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성경신학 요약(조지 피터스)
조지 피터스「선교성경신학」
Ⅱ. 본 론 (요 약)
서 론
1. 성경적-역사적 선교신학
기독교 선교는 긴급성이나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인식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해된다. 긴급성이란 세상에 죄가 강력하게 전염되어서 인간의 존재까지 위협하는 것이다. 만일 죄가 없었다면 기독교 선교도, 구원론 이해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1) 죄의 기원 - 성경은 죄의 기원에 대해서 분명하게 사탄이 죄와 악을 짓는 대리인으로써 나타남을 보여준다. 죄는 사단의 영향에 인간이 죄를 지어 하나님을 대항하고 명령을 어기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관계에 있으며 동시에 인간은 사망의 공포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처럼 죄는 형이상학적인 존재가 아니라 도덕적이면서 실제적인 존재이다. 죄는 인간이 합리적인(혹은 비합리적인) 불신 속에서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고 의지적인 불순종이며 자기 사랑과 자기 통치와 자기 구원 그리고 자기 숭배인 것이다.
2) 죄의 해결 - 그러므로 인간 스스로는 아무 도움도 소망도 없는 존재이다. 이에 하나님은 무한하신 지혜로 구원을 계획하셨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을 확정하셨으며, 성령을 보내셔서 각 개인과 역사 속에 구원을 실현케 하시고, 선교를 명하셔서 인간이 구원의 복음을 듣고 알고 믿게 하신 것이다.
2. 선교신학과 성경적 세계주의
1) 세계주의의 의미와 방법 - 구약성경은 구심적인 방법에 관해 기록된 반면에 신약성경은 원심적인 방법에 기초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열방들이 예루살렘으로 나아와 여호와의 도를 배우고 예배하였다. 그러나 사도들은 박해 이후 복음을 먼 곳까지 전파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떠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 이상적 세계주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을 제공.
(2) 실천적 세계주의- 우주적으로 선포된 복음을 모든 인간이 들을 수 있다.
(3) 실현된 세계주의- 모든 민족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고 영원한 구원을 확신한다.
2) 세계주의의 실현 - 창 1-11장에서 하나님은 온 인류를 향해 말씀하신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열방들 사이에서 중보적인 존재가 되는 세계주의를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제사장 사역을 가지고 열방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알리는 사역을 가진다. 이제 이스라엘의 역할이 일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이전되었으며, 복음은 모든 세계에 반드시 전파되어야 한다.
3. 신학훈련과 선교신학
선교신학은 신학교에서 그 정당한 위치를 가지며, 삼위 하나님을 배우는 신학과 함께 편성되어야 한다. 인간을 구원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목적이 효과적이 되게 하는 선교적인 사역에 대해 연구함이 없이 신론과 기독론 성령론만을 연구하는 것은 온전하지 않다.
4. 선교신학과 기독교의 주장들
기독교는 절대적인 성취와 완성의 종교로서 방향과 통치에서 세계주의를 주장한다. 기독교는 하나님 중심적인 것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그를 통하여 알게 하신다. 기독교는 타종교들과 비교될 수 없으며, 성경의 말씀에 근거한 합리적인 타당성을 가지고 있으며, 결정적이고 절대적인 진리에 의해 증거되는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제 1 부 선교의 성경적 기초
제 1 장 선교신학과 예수 그리스도
1. 그리스도의 형상
우리는 사복음서에서 그리스도의 선교적인 열심과 열정은 엄청나다는 사실을 본다. 그는 하나님의 사도로서 이상적인 선교사의 모습으로 빛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모든 영역에서 승리하시는 까닭은 그가 선교하시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며, 모든 인류와 온 세상의 구주가 되시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에 관한 신학적인 주제들
1)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리스도의 선포
(1) 인간의 마음속에서의 하나님의 통치 - 하나님의 나라는 직접적이며 실제적이다.
(2) 교회 안에서의 하나님의 통치 - 그리스도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의 교회를 주관 하신다. 교회안의 모든 권세와 통치는 그리스도께 속한다.
(3) 세상 속에서의 하나님의 통치 -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이 되시고, 하나님의 나라는 유대인들만의 나라가 아니라 열국도 포함된다.
2) 그리스도 중심계시 - 하나님 아버지 되심 -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은 예수님의 계시의 핵심을 이룬다. 하나님 아버지의 개념은 그리스도께서 새롭게 사용하신 것이 아니다. 창조주로서의 하나님 아버지 되심은 모든 인간을 포함하는 우주적인 것이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은 모든 신자들에게 주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본질상 아버지 되심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과 관계에서 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계시의 핵심적인 내용에서 하나님은 민족주의나 인종과는 관계없이 모든 믿는 자의 아버지가 되신다.
3) 그리스도의 자기계시 - 인자
(1) 예수님의 인성- 인자라는 말은 히브리 문화에서 인간적 특성을 가진다는 표현이다.
(2) 이상적인 인간상-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들이 추구하는 소망과 완성의 모습이다.
(3) 선지자의 계승자-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명칭이 된다.
(4) 약속된 메시야-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이심을 알았으며,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서 그의 백성들에게 보냄 받은 것을 알았다.
(5) 하나님과 하나님의 통치와의 특별한 관계- 인자에게서 어떤 특수주의를 발견할 수 없다.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과 관련이 있으며, 참으로 그는 세상의 구주이시다.
4) 그리스도의 근본적인 목적 - 그의 구속의 죽음과 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기본적인 목적은 민족적 특수주의가 아니라 세계주의에 있다.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에게 구원을 주시기를 기대하셨다.
5) 그리스도 부활 후의 선교 명령 - “모든 족속”, “모든 피조물”, “모든 나라들”, “누구에게든지”,“땅끝까지” 등의 말들은 특수주의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셨다.
6)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말씀들 - 참으로 세상은 그 아들에 의해서 심판받고 있으며 또한 심판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특수주의가 아니라 선교적인 목적을 밝게 비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7) 결론 -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신학적인 주제들은 복음과 구원의 세계주의에 대한 내용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런 개념들은 단순히 신학적인 것들이 아니라, 생생하고 역동적인 선교사상을 점진적으로 나타내고, 제자들을 항거할 수 없는 선교사로서 전 로마제국과 그 경계를 넘어 사역하게 만들었다.
3. 그리스도의 명백한 세계주의
1) 그리스도의 선포에 나타난 세계주의
(1) 천사에 의해서(눅 2:10-14) (2) 시므온에 의해서(눅 2:25-32)
(3) 세례요한에 의해서(눅 3:3-6, 요 1:29)
2)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나타난 세계주의 -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의 열방에 대한 무관심과 그들의 세계선교 사명을 무시함에 대해서 분개하시고 이방민족의 영적회복을 의식하도록 종교적인 예배법을 개혁하셨다.
3)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나타난 세계주의 - 세계주의는 비유적인 가르침, 아버지에 관하여, 아들에 관하여, 성령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주장들에서 나타난다. 또한 구름 같은 증인들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 마음과 교리에 대해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4. 그리스도의 방법
우리는 세계주의가 원심적이거나 구심적일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구심적인 세계주의는 마치 자석의 힘처럼 먼 이방의 사람들을 하나의 중심 장소로, 한 백성에게로 이끌어 오는 것이다. 후자는 구약의 방법이고 이스라엘과 성전은 그 중심이 되고 이방사람들을 자신들과 주께로 이끌어 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원리 속에서 주님은 먼저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우리에게 성경과 복음과 선교사와 첫 교회를 준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5. 그리스도의 마음
구약은 그리스도의 선교적인 마음과 목적의 비밀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 그리스도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의식하시고 또 자신의 역할을 의식하신 것을 모든 복음서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는 특별한 선교 곧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완성하는 사명을 가지셨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성품과 존재가 선교의 기초가 됨을 기억해야 한다.
제 2 장 선교학과 하나님의 성품
Robert E. Speer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위임명령이 교회 선교의 최종적 기초는 아니다”라고 말하며, 선교의 명령은 하나님의 성품에서 시작된다는 하나님 중심적인 선교를 주장했다. 바울 또한 하나님 중심적인 선교를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의 성취로 말하고 있다.(엡 1:13, 롬 9-11장)
1. 성부 하나님의 선교
1) 하나님은 영이시다(요 4:24) - 그분은 만물의 근원이신 행동하는 절대자이시다. 영이신 그분은 제한을 받지 않으시며 무한히 행하시는 선교의 하나님이시다.
