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신학개론 요약
1.서론
교의학(조직신학)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우주에 대한 관계에 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논하는 학문이다.
개혁파 신학에 있어 교의학의 임무
1)건설적 임무 : 교의들을 연구하여 그 진리들을 해설하고 조직적인 체계로 종합한다.
2)증명과 변호의 임무 : 교의체계의 진실성을 성경적으로 증명하고 진리를 방어하고 변호한다.
3)비평적 임무 : 교의학의 발전을 위해 교의해설에 엄격한 비평을 가하여 그 오류를 수정하고 결함을 보충한다.
4)교회적 임무 : 계시진리에 근거한 교회의 신앙내용을 해명하고 가르쳐서 교회에 봉사해야 한다.
5)전도의 임무 : 교회로 하여금 복음전도에서 자기 검토를 행하여 오류에 빠지지 않고 바르게 복음을 전하게 한다.
교의학에 있어 인식의 원리
1)존재의 원리는 하나님이시다 :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모든 지식은 하나님으로 부터
기원한다.
2)외적인식의 원리는 하나님의 계시이다 :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특별계시인 성경을 수단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3)내적인식의 원리는 믿음(신앙)이다 : 일반 학문에서는 이성이 중요한 내적원리가 되지만 교의학에서는 신앙이 중요하다.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
1)하나님의 절대주권 2)성경의 권위 3)구원의 전적 은혜
4)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관 5)적극적 문화관과 사회봉사
계시의 정의
계시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거나 혹은 진리를 전달하시는 행위이다.
계시의 분류
하나님의 계시는 계시의 양식(방법)에 근거하여 자연계시와 초자연계시로, 계시의 성격과 대상에 따라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로 구분할 수 있다.
자연계시는 인간의 구조와 자연현상을 통해 전달된 계시이며, 초자연계시는 하나님께서 자연적 과정 속에서 간섭하시는 계시이다.
일반계시는 창조에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의 일반적인 관계에 뿌리 박고 있는 계시로써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계시이며, 특별계시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뿌리 박고 있는 것으로 죄인인 인간에게 말씀하시며 타락한 인간의 영적 요구에 적용되는 계시이다.
일반계시
직접적인 말씀의 전달형식으로 인간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현상에서 인간정신의 구조에서 그리고 경험 혹은 역사의 사실 등에서 볼 수 있는 신적 사상의 구체적 표현이다.
일반계시의 불충분성 (감.지.기.초)
펠라기우스파와 자연신론자 그리고 합리주의자들은 일반계시가 인간의 현재적 욕구에 충분하다고 생각하였으나, 개신교는 그것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불충분하다고 보았다.
1)죄는 일반계시와 이 계시에 대한 인간의 감수성을 모두 변화시켰다.
2)일반계시는 하나님과 영적 사물에 관한 확실한 지식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
3)일반계시는 종교를 위한 충분한 기초가 되지 못한다.
4)일반계시는 기독교의 기초로서도 전혀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구속의 유일한 길인 그리스도 를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계시의 필요성
죄로 인해 하나님의 일반계시는 흐려지고, 인간은 부패해졌으므로, 더 이상 하나님과 영적사물에 관한 절대적인 지식을 인간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인간의 친교관계를 회복시킴에 있어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다음의 4가지 목적을 수행할 특별한 신적 사역이 필요하게 되었다.
첫째, 일반계시에서 수집된 진리들을 정정하며 해석할 것.
둘째,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솜씨를 다시 한 번 읽을 수 있도록 조명할 것.
세째,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의 계시를 마련해 줄 것
넷째, 죄의 권세에서 인간을 구속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생명의 친교를 갖도록 하여 인간의 영적 상태를 전적으로 변화시킬 것.
특별계시의 방법 (83년)
1)하나님의 현현 : 상징적으로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그룹사이에 임재하셨고 불과 구름속에서 나타나셨고 폭풍우와 미풍속에서도 나타나셨다. 특별히 하나님의 현현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그 최정점에 달했다
2)직접적 전달 : 하나님은 가끔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자신의 사상과 의지를 전달하시며 꿈을 통해서, 또 환상을 통해서도 계시하셨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계시의 영을 통하여 내적 조명의 방법을 써서 선지자들에게 자신을 계시 하셨다.
3)이적 :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또한 이적을 통해서도 자신을 계시하신다. 이적은 하나님의 특별 권능의 현현이며 특별 임재의 상징인 것이다. 모든 이적 중의 이적은 성육신이며 가장 중심적인 것이다.
특별계시의 내용
1)구속의 계시이다 :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예수 그리스도 인에서 이루어 지는 하나님과 죄인과의 화목, 그리스도의 구속사역, 성령의 감화 등에 관한 특수한 지식을 드러내 준다
2)말씀과 사실의 계시이다 : 특별계시는 전적으로 말씀과 교리로만 된 계시가 아니라, ② 이스라엘 역사에서, 구약의 의식적 예배에서, 현현과 이적에서, 예수님 생애의 구속적 사실에서도 구원에 관한 지식을 전달했다.
3)역사적 계시이다 : 특별계시의 내용은 여러 세기를 거쳐서 점진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역사적,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성격의 것이다. 점진적의 발전의 최정점은 성육신과 교회에 있어서의 성령의 내주에서 볼 수 있다.
특별계시와 성경과의 관계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성경에서 영원한 형태를 취하여 후대를 위해서 보존되었다. 역사적 성격을 지닌 하나님의 계시가 모든 세대의 인간을 향하여 말씀하시는 영원한 말씀이 되어, 그들의 신앙과 행위의 법칙이 되기 위해서는 마땅히 훼손과 부패와 허위에서 보호함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 계시를 잘못없는 기록으로 작성하시고 섭리적인 보호로 그것을 지킴으로써 그 일을 성취하신 것이다.
성경과 특별계시는 첫째, 계시는 하나님의 자기전달이요, 성경은 그 기록이며, 둘째, 계시으 때와 기록의 때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그 차이점이 있으며, 성경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자기 전달의 저장소로 성경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계시를 접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동일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영감의 성질(방법) (81,82,83,90,91년)
1)기계적 영감설 : 성경을 기록할 때 하나님께서 불러 주시는 대로 받아 썼다는 것으로 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필기자에 불과하다는 이론이다. 즉 기록자들의 정신활동은 중지되어 성경 저작의 내용과 형태에 전혀 공헌을 못했다고 하는 것이다.
2)동력적 영감설 : 이 이론은 성경 기록에 있어서 저자의 일반 영감을 주장하고 성령의 직접적인 활동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특히 이 이론은 역사서에 많은 오류가 있을 가능성을 열어 놓으므로 성경의 초자연적 특징을 박탈하고 일반계시의 수준으로 끌어내려 결국은 성경의 무오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3)유기적 영감설 (96출제) : 하나님은 기자들을 기계적으로 사용하시지 않으시고, 그들 자신의 내적 존재의 법칙과 잘 조화시켜서 유기적인 방법으로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저자들의 성품과 기질, 은사와 재능, 교육과 교양, 용어와 문체 등을 그대로 사용하되 저자들의 마음을 조명하였고, 격려하여 저술케 하였고, 저자들의 문서 활동에 미치는 죄의 영향을 억압하여 표현케 하셨다는 것이다.
영감의 범위
1) 사상 영감설: 저자의 사상만을 성령께서 영감하셨다는 설.
2) 부분 영감설: 성경 중 일부분만을 성령께서 영감하셨다는 설(역사적 부분의 영감 부정).
3) 완전축자 영감설: 성경의 모든 부분과 저자의 언어 하나하나에 까지 성령의 영감으로 이루어졌으며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심으로 이루어졌다.
