폐 시위 행진이 경찰견과 소화 호스에 맞닥뜨렸을 때,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 집안에 폭탄을 던지시오. 그래도 우리는 당신들을 사랑할 것이오.” 흑인 인권운동자로서 워싱턴 네거리를 대모하는데 경찰관들이 와서 호스에 물을 뿌리고 몽둥이로 때리고 하니까 “우리 집안에 폭탄을 던지시오. 그래도 나는 당신들을 사랑할 것이오.” 특히 그가 노벨평화상을 받고 나오면서 남긴 말은 유명합니다. “그래도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을 실천하는 참된 신앙인의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우리에게 마지막 당부가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요15:12절에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계명이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하면 그 속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사랑하면 그 곳에 천국이 있습니다. 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율법으로써 이웃을 판단하지 말고 이웃의 잘못을 사랑으로 도와줘서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데 힘을 다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3.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멍에를 메고 배울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쉼을 얻게 됩니다.

우리 기독교 복음은 언제나 십자가에서 출발한 이유는 의식과 제도와 종교가 아닌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신 십자가의 사랑으로부터 신앙이 출발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최고로 귀중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어디에서 볼 수 있습니까? 십자가의 죽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요일4:9-10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려고 독생자를 우리에게 제물로 내놓기까지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는 기독교를 알았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속에 담긴 복음을 어떻게 깨달을 수가 있습니까? 육신의 것, 땅에 속한 지식이나 경험으로는 도저히 십자가속에 담긴 놀라운 비밀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의 비밀은 하늘의 것, 신령한 것,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아니면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으로 깨닫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로 아는 것입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11:25) 처음에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수없이 많이 십자가의 죽음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지만 그 비밀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헛소리만 주장하고, 호언장담을 하기도 하였지만 결국에는 박살이 났습니다. 주님을 팔아 먹고, 배반하고 부인하며, 다 주님을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 십자가의 비밀을 제자들이 언제 깨닫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오순절날에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약속하신 성령을 받을 때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얻고 나니 예수님의 모든 말씀들이 생각하게 되었고, 그 말씀이 이해되어졌고, 믿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령께서 그 속에서 그 말씀을 가르쳐주셨고, 생각나게 하셨고, 보혜사가 되어 도와주셨고, 성령의 지혜와 능력을 주사 예수님의 말씀이 전부 믿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마음속에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비밀을 깨달은 우리는 이 시대에 어떻게 적용해야 합니까?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갈2: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님을 삶의 구주로 모시고 우리는 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서 옛사람이 청산된 것을 상상하고 묵상하고 믿으십시오. 그리고 입술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나는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산 사람이다. 내 안에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살고 계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다” 지금도 마귀는 우리에게 와서 십자가가 없는 사랑으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예수 잘 믿어라. 열심히 교회 나가라. 십일조 드려라. 헌신하라. 그러나 네가 꼭 십자가는 질 필요 없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짊어졌지 네가 질 것이 아니다” 라고 십자가 없는 신앙을 가지도록 마귀가 우리에게 자꾸 종용하고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 없는 신앙은 오만하고 자기중심에 서고, 탐욕에 서서 사는 것입니다. 결국에 십자가가 없는 신앙은 무너지게 될 것이며, 참된 안식과 기쁨을 얻지 못하는 메마른 신앙생활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이 내 앞에 있습니까? 정말로 절망적인 고통이 나를 엄습하고 있습니까? 그 현실상황만을 보지 말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주목하고 바라보세요.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을 따르세요. 놀라운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출처 : 광야의 소리(윤삼중 목사의 외침)
글쓴이 : samju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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