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십일조 정신과 삶
성경본문: 창28:18-22절
“돈이 최고이다” 는 물질만능 시대에 십일조에 대한 설교하는 것은 쉽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성도들에게 많은 부담감을 줄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하루 하루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십일조를 주제로 설교하는 것이 저에게는 왠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일조를 중심으로 설교를 하는 것은 올바른 십일조는 성도들의 믿음을 성장하게 만들며,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볼때는 수입의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이 부담감을 느낄 수 있지만 실상은 십일조 자체가 큰 은혜이며, 큰 복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복에 대한 표지이며, 이웃사랑, 축복의 통로가 되는 길입니다.
구약성경을 연구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후에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하였고, 언약의 백성으로서 살아가야 할 율법을 주시고, 그 후에 성막과 각종 규례와 법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중심으로 안식일, 십일조, 절기제도를 만들어 놓으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창세기에 나오는 십일조 정신을 살펴보면 창14장에 보면 “예루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14:18-20) 하나님이 아브라함이라 불리기 전 아브람이 전쟁에 뛰어 들어, 조카 롯을 구출하고 돌아오면서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리는 장면입니다. 십일조'가 성경에 첫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린 것은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송의 의미로 드렸습니다. 십일조 정신은 승리에 대한 감사, 찬송입니다.
창28장에 보면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창28:20-22) 야곱이 벧엘에서 하늘을 오르내리는 천사를 꿈 속에서 보고 베게한 기둥에다 기름을 붓고 난 후 십일조를 서원하는 장면입니다. 야곱이 떡과 옷을 얻기 위해 십일조를 하겠다고 했다기 보다는 떡을 먹이고, 옷을 입히시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표시로 십일조를 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야곱이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십일조 정신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십일조를 서원하는 것이 먼저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이 먼저입니까? 본문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이 먼저입니다. 본문을 연구해 보면 하나님은 야곱에게 성전을 세우라고 명하지도 않았고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리라고 명하지도 않았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에 대하여 큰 감동을 받아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야곱이 서원한 것입니다. 22절을 보면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여기서 성경적인 올바른 십일조의 정신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즉 십일조는 빚을 내서 드리거나 로또 복권 사듯이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를 가지고 하나님과 흥정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정신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고백 차원에서 드려야 하며,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는 주권에 대한 순종하는 차원에서 구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신14장에 보면 “너는 마땅히 매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신14:22-23) 우리는 십일조를 통하여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믿음으로 사는 법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십일조 정신은 여호와를 경외함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십일조 정신은 여호와를 경외함, 감사, 찬송 그것이 십일조의 정신이고 십일조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리는 참된 정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복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일조 정신과 방법을 더욱 구체적으로 말씀하셨고, 그것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절) 너희는 물질을 구별하여 십일조를 드리는 것도 행하고, 그 정신이 되는 정의와 긍휼과 믿음도 지키라는 것입니다.
1. 우리는 온전한 십일조를 어떤 마음과 정신으로 드려야 합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물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리의 마음과 정신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잘못된 기복적인 신앙으로 십일조를 드리면 그 헌금을 정말로 받아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잘못된 마음으로, 불순한 동기로 드리는 헌금을 절대로 받아 주시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과 자세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까? 첫째,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는 것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지으신 참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에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이 세상의 청지기로 사는 것이지 참된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이 주인이심으로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우리는 선한 청지기의 모습이 아니라 주인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것이 아닌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법이며,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차원에서 믿음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뜻이기에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반드시 지켜야 법도와 규례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깨달은 후에 왜 십일조를 반드시 지키겠다고 서원을 합니까?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22절) 여기에서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하기를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반드시” 라는 야곱은 사용했을까요? 우리가 주목해야 합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서 깊이 깨닫고 체험한 것은 나의 모든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구나, 인간의 생사화복, 부귀영화가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구나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 후에 야곱은 이 모든 복이 하나님의 주권에서 나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만방에 선포하기 위하여 반드시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리겠다고 서약을 한 것입니다. 사실 야곱이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린다고 그 돈을 가져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돈이 필요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 십일조는 하나님이 세우신 성전과 제사장들과 봉사자들과 이웃사랑과 구제를 실천하는데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리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가?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가? 그 마음과 믿음을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인정하며, 순종하는가? 그의 믿음을 십일조의 행위를 통하여 보시는 것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의 강력한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일조를 무시하고 드리지 않는 행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것을 훔친 것이며,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한 것이다라고 강력하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독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독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으니라”(말3:8-9절)
셋째, 우리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교회를 섬기는 차원에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은 반드시 이웃사랑의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웃 사랑, 평준케 하는 원리에 따라 하나님이 주신 것에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나면 나머지는 다 내것이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십분의 구는 내 마음대로, 내 욕망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십일조 정신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릴 때 나머지 이 모든 것도 하나님의 것이다는 것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세상속에서 규모있게,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올바르게 사용하겠다는 서약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성도는 사치하거나 낭비할 수 없습니다. 십분의 구를 가지고 규모있게, 올바르게 사용함으로 가정의 살림살이가 부해지고, 재산이 점점 쌓아지게 됩니다.