2) 하나님은 빛이시다(요일 1:5) - 빛이신 하나님은 지구상의 모든 지역의 구석까지 임하신다. 이 교리적인 주장은 직접적으로 구속의 계획을 의미하고 결과적으로 선교신학과 연결된다. 영원한 목적을 이루시고 타락한 인간들에게 구원을 공급하시는 하나님 그분은 선교의 하나님이시다.
3)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8, 16) - 세상 종교의 창시자들에게서는 이런 사실을 찾아볼 수 없다. 즉 하나님의 성품인 영, 빛, 사랑에 대한 말씀들에는 선교적인 교훈이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
2. 성자 예수님의 선교
선교신학은 주님의 내적인 성품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다. 즉 성자께서는 성부 하나님과 함께 구속의 계획과 의지와 구속의 목적에 참여하신 것이다.
3. 성육신 - 십자가 - 부활 사건의 중요성
이 사건들은 역사해석에 중요한 것이며, 성경계시에 있어서 중심적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원천과 기초이며 인류에게 유일한 소망이며 그리스도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주시는 최고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구원론의 내용은 기독교의 선교적인 특징을 확실히 보여주며 십자가-부활 사건은 선교활동의 핵심이다. 동시에 그것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성육신-십자가-부활사건이 중요한 하나님의 선교활동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4. 성육신 - 십자가 - 부활과 구원
1) 구원은 본질적으로 신적인 기원을 가진다.
성경은 구원의 기원과 근거와 시작을 하나님께 둔다. 아브라함의 일생이나 이스라엘의 구출과정에서도 동일한 원리를 찾을 수 있다. 이 원리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독특하게 드러났는데, 어떤 초청도 없이 하늘을 열고 구세주를 보내신 것이다. 그래서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며, 그는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2) 구원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이다.
그리스도 중심은 성경해석의 중요한 원리로서, 이 구원의 경험은 우리가 선택하거나 주님이 수여하시는 단순한 선물꾸러미가 아니다. 구원은 만물 안에 충만히 거하시는 인격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이다.
3) 구원은 십자가 - 부활과 본질적으로 연관된다.
영원한 시간 속에 십자가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실제적으로 있었으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죄인 된 인간을 대하시는 기본적인 방법이었다.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구속사와 계시역사에서 중심이 되는 영원한 기독교 복음의 심장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인격에서 십자가를 제거하는 것은 죽은 신앙과 생명 없는 종교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4) 구원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 성경은 모든 인본주의나 세상적인 논리에 대해 철저하게 반대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교리를 주장한다.
5) 구원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유기체이다.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근원과 내용이시기 때문에, 구원의 체험은 본질적으로 유기적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구원으로서 선택론으론 나타난다. 구원의 초기형태는소명, 회심, 회개, 칭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양자됨으로 나타나며, 점진적인 삶 속에서는 성경적인 칭의, 구별됨, 보존하심, 제자도, 영화롭게 됨으로 나타난다.
6) 구원은 본질적으로 그 내용과 목적에서 윤리적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신적이고 윤리적이다. 은혜가 인간의 마음을 밝히고 의지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윤리적인 성품도 변혁시킨다. 하나님은 미리 아신 자들로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신다.(롬 8:29) 이 과정은 하나님의 선교적인 목적에 따라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과 제자도를 의미한다.
7) 구원은 본질적으로 믿음에서 온다.
성경은 믿음의 책인데 그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이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해하고 체험한다. 그런데 성경에 의하면 믿음은 단지 내면적인 태도가 아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인 것으로, 그는 성육신-십자가-부활 사건을 통해 인간의 구원을 확보하신 분이시다. 믿음이 흐릿해서 연관될 수 없는 그런 태도가 아니다.
8) 구원은 세계적으로 적용된다.
(1) 지고 가는 -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신다고 주장한다. 이는 원시복음(창 3:15)의 직접적인 성취이다.
(2) 죄 - 죄 없는 한 사람이 모든 인간을 위해 죄를 지신 것이다. 죄책감은 끝이 나고 더러움은 씻음을 받으며, 그 세력은 무너졌으며, 죄와 사망의 원리는 무너지고, 사탄은 패한 것이다.
(3) 하나님의 어린 양 - 하나님의 희생양은 하나님이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의 인격을 통해 준비되어진 것이다. 거룩하고 무한한 구원은 신적이고 영원한 구원을 확보하였으며, 이것은 질적으로 고상하고 시간적으로 영속적인 구원이며, 세계 모든 인간들에게 나타날 무한한 것이다.(cf 롬 8:19-21, 골 1:9, 20; 계 21:22)
9) 구원은 우주적으로 적용된다.
“자연적인 악”(natural evil)의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은 모든 악은 죄와 관련됨을 주장한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의 새롭게 됨”에 대하여 증거하신다.(마 19:28) 이 회복된 우주의 중심에 어린 양이 있다. 창조주 하나님은 또한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5. 선교하시는 성령 하나님
성령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임재(The Presence of God)이다. 성령은 이 세상의 인간 속에서 역사하신다. 우리가 성령의 역사에 대해 세상에서 행해지는 일반적인 사역과 하나님의 복음을 특별하게 듣도록 하는 구원론적인 역사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6. 세계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
성령은 이 세상을 단지 선교지로 보존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최고 수준의 선교하는 백성들을 창조하신다. 문화적인 요소가 발전되었지만 성령님의 특별한 간섭 없이는 문화적 환경이나 운동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7. 결 론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 본질이 영이시고 빛과 사랑이시며 선교하시는 하나님이요 자신을 인간에게 보내시고 인간에게 축복을 내려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자신을 주셔서 인간의 구원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제 3 장 선교신학과 구약성경
1. 하나님과 모든 인류와의 관계
예수님은 항상 구약성경의 예언 성취를 주장하셨다. 그 분안에서 구약의 모든 경륜이 그 절정을 이루었으며 영광스러운 결론이 되었다. 창 1-11장의 전 인류를 향한 선교적인 내용과 원시복음은 세계적인 의도에서 나타난 것으로, 성육신-십자가-부활사건으로 잘 드러날 때까지 구약성경 전체의 내용이었다.
2. 원시복음(Protevangelism)
1) 창세기 3:15
원시복음은 인간의 어두운 밤에 나타난 새벽별과 같은 것으로 우주적으로 의미있는 약속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류의 구주라는 사실은 창세기 3:15의 성취이기 때문이다. 또한 원시복음의 세계주의는 구약계시의 기초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구약의 역사서나 예언서에도 여자의 후손이신 그리스도 안에 성취될 때까지 중요한 원리가 된다.
2) 노아언약
세계주의는 노아언약에서 선포한 것에도 계속해서 나타난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속에 대한 세계적인 의도는 하나님의 계시의 첫 부분부터 잘 드러나 있으며, 계시와 구속사에 나타난 선교적인 목적에 대해 방향과 권위 그리고 의미를 제공한다. 하나님은 온 인류의 하나님이시며, 선교는 온 인류에게 구원을 펼쳐 가시는 하나님의 활동이다.
3. 신정국 이스라엘(The National Religion of Israel)
1) 계시종교와 지역종교들
세상종교들은 사회 속에서 인간이 만들지만, 구약의 계시종교의 내용은 위로부터 왔으며 인간 밖에서 온 것이다. 모든 종교들 가운데 구약의 계시종교는 세상에서 독특하게 하나님의 선교에 이바지한다.
2) 신정국의 설계
열국들은 빠르게 우상숭배와 윤리적 성적인 타락으로 떨어졌다. 결국 종교, 도덕, 철학은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있게 되었으며, 하나님은 그러한 열국을 내버려두셨다. 하나님은 죄를 죄로서 심판하시고 그들은 거룩한 규범을 버리고 각자 자신들의 취향에 따라 문화와 종교를 설계하였다.
3) 신정국의 유일성(Uniqueness)
(1) 신정국 이스라엘의 시작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행위와 계시에 근거한다.
(2) 신정국의 시작은 종교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전환점을 의미한다.
① 신적인 역사의 방법은 계시와 행위 안에서 특별한 선택을 요구한다.
② 신적인 역사의 원리는 중보적인 백성을 요구하고 있다.
(3) 신정국의 시작은 앞으로 모든 인간에게 영향을 주게 되는 도덕적 종교의식의 창조를 위한 새로운 시대를 의미한다.
