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인물

[스크랩] 아브라함의믿음

하나님아들 2015. 7. 22. 14:40
아브라함의 믿음 (히11:8~10)

성경에 기록되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서 아브라함이 갖는 위치는 참으로 확고합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을 가리켜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씀합니다.(롬4:11절) 아브라함의 삶은 성도들에게 ‘믿음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보여 주는‘성경적 믿음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두 가지의 믿음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구원의 믿음입니다. 
창15:6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구원의 믿음이라고 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성경은 죄인인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sola fide) 말미암는다고 말씀합니다.(롬3:26절) 이것은 종교개혁의 위대한 표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인간이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믿음에는 공로적인 측면이 전혀 없으며, 구원은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된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구원을 은혜라고 말씀하는 것은 구원은 자격과 공로, 혹은 기여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롬3:24절) 
구원의 근원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원의 근거는 예수그리스도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구원의 수단은 행위와는 전혀 별개인 오직 믿음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구원 사역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온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믿는 것입니다.(행4:12절)

둘째, 생활의 믿음입니다. 
생활의 믿음은 믿음의 삶입니다.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믿음은 단지 시작에 불과합니다. 성도들이 믿음으로 구원 받은 이후에는 믿음으로 행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마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듣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참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릅니다. 믿음은 행함을 통해서 강화되고 단련됩니다. 믿음에 있어서 놀라운 사실은 행함을 통해서 믿음이 성숙해 진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장은 토론이나 성경적인 지식의 축척에 의해서가 아니라 행함(순종)에 의해서입니다. 믿음과 행함을 구별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장 격찬을 받을 일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하실 때 순종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끊임없이 믿음의 실천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을 믿는 모든 자들의 조상이라고 말씀합니다.(롬4:11절) 아브라함과 참된 성도 사이에는 동족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얻을 자입니다.(갈3:29절)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들입니다.(갈3:7절)  
그러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①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고 부르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창12:1-3절)

아브라함의 신앙의 출발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부르신(소명) 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시지 않고 부르시고 않고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았다면 한 사람도 하나님께 올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요15:16절)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의 처지는 어떠했습니까? 아브라함은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조상으로부터 신앙을 전수 받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 까지는 이교도의 가정에서 살았습니다. 
여호수아서 24:2절 하반절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아브라함의 부모들이 우상을 숭배하던 사람들이었다고 기록합니다. 아브라함은 우상을 숭배하는 가정에서 태어났고 성장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불신 가정에서 태어나 하나님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의심할 것 없이 주변 사람들과 동일한 방식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먼저 하나님에 대해 인식하고 하나님을 찾으려고 애썼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구원에 대한 진진한 갈급함도 없었습니다. 행위로 구원을 받을 만큼 위대한 업적을 쌓지도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살던 집에서 태어났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왔습니다. 아브라함은 선택받을 만한 어떤 위대한 일도 행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먼저 아브라함을 찾아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먼저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하나님을 부르고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아시고 선택하시고 때가 되매 부르신 것입니다. 

구원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찾아오심으로 시작됩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계획을 세우시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예수님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셔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깨달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유일한 구주가 되심을 알게 하십니다. 

②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과 말씀에 기초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행7:2절)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창12:1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믿음을 심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언제나 계시하신 말씀에 근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신앙은 출발합니다. 성경적 믿음의 참된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롬10:17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성주의자들이나 합리주의자들은 그들의 신앙의 토대를 언제나 이성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들은 이성에 설득이 되고 합리적으로 이해가 되면 믿겠다고 말합니다. 기독교는 반 이성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성을 초월합니다. 기독교는 합리를 초월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땅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전혀 없었지만 하나님 말씀만을 의지하고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의 근거는 이성이 아니라 말씀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이성을 초월한 것이었습니다. 

신비주의는 믿음의 근거를 체험, 경험, 그리고 듣고 본 것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체험은 귀한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도 결코 체험을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에는 참 신비한 체험들을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신비주의는 아닙니다. 체험은 사람들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기분이나 환경에 따라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체험이나 경험은 신앙의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신앙이 보고, 만지고, 체험한 것을 근거한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적 믿음은 말씀에서 그 토대를 구합니다. 
믿음의 시작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고, 그리고 말씀하셨고, 우리가 그 말씀을 받아들임으로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행동했을 때는 언제나 성공적인 삶을 살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한 채 행동했을 때는 곤경에 빠졌습니다. 
창12:10-20절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서 환경에 얽매어서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곤경에 빠졌습니다. 
창16:1-16절에서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사라의 합리적인 말을 듣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사라의 몸종,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음으로 오늘날 까지 민족적인 비극을 만들었습니다. 
신앙의 성공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신령한 귀가 열려져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깨달는 지혜로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순종의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③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고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뚜렷한 행동을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순종의 행위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결코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참 믿음은 언제나 행동을 낳습니다. 아브라함은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갈 바를 알지 못하는 미지의 땅을 향하여 떠났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참된 믿음은 순종을 낳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평생을 통해서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은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였습니다. 그곳은 그 당시로서는 세계 최대의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갈대아 우르가 속한 메소포타미아는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갈대아 우르는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수24:2절에 보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도 그곳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면서 살았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살던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택하여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게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75세의 나이에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터전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본토를 떠나는 것, 친척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기고 떠나는 것, 불확실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제 누리고 있는 확실한 현재를 포기하는 것, 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그 나이에 그의 고향을 떠나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절대적으로 순종을 했습니다. 더군다나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도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재거나, 따져보거나,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아브라함은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를 못했지만 이삿짐을 다 챙겨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나섰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었습니까? 8절은 "믿음으로"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지 아니했더라면 그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받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그의 후손도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창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 자신도 믿음의 조상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본토를 떠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남으로 열국의 아버지가 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요 과학자였던 벤자민플랭클린은 그의 노년에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첫째, 나의 삶이라고 해서 내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둘째, 내 삶을 온전히 주관하신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셋째,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만큼 내게는 행복이 있었고, 내게는 성공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행하기 위해 버려야 할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영적 의미는 자기중심, 죄, 세속적인 삶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합니다. 구습을 쫒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과 분명히 구별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생각, 행동, 삶의 방식, 삶의 동기, 삶의 목적에서 세상과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것들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과 벗된 것들에 대해서 경계해야 합니다. 과거의 방식대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믿음 생활을 하면서도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지 못하거나 떠나기는 했지만 뒤돌아서고 마는 사람도 있습니다. 롯의 아내는 심판받는 소돔성을 떠나기는 했지만 소돔성의 미련 때문에 뒤돌아서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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