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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숙자반 - 이재철 목사

하나님아들 2015. 1. 6. 00:18

 

 성숙자반 - 이재철 목사

  

속사람의 성숙을 이루어라!

이재철 목사가 선사하는 속사람의 성숙을 이루어가는 기쁨, 『성숙자반』.

10년이든, 20년이든, 30년이든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어도 신앙에 확신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다.

이 책은 2006년 3월 7일부터 5월 19일까지 총10회 걸쳐 열린

'성숙자반 특강'을 녹음하여 제작한 오디오북 <성숙자반>을 옮긴 것이다.

생생한 예화, 확실한 설명으로 초보적인 교리의 습득을 넘어

성숙한 신앙생활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준다.

저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신앙의 기본적인 주제로, 믿음, 회개, 그리고 십계명 등을 다루면서,

속사람의 성숙을 이루어가는 기쁨을 만끽하도록 인도하고 있다.

  

 

성숙자반 요약.zip

 

 

1. 믿음 

 

성경이 말하는 믿음

 

  - 주님이 보시기에 신령한 믿음이 있는가 하면, 어린아이처럼 유아기적 수준에 머문 미숙하고 유치한 믿음도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매일 매일 우리 믿음의 상태를 점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 믿음이 어떤 상태인지 점검해 보지 않는다면, 그래서 그릇되고 미숙한 믿음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마치 바르고 성숙한 믿음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게 된다면, 믿는 이로서는 그보다 더한 인생 낭비가 없습니다. 

  

믿음은 구체적이다

 

  -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앎이 자신의 삶으로 연결되는 전 과정을 포함하는 용어입니다. 믿음이 구체성을 결여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은혜받았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말입니까? 목사님 설교 듣고 한순간 마음이 찡해지거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비로소 내가 형편없는 인간임을 깨닫고 지금까지의 그릇된 삶을 버리기로 결심했다면, 이것이 은혜받은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 드러낸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앞으로 신앙 양심을 좇아 정직하게 벌고, 정직하게 번 것으로 만족하며 살겠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기도가 구체적인 삶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됩니다.

 

믿음의 대체어 1

 

  - 첫째. 믿음은 '순종'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골리려고 고난을 겪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그 상황 속에서 나를 무엇인가를 새롭게 빚으시기 위함임을 믿고, 그 상황을 수용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기대와 다른 상황이 주어졌을 때, 무조건 그 상황을 피하려고만 합니다. 이것은 따지고 보면, 바로 그 상황을 주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내 눈앞에 닥치는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께서 단지 피하라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뚫고 나가라고 주신 것입니다. 뚫고 나가는 가운데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 둘째, 믿음은 '용기'입니다. 지금 거짓말 한 번 하면 백 원 생기는 것을 뻔히 알지만 거짓말 하지 않고 오십 원에 만족하면서 사는 것, 그것이 용기입니다...  그러나 그 용기의 출처가 자기 자신이라면 그것은 만용에 그치고 맙니다. 만용은 자신과 타인을 동시에 해칩니다. 우리 용기의 출처는 하나님이십니다.

 

 - 셋째, 믿음은 '시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용기를 지닌 믿음의 소유자는 그 시선이 늘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을 쓰실 때 언제나 광야로 부르셨습니다. 광야의 특징은 하나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 넷째, 믿음은 다루어짐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볼 수록, 하나님에 대한 시선이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에 의해 다루어져야할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하나님을 다루는 기술을 얻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나의 재물이나 달란트로 하나님을 다루고 어르는 것은 미신입니다. 믿음은 내가 하나님을 다룰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에 의해 매일 다루어지는 것입니다.

 

 - 다섯째, 믿음은 '신실'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의해 내가 매일 다루어지다 보면 신실한 사람이 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 여섯째,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믿음을 추상적인 개념으로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현상입니다.

 

 -일곱째, 믿음이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믿음은 곧 '자기발견'입니다. [새신자반]에서도 언급했듯이 모든 인간은 '에노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으로서의 나를 발견합니다.

 

 - 여덟째, 믿음이 자기 발견임을 알게 되면 믿음은 곧 '자기 사랑', 자기 가꿈'이 됩니다. 이 때의 자기 사랑은 이기심이 아니라 자기 존중을 의미합니다. 나의 속사람을 내가 존중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타인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 아홉째, 믿음은 '자유'입니다. 이처럼 진리로 나의 속사람을 가꾸어 가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유혹과 욕망의 덧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습니다.

