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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교리의 가치 1

하나님아들 2016. 4. 10. 23:07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교리의 가치 1

아더 핑크

 

이 교리의 가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며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위의 성구에서 교훈이란 말은 ‘가르치는 것’이란 뜻이요 그것은 교훈이나 가르치는 것에 의하여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관한 위대한 실재성들 즉 그리스도와 성령과 구원과 은혜와 영광에 대하여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성령의 권능을 통한 교훈에 의하여 신자들이 장성하고 개화되나 교훈이 등한시 되고 있는 곳에는 은혜로 장성함과 그리스도를 효과 있게 증거 하는 일이 필연적으로 중요된다. 사실 교훈은 실제 생활의 바른 기초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 교훈을 비실제적이라고 비난하는 일은 통탄스러운 일이다. 신앙과 실제 사이에 분리할 수 없는 연관성이 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 23:7)이라고 함과 같이 경건한 진리와 신자의 성품과의 관계는 인과 관계와 같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무식에서 자유함과 편견에서 자유함과 과오에서 자유함과 사단의 유혹에서 자유함과 악한 세력에서 자유함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알지 못한다면 그런 자유들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본장의 요절인 성구에 있는 어귀들의 순서를 살펴보라. 모든 성경은 먼저 교훈하기에 유익하다. 같은 순서가 서신들을 통하여 발견됐는데 특히 사도 바울의 위대한 교리 취급에서 볼 수 있다. 로마서를 읽어 보면, 첫 다섯 장에는 교훈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 에베소서에서도 제 4장까지 권면이 하나도 없다. 먼저는 교리적 해석이 있고 그 다음에 교훈이나 또는 권면이 일상생활의 규칙에 대하여 진술되고 있다.

 

소위 실제적설교를 교리 해석 대신으로 하는 것은 현대에 하나님의 교회를 해롭게 하는 악한 병폐들 가운데 많은 근본적 원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근본적 진리들에 대하여 매우 천박하고 무식하며 그것을 파악한 것이 매우 부족한 것은 신자들로서 해설한 은혜의 교리를 듣고 또 친히 공부함을 통하여 신앙을 확립시킨 이들이 매우 적은 것이다.

 

심령이 성경의 완전하고 축어적인 영감 교리에 확립되어 있는 않는 한 그의 신앙을 세울만한 확고한 기초가 있을 수 없다.

 

신자가 칭의(稱義)교리에 무식하면 그가 그리스도를 올바로 믿는 신앙이 그에게 있을 수 없다.

 

그가 성화(聖火)에 대한 말씀이 가르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면, 그는 완전 성결에 대한 모든 과오나 또는 그 외의 다른 잘못된 교훈들에도 문호를 개방하고 받아 드릴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기독교 교리의 전 부문을 다 통과해야 된다. 기성 교회가 무력하게 불신앙의 파도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은 교리에 무식한 탓이다. 많은 신자들이 오늘날 여러 종류의 그릇된 ‘주의(主義)’들에 포로가 되어버린 그 책임의 대부분이 교리의 무식 때문이다.

 

저희가 매우 쉽게 거짓 교훈을 받는 것은 많은 교회가 바른 교훈을 받지 않는(딤후 4:3)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물론 교리도 성경의 다른 것들과 같이 단순히 냉정한 지식적 관점에서 연구하여 그렇게 취급하므로 교리적 교훈과 연구로 마음에 감동은 받지 못한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그것은 무미건조하고 유익은 마음으로 연구할 때 항상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이 풍부함에 대한 지식을 더욱 깊이 파악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주권 교리는 단순히 실제적 가치는 없는 순수한 철학적 교리가 아니라 신자의 성격과 일상 생활의 유력한 결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 교리는 신학의 기초가 되어 있고 성경의 영감은 다음으로 중요하다. 그것은 또한 기독교 진리 체계의 중심이요, 주위에 둘려 있는 모든 항성들의 중앙에 있는 태양이요 또 많은 진주를 하나 같이 꿴 줄과 같이 다른 모든 교리들을 일관(一貫)한 끈이다.

