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생각! 말!! 행동!! 영성!!

[스크랩] 말 한 마디.

하나님아들 2014. 12. 17. 14:49

말 한 마디外.

 

 

 

** 말 한 마디.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삶을 파괴합니다.
쓰디쓴 말 한마디가 증오의 씨를 뿌리고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의 불을 끕니다.

은혜스러운 말 한마디가 길을 평탄케하고
즐거운 말 한마디가 하루를 빛나게 합니다.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긴장을 풀어주고
사랑의 말 마디가 병을 낫게하고 축복을 줍니다.

** 외모는 평가 기준이 못된다.

사람들은 누구나가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는 옷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한 의류 분석가는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연한 갈색의 잠바를 걸치고 지하철역에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깜박 지갑을 놓고 왔노라고 하면서 차비를 구걸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 은 정중하게 차비를 건네 주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주 우중충한 색깔의 바바리를 입고 똑같은 방법으로 차비를 구걸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신변에 위협이라도 느끼는 듯이 행동을 했으며, 무척 냉담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모만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 은 어떻습니까? 외모만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크나큰 모험이요 , 죄입니다. 조심하십시오.
"주님, 저희는 그 동안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어리석음을 많이 범해 왔습니다. 저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

오늘 하루 동안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편견은 마음에 드는 것만을 보고, 있는 그대로는 보지 못한다.

** 열등감 이렇게 극복하라

당신은 어떤 자아상을 가지고 계십니까? K라는 소녀는 불건전한 자아상을 가짐으로써 여러 해 동안 음울한 나날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 소녀가 불건전한 자아상을 가지게 된 데는 아버지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 아버지는 늘 소녀를 혹평했습니다. 그 결과 소녀는 자기 자신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형편없는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한 친구가 소녀에게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소녀는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스스로에 대해 잘못 생각하 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즉 자신은 모든 것 위에 계시 고, 모든 것보다 뛰어나신 바로 그 하나님에게 둘도 없는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주님, 때때로 열등감이 저희를 엄습해 올 때, 저희가 하나님의 귀한 자녀인 것을 잊지 않게 하시옵소서. "

당신으로 하여금 열등감을 갖게 하는 요소들을 놓고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자신의 가능성과 위대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과, 인간에게 가능성을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은 바로 죄다.

** 믿음으로 얻는 구원

어떤 회사에서 물만 부으면 되는 케익용 가루를 시판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측에서는 그 제품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대 이하로 그 제품의 인기도는 너무나 저조했습니다. 이에 고심을 하기 시작 한 회사측은 수많은 여론조사 끝에 드디어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냈습니다. 그 원인은 케익을 만드는 방법이 너무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사 측에서는 부랴부랴 제품의 내용물을 바꾸어 물과 계란을 넣으면 되는 케 용 가루를 만들어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그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구원 문제와 연결시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건 너무 쉬우므로 그것에 선행을 곁들여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우리가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밝혀져 있습니다.
"주님, 저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저희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주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

당신은 행위와 믿음 중 어느 쪽을 더 강조하고 계십니까?
우리의 공로와 행위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는다.

** 돈만 있으면

상담학을 전공한 어느 목사가 교인들에게 설문 조사를 했다. 설문의 내용은 “만일 집에 갑자기 불이 나서 피신을 해야 할 경우에 가지고 나올 귀중한 것 다섯 가지를 든다면?”이었는데 이 물음에 가장 많은 공통적인 답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①집문서 ②패물 ③친구 연락처를 적은 수첩 ④옷가지 ⑤현금 등이었다. 목사는 다시 물었다. “교인으로서 어찌 성경책은 놓아 두고, 딴 물건만 챙긴단 말입니까?”
이때 교인들은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대답했다.
“성경이야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지 않습니까?”
돈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 속에 사로잡혀 있는 현대인의 가치 기준을 여기에서도 볼 수 있다.