 

- 열째, 믿음은 '삶'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앎이 순종, 용기, 시선, 다루어짐, 신실함, 지기 발견, 자기 가꿈, 자유함을 지향하는 가운데 우리의 삶은 점점 그리스도를 닯게 됩니다.

 

믿음의 대체어 2

 

  - 첫째, 믿음은 지피지기입니다. 성숙한 믿음을 위해서는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알고 또 나를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현실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내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실생활과 무관할 때가 많습니다. 지피지기의 믿음을 가질 때 상처받지 않는 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로 인해 상처받았다면, 그것은 내가 아직도 성숙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 둘째, 믿음은 '거룩한 부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갈수록 우리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이 생기게 됩니다. 믿음이 깊어질 수록 예전에는 전혀 문제되지 않던 것에 대해 부담감이 느껴져야 합니다. 이웃에 대한 부담감이 생기게 됩니다. 자기 욕망에 의해서만 살던 자기 삶의 태도에 부담감이 생깁니다. 부담감이 생겼다는 것은 그만큼 믿음이 성숙해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직 믿음이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아직까지 믿음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셋째, 믿음은 '약속어음'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현찰이 아니라 약속어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현찰을 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현찰이 아니라 언제나 약속어음을 주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현찰은 단순 거래지만, 약속어음은 믿음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어음은 믿는 관계 속에서만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기 원하시는 것은 거래 관계가 아니라 신뢰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어음에는 부도가 없습니다. 그 유효기간이 영원합니다.

 

  - 넷째, 믿음이 약속어음임을 안다면 믿음은 '기다림'이라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의 기다림은 그 결재일이 도래할 때까지 약속의 내용을 누리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끔 하나님에 의해 새롭게 빚어지는 기간입니다.

 

  - 다서째, 믿음은 '자기 확장, 자기 성장'입니다. 약속어음을 받고 기다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의해 새롭게 빚어져 가면, 우리는 스스로 자기 확장, 자기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성장해 간다는 것, 즉 자기 확장을 이루어 간다는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버림으로 커집니다.

 

  - 여섯째, 믿음은 '선택'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자기 확장을 꾀하는 사람은, 삶의 현장에서 매 순간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이 사람을 위함인지 하나님을 위함인지,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 일곱째, 믿음은 '계산'입니다. 바르게 계산할 줄 아는 사람만 바르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서 크기 때문에 선택하는가 아니면 세상에서 크기 때문에 선택하는가? 우리는 바르게 계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바르게 계산할 줄 아는 사람만 바르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계산법에 의하면 남을 섬기는 사람이 으뜸입니다. 

 

  - 여덟째, 믿음은 '모험'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른 계산을 할 수 있는 사람만 하나님을 위해 모험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나를 던져 모험을 할 때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 아홉째, 믿음은 '초지일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께 기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받쳐 주실 거야'라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대었는데도 받쳐 주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래도 기대야 합니다. 내가 쓰러질 때까지 기대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이요, 초지일관입니다. 주님께서 그런 사람을 평안하고 평강하도록 지켜 주십니다. 우리 삶에 왜 평강이 없습니까? 우리 삶이 왜 늘 혼란에 빠져 있습니까? 나 자신이 정한 수준까지만 적당하게 하나님께 기대고, 더 이상은 기대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심지가 견고하여, 초지일관 하나님께 기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 마지막으로, 믿음은 결과적으로 '본'이 되는 것입니다. 오직 바른 맏음의 삶을 살아갈 때에만 자신을 아는 사람들 앞에 그들이 닮고 싶어하는 진면교사, 본으로 설 수 있습니다.

 

결론

 

첫째, 믿음 개념을 새롭게 재정립 할 수록 우리의 믿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둘째, 날로 새로워지는 믿음은 다가오는 미래는 물론이요, 지나간 과거까지 새롭게 합니다.

셋째, 날로 새로워지는 믿음은 이 땅에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영원한 이정표가 됩니다.

 

 

2. 복

 

복과 축복

 

  - 하나님께서 주체가 될 때는 복, 인간이 복을 구할 때는 축복이라고 구별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과 축복을 혼동하고 있지만 성경은 이 둘을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내려달라고 기도할 때 정확한 표현은 '축복해 주십시오'가 아니라 '복을 내려 주십시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구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복 그 자체가 내 삶의 목적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안에서만 내가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의 문자적 의미

 

  - 첫째, 복은 문자적으로 '창대함, 번영'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 둘째, 성경에 나타난 복의 문자적 의미는 '행복'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여 기업이 창대하게 되었어도 그로 인해 가족관계가 깨지고 자식들이 서로 싸운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아닙니다.