성경의 완전성 (84년)
1)신적 권위 : 로마 카톨릭은 권위는 성경자체보다도 교회에 의해서 주어진다고 주장하나, 개혁교회는 성경이 ①성령의 영감으로 고유의 절대적 권위를 가졌으며, ② 역사적 권위가 있어서 절대적으로 믿을 만하며, ③ 규범적 권위가 있어서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한다고 한다.
2)필요성 : 로마 캐톨릭은 성경의 절대적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교회가 성경을 필요로 하기 보다는 성경이 교회를 필요로 한다고 한다. 몬타니스트파, 재침례파와 같은 신비적 종파 역시 성경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성령의 내적 말씀인 내적 광명의 필요성을 말하였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말씀은 교회의 씨가 되므로 성경이 필요하다고 한다. 성경은 신학의 원천이며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으로서 절대 필요하다.
3)명료성 : 로마 캐톨릭은 성경은 흐려지고 손상되어서 교회의 바른 해석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구원에 필요한 지식은 구원을 찾는 모든 자들에게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형식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명백하다고 한다. 영적인 사람은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
4)충족성(완전성) : 로마 캐톨릭은 성경은 충분한 계시가 아니므로 교회의 전통(구전, 신조, 교부들의 저작, 교회의 선언문)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다만 기록된 말씀만이 개인과 교회의 영적, 도덕적 욕구를 채우기에 충족하다고 한다. 이것은 성경에 모든 내용이 다 기록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고, 다만 기록된 말씀이 개인과 교회의 영적인 유익을 위해 충족하다는 것이다.
2. 신론
하나님에 대한 지식
하나님에 관한 지식의 가능성이 부인되기도 하였지만, 인간은 부분적으로 나마 참된 하나님의 지식을 가질 수 있다. 인간이 가지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일반적으로 둘로 나뉜다.
1)본유(생득)적 지식 : 인간이 정상적인 상태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접촉하면 곧 자발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2)후천적 지식 : 하나님의 계시에서 생기는 지식으로 자발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지식에 대한 의식적이며 끊임없는 추구의 결과로 생기는 것이다.
신 존재에 대한 유신론증명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인간은 오직 믿음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이다(히11:6). 그러나 일반계시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논증하는 다음과 같은 합리적 유신 논증이 있다.
1)존재론적 논증 : 인간에게 있는 절대적으로 완전한 존재에 대한 관념은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2)우주론적 논증 : 존재에는 원인이 있다 즉 우주의 존재원인으로서의 신이 존재한다.
3)목적론적 논증 : 우주의 질서와 목적은 그것을 존재케 하는 목적적 존재로서의 신을 증명한다.
4)도덕론적 논증 : 선악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 양심이 신의 존재를 증거한다.
하나님의 계시에서 알려진 하나님의 존재
1)하나님은 순결한 영이시다 : 하나님은 자의식적, 자기결정적 존재이며, 비가시적이시다.
2)하나님은 인격적이시다 : 하나님은 지적이며 도덕적 존재이시다.
3)하나님은 무한히 완전하시다 : 하나님은 피조물을 초월하신다.
4)하나님과 그의 완전성은 단일하시다 : 하나님의 본질과 특성은 단일하시다.
하나님의 속성
1)절대적 속성( 독. 불. 무. 단 ) : 피조물들에게서는 그 유사점을 찾아 볼 수 없는 신적 완전성.
독립성(자존성) - 하나님은 필연적 존재이시며 독립적인 존재이시다.
불변성 - 하나님은 영원히 동일하므로 그 존재, 완전성, 목적, 그리고 약속에서 변하지 않으신다.
무한성 -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완전하시며, 시간(영원), 공간(편재)적으로 무한하시다.
단순성 - 하나님은 혼성된 분이 아니며, 분할할 수 없다.
2)보편적 속성( 지. 지. 선. 사. 거. 의. 진. 주. )
하나님의 지식, 지혜, 선, 사랑, 거룩하심, 의, 진실성, 주권.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적 진술 (90년)
하나님은 그의 본질적 존재에 있어서 한 분이시나 이 한 분 안에는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삼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 삼위는 전혀 분리된 세 인격이 아니다. 삼위는 각자의 완전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전체를 이루고 있다. 더욱이 그 위 (位)들은 본질적 존재에 있어서 한 위 (位)가 다른 위 (位)에게 종속되지 않으며 그 영광과 권능은 동일하다.
그러나 존재의 질서로 보아 성부가 제 1위요 성자가 제 2위요 성령이 제 3위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삼위는 어떤 인격적 특성에 의해 구별된다. 곧 성부는 자존하시며, 성자는 성부에 의하여 영원히 발생되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출된다.
삼위일체 교리의 성경적 증거
1)구약의 증거 : 구약은 삼위일체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자신을 복수형으로 말씀하셨으며 (창1:26,11:7 등), 여호와의 사자는 신적 인격으로 묘사되었으며(창16:7-13, 18:1-21 등), 영은 확실한 인격(사48:16 등)으로 불리워졌다.
3. 기독론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점검해 본 결과 범죄한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없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인간 구원을 위하여서는 중보자 되시는 그리스도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요청됩니다. 이 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존재와 그 사역을 요약해 보기로 합니다.
1. 그리스도의 이름
1) 예수
탄생 직전 천사가 동정녀 마리아에게 계시한 이름으로(마1:21, 눅1:30, 31) 예수의 특별 직무를 보여주는 ´구원하다´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구약 시대에 모세의 후계자이며, 계시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예수의 예표가 될 만한 여호수아의 이름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2) 그리스도
구약의 메시야와 동일하게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의미를 지녔습니다(요4:25, 26).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신성한 임무를 부여받은 왕(삼상10:1)과 제사장(출29:7)과 선지자(왕상19:16)가 기름부음을 받았는데 여기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며(사61:1, 슥4:1-6), 기름부음은 성령이 임하는 것을 상징합니다(삼상10:6,10).
3) 인자(人子)
인자란 말은 단7:13에서 유래되었고, 예수께서 자신을 지칭하는 말로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그리고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을 동시에 나타내주는 명칭이기도 합니다(마16:27, 28, 24:30, 26:64).
4) 하나님의 아들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며(눅1:35), 메시야로서 하나님의 후사, 즉 하나님의 자녀들인 성도들의 대표자이며(롬8:17), 삼위 가운데 제2위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불려졌습니다(마6:8, 14,15, 11:27, 16:16, 26:63, 64).
5) 주
단순히 존경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마8:2;20:33), 어떤 사물에 대한 소유권과(마21:3, 24:42-46) 특히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신 그리스도의 신분을 나타내는 호칭이기도 합니다(행2:36, 고전12:3, 빌2:11).
6) 기타
이외에도 그리스도는 ´임마누엘´(마1:23), ´알파와 오메가´(계1:17,18, 22:13), ´말씀´(요1:1), ´본체의 형상´(히1:3),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고전1:24)로 불려졌습니다.
2. 그리스도의 본성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니신 그리스도의 본성을 인간의 이성으로 규명하기는 힘듭니다. 그리스도의 본성은 오늘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하나의 신비로 남아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여러 견해
교리사는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잘못된 견해로 인하여 이단으로 빠질 많은 염려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에비온파(Ebiontes)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는 가지고 있으나 단순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보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였습니다.
(2) 도게데파(Docetae)
물질은 악하므로 그리스도는 육체를 지니지 않으셨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육체를 환영(幻影)으로 보는 이 주장은 인성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3) 아리안파(Arians)
그리스도는 피조물 가운데 최고의 존재이나 인간성을 지녔으므로 완전한 신성을 가지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4) 아폴리나리안파(Apollinarians)
그리스도의 영은 로고스로 대치되었으며, 그 육체는 매우 승화되어 거의 인간의 육체가 아니라고 인성의 완전성을 부인했습니다.
(5) 네스토리안파(Nestotians)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이 유기적으로 연합됨을 부인하였습니다.
