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벨그라노 지역에 정착하여 새로 시작한 교회의 목회자로서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스왈드 카르니발 목사님과 함께 ‘세계속의 세계’라고 하는 제목의 라디오 복음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무렵이었습니다.
맨 처음에는 단순한 우정으로 시작한 것이 점점 발전하여 서로의 가족들에게까지 축복이 미치게 된 것을 지금도 참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라디오 프로그램이 다양한 사역, 라디오 전도, 텔레비전 복음전도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2년 초 나의 하루하루 생활은 격무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침에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생방송, 그 후 교회 사무실에서 목회와 관련된 여러가지 잡무, 그리고 목회 카운슬링 등으로 격무는 연일 계속되었습니다. 저녁시간은 집회에서 메시지를 전하든지 아니면, 성경공부를 가르치든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왕중왕 교회는 당시 크게 성장해가는 과정에 있었는데 등록성도의 수는 2천명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당시 나의 스케줄이 너무 꽉 차 있어서 매주 7일동안 쉬는 날 없이 하루 14시간이나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나의 휴가는 일년에 5일 정도로, 그것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였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일주일 이내의 휴가는 극히 드뭅니다.) 목회에서 그렇게 길었던 광야의 기간이 끝나고 이제 겨우 커다란 수확을 거두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직관적이고 본능적으로 나의 삶에 무엇인가 중요한 것이 결여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 자신 조차도 알아차릴 수 없었습니다. 과연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평소에 존경하고 있는 워너 나이셀 목사님이 교회를 방문해 주셨을 때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가장 큰 교회의 목사님으로, 오랫동안 아르헨티나에서 선교사로 봉사했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신학생이던, 그 신학교의 학장님이셨습니다.
그때 그 신학교의 등록금을 벌기 위해 나는 오후시간에 워너 목사님의 비서로 일하였기 때문에 서로 잘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장래의 목회자로서 인격을 형성해가던 무렵, 워너 목사님의 지혜로운 조언을 들으면서 신학교 시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나 뵈었을 때 워너 목사님은 아르헨티나의 쇠고기 맛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지난 시절을 회상하면서 나눈 이야기는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워너 목사님은 그날 저녁 우리 교회의 집회에 참석하셨으며, 그 집회는 참으로 은혜로운 집회였습니다. 그리고 근래 수년간 하나님께 저의 삶 가운데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워너 목사님께 간증할 수 있었던 것도 저로서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교회 안과 밖에서 행하여 온 다양한 사역과 활동을 더욱 상세하게 워너 목사님께 설명을 드리면서 나의 마음속은 목사님께서 틀림없이 나를 칭찬해 주시리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목사님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클라우디오군,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내 마음도 기쁘다네, 자네가 이룬 많은 성공적인 사역을 볼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기쁘다네.”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나의 존재를 통째로 흔들어 버리는 질문이었습니다.
“클라우디오군, 성령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가?” 순간 먹고 있던 음식물이 몸에 꽉 막혀 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목사님께서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자네도 성장했고, 교회도 훌륭하다네. 하지만 무언가 중요한 것이 결여되어 있다네. 성령님께서 자네에게 말씀하시길 바라고 계시지만, 자네는 너무 바빠서 귀를 기울일 시간이 없는 듯 하다네.”
이때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에게 이야기 했을 때, 모세가 어떻게 느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드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출애굽기18:17)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 영광에 접하기 전에, 모세가 이러한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만 했던데에는 중요한 뭔가가 있습니다. 매일의 사역에서 그가 일하는 방식을 바꾸어, 주어진 권위를 자기 아래서 섬기는 자들에게 양도하는 것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드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 그대와 그대와 함께 한 이 백성은 필연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그대에게 너무 중함이라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출18:17~18)
모세는 온유하고 지혜로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을 잘 알고 있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식으로 실수를 범하고, 교정 받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가 장인의 조언을 거절했다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도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영적이고 분별력있는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할 때, 또 주님께서 직접 말씀으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실 때, 우리는 그것을 귀담아 듣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워너 목사님과 이야기 한 후, 생활방식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내가 필요로 하고 있던 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는 매일 규칙적으로 기도시간을 가짐으로 나에게 주어진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사역에 빈틈없이, 영적으로도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성령님과의 교제에서 오는 더욱 깊고 친밀하게 교통하는 차원의 신앙생활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랫동안 신학교에서 신학을 강의하면서 성령의 명칭, 성령의 성격 등에 관해 가르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부터 성령님은 지금까지 강의시간에 가르쳐왔던 교과목의 내용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을 가진 존재로서 내게 말씀하시고 싶어하시며 나와 친밀한 관계로 교제하길 원하는 분으로 제 앞에 나타나 주셨던 것입니다.