 

  - 셋째, 복은 '선함, 아름다다움'이란 뜻이 있습니다.내가 정말 복받은 자라면 점점 선하고 아름답게 바뀝니다. 진리로 나를 가꾸어가기 시작하면 내 생각과 마음이 정말 선하고 아름답게 바뀌어집니다. 이는 반드시 언행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입니다.

 

  - 넷째, 복은 '바른 길, 정도'라는 뜻이 있습니다. 내가 얻은 번영이라는 결과가 정도를 걷지 않았음에도 주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아닙니다. 거짓된 방법을 동원해서 불의로 얻은 것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입니다. 사업을 하려면 탈세를 해야 하고, 거짓과 타협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타협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벌 수 있습니다. 단 적게 벌 뿐입니다. 정도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보다 창대함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말 복 받은 자라면 내가 정도를 걷고 얻은 결과라면 결과에 만족합니다. 

 

  - 다섯째, 복의 문자적인 의미에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또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뜻이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하는 일이 잘 되서 하나님께 가까이 갈 틈이 없어지고 기도할 시간이나 예배드릴 시간도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복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임한 복

  

  - 아브라함이 받은 제일 첫번째 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복입니다. 아브라함이 누렸던 복은 주님 앞에 무릎꿇는 복 정도였습니다. 즉 주님계 나아가는 복, 행복해지는 복, 선하고 아름답게 주님을 믿는 복이었습니다.

 

복의 정의

 

  - 첫째,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자기에게 절망한 사람입니다. 경제적 빈부에 관계 없이 더 이상 자신을 의지하려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 사람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로 나의 계획이 실패하거나 무산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게 있는 것을 감사하는 것도 좋은 믿음이지만, 내게 없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더 성숙한 믿음입니다. 내게 없는 그것이야말로 나의 심령을 가난하게 해주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 둘째, 애통해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애통은 하나님의 위로를 확인하는 은총입니다. 믿지 않는 자의 애통은 자기 앞에서 자기가 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감정을 정리해 주지만, 그 순간이 끝나면 더 절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애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으면 이런 애통은 불가능합니다.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도 하나님 앞에서 애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셋째,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까닭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넷째, 의에 주린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때 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 다섯째,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침울해 보일 때 말을 걸어준다든가 말없이 그저 손을 꼭 잡아준다거나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나누어 주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행동을 의미합니다. 이 긍휼은 하나님 안에서 절대적인 부요함을 누리는 자만이 베풀 수 있습니다.

 

  - 여섯째,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결벽증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내 영혼의 카메라를 주님께 맞추므로 내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청결하심이 드러나게 합니다.

 

  - 일곱째,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누군가와 더불어 화평케 살고 화목을 이루려면 내 것 중에서 무엇이든 양보하거나 버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럴 수 있다면 그는 복된 자입니다.

 

  - 마지막으로, 의를 위하여 핍박 받은자가 복이 있습니다. 내가 신앙의 선한 양심으로 살려 할 때 당하는 모든 불이익을 감내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첫째, 예수님꼐서 여덟가지 복을 언급하셨는데, 이 복은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복이었습니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좇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자가 복됩니다.

셋째, 그러므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않을 수 없도록 주님이 내게 주신 가시가 복입니다. 

 

 

3. 회개

 

회개와 자복

 

  -  자복은 고백이든 동의든 약속이든 모두 다 입으로, 말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은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 태반입니다. 그래서 자복은 자복하는 말 자체로 끝나 버리는 경우가 참 흔합니다.

 

  - 이에 비해 회개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한다는 말은 철저하게 행동과 관련된 단어입니다. 따라서 자복은 회개의 시작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회개는 아닙니다. '하나님 제가 이런 잘못을 범했습니다. 다시는 하지 않겠습니다.'하는 것은 자복입니다. 그리고 이 자복이 행동으로 연결되어야 비로소 회개입니다. 

 

회개의 중요성

 

  - 회개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를 얻습니다.  그래서 화개가 중요합니다. 회개의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소위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 회개가 필요합니다.  

 

세례 요한의 회개 촉구

 

  - 요한은 자복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 삶과 행동이 수반되는 회개의 열매를 촉구했습니다.

 

예수님이 이끄신 회개

 

  - 첫째, 주님은 회개하라고 직접적으로 요구하신 경우가 없었습니다.

  - 둘째, 그러나 주님의 사랑을 인격적으로 접했을 때 모두 그 사랑 앞에서 자발적으로 회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복은 잘하면서도, 그 자복이 회개의 삶으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는 그 중간에 무엇인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주님의 사랑에 대한,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에 대한 분명한 자각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에 대한 분명한 자각이 우리를 회개로 이끌어 줍니다. 

