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말의 능력 8.19

하나님아들 2012. 9. 4. 16:45
 

말의 능력 (혀의 권세)    약3:1-12 시편  42편 11절  07. 8. 19 주원교회  박재철목사



  여러분! 말을 잘해야 합니다

 한 말 한 마디가 파괴의 씨가 되어 절망에 기름을 붓고 사랑의 말 한 마디가 소망의 뿌리가 되어 열정에 불씨를 당깁니다. 진실한 말 한 마디가 불신의 어둠을 거두어 가고 위로의 말 한 마디가 상한 마음 아물게 하며 전하지 못한 말 한 마디가 평생 후회하는 삶을 만들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약3:4~5)은 혀를 배의 키(rudder)에 비유합니다. 작은 키가 큰 배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또한 성경은 혀를 불에 비유합니다. 작은 불꽃이라도 큰 불을 낼 수가 있습니다. 혀는 들이받는 야생마와 같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도 같습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약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3:7,8)

    혀의 무서운 힘 중에 하나는 전염력입니다. 모임을 이끌어 보면 한 사람의 부정적인 언어 때문에 전체가 힘들어 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부정적인 혀는 많은 사람들의 부정적인 언어에 오염을 일으킵니다. 팀이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팀의 리더쉽은 부정적인 혀를 긍정적인 혀로 바꾸는 능력입니다. 환자들의 부정적인 말을 바꾸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의사입니다. 환자들의 혀를 변화시키기 위해 아픈 곳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합니다. 기도하면 그들의 부정적인 언어가 바뀌어 집니다.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말이란 먼저 마음에서 만들어지고 그 다음에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의 귀에 들리게 됩니다. 말의 능력이란 결국 생각의 위력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말은 사람의 일들을 결정하게 합니다. 말을 하기 전에는 자유했으나 말로써 약속을 하고 나면 그 말에 매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 이전에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일언삼사(一言三思)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불평스러운 마음에는 감사의 말을 내어놓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마음에서 고운 말이 나옵니다. 긍정적인 마음이라야 “할 수 있다”는 말을 합니다.


어떤 분이 말씀하시기를 말에도 색깔이 있다고 합니다. 인격이라는 색깔, 교양이라는 색깔, 사상이라는 색깔이 있습니다. 말로써 그 사람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사람인지 부정적인 사람인지, 진실한 사람인지 거짓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말은 생각에도 영향을 줍니다.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말을 하는 사람 자신도 영향을 받습니다. 말은 운명까지도 바꾸어놓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하는 대로 된다고 하셨습니다. 민수기 14장28절에 보면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를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언 18:21)고 했습니다.


다윗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행 13:22에 보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이유는 남다른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남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를 찾을 수 있겠는데 오늘 주제와 관련 시켜서 생각해 보면 다윗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언어생활을 했던 사람입니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울 때 위대한 신앙고백으로 이긴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향하여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고 놀라운 고백을 했고, 시 34:1에 보면 다윗이 아비멜렉이라는 왕 앞에서 미친 체 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인데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라며 하나님을 높이는 말을 합니다. 삼하 23:1-7에 보면 다윗이 죽을 때 마지막 한 말이 나오는 데 그 말이 성경에 기록될 정도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말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1. 왜 우리가 말을 잘해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법칙이며 영의 법칙인 것입니다. 돌 하나가 연못에 떨어지면 파장을 일으키듯이 말이 떨어지면 나로부터 파장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 있는 겁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부정적인 파장이 일어나 부정적인 사람들이 내 곁에 모이고 내 삶은 부정적 인생이 됩니다. 비판적인 말을 하면 비판적인 파장이 일어나 비판적 사람들이 내 곁에 모이고 비판적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행복한 말을 하면 행복한 파장이 일어나 내 곁에 행복한 사람들이 모이고 행복한 환경이 조성되는 겁니다.

   

 잠언 18:20에 보면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자기가 말한 것이 자신에게 양식으로 돌아오고 그 양식을 먹어서 배부르게 됩니다. 그러니 좋은 말을 한 사람은 좋은 양식이 와서 좋은 것을 먹게 되고 나쁜 말을 한 사람은 나쁜 양식이 돌아와서 나쁜 것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씨든지 뿌린 씨 그대로 열매가 열리는 것입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말의 씨를 심으면 우리의 자녀들에게는 우리가 심은 씨앗 그대로 열매가 열리는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어떤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 90%가 부모한테 “너 같은 인간은 결국 교도소에 갈거야”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부모가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어서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말의 능력 (어느 백정 이야기)

옛날에 박상길이라는 나이 지긋한 백정이 장터에 푸줏간을 내었습니다.

양반 두 사람이 고기를 사러 왔습니다.

그중 한 양반이 그 백정에게 반말로 주문을 하였습니다.

" 얘, 상길아. 고기 한 근 다오." " 그러지요."

박상길은 솜씨좋게 칼로 고기를 베어서 주었습니다.

