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하나님의 절대적인 인격의 속성들
Ⅰ 하나님의 속성들과 이름들
이름보다 속성을 먼저 다룹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가까이 할 수 없는 영광, 절대로 접근할 수 없는 빛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다시 말해 그의 궁극적인 본성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 다음 말할 내용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특성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속성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속성들만 알리셨을 뿐 아니라 훨씬 더 가까이 오셨습니다. 그분은 스스로에게 특별한 이름들을 부여하셨는데 그렇게 하신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가까이 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좌절과 혼돈에서 빠져 나와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 하신 말씀들을 알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 이 교리를 고찰하는 목적과 접근하는 방법
이 두 가지를 아는 일에 있어서 우리가 전적으로 성경의 계시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계시로부터 떠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알도록 우리가 그분을 경배하도록, 우리가 그분과 교제하도록 자신을 보이시고 자신을 나타내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우리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신 명령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연구해야 하는 어떤 현상이 아니라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하고 영원한 인격의 속성들에 접근하는 일은 과학적인 조사 분석의 과정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도 상기해야 합니다. 절대로 그런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 우리에게 말씀해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들을 기쁘게 받아들일 뿐입니다. 그것들에 주목하고 마음에 새기기 위해 노력합시다. 그리고는 겸손히, 넘치는 예배와 찬양으로 하나님의 낮아지심에 대해 감사를 드립시다.
Ⅱ 하나님의 속성
1 하나님의 속성의 의미
여기서 속성이란 말은 하나님의 완전성의 일부분, 다른 말로는 하나님의 덕의 일부분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속성-하나님의 이런 완벽함과 탁월함-을 선포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속성들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셨고 어는 정도는 우리가 이해할 수도 있는 하나님에 대한 사실들, 하나님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영원한 본성의 몇 가지 측면들을 의미합니다.
Ⅲ 하나님의 인격적(비공유적)속성
1영원성과 불변성
그분은 절대적 의미에서 인격적 존재이십니다. 그러면 그분의 인격에 속한 속성들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속성들은 물론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의 표상이며,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첫 번째 속성은 하나님의 영원성과 불변성입니다. 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십니다. 그분은 영원하십니다. 이에 대한 위대한 진술을 시편 90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2절). 시편 102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영원성을 증언하고 바라보며 놀랄 뿐입니다.
하나님의 불변성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본질상 결코 달라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영원히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이 현재 항상 보여 주고 계신 모습, 그리고 과거에 계속해서 보여주셨던 모습으로부터 어떤 측면에서라도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분의 위대한 이름 중 하나나는 이 사실을 시사합니다. 여호와-스스로 있는 자-의 의미는 ‘나는 언제나 동일하다’, ‘나는 변치 않는 자이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그의 절대적인 완전성 가운데 언제나 동일하십니다.
야고보가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고 말한 것은 바로 이 사실에 대한 위대한 진술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본성과 성품입니다. 그분은 변함이 없으실 뿐 아니라 심지어 변화의 가능성조차도 전혀 없으십니다.
질문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일들을 후회하셨다고 말하지 않나요? 창세기 6장에 보면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라고 되어 있지 않나요? 요나서에서 하나님이 니느웨를 멸하지 않으신 것으로 보아 하나님도 후회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성경에는 후회하시는 하나님도 기록되어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까?“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절대로 변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사람과 맺으시는 관계의 모습은 변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본성은 언제나 영원토록 동일하시지만, 하나님이 사람과 맺으실 때는 그 사람들이 회개하느냐 그렇치 않느냐에 따라 다양한 행동을 취하십니다.
이것은 모든 교리 중에서도 가장 심오하고 영광스러운 교리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도 이 말에 동의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과 경험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원성과 불변성의 교리만큼 큰 위로를 주었던 것도 없었습니다. 이들은 또한 죄인들을 가장 두려움에 떨게 하는 교리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즉 하나님은 영원토록 의로우시고, 영원토록 거룩하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변화와 썩음 모든 곳에서 보이지만 오, 변치 않는 당신은 나와 함께 머무시네.’ -라이트(H. F. Lyte)- 모든 것이 변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언제나 동일하시다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확신하루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숭고한 교리이지만 또한 가장 실제적이고 위안이 되는 교리입니다.