 

그것은 각종 신조를 심사하는 표준이요 인간의 각가지 독단설을 달아보는 저울이다. 생의 파도에 휩쓸린 우리 영혼들이 최후로 의지할 것으로 지향한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론은 신령한 강심제로 우리의 영에 활기를 돋우어 준다. 그 목적은 마음에 애착심이 생기게 해서 우리의 행동을 바르게 인도하려고 한 것이다. 그것은 무엇이 잘될 때는 감사하며 역경에 처할 때는 참는 힘이 나게 한다. 그것은 현세에서는 위로를 내세에서는 안심이 생기게 한다.

 

이 교리는 지금까지 설명한 것 이상의 것을 내포하고 또 역할 한다. 왜냐하면 그 교리에 의하여 감히 하나님이 받으셔야 될 영광을 다 그에게 돌리고 피조물인 인간으로 자기 응분의 위치(먼지로)에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그 교리에 대하여 자세하게 생각해 보기로 하자.

 

1. 그 교리는 우리로 하나님의 속성을 더욱 존경하게 한다.

 

하나님의 주권론은 성경에 나타나 있는 대로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대하여 고귀한 견해가 생기게 한다. 그것은 그의 창조주의 권한을 지지하며 또 주장하여 이르기를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전 8:6)라고 한다.

 

성경은 말하기를 그의 권세는 토기장이가 맘대로 진흙을 빚어서 각종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은 권세라고 하며 또 간증하기를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계 4:11)라고 한다.

 

그것은 아무 것도 하나님을 거슬려 말할 수 없고 피조물로 응당 취해야 될 합당한 태도는 그 앞에 복종할 것뿐이라고 증명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절대로 초월하심에 대하여 표현함은 실제상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의 고귀한 주권을 합당하게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가 결코 그를 존귀하게 생각하지 못할 것이요 우리의 마음과 생활에 그를 합당하게 모시지 못할 것이다.

 

그 교리에 그의 지혜는 해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무한히 거룩하신 반면에 죄악이 그의 아름다운 창조계에 들어오게 허락하셨고, 그는 전능하신 반면에 마귀로 하여금 적어도 6,000년간 당신을 대항하여 싸우게 허락하셨고, 그는 온전한 사랑의 소유자이시나 당신의 독생자는 아끼시지 않았고 그는 은혜가 충만한 하나님이시나 모든 사람이 다 그 은혜에 참여하세 하시지 않았다. 이 모든 이치는 매우 신비스러운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성경이 부인하지 않고 인정하나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하나님의 주권론은 그의 의지가 번복 될 수 없음을 알게 해 주니 이것은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다”(행 15:18). 예로부터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교회 안에서 영원 무궁토록(엡 3:21) 영광을 당신에게 돌리실 목적을 가지셨다.

 

이러한 목적으로 그가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다. 전지(全知)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이 범죄 함으로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왜냐하면 창세 이후로 죽임을 당하신(계 13:8) 어린양 안에서 예기된 인류의 타락을 우리는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목적이 아담의 범죄 한 이후부터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좌절되지도 않을 것은 진실로 사람의 노함은 장차 주를 찬송하라고 한 시편 기자의 말에서 분명히 알려진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의 뜻은 저항함을 당할 수 없다. 그의 목적은 영원전에 세워졌고 또 영원토록 변경함이 없이 성취되고 있다. 그의 목적은 그의 모든 역사와 모든 사건을 주관하심에 관한 것이다. 그는 모든 일을 당신의 뜻대로 역사하신다.(라이스 박사). 사람이나 마귀가 그를 거역하는데 성공할 수 없다. 그런고로 성경에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시 99:1)라고 기록되었다.