어느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나는 내 직장의 생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돈이 더 들어올 껀수도 없고 죽어라 야근하고 특근하고 받게 될 수당에 큰 변화가 없을 것임을 압니다. 아이들이 자라나며 들어가는 돈은 늘어만 갑니다. 아내가 당장에 일을 그만두면 생활비는 바로 마이너스가 됩니다. 현재 집을 넓힐 전세금은 한 푼도 모이지 않고 있고, 이따금씩 자동차 정비나 보험 때문에 생각치 못한 목돈이 필요하고 결국 이어지는 것은 대출을 받아야 할 형편입니다. 개인적으로 후원하는 선교사도 있고 가난한 이웃을 도와야 상황입니다. 또한 나름대로 받은 월급을 계산하고 쪼개서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십일조를 제대로 내 본 기억이 없습니다. 현재 십일조를 내지 않아도 이미 한달을 벌어 한달을 살거나 적자를 메꿔야 하는 삶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내 통장 잔고는 어김없이 0원에 가까워집니다. 이 정도의 형편에 있는데 그래도 과연 십일조를 내야 합니까? 솔직하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십일조를 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싶습니다. 좀 형편이 나아지면 그때에 가서 십일조를 하세요. 하나님도 집사님의 형편을 다 이해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힘들고 어려울수록 농부는 배를 움켜쥐고서도 절대로 씨앗을 먹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만약 배고프다고 씨앗을 먹으면 그 가정은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봄이 와도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가정형편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십일조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약속하신 복을 얻고 누리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과 사업의 형편이 왜 이렇게 어려워졌습니까? 그것을 깊이 연구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분명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왔는데에도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까? 그렇다면 창조주 하나님, 성경의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성경은 약속하기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큰 복을 받을 것이며,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손으로 하는 일마다 범사에 복을 받을 것이며,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고 남들에게 꾸어줄지언정 꾸는 인생이 되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신28:1-10절)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습니다.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가난해도, 힘든 형편에도 적은 상황에서부터 십일조를 드리려야 합니다. 그것이 가난에서 벗어나며,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뀌게 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2. 우리는 십일조를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까?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는 온전한 십일조를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현대 사회에서는 정말로 쉽지 않는 문제입니다. 직장생활을 통하여 월수입에서 십일조를 떼는 것은 쉽지만 가게를 하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정말로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또한 남편이 아직 신앙생활을 하지 않거나 십일조를 드릴 만큼 믿음이 성장하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부 싸움을 하면서까지 드려야 합니까? 참으로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월 수입에서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첫 것을 드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가게나 사업을 하는 성도들은 재료비와 인건비, 가게 운영비, 세금 등을 제외하고 얻은 이익에서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사업에서 현실적으로 이익이 없거나 적자가 나는 성도는 십일조를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위치와 직분으로 인하여 안드릴 수 없다면 일시적으로 월정헌금을 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못한다고 정죄의식이나 빚을 내서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또한 사업을 하는 성도들은 매일 매일 사업에서 얻는 이익의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떼어 놓고 월말에 한꺼번에 하려고 하면 부담감도 있으니 매주일 십일조를 구분하여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남편이 교회를 다니지 않음으로 월수입의 십일조를 드리기가 어려운 성도들은 남편이 주는 생활비에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학생들이나 직장이 없는 청년들은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이나 알바에서 번 수입에서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려야 합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십일조를 내지 못하면 큰 물질에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더욱 힘듭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릴 때 액수를 주판으로 계산하여 한푼도 어김없이 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십일조를 드리는 정신과 믿음입니다.
