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완성 작품을 보라
성경본문:계시록21:1-7절
성경에서 강조하는 구원은 크게 3가지로 봅니다. 첫째는 중생구원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 영혼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성화구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이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수님을 닮아가는 생활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셋째는 영화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여 오실 때 예수님처럼 거룩한 몸으로 부활하며, 온 세상 만물도 영화로운 모습을 부활하는 것을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주장하는 "구원의 완성"입니다. 구원은 매우 명확하며, 단순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구원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지옥갈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우리 대신 십자가 위에 못박혀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셨는데 그 은혜로 인하여 우리가 받아야 형벌을 대신 받아 우리를 짓눌렀던 율법의 저주와 고통에서 구원해 주시고, 그의 보배 피로 인하여 우리의 죄가 사해져서 하나님 앞에 한점 티없이 깨끗해졌고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한 몸을 이루어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왕같은 제사장이요,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이런 귀중한 사실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원의 복을 잊어버지고 세상 것을 너무 부러워하면 안됩니다. 세상의 것에 너무 푹 빠져 있으면 안됩니다. 세상 것은 잠시 가지고 놀다가는 그림책, 한낱 허상에 불과합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이 돈 많은 사람, 성공한 사람, 세상 사람 너무 부러워하지 마세요. 영국의 황제가 민정을 살피기 위해서 평범한 평복을 입고 몇 사람과 함께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하는 것을 살펴보게 되는데 어느 시골 마을에 갔을 때 물레방아간을 지나가는데 아름다운 노래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 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양이 저절로 나네” 그래서 가까이 가서 발걸음을 멈추고 들어 봤더니 한 할머니가 방아간에서 일하면서 부르는 콧노래같은 노래였습니다. 황제가 이 찬송을 듣고 나서 감격하면서 2절을 불러주세요 했더니 할머니 말이 2절은 없어요. 그러자 영국황제가 감동을 받아서 2절은 내가 부르겠다 하고 2절을 불렀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영국황제가 루이스가 날 부러워 해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할 때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우리가 구원받는 기쁨과 감격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기쁨과 감격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단순히 죄의 결과로부터의 구원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구원의 본질은 '속사람' 이 첫아담의 형상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본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서 하나님의 구원의 작품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신인일체를 이루는 영적으로 가장 고상하고 최고의 수준 높은 변화와 성숙의 단계에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세상에 대하여 죽고 이미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내세를 맛보며 누리는 종말론적 신앙으로 사는 것이 바로 구원받은 성도의 삶입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구원의 목표를 위해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서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하나님의 열심 속에 오늘도 고난 속에 영글어져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구원의 퍼즐’을 아십니까? 저는 퍼즐을 종종 생각합니다. 퍼즐을 하다보면 어떤 것은 맞는 것 같은데 맞지 않고, 비슷한 것이 여러 가지인 것 같기도 할 때가 있습니다. 어쨌든 열심히 해서 한 조각이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완성은 아닙니다. 남은 한 조각을 끼워야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퍼즐에 구원의 마지막 조각이 있습니다. 이 마지막 조각은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입니다. 마지막 조각이 틀에 들어갈 때 영광스러운 구원은 완성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인종과 혈색을 초월하여 하나로, 지위고하, 빈부귀천을 떠나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구원의 비밀은 하늘의 천사들도 심히 살펴보기 원하며, 그 과정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뿐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과 같은 조상도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본 적도 없고, 귀신을 섬기고, 우상 숭배에 빠졌던 이방인들입니다. 또한 우리 민족엔 선지자도 없었고 구원의 약속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빛이 들어온 것입니다. 이 복음의 빛이 어떻게 우리에게까지 들어왔는지 이것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사건이며, 이성으로 풀 수 없는 '비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한 거룩한 구원의 그림 작품이 어떻습니까? 구원의 완성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작품인줄을 아십니까?