4) 신정국의 이상주의
이상적인 계시종교는 인간적인 갈망이 아니다. 반복적으로 구약성경은 신정국의 이상주의와 이스라엘의 순종에 대해 상세하게 비교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언약을 파기함으로 그 결과 육적이고 물질적인 심판을 자초하였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러한 신적으로 나타난 신정국의 이상주의와 그들의 실제 역사적인 생활이 지켜지지 않으면 거기에는 언제나 갈등과 어긋남이 있을 뿐이다.
5) 신정국 이스라엘의 도덕적 힘의 근원
(1)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유일한 언약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의식
(2) 이스라엘의 독특한 언약에 대한 의식
(3) 참된 하나님 지식과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의식
4. 기본적인 전제들
1) 구약성경의 기자들은 사변적인 철학적 신학자들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경험에서 하나님의 존재는 그들의 삶 속에 충분한 증거를 주었다.
2)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지식은 초자연적인 계시에 의해 가능하며, 하나님은 인간을 만나시고 인생의 참 모습과 의미를 설명하시는 분이다.
3) 하나님은 “알 수 없는 신”, “이름 없는 신”이 아니라, 그의 백성 가운데 거주하신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행하심으로 백성들에게 자신을 알리신다.
5. 신성의 개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속성과 특성은 그의 이름들에서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주와 역사 속에서 그분은 창조주이시며 모든 존재의 근원이시며 절대주권적인 통치자요, 우리 가운데 내재하심(immanent)과 동시에 초월하시는(transcendent) 모든 인류와 세상의 심판주이시다.
1) 신정국이 가지는 세계주의
신정국의 형태는 하나의 새로운 종교적인 세계주의를(Religious Universality) 가져오는 소망의 소리이며 이것은 인간에게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 인류의 구세주를 함께 섬기는 축복에 참여하게 한다.
(1) 구약성경에 일관되게 강조된 유일신론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창조주이시고 은혜로우신 우주의 통치자이심을 나타낸다. 계시역사 속에는 어떤 다신론이나 다른 신들을 인정하는 일신론(Henotheism)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God is The Sole God
(2)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열국을 다스리시며 심판하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도구로 사용하신다.
(3) 특별계시 밖의 다른 종교행태에 대한 정죄의 선포는 종교 간의 대화란 있을 여지가 없게 한다.(no room for dialogue)
(4) 구약의 분명한 선포와 내포된 약속들은 “모든 인류에게 주는 계시”로 된 것이므로, 보편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는 특수주의가 아니며 나중에 구체적으로 성립된 사실이다.
(5) 이스라엘이 받은 엄숙하고 특별한 소명은 모세와 선지자들에 의해 하나님의 증인과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축복에는 그와 동등한 책임이 주어졌고, 이 소명은 하나님께 헌신을 통하여 세계 복지를 위해 축복의 봉사자가 되는 것이었다.
2) 족장시대의 선교메시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전 세계에 하신 약속을 포함한다. 이 소명은 결코 지역에 치우친 신을 섬기는 편협한 지역종교(local religion)를 세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세계를 바라보시고 인간을 목표로 삼으신다. 그래서 족장시대에도 세계주의가 약해지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우주적인 의도와 계획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3) 모세시대의 선교 메시지
아브라함 언약이 이스라엘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었다면, 모세언약은 이스라엘로 하나님을 섬기는 국가로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세상의 “열국 가운데 유일한(unique)" 국가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땅에서의 위치와 선교사역에 있어서 특별한 것이다. 이들은 여호와와의 관계, 열국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에서 세계주의를 나타내고 있다.
4) 다윗시대의 선교 메시지
(1) 시편의 메시지와 목적 - “찬송시편은 매우 탁월한 선교적 설교”이며, 선교적인 사고를 증진시킨다. 시편은 우주적인 사상을 깊이 가진 위대한 선교의 교과서이다.
(2) 성전 봉헌의 기도 - 솔로몬은 기도에서 선교적인 의도(Missionary Purpose)를 언급한 것이다. 성령께서 그를 인도하여 그의 기도에 이방인들이 포함되게 하였으며 성전의 선교적인 중요성을 나타나게 하였던 것이다.
5) 선지서의 선교 메시지
신적인 구원을 나타내는 선지자들의 선교 메시지는 분명하게 선포되었다. 하나님의 세계주의는 선지자들의 담대한 선포에서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와 다스림 가운데서 다시 강조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선교는 어떤 종교적인 천재에 의해서나 자신의 야망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적으로 부여된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가지는 소명이며 이스라엘의 목적이다.
6. 결 론
구약성경이 선교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 그 자체가 세계선교이다. 참으로 구약성경은 선교의 책이요 이스라엘은 선교하는 백성이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을 바로 해석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실제화하고 변형되고 확대하여 완전케 한다.
제 4 장 선교신학과 신약성경
신약성경에 나타난 선교신학을 정립하려면 누구든지 신약성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신약성경은 하나의 신학적인 지식으로서 선교신학이(a theology of missions) 아니라, 선교사를 위한 선교적 신학(a missionary theology)이다.
1. 열두 사도
사도들은 자기 백성들에게 선교사였고 세계열방의 선교사로 사역하였다. 이들의 생애 속에 가장 큰 전환점은 복음 선교의 분수령인 오순절이었다. 성령의 임재는 그들을 변화시켰으며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진정한 사도로 만들었다. 그들의 선교신학은 영원한 진리에 그 뿌리를 두고 실제로 땅에서 실천한 경험에서 나온 것임을 볼 수 있다.
2. 사도들의 선교 동기
1) 사도들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경륜에 따라 그의 주권적 구원역사에 사로잡혔다.
(1) 사도들은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알았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어린 양”으로,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로 기록한다.
(2) 사도들은 하나님의 구속역사가 나사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루어졌음을 확신하였다. 근본적인 진리에 대한 사도들의 조화로운 지식이 신약성경 전체에 걸쳐서 나타나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와 구주이시라는 것이다.
(3) 사도들은 하나님의 구원은 역사적인 사실로 분명한 역사적 결실을 맺는 것임을 확신하였다. 이처럼 기독교는 역사적인 구원,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구원을 제공한다. 그리고 지금도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유효하다.
(4) 사도들은 이루어진 사실이 구약 예언과의 완벽한 조화를 이룸을 확신하였다. 이 확신은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의 기록대로 예정된 계획을 온전하게 성취하신다는 것이었다.
(5) 사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행위가 모든 인류에게 유익함에 대해 확신하였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에 의해 이상적으로 선포된 구원의 세계주의가 사도들에 의해 실천되고 역동적으로 열매를 맺었던 것이다.
(6) 사도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받는 길이 회개하고 믿는 것임을 확신하였다. 회개는 하나님의 선물이지만(행 5:31, 11:18), 그것의 유익은 인간이 실제로 합당하게 실천해야 한다. 회개하는 것은 인간의 편에서 할 일이다.
2) 사도의 선교활동은 주님께 순종과 충성이었다. - 순종은 사도들의 사역을 이해하는 중심단어로서 그들의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사도들에게 있어서 순종은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직업의식적인(occupational) 항목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모든 삶을 지배하고 있었으며, 그들로 그들의 주관자이신 주님께 순종과 충성으로 헌신하게 하였다.
3) 사도들은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체험하였다. - 임재의 체험(reality-experience)은 부활하신 분을 믿는 것이며 주관적으로 그 실재를 체험하는 믿음이다. 그리스도의 내적임재는 항거할 수 없는 역동적인 힘으로 인하여 오순절에 연이어 전도폭발로 나타났다.
4) 사도들은 성령의 확신으로 사역하였다 - 성령은 그들의 사역 속에 역동성을 갖게 하셨으며, 그들은 성령이 충만하여 효과적이고 온전한 봉사를 감당하였다. 성령의 임재는 그들의 선교적 열정을 맹렬히 추진하게 하였다.
3. 사도들의 선교 환상
1) 선교의 충분한 환상 제시
선교에 대한 충분한 환상이 요한계시록에 나타나있고, 거기서 하나님은 우주의 하나님으로 제시되어 있으며-하나님은 온 땅의 하나님으로, 모든 열국의 하나님으로, 그리고 어떤 영역도 하나님으로부터 제외된 곳은 없는 곳으로 나타나 있다.