 

말씀 속에서 살펴본 회개

 

  - 사람들이 교회를 찾는 동기는 다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탕자의 이야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회개의 삶은 어떤 동기로 교회 문턱을 넘었든지 관계없이, 나를 살려주시고 품어주시고 자녀삼아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개인적으로 체험하기 전까지는 불가능합니다. 그것을 체험하기 전까지 우리의 모든 회개는 자복으로 끝날 뿐입니다.

 

  -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면 그 사랑의 힘으로 당연히 회개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주님 앞에서 양심의 찔림도 받고, 기도하고, 입으로 자복함에도 불구하고 삶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아직도 이 복음의 진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 속에만 들어가면 바뀌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해도 삶이 바뀌는데 영원하신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가 되면 어찌 삶이 바뀌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결론

 

첫째, 회개는 우리의 개별적인 행위가 아니라 우리 중심의 방향과 관련된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둘째, 회개의 본질은 주님의 사랑에 깨어 사는 것입니다.

셋째, 사람을 회개로 이끄는 것은 오직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나의 삶입니다.

 

  - 회개에 대해서 생각만 하는 것은 철학입니다. 그 사람을 향해서 회개하라고 소리치는 것은 율법입니다. 바울처럼 다른 사람이 회개하도록 주님의 사랑을 내 삶으로 보여 주는 것이 복음입니다. 자녀들은 야단쳐도 바뀌지 않습니다. 야단으로 바른 사람이 될 것 같으면 세상에 어긋날 자녀가 어디 있습니까? 부모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르게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야 그 사랑 속에서, 그 사랑의 힘으로 자녀들도 또 주위 사람도 바뀝니다.

           

 

4. 말씀묵상

 
말씀을 묵상하는 이유

 

첫째,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바르게 알기 위함입니다. 성경말씀을 통해 인간은 하나님의 내적계시를 받으며 하나님의 속성이나 의도, 섭리 등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을 통해서만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이단과 사이비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이단은 한자로 다를 이와 끝 단을 씁니다. 즉, 이단은 저쪽 다른 끝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없는 것을 성경이라고 말하거나 성경에 있는 것을 성경이 아니라고 잘라버리면 이단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삶을 살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내가 내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바르게 걸어가기 위해서는 빛이요 등불인 말씀이 필요합니다.

 

말씀묵상을 위한 사전 이해

 

첫째, 우리는 성경관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같은 성경이라도 어떤 관점을 가지고 읽느냐에 따라 해석이 전혀 달라집니다.

 

① 근본적 성서관이 있습니다. 근본주의라고도 하며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는 사람에게 내용의 토시 하나까지 일일이 불러 주셔서 기록하게 하셨다는 입장, 전문용어로 축자영감설 또는 기계적 영감설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문자는 단 하나의 오류도 없다는 의미로 문자무오설이라고 하고, 문자 절대주의라고도 합니다. 문자자체를 곧 하나님으로 간주합니다. 근본주의적인 성서관은 좋은 면도 있겠지만 참으로 위험할 수 있습니다.

 

② 보수주의 성서관은 성서영감설입니다. 이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긴 했지만 표현방식과 표현에 동원된 소재는 말씀을 기록한 사람과 그 시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기록하는 기자들의 인격과 지성, 삶이 다르기 때문에 사복음서 같은 경우도 내용이 모두 동일하지 않습니다. 보수적 성서관은 글자에 얽메이지 않고 글자가 품고 있는 정신을 고착하고 그 정신을 구현하고자 합니다.  저자는 보수적 성서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축자영감설 - 글자를 하나님과 동일시

 성서영감설 - 글자를 단지 하나님을 알기 위한 도구로 사용

 

③ 진보적 성서관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고 그 내용이 구원과 신앙과 행위에 대해 정확무오하다고 보는 점에서는 성서영감설과 동일하나 성경을 기록하고 편집하는데 인간의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고 보는 점이 다릅니다.

 

④ 마지막으로 자유적 성서관이 있습니다. 성경을 아예 처음부터 인간이 만든 허구로 보는 것입니다. 이 경우 성경은 좋은 내용에 불과할 뿐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한 사람의 성현으로 그칩니다.

 

둘째, 성경의 확정에 대한 사전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① 성경의 확정

구약성경은 주후 90년 얌니아라는 곳에서 유대랍비들과 학자들에 의해 현재의 구약성경 39권이 정경으로 확정되었습니다. 기독교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신약성경은 397년 카르타고에서 지금의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확정하였습니다.