** 그게 얼마인데

글씨 쓰는 일에 최고의 경지에까지 이르러 글씨의 성인이라는 말까지 듣던 왕희지는 거위를 무척 좋아했다. 마침 회계 땅의 한 노파가 거위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울음소리가 매우 좋았다. 왕희지는 잘 우는 그 거위를 사려고 평소부터 벼르다가 마침내 친구와 함께 말을 타고 노파를 찾아갔다. 그런데 노파는 왕희지(당시 왕희지는 그 지방에서 높은 벼슬을 하고 있었다)가 온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그 거위를 잡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왕희지는 며칠을 두고 아깝다는 탄식을 연발했다.
얼마 후 그는 또 한 제자의 집에 찾아갔다. 왕희지를 맞아 그 집에서는 갖은 음식을 차려서 매우 융숭한 대접을 했다. 이에 감격한 왕희지는 글씨를 써주는 것으로 보답을 하고자 했다. 마침 비자나무로 짠 새 책상이 눈에 띄었다. 그 책상의 바닥이 판판하고 반들반들하므로 왕희지는 거기에다 글씨를 썼다. 흘림 글씨와 반듯하고 또박또박한 글씨를 반반씩 섞어서 쓴 것이었다. 제자가 돌아가는 왕희지를 멀리까지 배웅하고 집에 와서 보니 그의 아버지가 왕희지가 글씨를 써놓은 책상바닥을 깨끗이 대패로 깎아 놓았다. 제자는 두고두고 이 일을 아까워했다.(목사, 송길원)

** 얘 다섯 달란트짜리야

교회학교에서 많이 시행하고 있는 달란트 시상제도로 빚어진 이야기이다. 한 명을 인도해 오면 다섯 달란트를 주고, 계속 4주를 출석시켜 등반시키면 추가로 다섯달란트를 지급한다. 한 5학년 어린이가 친구 한 명을 인도해 와서는 “얘 다섯 달란트짜리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어린 학생이니까 달란트 제도의 근본 취지를 생각지 않고, 상타는 것만이 자랑스러워서 한 말이겠지만, 혹 교회 안에 만연되어 있는 물량주의의 탓은 아닐지 !(장로, 김기찬)


** 몸무게의 값

아가 칸이라는 이즈마일리 회교파의 통치자가 있는데, 그는 모하메드의 직계 자손으로서 이즈마일리 회교파의 극진한 대우를 받고 있다. 그는 그의 통치 기념일에는 추종자들에게서 그의 몸무게에 해당하는 가격의 보석을 선물로 받는다.
25주년 때는 은으로 30주년 때에는 금으로, 최근에는 그의 몸무게 243.5파운드에 따라 250만 달러 어치의 다이아몬드를 선물로 받았다고 했다.

** 뇌의 가격

토마스 에디슨의 뇌에 사상 최고의 가격이 매겨졌다. 그가 죽었을 때 「뉴욕 타임즈」의 한 분석가는 에디슨의 뇌로부터 나온 발명품과 그밖의 것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이익의 총계는 적어도 250억 달러나 된다고 했다.

** 인생의 가격

사람을 세상의 물건과 같이 가격을 매길 수가 있을까? 물론 사람의 가치는 액수로 정할 수 없다. 얼마전 신문에서는 화장터에서 화장한 사람의 뼛가루를 5만원에 판 사건을 소개해 주어 세상을 놀라게 했었다. 또 370원을 빼앗기 위해 고귀한 생명을 빼앗은 사건도 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몸이 70%씩이나 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가격을 따져본다면 1달러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그 가격은 오히려 역행하여 땅속에 묻을 때 돈을 받고 몸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돈을 주고 땅에 묻어야 한다.
모든 인간은 이 땅에 태어날 때부터 돈을 투자해야만 유지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그 몸뚱아리에 담고 있는 영수증의 액수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가치없는 삶을 살며 죄악을 범하기에 실제 그 인생의 손익계산서는 가치가 없어지고 만다. 오히려 투자한 만큼의 적자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는 이런 인생을 귀하게 여기시며, 우리는 이것을 믿는다. 인간의 육체는 가격으로 따질 때 들에 있는 풀 한 포기만도 못한 것에 불과하지만 주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주님이 보시는 새로운 인생의 가격을 말씀하신다. “너희의 목숨이 천하보다 귀하다” 라고… !(목사, 이신구)