1.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하여 친히 아름다운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창조 과정 중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미완성으로서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쉬지 않고 창조의 사역을 계속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시는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별로 할 일이 없습니다. 창세기의 창조 사역에 우리가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았던 것처럼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창조의 완성에도 우리의 열심과 노력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과 그의 능력으로 완성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예수님을 믿고 그 은혜를 붙잡고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알렉산더 우턴이라는 괴짜 복음전도자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한 사람이 찾아와 다소 비꼬는 투로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고 물었습니다. 우턴은 그가 진지하지 않음을 알고 "너무 늦었습니다 이미 구원의 버스는 지나갔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는 정색을 하고는 "안됩니다. 나는 구원받아야 합니다. 제발 구원받는 길을 가르쳐 주세요?" 하고 간청했습니다. 그때에 우턴은 빙그레 웃으며 "늦었습니다! 구원은 이미 다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곳에서 천만 만년 살 곳이 아니라 나그네 인생으로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마치면 우리의 고향인 천국으로 되돌아갈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 세상의 것에 너무 많은 미련을 두지 마세요. 세상을 너무 사랑하지 마세요. 나중에 포기하려고 하면 정말로 힘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내려놓는 훈련을 하세요. 바울처럼 배설물처럼 버리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미혹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세상속에 매몰될 것입니다. 돈과 쾌락과 지식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
본문1-5절까지를 교차 대구법으로 분석해 보면 ABC -D-A'B'C'의 구조로 볼 수 있습니다. A와 A'는 “새”(카이노스) 라는 형용사에 의하여 병행되고, B와 B'는 “처음”(프로토스) 이라는 단어로 병행되고, C와 C'는 “다시 있지 않더라”라는 문구로 의하여 병행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D가 중심된 부분이며, ABC는 C'B'A"에 의하여 설명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사도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 처음 것들, 모든 만물들이 새 예루살렘에 의하여 상징되는 하나님의 백성된 교회를 중심축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즉 처음 하늘과 땅이 인간을 중심축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새 하늘과 새 땅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하여 만들어졌으며, 구원받은 성도가 중심축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지금까지 존재하는 만물을 제거하고 다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재창조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미 존재하고 있는 만물을 새롭게 되는 갱신을 의미하고 있는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볼때는 처음 하늘과 땅이 지나가 버렸고 그리고 더 이상 바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재창조로 볼 수 있지만 그 내면의 흐름을 깊이 연구해 보면 처음 하늘과 땅에 대한 새롭게 갱신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몇가지 신학적, 역사적 근거에 의거합니다. 첫째, “새”(카이로스)라는 헬라어 단어는 만물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만물을 새롭게 갱신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카이로스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에는 현 우주를 완전히 교체해 그 근원에 있어서 전혀 다른 존재의 등장을 아니라 그 성격이나 본질에 있어서 철저한 변화를 겪은 창조 세계의 등장을 의미합니다. 둘째, 새하늘과 새땅을 재창조의 개념으로 보면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큰 손상을 입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는데 사단의 공격으로 인하여 만물이 다 파괴되었다고 한다면 처음 창조를 실패한 것으로 규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단의 공격에 당하여 결국에는 실패하여 천지만물을 버렸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은 절대로 실패하거나 패배할 수 없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땅은 만물을 새롭게 하는 갱신으로 보아야만 합니다. 셋째, 사도 요한이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단어를 등장시킬 때 그 역사적 배경이 이사야65:17절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65:17절에 보면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에서 새하늘과 새 땅은 재창조가 아니라 거의 모든 신학자들이 만물의 갱신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등장하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물의 갱신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넷째, 하나님께서 인간의 창조의 근본을 파괴시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로 갱신시켰다면 인간으로 말미암아 타락하고 부패한 만물도 재창조를 하지 않고 만물을 갱신한 것으로 보는 것을 논리적으로 타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활시킬 때 현재의 나라는 존재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새로운 존재를 창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롭게 부활하지만 현재의 나를 그대로 인정해 주시고, 영광스러운 존재로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도 재창조가 아니라 새로운 갱신으로 보는 것이 옳은 것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하늘과 땅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만드십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모든 만물이 시공간의 제한을 받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또한 사단의 역사와 죄악으로 인하여 이 세상은 타락하고 부패되어 온 만물이 심음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더 이상 영광의 몸으로 부활한 성도들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재창조를 하십니다. 1절에 보면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새 하늘과 새 땅의 근본 개념은 구약 이사야의 예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사60-66장의 내용은 계시록 21-22장의 역사적, 신학적 뿌리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재림시에 부활이라는 능력으로 온 세상과 만물을 전체를 새롭게 갱신시킵니다. 그 세상은 지금과 다른 영광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는 완전한 세상, 거룩한 천국이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 교회를 거룩하게 부활시켜 영광스러운 새 예루살렘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새하늘과 새 땅을 만드십니까? 그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한 것입니다. 마치 새 하늘과 새 땅은 신랑이신 하나님과 신부인 성도가 새롭게 살 영광스러운 신혼집과 같습니다.