 

② 성경의 장과 절

구약은 양피지에 신약은 파피루스에 기록이 되었으며 장과 절이 없이 이사야서 같은 경우 한 묶음의 양피지 두루마리에 기록되었으며 옛날 율법사나 서기관들이 내용들을 찾기 위해서는 구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장은 스테판 랑톤이 1,228년 구분하였고 절은 구약의 경우 1,448년 나탄, 신약은 1,551년 로버트 스테파누스에 의해 구분되었습니다. 하지만 장과 절이 적절히 나뉘어 지지 않은 곳이 많아 비판자들을 장, 절을 나눌때 마차를 타고 가다가 마차가 한 번 덜컹거릴 때마다 잘랐다는 혹평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애당초 성경에 장과 절이 없었음을 아는 것은 성경을 읽을 때 장절에 얽매일 필요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유익합니다. 장과 절이 구분된 세계 최초의 성경은 1,560년 제네바 성경입니다.

 

셋째, 우리는 한글성경의 역사에 대한 사전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1,900년 신약성경 공인역본 완성

1,911년 구약성경이 완간

1,938년 신,구약 내용을 합치고 문장을 개정하여 만든 개정번역성경

1,952년 한글맞춤법 통일안에 따라 내용과 맞춤법을 고친 개역한글판

1,961년 조금 더 손질하여 개역한글 결정판이 나옴

1,977년 한국 개신교와 구교가 함께 번역한 ‘공동번역성경’이 출간

 

성경의 완전한 번역본은 지상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여러 번역본을 같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동번역성경, 표준새번역, 개정개정판, 읽을 수 있다면 외국어 성경을 통해 한글성경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은혜를 받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모세오경의 핵심

 

성경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전체적인 메세지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첫 부분인 모세오경의 핵심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① 창세기

 

첫째, 하나님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태초에 말씀으로 가정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뜻은 하나님게서 세상을 창조하신 기록입니다. 천지창조의 내용은 창세기 1장에서 끝나며 그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가정을 세우신 내용이입니다. 세 번째로 아브라함 가정을 세우고 그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베푸셨습니다. 진정한 말씀의 사람은 말씀 위에 먼저 가정을 바로 세우는 사람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일차적인 사역지와 선교지는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② 출애굽기

 

첫째, 출애굽의 시작이 유월절입니다.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에서 구원해 내십니다.

둘째, 출애굽의 목적이 말씀을 주시기 위함이십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성경기자들이 성경을 기록했으나 딱 한 군데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말씀이 있으니 바로 십계명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인 말씀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유월절 어린 양이 되어 우리를 살려주신 것 또한 우리로 하여금 말씀 안에서 우리의 인생을 건져 올릴 수 있게 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출애굽의 진정한 의미는 자기 중심의 길을 벗어나 말씀의 길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③ 레위기

 

첫째,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거룩’이란 ‘구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의 세태 속에서 거룩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 세상 풍조를 따르지 않고 거기서 우리를 스스로 구별하는 것입니다.

둘째, 거룩한 구별은 말씀에 의한 제사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레위기는 제사 곧 예배의 책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내가 죽는 것이 예배이고, 제사입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의의는 그 예배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가 죽는 것입니다. 그 말씀으로 한 주 동안 나를 구별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권면합니다. 진정한 예배는 우리의 삶 자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구별하라는 것이란 의미입니다.

 

④ 민수기

 

첫째,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계수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애굽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둘째 날에 이십세 이상 성인남자를 계수하라 하셨는데 606,550명이었습니다.

둘째, 40년에 걸린 광야생활이 끝났을 때 하나님께서 또다시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하게 하셨습니다.

 

1세대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죽고 불모의 광야에서 남은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계수해보니 601,730명이었습니다. 40년 전과 거의 동일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약속의 땅을 지향하는 한, 아무리 볼모의 땅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증거입니다. 그 자체가 얼마나 큰 은혜이자 놀라운 감동이었던지 성경책 제목이 민수기 民數 백성민 숫자수 Numbers 로 광야에서 40년간의 시차에도 변함없는 백성의 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론은‘너희들은 내 명령대로 나아가라. 책임은 내가 진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⑤ 신명기

 

첫째,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입성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모압광야에서 또다시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40년전 호렙산에서 주신 십계명 그 1세대들은 죽고 없습니다. 신명기 5장 1-3절에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고 오늘 여기 살아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입니다. 십계명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위한 언약의 말씀이란 의미입니다. 신명기(申되풀이할 신, 命명령령) 하나님께서 당신의 명령인 ‘십계명’을 ‘되풀이하여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영어로는 Deuteronomy (Deuto는 두 번째, nomy는 법이란 뜻).