(6) 유티키안파(Eutychians)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이 유기적으로 연합됨을 부인하고 2성이 연합된 제3의 다른 성이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7) 칼레톤 회의의 정통 교리
그 이전에 있었던 잘못된 견해들을 불식하고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 인성과 신성의 2성이 있으며 각 성은 완전하고 유기적이어서 결코 나눌 수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2성 1인격을 가졌다는 정통 교리가 확립된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신성
하나님(롬9:14, 빌2:6, 딛2:13)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마16:16)이신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계19:16)로서 전능하시며(마28:18) 전지하시고(요1:48) 무소부재하신(마18:20) 신적 속성을 지녔으며, 창조(요1:3)와 보조(골1:17), 죄의 용서(눅7:48)와 심판(요5:27)의 신적 사역 및 성령을 보내시고(요15:26) 죽은 자를 살리심으로(요5:25) 완전한 신이심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아래 사실로 증명됩니다.
(1) 구약의 예언
구약은 오실 메시야를 ´전능하신 하나님´(사9:6), ´여호와의 해´(렘23:5,6), ´하늘로부터 오신 인자´(단7:13), ´언약의 사자´(말3:1,2) 등으로 표기하여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2) 예수의 자의식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했을 뿐만 아니라(마11:27, 요17:1), 그를 하나님과 동등한 자로 여기셨습니다(요5:18,21, 12:44,45).
(3) 신약의 저자들과 사도들의 증언
신약 가운데는 마태(마1:23, 3:17), 누가(눅1:31,32,35), 사도 요한(요1:1), 세례 요한(요1:34), 베드로(마16:16), 도마(20:28) 그리고 바울(롬1:4, 행9:19,20, 골1:15; 2:9)이 예수의 신성을 증언했습니다.
(4) 예수의 선재(先在)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계신 분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요1:1, 17:5,24, 골1:15,17, 미5:2).
3) 그리스도의 인성
성경은 그리스도가 ´완전한 인간´인 동시에 무죄한 인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1) 완전한 인성에 대한 증거
① 구약의 증언
구약은 예수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며(창3;15), 아브라함의 씨로 오며(창22:15-18), 다윗의 혈통을 이어 받으며(삼하7:12,13), 아기로 탄생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사7:14, 9:6).
② 예수는 스스로 인간이라는 의식을 가지셨습니다(요8:39,40).
③ 신약의 저자들(마1:1-17, 눅3:23-38)과 바울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진술했습니다(롬5:15, 고전15:21, 딤전2:5).
4. 인간론
*범죄의 결과 - 모든 인류의 대표자였던 아담은 하나님과 맺은 귀하고 중요한 언약을 지키지 못하므로 죄를 범하고 타락하였다. 따라서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류는 다 죄에 빠지게 되었다(롬5:12-19). 그러면 아담이 하나님께 범한 죄로 인하여 빚어진 결과는 어떠한 것인가?
1.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됨.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하면 사는 것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면 사망이요 불행이다.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는 차마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없어서(요3:20)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으며(창3:8), 하나님께서도 이를 용납하실 수 없어서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다(창3:24). 이것이 인간의 모든 불행과 비참한 정황의 시작이요 근원이었다. 에덴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행복은 산 좋고 물 좋고 먹을 것이 풍성한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인간은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와 같은 불행한 자가 되었다.
2. 사람의 성질이 나빠짐
1) 인성의 전적 부패(腐敗)-죄를 범한 인간은 그 인성 전체가 부패해지고 말았다. 그의 지성과 정서와 의지도 전적으로 타락하여 부패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의 총명이 어두워져(엡4:18), 버림받은 자(롬1:24, 26,28)가 되었고, 심히 부패한 마음(렘17:9)을 가지게 되었고, 그의 마음에서는 죄스럽고 더러운 것(마15:19,20) 만이 나오게 되고 말았다.
2)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림 - 창조 당시 사람이 받은 하나님의 형상은 크게 나누면 사람의 인격성과 착함과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구성되는(골3:10, 엡4:24) 원시적(原始的) 의(義)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은 이 원시적 의를 다 잃어버리게 되었다(인격성은 불완전하게나마 남아 있다). 그리하여 참된 의미에서 착함과 의로움과 거룩함은 없는 자가 되고 말았다.
3) 오염과 죄책 의식이 있게 됨 - 죄를 범함으로 타락하여 전적으로 부패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인간은 더러워진 오염의식이 있어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고, 나체를 가리는 노력에서 오염의식을 나타냈다. 또한 죄책의 의식이 있어서 양심의 가책과 하나님께 대한 공포를 느끼고 동산에서 숨기까지 하였다.
3. 사망의 고통
1) 전체적인 사망 - 처음 창조된 인간은 죽도록 지음 받은 것이 아니었으나, 죄를 범한 후에 인간은 죽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고 말았다. 인간의 육체적 사망은 죄를 범한 결과였다. 죄를 범한 인간은 자기가 취해져 나온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창3:19).
2) 질병의 고통 - 죄를 범한 인간은 각종 질병과 여러 가지의 고통을 겪다가 죽어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여인에게는 해산의 고통을 주어졌고(창3:16), 남자에게는 땀을 흘려 수고하여야만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창3:17-19). 그러다가 결국에는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야만 하게 되었다(창3:19).
3) 영적 사망과 영원한 사망 - 죄를 범한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떨어졌는데, 이것은 영적 사망이며(엡2:1), 그리고 후에는 영혼과 육체가 아울러 지옥 불 못에 떨어지는 영원한 사망을 겪게 되었다.
4. 환경의 악화
1) 자연이 저주를 받음 -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죄를 범하므로 자연계의 만물이 저주를 받게 되었다. 동물계(창3:14)도, 땅(창3:17-19)도 저주를 받았다. 따라서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게 되었으며, 탄식하며, 고통하게 된 것이다(롬8:20-22).
2) 낙원과 생명나무에서 격절(隔絶) - 낙원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처소이며, 죄를 범치 아니한 인간들이 충만한 생명과 복을 누릴 처소였으나 죄를 범한 인간은 그 낙원에서 쫓겨났다.
또 죄를 범한 인간은 생명나무로부터 격절(隔絶)되었는데, 이 나무는 행위언약을 지켰을 경우에 약속된 생명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고, 전적으로 부패하여져서 죄만 즐기며 살게 되었고, 오염과 죄책의 의식이 있어서 부끄러움과 양심의 가책과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 속에서 질병과 고통을 겪으면서 살다가 마침내는 육신적으로 죽고, 후에는 영원히 죽어 지옥 불 못에 던져지고야 말게 되었고, 낙원과 생명나무에의 길은 막혀 있어 슬프고 비참한 자가 되고 말았다. 여기에 창세기 3장 15절에 약속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절실히 요청되는 인간이 되었다.
*구속(救贖)의 언약 -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 죄를 범한 죄인들로서 소망이 없고, 가련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이 죄인들을 구속하실 계획을 영원 전부터 세우셨다. 이것이 <구속의 언약>이다.
1. 성경적 근거
성경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救贖)계획이 그의 영원한 작정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가르친다(엡1:4, 3:11, 딤후1:9).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가 세상에 오시기 전에 자기에게 맺어진 약속을 말씀하셨으며, 자기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사명에 대하여 반복하여 말씀하셨다(요5:30, 43, 6:38-40, 17:4-12). 그리고 그는 언약의 머리로 지시(指示)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옛 언약의 머리인 아담을 대체할 새 언약의 머리로 소개되고 있다(롬 5:12-19, 고전15:22). 성경은 그가 언약의 당사들과 약속에 대하여 언급하고(시2:7-9), 메시아 예언(시40:7-9)으로 신약(히10:5-7)이 증명하는 그 구절에서 메시아는 성부의 뜻에 따라 속죄의 제물이 되기로 준비되어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2. 구속의 언약에서의 성자 - “구속의 언약은 성부와 성자 사이의 영원한 협정이다. 성부는 성자에게 택함 받은 백성을 주어 그들의 머리로 보증이 되게 하시고, 성자는 자원하여 그들의 보증으로 그들을 대신하기로 하신 것이다.” (L. Berkhof)
구속의 언약에서 그리스도는 당사자이신 동시에 또한 보증이 되신다(히7:22). 보증인은 다른 사람의 법적인 의무를 대신 담당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의 자리를 취하시어서 죄의 형벌을 담당하셨으며,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 살려주는 영이 되셨다(고전15:45). 이 언약은 그리스도께는 원래의 행위언약의 요구를 다 성취하셨기 때문에 행위언약이 되지만, 우리들에게는 은혜언약(믿음으로 구원을 얻는)의 영원한 기초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것이다. 구속의 언약은 택한 백성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만의 구속을 받으며,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얻으신 영광에 참여할 것이다.
