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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거룩한 삶

하나님아들 2014. 11. 2. 23:13

거룩한 삶 /살전4:1-8

우리가 인도를 구할 때의 최우선의 원칙은,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주님을 더욱 더 닮기 위하여 거룩해져야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을 자기의 아내(남편) 위할 줄을 알고” (살전4:3~4)·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벧전 1:15-16).

거룩의 의미

'거룩'은 죄와 악을 떠나는 것입니다. "거룩"이라는 용어가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 용어를 일반적으로 셈어족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용어가 셈족 기원을 가지고 있다면 "분리"나 "잘라냄"을 표현하는 어근으로부터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신적인 목적을 위하여 사람이나 물건을 분리하는데 적용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하나님께 바쳐질만한 어떤 물건이나 어떤 인격의 상태가 되는데 적용되었습니다. 그래서 거룩은 어떤 목적을 위해 분리되는 것과 거룩하신 분에게 바쳐지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의미가 윤리적으로 사용될 때는 세상과 구별되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는 말씀의 뜻은 세상과 구별하여 도덕적으로 탁월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성품을 표시하는 낱말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윤리적으로 좀 더 고상하고 점잖은 척하는 것이 거룩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녀라는 신분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생활에서 다르고, 가정이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고 하셨습니다. 사도는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롬6:19 하)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거듭난 사람들, 믿음으로 인하여 의롭다 칭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성결한 생활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론은 세 가지 단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의인, 칭의(Justification)라고 하며, 두 번째 단계는 성화, 성결(Sanctification)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는 영화(Glorification)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이미 성취되었으며, 성화날마다 이루어 나가야 하는 구원이고, 영화는 하나님 앞으로 갈 때에 이루어질 은총입니다.

부르신 목적

바울은 그 이유를 본문 7-8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gar)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우리로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덕적으로 의롭고 올바른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하여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부르심을 받은 언약의 백성들의 특별한 삶을 권면할 때도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그의 삶에 있어서 거룩함이 없다면 그는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져버리는 행동이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이 거하시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르심을 받고 성령이 내주하는 하나님의 자녀는 거룩함과 순결함이 있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거룩, 즉 하나님을 닮아 가는데 삶의 목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분명히 세상 사람들과 구분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과 구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한 민족만의 역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그의 뜻을 나타내신 역사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중에 가장 귀중한 사건은 출애굽 사건입니다. 출애굽 사건의 의미는 해석에 따라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만 구속사건으로 보면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하여 출애굽 시키셨습니다. 홍해를 건너게 해서 이집트와 이스라엘 백성을 구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위기 11:45)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것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은 모두 애굽과 같은 세상으로부터 이끌어 내신바 되었습니다. 그 까닭은 우리들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궁극적인 뜻은 거룩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그 목표가 다양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예수 믿고 신앙생활 잘해서 큰 부자가 되는데 목표를 둡니다. 결국 목표는 부자입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 예수 믿는 사람은 교회 안에 들어와서 결국 세속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예수 그리스도를 수단으로 삼습니다. 결국 예수를 우상화해버리는 것입니다. 목표가 분명하면 성공자가 되는 것입니다. 목표는 오직 거룩해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적 순결

바울은 거룩한 생활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적용하면서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라"(살전 4:3-5)고 하였습니다. "음란함"모든 종류의 비합법적인 성관계를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경이 명하는 방법이 아닌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남편은 자기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가지거나, 아내는 자기 남편이 아니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지는 것, 결혼 전에 이성간의 관계를 가지는 것, 결혼이라는 테두리 외에 가지는 혼외정사 그리고 동성애 등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참된 신자는 이러한 것들을 버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음란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게 하며, 우리의 몸이 멸망하는 지름길입니다. 고전3:16에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음란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행을 피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밖에 있거니와 음행 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전6:18)"라고 하신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원인도 이 음란이었습니다. 노아 시대의 사회적인 죄악도 이 음란이었습니다. 화산으로 잿더미가 된 폼페이도 음란의 도시였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의 생활의 중심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이것이 저들의 관심이요, 즐거움이요, 삶의 낙이었습니다.(마24:37-38) 이것이 말세의 징조이며 그들은 멸망할 때까지 깨닫지를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우리가 거룩함에 이르는데 장애가 되는 모든 적을 대적해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에 사탄은 오늘날까지 성도를 유혹하고 실족하게 하려고 이미 매스컴을 선택하고, 메스미디어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항상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거룩함에 장애물 노릇 하는 모든 것을 멀리하고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란을 버리라(4)"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4)라고 하였습니다.

단순히 음란을 피하는 것만 목적은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아내를 대하고 남편을 대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에 이 부부가 건전한 부부입니다. 건강한 부부가 신자들의 가정생활과 신앙생활에 성결을 유지하는데 큰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올바른 가정 윤리를 배우고 결혼 윤리를 배워서 우리의 신앙의 정절이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잠언 5:15-19절에는"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로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으로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고 했습니다.