나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시편기자의 고백이 바로 나의 목마름을 대변해 주고 있는 듯 합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뵈올꼬」(시편42:1~2)
그리고 곧장 내가 속해 있는 교단의 부총회장이셨던 베드로 이바라 목사님을 만나 뵙기로 하고, 그 무렵의 나의 심경을 말씀드리고 워너 목사님께 들었던 내용을 그대로 말씀드렸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것들을 서로 함께 나눌 수 있는 형제, 자매가 우리 주위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입니다. 참으로 영적인 삶을 살며, 하나님의 마음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교제를 함께 나누는 것이야말로 영적인 예배를 거둘 수 있는 축복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낙심해 있는 사람, 하나님 마음에 벗어나 있는 사람, 비관적인 사람들과 교제하게 되며 고통도 오히려 더 증가해 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이바라 목사님은 훌륭한 인품의 온유하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령님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며 감수성이 풍부한 분입니다. 그분을 그다지 자주 만날 수 없었지만, 만날 때마다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 등에 대해서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분과의 교제 자체가 내게는 축복이었습니다.
이때 이바라 목사님께 성령님과 깊은 인격적 관계에 들어가고 싶은 나의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그러자 이바라 목사님은 나를 조용히 바라보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성령님 안녕하세요!’라는 책을 지금 막 가져왔다네, 저자는 베니 힌 목사인데 미국의 올란도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데, 자네가 구상하고 있는 성령님과의 교제에 대해서 이 책에 잘 쓰여져 있다네.”
그리고 그 책을 읽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은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 후 나는 미국으로 가서 베니 힌 목사님으로부터 기도를 받고 더욱 큰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변화하기 시작하다
어느 날 저녁의 일입니다. 사역을 위해 여행을 하고 있을때, 묵고 있던 호텔에 들어가는데 누군가가 나와 함께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방에 들어와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하자, 그곳에서도 그분이 계셨던 것입니다. 성령님의 임재는 직접 체험하여 접할수록 더욱 실제적이고 놀라운 영광을 동반했습니다.
성령님께서 나를 방문해 주셨던 것입니다! 내 안에서 신선하고 친밀한 성령님과의 친교를 가지기 위해서 밤새도록 자지 않는 날도 자주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능력있는 기도를 할 수 있게 되고 깊은 의미를 가지는 기도를 발견해내게 되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것,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 그 위엄 앞에 침묵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 꿇어 엎드리는 것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놀랄만한 권능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신선한 체험을 기도를 통하여 체험한 직후에 인도했던 집회를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처음 교회에 오신 분들에게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강단에서 초청했더니 강단 앞쪽으로 몰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스스로 자문(自問)해 보았습니다.
“왜? 모두가 이렇게 감동 받고 있는 걸까?”
평소 때 집회와 특별히 다른 것을 시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강단 앞에 오는 사람들이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감동 받아, “주님 제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스텝 한 사람 쪽으로 내가 얼굴을 돌리자 그 근처에 있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두 쓰러져 버리고는 쓰러진 채로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체 회중을 향하여 손을 높이 들어 올렸더니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교회 전체를 가득 덮고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나를 포함한 모든 회중들이 크게 놀랐습니다. 그리고 “너를 아르헨티나의 문으로 삼을 것이다.” 하는 메시지를 교회에서 주님으로부터 직접 받았습니다.
“자기나라의 문(問)이 된다.”
맨 처음엔 그 말을 이해 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약 2개월 후 아르헨티나 각 지역에서부터, 우리 교회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매주 수백 명의 목회자 분들이 우리교회를 방문해 오게 되었습니다.
한번도 광고를 낸 적도 없었는데 좀더 시일이 지난 후 부터 국내 각지로부터 그리고 해외로부터도 초청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너무나도 위대하심에 다만 하나님을 경배할 뿐이었습니다. 그 주권안에서, 긍휼하심으로 주님께서 나를 택하셔서 자기 백성들에게 영적갱신(renewal)을 가져오기 위한 문으로 나를 사용하시는 것을 겨우 깨달았습니다.
드디어 아르헨티나에 영광스런 하나님의 방문이 시작된 것입니다.
클라우디오 프레이젼 (Claudio Freidzon)|카를로스 아나콘디아와 함께 아르헨티나 부흥의 가장 중요한 축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사역을 통한 강력한 기름 부으심으로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놀라운 변화와 영적갱신을 체험하고 있으며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왕중왕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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