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심오한 지혜를 찬양하라. 롬11:33-35
주신 말씀 롬11:33-35절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심오한 지혜를 찬양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이 선포될 때 큰 은혜 받으시기 원합니다.
롬9-11장에서 구약선민 이스라엘이 인간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알지 못하고 배타적 선민의식과 율법의 행위에 의지하여 구원에 이르려 한 결과 전반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함으로써 하나님께 버림받은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논증하고 있습니다.
특히 앞 문장 11:25-32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최종적 회복에 대한 논증을 보도한 후 본문에서 이신득의와 이스라엘의 관계성에 대해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면서 구속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오한 지혜를 찬양하라 합니다.
본문을 통해 바울 사도가 찬양하라고 강조사항은 무엇인가요?
첫째 구속사를 신비롭고 완벽하게 진행하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지혜와 지식을 찬양하라.
둘째 하나님께서 절대초월자요 주권자로써 만물의 주재자 되심을 찬양하라.
셋째 영광이 하나님께 영원하시기를 송축하라. 하였습니다.
이제부터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심오한 지혜를 찬양할 내용이 무엇인지 함께 알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심오한 지혜를 찬양할 내용이 무엇인가요?
첫째로 구속사를 신비롭고 완벽하게 진행하시는 지혜와 지식을 찬양하라.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33절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에 대해서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며 가늠할 수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뭐냐고요? 하나님께서 신, 구약 전시대에 걸쳐 하나님의 구속사를 한 치의 빈틈없이 참으로 신비롭고 완벽하게 진행시켜 나가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이 무엇이죠?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사역 자체를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해줘야 할 어떤 의무도 부채도 빚도 업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지은 죄와 원죄 때문에 모두 멸망 받아 죽어야 마땅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모두 멸하고 인간보다 더 순종하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존재를 만드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시는 아비의 심정으로 죄를 가려주는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고 항상 함께 하시며 보호해주셨을 뿐 아니라, 급기야 죄인들을 위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죄인의 구원을 위해 창조자가 성육신하셨다는 이 놀라운 기적과 이적보다 더 탁월한 것은 없습니다. 성육신보다 더 큰 표적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이 온전히 내재되어 있다는 이 신비를 인간의 이성으로 유추할 수 없고 해석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죄 없는 분이 죄인으로 취급받아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시고 죄인처럼 십자가 상에서 가장 처절하게 죽으셨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3절에서 “ 아 깊고도 풍성하여라.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여...”찬양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경이로움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고난 받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을 대할 때 더욱 고조됩니다.
벧전3:18“그리스도께서 한 번 죄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심으로 그 의로 불의를 대신한 것은 그분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입니다. 육체로 죽임을 당하시고 그 영으로 살리심을 받으셨습니다.” 한 말씀 기억나나요.
그리스도가 수난을 당함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충족된다는 말인가요?
어떻게 우리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죄 사함은 오직 그리스도의 수난으로만 갚을 수 있단 말인가요?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우리는 단지 예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구원 계획을 삶으로 체험하는 가운데 감탄하고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생각과 이성과 판단에 따라 옳은 것은 죽어도 옳은 것입니까?
아닌 것은 끝까지 아닌 것입니까?
내 이성과 판단이 아니라 주님의 기적들을 믿고 받아들임으로 써 하나님의 판단과 계획과 뜻을 알고 주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하나님의 의도를 이루어드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하나님의 심오한 지혜를 찬양할 내용이 무엇인가요?
둘째 하나님께서 절대초월자요 주권자로써 만물의 주재자 되심을 찬양하라.
34절에서 성령님만이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성령님의 조명이 필요하다 말합니다.
제자들이 3년 반 동안이나 주님을 따라 다니며 서로 우편 좌편에 앉겠다고 경쟁을 했지만, 막상 주의 마음을 안 자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섭리와 행적은 너무도 깊고 넓은 반면 인간은 불완전하고 유한하기 때문에 인간이 주님의 섭리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본분을 깨달아 주님 앞에 겸손히 임하고 그의 모든 섭리와 행적에 믿음으로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섭리와 행적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짧고 우리 이해력이 아무리 무딜지언정 주님의 크신 섭리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은 바로 우리 속에 내주해 계신 성령님의 조명을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아시기 때문입니다.
고전2: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아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통달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조명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마16:16“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놀라운 신앙 고백은 깊은 기도를 통한 자기 성찰도 아니요, 하나님과 신묘막측한 직관을 통해서도 아니요 오직 성령님의 조명으로 예수님의 실체를 정확히 알고 고백한 것입니다.
마16:17“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우리 주님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아 거기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성령님의 조명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조명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은 성령충만을 간구함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35절에서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합니다.
