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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 8과 중보기도자의 위치와 방법

하나님아들 2015. 10. 14. 14:26

 

08.중보기도자의 위치와 방법.hwp

 

08 중보기도자의 위치와 방법 .ppt

8과 중보기도자의 위치와 방법

13:1-5

 

본문의 말씀은 매우 슬픈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거짓 선지자에 대한 경고와 심판의 내용입니다.

선지자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고,

이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내용입니다.

 

선지자들이 있어야 할 곳은 어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 무너진 곳입니다.

선지자들이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성벽을 수축하는 일이요 전쟁을 방비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책망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이 그 일을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어떤 특수한 계층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따라 중보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중보기도자의 첫 번째 위치 : 갈라진 사이(In the breach)

 

중보 기도자가 서 있어야 할 곳을 106:23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가 택하신 모세가 그 어려움 가운데에서 그의 앞에 서서 그의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아니하게 하였도다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할 때

하나님께서 이를 보시고 그들을 진멸하고 대신에 모세로 큰 나라를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간절히 중보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뜻을 돌이켜 말씀하신 화를 내리시지 않으셨습니다(32:1-14)

 

1) 그때 모세가 어디에 서서 기도했습니까?(106:23)

이 말씀을 보면 모세가 있는 곳이 어려움 가운데라 하였습니다.

갈라진 사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영어성경을 보면 in the breach 라는 단어를 씁니다.

갈라져서 틈이 있는 곳입니다.

한 쪽에 하나님이 계시고 다른 한쪽에 이스라엘 백성이 서 있는 곳입니다.

 

둘 사이가 완전히 결렬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둘 사이에는 회복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모세는 이 결렬된 곳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시작한 것입니다.

중보기도 자는 하나님과 백성과의 갈라진 곳에 들어가서

그 곳을 회복하도록 기도한 일이 그의 사명인 것입니다.

 

중보기도 자가 아닌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누구의 허물을 보면 드러내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남의 죄를 수사관처럼 찾아내서 여러 사람에게 알리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중보기도 자는 그 죄악을 자기 것인 양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이 심판하지 아니하시도록 그 결렬된 틈 사이로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 자는 하나님의 심판의 계획을 돌이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긍휼로 바꾸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계획을 바꾸게 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중보기도 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중보기도 자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이 중보기도의 삶을 살기 위하여 부르신 것입니다.

 

에스겔서 13장 말씀에서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책망하신 이유는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보기도 자로서 결렬된 곳에 들어가지 않고

남의 비방이나 일삼고,

남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만하고 ,

그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어떤 사람에 대한 허물을 듣게 하신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마음에 민감하셔야 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저 이야기를 듣게 하시는가?생각하면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비판하라고 듣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판단하라고 듣게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로 하여금 그와 하나님 사이로 들어가라고 듣게 하신 것 인줄로 믿습니다.

 

이와 같이 중보기도를 할 때에 어떤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중보기도 자가 멸하시지를 않기를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이것이 중보기도의 능력입니다.

 

2)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어떤 사람에 대한 허물을 듣게 하신다면, 황폐된 헌신을 본다면, 중보기도자로서의 올바른 자세는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9:18)

 

다니엘 9:18절을 보면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중보기도 자가 주님 앞에 나아 갈 때 하는 고백입니다.

우리의 의가 있어서 기도를 응답해 달라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므로 용서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긍휼은 심판을 이깁니다.

(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X

 

다시 말하면 긍휼은 공의를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시편 89:14)을 보면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 X

이 말씀을 보면 주님의 보좌의 기초는 의와 공의입니다.

그러나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의로우신 분이지만

 

또한 주님은 인자하심이 크신 분이심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긍휼은 의를 이기고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보기도 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2. 중보기도자의 두 번째 위치 : 성벽 위(On the wall)

 

중보기도자가 서 있어야 할 두 번째 자리가 이사야 62:6-9에 나와 있습니다.

[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8] 여호와께서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양식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네가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이 마시지 못하게 할 것인즉

[9]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니라

 

1) 중보기도 자가 있어야 할 두 번째 자리는 무엇입니까?

이 말씀을 보면 내가 너희 성벽위에 파수꾼을 세웠다라고 하십니다. 중보기도 자가 있어야 할 두 번째 자리는 성벽위입니다.

 

2) 파수꾼이 성벽위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파수꾼이 성벽위에 있는 이유는 성벽 위에라야 멀리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미리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수꾼은 미리 볼 수 있습니다.

파수꾼은 성벽 아래 있는 사람 보다 멀리 볼 수 있고 ,

미리 볼 수 있는 특징이 있는 것입니다.