둘째, 말씀을 좇는 삶의 중요성을 되풀이하여 강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은 복과 저주의 장으로 뿌린대로 거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인생사용설명서’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우리의 인생을 건져올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인생은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오경은 단순한 역사적 기술이나, 우리와 무관한 구시대의 율법내용이 아니라 모세오경의 핵심은 ‘말씀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아야 자기 인생을 건져 올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 자신을 위해 말씀대로 살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구약성경의 첫 부분인 모세오경의 핵심만 바르게 이해해도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입니다.

 

말씀묵상의 방법

 

첫번째 단계는 눈에 보이는 것을 보는 대로, 보이는 대로 인식하는 단계입니다. 빨간 것이 보이면 빨갛구나, 기분 좋은 것이 보이면 좋구나.

 

두번째 단계는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인식하는 단계입니다. 첫 번째 단계보다 진일보한 단계입니다. 첫 번째 단계의 삶보다 사려깊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 이면의 본질을 보려하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단계는 보이는 것 속에서 보이지 않는 이면까지 보되, 그 본 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의 삶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왜냐하면 이 단계의 사람은 나날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 삶이 성숙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성경 구절을 볼 때, 내 눈에 보이는 구절만 보는 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보이는 구절 이면에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보이지 않는 말씀을 캐낼 수 있다면 두 번째 단계이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한다면 가장 바람직한 단계인 세 번째 단계입니다.

 

결론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은 하나님 말씀의 절대성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둘째 말씀묵상은 현재 자기가 있는 삶의 자리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셋째, 말씀묵상에서 성경 필사는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5. 주님의기도

 

동기와 목적

 

주님의기도(주기도문)에서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중요한 점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신 동기와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 주님의기도는  모범기도문에 대한 제자들의 요구로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기도가 기도의 모범이 될 것임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 예수님께서 이 모범기도문을 주신 까닭은 그리스도인들의 기도 수준을 높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신앙 수준은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과 기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도 내용의 수준과 신앙의 수준은 언제나 정비례합니다.

 

주님의기도의 내용

 

1) 기도의 대상: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2) 하나님의 영광: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3) 우리를 위한 기도: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4) 송영: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결론

 

첫째, 주님의기도는 기도의 방향과 틀, 그리고 수준을 교정해 주는 기도의 거울입니다.

둘째, 주님의기도는 우리 신앙의 성숙을 위한 결단의 기도입니다.

셋째, 이 기도의 원천은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6. 십계명

 

십계명에 대한 사전이해

 

  - 첫째,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십계명만은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쓰셨다면, 그것은 십계명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고도 절대적인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 둘째,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십계명은 용도 폐기되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현재형으로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 됩니다.

  - 셋째, 십계명은 세월이 지나도 우리가 반드시 품고 살아야 할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십계명을 대할 때 유의해야 할 점>

 

  - 첫째, 십계명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그 속에 담아주신 정신과 본질이 중요합니다.

  - 둘째, 십계명은 상호적인 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하나님의 역할을 먼저 해 주셨으므로 너희도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내용

 

1) 첫번재 돌판 - 하나님 사랑

 

  - 제1계명은 "너는 나 외의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입니다. 제1계명은 첫째, 하나님이 이 세상에 많은 신들 가운데 한 분임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만 유일하신 신이을 믿고, 알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또한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이미 나를 구원해 주셨고, 앞으로도 책임져 주실 것이기에 그 분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 제2계명은 "우상을 섬기지 말라"입니다. 제2계명은,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므로 영이신 하나님을 섬기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도 하나님의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상은 인간의 손으로 빚어지기 전에 항상 인간의 마음속에서 먼저 빚어집니다. 임의로 하나님을 규정하는 마음의 우상조차 빚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우상의 종류>

     첫째,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은 나를 가장 사랑하신다'는 생각을 우상으로 만들어 놓고 살아갑니다.

     둘째. '내가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신다'는 우상을 붙잡고 살아갑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나만을 통해 역사하신다'라는 우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넷째 '내가 주님을 위하여 일하는 이상 나의 일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우상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섯째, '내가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이상 반드시 내가 일의 결말을 보아야 한다'는 우상숭배자도 있습니다.

 

  - 제 3계명인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그 이름으로 헛된 맹세 혹은 헛된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이 계명에서 '말라'라는 단어를 '하라'로 바꾸어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하라'는 의미임을 알게 됩니다.

 

  - 제4계명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의 첫째 의미는 안식일의 뜻을 바르게 알고 구현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예배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죽는 것입니다.

