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루증 여인의 믿음 (막5:25~34절)
열두해 혈루증 여인에 대한 사건은, 예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기 위해서 그 집에 가시는 도중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여이로와 함께 가실 때,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 중에는 12년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혈루병
혈루증은 여성들에게만 나타나는 병으로 생리가 아닌 하혈하는 병입니다. 혈루증은 피가 멈추지 않고 흐르는 병입니다. 혈루병은 당시에는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혈루병에 걸렸다 하면 절망에 이르는 병입니다.
레위기서 15:15-30절에 보면 혈루증은 부정한 병으로 여겼습니다. 이 병은 의식적으로 불결을 가져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환자와 접촉된 사람이나 물건까지도 다 부정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여인의 부정한 하혈은 죄의 상징으로 간주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혈루증, 소위 출혈병을 앓게 되면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를 당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 바깥으로 쫓겨나 성 바깥에서 살아야 헸습니다. 사람들과 격리되어 살아야만 했습니다. 더욱 불행한 것은 이 병을 앓는 여인은 대개 남편에게도 이혼을 당했습니다. 가족들과도 헤어져야 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예배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혈루병자는 공중 모임, 심지어 성전에 가는 것 까지도 금지되었던 것입니다.(레15장)
혈루병자들에게는 질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격리를 당해야 하는 아픔 또한 컸습니다. 여인은 병 자체의 고통과 격리로 인한 외로움, 그리고 율법에 의해 정죄를 받았다는 생각으로 인한 심적 고통 등으로 몹시 힘든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과 신앙공동체로부터의 부정한 여인, 혹은 불결한 여인, 천벌을 받은 여인이라는 꼬리표는 이 여인에게 심한 절망감과 수치심을 주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병은 절망과 소외일 것입니다.
열두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
26절에 보면, 혈루증 여인이 그 동안 받았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혈루병은 당시의 치료법에 입각해서 말하면, 고칠 수 없는 병이었습니다.(눅 8:43) 혈루병은 절망에 이르는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혈루병은 천형으로 여겨졌고, 심지어는 부정한 병으로 규정되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당시 의술로는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었음에도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했습니다. 이 여인은 자기 돈을 들여서 병원에 갔지만 환자로 가지 못하고 죄인으로 가서 진단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괴로움만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인은 치료하느라 있던 재산마저 다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애초부터 치료가 되지 않는 병인데도 12년 동안을 이곳저곳 다녔으니, 가진 돈은 다 허비하였고, 남은 것은 피폐해진 몸과 지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동안 심적, 육적 괴로움만 당하고 가진 모든 재산은 다 허비하고, 병만 더 심해 진 것입니다.
혈루증 여인의 믿음
①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믿었습니다.(27절)
열두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이 여인은 절망 중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에 대해서도 소문으로 나마 듣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들었던 소문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수치스런 병으로 고생하던 병자들을 고쳐주신 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진, 예수님께서 나환자에게 손을 대시고 깨끗함을 선포하신 사건은, 같은 부정한 병을 앓고 있는 그녀에게는 소망의 메시지였습니다.
이 여인에게 들려진 예수님에 대한 소문, 이것을 우리는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이 사람에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온 인류의 유일한 구주이심을 믿었습니다.
롬10:1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여러분들이 믿음을 갖기 원하신다면 예배 시간마다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매일 성경을 읽으심으로 매일 생명의 양식으로 삼아야 합니다. 믿음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인은 세상 것들에 두었던 모든 소망이 끊어져서 절망 상태에 있을 때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여인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온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신의 질병도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롬10:13-15절에는 구원의 공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을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전도자를 보내십니다. 전도자들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사람들은 복음을 듣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믿습니다.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고백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로마서에서 말씀하는 구원의 공식입니다.