2 편재성(omnipresence)
이는 하나님이 모든 곳에 존재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이 모든 곳에서 항상 똑같은 방식으로 존재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언급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늘이 그분의 계신 곳이라고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왕상 8:30).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곳에 존재하지만, 하나님이 특별히 임하시는 특정한 장소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언급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범신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범신론은 하나님이 만물 안에 영원히 갇혀 있는 일종의 포로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인격성을 부인합니다.
성경의 하나님의 편재성에 대한 진술들
(렘 23:23-24) 2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이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시 139:7-10)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임재나 시야로부터, 즉 하나님의 편재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시편 139편에서 이 교리를 경고로 간주했는데, 그것은 바른 이해입니다. 하나님의 속성들은 경고이자 위로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면 여러분은 그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어떤 환경에 처하든 하나님이 여전히 당신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생각하고 깨닫는 것은 놀라운 위안이 되지 않겠습니까?
3 전지하심(omiscience)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하나님의 지식은 언제나 절대적인 지식입니다. 그것은 완벽한 지식이며, 모든 것에 대한 완전한 지식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이에 대한 대단히 많은 진술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편 147편 5절은 “....그의 지혜는 무궁하시도다.”라고 했고, 잠언 15장 3절에는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지하심의 구분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시 147:5).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마 10:29)? 하나님은 자연의 영역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인간적인 경험에 대해 무엇을 알고 계시는지에 더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시편 139편은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2절). 나의 생각을 아십니다! 그분은 그에 대해 모든 것을 아십니다. 더 아나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정확하고 자세한지요!
더 나아가 하나님이 과거와 미래의 모든 인간 역사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성경 어디에나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다니엘서 2장은 장차 올 나라들에 대한 예언입니다. 다니엘서 8장도 똑같은 것을 보여 주며 이 외에도 많은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18절은 하나님의 예지를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진술합니다.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모든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지혜는 그분의 완벽한 지식의 한 부분이자 일면입니다. 성경에는 지식과 지혜를 구분하여 언급합니다. 그렇다면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무엇일까요? 첫째, 지식의 원천은 공부입니다. 지혜의 원천은 분별력입니다. 둘째로, 지식은 보통 그 특성상 추론적인 반면, 지혜는 직관적입니다. 지식은 대화와 이야기와 고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지혜는 어떤 의미에서는 거의 타고난 재능입니다. 지식과 지혜는 그 외에도 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지식을 일반적으로 이론적인 반면 지혜는 언제나 실제적입니다. 지혜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사용하고, 그 지식을 적용하여 실제적인 수준까지 가져오는 능력입니다. 지혜는 살아서 무언가 하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구분점은, 지식으로는 의지와 상관없이 활동하는 정신을 소유하는 반면, 지혜에 있어서는 의지에 복종하여 행동하는 정신을 소유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지혜는 올바른 종류의 지식입니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있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비극인지요!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난 영역- 창조, 구속, 섭리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를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지식을 적용하셔서 열매 맺게 하십니다. 이 사실을 세 가지의 중요한 측면에서 가장 확실하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창조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볼 수 있습니다. 창조에 나타난, 그리고 그 설계와 완벽한 배열, 모든 조화, 모든 협동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합니다.
구속에 나타난 지혜는 고린도전서 1장의 논증은 놀랍습니다.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22절). 하지만 지혜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24절)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30절).
4 전능하심
하나님은 모든 능력을 다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전능하심을 통해 뜻하시는 모든 것을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고찰할 때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든 것, 모든 실존의 최종 근거입니다. “모든 일은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엡 1:11)에 대해 기술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뜻이 주권적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독단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위대하시고 영광스러운 본성의 다른 모든 속성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시행됩니다. 이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편재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은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려고 하시는 특정한 일들을 선포하시는데 이것을 하나님의 작정적 의지(decretive will)라고 부릅니다. 그분은 또한 우리가 할 특정한 일들을 지시하시며 이것을 하나님의 규정적 의지(prescriptive will)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이 하시려는 일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며 또한 우리가 할 일을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능력은 무엇보다도 창조와 구원과 섭리라는 세 가지 방법으로 가장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가장 위대한 표현은 엡 1:19-20이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5 절대적 복되심
성경은 하나님의 철저하고 절대적인 완전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탁월함의 총합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대해 말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복되심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딤전1:11). “복되신 하나님”의 의미는 하나님 자신의 지식과 사랑의 대상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완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기뻐하시고, 자신을 즐거워하시며 완벽하고 절대적으로 자족하신 분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그분 자신과 그분의 영광스러운 존재 안에서 기꺼이 만족하심이 하나님의 복되심입니다.