** 이중으로 치루었기에

오랜 옛날 한 소년이 길을 가다가 보트를 건조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보트를 물에 띄우고 물놀이하는 광경을 그려보며 값을 물으니 자기 형편으로는 엄두도 못내는 고가였다.
소년은 자기 손으로 보트를 만들 결심을 하였다. 3개월 동안 신문배달을 해서 마련한 돈으로 재료를 사다가 직접 건조에 들어갔다. 톱질도 하고 대패질도 하고 못도 박고 해서 수개월 만에 보트를 완성했다.
바닷가로 운반해서 물 위에 띄워놓고 성취의 기쁨을 만끽하는 찰나에 파도에 밀려 보트는 떠내려 갔다. 아무리 잡으려 해도 따라 잡지를 못했다. 보트를 잃은 채집에 돌아온 소년은 실망 중에 며칠을 보내다가 우연히 고물상에서 보트를 발견했다.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돌려달라고 사정했지만, 자기도 값을 치루고 산 것이기 때문에 사라는 것이었다. 이 소년은 3개월을 또 일해서 그 보트를 다시 샀다. 소년은 보트에 볼을 비비며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소년은 값을 이중으로 지불했기에 더욱 애착을 느끼고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이중으로 값을 치루셨기에 더욱 소중하게 여기시고, 더욱 사랑하시는 것이다. 태초에 창조사역에 동참하였고,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사셨다.

** 1억 7백엔

열매를 맺는 가을이 되면 뿌린 씨나 토양에 관심을 갖게 된다. 씨를 뿌리는 이야기에서 곧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몇 해 전에 야마니시현이 신미술관의 특매품이라 하여, 미국에서 경매에 붙인 것을 1억 7백엔으로 구입한 밀레의 「씨뿌리는 사람」이다. 이와나미 서점의 마크가 되어 있는 이 불후의 명화는 2월 혁명 후의 작품으로 혁명의 냄새를 풍기는 정치적인 의도가 엿보인다는 물의를 빚은 것으로도 알려져있다.
“밀레와 같은 시대의 사람은 완전히 그것을 정치적인 발언으로 받아들였다. 19세기 전반에 잇따라 일어난 빈농, 하층 노동자의 반란의 추억을 이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야마나시현립 미술관 소장 초고」 중에서)
미국의 보스턴 미술관에도 거의 같은 작품이 있는데, 그것은 “왕자의 몸짓, 싹, 종자, 미래의 수확, 다음 여름의 풍요, 빵, 생명을 공간에 던지는 신비로운 농부”(유고)라고 하며, 전자도 “격렬한 몸짓과 자랑스러운 누더기를 걸친 사나이에게는 어딘가 우람한 품격을 느낀다”(고티에)고 평하고 있다.(신부, 고히라다쿠요)

** 침묵의 가치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멀리하고 며칠을 침묵 속에 지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말이 없는 생활을 높이 평가한다.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우리는 소란 속에 던져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침묵이 중시되고 요구된다. 다변의 반대인 침묵의 가치는 옛날부터 지적되고 있다.
“침묵은 인간의 최고의 지혜이다”(핀다로스)
“침묵은 만병의 묘약이다”(탈무드)
“침묵은 웅변을 능가한다”(카알라일)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것은 침묵 속에서이다”(프시카리)
저명한 M. 피카드의 「침묵의 세계」는 아사히 신문의 「하늘의 소리, 사람의 소리」에서도 취급하여 “침묵의 상실만큼 인간의 본질을 바꿔 놓은 것은 없었다”라는 구절을 인용했다. 이 책의 표지에는 저자의 “만일 말에 침묵의 배경이 없다면, 말은 깊이를 잃게 될 것이다”라거나, “사랑 속에는 말보다도 많은 침묵이 있다”라는 아포리즘(aphorism ;간결한 말 속에 깊은 체험적인 진리를 교묘히 표현한 단문)이 쓰여 있다.

** 죽은 사람이 더 비싸지요

어떤 효성스러운 사람의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였다가 돌아가시게 되었다. 그는 그의 어머니의 시신을 장사하기 위해 영안실에 삼일을 안치했다가 장지로 옮기게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청구서를 보니 예전에 입원하였다가 퇴원할 때보다 훨씬 비싼 청구서가 올라왔다. 놀라 어리둥절해 있는 가족들에게 의사가 하는 말이 참 괴짜였다.
“병원에 들어올 때는 걸어서 오든 누워서 오든 상관이 없지만 살아서 퇴원하지 않으면 더 비싸지요.”
가족들은 어머니가 일생 동안 베풀어 주신 희생의 대가에 비하면 싼 값이라고 생각하며 장지로 향했다. 어쨌든 사람의 생은 참으로 허무한 것이다.(목사. 박부규)