인간 편에서 볼 때 구원은 전도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전도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했습니다.(막1:38절)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해 왔노라”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일-전도-를 위임하셨습니다.(막16:15절)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전도자의 직분을 주셨습니다.(고후5:18절)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으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시는 직책을 주셨으니”
그리고 성도들이 전도자의 직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시고 성령의 능력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행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능력을 주시는 가장 큰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습니다.
전도란, 죄인인 인간들에게, 그래서 지옥 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믿게 하여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예수님에 대해서 소문을 내는 것입니다.
②여인은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는 순간 “내가 그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28절)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능히 죄인을 구원하실 구주로 믿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자비와 긍휼을 믿었습니다.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불결한 육신의 상태나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께 담대히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병이 낫을 줄로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입니다.
③여인의 믿음은 장애물을 극복한 믿음입니다.
여인이 그의 믿음대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가까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데는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인이 예수님을 에워싸며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을 뚫고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둘째, 율법의 장애물입니다. 여인은 율법에 의해 부정한 여인으로 낙인 찍힌 병자요, 하늘의 천벌을 받은 죄인으로 여겨졌습니다. 더욱이 유출병자는 부정하여 사람과의 접촉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녀가 만지는 모든 것은 부정이 타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만져서는 안 됩니다. 여인에게 장애물은 율법의 장애물이었습니다.
셋째, 자신의 장애물입니다. 여인은 12년 동안이나 피를 흘림으로 몸이 극심한 빈혈로 망가졌고, 뼈만 남은 몸을 이끌고 무리를 헤치고 예수님께 가까이 간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이러한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사력을 다해서, 그리고 마지막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갔습니다. 부정한 병으로 사람들과 격리되어야 한다는 정결법을 어겼다는 죄책감과 혹시 자기를 아는 사람들을 만날지 모른다는 불안함과 육체의 약함이라는 한계를 넘어 예수님께로 가까이 갔습니다. 장벽이 심하게 느껴져도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해도 낫다는 생각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믿었습니다.(28절)
④여인의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여인은 소문 그대로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여인의 믿음은 생각뿐인 믿음이 아니었고, 입술만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여인의 믿음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 아니라,(약 2:17) 믿음을 좇아 행하는 산 믿음이었습니다.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거나 이론적인 그런 믿음이 아니라 실제적인 믿음이었습니다. 사실상, 여인이 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데는 가로막는 여러 장애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 자신의 수치감과 부정적인 생각 등도 극복하기 어려운 장벽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장벽도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그녀에게는 더 이상 장벽일 수가 없었습니다. 여인은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어 예수님로 나갔고,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것입니다. 믿음을 좇아 행동한 여인은 완전히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여인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순간, 12 년간의 한 많은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는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믿음의 결과
①여인의 믿음은 그를 구원했습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순간 혈루 근원이 곧 말라 버렸습니다.(29절) 스스로도 병이 나은 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능력이 자신에게서 나간 줄 아시고 무리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제자들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데 옷에 손을 댄 사람이 한 두 명입니까 하고 되물었습니다. 여인은 자신의 행동을 숨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인은 두려워하여 떨며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여인은 부정한 병에 걸린 사람은 사람들과 접촉하면 안 된다는 율법을 어긴 것 때문에 군중들을 무서워며 떨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며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말씀드렸습니다.(33절)
믿음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 구원을 받습니다. 치료를 경험합니다. 인생이 새로워집니다.
②예수님께서 여인을 딸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 지어다“
믿음은 이 여인과 예수님을 연결시켰고, 그리고 하나님과의 빼앗길 수 없는 흔들릴 수 없는 관계 속에 들어갔고, 그녀는 하나님의 딸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여인을 ‘딸“이라고 부르신 것은, 예수께서 여인을 사랑스런 마음으로 부르신 호칭입니다. 여인이 비록 부정에 병에 걸린 사람은 사람들과 접촉하면 안 된다는 법을 어기고 예수님께 나왔지만, 예수님은 다른 것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예수님은 여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③예수님께서 여인의 믿음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여인에게 그 작은 믿음을 대단히 크게 칭찬하시고 그녀를 축복하셨습니다.