2) 결 론 - 사도들의 선교신학의 뿌리는 단순히 명령보다도 더 깊은 곳에 서있다. 열두 명 가운에 그 누구도 주님의 선교활동과 부조화를 이루고 있지 않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도들은 모든 계시에 일관되게 나타난 하나님의 불변한 목적을 그대로 수행하였던 것이다.
4. 사도 바울
1) 바울의 이상적 세계주의 - 바울은 지울 수 없을 정도로 세계에 많은 진리의 말씀을 강조하여 전하였다. 바울의 선교적 사고 속에는 어떤 민족주의나 문화적 차별은 존재하지 않았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복음을 사람들과 나라들에게 전파하여 그들로 믿고 순종하게 하도록 구별됨을 알았다.
2) 바울의 이상적 세계주의의 의미 -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이 전파되어 민족주의적 특수주의와 유대주의를 넘어서 전 인류를 품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며 아울러 인류에게 속한 자이다. 그래서 그는 세계의 선교사가 되었고 그의 이상적 세계주의는 실제적인 세계주의로 승리하였던 것이다.
3) 바울의 이상적 세계주의에 대한 변호
(1) 그는 수사학적 질문들을 제기하면서 윤리적 유일신론을 제기한다 - 바울에게 윤리적 유일신론은 하나의 강력한 실제적 세계주의의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2) 아브라함의 의로움은 아직 그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였다 - 아브라함은 창 17장의 전 가족의 할례를 통한 계약의식 속에서 처음으로 히브리인이 된 것이다.
(3) 메시야를 거부하는 이스라엘의 죄 -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하나님은 일시적으로 열방을 축복하는 수단으로 이스라엘을 제쳐 두셨다. 이는 이스라엘에게 가장 슬픈 일이다.
(4) 구약의 미성취된 계시(The incompleted of the Old Testament) - 바울은 구약성경이 하나님의 경륜과 전체적인 계획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교회계시는 그리스도 안에 영원한 경륜으로서 신약성경 안에 점진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5) 교회의 본질과 구성 - 바울은 복음이 열국에 전파되어 그리스도의 교회가 모든 열국들이 모인 국제적인 그리스도의 몸으로 구성되어진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이 확신은 그의 선교여행 속에 잘 드러난다.
(6)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확신 - 그의 선교소명은 신학적으로 체험적으로 그리고 성경적 기초에 세워진 분명하고 구체적인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열방을 위한 사도로서의 사명을 확신하였다.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세계 복음화에 대한 분명하고 역동적인 동기를 갖고 사역하였다.
제 2 부 선교의 성경적 정의
제 5 장 선교의 사역
1. 선교사역의 본질
1) 선교사역은 영적인 사역이다 - 본질적, 궁극적으로 선교사역은 성령의 역사이다. 그의 수단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의 대행자들은 선교사역을 위해 부름 받은 그리스도의 교회와 그리스도인 신자들이다. 영적인 일은 성령에 의해 영적으로 준비된 마음을 가진 자를 통해 일어날 수 있다. 마지막 전투의 영역은 영적인 영역이다.
2) 선교사역은 성경적인 사역이다 - 진정한 선교의 부흥은 참된 성경신학의 부흥에서 일어나며 하나님의 작정에 따라 바르게 해석할 때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선교사명과 메시지를 찾아야 하는 것은 선교사역은 철저히 성경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3) 선교사역은 믿음의 사역이다 -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믿음은 모든 기독교 생활과 열정의 근본이 된다. 참된 영적인 사역은 항상 믿음의 사역이다.
4) 선교사역은 인간의 사명이다 -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역을 성취하기 위해서 인간을 수단으로 선택하시고 인간의 환경을 주장하시며 인간의 마음속에 사명을 불어 넣으신다. 선교의 일은 인간적인 요소를 가지는데 곧 선교사와 선교지 사람들 사이에 인간적인 관계가 이상적일 때 선교의 일은 가능하며 복음이 인간적인 수단과 언어로써 전달된다.
2. 두 가지 명령
1) 두 가지 명령의 정의 - 첫 번째 명령은 인간의 대표인 아담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인간의 문화의 전 영역과 관계된 것이다. 이는 인류의 구성원으로써 인간에게 주신 사명이다. 두 번째 명령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표되는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복음 사역과 관계된 것이다. 이는 교회의 구성원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것이다.
2) 그리스도인과 두 명령 -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은 첫 명령을 따라서 사회에 기여해야 하며, 사회적인 기구나 조직들을 통해 나타난다. 오늘날 교회의 목소리는 예언적 선포보다는 유화적인 목소리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항상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과 그를 지도하는 양심이다.
3) 두 명령에 대한 현대의 혼란들 - 성경적으로 엄밀히 말하면 두 번째 명령이 선교명령이다. 첫 명령은 온 인류를 향한 박애주의적이고 인간적인 수준의 것으로 같은 가족의 때에(갈 6:10, 눅 10:25-37) 관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선교명령이 아니라고 해서 그것을 세속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도 잘못이다.
3. 지상명령
1) 본질적인 의미와 해석 -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복음서 기자들이 기록했으며, 교회에게 주신 것이고 땅 끝까지 순종해야 하는 것이며 이것이 성경적인 계시이다.
2) 기독교와의 관계 - 지상명령이 기독교를 선교적인 종교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가 선교적인 종교라고 불리는 것은 그것의 기원과 특성과 전체적인 의도 때문이다.
3) 가치와 특성 - 모든 논쟁을 지나서 기독교의 선교적 열정과 책임을 증거한다.
(1) 마태 - 권세, 포괄적인 목표와 모든 시대의 사명 (2) 마가 - 긴급성, 그 사명의 방법과 지리적인 범위 (3) 누가 - 그리스도 중심적인 메시지와 사명의 세계주의
(4) 요한 - 영적인 준비와 사명의 영적 특성
4) 범위와 형태 - 우리는 모든 족속으로 가서 복음의 전달자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성경기록대로 분명하게 전파해야 한다. 또한 그들에게 주님의 교훈을 가르쳐서 그들의 마음이 새롭게 되어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5) 신학적인 중요성 - 주님의 절대주권, 복음의 명령, 복음의 우주성, 복음의 특성, 복음 선포에 나타난 인간적인 수단들, 영적준비의 필요성 등은 신학적인 조직으로 그것의 역동성을 드러내고 있다.
6) 심리적인 중요성 - 말씀 없이 성령의 사역은 모호하고 희미하며 우리의 살에 역동적인 것을 남기지 못한다. 교회가 심리적인 중요성을 깨닫고 우리가 매주일 고백하는 사도신경과 함께 지상명령을 힘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7) 목적 - 지상명령은 모든 성경의 독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으로서, 거룩한 선교적인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다.
4. 선교명령과 다른 명령들
1) 마태의 선교명령
(1) 제자를 삼는 것은 가장 중심적인 사역이다 - 기독교 제자도는 기독교적인 삶의 생동적인 표현이다. 이 형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에서 발견된다.
(2)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야 한다 - 선교명령은 민족주의와 자문화중심주의, 지역주의 그리고 특수주의를 배제하고 있다.
(3) 제자를 삼는 것은 교제와 성경공부를 통한 그리스도인의 성장의 과정을 포함한다 - 제자도는 하나의 성취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길을 제시한다. 제자도는 평생교육의 과정으로서 제자를 양산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2) 마가복음과 선교명령 - 마가에 나타난 선교의 방법은 복음을 음성으로서 선포하는 것이다. 선교의 범위는 온천하의 모든 피조물들로 제시된다.
3) 누가복음과 선교명령
(1) 복음의 계시적 기초-성경, 모세의 율법, 선지자, 시편 (2) 내용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3) 임무-회개와 죄 사함이 선포됨 (4) 범위-모든 족속 (5) 도구-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다 (6) 역동성-아버지와 성령의 약속
4) 요한복음에 나타난 선교명령
(1) 기원-“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2) 위임명령-“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3) 준비-“성령을 받으라” (4) 선교- “죄를 사하라”
5. 요약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복음화 하는 강조의 두 가지 명령은 지속적으로 긴장과 균형 가운데 적용되어져야 하며 역사적으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의 복음이 전 세계에 들려질 때까지이다.
제 6 장 교회와 선교
1.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1) “교회” 용어의 연구
“에클레시아”는 “칼레오”(부름)와 “에크”(~로부터)의 합성어로서, “~으로부터의 부르심” 혹은“~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뜻이다. 신약성경에서의 사용에서는 “~에게로의 부르심”의 의미가 더 많다. 즉 긍정적인 의미가 내포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그 분을 순종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설명된다.