3. 구속의 언약에서의 요구와 약속
1) 이 언약에서 성부는 성자에게 세 가지를 요구하셨다.
① 비록 죄는 없지만 죄를 범하므로 여러 가지의 연약에 싸여 있는 인성(人性)을 취하실 것(갈4:4,5, 히2:10,11 14,15, 4:15)
② 택한 백성들을 위하여 죄에 대한 벌을 대신 받으시고, 영생을 위한 공로를 세우시기 위하여서 율법 아래 처하실 것(시40:8, 요10:11, 갈1:4, 4:4,5)
③ 모든 자기 백성의 영생을 위하여 공로를 세우신 후에 성령의 권능 있는 역사로써 그들을 거듭나게 하시며, 회심케 하시며, 믿음을 주어서 그들의 생을 하나님께 헌신케 하여 그들에게 구속을 실시하실 것이었다(요10:28, 16:13-15, 17:19-22, 히5:7-9).
2) 또 이 언약에서 성부는 성자에게 다음의 몇 가지를 약속하셨다.
① 성부는 성자를 위하여 죄에 물들지 않는 신체를 준비하실 것(눅1:35, 히10:5)
② 성령을 부어주실 것(사42:1, 61:1, 요3:34)
③ 성자의 사역 수행을 지원하여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사탄을 격파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심에 성공케 하실 것(사42:6,7, 눅23:43)
④ 성자를 사망의 권세에서 구출하여 그를 높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시고, 천상천하의 대권을 그에게 맡기실 것(시16:8-11, 빌2:9-11)
⑤ 성부는 성자로 더불어 성령을 보혜사로 보내시어 중생과 성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형성케 하며, 교훈하고 지도하고 보호하게 하실 것(요14:26, 15:26 16:13,14)
⑥ 성령의 역사로 성자에게 주어진 모든 사람들이 믿음으로 그에게 나오게 하고 그 중에 아무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실 것(요6:37,39,40, 44,45)
⑦ 성자의 성취하신 사역의 결과로 그 씨를 주시어(사53:10)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되게 하실 것(계7:9)
⑧ 이렇게 하여 필경 메시아의 나라가 세상 만국을 포용하게 하실 것(시22:27, 72:17)
⑨ 이 구속의 놀라운 사역을 통하여 성부의 은혜의 영광이 크게 찬미되게 하시며(엡1:6,12,14),
⑩ 창세전에 성자가 성부와 함께 가지셨던 신적 영화로써 그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요17:5).
인간은 행위언약을 지키지 못하여 타락한 죄인이 되었으며, 소망 없는 슬픈 자가 되었으나 성부와 성자 사이에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의논을 하셨는데, 이것이 구속언약이다. 이 언약에서 그리스도께서 보증이 되어주시는 일, 몸소 행위언약의 모든 요구를 다 성취하시어서 우리의 구속을 확보하신 일을 생각할 때 그것이 얼마나 은혜로운 조치인가! 이 일을 위하여 성부, 성자, 성령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생각하면서 은혜의 깊이를 터득해야 한다.
*은혜의 언약-은혜의 언약은 하나님과 택함을 받은 죄인 사이에 맺어진 협정인데, 이 협정에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을 통하여 얻을 구원을 약속하시고, 죄인은 그 약속을 신념적으로 받아드려 신앙과 순종을 약속한다. 이것이 은혜의 언약인데, 이것은 구속의 언약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다.
1. 당사자와 중보자
1) 제1당사자 : 하나님 - 은혜의 언약에서 제일 당사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은 항상 하나님의 일방적 조치에 의해 설정되었다.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세우시고, 자기에 대한 다른 당사자의 관계를 은혜롭게 결정하셨다.
2) 제2당사자 : 택함을 받은 죄인들 - 이 언약의 제2당사자는 택함을 받은 죄인들이다.(이것은 개혁파 신학자들의 지배적인 주장임)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하나님이 죄인으로 더불어 언약을 맺으셨다고 말하나 개혁파 신학자들의 절대 다수는 하나님이 택함을 받은 죄인들로 더불어 언약 관계를 맺으셨다고 한다. 이 언약의 제2당사자가 피택(被擇) 죄인임은 구속의 언약이나, 제한 속죄설이나, 예정교리에 맞는 이론이다.
3) 중보자 : 그리스도 - 성경에서 그리스도는 이 언약의 중보자로 교시(敎示)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중보자격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보증의 중보자격과 접근의 중보자격이 그것이다.
그리스도는 죄인들의 죄책을 지시고 율법에 대한 그들의 형벌적인 관계를 종결하시어 그들을 하나님과의 정당한 법적 관계에로 회복시키신 보증자로 나타내셨다(히8:6, 9:15, 12:24, 7:22). 또 그리스도는 자기의 희생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과 사람을 접근케 하신다는 의미의 중보자, 곧 접근 중보자이시다(딤전2:5).
2. 약속과 요구
1) 약속 - 은혜언약의 약속은 성경에 자주 나타나는 “나는 네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말씀에 포함되어 있다(렘31:32,33, 겔34:23-25,30,31, 36:25-28, 히8:10, 고후6:16-18). 이 약속에는 다른 모든 약속들을 포함하는데, (1) 현재적 복의 약속과 (2) 칭의 약속 (3) 성령의 약속, (4) 영화(榮化)의 약속 등이다(욥19:25-27, 시16:11, 73:24-26, 73:24-26, 사43:25, 렘31:33,34, 겔 36:27, 단12:2,3 갈4:4,5,6, 딛3:7, 약2:5)
2) 요구-은혜언약은 행위언약이 아니다. 약속된 것을 얻기 위하여 공로로 간주할만한 무엇인가를 행하여야만할 요구조건이 없다. 그러나 사람에게 요구하는 의무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공로적인 어떤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전달하는 방편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다. 즉 이 언약의 혜택에 참여하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야 한다.
3. 이 언약의 특성
1) 은혜성 : 이 언약은 명칭 그대로 은혜로 성립되었다. 이 언약은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운 조치이기 때문에 은혜이다. 그리고 이 언약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일관되었다.
2) 영원 불가피성 : 하나님은 진실하시니 영원히 파기될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언약에 참여한 자의 최종구원이 보장되는 것이다.
3) 특수성 : 이 언약은 특수적이지 보편적이지 않다. 이 언약은 성부께서 성자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신 자들의 생활에서 특수적으로 실현되기로 의도된 것이다(롬8:29).
4) 동일성 : 이 언약은 여러 시기에 새로운 형식들로 나타나며, 다른 경륜들을 통과하나 본체와 실질에서 항상 동일하다. 이 약속(창17:7, 히8:10), 복음(갈3:8), 믿음을 요구하는 것(갈3:6,7), 중보(히13:8) 등 모두가 동일하다.
5) 조건적이며 무조건적이다. : 그리스도의 공로가 있어야 하는 것과 사람의 믿음이 요구되는 측면에서는 조건적이나, 사람이 공로를 세운다는 측면에서는 무조건적이다.