 

2) 두번째 돌판 - 사람 사랑

 

  -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이는 좋은 자식이 되라는 의미입니다.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고 부모에게 좋은 자식이 되지 못하면서 땅 끝까지 가서 주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이는 또한 좋은 부모가 되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 제6계명은 "살인하지 말지니라"입니다. 이 계명의 정신은 마음으로도 살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 자체가 살인입니다. 

 

  - 제7계명은 "간음하지 말지니라"입니다. 이 역시 마음으로도 음욕을 품지 말라는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 제8계명은 "도적질하지 말라"입니다. "도적질하지 말라"는 이 계명의 참된 의미는 신앙적으로 바른 물질관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 제9계명인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의 참된 의미는, 네가 하는 말이 곧 너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 말이 곧 네 존재라는 뜻입니다. "너는 네가 한 말로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을 것이고, 네가 한 말로 하나님께 죄인으로 정죄함을 받을 것이다"

 

  - 마지막 계명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입니다. 이는 너의 욕망을 다스리라는 말입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욕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는 또한 자족하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입니다.

 

결론

 

첫째, 십계명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과 세상에 대해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둘째, X의 삶의 토대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사랑입니다.

 

 

7. 사도신경

 

사도신경의 중요성

 

'신경'이란 '굳게 믿고 지키려는 생각 혹은 신념'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의 중요성을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 첫째, 사도신경은 우리 믿음의 핵심 내용이라는 점입니다. 내가 믿는 바가 무엇인지 핵심을 정리하지 않으면 실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처럼 될 수 있습니다.

  - 둘째, 사도신경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고백이라는 점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순종의 의무가 따릅니다. 반면에 사도신경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고백이기 때문에 고백에 대한 인간의 책임이 따르게 됩니다. 책임이란 자신의 고백에 대한 실천의 책임입니다.

 

사도신경의 내용

 

1) 성부

첫번째 단락은 성부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내가 믿사오며"입니다.

 

2) 성자

두번째 단락은 성자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입니다.

 

3) 성령

세번째 단락은 성령님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성령을 믿사오며"입니다.

 

4) 결어

사도신경의 결어는 아멘입니다. 이는 동의합니다. 믿습니다 등의 의미입니다.

 

  -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는 것은 내가 그분의 자녀임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나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고백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알 때, 그 사람의 삶의 방향은 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습니다"라고 고백할 때마다 하나님의 자녀된 나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재확립한다면, 우리는 결코 옛 삶을 답습할 수 없습니다.

 

 -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자신이 원하고 꿈꾸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허비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참된 믿음은, 그분이 주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 몸의 부활은 본래 상태로 회복됨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죄로 더럽혀진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회복시켜 주십니다.

 

결론

 

첫째, 사도신경을 통한 신앙고백은 날마다 반복되지만 그 의미는 날이 갈 수록 새로워지고 깊어집니다.

둘째,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기적을 구하려 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본질을 믿어야 합니다.

셋째,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믿음의 바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에 'Credo' 즉 여러분의 심장을 드리십시오. 

 

 

8. 성령의 은사

 

바른 의미와 유의점

 

  -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 선물을 거져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은사의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선물을 또 누군가에게 거저 나누어 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선물을 주신 목적이 거기에 있습니다.

 

  - 성령의 은사는 첫째, 선물이므로 아무나 받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 은사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셋째, 은사를 통해 나타나는 모든 역사의 주체는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넷째,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유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마지막으로 은사는 선물이므로 선물을 주시는 분이 결정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 은사는 크게 내적 은사와 외적 은사로 구별됩니다. 내적 은사는 우리에게 내적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은사가 임하는 순간에는 주위 사람이 그 사실을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본인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적 은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외부로 배어 나옵니다. 내적 은사는 받으면 받을수록 좋습니다. 우리의 삶을 인격적으로 변화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외적 은사는 은사를 받는 순간 외적으로, 가시적으로 드러납니다. 방언을 받았다면 순식간에 방언이 튀어 나옵니다.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면 기도하는 중에 병자가 그 자리에서 낫습니다. 당장 외적으로 드러나 보이기에 외적 은사는 대단히 화려해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외적 은사를 사모하고 여기에 집착합니다.

 

  - 이와 관련하여 유의할 점은 첫째, 내적은사는 모두의 유익을 위해 사모하고 간구하는 자에게 주어지지만 외적은사는 하나님의 필요와 뜻에 따라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둘째, 성령의 은사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외적은사에서 드러넌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러므로 외적은사는 반드시 내적은사로 승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두의 유익을 위한 봉사와 헌신의 도구로 삼는다는 의미입니다.