2) 교회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은유들의 연구
(1) 교회의 본질 - 새 사람, 그리스도의 몸, 하나님의 성전, 왕 같은 제사장, 그리스도의 신부, 하나님의 권속, 하나님의 양 무리
(2) 교회의 칭호들 - 하나님의 교회,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의 교회, 장자들의 총회, 성도의 교회
① 이상적 교회의 정의(the church ideal)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고, 믿음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교제의 삶을 가지고, 성령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몸.
② 지역교회의 정의(the local church) - 주님에 대해 공유하는 경험들과 말씀의 확신 위에 서로 사랑과 이해의 결속 안에서 서로의 관심과 문제를 돌아보면서 신앙을 고백하는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질서 있는 몸.
③ 결정적인 기본원리들 - a. 교회는 신적인 창조물이다. b. 교회는 하나님의 독특한 소유다. c. 교회는 거룩한 기능이고 관계다. d. 교회는 신적인 질서로 구조된 사회다.
3) 교회의 역사적 이상주의 - 역사적인 이상주의는 성경적인 이상주의와 구별된다.
(1) 인간의 지도력 실패 - 교회 내 지도력이 자주 교회의 본질과 특성들을 드러내는데 자주 실패한 것은 역사의 슬픈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교회가 마치 협회나 회사, 기관, 세상적인 목적들을 위한 구조화된 사회 또는 정부처럼 빈번히 다루어져 왔다.
(2) 영향과 공헌 -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거대한 영향과 큰 공헌을 남겼다.
(3) 신실한 남은 자 - 주님은 언제나 신실한 자들,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을 가지고 계셨다. 이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실한 에클레시아를 구성하였다.
(4) 오늘의 생각과 노력들 - 성경은 오늘날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야망이나 계획들을 담고 있지 않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성경적인 이상주의와 역사적인 이상주의를 교회의 관계 안에서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에클레시아는 축복된 실제이고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승리와 성취를 확신하셨다.(마 16:18)
2. 교회의 선교적 사명
1) 일반적인 사명 - 위로는 예배와 찬양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는 품성을 기르고, 정결케 하고, 교육, 양육을 통한 교회 자신과의 관계, 밖으로는 복음화와 섬김의 사역을 통한 세상과의 관계 가운데서 영향을 미친다.
2) 신약성경의 주장
(1) 그리스도인의 존재와 그들의 복음 선포 - 그리스도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었으며, 거룩하신 하나님과 타락한 죄인사이의 중보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폭동의 주도자나 사회의 개혁자가 아니었다. 누구에게 그런 권한을 부여하신 적도 없다.
(2) 교사이며 설교자이신 그리스도 - 복음서에서 그리스도는 48번이나 선생으로 불리었고, 100여 차례가 넘게 그의 사역은 가르치거나 설교나 전도라는 형태로 묘사되었다.
3) 교회의 임무의 특성들
(1)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보내신 구원자이며 주권자이며 심판자임을 전해야 한다.
(2) 죄의 용서함을 받고 그리스도와의 진실한 관계 속으로 이끌어야 한다.
(3) 세례를 시행함으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한 지체로 세워야 한다.
(4) 신자를 기독교 교리와 원리 가운데 세우고 제자로 세워야 한다.
(5) 성령 안에서의 삶을 살도록 훈련해야 한다.
3. 선교에서의 교회
1) 역사적인 비정상의 이유들
(1) 종교개혁의 신학 - 우리는 개혁가들을 진정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으로 존경하지만, 그들의 교회는 현대적 의미로 봐서는 전혀 선교적인 교회가 아니었으며, 그들을 따르고 그들의 진정한 계승자이며 해석가로 주장하는 신학자들도 전혀 선교사상이나 동기를 발전시키지 않았다.
(2) 교회와 국가의 관계 - 16세기의 개혁가들은 자유로운 국가에서 자유로운 교회를 발전시키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국가적 교회의 개념을 보전하고 영속시켰다.
(3) 선교를 시작하기 위한 교회의 준비의 부족 - 대부분의 선교가 협력의 방식에 따라 기능되어지는 선교회로써 시작되었고, 이들 중 어떤 선교회는 매년마다 모든 투표위원에 의해 회비가 거부되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4) 선교는 교회의 임무가 아닌 개인의 책임이라는 잘못된 생각 - 쯔빙글리는 선교는 특별히 부름 받은 사람들의 일이며, 교회는 선교와 관련하여 아무런 할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생각은 경건주의자들에 의해서도 주장되었는데, 이는 서유럽의 신교도들의 지배적 생각이 되었다.
(5) 강한 개성을 가진 선교사들은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것은 알았지만, 교회의 권위와 파송단체의 존재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2) 파송하는 권위를 가진 신약교회
(1)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중요성 - 신약은 교회를 그 중심에 두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며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2) 신약에서 교회의 사도직의 계승 - 신약에는 권위의 직책과 신분으로서 사도직과 기능 혹은 임무로서의 사도직이 있다. 그러나 이는 구원의 과정이 아니다. 어떠한 사도들과 선지자들도 구원의 관계에서 그리스도와 개개인 사이에 설 수 없으며, 개별적인 성직자가 아닌 교회가 사도직을 계승한다. 또한 교회는 사도를 구성하는 그리스도의 중계 기능을 한다.
(3) 신자의 제사장직과 교회의 파송하는 권위 - 교회의 통치적인 자율성이 있는데 반해, 개별 신자는 그러한 자율성이 없다. 개별적인 선교사에게도 그의 봉사와 관련해서 그러한 통치적인 자율성이 없다. 교회가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되며, 사람들이 선교라는 도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역시 잘못된 것이다.
4. 파송기관으로서의 교회
1) 효율성과 효과성을 위한 조직의 원리 - 진실한 교회는 하나의 유기체이고 모든 유기체는 질서정연하게 조직된다는 것이 언급되어야 한다. 봉사에서 효율성과 효과성에 대한 조직의 원리는 성경에 있는 것이며, 전도 분야에서의 새로운 강조가 필요하다.
2) 협력 사역의 원리들과 공동 사역 또는 공동의 사역과 섬김을 위한 교회들의 연합 - 어떤 지역교회도 완전한 몸과 성전, 건물, 제사장, 족속이 아니다. 우리의 상호의존성은 목적과 행함을 일치시킬 수 있는데 이것을 적절히 동원하고 조정할 때 힘이 생긴다.
3) 위임된 권위(Delegated Authority)의 원리 - 제자들이 다양한 사역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하고 있는 동안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에게 위임을 하셨다. 교회는 교회와 관계 맺고 있는 선교회에 파송하는 것을 위임한다. 선교사는 그가 대표하는 교회의 정당한 일원으로 남는다.
4) 선택적 임명(Selective Appointment)의 원리 - 하나님의 선택적 임명의 주권은 성경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선교의 역사에서도 기록되어 있다. 교회가 듣고 유념할 것은, 교회가 파송하는 권위의 중재자로서 섬기도록 임명받은 것은 통치하시는 주님이라는 사실이다. 교회는 인간이 만든 상황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특정한 협회나 선교사 기관들을 사용하시는 그분의 권리에 대해 하나님과 논쟁하는 것을 멈추어야 하고, 교회의 실패와 영적인 타락 그리고 신학적 변질에 대해 회개해야 한다.
5) 결론 - 선교사 파송 기관은 선교사들을 위해 필요하고 유효하며 교회나 개인이 선교사 비전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선교사들과 지역교회 그리고 선교회가 유기적으로 함께 속하고 이들이 기관적으로 함께 묶여 있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의 일을 추진하기 위해 조화로운 협력의 방식 가운데서 기능해야만 한다.
5. 선교와 교회의 관계들
1) 사도 바울의 선교사와 교회의 관계 - 바울은 교회간의 협력을 위해 수고하였다. 자신이 개척한 교회들을 통해서 복음전도와 교회성장의 큰 자원들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 교회들은 처음부터 바울의 복음전도와 교회확장 사역에 참여하였다. 교회들은 사도의 사역 가운데 서로 협력한 것이 분명하다.