6 영광
영광은 성경에서 그분의 위대하심, 그분의 광휘, 그분의 엄위하심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왕상8:11), 하나님의 영광이 어떤 사람들에게 희미하게 나타난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7장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들
Ⅰ 하나님의 도덕적(공유적) 속성
1 거룩하심
거룩함이 무엇입니까? 소극적인 의미로 하나님께서 죄와는 완전히 분리되어 계시며 관계가 없으시다는 것으로 거룩함은 일차적으로 악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거룩함에는 적극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본질적이고 완벽한 순결입니다. 성경에서는 어디서나 하나님은 거룩하시다고 가르치시며, 이런 거룩함이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고, 죄와, 죄인과 모든 악한 것으로부터 떨어져 계심을 통해 표현됩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을 “거룩하신 이”(사 40:25)라고 부르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4장 등에 기록된 놀라운 사건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본 것과 같았고, 그 결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압도당했습니다. 같은 일이 욥과, 이사야, 에스겔에게도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온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하심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구약은 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 거룩하심의 결과로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계시입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과 성막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가르침을 실제적인 방법으로 가르쳐 주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의식법들의 정결하고 부정한 짐승들에 대한 규정들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가르침의 일부였던 것입니다. 선지자들도 언제나 하나님이 거룩하심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큰 위무이며 메시지였습니다.
신약도 역시 같은 사실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거룩하신 아버지”라고(요 17:11)라고 부르셨습니다. 또한 요한일서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 1:5). 성경은 영광스러운 삼위일체의 세 위격은 언제나 거룩이라는 용어로 언급되어 묘사됩니다. 하지만 성경의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장 강력하게 가르침은 십자가이다. 하나님은 매우 거룩하시기 때문에 갈보리에서의 끔찍한 죽음이 없이는 우리를 용서하실 수 없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가장 숭고한 선포이며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첫째, 우리는 “경건함과 두려움으로”(히 12:28)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불타는 떨기나무 앞의 모세를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출 3장). 그리고 법궤를 소가 끄는 수레로 싣고 갈 때 법궤가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 손으로 잡았던 웃사라는 사람의 사례가 있습니다. 율법이 어떻게 주어졌는지 읽어보십시오. 어떻게 산이 불타고 있었고, 아무것도 산에 접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는지 읽어보십시오.
둘째,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참된 개념을 갖고 있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죄를 알지 못합니다. 죄가 많다는 것을 인식하는 방법은 자신의 행동들이나 삶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우리에게 속죄가 절대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십자가를 나타낼뿐만 아니라, 피 흘림이 없으면 죄사함도 없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죄의 보상을 강조하고 요구한다는 사실도 나타냅니다.
2 의로우심, 공의로우심
하나님의 의와 공의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관계하실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입니다. 의와 공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실행하는 것이며, 세상을 통치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의로운 요구들을 부과하시기 위해 그분의 율법을 주신 것이 의이고, 공의에 의해 하나님은 그의 율법을 어기고 죄를 범한 죄인들에게 형벌을 내리십니다. 의는 거룩함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공의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혐오라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와 공의가 드러나는 다양한 영역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 중 하나는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며 하나님의 진노는 이것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3)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의와 공의는 그분의 진노 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때에도 의와 공의를 드러내십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하나님이 죄사함의 길을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길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에게 들어오고, 그 공의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을 제공하심으로 죄사함의 길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공의와 의를 나타내시는 또 한 가지 방법은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말씀을 지키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인들에게 상을 주시기도 합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니라”(딤후 4:8).