2013년에 우리는 새롭게 결심하며,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리지 않으면 믿음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의 복, 사업의 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단계가 바로 물질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나의 물질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나의 시간, 내 몸, 나의 생명, 내 인생을 전부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십일조 부분에서 뛰어넘지 못하면 하나님께 나의 시간과 온 몸을 드리고 헌신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렵습니다. 또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유익한 것처럼 보이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서 뒤돌아 보면 큰 손해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드리고 나면 물질적인 손해를 보거나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한 십일조 드리고 나서 가정이 망했다거나 사업이 무너졌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과 나의 것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신앙의 기준이 없으면 함부로 넘나들며, 믿음이 올바르게 자라나기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드릴 수 있는 생각과 정신이 매우 중요합니다.
3. 우리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때 하나님은 어떤 은혜와 복을 주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죄에서 구원해 주실 뿐만 아니라 사업을 통하여, 직장을 통하여 알바를 통하여 물질을 주셨음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로서 지켜야 할 마땅한 도리이며, 신앙의 기반 자세입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모든 것이 주님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을 주께 드릴 뿐입니다”(대상28:14) 라는 마음과 정신으로 드리는 것이 정말로 바람직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3:11-12절)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성도들에게 약속한 복은 첫째, 황충이나 메뚜기 떼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지 못하게 지켜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물질의 손해를 보는 부도와 각종 사업의 손실을 당하지 않도록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둘째,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각종 질병이나 자연 재해로부터 우리 사업이나 가정을 지켜주겠다는 말씀입니다. 포도의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면 그 해 농사는 망치는 것입니다. 셋째, 주변 사람들로부터 너희 가정과 사업이 정말로 복되다고 부러워하며, 칭찬받는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십일조를 믿음으로 드리는 자는 너무 기뻐하시고, 사랑하사 큰 축복을 약속을 주셨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복을 주시는지 안주시는지를 시험하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십일조를 떼어먹고 받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첫째, 하나님이 약속하신 물질의 복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복을 발로 걷어차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둘째,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지며, 평강과 은총을 받지 못합니다. 자신의 욕심과 잘못된 생각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고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과 좋은 관계는 어렵습니다. 평강과 은혜가 심령위에 머물지 않습니다. 셋째, 내 가정과 사업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교회의 재정이 어려워지고, 가난한 교회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재정적으로 힘들고 어려우면 교회의 분위기가 엉망입니다. 사람들의 얼굴에 기쁨이 없고, 짜증을 냅니다. 성도들이 믿음으로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교회재정은 절대로 자립할 수가 없습니다. 좋은 교역자를 더 이상 모실 수도 없음으로 주일학교가 엉망이 됩니다. 교회운영이 어려움에 처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가난함과 어려움에 처하는데 내 가정과 사업이 잘되고 형통하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사업은 서로 밀접한 상생의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정이 잘 되면 교회가 잘되고 교회가 평안하고 잘되면 성도들의 사업과 직장이 번창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목회를 하면서 깊이 깨달은 것은 성도들이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하고 깨우쳐줄 때 가정과 사업과 교회가 전부 잘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성도들이 복을 받고 풍성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올바른 주의 종이지, 일부 사람들이 부담감이 된다고 바르게 가르치지 않음으로 교회와 성도들의 가정 전부가 망하면 나중에 주님앞에 가서 책망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처음에 십일조에 대한 설교를 들을 때에 부담감이 될 수 있지만 그 원리와 정신을 잘 이해하면 큰 복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믿음으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림으로 풍성한 복을 받고, 에벤에셀의 은혜속에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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