6) 유언성 : 이 언약은 어떤 의미에서 유언이라고 칭할 수 있다(히9:16,17). 이것은 하나님의 은사물이며, 신약시대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하여 시작되었고, 이것은 확정되어 깨어질 수 없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바를 친히 주시며, 당사자들이 평등치 못하여 제일 당사자이신 하나님이 일방적 조치에 의한 것이다. 우리는 행위 언약에 실패한 우리 인간들을 구속의 언약과 은혜의 언약을 통하여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움을 깊이 깨닫기 위하여 음미(吟味)해 보아야 할 것이다.
5. 구원론
*중생과 효과적 부르심
1.중생: 새 생명의 원소가 인간에게 심겨지고 영혼의 지배적 성향이 거룩하게 되는 하나님의 행위. 회심에서 인간은 어느 정도 하나님께 협력하지만 중생은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단독적 사역.
중생의 특성: 전인적으로 일어난다. 성화처럼 점진적인 과정이 아니라 즉각적인 변화. 잠재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은밀하고 불가사의한 사역.
2.효과적 부르심과 중생: 중생한 후 죄인은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게 되며 순종하고자 하고, 성령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감화된다. 이것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영에 의한 효과적 부르심이다. 효과적 부르심은 영혼 안에 탄생된 새로운 성향이 거룩하게 발현되도록 한다. 이는 중생의 사역의 완성이며 회심으로 전환되는 시점이다.
3.중생의 필요성: 거룩함은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인간은 거룩함과는 정반대이며 허물과 죄로 인해 죽었다고 서술된다. 그러므로 생명의 회복이 필요하다. 성경에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한다.
*.회심
1.용어: 신약의 메타노이아-①지적인 생활: 하나님과 그의 진리에 대한 지식을 구원적으로 영접하는 것②의지적 생활: 자아로부터 하나님에게로 돌이킴③정서적 생활: 하나님을 향한 근심을 동반하고 죄인에게 기쁨을 열어준다.
2.진정한 회심: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서 나오며 하나님에게로 헌신의 삶을 일으킨다. 능동적 회심-중생한 죄인이 회개와 신앙으로 하나님에게 돌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
수동적 회심-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회개와 신앙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행위
3.회심의 성격: ①하나님의 법적인 행동보다는 재창조적 행동이다. 인간의 신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태를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죄가 그리스도의 공로를 기초로 용서된다는 기쁜 확신을 가진다.②잠재의식이 아니라 죄인의 의식 영역에서 발생한다.③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죄를 회피할 뿐 아니라 새사람을 입고 거룩함을 위해 노력한다.④중생은 반복적이지 않지만 그리스도인의 의식 영역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긴밀한 교제를 가질 때도 있고 멀어질 때도 있다.
4.회심의 요소: 회개와 신앙으로 구성되며 회개는 과거와, 신앙은 미래와 관련되어 있다.
회개의 요소:①지성-죄를 인정한다.②감정-지은 죄를 애통하게 된다.③의지-죄로부터 내적으로 멀어지며 용서와 정결을 구한다.
Ⅷ.신앙-회심의 적극적 요소
1.신앙론의 역사
종교 개혁자들은 신앙을 신뢰로 이해하고 의지 안에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칼빈은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호의에 대한 확고하고 확실한 지식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무상의 약속의 진리를 기초로 하며 성령에 의해 우리 마음에 계시되고 우리 심령에 인 쳐진 것”이라고 신앙을 정의했다.
2.성경에서의 신앙 개념
구약: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강조
신약: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다. 바울은 오직 신앙만이 구원의 도구가 되며 그리스도를 신앙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히브리서 저자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한다. 보이는 것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으로, 현재에서 미래로, 시간적인 것에서 영원한 것으로 나아가게 하고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도록 권면한다.
3.진정한 구원적 신앙: 성령에 의해 심령 안에서 일어나는 복음 진리에 대한 확신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진실한 의존
4.신앙의 요소
①지적 요소(지식):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 특히 하나님께서 인간의 타락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것.
②감정적 요소(동의):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진리와 신앙의 대상의 실재를 확신하고 신앙에 열렬한 관심을 갖는 것.
③의지적 요소(신뢰):신앙의 요소의 정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서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며, 허물 많고 타락한 영혼이 그리스도를 용서와 영적인 생활의 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
5.신앙의 대상
일반 신앙의 대상- 하나님의 말씀에 포함된 신적인 계시 전체
특별 신앙의 대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통한 구원의 약속
*성화
1.성경적 개념-구약: 거룩함의 특질이 하나님에게 적용되며 그 개념은 ‘접근할 수 없음’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 인간은 자신이 무가치하고 불결하며 죄 많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임을 느끼게 된다. 신약: 거룩함이 하나님의 영의 독특한 특징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영에 의해 신자는 성화된다. 성화는 칭의 받은 죄인을 죄의 부패로부터 해방하고 그의 본성 전체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갱신하며 그가 선행을 할 수 있게 하는 성령의 자비롭고 지속적인 사역이다.
2.성화의 본질-①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이다.②죄의 몸의 극복과 그리스도 안에서 선을 위해 창조된 새사람의 소생으로 구성된다.③인간의 몸과 영혼, 지성과 감정과 의지 전체에 영향을 준다.④신자가 협력하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부분적으로는 하나님의 사역이고 부분적으로는 인간의 사역이 아니라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통해 부분적으로 성화의 사역을 하신다는 의미이다.
3.성화의 특성-①부분적으로는 잠재의식에서 일어나므로 성령의 역사이다. 또한 부분적으로는 의식영역에서 일어나고 신앙의 지속적인 실천, 말씀의 연구, 기도, 신자들과의 연합과 같은 수단에 의존한다.②영혼에 있어서는 사망 직후에 완성되며 몸에 있어서는 부활 시에 완성된다.
4.성화와 구원의 순서와의 관계-①중생은 성화의 시작이다. 갱신의 사역은 성화에서 지속된다.②칭의는 은혜의 언약에서 성화에 선행하며 성화의 기초가 된다. 칭의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며 성화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거룩하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다.③신앙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고 그리스도와 항상 접촉하게 한다. 그리스도는 성령의 사역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새 생명과 점진적 성화의 근원이시다.
5.이생에 있어서 불완전한 성화-신자들은 일생동안 죄와 싸워야 한다. 완전주의자들에 대한 반론:①성경이 신자들을 완전한 자라고 언급할 때 그들이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②사도 요한은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이것은 신자들이 습관적으로 계속해서 죄를 범하지 않으며 결코 은혜의 신분에서 타락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③죄의 고백과 용서를 위한 기도가 계속적으로 요구된다.
6.성화와 선행-선행은 성화의 열매이다. 신자의 선행이 공로가 될 수 없는 근거:①자신의 모든 삶을 하나님에게 의존하며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임②하나님께서 날마다 부여하는 힘으로써만 선행을 할 수 있음③신자의 최선의 행위조차도 이생에서는 불완전하며 선행을 모두 합쳐도 단지 부분적인 순종만을 나타내므로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는 율법에 만족될 수 없음
선행의 필요성: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으로써, 신앙의 열매로써, 감사의 표현으로써, 신앙의 확신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필요하다.
Ⅺ.성도의 견인-하나님에 의해 중생하고 은혜의 신분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때때로 죄에 빠지기도 하지만 완전히 타락하여 구원을 얻지 못하는 일은 없다고 가르친다.
증명: ①그리스도께서 죄인의 용서를 위해 완전하고 효과적인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에 칭의 받은 자들이 다시 정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②그리스도와의 연합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서 발원하므로 항구적이며 불변하다. 반론: ①인간의 자유와 모순 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방향으로 움직일 때 진정으로 자유하다. ②태만으로 인도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보호받지만, 지속적인 기도와 열심 없이 지내도록 방임하는 교리는 아니다.