④평안을 주었습니다.
여인은 “평안히 가라”는 말씀을 통해서, 육체의 병이 낫는 것 이상으로 큰 평안과 격려를 얻었습니다. 그동안 자신의 질병 때문에 겪어야만 했던 수치심과 서러움이 단숨에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평안히 가라”는 문자적인 뜻은 ‘평안을 향해 가라’입니다. 이제 그녀 앞에는 수치와 고통과 괴로움과 불안 대신에 평안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너는 평안의 땅을 향해 가라. 네 인생은 새로워졌느니라. 약속 의 땅으로 새로운 삶을 향해 새로운 미래를 향해 가라는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평안”은 히브리 인사말이며, 고전어에서는 적대적인 무리 사이의 휴전 혹은 적의의 해소라는 뜻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평안”은 전쟁과 다툼에 반대되는 것,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회복된 올바른 관계, 마음의 평안 또는 고요 등을 의미합니다.
평안이 내적인 의미의 것이든 외적인 의미의 것이든 간에 근본적으로 먼저 죄를 용서받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율법이 죄 때문에 양심을 비난하고 두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참된 평안을 얻으려면, 먼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통해 죄 사함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안이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은혜의 결과로서의 주어지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평안인 것입니다.
⑤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의 병은 ‘천벌’, ‘괴로움’, ‘재앙’ 등의 뜻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하신 선언은 여인이 완전히 구원받은 것에 대한 보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병을 고침 받으러 온 여인에게 육신은 물론 영혼까지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여인이 지나온 12년 세월처럼, 완전히 망가져 포기한 인생의 문제가 있을지라도,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붙잡아야 하겠다는 미미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그 믿음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체 바꾸어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여인처럼 예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겨자씨'만큼 만이라도 있다면 그 믿음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축복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고, 믿음이 평화를 줍니다.
열두해 혈루증 여인에 대한 사건은, 예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기 위해서 그 집에 가시는 도중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여이로와 함께 가실 때,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 중에는 12년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혈루병
혈루증은 여성들에게만 나타나는 병으로 생리가 아닌 하혈하는 병입니다. 혈루증은 피가 멈추지 않고 흐르는 병입니다. 혈루병은 당시에는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혈루병에 걸렸다 하면 절망에 이르는 병입니다.
레위기서 15:15-30절에 보면 혈루증은 부정한 병으로 여겼습니다. 이 병은 의식적으로 불결을 가져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환자와 접촉된 사람이나 물건까지도 다 부정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여인의 부정한 하혈은 죄의 상징으로 간주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혈루증, 소위 출혈병을 앓게 되면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를 당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 바깥으로 쫓겨나 성 바깥에서 살아야 헸습니다. 사람들과 격리되어 살아야만 했습니다. 더욱 불행한 것은 이 병을 앓는 여인은 대개 남편에게도 이혼을 당했습니다. 가족들과도 헤어져야 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예배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혈루병자는 공중 모임, 심지어 성전에 가는 것 까지도 금지되었던 것입니다.(레15장)
혈루병자들에게는 질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격리를 당해야 하는 아픔 또한 컸습니다. 여인은 병 자체의 고통과 격리로 인한 외로움, 그리고 율법에 의해 정죄를 받았다는 생각으로 인한 심적 고통 등으로 몹시 힘든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과 신앙공동체로부터의 부정한 여인, 혹은 불결한 여인, 천벌을 받은 여인이라는 꼬리표는 이 여인에게 심한 절망감과 수치심을 주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병은 절망과 소외일 것입니다.