2) 사도 바울의 원리들
(1) 자원의 자유로운 나눔 (2) 자연스러운 협력 (3) 지속적인 협력 (4) 서로에게 군림하지 말라 (5) 친교로부터의 관계 성장 (6) 완벽한 합병과 보조기관의 부재
3) 바울의 전제들
(1) 교회에 대한 인정 (2) 영적 은사들에 대한 인정 (3) 진정한 기독교인과 복음을 전하는 교회 (4) 긍적적인 관점 (5) 의존함 (6) 기대
4) 오늘을 위한 적용 - 바울의 방법과 경험들 그리고 방식들을 어떤 수정 없이 완전히 우리 상황과 시대에 맞추기란 쉽지 않다. “바울처럼” 행하는 아름다운 생각은 지혜보다는 순전함이고, 현실주의 보다는 이상주의를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온전하고 균형 잡혀야 한다. 모든 점에 있어서 우리는 영적으로 평화의 끈으로 결속되어야 하며, 그리스도 앞에서 그리고 세상에 오신 그의 목적 앞에서 우리의 평등함과 상호결속력을 나타내야 한다.
제 3 부 성경적 선교기관과 선교의 원동력
제 7 장 선교사 : 선교의 도구
1. 사도직과 현대 선교사
1) 세 가지 중요한 원리들
(1) 신약성경은 우주적인 교회와 지역적인 교회의 사역에 대해 언급한다.
(2) 바울은 성령의 은사의 분배가 교회를 세우시는 성령의 지혜와 관심이라고 한다.
(3) 바울은 최종적인 은사에 대해서나 많은 은사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2) 은사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 - 은사는 교회의 사역을 간과하면 안 된다. 이 사역은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의 개념으로서 지역교회의 사역보다는 우주적인 사역의 개념들이다.
3) “선교사”에 대한 기초적 정의 - (1) 그는 보냄을 받은 신자이며 사자이며 주의 전령이며 (2) 그는 복음 전파와 교회설립의 사역을 가진 자이며 (3) 그는 이러한 교회와 함께 그 사회 속에 그리고 세계 속에 신적인 목적을 성취하려고 수고하는 자이다.
2. 선교사는 보냄을 받은 자이다
1) 보냄을 받으신 그리스도 - 그리스도께서는 여러 번 자신을 보냄을 받은 자로 소개하셨다. 그는 보냄을 받은 세상 속에서 행하시고 사역하시고 고난 받으셨다. 그는 참으로 보냄을 받은 사도이셨다.(히 3:1)
2) 보냄을 받은 제자들 - 제자들은 보냄을 받은 자로서 사자와 대사들과 사도들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가 보내신 사도인 반면,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것이다. 파송자이신 그리스도는 사역에 있어서 가장 가까이 계시는 동료가 되신다.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선교사역을 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선교한 것이다.
3) 보냄을 받은 선교사 - 선교사는 밖으로 나가는(gone out) 자가 아니고 보냄을 받은(sent) 자이다. 보냄을 받았다는 축복된 확신이 없다면 선교사로서의 고난과 좌절, 압박과 염려들을 견뎌나갈 수가 없을 것이다.
3. 신약의 사도직
1) 그리스도에게 적용 -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다.(히 3:1) 이는 신약성경에서 유일한 표현으로서 그분은 탁월하신(Par excellence) 사도이시다.
2) 제자들의 경우 - 제자들은 그들의 위치와 선교와 기능과 관계없이 사도로 불렸다.
3) 공식적인 개념 - (1) 열두 사도와 바울만이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로 알려져 있다. (2) 열두 사도와 바울은 특별한 의미로서 “증인”의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사도직에 계승자가 있다는 말은 잘못이다. 현대 선교운동가들이 자신들이 사도적인 가르침의 계승자로 여기는 것은 비성경적일 수 있다.
4) 광의의 개념 - 신약성경과 사도시대 역사는 열두 사도와 바울이 주님에게서 직접 받은 사도직(apostolic office)과 사도적인 기능(apostolic function) 사이에 구별을 한다. 사도적인 기능은 사도들과 지역교회에 의해 사역에 관련된 것으로 그들을 대리하는 사역이다. 이 사역은 전도자와 목사와 교사의 기능에 속한다.
4. 신약성경의 전도자
본래는 사도들이 모두 전도자들이었지만 또한 사도가 아닌 자들도 전도인의 일을 하고 있다.(딤후 4:5) 복음 전하는 자라는 말이 오늘날처럼 너무 좁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복음 전하는 자는 사도와 선지자의 계승자이며 교사나 목사의 선구자적인 사역이다. 선교사는 (1) 보냄을 받은 사자로, 가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며 (2) 그는 특별한 선교사명을 위해 교회를 통해 신적인 권세를 가지고 보냄을 받은 사도이며 (3) 그는 복음 전하는 자로서 기쁜 소식을 증거하는 자이다.
5. 신약성경의 목사-교사직
1) 지속적인 직분과 기능 - 성령님의 직접적인 간섭과 영감으로서 선지자적인 계시사역과 가르치는 사역으로 나타나서 결국에는 신약성경이 완성된 것이다. 가르치는 사역만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 우주적인 가르치는 사역 - 목사-교사의 사역이 지역교회에 속하는 사역인 것에 반해, 가르치는 사역은 우주적인 특성을 가진다. 이러한 원리는 아볼로의 생애와 사역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그에 관한 성경적 기술은 선교사의 원리로서 구체화된 것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욱 크다.
3) 아볼로 사역의 원리들
(1) 목사-교사는 한 지역 교회에 국한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2) 그는 새로운 교회와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로서 다른 사람이 개척한 곳에서 사역하고 굳건히 하였다.
(3) 그는 초기 사역자들의 수고를 보충하고 지속적으로 열매를 맺게 하였다.
4) 교회에서 목사-교사의 세 가지 기능들
(1) 그는 순회 선교사로서 말씀을 가르치고 성도를 양육하고 지도하였다.
(2) 그는 사역자들의 훈련을 위해 학교를 설립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학교는 초대 교회의 선교훈련센터가 되었다.
(3) 목사-교사는 초대 교회에 있어서 기독교 변증학자로서 신앙을 방어하였다.
5) 결론
(1) 복음 전하는 자는 선교하는 자들이다. 복음 전도자의 사역은 교회에 기초하는 것이지만 교회 중심적인 것은 아니다. 비기독교인들의 개종을 힘쓰며 교회로 인도한다.
(2) 목사-교사직은 이미 개종한 자들의 모임을 돌보며 성숙한 신자로 양육하는 교회중심적이다. 그래서 복음 전하는 자와는 다르게 교회 사역의 한 부분을 감당한다.
6. 선교명령의 영속성
1) 선교사역의 중지에 대한 신약성경의 침묵
(1) 제자 삼는 사역은(discipling) 모든 족속들이 말씀을 들을 때까지 계속된다.
(2) 우리 주님은 복음화 사역이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것임을 말씀 속에서 보여주신다.
2) 선교명령의 광대한 사역 - 선교명령은 복음이 모든 종족에게 들려질 때까지 지속적인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선교명령의 실제적인 수행은 사도들의 책임이며 그리고 성령으로 교회의 파송을 받은 복음 전하는 자의 책임이다.
3) “복음 전하는 자”의 중요한 역할 - 성경 그 어느 곳에도 복음전도자의 직책이 중지되었거나 또는 일반적인 의미 가운데 사도의 기능이 끝이 났다는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복음전도자와 선교사의 우선적인 질서는 교회의 선교로서 영존하는 진리이다. 복음전도와 선교는 세상 마지막 날에야 끝나게 될 것이다.
4)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의 항구적인 원리 - 파송의 원리는 항구적인 것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의 영향과 인간들의 필요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교사의 기능은 여전히 필요하며 항구적인 명령으로 교회의 선교적인 틀을 형성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주님의 세계복음화 명령의 완수를 위한 의지적인 결단과 우리의 사명을 완수하고자 하는 적극적이고 개혁적인 자세로 선교수행이 필요하다.
7. 하나님의 소명과 말씀의 사역
1) 구원으로 부르심 - 구원으로 부르심은 모든 하나님의 소명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인데, 시간적인 면에서나 경험적인 면에서 볼 때, 첫 번째가 되는 것이다.
2) 제자도로 부르심 - 제자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부름 받은 성경적인 이상이다. 이는 주님께서 제자들을 훈련했던 프로그램 속에 함축되어 있다.
3) 말씀사역(Ministry of the World)으로 부르심 - 말씀사역의 부르심은 선별적이고 개인적이며 특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 소명의 성격상 제자도의 소명과는 분명하게 구별할 필요가 있다.