견인의 교리를 부정한다면 구원은 인간 의지에 의존하게 된다.
6.교회론
신론에서 구원론까지는 개인의 구원 문제를 다루지만 교회론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에 대해서 다룬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희생하여 교회를 세우셨으며(마16:18; 엡5:25) 복음 전파가 교회 조직을 통해 이루어졌고, 오늘날의 성도들이 교회를 통하여 신앙의 성숙을 도모하므로 이 교회 연구에 대한 작업은 큰 가치를 지닌다.
[교회의 개념]
1. 교회의 명칭
성경에는 직접적으로 교회를 가리키는 표현도 있으나, 대부분 오늘날의 교회와 간접적으로 연관을 갖는 집단에 대한 묘사가 주류를 이룬다.
(1) 카할
'불러모으다', '소집하다'란 의미를 지닌 이 말은 '회'(출16:3; 레16:17; 민14:5; 대상29:1) 또는 '집회'(창49:6; 시26:5)로 번역되었으며, '이스라엘의 총회'(신31:30), '여호와의 총회'(민16:3; 20:4), '하나님의 회'(느13:1)를 지칭할 때도 사용되었다.
(2) 에다
'회중'(출12:3; 레8:3; 민3:7; 수9:19; 삿21:13) 혹은 '집회'(시7:7)로 번역되었다. '카할'이 백성들의 실제적 집회를 의미한다면, 이 말은 집회의 대상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3) 수나고게
'회당'으로 번역된 이 말은 유대인들의 종교적 모임이나 모임이 이루어진 건물을 지칭하였다(마6:2; 10:17; 막1:21; 눅7:4).
(4) 엑클레시아
'부름을 받아 나온 사람의 모임'이란 뜻을 지닌 이 말은 교회의 가장 보편적인 명칭이다. 이 말은 일정한 지역 내에 있는 성도들의 집단인 지교회(행5:10,11;11; 25,26; 고전 11:18; 갈1:2,3)와 가정 교회(롬16:5; 고전16:19; 골4:15; 몬1:2), 지교회의 총칭(행9:31) 그리고 유형교회(고전10:32; 11:22; 12:28)와 무형교회(엡1:22,23; 3:10,21) 모두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5) 이 밖에 교회의 유기적 단일성을 강조하는 '그리스도의 몸'(고전12:27; 엡1:22,23; 골1:18)과 교회의 거룩성을 강조하는 '하나님의 성전'(고전3:16), '하나님의 처소'(엡2:21,22), '싱령한 집'(벧전2:5), '예루살렘'(갈4:26; 히12:22; 계21:2) 그리고 진리의 수호자임을 강조하는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말이 있다(딤전3:15).
2. 교회의 기원
구원을 위하여 선택받은 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유기적 단일체(무형교회)이자, 구원을 실현하기 위하여 지상에 존재하는 유형적 단일체(유형교회)인 교회는 다음과 같은 기원을 지닌다.
(1)근원적 기원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안에는 이미 창세 전부터 하나님 자신의 은혜를 나타내기 위하여 교회 조직이 이루어졌다(엡1:3-6).
(2) 역사적 기원
그리스도의 예언(마16:18)대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신약 교회가 성립되었다(행 2:2- 4,47; 4:32).
3. 교회의 본질
카톨릭은 외부적이고 유형적인 조직체에서 교회의 본질을 찾으나 신교는 성도들의 무형적이며 영적인 교류를 교회의 본질로 본다.
4. 교회의 구별
카톨릭은 성직자로 구성된 '가르치는 교회'와 성도들로 이루어진 '듣는 교회'로, 또한 영세를 받고 중생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자로 이루어진 '혼으로서의 교회'와 외형적인 교인으로 구성된 '몸으로서의 교회'로 구분하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신교에서의 구분은 아래와 같다.
(1) 전투적 교회와 승리적 교회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는 흑암의 세력과 영적 투쟁을 벌이는 전투적 교회이나(엡 6:12,13), 천상의 교회는 악의 세력을 쳐부순 승리적 교회이다(계21:4)
(2) 유형 교회와 무형 교회
신앙 고백, 조직, 행정, 복음 사역 등 눈으로 식별될 수 있는 교회의 요소를 갖춘 가시적 교회와 진정한 의미에서 구원에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자들로 구성된 불가시적 교회가 있다.
(3) 유기적 교회와 조직적 교회
가시적 교회의 구별로서 유기적 교회와 성령의 유대(紐帶)로 말미암아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연합된 성도들의 집단을 말함이고, 조직적 교회는 교회의 직분, 성례, 말씀 선포, 정치 등의 교회 행정 조직과 관련된 조직체로서의 교회이다.
5.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
성경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함께 지상에 실체적으로 임재한 것, 즉 성도의 심령(눅17:20,21)과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마13:31,33,44,47)를 가리키기도 하고, 그리스도께서 왕 노릇하시는 천년왕국(삼하7:10-16;시89:3,4,20-37)과 신천신지(계21:1-4)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영적 왕권이 미치는 영역을 하나님 나라로 볼 때 이는 지상의 교회와는 부분적으로 일치하고, 하늘에 있는 승리적 교회와는 완전히 일치한다.
6. 여러 시대의 교회 형태
구원의 복음과 성도들이 있는 상태를 교회로 본다면 지상 교회는 아담의 범죄 이후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원시복음(창3:15)을 선포한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시대에 따라 아래와 같이 다른 형태를 지녔다.
(1) 가정 교회
아담 이후 모세 전까지 족장 시대 교회는 경건한 가정과 제사장적 가장(家長)에 의해 보존되었다.
(오늘의 셀 형태의 변환으로서의 가정교회는 별개이다.)
(2) 국가 교회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국가를 형성했고 국가 단위로 종교 생활을 했다. 즉 상세한 의식 절차에 따라 정해진 장소에서 제사장의 집전으로 수행된 이스라엘 종교는 아직 국가로부터 독립성을 획득하지 못했다.
(3) 신약 교회
오순절 이후 교회는 국가와는 독립적인 조직을 가졌다. 이때부터 교회는 범세계적으로 선교하였으며 의식적 예배에서 신령한 영적 예배를 드리는 교회로 발전할 수 있었다.
7. 교회의 속성
카톨릭은 교회의 속성을 액면 그대로 유형 교회에도 적용시키나, 신교는 이를 본질적으로 무형 교회의 내면적 성격으로 규정하고 다만 부차적 의미에서 유형 교회들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본다.
(1) 통일성
카톨릭은 전세계에 퍼져있는 조직체로서의 교회의 통일성을 주장하나, 신교는 교회가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며 성도는 각기 지체가 되어 궁극적으로 한 몸을 이루는 것으로 본다.
(2) 거룩성
카톨릭은 교리, 교훈, 예배, 권징 등과 같은 교회의 외적 형식에서 거룩성을 찾으려 하나, 신교는 성도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얻고 의롭다 함을 받았으므로, 원리면에서 거룩성을 교회의 성도들에게 둔다.
(3) 보편성
카톨릭은 유형 교회의 보편성을 주장하나, 신교는 모든 시대와 모든 성도들을 포함하는 무형 교회를 보편 교회로 본다.
(4) 사도성
카톨릭은 교황권이 베드로 사도로부터 기원되었으며, 베드로만이 천국의 열쇠를 소유한 것으로 주장한다(마6:18, 19). 그러나 신교에서는 교회의 설립이 복음에 대한 사도들의 공헌을 매개로 하며, 교회가 사도들의 가르침에 성실하므로 사도권을 지닌 것으로 본다.
(5) 생명성
교회는 생명이신(요5:26;11:25;14:6) 그리스도의 몸이며(엡1:23),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는 목적(요10:10)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셨으며(요3:16;6:39,40)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참 생명을 소유하고 있으므로(요5:24;엡2:1;요일5:12) 교회는 새생명을 가진다.