 

3) 중보기도 자가 파수꾼 같이 성벽 위에 있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중보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은 성벽 위에 두시기 때문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시야가 넓어져서 멀리 바라 볼 수 있데 된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훨씬 먼저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보기도 자가 중보기도의 삶을 살아 갈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특권이요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중보기도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미리 보게 하십니다.

성벽위에 있기 때문에 파수꾼이 미리보고

, 멀리 보듯이 중보기도 자에게 미리 보이신 후에 하나님은 행하기 시작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를 알아보고 다음으로 넘어가봅시다.

중보기도에도 사이클(Cycle)이 있습니다.

 

첫 번째, 기도에는 출발점(point of start)이 있습니다.

기도의 출발점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앞에 백지를 가지고 계속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비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제 하나님 앞에서 듣기 시작하니까,

그 다음에 필요를 보는 시점(point of needs)입니다.

이제 무엇이 필요로 하는지 하나님께 듣고 나면,

비전을 통해서 그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그는 중보기도를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기도하는 시간이 아니라 듣는 시간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 앞에서 중보기도를 할 때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믿음의 시점(point of faith)이라고 말합니다.

아직까지 기도응답을 볼 수는 없지만,

계속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셨다. 하나님이 내가 구한 것을 응답하셨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나의 기도를 이루어 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말하는 시점, 바로 믿음의 시점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응답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간구가 아닌 감사만 있을 뿐입니다.

 

네 번째, 그리고 어느 시점이 되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성취하십니다.

바로 응답의 시점(point of answer)입니다.

이 때 에는 하나님 나에게 기도를 응답하신 것에 대하여 간증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보기도의 싸이클입니다.

 

, 출발점--> 들음 --> 필요를 보는 시점 --> 기도 --> 믿음의 시점 --> 감사 --> 응답된 시점 --> 영광을 돌림입니다.

 

한 가지 중요한 요소는 기도시간입니다.

주님이 나에게 무엇을 위하여 기도하게 할 것인지를 미리 보며 주시는 시간을 가지고,

그 다음에 필요를 보며,

그리고 나서, 거기에 대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보기도는 언제나 기록하는 일이 필요 합니다.

 

중보기도를 시작하려면 중보기도 노트를 준비 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가운데 보여 주시는 것들과, 무엇을 기도하게 하시는지 그 내용을 적어 놓으면 훗날에 하나님이 그 일에 어떻게 응답하셨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됩니다.

 

3. 중보기도자의 세 번째 위치 : 영적 전쟁터(In the battle)

 

갈라진 사이 안에성벽 위에 이어 계속해서 세 번째로 중보기도 자가 있어야 할 곳은 영적 전쟁터입니다(12: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1) 12:29절은 남의 물건을 빼앗아 오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전쟁을 하는 방법을 주님께서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중보 기도자가 영적 전쟁을 할 때 먼저 누구를 결박해야 되겠습니까?

사람이 어떤 집의 물건을 빼앗으려고 할 때에 제일 빠른 방법은 그 집의 주인을 결박하고 물건을 내 오는 것입니다.

 

2) 중보 기도 자는

연약한 자와 이들을 장악 하려는 원수 마귀 사이로 들어가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곳이 영적 전쟁터입니다.

 

그곳에서 원수, 마귀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야 너는 더 이상 이들을 장악할 권리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들의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마귀는 이들의 죄에 대해서 아무것도 물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원수 마귀야 너는 더 이상 이곳에서 권리를 행사하지 말라!”라고 선포해야 합니다.

 

4. 중보기도가 시작될 때에 예배와 영적 전쟁이 함께 일어납니다.

 

이 예배는 몇 가지 영역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예배는 항상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을 향하여서 주님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대해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둘째, 예배는 원수 마귀에 대한 전쟁으로서의 예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높인다고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한다고 할 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원수 마귀를 향한 전쟁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는 너희가 왕이 아니라 예수님만이 왕이시다 여기는 예수 이름만 높아지셔야 한다. 너희는 잠잠하라하면서 마귀를 결박하는 것이 예배의 또 하나의 모습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은 곧 마귀를 향한 전쟁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구원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왕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고,

예수님이 이미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구속하셨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는 하나님을 경배하며,

영적 전쟁 가운데로 들어가며,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는 세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이처럼 예배와 영적 전쟁, 중보기도, 이 세 가지는 따로따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5. 중보기도의 방법

 

1) 중보기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33:1-3 (3절만)

[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중보기도는 일방 통행식의 기도가 아닙니다.