로마서 3장 25절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의로움과 절대적인 공의를 나타내신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회개하는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것이 정당함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죄를 사하실 뿐 아니라 의롭게 만드십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대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에 우리 역시 의롭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법적인 의미 혹은 법정적 의미에서 우리를 의롭게 만드십니다. 그것이 이신칭의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또한 우리를 의롭게 만드십니다. 이것이 성화입니다. 이 일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책망할 것이 없게 되고, 심지어 그분 자신처럼 의롭고 거룩하게 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3 선하심과 사랑
우리가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들을 상고하며 따르고 있는 순서-거룩, 의와 공의, 선하심과 사랑-를 주의 보십시오. 이 속성들을 바른 순서로 정리하지 않는 것은 위험하고 무서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이 잘못을 범하는데, 그 결과는 믿음의 파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은 어는 정도 상호 교환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두 용어는 구별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분의 모든 피조물을 관대하고 친절하게 다루도록 하는 하나님의 완전하심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시145:9).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이 자신을 인간에게 영원토록 전달하도록 만드는 속성입니다. 이는 삼위일체 교리의 서론이 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사실은 삼위일체의 증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고 영원한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항상 사랑하신 누군가가 반드시 존재해야 합니다. 이 사실은 필연적으로 삼위일체의 교리를 만듭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의 대상
첫째,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선하심과 사랑을 일반적인 방법으로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5:45).
둘째, 더 특별하고 훨씬 더 영광스러운 사실인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은혜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 혹은 사랑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복의 원천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가르칩니다. 모든 것은 영원하고 끝없는 은혜의 샘에서 흘러나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딛2:11). 딛 3장은 하나님의 은혜의 가장 장엄한 진술입니다. 이 장을 읽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놀라운 사랑과 선하심을 깨닫기 시작함으로 기뻐하며 경배 가운데 여러분 자신을 바치십시오.
자비는 하나님이 선하심과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의 나타내심에서 생각해야 할 용어는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자비하심,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입니다. 긍휼은 자신들의 죄의 결과로 비참함 혹은 괴로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공로와는 상관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서언에서 “그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눅 1:54)라는 말씀을 발견합니다. 시편 특히 103편에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영광스러운 진술이 나오고, 바울은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9:18)고 말합니다. 그러나 긍휼에 대한 언급의 대부분은 서신서들의 서론의 문안에서 발견됩니다.
인내와 오래 참으심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이 오래 참지 않으셨다면 우리중에 한 사람도 오늘 여기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 진멸되어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완악한 자들과 악한 자들을 참으신다는 의미입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롬2:4).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벧후3:15). 그리고 베도로는 두 번째 서신에서 “또 우리의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벧후 3:15)고 말합니다.
4 신실하심
이제 이 사실은 우리를 하나님의 네 번째 도덕적 속성으로 인도합니다. 그 속성은 하나님의 신실하심 또는 미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안전하게 기댈 수 있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갑자기 가버리시거나 우리가 멋대로 가도록 내버려둘 것이라는 의심이 전혀 없이 우리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분, 의지할 수 있는 분, 머무를 수 있는 분이시라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하늘에까지 미친다고 말씀합니다(시36:5).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은 반드시 성취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사 55:11). 성경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자신의 종들을 모든 시련과 시험과 갈등의 때에 지키시고 구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부르신 모든 사람들을 굳게 서게 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자신의 목적들이 성취될 때까지 그들을 악한 자로부터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의지할 수 있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1:9).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5:23-24).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신의 궁극적 운명은 절대적으로 확실합니다. 하나님을 좌절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약속하신 일을 보류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에 대해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일을 바꾸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거스려 죄를 범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하나님께서 이를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실실하심에 온전히 의지하고 마귀에게 말하십시오.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고, 죄를 고백하였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의 죄사함을 보장하였노라!
믿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매달리는 것
허드슨 테일러는 항상 ‘하나님을 믿으라’(막11:22)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매달리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 했습니다. 하나님은 불변하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당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당신이 어디에 있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매달리십시오.
Ⅱ 하나님의 속성을 살펴볼 때 주의할 사항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을 다루었습니다. 명확성을 위해 지적 이해를 위해 하나님의 속성들을 한 가지씩 해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주의할 것은 하나님의 속성들 중 어느 하나라도 따로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속성들 모두에 있어 동시에 전체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한 가지 속성을 다른 속성에 반하여 제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대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체로서 항상 동시에 거룩하시고, 전체로서 항상 동시에 긍휼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한 사랑입니다. 이 사실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공의와 대립시키는 것은 얼마나 큰 비극인지 모릅니다! 절대로 그래선 안 됩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생각에 하나님 안에 있는 완전한 균형을 간직해야 합니다.