(6) 무오성
카톨릭은 교황에게는 오류가 없으므로 유형 교회가 무오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교는 교회는 근본적으로 오류가 없는 성경에 기초를 둠으로 무오한 일면을 갖는다고 본다.
8. 교회의 외형적 특징
교회는 다른 단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즉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1) 진보성
교회는 점진적인 계시의 성격에 따라 가정 교회에서 국가 교회, 신약 교회로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부단히 자기 개혁을 시도하며(엡4:15; 벧전2:2; 벧후3:18),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한다는 면에서 진보성을 지녔다(마28:19; 행1:8).
(2) 초월성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위하여 그리스도는 친히 교회의 모퉁이 돌(엡2:20)과 머리가 되셨으며(엡5:23) 교회는 그의 몸으로 존재하므로(골1:18,24) 교회는 신적 기능을 지녔다. 또 한 교회는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에게(요1:12;15:19;18:36;롬8:15,16; 빌3:20) 초자연적인 구속의 진리를 가르치므로 초월성을 지닌다.
(3) 불멸성
이 세상의 모든 조직이 없어질지라도 불변의 진리를 기준으로 하며(마5:18;16:8,18) 영원하리라는 그리스도의 약속에 근거한(마28:20) 교회는 사멸하지 않는다.
(4) 영광성
교회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며(요14:6) 부활과(요11:25) 영원한 소망이신(골1:27)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으로 영광을 지닌다.
(5) 조화성
교회는 동일한 하나님을 섬기며, 동일한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동일한 성령으로 거듭났으며, 하나님 나라를 향한 동일한 소망을 가졌으므로 그 구성원은 어떠한 단체 보다 더욱 조화를 이룰 수 있다.
(6) 진정성(眞正性)
교회는 진리의 반석 위에 세워졌고(마16:18). 복음 전파의 사명을 부여받은 진리의 전달자이며(마28:20; 행1:8;딤후4:2), 말씀을 맡은 진리의 수효자이다(롬3:1,2;딤전3:15).
9. 교회의 표지(標識)
유형교회 가운데는 참 교회가 있는 반면, 거짓 교회도 있을 수 있다.
(1) 말씀의 참된 전파
교회의 가장 중요한 표지로서(요일4:1-3;요이1:9), 말씀 전파가 근본적으로 진실 되며 신앙과 행위에 지배적인 감화를 주어야 함을 의미한다.
(2) 성례의 정당한 집행
성례는 말씀이 명하신 대로 합법적인 사역자들에 의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에 따라 합당한 대상자에게 시행되어야 한다(마28:19;막16:16;행2:42;고전11:23-30).
(3) 권징의 신실한 시행
교리를 순수하게 유지하며, 성례의 거룩성을 보전하기 위하여 정당한 권징을 신중하게 시행하여야 한다 (마18:18;고전5:1-5,13;14:33,40).
[교회의 정치]
교회는 공동의 신앙 고백을 바탕으로 한 교단 조직 속에서 존속하게 된다. 개 교회와 교단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바른 정치가 필요하다.
1. 교회 정치의 여러 형태
(1) 무교회주의
영국 국교의 형식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난 퀘이커파(Quakers)와 다비파(Darbyites) 는 교회의 모든 외적 형식은 마침내 퇴화하여 인간적 요소를 신적 요소보다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거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2) 에라스티안파의 제도
교회를 국가 내에 있는 하나의 기관으로 간주하여 국가의 직접적인 통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교회 내의 정치를 부인하였다. 이 정치 형태는 영국, 스코틀랜드, 독일 등에 적용되고 왔다.
(3) 감독 정치
감독이 그리스도로부터 교회정치를 위임받은 것으로 보고 교회 정치를 독립하는 것이다. 초기와 중세기 카톨릭과 성공회가 이 제도를 받아들였다. 한편 감리교, 성결교 등의 감 독 정치 개념은 이와 완전히 다르다. 감리교 등의 감독 정치 체제는 행정적, 조직적 체계일 뿐 계급적, 명령적 계통이 아니며 감독의 사도전승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 현대의 감리교 등의 감독정치 제도는 종교개혁 그리고 교단 창설 등의 역사적 과정에서 고대 감독 체제의 비성경적 개념은 배척하고 사무적 효율성만을 취하여 이루어진 것이.
(4) 교황 정치
교황을 그리스도의 수제자 베드로의 계승자이며, 지상에 있는 무오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보고 교리, 예배, 정치를 결정하는 존재로 격상시킨 것이다. 카톨릭의 정치 형태이다.
(5) 회중 정치
각 교회는 상호 독립한 완전한 교회이며, 교회의 정치권은 모든 교회원들이 평등하에 갖는다. 침례 교회의 정치 형태이다.
(6) 국가 정치
개 교회를 단순히 국가 교회의 일부분으로 보고, 국가 교회가 개 교회에 대하여 지배권을 갖는 것으로 취급한다.
(7) 장로회 정치
교회의 기본권이 일반 회중에게 있고, 주요 정치권은 그들에 의해 선출된 장로에 의해 이루어진다.
2. 교회와 국가
성도들은 국가의 통치를 받는 동시에 교회의 통치를 받는다. 이 두 통치권은 조화를 이루기도 하나 때로는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하여는 아래와 같은 견해들이 있다.
(1) 교회 지상주의
국가를 교회의 일부분으로 보고 교회가 국가 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카톨릭의 견해이다.
(2) 국가 지상주의
교회를 국가의 일부분으로 보고 국가가 교회를 지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에라스터스 (Thomas Erastus)의 견해이다.
(3) 국가에 대한 배타주의
국가 정치에 대한 교회의 무관심을 주장하며, 정치적 무질서와 혼란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견해이다. 재침례파의 주장이다.
(4) 정교 분리 및 보완주의
교회와 국가는 다같이 신적 기원을 갖지만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독립되어 있으므로 어느 한 편이 다른 편에 대하여 어떠한 권한도 가질 수 없다는 주장이다. 개혁파 교회의 견해이다.
3) 교회의 직원
교회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여러 직책의 일군, 즉 직원이 필요하다.
(1) 비상 직원
그리스도께서 신약 교회를 창설하기 위하여 후대에는 찾아볼 수 없는 사도(12사도와 바울)와 선지자(행:28;13 : 1,2 ; 15:32; 고전12:10; 엡2:20) 그리고 전도자(빌립, 마가, 디도, 디모데)를 세우셨다(행21:8; 엡4:11; 딤후4:5). 이 비상조직은 초대 교회에 국한된 것으로 현재에는 폐지되었다.
(2) 통상 직원
오늘날에도 존속하는 교회 직분으로서 다음과 같다.
㉠ 장로 : 여기에는 오늘날의 장로, 목사(감독) 등이 다 포함된다(행11:30;14:23; 15:2-22; 엡4:11; 행20:17-28; 딤전3:1; 5:17-19; 딛1:5,7; 딤전5:1,2)
㉡ 집사(빌1:1;딤전3:8-12).
(3) 임시 직원
교회는 성경에 규정된 통상 직원 외에 효율적인 교회 봉사를 위하여 전도사, 전도인, 권사, 서리 집사 등 직원을 두고 있다.
(4) 준(準) 직원
준목 혹은 강도사와 목사 후보생이 여기에 속한다.
(5) 직원의 자격
딤전3:1-7에는 장로(목사,감독)의 자격이, 그리고 딤전3:8-13에는 집사의 자격이 기록되어 있다. 나머지 직원들도 여기에 준하여야 한다.