** 구속의 대가

흔히들 ‘보상’과 ‘구속’의 용어 사이에 혼란스러움을 가지고 있는데, ‘구속’에 대하여는 “죄 또는 실수를 범한 자가 돈 또는 물품을 내고 죄책을 벗어나는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상 용어로 ‘보상’이라는 글자를 사용할 때는 돈이 대가이지만, 성경에서의 구속이라는 단어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죄의 대가로 지불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구속은 기독교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므로, 구속의 신앙은 물론 초대 교회부터 있었지만, 구속의 신학은 1000년이 지나서야 수립되었다고 한다. 즉 구속의 이론이 없이 오늘까지 이르는 기독교 역사의 절반이 지나간 셈이 되는데, 그것은 주로 그리스도나 삼위일체의 문제에 몰두했기 때문이다.(신부, 고히라다쿠요)

** 족발은 안 살래요

손님이 고른 돼지고기를 저울 위에 놓아 무게를 달던 주인이 자신의 엄지 손가락으로 손님 물래 저울을 눌러 고기값을 더 받으려고 하였다. 이를 눈치챈 손님이 재빨리 주인의 엄지 손가락을 저울에서 떼어내며 말했다.
“아저씨, 저는 족발은 안 살래요. 너무 비싸거든요”(강도사, 구자성)

# 가깝다/ 공감, 공동체, 단결, 닮음, 동역자, 사랑, 삼위일체, 상부상조, 친교, 함께.

** 관심을 기울일 것

어느 날 산책을 시작하다가 나무 뿌리에 걸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그 나무 뿌리를 보면서 나는 어떻게 지금까지 그것을 한 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아주 컸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내가 여지껏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거리의 구획들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지나쳐 버렸다. 그 나무 뿌리는 현재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라는, 또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주변의 경치에 관심을 두고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마음을 열고 있어야 함을 상기시켜 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산책하는 것은 마치 이 세상을 현상액 용기 속에다 집어 넣어 그 신성함을 서서히 드러내는 것과 같았다. 나는 하나님의 가까이 계심을 깨닫게 해주는 것들, 예컨대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작은 개울물, 미끄럼틀을 타는 아이의 웃음소리, 인생 위에 맴도는 성령처럼 호숫가를 덮는 하얀 안개를 보기 시작했다.(Sue Monk Kidd)

** 등대를 찾았지만 등대는 없고

거친 파도를 겨우 겨우 헤치고 나와 거의 실신의 지경에까지 이른 선원을 이끌고 박선장은 등대를 찾았다. 뱃사람에게는 아무리 커다란 어려움이 있어도 등대만 바라보게 되면 절로 힘이 솟아나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목숨을 내맡긴 자그마한 배와 더불어 6명의 뱃사람들은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한가닥의 희망인 등대의 불빛을 원했지만 등대는 그들에게서 멀리 있는 듯했다. 검푸른 죽음의 파도가 등대까지도 삼켜버려 이 세상에 없는 것이기라도 한듯 뱃머리에서 부서지는 파도가 그들의 머리 속에서 등대의 기억까지도 빼앗아가려고만 했다.
그러던중 쿵하는 소리와 함께 배에 무엇인가 거대한 물체가 부딪치는 것이 아닌가? 거센 파도인가 아니면 우리처럼 길을 잃은 배인가? 선원들은 저마다 공포에 질린 두려움으로 그 괴물같은 물체를 훑어 올려다 보았다. 높은 곳에 어디선가 낯익은 듯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아악! 등대다” 박선장은 지금까지 그렇게 찾아 헤맸던 등대가 바로 자신들의 머리 위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주 가까운 곳에 말이다. 배는 부서졌지만 이젠 두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등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성도의 인생에도 좌초한 모습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는 나에게 가장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목사, 임택진)

** 하나님과 가까이

당신이 일단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또 하나님과의 사이에 목표가 완전히 일치되면 구태여 올바른 일이나 적당한 책을 찾을 필요는 이미 없어진다. 구태여 그런 것을 요구하면 인간은 과거 속에 빠지거나 시기를 그르치기 쉽다. 하나님과 가까이 사귀면 일거리와 읽을거리의 양쪽이 언제나 이상하리 만큼 적당한 시기에 주어질 것이다. 대체로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아무 소용도 없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에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고 그 기회를 자진하여 재빨리 파악하는 것이 성공을 거두는 길이다.(법률가, 의사-칼 힐티)