Ⅰ 하나님의 속성들과 이름들
이름보다 속성을 먼저 다룹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가까이 할 수 없는 영광, 절대로 접근할 수 없는 빛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다시 말해 그의 궁극적인 본성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 다음 말할 내용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특성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속성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속성들만 알리셨을 뿐 아니라 훨씬 더 가까이 오셨습니다. 그분은 스스로에게 특별한 이름들을 부여하셨는데 그렇게 하신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가까이 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좌절과 혼돈에서 빠져 나와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 하신 말씀들을 알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 이 교리를 고찰하는 목적과 접근하는 방법
이 두 가지를 아는 일에 있어서 우리가 전적으로 성경의 계시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계시로부터 떠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알도록 우리가 그분을 경배하도록, 우리가 그분과 교제하도록 자신을 보이시고 자신을 나타내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우리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신 명령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연구해야 하는 어떤 현상이 아니라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하고 영원한 인격의 속성들에 접근하는 일은 과학적인 조사 분석의 과정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도 상기해야 합니다. 절대로 그런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 우리에게 말씀해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들을 기쁘게 받아들일 뿐입니다. 그것들에 주목하고 마음에 새기기 위해 노력합시다. 그리고는 겸손히, 넘치는 예배와 찬양으로 하나님의 낮아지심에 대해 감사를 드립시다.
Ⅱ 하나님의 속성
1 하나님의 속성의 의미
여기서 속성이란 말은 하나님의 완전성의 일부분, 다른 말로는 하나님의 덕의 일부분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속성-하나님의 이런 완벽함과 탁월함-을 선포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속성들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셨고 어는 정도는 우리가 이해할 수도 있는 하나님에 대한 사실들, 하나님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영원한 본성의 몇 가지 측면들을 의미합니다.
Ⅲ 하나님의 인격적(비공유적)속성
1영원성과 불변성
그분은 절대적 의미에서 인격적 존재이십니다. 그러면 그분의 인격에 속한 속성들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속성들은 물론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의 표상이며,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첫 번째 속성은 하나님의 영원성과 불변성입니다. 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십니다. 그분은 영원하십니다. 이에 대한 위대한 진술을 시편 90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2절). 시편 102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영원성을 증언하고 바라보며 놀랄 뿐입니다.
하나님의 불변성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본질상 결코 달라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영원히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이 현재 항상 보여 주고 계신 모습, 그리고 과거에 계속해서 보여주셨던 모습으로부터 어떤 측면에서라도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분의 위대한 이름 중 하나나는 이 사실을 시사합니다. 여호와-스스로 있는 자-의 의미는 ‘나는 언제나 동일하다’, ‘나는 변치 않는 자이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그의 절대적인 완전성 가운데 언제나 동일하십니다.
야고보가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고 말한 것은 바로 이 사실에 대한 위대한 진술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본성과 성품입니다. 그분은 변함이 없으실 뿐 아니라 심지어 변화의 가능성조차도 전혀 없으십니다.
질문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일들을 후회하셨다고 말하지 않나요? 창세기 6장에 보면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라고 되어 있지 않나요? 요나서에서 하나님이 니느웨를 멸하지 않으신 것으로 보아 하나님도 후회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성경에는 후회하시는 하나님도 기록되어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까?“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절대로 변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사람과 맺으시는 관계의 모습은 변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본성은 언제나 영원토록 동일하시지만, 하나님이 사람과 맺으실 때는 그 사람들이 회개하느냐 그렇치 않느냐에 따라 다양한 행동을 취하십니다.
이것은 모든 교리 중에서도 가장 심오하고 영광스러운 교리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도 이 말에 동의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과 경험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원성과 불변성의 교리만큼 큰 위로를 주었던 것도 없었습니다. 이들은 또한 죄인들을 가장 두려움에 떨게 하는 교리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즉 하나님은 영원토록 의로우시고, 영원토록 거룩하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변화와 썩음 모든 곳에서 보이지만 오, 변치 않는 당신은 나와 함께 머무시네.’ -라이트(H. F. Lyte)- 모든 것이 변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언제나 동일하시다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확신하루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숭고한 교리이지만 또한 가장 실제적이고 위안이 되는 교리입니다.