중보기도는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이나 느낌으로 부르짖기만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제목 제목 하나 하나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쌍방향대화’(two way communication)를 통해서 이루어 집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약속의 내용은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입니다.

일방적으로 부르짖기만 하는 기도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 것인가 기도의 내용을 듣는 시간도 포함 됩니다.

 

이와 같이 중보기도는 부르짖는 기도와 듣는 기도로 함께 이루어집니다.

중보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중보기도는 자기의 생각이나 느낌,

이미 알고 있는 정보와 지식만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안에게 기도할 제목과 내용까지 보여 주시도록 잠잠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 우리가 오늘 무엇을 어떻게 기도하기를 원하십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 각 사람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든지,

내적인 음성을 통해서든지,

아니면 성령께서 우리가 기도할 것을 일깨워 주심으로 기도제목을 가르쳐 주십니다.

 

알려 주시는 제목을 가지고

어떻게 구체적으로 기도 할 것인가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됩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중보기도의 첫 번째 출발점입니다.

중보기도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마음 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정보를 가지고

갈라진 사이로, 성벽위로, 전쟁터 안으로 나가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회를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기도하는 습관 때문에

이렇게 기다리는 것을 참으로 어색하게 여기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중보기도의 시작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때로는 기도 제목을 하나님께 구하는 때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정해진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기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제목일지라도

어떤 영역을 기도해야 할지를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일이라든지

삶의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것을 가지고 기도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 내려 놔야 합니다.

 

주님 앞에 다 내려놓고 무엇을 위하여 기도할 지를 묻습니다.

그럴 때 혹 내가 이미 내려놓았던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고자 하는 부담감이 다시 생긴다면 성령께서 주시는 부담감인줄로 믿고 기도합니다.

 

2) 중보기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4: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 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중보기도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인간의 힘이나 지혜나 노력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고 났더니 탈진 했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기도한 경우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기도하고 나면, 힘을 얻고 상쾌 해집니다.

중보기도자의 자리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그 몸은 땅에 있어도 그의 영혼은 높은 곳으로 인도 하십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 멀리 바라보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 중보기도를 통해 세상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의 영혼은 하늘에 올라가 있습니다.

영광의 하나님, 생명의 하나님과 함께 일하므로 그의 몸은 훨씬 더 강해지기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거기서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 그 곳은 마치 노질하는 배나 큰 배가 통행치 못할 넓은 하수나 강이 둘림 같을 것이라”(이사야33:21)

이사야서에 나오는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계신 곳이 어디인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노질하는 배나 큰 배가 통행치 못하는 곳 이라고 합니다.

노략질하는 배와 큰 배가 하나님 계신 곳을 통행치 못하는 것은 이 두배의 특징 때문입니다.

이 두 배는 정 반대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략질하는 배는 이 배를 움직이는데 사람의 힘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큰 배는 그 배를 움직이는데 잘 조직된 기관이 있어서 그것에 의하여 움직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중보기도를 할 때에

우리의 힘으로 해서도 안 되고,

정해진 순서대로 기도했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중보기도는 무슨 체계적인 방법에 의해서만 기도하는 것이거나

내 힘에 의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통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3) 중보기도는 성령의 말하게 하심에 따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8:26-27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중보기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방언으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4) 중보기도를 꼭 길게 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보여 주시는 내용만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중언부언 기도는 정말 아름답지 못한 기도입니다.

중보기도는 항상 기다리면서 듣는 것으로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보여 주시는 내용만을 놓고 기도합니다.

알고 있는 것을 다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5) 한 가지 제목을 놓고 기도하다가 도중에 기도제목을 바꾸어서 기도하는 습관은 옳지 않습니다.

중보기도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한 가지 기도가 끝나고,

더 이상 기도 할 것이 없다고 여겨질 때,

중보기도를 인도하는 사람은 다른 기도 제목으로 기도를 인도하면 됩니다.

한 가지 기도 제목을 놓고 기도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 다른 기도를 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6) 중보기도 시간에는 가급적 통성 기도만을 하지 말고 될 수 있는 대로 열방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만민의 기도의 집답게 열방을 위하여 기도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생각하기

중보기도자가 서 있어야 할 곳은 갈라진 사이, 성벽 위, 영적 전쟁터이다.

예배와 영적 전쟁, 중보기도 이 세 가지는 따로가 아니라 하나이다.

중보기도의 방법은 성령의 인도와 성령의 능력과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기도하는 것이다.

 

출처 : 하늘 꽃 사랑 한길
글쓴이 : 하나님의 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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