** 주의 날이 가까이 왔음의 징조

우리는 그 날의 징조를 통하여 주의 날이 가까이 왔음을 예견할 수 있다. 또한 종말이 가까울수록 우리가 주님의 곁에 있어야 함도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이 모든 일’(마 24:33)이라고 징조들을 예고하셨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도덕이 문란해지고 나태한 신앙, 위선된 신앙이 늘어갈 것(딤후 3:1-5)이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과학이 발전하며(벧후 3:3-4), 젊은 세대들의 반항적이며 방자한 태도가 극성을 부릴 것(딤후 3:1-3)이다. 빈부차가 심해지며(약 5:1-7), 이단과 미혹하는 자들이 교회로 침투할 것이다(유 1:10-18). 전쟁이 발발하고(마 24:3-8),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될 것(마 24:14)이다.
이 모든 징조들은 오늘날 이루어져 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대를 바라보며 믿음이 깨어 근신하는 매일의 생활을 해야 한다(마 24:44). 주께서 가까이 오고 계신다.(목사, 이진우)

** 나보다 나에게 덜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

누구나 주먹을 쥐면 자신의 힘을 과시하게 된다. 힘이 센 사람의 주먹일수록 손아귀의 힘은 대단하게 나타난다. 그 손에 붙잡히기라도 한다면 헤어나오기가 어려울 것이다.
어릴 때 부모님의 손을 붙잡고 시장이나 공원에 따라다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어린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부모님의 곁을 떠나려고 발버둥쳐 보지만, 부모님의 강한 손은 어린 우리를 절대로 내버려 두시지 않았던 것이다. 부모님들은 어린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붙잡고 인도하면서 데리고 다니셨다. 어린 우리의 가까이에 부모님께서 계셨기에 오늘날까지 우리가 무사하게 성장할 수있었던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주께서 부모님들보다 나에게 더 가까이, 아니 내가 내 자신에게 가까이 있는 것보다 더 가까이 그리고 은밀하게 계신다는 사실이다. 주님은 내 곁에서 나와 가장 가깝게 계신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범위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그분은 내가 그분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기를 원하신다.(목사, 이신구)

** 가까운 종말

이 세상은 아담의 범죄 후 사탄의 손아귀에 들어가 악이 넘치게 되었다. 노아 시대의 대 홍수로도 근본적으로 이 땅이 새로워질 수 없었다. 이제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죄와 슬픔과 눈물과 질병과 애통과 현재의 모든 악이 없는 세계를 만드실 때가 오리라는 것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계 21:1-5).
이는 새 질서의 시작이다. 이 새로운 시작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재림으로부터 시작된다(행 1:11). 우리는 그의 재림과 현시대의 끝이 언제인지 그 정확한 시간을 예측할 수 없다. 그는 어느 순간이라도 오실 수 있으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리라”(막 13장)고 당부하고 있다. 단지 그 날과 그 시가 가까이 왔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종말이 가까운 것이다.(목사, 이진우)

** 가깝고도 먼 길

이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길이 제일 먼 길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여러분은 어떤 표를 던질 것인가? 가깝고도 먼 길이란 우리 주위에 늘 있는 현상들이다. 아무리 가까운 곳이라 할지라도 가는 방법에 따라 멀 수도 가까울 수도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 주위에 가깝고도 먼 길을 살펴보자.
인생의 끝은 멀리 있는 듯하지만 어느덧 죽음은 인간을 저 세상의 문턱에 가깝게 만들고, 문제의 실마리는 멀리 있는 것 같지만 바로 당신의 가까운 곳에 있다. 사랑스러운 사람은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는 듯하지만 사랑이 가실 때는 가까이 있어도 멀리 있는 듯하다.
우리의 생애에는 가깝고도 먼 길 보다는 멀면서도 가까운 길이 더 많은 도움을 안겨준다. 성도의 생은 하나님과 제일 가까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멀리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사모, 이혜영)

** 심판의 때

성경에 보면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되게 하기까지”(행 2:34-35)라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께서 많은 선지자들의 입술을 통하여 미리 예언하신 대로 사시다가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시고 역시 예언의 말씀 그대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의 우편에서 마귀가 발등상 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이 마귀를 발등상 되게 하는 것은 구속함을 입은 지상의 성도들이 해야 할 소임이다. 이 소임을 이룰 때 주께서는 자동적으로 오시게 되어 있다. 이 때가 종말이다.
성경의 예언에 의한 하나님의 경륜을 미루어 볼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지상에 오셔서 심판을 거쳐 이 세상의 종말이 임하게 되어 있다.
성경은 심판의 날이 가까움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려는가?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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