2 편재성(omnipresence)
이는 하나님이 모든 곳에 존재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이 모든 곳에서 항상 똑같은 방식으로 존재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언급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늘이 그분의 계신 곳이라고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왕상 8:30).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곳에 존재하지만, 하나님이 특별히 임하시는 특정한 장소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언급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범신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범신론은 하나님이 만물 안에 영원히 갇혀 있는 일종의 포로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인격성을 부인합니다.
성경의 하나님의 편재성에 대한 진술들
(렘 23:23-24) 2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이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시 139:7-10)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임재나 시야로부터, 즉 하나님의 편재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시편 139편에서 이 교리를 경고로 간주했는데, 그것은 바른 이해입니다. 하나님의 속성들은 경고이자 위로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면 여러분은 그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어떤 환경에 처하든 하나님이 여전히 당신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생각하고 깨닫는 것은 놀라운 위안이 되지 않겠습니까?
3 전지하심(omiscience)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하나님의 지식은 언제나 절대적인 지식입니다. 그것은 완벽한 지식이며, 모든 것에 대한 완전한 지식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이에 대한 대단히 많은 진술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편 147편 5절은 “....그의 지혜는 무궁하시도다.”라고 했고, 잠언 15장 3절에는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지하심의 구분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시 147:5).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마 10:29)? 하나님은 자연의 영역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인간적인 경험에 대해 무엇을 알고 계시는지에 더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시편 139편은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2절). 나의 생각을 아십니다! 그분은 그에 대해 모든 것을 아십니다. 더 아나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정확하고 자세한지요!
더 나아가 하나님이 과거와 미래의 모든 인간 역사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성경 어디에나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다니엘서 2장은 장차 올 나라들에 대한 예언입니다. 다니엘서 8장도 똑같은 것을 보여 주며 이 외에도 많은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18절은 하나님의 예지를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진술합니다.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모든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지혜는 그분의 완벽한 지식의 한 부분이자 일면입니다. 성경에는 지식과 지혜를 구분하여 언급합니다. 그렇다면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무엇일까요? 첫째, 지식의 원천은 공부입니다. 지혜의 원천은 분별력입니다. 둘째로, 지식은 보통 그 특성상 추론적인 반면, 지혜는 직관적입니다. 지식은 대화와 이야기와 고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지혜는 어떤 의미에서는 거의 타고난 재능입니다. 지식과 지혜는 그 외에도 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지식을 일반적으로 이론적인 반면 지혜는 언제나 실제적입니다. 지혜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사용하고, 그 지식을 적용하여 실제적인 수준까지 가져오는 능력입니다. 지혜는 살아서 무언가 하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구분점은, 지식으로는 의지와 상관없이 활동하는 정신을 소유하는 반면, 지혜에 있어서는 의지에 복종하여 행동하는 정신을 소유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지혜는 올바른 종류의 지식입니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있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비극인지요!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난 영역- 창조, 구속, 섭리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를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지식을 적용하셔서 열매 맺게 하십니다. 이 사실을 세 가지의 중요한 측면에서 가장 확실하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창조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볼 수 있습니다. 창조에 나타난, 그리고 그 설계와 완벽한 배열, 모든 조화, 모든 협동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합니다.
구속에 나타난 지혜는 고린도전서 1장의 논증은 놀랍습니다.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22절). 하지만 지혜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24절)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30절).
4 전능하심
하나님은 모든 능력을 다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전능하심을 통해 뜻하시는 모든 것을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고찰할 때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든 것, 모든 실존의 최종 근거입니다. “모든 일은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엡 1:11)에 대해 기술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뜻이 주권적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독단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위대하시고 영광스러운 본성의 다른 모든 속성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시행됩니다. 이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편재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은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려고 하시는 특정한 일들을 선포하시는데 이것을 하나님의 작정적 의지(decretive will)라고 부릅니다. 그분은 또한 우리가 할 특정한 일들을 지시하시며 이것을 하나님의 규정적 의지(prescriptive will)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이 하시려는 일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며 또한 우리가 할 일을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능력은 무엇보다도 창조와 구원과 섭리라는 세 가지 방법으로 가장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가장 위대한 표현은 엡 1:19-20이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5 절대적 복되심
성경은 하나님의 철저하고 절대적인 완전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탁월함의 총합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대해 말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복되심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딤전1:11). “복되신 하나님”의 의미는 하나님 자신의 지식과 사랑의 대상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완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기뻐하시고, 자신을 즐거워하시며 완벽하고 절대적으로 자족하신 분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그분 자신과 그분의 영광스러운 존재 안에서 기꺼이 만족하심이 하나님의 복되심입니다.