 

고린도전서가 언급하고 있는 은사

 

1) 내적 은사

 

  - 첫째 은사인 "지혜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 인생을 건져 올리 수 있는 말씀적용의 능력입니다.

  - 둘째 은사인 "지식의 말씀"은 말씀을 해석하는 은사입니다.

  - 셋째 은사인 "믿음"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믿음도 성령님의 선물입니다.

 

 2) 외적 은사

 

  - 첫째, 병 고치는 은사입니다.

  - 둘째, 능력행함입니다. 죽어도 저 사람만은 사랑하지 못하겠다고 단정했던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 그것이 능력행함입니다.

  - 셋째, 예언입니다.

  - 넷째, 영들 분별입니다.

    <경계해야 할 영>

      ㄱ. 회개를 말하지 않는 것

      ㄴ. 심판과 회개만 강조하는 것

      ㄷ. 사랑과 용서만 강조하는 것

      ㄹ.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말하지 않고 복과 권리만 강조하는 것

  - 다섯째, 방언입니다.

  - 마지막으로 방언통역입니다.

 

결론

 

첫째, 모든 은사는 내적 은사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둘째, 모든 은사는 X의 수준을 구현하기 위한 성령님의 선물입니다.

셋째, 이 세상에 속박당하지 않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은사는 영생입니다.

 

 

9. 사랑

 

더욱 큰 은사 - 사랑

 

  - 첫째, 사랑만이 외적 은사를 내적 은사로 승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들째, 사랑만이 성령님의 열매를 결실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인격의 변화 없이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열매는 인격의 변화 없이는 결실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격의 변화 역시 사랑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 셋째, 율법이 사랑을 통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 넷째, 사랑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 다섯째, 하나님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 사랑이 더욱 큰 은사인 마지막 이유는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보다 더 큰 은사는 없습니다. 

 

사랑의 종류와 문자적 의미

 

첫째, 에로스는 남녀간의 사랑입니다.

둘째, 필리아는 친구간의 사랑입니다.

셋째, 스토르게는 가족, 혈육간의 사랑입니다.

이 세가지 사랑의 특징은 조건적이라는 것입니다. 가족간의 사랑도 결국 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그래서 부부가 함께 살다가 헤어지기도 하고, 형제가 많은 집에서는 더 사랑하는 형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마지막은 아가페로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성경이 언급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사랑이 바로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아가페란 말에는 "기뻐하다", "잘 되기를 바란다",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 있습니다.

 

<바울의 사랑 표현>

 

1) 소극적 정의

첫째, 사랑은 투가하는 자가 되지 않습니다.

둘째,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셋째,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넷째,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다섯째,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습니다.

여섯째, 사랑은 성내지 않습니다.

일곱째,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2) 적극적 정의

첫째,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둘째, 사랑은 온유합니다.

셋째, 사랑은 진리와 함꼐 기뻐합니다.

넷째, 사랑은 모든 것을 참습니다.

다섯째,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여섯째,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랍니다.

일곱째,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 내가 누군가를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랑했는데도 그가 나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의 문제일 뿐입니다. 나는 전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가 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도,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내가 그를 사랑함으로 나와 주님의 관계는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 만큼 더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사랑 그 자체에는 실패가 있을 수 없습니다.

 

결론

 

첫째, 사랑은 서로 하는 것입니다.

둘째, 사랑은 반드시 공동체의 유익으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셋째,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실패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의 동인이 하나님이심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10. 그리스도인의 사회생활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 됨은 예배당 안이 아니라 예배당 밖 사회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 첫째,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세상에 보여 주는 모델입니다.

  - 둘째,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들여다보는 진열장입니다. 그러나 교회 밖에서 자신의 일터를 어떻게 하나님의 일터로 일굴지 고민하는 그리스도인은 흔치 않습니다. 크리스천 사업가는 많지만, 크리스천 기업은 드뭅니다.

  - 셋째,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손과 발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전도의 문이 막혔다면 입으로만 전도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 넷째,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어둠을 물리치는 빛입니다.

  - 다섯째,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이정표입니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무엇을 향한 이정표입니까? 당연히 하나님나라, 영생을 위한 이정표입니다.

  - 여섯째, 그리스도인은 좋은 이웃입니다.

  - 일곱째, 그리스도인은 좋은 친구입니다.

  -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은 궁극적으로 쉴 만한 그늘이 되어주는 사람입니다.

 

 

출처 : 건강한 기독교 신앙생활을 위한 커뮤니티
글쓴이 : 좋은생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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