함께 온 양반은 상대가 비록 천한 신분이긴 하지만 나이든 사람에게 말을 함부로 하기가 거북했습니다.

" 박서방, 여기 고기 한 근 주시게." " 예, 고맙습니다."

기분좋게 대답한 박상길은 선뜻 고기를 잘라 주는데, 처음에 산 양반이 보니 자기가 받은 것보다 갑절은 되어 보였습니다.

그 양반은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

"이 놈아, 같은 한 근인데 어째서 이 사람 것은 크고 내 것은 작으냐?"

그러자 박상길이 대답했습니다.

" 손님 고기는 상길이가 자른 것이고, 이 어른 고기는 박서방이 잘랐으니까요."

서로 존중하는 말은 사람들 사이에 좋은 감정이 자라나게 합니다.

(잠 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예) 조심해야 할 말

2차 대전에 참전했던 해군 병사 한 명이 제대하자마자 부모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제대한 군대 친구 한 명을 데리고 집으로 가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어머니, 그런데요. 제 친구가 심하게 부상을 당했어요. 다리가 하나고 팔도 하나고 눈도 하나뿐이에요”

어머니는 잠시 생각하더니 주저하는 목소리로“얘야, 물론이지. 데려와라.

너무 오래 있는 것은 곤란하지만 며칠이야 괜찮지”라 고 대답했습니다.

부상당한 친구가 오래 집에 머물면 곤란하다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틀 후 그 집에 전보가 왔습니다. 해군 제독이 보냈는데 그 집 아들이 호텔 창문으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얼마 안있어 시신이 도착했습니다.

부모가 아들의 시체를 보니 눈이 하나요 팔이 하나요 다리가 하나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자기와 아들이 마지막으로 나눈 대 화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울부짖었습니다. 우리는 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한 대로 역사하신다. 우리가 잘 될 것을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도록 역사하시고 우리가 잘 안 될 것을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잘 안 되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민 14:28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한 대로 그들의 말이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역사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들 중에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 2명의 정탐꾼들은 그들의 말대로 가나안에 들어갔고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 10명의 정탐꾼들은 그들이 말한 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약 3장에 보면 사람의 혀는 배의 키와 같습니다. 키를 돌리는 방향에 따라서 엄청나게 큰 배도 방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배의 방향을 키로 조종하듯이 우리의 인생의 방향도 혀로서 조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승리와 축복과 성공과 번영을 말하는 사람들의 인생은 승리와 축복과 성공과 번영의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패배와 저주와 실패와 가난을 말하는 사람들의 인생은 패배와 저주와 실패와 가난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인생의 방향이 말로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2. 어떤 말을 하는 것이 말을 잘하는 것인가?

   말이 그만큼 중요한데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 어떤 말을 해야 합니까?

 시편에 보면 다윗은 말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자기에게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좌우되고, 희망과 절망이 좌우되고, 축복과 저주가 좌우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반드시 복을 받는다.”고 자신을 축복하면 하나님이 정말 축복하십니다. 자기 자신을 격려하고, 자기 자신에게 행복한 언어를 선물하면 정말 삶이 행복하게 됩니다.

  

 한 기자가 한 칸짜리 옥탑 방에 세 들어 사는 한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언제 가장 행복합니까?” 이 부인이 말했습니다. “밤에 빨래를 널 때가 행복합니다. 그때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 ‘나는 행복한 여자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밤중에 빨래하죠?” “낮에는 주인집에서 빨랫줄을 쓰니까 밤에만 제 차례가 와요.” 그 말을 하는 부인의 눈 깊은 곳에서 별이 총총 빛나고 있었다고 기자는 쓰고 있습니다. 그처럼 사소한 것에서도 감사의 조건을 깨닫고 감사하며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행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말의 대상은 하나님과 이웃 그리고 만물과 자기 자신이 있습니다. 오늘은 자신을 향해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말을 하라.

   성령 안에서 변화된 사람은 절대 긍정의 삶을 살 수 있기에 어떤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말이 가능합니다. 특히 자신에게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의 인생에 긍정적인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들이 버려야 할 말 중에 “죽겠다”는 말이 있습니다. “힘들어 죽겠다. 답답해 죽겠다. 어려워 죽겠다.” 이런 사람들은 “죽겠다, 할 수 없다”는 중병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또 하나 버려야 할 말이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현실을 정확하게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현실을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은 인생을 발전하지 못하게 하는 줄과 같습니다. 강아지가 마음껏 활동하고 싶지만 주인이 잡고 있는 개줄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것처럼 “죽겠다. 할 수 없다.”는 말이 그 사람을 묶어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천지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시는데 왜 할 수 없다고 말합니까?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질병과 저주를 다 청산하신 예수님이 계시는데 왜 할 수 없다고 말합니까? 당신을 떠나지 않는 보혜사 성령님이 당신을 지키시는데 왜 할 수 없다고 말합니까?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에게 말하십시오. 낙심되는 마음이 찾아올 때마다 자신에게 말하십시오. 사단이 부정적인 생각을 집어넣을 때마다 자신에게 말하십시오. “박재철, 너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재야. 하나님은 너와 함께 하셔. 주님은 너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너는 그렇게 존귀한 사람이야. 주 안에서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의 복덩어리다. 나는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이 땅의 진정한 성공자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미국 여성기업가 가운데 오스틴이라는 여자 속옷을 팔아 부자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에 뚱보들이 많아지면서 스몰, 미디엄, 라지, 엑스라지 싸이즈 가지고는 팬티를 감당할 수 없어 “뚱보형”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에 뚱보는 많은데 뚱보형 팬티는 팔리지 않는 겁니다. 오스틴은 직원들에게 “부정적인 말을 쓰지 마라 뚱보형을 ‘퀸 싸이즈’라고 바꾸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때부터 퀸 싸이즈가 불티난 듯 팔렸습니다. 긍정적인 말이 미국의 뚱보들을 움직인 것입니다. 긍정적인 말은 다른 사람만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도 움직이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최근 미국의 한 여성지에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조심해야 할 다섯가지 말"을 발표했습니다.