열두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
26절에 보면, 혈루증 여인이 그 동안 받았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혈루병은 당시의 치료법에 입각해서 말하면, 고칠 수 없는 병이었습니다.(눅 8:43) 혈루병은 절망에 이르는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혈루병은 천형으로 여겨졌고, 심지어는 부정한 병으로 규정되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당시 의술로는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었음에도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했습니다. 이 여인은 자기 돈을 들여서 병원에 갔지만 환자로 가지 못하고 죄인으로 가서 진단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괴로움만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인은 치료하느라 있던 재산마저 다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애초부터 치료가 되지 않는 병인데도 12년 동안을 이곳저곳 다녔으니, 가진 돈은 다 허비하였고, 남은 것은 피폐해진 몸과 지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동안 심적, 육적 괴로움만 당하고 가진 모든 재산은 다 허비하고, 병만 더 심해 진 것입니다.
혈루증 여인의 믿음
①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믿었습니다.(27절)
열두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이 여인은 절망 중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에 대해서도 소문으로 나마 듣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들었던 소문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수치스런 병으로 고생하던 병자들을 고쳐주신 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진, 예수님께서 나환자에게 손을 대시고 깨끗함을 선포하신 사건은, 같은 부정한 병을 앓고 있는 그녀에게는 소망의 메시지였습니다.
이 여인에게 들려진 예수님에 대한 소문, 이것을 우리는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이 사람에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온 인류의 유일한 구주이심을 믿었습니다.
롬10:1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여러분들이 믿음을 갖기 원하신다면 예배 시간마다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매일 성경을 읽으심으로 매일 생명의 양식으로 삼아야 합니다. 믿음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인은 세상 것들에 두었던 모든 소망이 끊어져서 절망 상태에 있을 때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여인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온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신의 질병도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롬10:13-15절에는 구원의 공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을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전도자를 보내십니다. 전도자들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사람들은 복음을 듣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믿습니다.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고백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로마서에서 말씀하는 구원의 공식입니다.
인간 편에서 볼 때 구원은 전도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전도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했습니다.(막1:38절)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해 왔노라”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일-전도-를 위임하셨습니다.(막16:15절)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전도자의 직분을 주셨습니다.(고후5:18절)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으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시는 직책을 주셨으니”
그리고 성도들이 전도자의 직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시고 성령의 능력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행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능력을 주시는 가장 큰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습니다.
전도란, 죄인인 인간들에게, 그래서 지옥 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믿게 하여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예수님에 대해서 소문을 내는 것입니다.
②여인은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는 순간 “내가 그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28절)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능히 죄인을 구원하실 구주로 믿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자비와 긍휼을 믿었습니다.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불결한 육신의 상태나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께 담대히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병이 낫을 줄로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입니다.
③여인의 믿음은 장애물을 극복한 믿음입니다.
여인이 그의 믿음대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가까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데는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인이 예수님을 에워싸며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을 뚫고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둘째, 율법의 장애물입니다. 여인은 율법에 의해 부정한 여인으로 낙인 찍힌 병자요, 하늘의 천벌을 받은 죄인으로 여겨졌습니다. 더욱이 유출병자는 부정하여 사람과의 접촉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녀가 만지는 모든 것은 부정이 타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만져서는 안 됩니다. 여인에게 장애물은 율법의 장애물이었습니다.