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하이라이트는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입니다. 2절에 보면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정한 것 같더라” 여기서 “새 예루살렘” 은 바로 거룩한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지상교회가 핍박과 환란을 이기고 부활하여 승천한 후에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석하여 천상교회와 합하여 이제는 영광스러운 새 예루살렘의 모습으로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새 창조의 축복을 누리게 될 주인공은 하늘에 있는 천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교회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것입니다. 비록 흠도 많고 점도 많고 미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영광스럽고, 존귀한 것입니다. 세상속에서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핍박당하였던 교회가 이제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졌습니까? 수많은 고통과 환란을 극복하고 승리한 영광스러운 교회입니다. 나약한 모습의 교회가 아니라 승리의 월계관을 쓰고 있는 영광스러운 교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은 영적 전투에서 승리자에게 주어질 종말론적인 약속입니다. 이 세상에서 복음을 믿고 의지한 구원받은 성도들은 바로 승리자이며, 새 예루살렘 교회에 멤버가 될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에 속한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위로와 새 힘을 얻게 됩니까? 3-4절에 보면 첫째,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영원한 왕이 되어 주십니다. 둘째, 성도들의 눈물을 그 분에서 친히 닦아 주십니다. 셋째, 다시는 질병이나 사망이 없습니다. 넷째, 다시는 애통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을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인 교회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존귀한지를 아십니까?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같고 벽옥과 수장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쪽에 세문, 북쪽에 세문, 남쪽에 세문, 서쪽에 세문이니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계시록21:10-14) 새 예루살렘의 모습은 구원이 완성된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거룩한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해와 달이 비추는 것이 쓸데가 없고 하나님이 친히 광명의 빛이 되어 성도들을 비추므로 그곳에는 밤이 없는 영광으로 가득찬 곳이 됩니다.(계22:5) 또한 구원받은 성도들은 천국에서 귀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존재가 되는데 사도요한은 12진주 보석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지극히 귀한 보석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고 거룩한 존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천국에는 열두 기초석마다 열두가지 다양한 보석들로 장식되어 있으며, 열두 문은 각각 하나의 진주로 장식되어 있고, 새 예루살렘의 길은 정금으로 깔려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도 요한이 진주보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거룩성, 영광, 순결성, 아름다움, 그리고 귀중성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각종 진주보석은 남편을 위하여 단정한 신부의 아름다움을 더욱 강화시켜 줍니다.
3.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생명수를 주시며, 천국을 상속으로 주시고, 우리를 그의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구원은 개인 개인으로 출발하지만 공동체(교회)로, 거룩한 새 예루살렘으로 완성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아브라함 개인을 부르셨지만 너와 네 자녀와 네 자손와 더블어 언약을 맺으시고 너로 인하여 모든 족속이 복을 얻는 공동체로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택함받은 자들을 개인 개인으로 부르시지만 교회라는 공동체로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안에서 통일하게 하려 하심이라”(엡1:10)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작품에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별로 할 것이 없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베데스다 연못에 38년간 누워 있으면서, 자기보다 빠른 사람들 때문에 평생 병을 못고치고 있다며, 예수님을 향해 핑계와 원망만을 늘어 놓았던 무기력한 병자는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이집트에서 끄집어 내어 가나안땅으로 이끌려 가던 이스라엘 백성이 가네스바네아 광야에 이르러 가나안 정탐꾼들의 말을 듣고, 이 땅에서 죽게 되었으니 하나님께 책임지라며 원망과 핑계를 해대던 모습 또한 다른 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믿음으로 동참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구원의 열차에 믿음으로 올라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구원의 작품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6절에 보면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하나님께서 친히 “다 이루었도다”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값없이 생명수의 샘물을 넘치도록 부어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십니다. 7절을 보면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 약속이 완전히 성취될 때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구원의 완성작품”이 무엇입니까? 첫째, 천국에서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생명수 강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둘째, 우리가 영광스러운 천국을 상속으로 받게 됩니다. 셋째, 우리가 천국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이것보다 더 영광스럽고 감동적인 일이 세상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최고의 기쁨과 감격은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작품에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복은 세상이 줄 수 없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구원받은 우리는 이 땅에서는 생수의 강을 조금 맛을 보았다면 천국에서는 풍성하게, 영원히 의와 평강과 희락이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 이 기쁨 주님이 주신 것, 세상의 부귀영화와 바뀔 수 없는 영원한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왜 최고의 기적이요, 최고의 선물입니까? 예수님이 바로 천국으로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이름을 부르는 자만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복,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주시는 선물은 돈으로, 세상의 것으로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복입니다. 인간의 말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영광의 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연애편지를 읽으세요. 특히 신랑되신 예수님이 우리의 처소를 예비해 놓으시고, 이 땅에 재림하여 오셔서 우리를 영광스럽고 존귀한 보석같은 존재를 만들어 주시겠다는 계시록 21-22장을 주목해서 읽고 또 읽어서 새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핍박이 다가올 때마다, 이웃집 총각이 우리를 유혹할 때마다 이 말씀을 읽고 신앙의 정조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천성을 향하여 올라가는 마음으로 이 시를 귀담아 들어보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도 다시 한번 만져보고 확인하며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오로지 말씀의 하나님 안에서 보혜사 성령의 하늘 위로를 받으며 오늘도 그 길을 간다. 여기서 넘어지고 저기서도 자빠지고 이 친구 일으키면 저 친구가 넘어지고 나도 넘어지네 나도 지쳐 쓰러지네 그래도 가야하네 일어나 가야하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성 진주문에 들어설 때까지 끝까지 가야하네 쉬지 말고 가야하네 구원의 완성 그 날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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