6 영광
영광은 성경에서 그분의 위대하심, 그분의 광휘, 그분의 엄위하심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왕상8:11), 하나님의 영광이 어떤 사람들에게 희미하게 나타난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7장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들
Ⅰ 하나님의 도덕적(공유적) 속성
1 거룩하심
거룩함이 무엇입니까? 소극적인 의미로 하나님께서 죄와는 완전히 분리되어 계시며 관계가 없으시다는 것으로 거룩함은 일차적으로 악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거룩함에는 적극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본질적이고 완벽한 순결입니다. 성경에서는 어디서나 하나님은 거룩하시다고 가르치시며, 이런 거룩함이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고, 죄와, 죄인과 모든 악한 것으로부터 떨어져 계심을 통해 표현됩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을 “거룩하신 이”(사 40:25)라고 부르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4장 등에 기록된 놀라운 사건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본 것과 같았고, 그 결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압도당했습니다. 같은 일이 욥과, 이사야, 에스겔에게도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온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하심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구약은 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 거룩하심의 결과로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계시입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과 성막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가르침을 실제적인 방법으로 가르쳐 주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의식법들의 정결하고 부정한 짐승들에 대한 규정들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가르침의 일부였던 것입니다. 선지자들도 언제나 하나님이 거룩하심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큰 위무이며 메시지였습니다.
신약도 역시 같은 사실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거룩하신 아버지”라고(요 17:11)라고 부르셨습니다. 또한 요한일서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 1:5). 성경은 영광스러운 삼위일체의 세 위격은 언제나 거룩이라는 용어로 언급되어 묘사됩니다. 하지만 성경의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장 강력하게 가르침은 십자가이다. 하나님은 매우 거룩하시기 때문에 갈보리에서의 끔찍한 죽음이 없이는 우리를 용서하실 수 없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가장 숭고한 선포이며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첫째, 우리는 “경건함과 두려움으로”(히 12:28)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불타는 떨기나무 앞의 모세를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출 3장). 그리고 법궤를 소가 끄는 수레로 싣고 갈 때 법궤가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 손으로 잡았던 웃사라는 사람의 사례가 있습니다. 율법이 어떻게 주어졌는지 읽어보십시오. 어떻게 산이 불타고 있었고, 아무것도 산에 접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는지 읽어보십시오.
둘째,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참된 개념을 갖고 있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죄를 알지 못합니다. 죄가 많다는 것을 인식하는 방법은 자신의 행동들이나 삶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우리에게 속죄가 절대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십자가를 나타낼뿐만 아니라, 피 흘림이 없으면 죄사함도 없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죄의 보상을 강조하고 요구한다는 사실도 나타냅니다.
2 의로우심, 공의로우심
하나님의 의와 공의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관계하실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입니다. 의와 공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실행하는 것이며, 세상을 통치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의로운 요구들을 부과하시기 위해 그분의 율법을 주신 것이 의이고, 공의에 의해 하나님은 그의 율법을 어기고 죄를 범한 죄인들에게 형벌을 내리십니다. 의는 거룩함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공의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혐오라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와 공의가 드러나는 다양한 영역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 중 하나는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며 하나님의 진노는 이것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3)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의와 공의는 그분의 진노 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때에도 의와 공의를 드러내십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하나님이 죄사함의 길을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길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에게 들어오고, 그 공의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을 제공하심으로 죄사함의 길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공의와 의를 나타내시는 또 한 가지 방법은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말씀을 지키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인들에게 상을 주시기도 합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니라”(딤후 4:8).