고전7:2이하에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여자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 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하라"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위기가 있는 곳은 가정입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해지면 질수록 정비례해서 안 좋아지는 곳이 바로 가정입니다. 선진국들의 심각한 문제들은 가정 문제입니다. 가정 문제는 문제 청소년을 양산하는 소굴처럼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가정의 부부가 화목하고 행복할 때 자라는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게 됩니다. 그러나 깨어진 가정, 부부가 불화하는 가정에서는 문제아들이 자라게 됩니다.

바울은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방인들을 예로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라"(살전 4:5)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보니 이방인들의 특성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색욕"을 좇는 것입니다. 색욕이라는 것은 "에페두미아"라는 말인데 "불타오르는 정욕"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욕정을 피하고 남자와 여자가 순결을 지켜 자기 아내와 남편에게만 만족해하라는 권면입니다. 이런 가정을 가리켜 건강한 가정이라고 합니다. 건강한 가정이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살전4:6)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경계를 넘어 형제를 나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NIV 성경은 "형제를 나쁘게 하거나 이용해서도 안 된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방인과 같이 자신의 색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해하거나 이용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헬라 사회에서도 이 일들은 있었습니다. 당시 이방에는 음란으로 말미암아 부부의 도덕이 문란하여 가정이 문란하고 파괴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당시의 이런 풍조는 헬라의 철학적인 이원론적인 사상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육체의 행위가 인간의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그런 사상 때문입니다. "육체는 육체고 영은 영이다."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오늘날에도 많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쾌락의 수단으로 성을 상품화하는 경향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가지고 색욕을 이용하여 돈벌이가 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종종 대하곤 합니다. 하지만 재림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 종말을 사는 성도는 "거룩함을 생활화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생활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7,8) 우리는 하나님을 저버리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은 이 정도로 우리에게 이 땅에서의 음란한 삶에 대한 위험수위를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거룩의 길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들을 거룩하게 합니다.

더러워진 몸과 옷은 물에 씻으므로 정결케 되는데, 우리가 범한 마음속의 더러운 생각, 입술로 범한 숱한 실수와 범죄, 행동으로 범한 추한 죄악은 무엇으로 씻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를 믿는 믿음밖에 없습니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이 정하신 속죄의 방법은 그 사람이 범한 죄의 값으로 짐승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레위기 17:11에“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하셨습니다. 짐승을 잡되 흠 없는 짐승을 잡았습니다(민수기 28장).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면서 자기가 범한 죄를 다 전가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짐승을 죽이고 피를 제단에 붓고 기름과 내장과 가죽은 불에 태웠습니다. 이것이 속죄제였습니다. 나로 인해 죄 없는 짐승이 대신 죽는 것을 보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바르게 살고자 다짐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들의 죄를 담당하실 것의 모형입니다. 흠 없는 짐승이 속죄의 재물이 되듯 흠 없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흠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흠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제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29에 기록하기를“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9:13~14에는“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하셨습니다. 요한일서 1:7에는“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이 피의 공로를 믿고 회개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어떤 죄를 범한 사람이든지 죄 사함을 받아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이사야 1:18)하셨습니다.

둘째, 기도가 심령을 거룩하게 합니다.

디모데전서 4:5에“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하셨습니다. 기도 자체가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1:11~13 말씀에“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십니다.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있을 때 진정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주장하는 심령상태에서는 내가 잘한 것, 내게 옳은 것만 보입니다. 내가 나를 주장하는 심령상태에서는 상대방의 잘못, 상대방의 약점, 상대방의 허물만 보입니다. 그래서 그를 비판하며, 멸시하기도하고, 원망하며 불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 마음을 주장하실 때에는 그와 반대입니다. 진정한 나의 모습이 보입니다. 나의 부족한 것이 보입니다. 나의 실수가 보입니다. 나의 허물과 부족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때에 비로소 참된 회개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심령을 거룩하게 하는 신비로운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지만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책망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영적 거룩에서 포기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죄와의 단절을 가져 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거룩이 됩니다.

기도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나를 위한 기도이거나, 자식을 위한 기도이거나 누구를 위한 기도이던지 기도는 심령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이 거룩하게 합니다.

디모데전서 4:5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하셨습니다. 에베소서 5:26에는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하셨으며, 요한복음 17:17에는“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시편 119;9에는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의 기록입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진 책입니다. 이 책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디모데후서 3:15~17의 말씀에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하셨습니다. 히브리서 4:12에는“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죄악 된 심령을 고치는 수술 칼과 같다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방탕한 생활로 세월을 보내던 어거스틴은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서 13:14) 하신 성경말씀을 통하여 깊이 깨닫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훗날 그는 성경학자가 되어 기독교 진리를 지키며 존경받는 성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권면하시기를“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명기 6:6~9)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매일 매일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교회에서 시행하는 성경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출처 : 파리엠마오교회
글쓴이 : 한신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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