1)"너를 왜 낳았는지 모르겠어"

이것은 자녀에게서 삶의 의미를 빼앗아가는 무서운 저주의 말이다.

2)"너는 왜 다른 애들처럼 못하니"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말하면 자녀는 금방 부모에게 반감을 갖는다.

3)"네가 도대체 몃살이니"

정신연령을 거론하면 그 아이는 점점 비관주의자가 된다.

4)"이 바보야"

"바보"라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항상 자신감이 없다.

5)"시끄러워. 제발 엄마를 괴롭히지 마라"

자녀들은 항상 엄마에게 관심이 많다. 대화를 원한다.

그러나 대화를 거부하면 그 아이는 점점 폐쇄적인 성격으로 변한다.


 2) 태산을 옮기는 믿음의 말을 하라.

   우리의 구원은 믿음의 말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입술로 시인할 때 완성이 됩니다. 롬 10:10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기적도 믿음의 말을 할 때 일어납니다. 막 11:23에 보면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능력을 가지신 분으로서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언어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할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기도하고 응답의 확신이 왔으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명령하고 선언하세요.

  

 인도에서 선교사로서 일생을 바친 스텐리 존스(Stanley Jones) 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스텐리 존스 목사님이 89세가 가까웠을 때, 그만 중풍으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수개월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말도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자기를 간병하는 간호사를 불러서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나의 온 몸이 마비가 되고... 또 말을 잘 할 수가 없으니... 아침에 내가 잠에서 깨어나면 나를 대신해서 이렇게 말해 주세요” “어떻게 말할까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 이렇게 말씀해 주세요!” 그래서 이튿날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뜨는 순간에 기다리고 있던 간호사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오니 일어나라!”고 말했습니다. 스텐리 존스는 그 때마다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걸 보고 웃었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무슨 병이 낫겠느냐?’고 생각하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웃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스텐리 존스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신뢰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을 입으로 고백하는 말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간호사에게 그렇게 명령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언제나 아멘으로 대답을 했습니다. 병이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에서 인도의 히말라야 산지로 휴양을 갔습니다. 그곳에 가서도 목사님은 계속해서 간호사들과 힘을 합쳐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고 되풀이 하며 명령을 했습니다. 그렇게 한 지 얼마 후, 스텐리 존스 목사님은 중풍에서 완전히 낫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것은 자신의 입술로 그의 신앙을 고백한 믿음의 힘이었습니다. 말로 믿음을 풀어 놓았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3) 미래를 꿈꾸는 말을 하라.

   하나님은 꿈을 따라 역사 하십니다. 강렬한 소원을 품을 때 온 우주 가운데 그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이 보입니다. 강력한 꿈을 품으면 그것만 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강력한 꿈을 품으면 그것은 우리의 인생에서 실제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 11:1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꿈에 믿음의 말이 곱해질 때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이 나타나게 되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현실화되어지는 시기는 단축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꿈을 말할 때 꿈의 능력과 말의 능력이 더해지는 것이 아니고 곱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 부터 긍정적이고 진취적이고 좋은 말만 합시다. 특히 성도들이 자주해야할 말은

1.하나님 사랑합니다.

2,주 예수님 감사합니다.

3.주 하나님은 나의 전부입니다.

4.'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5.'우리 주 하나님 때문에 행복합니다' 라고 하세요.

6.주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게 하소서!

    행 27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배를 타고 항해를 하다가 태풍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은 14일간을 먹지 못할 정도로 고생했고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사람들 앞에 서서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고 미래에 일어날 좋은 일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잠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25: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니라 

   말은 지혜입니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받는 축복입니다. 솔로몬처럼 지혜를 얻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말을 잘하기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사람은 적습니다. 우리는 말의 능력을 알고 그 축복된 일을 알아서 기도로써 말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이들이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순간 주원의 가족들의 삶의 언어가 달라지길 소망합니다.



출처 : 대한예수교장로회 주원교회
글쓴이 : salrom9847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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