 

하나님의 주권론은 그의 은혜를 찬양한다. 은혜는 값없이 베푸시는 호의로 그것을 받을 수 없고 지옥 형벌을 받아야만 하고 하나님께 요구할 권리가 없는 자들에게 보여 주시기 때문에 거저 주시는 은혜요 그리고 죄인의 괴수에게 주실 수 있는 것이 은혜이다. 그러나 은혜는 가치나 또는 공로가 없는 자들에게 내리시기 때문에 은혜는 주권적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다 정죄함을 받을 만 함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더러는 저희의 죄 때문에 멸망을 받게 될 것으로 마음대로 작정하셨다. 그러나 은혜는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호의가 영원히 기념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전 인류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들을 뽑아서 그들에게 간섭하는 것이다. 주권적 은혜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에 반대함을 꺾고 육체적 생각의 적개심을 굴복시켜서 그를 사랑하게 하신다. 그 까닭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2. 이 교리는 모든 참된 종교의 확고한 기초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 다음에 온다. 하나님의 주권 교리로 하나님이 합당한 위치에 계신다면 그 교리에 의해서만 실제적 종교를 설립할 수 있는 견고한 터가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은 최고이시요 그는 경외하며 존경해야 될 분이요 또 그분은 주님으로 인정하고 경배해야 될 분임을 친히 인정할 때까지 모든 신령한 일이 진행될 수 없다. 우리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더욱 잘 알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위에서 말한 것을 대하지 않으면 우리가 쓸데 없이 성경을 읽는 것이 될 것이다. 이외의 어떤 다른 동기든지 그것은 이기적이요 전연 합당치 않고 또 무가치한 것이다.

 

우리가 그의 뜻대로 기도를 올리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다 육에 속한 생각일 것이다(이렇지 않는 기도는 쓸데없는 것을 요구한 것이요 우리의 정욕에서 간구한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무엇이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지 않으면 무가치한 일을 할 것이다. 경험적 종교는 주로 하나님의 뜻(능동적과 수동적의 행사)에 대한 지식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받게 하도록" 예정하셨다. 그의 생활은 항상 자기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는 것이며 모든 성도가 실제로 매일의 생활에서 그것을 본받아 행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 따름으로 결정이 된다.

 

이 말씀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것이다.

 

3. 이 교리는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이단설을 배격한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4:12). 사람의 노력과 공로로 얻는 구원은 보기에 바르나 사망 곧 영원한 사망으로 끝맺게 하는 길이다.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공통된 인간의 성품이다.

 

그것은 항상 로마교의 고해의 비적(告解의 秘積)이나 신교에서 사용하는 회개 (이것은 죄를 통애 하는 것인데 그것의 충분한 의미가 결코 성경에 연명되어 있지 않다)가 심한 모양도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설교자들이 말하기를 당신들이 할 것을 하면 하나님은 당신이 하실 일을 하실 것이다 라고 함은 그의 은혜의 복음을 파괴하고 용서할 수 없어 부인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들을 도우신다는 말은 성경에서만 가르친 가장 귀한 진리들 가운데 하나를 배격하는 말이다. 즉 하나님은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만은 거듭 당해 스스로 도울 수 없는 자들을 도와주신다. 죄인의 구원은 그의 의지적 행동에 달려 있다고 하는 말은 또 다시 하나님을 불 명예롭게 하는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결국에 가서는 의지의 어떠한 움직임도 하나의 활동이다. 하나님의 주권 교리가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 이니라”(롬 9:16)는 말씀에 의하여 도끼를 이 나쁜 나무의 뿌리에 놓아둔다. 그런 교리는 죄인들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이 보급되는 것을 이 저자는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죄인이 스스로 절망을 느낄 때까지 그는 주권자의 자비스러운 가슴에 안기게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성령이 그로 하여금 자력(自力)이 없음을 느끼게 한다면 그때에야 그는 자신을 멸망의 대상자로 알고 ‘오 하나님 이 죄인에게 긍휼을 베푸소서’라고 외치게 될 것이요 그러한 외침은 응답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저자 자신의 간증을 한다면 나는 목회생활 중 다음의 사실을 깨달았다. 즉 나는 인류의 타락과 죄인의 절대 무능과 영혼 구원은 하나님이 주권적 자비에 의존한다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런 설교들은 멸망할 자들의 구원에 가장 독특하고 복된 설교임을 발견했다. 다시 말한다면 전적 무능을 느끼는 것이 어떠한 회개에도 제일 되는 요구 조건이다. 어떤 영혼이든지 자신을 개대하지 않고 다른 것 아닌 자기 이외의 다른 분을 기대할 때까지 그에게 구원이 없다.

 

출처 : jennifer7070
글쓴이 : Jennif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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