8. 하나님의 말씀 사역에 대한 성경적 의미
1) 말씀사역은 성령으로 시행되는 주권적 소명이다 - 성령은 주권적으로 그의 권위를 가지고 사람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사역을 수행하게 하신다. 물론, 성령은 사역자에게 은사를 부여하심으로 그 사역을 감당케 하신다.
2) 그것은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소명이다 - 제자들과 바울, 바나바, 디모데 등은 하나님의 말씀사역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요 또한 그들을 부르신 주님께 대한 책임감을 스스로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주님에게 부름 받아 교회의 특별사역을 수행하게 하셨다는 확신은 주의 종에게 축복이며 특권이다.
3) 말씀사역의 소명은 특별한 것이다 - 이 소명이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다. 신약성경은 말씀사역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을, 그리스도인이 농부로 사업가로 은행원으로 교사로 기술자나 또는 정치가로 부르셨다는 것과 동일하게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말씀사역을 위해 주님에게 부름을 받은 사람은 말씀사역을 버리고 다른 직업을 가지려고 할 때에 신중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4) 그것은 사역에의 부르심이다 - 말씀사역의 세 가지 형태
(1) 양떼를 돌보는 사역 - 장로의 기능으로 영적인 감독과 지도자의 역할이다.
(2) 복음전도의 사역 - 국내사역이나 선교현장에서 개척하는 사역자를 의미한다.
(3) 가르치는 사역 - 교사의 역할은 복음 전하는 자의 사역과 지역교회의 목사의 사역을 보완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역을 어느 지역이나 문화적인 지역을 정함으로 주님의 역사를 제한하고 있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도자가 필요하지만, 소명 받고 준비된 전도자는 한 지역과 문화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들이 희어져 추수하게 된 지역은 주의해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그 지역과 문화지역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9. 말씀사역의 소명에 대한 실제적인 적용
1)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마음의 준비
(1) 인간적인 수단을 통해서 - 모든 경우에 하나님은 인간적인 수단을 통해서 그의 소명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곧 모든 인간적인 제안, 연구나 초대가 소명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점이며, 그리고 모든 개인적인 소명은 주님의 임재 안에서 받은 소명임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묵상을 통해서 그의 소명을 나타내신다 -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역사와 함께 하나님의 뜻과 목적들을 보여준다. 그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의 뜻과 목적에 대해 잘 알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의식 속에 그리스도께서 활동하신 것 때문에 선교에 자원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3) 하나님은 선교 보고서와 선교 연구를 통해서 그의 소명을 확장시키신다 - 이 방법의 대표적인 예는 현대선교의 아버지인 윌리엄 캐리의 삶에서 발견된다. 그의 부지런한 정보의 축적은 영혼을 영적으로 성경적으로 민감하게 채우는 요소가 되었다. 그는 가장 어려운 상화에서도 하나님이 그의 선교 연구를 사용하셔서 선교의 사명을 이루게 하시는 것을 굳게 믿었다.
(4) 하나님은 고난의 경험을 통해 그의 소명을 부여하신다 -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들의 삶의 위기 순간에 하나님으로부터 분명한 소명을 체험하고 적극적으로 그것을 수행하였다. 위기의 체험은 감정적인 변화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소명을 평생토록 추구하게 된다. 일시적인 어려움으로 우리의 마음과 정서가 잠시 흔들릴지라도 거룩한 소명감으로 우리는 능히 극복한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우리 영혼 속에 소명을 각인 시키신다.
(5) 논리적이고 바른 사고를 통하여서 -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성경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합당하게 준비되기를 원하신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이처럼 하나님은 각 개인의 심리적인 구조를 아시고 주권적으로 지혜롭게 각 개인에게 다가가서 그의 소명을 적용시키신다.
3) 하나님의 소명에의 권유 - (1) 복음에 대한 우주적인 필요에 대한 확신 (2)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않는 진리에 대한 확신 (3) 복음을 전하는 수단에 대한 확신 (4) 나의 무능력, 무가치, 부적격함에 대한 확신 (5) 더 준비가 필요하다는 확신 (6) 필요를 채우는 사역에 헌신 (7) 내적만족과 확신과 평안가운데 성장이 이루어지는 체험
이런 가운데서도 우리가 지속적으로 확신하는 것은 그가 우리의 삶의 중심에 계시고 우리의 소명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실현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4) 하나님의 소명의 확증 - (1) 하나님의 계획과 일치하는가? (2) 환경이 인도하심을 따를 수 있는가 (3) 성령께서 계속적으로 뜻을 증거하시는가? (4) 중요하지 않은 곳에서, 혼자서도 사역을 할 수 있는가? (5) 어떤 대가라도 지불하겠는가? (6) 어떤 지역이나 어떤 확신에 대한 “감동”이 있는가?
10. 말씀사역에 소명에 대한 도전
1) 하나님의 소명은 희생적인 삶의 도전이다 - 예수께서는 최고의 희생의 삶을 사셨다. 그는 창세전에 가졌던 신적인 영광을 스스로 버리셨다. 그러므로 주인이 희생하듯이 종도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소명은 희생의 삶으로 부르시는 도전이다. 주님은 때로 건강이나 생명의 희생을 요구하시기도 한다.
2) 하나님의 소명은 모든 인간의 필요를 채우는 사역에의 도전이다 - 하나님께서는 세계의 필요에 대한 관심으로 선교사들을 보내어 영적인 필요를 채우도록 명령하신다. 영적 필요는 절대적인 필요이며 모든 필요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인간의 미래는 저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런 기본적인 필요에 대한 충분한 구제책이다.
3) 하나님의 소명은 가장 큰 이익을 주는 봉사의 도전이다 - 새로운 분야에서 선구자가 심한 어려움과 고통을 겪는 것처럼, 하나님의 소명은 불멸의 영혼들에게 유익함을 주는 봉사의 도전이다.
4) 하나님의 소명은 우리의 삶 속에 주님을 깊이 체험하는 도전이다 - 하나님의 선교사는 그의 소명과 사역에서 특별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그는 또한 주님을 체험하는 것에도 특별하다. 그의 삶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역에 의해서 다양한 체험과 “감격”(thrill)이 있다. 그는 특별한 방법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체험을 한다.
11. 선교사의 성경적인 자질
1) 선교사의 필수적인 자질
(1) 예수의 참 제자가 되고 제자도를 마음을 다해서 실처나고 있다는 확신이다. (2) “돕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확신이다. (3) 주께서 분명하고 절대적인 구원과 영생의 메시지를 위임하셨다는 확신이다. (4) 마음의 자세가 그리스도를 온전히 본받는 것이다. (5) 동료 선교사와의 바른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6) 날마다 겸손히 보혈로 깨끗함을 간구하고 성령으로 살아가기를 배워야 한다. (7) 교회에 대한 바른 지식과 깊은 헌신이다.
제 8 장 선교의 원동력
1. 선교의 원동력과 성령
1) 선교와 성령(The Holy Spirit in Mission) -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 아래에 있다. 그런데 성령은 보혜사이시다. 궁극적으로 거룩한 구원의 계획에 집행과 실제적 적용은 성령의 권세와 능력과 지혜에 있다. 사도들 스스로 자신들이 세계 선교에 창시자나 집행자와 주관자로 생각지 않았다. 그들은 성령의 전, 왕 같은 제사장들로 거룩한 보혜사의 대리인으로 알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집행하는 일에 기쁘게 참여하였다.
2) 오순절과 선교 - 사도행전을 통해서 우리는 성령께서 세계선교의 창시자, 동기부여자와 총감독이심을 알 수 있다. 모든 주요한 선교의 확장은 신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성령의 감동을 받아 이루어졌다. 성령은 최고의 전략가였다. 오순절 그날에 그는 예루살렘에 사도들에게 다양한 방언을 말하게 하여 하나님의 메시지가 우주적으로 이해되게 만들었다.
2. 선교의 역동성과 하나님의 복음
1) 하나님의 복음
(1) 거룩한 책무로서의 복음 - 바울 자신은 주님께 헌신된 자로 드렸다. 이 거룩한 책무의 내용은 “좋은 소식” 혹은 “복음”이다.
(2) 하나님의 복음 - 근본적인 메시지의 선포는 “복음” “하나님의 복음” “나의 복음” 등으로 나타난다. 중요한 특징은 어떤 사고의 체계나 비인격인 이상이 아니라 “한 인격”에 관한 것이다. 기독교 선포는 그 중심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있다.
