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9.2(주일) 말시리즈 / 소금 같은 말 / 골로새서 4장 6절
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사람은 말을 통하여 사상이나 감정이나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합니다. 그 전달방식에 따라 1)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고, 문제가 더 복잡해 질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도 있고, 영광을 가릴 수도 있습니다. 말은 이처럼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의 말은 능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 하셨습니다. 말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생겼습니다.” 말씀이 곧 능력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능력을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동물들에게는 주시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사람에게만 주셨습니다.
아들 성근이가 지난 주에 이런 질문을 하더라고요. “아버지 사람이 말을 한다는 것이 참 신기해요. 어떻게 말을 하는 것일까요.” 정말 참 신기합니다. 여러분! 정말 신기하지 않습니까?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하는 말이 엄마입니다. 엄마, 아빠라는 말을 들으면 부모님은 정말 좋아합니다. 너무나 신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특별하게 사람에게 말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잘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무화과나에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2-23절입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주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무화과나무가 뿌리까지 말라버렸습니다. 이것을 보고 놀란 베드로는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보시옵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그 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 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상할 수 없는 말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말에 따라 몸과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건강, 사업, 자녀가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말을 하며 살아야하는가에 대해서 소금으로 비유했습니다. 그렇다면 소금으로 맛을 내는 말은 어떤 말일까요?
첫 번째는, 깨끗한 말입니다.
에스겔 16장 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의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 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에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구약에서 소금의 상징은 정결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정결케 하는데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이 정결하기를 원하십니다. 소금처럼 깨끗하기를 원하세요. 깨끗한 말을 하려면 먼저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삶이 거짓되고, 마음이 부패하면 깨끗한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말이 기름처럼 부드럽고, 사탕처럼 달콤하다고 할지라도 깨끗한 말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1) 정치인의 말이 깨끗합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2) 여러분들의 주위에 어떤 사람이 깨끗한 말을 합니까? 신뢰할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믿고 맡길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부하고, 똑똑하고, 프로필이 좋고, 가문이 좋고, 능력이 있는 사람을 쓰시기 보다는 정결한 사람을 쓰십니다. 깨끗하게 말을 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하지만 세상은 능력있는 사람을 씁니다. 이윤을 남겨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상스러운 말을 하든, 거짓말을 하든상관이 없습니다. 얼마만큼 재주가 뛰어난가, 능력이 있는가를 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사람들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고, 자신을 포장하고, 진실을 왜곡시키고, 타인에게 해를 주는 사람은 절대로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기도에 응답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냥 자신이 알아서 살도록 나두십니다.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욥기 11장 11절입니다.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치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것을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속한 것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말을 하는 자의 편이십니다. 그에게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그와 동행하는 분입니다. 그의 기도와 간구를 들어주시는 분입니다.
두 번째는, 맛을 내는 말입니다.
소금은 맛을 냅니다. 제가 계란을 좋아하는데 계란에 소금을 찍어서 먹으면 맛이 좋아집니다. 이처럼 말에도 맛이 있습니다. 소금을 치듯 때와 장소와 상황에 맞는 말을 하면 즐겁고 행복해 집니다. 반대로 맛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때와 장소와 상황에 맞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밥 맛 없는 놈”이라고 합니다. 맛없는 말을 하면 즐거움과 행복이 감소됩니다. 분위기가 차가워집니다.
맛있는 말은 겸손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겸손하십니까? 겸손한 사람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격려하고, 칭찬해줍니다. 상대가 나와 코드가 맞지 않아도 인정하고, 격려하고, 칭찬해 주십니다. 왜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겸손하면 상대를 자신보다 높이 평가합니다. 상대의 단점을 잘 알고 있지만 장점을 보고, 내면의 아픔을 읽고 긍휼이 여기는 마음을 갖고 동정을 베풉니다. 이런 사람의 말에는 맛이 있습니다.
주님을 보세요. 주님은 밥맛이 없는 여리고 성의 세리장인 삭개오의 만나 그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삭개오가 어떤 사람인줄 잘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국하고 삭개오와 함께 먹고 주무셨습니다. 주님은 삭개오를 인정하시고, 격려하시고, 자상하게 대해주셨습니다. 그러자 삭개오가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자신의 피같은 재산을 팔아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는 사람에게 네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말에는 맛이 있었습니다. 이 맛이 완악하고, 부패하고, 사기치고, 거짓말하는 삭개오의 마음을 무너뜨렸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주님의 말이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말이 있어야 가족을, 친구를, 이웃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백부장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백부장은 자기 종이 병들어 죽게 되자, 가까이 지내던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보내어 종을 구해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주님께서 백부장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을 때에 백부장은 그의 벗들을 보내어 이렇게 아뢰었습니다. "주님, 더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내 집에 모셔 들일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주님께로 나아올 엄두도 못 냈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셔서, 내 종을 낫게 해주십시오. 나도 상관을 모시는 사람이고, 내 밑에도 병사들이 있어서, 내가 이 사람더러 가라고 하면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고 하면 옵니다.
또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고 하면 합니다." 주님은 백부장의 말을 듣고 놀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는, 아직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심부름 왔던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서 보니, 종은 나아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겸손의 말입니다. 겸손하면 종을 자신보다 높게 평가합니다. 종을 마음을 헤아립니다. 저와 여러분의 말에 겸손의 말이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치유의 말입니다.
6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소금을 고루게 함과 같이 하라.”라는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소금이 음식에 들어가면 부패를 막습니다. 말도 마찬 가지 인데요. 아픔을 주는 말은 사람을 상하게 하고 부패하게 만듭니다. “그 사람은 겉과 속이 다릅니다. 거짓말을 잘 합니다. 제멋대로 합니다. 말과 행동이 다릅니다.”라고 상대를 판단한다면 상대방의 마음은 상합니다. 그래서 삐뚤어지고 굴곡진 인생을 살게 됩니다. 반대로 용서하고, 위로하고, 사랑하는 말을 하면 상한 마음을 막고 새롭게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당신은 용기가 있군요. 당신은 재능이 있습니다. 당신은 남다른 열정이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상처를 치유하고 소망을 줍니다.
말은 마음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은 마음과 유기적 관계에 있습니다. 기쁜 말을 들으면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슬픈 말을 들으면 마음이 슬퍼집니다. 그래서 말이 무서운 것입니다. 내가 용서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으면 내 삶은 상하고 썩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용서하고, 감사하면 내 삶은 윤택해지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금을 치듯이 말을 해야 합니다.
감사의 말은 꽃과 같습니다. 꽃이 피는 곳에는 언제나 나비와 벌이 찾아와 춤을 춥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원망과 불평의 말은 쓰레기와 같습니다. 쓰레기가 쌓인 곳에는 온갖 더러운 파리 떼와 모기떼와 추잡한 것들이 날아옵니다. 그래서 싫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원망과 불평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그 어떤 죄보다도 더 싫어하십니다. 10명의 정탐군과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난후 원망과 불평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은 전부 광야에서 죽이셨습니다. 원망과 불평하는 말을 하면 쓰레기 같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67세 되는 해에 그의 연구실이 화재로 모두 불타버리고 말았습니다. 200만 달러의 실험장비와 평생 연구한 귀중한 자료들이 한 순간에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에디슨은 잿더미로 변해버린 연구소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잘못된 것은 다 불타버렸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말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지배합니다. 환경과 운명도 지배합니다.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 것도 말입니다. 소금처럼 맛을 내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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