이 말은 인간이 하나님께 무엇을 드린 대가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말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 주시는 것은 그분의 독자적인 결정에 의한 것이지 인간이 무엇 즉 십일조나 구제나 헌신이나 전도 봉사활동등 이런 것들을 드려서 하나님과 거래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천하에 있는 것의 진정한 주인이시며, 하나님의 독자적인 결정으로 우리에게 주시기도하고 걷우어 가시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께 빚을 주고 갚으라고 강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을 위해 드리거나 헌신하는것을 도대체 무엇입니까?
주님을 위해 시간과 물질과 육신을 드리는 것은 바로 주님께 받은 것을 되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드리는 것 모두가 원래 소유주이신 주님께 돌려 드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해선 곤란합니다.
김장훈이가 기부 배틀을 하자는 제안을 누군가에게 했다고 합니다.
150억 200억을 기부했다고도 합니다.
떠들며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더욱이 야간 업소에 출연까지 하고 빚을 내서까지 하는 것은 꼭 좋다 옳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복을 내려 주신 것이 새벽기도 참석하고 십일조, 교회 봉사 잘하고 , 전도에 열심을 내고, 목회자를 잘 섬겼더니 축복을 주셨다고 간증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좋은 일이고 잘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내가 열심히 헌신했기 때문에 빚 갚듯이 그렇게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고 열심이었다 할지라도 갚아야할 빚이 있는 것처럼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상 29:14“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이런 고백이 성도님들과 저의 고백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를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는 모든 행위들이 곧 원래 주인에게 돌려 드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주인에게 드리는 것은 관리자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항상 나는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요 좋은 관리자임을 명심하며 살아간다면 이렇게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세상 구석구석까지 썩고 문드러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실 줄 믿고 성령 주시기를 구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하나님의 심오한 지혜를 찬양할 내용이 무엇인가요?
셋째 영광이 하나님께 영원하시기를 송축하라.
36절에서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합니다.
즉 하나님은 만물의 기원이시며 과정이시며 목표이시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만물은 자신들의 원천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을 통해서 자신들의 존재를 형성하며 하나님께 자신들의 최고 목적을 둔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깊이 묵상하고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의 존재 근거이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으며 찬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만고불변의 진리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나요?
먼저 하나님께서 만물의 기원이 되신다는 사실을 믿으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어떤 원인에 의해 지배를 받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외의 모든 만물을 지탱하는 근거가 되신다는 말입니다.
다음은 하나님께서 만물의 과정이 되신다 합니다.
이 말은 만물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의해 그분을 통해서 생성되고 유지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물은 하나님에 의해서 형성되어져 가고 , 하나님을 통해 유지됩니다.
우주질서와 법칙은 하나님에 의해서 운영되어집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두 손이 이 우주를 온전히 품고 운행과정을 책임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하나님께서 만물의 목표가 되신다는 말은 만물이 최고의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영광보다 더 우선되는 목표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만물은 이미 그 나름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존재하게 하신 것 자체가 만물에게 의미를 부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존재는 곧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물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음을 자각함으로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극명히 드러내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줄 믿습니다.
이와 같은 진리를 우리가 깊이 깨달을 때 우리의 삶은 변화를 얻게 됩니다.
성도는 겸손함과 감사함으로 우리 존재의 근거가 되시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게 되며, 현재 우리가 누리는 모든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닥쳐오는 모든 사건과 상황들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과정에 있음을 인식하고 조용히 인내하면서 그것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하나님을 우리 삶의 알파와 오메가로 삼고 , 모든 행위들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방향으로 조정해나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만물의 기원과 과정과 목표가 되고 이 땅에서 성도의 삶을 지탱하는 힘을 공급해 주실 줄 믿습니다.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고 그에게 돌아가는 것이므로 영광은 하나님께 영원토록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살고 죽는 것과 우리 인생전체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어떻게 돌려 드려야 하나요?
먼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최종적이고 유일한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다음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소망이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하라는 말씀처럼 믿음이 뜨거울 때든지 시험받을 때든지 변함없어야 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성도의 소망은 계속적으로 성장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이 성장하고 우리의 신앙인격이 성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소망도 함께 성장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 한 가지는 반드시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은 모든 인생이 궁극적인 목적이자 소망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유일한 것이며 지속적인 것이며 점차 성장되어야 하고 직접 실천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이러할 때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고 하는 진리가 진정 우리의 삶의 현장을 이끌어가는 모티브 되기를 축원 합니다.
그리하여 바르고 정직한 사회 ,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는 사회, 기회가 균등히 주어지는 바른 사회, 함께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사는 사회, 남북간에 평화가 정착되고 예수 안에서 통일된 나라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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