로마서 3장 25절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의로움과 절대적인 공의를 나타내신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회개하는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것이 정당함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죄를 사하실 뿐 아니라 의롭게 만드십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대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에 우리 역시 의롭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법적인 의미 혹은 법정적 의미에서 우리를 의롭게 만드십니다. 그것이 이신칭의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또한 우리를 의롭게 만드십니다. 이것이 성화입니다. 이 일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책망할 것이 없게 되고, 심지어 그분 자신처럼 의롭고 거룩하게 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3 선하심과 사랑
우리가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들을 상고하며 따르고 있는 순서-거룩, 의와 공의, 선하심과 사랑-를 주의 보십시오. 이 속성들을 바른 순서로 정리하지 않는 것은 위험하고 무서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이 잘못을 범하는데, 그 결과는 믿음의 파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은 어는 정도 상호 교환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두 용어는 구별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분의 모든 피조물을 관대하고 친절하게 다루도록 하는 하나님의 완전하심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시145:9).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이 자신을 인간에게 영원토록 전달하도록 만드는 속성입니다. 이는 삼위일체 교리의 서론이 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사실은 삼위일체의 증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고 영원한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항상 사랑하신 누군가가 반드시 존재해야 합니다. 이 사실은 필연적으로 삼위일체의 교리를 만듭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의 대상
첫째,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선하심과 사랑을 일반적인 방법으로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5:45).
둘째, 더 특별하고 훨씬 더 영광스러운 사실인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은혜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 혹은 사랑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복의 원천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가르칩니다. 모든 것은 영원하고 끝없는 은혜의 샘에서 흘러나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딛2:11). 딛 3장은 하나님의 은혜의 가장 장엄한 진술입니다. 이 장을 읽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놀라운 사랑과 선하심을 깨닫기 시작함으로 기뻐하며 경배 가운데 여러분 자신을 바치십시오.
자비는 하나님이 선하심과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의 나타내심에서 생각해야 할 용어는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자비하심,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입니다. 긍휼은 자신들의 죄의 결과로 비참함 혹은 괴로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공로와는 상관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서언에서 “그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눅 1:54)라는 말씀을 발견합니다. 시편 특히 103편에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영광스러운 진술이 나오고, 바울은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9:18)고 말합니다. 그러나 긍휼에 대한 언급의 대부분은 서신서들의 서론의 문안에서 발견됩니다.
인내와 오래 참으심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이 오래 참지 않으셨다면 우리중에 한 사람도 오늘 여기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 진멸되어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완악한 자들과 악한 자들을 참으신다는 의미입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롬2:4).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벧후3:15). 그리고 베도로는 두 번째 서신에서 “또 우리의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벧후 3:15)고 말합니다.
4 신실하심
이제 이 사실은 우리를 하나님의 네 번째 도덕적 속성으로 인도합니다. 그 속성은 하나님의 신실하심 또는 미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안전하게 기댈 수 있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갑자기 가버리시거나 우리가 멋대로 가도록 내버려둘 것이라는 의심이 전혀 없이 우리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분, 의지할 수 있는 분, 머무를 수 있는 분이시라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하늘에까지 미친다고 말씀합니다(시36:5).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은 반드시 성취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사 55:11). 성경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자신의 종들을 모든 시련과 시험과 갈등의 때에 지키시고 구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부르신 모든 사람들을 굳게 서게 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자신의 목적들이 성취될 때까지 그들을 악한 자로부터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의지할 수 있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1:9).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5:23-24).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신의 궁극적 운명은 절대적으로 확실합니다. 하나님을 좌절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약속하신 일을 보류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에 대해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일을 바꾸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거스려 죄를 범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하나님께서 이를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실실하심에 온전히 의지하고 마귀에게 말하십시오.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고, 죄를 고백하였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의 죄사함을 보장하였노라!
믿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매달리는 것
허드슨 테일러는 항상 ‘하나님을 믿으라’(막11:22)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매달리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 했습니다. 하나님은 불변하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당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당신이 어디에 있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매달리십시오.
Ⅱ 하나님의 속성을 살펴볼 때 주의할 사항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을 다루었습니다. 명확성을 위해 지적 이해를 위해 하나님의 속성들을 한 가지씩 해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주의할 것은 하나님의 속성들 중 어느 하나라도 따로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속성들 모두에 있어 동시에 전체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한 가지 속성을 다른 속성에 반하여 제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대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체로서 항상 동시에 거룩하시고, 전체로서 항상 동시에 긍휼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한 사랑입니다. 이 사실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공의와 대립시키는 것은 얼마나 큰 비극인지 모릅니다! 절대로 그래선 안 됩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생각에 하나님 안에 있는 완전한 균형을 간직해야 합니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박성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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