(3) 그리스도의 복음 - 요한복음에 나타난 “나는~이다”라는 위대한 말씀은 세계 그 어는 종교에서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것은 신약의 기자들이 한 인격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여 모든 구원에 중심이심을 나타낸다. 그래서 모든 복음서 기자들은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떠나면 구원이 없음을 선포한다.
2) 복음이신 그리스도 - 기독교 선포의 핵심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으로 성경에서 계시되어 있다. 하나님으로서 그는 모든 신자들에 의해 예배를 받으시고 존경을 받으신다.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신 그만이 구원할 수 있다. 그래서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 속에 연합되어 있다. 이 신성과 인성의 신비와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신약성경에서 근본적인 메시지이며 하나님의 복음과 구원의 복음에 필수적인 내용이다.
3) 회개-믿음과 하나님의 복음 -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죄와 더러움과 그 악한 권세를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은혜로 단호하게 개입하셨다. 그래서 복음은 죄 사함을 주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포를 포함한다. 죄 사함은 회개와 믿음 혹은 믿음과 회개와 유기적으로 연관된다.
4) 하나님의 복음의 정의와 개요 - 복음은 그 자체가 한 인격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와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체험하려면 회개와 믿음의 자세로 그분께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이고 대속적인 죽음과 부활의 능력으로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 복음의 정의와 개요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기억하게 한다.
(1) 복음은 그 기원과 내용에 있어서 신적인 것이다. (2) 복음은 유일한 것이다. (3) 복음은 관계를 맺는다. 회개와 믿음의 관계로 실제화 된다.
5)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논쟁 - 복음에 대한 논쟁은 오늘날 우리의 상황을 보여준다. 기독교의 위치가 종종 종교적이고 신학적인 제국주의로 많은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복음은 유일하고 특별하고 완벽하고 완전하며 충분하고 결정적인 것이다. 인간은 영적이고 사회적이며 도덕적인 자유를 필요로 한다. 인간은 전인적인 회복을 필요로 한다. 추상적인 논리가 그것을 성취할 수 없다. 세상은 그리스도를 보기 원하며 우리가 세운 조직이나 문화를 보기 원하는 것은 아니다.
6) 하나님의 복음과 비기독교 종교들
(1) 성경은 비성경적인 존재가 인간의 역사 속에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2) 성경은 인간이 종교적 존재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피조물임을 가르친다.
(3) 성경은 조직된 기구로서 종교의 기원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4) 성경은 어떤 비성경적인 종교들 속에 영적인 가치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들의 가치는 단순히 자신들의 존재를 이어가고 보존하는데 있는 것으로 가르친다.
(5) 성경은 엄격하게 오직 참 하나님만을 예배할 것을 명령한다.
(6) 성경은 여호와 엘로힘 이스라엘의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 외에 모든 우상숭배나 이방종교에 대해서 배타적이고 불관용하며 냉담하고 정죄한다.
(7) 성경은 우상숭배를 영적인 간음과 종교적 혼합주의를 만드는 배교로 정죄한다.
(8) 성경은 인간의 종교적 상태와 이방종교들을 계시의 왜곡과 타락으로 본다.
(9) 성경은 세상종교가 하나님을 대항하는 악한 세력에 조종당하는 것으로 본다.
(10) 성경은 앞으로 세상종교 사상들과 우상숭배가 도말될 것이며, 여호와 엘로힘 하나님을 섬기는 완전한 예배에 대해서 예언한다.
(11) 성경은 그 자체의 탁월성과 완전성과 포괄성, 유일성, 독특성을 주장한다.
(12) 성경은 “비교종교학적”(comparative religions) 연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7) 하나님의 복음선포-그 긴박성
(1) 긴박함은 주님의 말씀에서 나온다 -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에서 “지금과 오늘”은 긴급성과 긴박성을 말한다. 우리는 해가 떠 있는 동안에 사역해야 한다.(We must Run While the Sun is Hot) - W.H.Fuller
(2) 긴급함은 사람들의 비참함에서 나온다 - 그리스도를 떠난 인생에는 영적인 생활과 가치가 전혀 존재치 않는다. 그를 떠나면 오직 붕괴, 타락, 결핍, 죽음, 영원한 사망이다. 세상의 종교는 인간의 불쌍한 상황을 벗어나게 해 줄 수 없다. 이런 인간의 영적인 곤경이 열방들과 모든 피조물에게 신속한 복음전파의 긴급성을 필요로 하게 한다.
8) 하나님의 복음과 인간의 잃어버림
(1) 인간 존재의 영원한 상태에 대하여 차이가 있을 것이다. 신자에게 천국은 유업으로 주어질 것이며, 불신자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공포의 지옥이 임할 것이다.
(2) 사후의 상태는 고정된 것이고 영원한 것이다. “끝이 없는”(endless) 것이다.
(3) 계시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이시고, 생명으로 가는 유일한 길과, 인간이 구원받는 유일한 이름이시다.
9) 하나님의 복음과 신보편주의(Neouniversallism) - 신보편주의는 모양은 다르지만 과거의 보편주의와 같이 해롭고 비성경적이고 비기독교적이다. 성경은 보편주의적 구원을 말하고 있지 않다. 보편적 구원은 자연인에게는 근사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계시 위에 사고하고 그것을 우리의 확실한 기초와 권위로 세워야 한다. 지금은 현대선교의 위기이다. 보편주의 구원론은 모든 선교적인 사역들을 감소시켜 왔다.
3. 선교의 원동력과 기도
1) 사도행전에 나타난 기도 - 오순절이 기도에 의하여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기도운동 가운데 일어났다. 기도는 복음 증거를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고난을 참는 힘을 그들에게 주었다. 기도는 기적을 낳았으며 행 13:1-4로 첫 번째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었다. 초대교회의 생활과 그들의 마음속에 기도의 실제는 중요하다.
2) 바울의 사역에 나타난 기도 - 사도는 기도로서 모든 교회를 인도하고 돌보았다. 기도에 대한 요구는 포괄적인 것이다. 당시 교회가 기도해야 할 제목은 신적인 구원을 위하여, 바울의 사역을 위하여, 신적인 인도하심을 위하여,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기 위하여, 복음 전할 문이 열리기 위하여, 주의 말씀이 자유롭게 전파되기 위하여 등이었다.
3) 기도와 현대 선교 - 기도는 선교의 생명줄로 인식된다. 현대선교는 기도의 부흥으로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기도는 역동적인 것이며,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힘쓰면 역사가 일어난다. 기도를 통해 교회는 이적과 능력으로 충만하게 세워진다. 기도는 신적인 능력과 공급을 가져오는 열쇠이다.
제 9 장 요약과 결론
1. 기독교의 특징
기독교는 한 인격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동행이다. 성령의 내주는 그리스도를 확신케 하고 점진적으로 구주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게 한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이다.
2. 비교할 수 없는 종교
그리스도의 완전성, 절대성, 충만하심, 충분성, 포괄성, 배타성 등은 비교종교 연구가들에게 기독교가 다른 종교 체계와는 다른 유일한 것으로 나타나게 한다.
3. 기독교의 특성과 선교
선교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특징이며, 우리가 성령의 조명의 은혜를 통해 깨달은 성경적 기독교 생활의 합당한 결과이다. 선교는 우리가 참여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선교는 교회의 본질이며 기독교의 성격과 목적을 보여준다.
4. 선교의 부재는 자기빈곤(Self-Impoverishment)을 낳는다
선교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교회는 주님과의 생명적인 관계를 자신에게서 끊어버리게 하는 것이고, 자신에게 하나님이 주신 그 목적을 잃어버리게 하고, 성도로 하여금 성령의 깊은 체험을 빼앗게 하며, 세계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받을 하나님의 축복을 거절하게 한다. 그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5. 선교-성경적 이상주의의 표현
교회의 본질적인 선교의 중요성은 그리스도의 삶과 사도들의 본보기와 초대교회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선교는 성경적인 이상주의(biblical idealism)가 온전하게 표현된 것이다. 사도들은 전적으로 헌신하였으며 어떤 검이라도 그들의 땅 끝까지 가는 길을 막지 못하였다. 모든 신약성경은 선교 교회의 필요로 인해 나타났다. 그러므로 선교를 교회의 이차적인 것으로 여기고서는 교회의 영적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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