셋째, 자신의 장애물입니다. 여인은 12년 동안이나 피를 흘림으로 몸이 극심한 빈혈로 망가졌고, 뼈만 남은 몸을 이끌고 무리를 헤치고 예수님께 가까이 간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이러한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사력을 다해서, 그리고 마지막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갔습니다. 부정한 병으로 사람들과 격리되어야 한다는 정결법을 어겼다는 죄책감과 혹시 자기를 아는 사람들을 만날지 모른다는 불안함과 육체의 약함이라는 한계를 넘어 예수님께로 가까이 갔습니다. 장벽이 심하게 느껴져도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해도 낫다는 생각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믿었습니다.(28절)
④여인의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여인은 소문 그대로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여인의 믿음은 생각뿐인 믿음이 아니었고, 입술만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여인의 믿음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 아니라,(약 2:17) 믿음을 좇아 행하는 산 믿음이었습니다.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거나 이론적인 그런 믿음이 아니라 실제적인 믿음이었습니다. 사실상, 여인이 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데는 가로막는 여러 장애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 자신의 수치감과 부정적인 생각 등도 극복하기 어려운 장벽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장벽도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그녀에게는 더 이상 장벽일 수가 없었습니다. 여인은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어 예수님로 나갔고,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것입니다. 믿음을 좇아 행동한 여인은 완전히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여인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순간, 12 년간의 한 많은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는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믿음의 결과
①여인의 믿음은 그를 구원했습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순간 혈루 근원이 곧 말라 버렸습니다.(29절) 스스로도 병이 나은 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능력이 자신에게서 나간 줄 아시고 무리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제자들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데 옷에 손을 댄 사람이 한 두 명입니까 하고 되물었습니다. 여인은 자신의 행동을 숨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인은 두려워하여 떨며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여인은 부정한 병에 걸린 사람은 사람들과 접촉하면 안 된다는 율법을 어긴 것 때문에 군중들을 무서워며 떨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며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말씀드렸습니다.(33절)
믿음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 구원을 받습니다. 치료를 경험합니다. 인생이 새로워집니다.
②예수님께서 여인을 딸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 지어다“
믿음은 이 여인과 예수님을 연결시켰고, 그리고 하나님과의 빼앗길 수 없는 흔들릴 수 없는 관계 속에 들어갔고, 그녀는 하나님의 딸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여인을 ‘딸“이라고 부르신 것은, 예수께서 여인을 사랑스런 마음으로 부르신 호칭입니다. 여인이 비록 부정에 병에 걸린 사람은 사람들과 접촉하면 안 된다는 법을 어기고 예수님께 나왔지만, 예수님은 다른 것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예수님은 여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③예수님께서 여인의 믿음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여인에게 그 작은 믿음을 대단히 크게 칭찬하시고 그녀를 축복하셨습니다.
④평안을 주었습니다.
여인은 “평안히 가라”는 말씀을 통해서, 육체의 병이 낫는 것 이상으로 큰 평안과 격려를 얻었습니다. 그동안 자신의 질병 때문에 겪어야만 했던 수치심과 서러움이 단숨에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평안히 가라”는 문자적인 뜻은 ‘평안을 향해 가라’입니다. 이제 그녀 앞에는 수치와 고통과 괴로움과 불안 대신에 평안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너는 평안의 땅을 향해 가라. 네 인생은 새로워졌느니라. 약속 의 땅으로 새로운 삶을 향해 새로운 미래를 향해 가라는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평안”은 히브리 인사말이며, 고전어에서는 적대적인 무리 사이의 휴전 혹은 적의의 해소라는 뜻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평안”은 전쟁과 다툼에 반대되는 것,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회복된 올바른 관계, 마음의 평안 또는 고요 등을 의미합니다.
평안이 내적인 의미의 것이든 외적인 의미의 것이든 간에 근본적으로 먼저 죄를 용서받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율법이 죄 때문에 양심을 비난하고 두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참된 평안을 얻으려면, 먼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통해 죄 사함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안이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은혜의 결과로서의 주어지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평안인 것입니다.
⑤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의 병은 ‘천벌’, ‘괴로움’, ‘재앙’ 등의 뜻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하신 선언은 여인이 완전히 구원받은 것에 대한 보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병을 고침 받으러 온 여인에게 육신은 물론 영혼까지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여인이 지나온 12년 세월처럼, 완전히 망가져 포기한 인생의 문제가 있을지라도,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붙잡아야 하겠다는 미미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그 믿음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체 바꾸어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여인처럼 예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겨자씨'만큼 만이라도 있다면 그 믿음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축복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고, 믿음이 평화를 줍니다.
출처 : 재생프라스틱 전문수출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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