[교회의 권세]
교회를 세우신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전체에, 특별히 교회의 직원에게 복음의 사역을 감당할 권세를 주셨다(마16:19;행20-28)
1. 교회의 권세와 본질
국가 권세도 교회 권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나(롬13:1) 일반 은총의 영역에 머문다는 차이점을 지닌다. 즉 교회의 권세만이 신령성을 지니는 것이다(마16:19;요20:22,23;행20:28;고전5:4,12). 그러나 이 권세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에게만 속하고 인간은 단지 사역자에 불과하다
2. 교회 권세의 종류
(1) 교리권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지키고(행20:29-31; 딤전1:3,4; 딤후3:13,14), 가르치며(마 28:19,20; 딤전4:13; 딤후2:2), 성례를 시행하고(마28:19,20; 행10:47,48), 신조와 신앙고백을 작성하며, 장래를 위한 교육에 철저해야 한다(딤후2:2)
(2) 치리권
교회 질서의 유지를 위하여(고전14:33,40) 그리스도의 율법을 시행하며(행20:28; 롬15:14; 살전5:11), 교회 헌법을 제정하고(고전12:19; 14:26), 교회 성결의 유지를 위하여 권징하는 권한을 지닌다(마16:19;18:18;요20:23).
(3) 봉사권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희생으로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준 것을 본받아 병든 자를 찾아가 위로하며,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를 구제하여야 한다(마6:4; 롬12:8; 고후9:9).
[은혜의 수단]
교회는 구원에 필요한 은혜를 성도들에게 주기 위한 그리스도의 기관이다. 즉 성령께서는 일반적으로 교회를 통하여 말씀과 성례를 수단으로 하여 은혜를 베푸신다.
1.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로고스, 즉 인격적인 그리스도를 말씀으로 칭하거나(요1:1-14),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직접 계시를 말씀으로 표현하기도 한다(렘1:4;겔6:1;호1:1). 그러나 여기 은혜의 방편이 되는 말씀은 그런 넓은 의미의 말씀이 아니라 제한적 의미로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으로서의 말씀과 그것이 구체적으로 전파되었을 때의 말씀을 가리킨다. 말씀에는 다음 두 가지 요소가 있다.
(1) 율법
죄를 깨닫게 하며(롬3:20), 율법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함을 자각하게 하여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다.
(2) 복음
죄인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의 길로 나가게 한다(롬1:16;고 전1:18).
2) 성례
하나님의 말씀을 은혜의 방편으로 하여 믿음을 강하게 하는 역할만 하는 성례는 반드시 말씀에 의존하여야 한다. 카톨릭은 영세, 성찬, 견신례, 고해례, 안수례, 결혼례, 종유례 등 7성례를 말하나, 성경은 오직 세례와 성찬 등 두 성례만을 가르치고 있다.
(1) 세례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셨고(마28:19;막16:15,16), 세례 요한을 통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친히 모범을 보이신 세례는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에 근원한다. 세례는 일차적으로 진정으로 신앙고백을 한 성인에게 시행되어야 하나, 성도의 자녀들은 언약의 혜택에 참여하였음으로 유아 때에도 세례를 받을 수 있다(행16:31).
(2) 성찬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전 유월절에 제정하신 성찬(마26:26-29;막14:22-25;눅22:26), 그리스도에게 참여함(요6:53), 영적 양육과 성장, 성도의 연합(고전10:17)을 상징하며,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랑과 구속에 필요한 모든 은혜를 받을 수 있는 특권의 은혜를 현실적으로 소유할 수 있게 하며,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다짐하는 예식이다(고후4:15).
㉠ 성찬과 그리스도와의 관계 - '이는 내 몸이니라'(마26:26)는 말씀대로 떡과 포도주가 실재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된다는 카톨릭 견해(화체설)와 그리스도께서 떡과 포도주 속에 신비적으로 임재하신다는 루터의 견해(공재설)와 떡과 포도주는 단순한 상징물에 불과하다는 쯔빙글리의 견해(영적 임재설)가 있다.
㉡ 성찬의 참여자 - 성찬은 분별력이 없는 아이나(고전11:28) 불신자 그리고 결함이 있는 성도는 참여하지 못한다. 성찬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스스로를 살필 수 있는 참된 성도를 위하여 존재한다.
7.종말론
서 론
뻘콥은 개인적이건 민족적이건, 인간의 삶에 대해 진지한 반성이 있었던 곳이면 어디서나 인간의 기원과 본질, 그 목적지에 대한 물음이 철학과 종교를 통해 항상 있어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기독교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모호하고 불확실한 차원의 것이고, 오직 기독교만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마지막에 될 일들에 대한 정확한 신적 기원의 교리를 가진다는 것을 잘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종말론이 성도의 영화나, 그리스도의 통치의 완성을 다루는 중에, 또 객관적, 주관적 구원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를 소개하고 있는 정도로 축소되어서는 않되고, 종말론이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가 완전한 형태로 지시되는 것인 만큼, 기독교의 원리가 가장 순결한 형태로 표현되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이 실재가 축소되지 않고 제대로 다루어져야함을 뻘콥은 지적하면서, 종말론을 이야기 할 때에는 특별히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계되는 것으로서, 현세대의 종말을 확정지으며, 또한 미래의 영원한 영광을 예고할 그런 사실과 사건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뻘콥은 종말론을 다룸에 있어서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일반적 종말론은 보통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이세상의 종말에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로서, 그리스도의 재림 전체적 부활, 최후의 심판, 왕국의 완성, 그리고 경건한 자와 악한 자의 최종적인 상태 등을 다루고, 둘째로 개인적 종말론은 육체의 죽음, 영혼의 불멸성, 그리고 중간기 상태를 다룬다고 말하고 있다.
1부 개인적 종말론
1. 육체적 죽음
1) 육체적 죽음의 본질
뻘콥은 죽음을 육체적 죽음, 영적 죽음, 영원한 죽음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는 육체적 죽음은 마10:28, 눅12:4을 근거로 혼과는 구별되는 몸의 죽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육체란 살아있는 유기체이고, 혼(프쉬케)은 분명 사람의 영(프뉴마) 즉 자연적인 생명의 원리라고 할 수 있는 영적 요소를 말하기 때문이며, 벧전 3:14에서도 육체의 죽음이 혼(프쉬케), 즉 동물적 생명이나, 삶의 끝 혹은 상실이라고 묘사되고 있음을 예로 들고 있다.(마2:20, 막3:4, 눅6:9, 14:26, 요12:25, 13:37, 38, 행15:26,20:24, 전12:7, 창2:7, 요19:30,행7:59, 빌1:23). 또한 이것은 존재와 비존재로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서로 다른 존재의 양태로서만 대립하는 것임을 잘 지적하고 있다.
2) 죄와 죽음의 관계
펠라기우스주의자와 소시니주의자들은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가르치며, 현대 과학도 유기물은 그 속에 부패와 해체의 씨앗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죽음은 유기체의 법칙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성경은 육신의 죽음을 영적인 죽음의 결과로 제시하고 있으며, 죄에 대한 적극적인 처벌이라는 점을 뻘콥은 지적하고 있다. 죽음은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시90:7,11)이고, 심판(롬1:32)애며, 정죄(롬5:16)이고, 저주(갈3:13)라는 것이다.
3) 신자들의 죽음의 의미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신자들에게 죽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 속에서 영적인 진보와 하나님 나라에 최고의 유익을 끼치는 것이기 때문에, 신자들의 죽음은 영혼의 성화를 완성하는 것이며, 완전한 생활의 시작이며, 천국의 문이며, 예수 안에서 잠드는 것이며, 주님과 더불어 영원히 거하게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롬8:11, 살전4:16,17).
2. 영혼의 불멸성
1) 불멸성이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상이한 의미들
뻘콥은 불멸성이라는 말이 인간에게 해당될 때에는 하나님의 속성인 절대적인 의미에서 불명성을(딤전6:15,16) 말하는 것이 아니고 계속적 혹은 무궁한 생존으로서의 불멸성을 말하는 것임을 지적하며, 이러한 불멸성은 인간의 영혼을 포함한 모든 영들에게도 해당됨을 말하고 있다. 또한 불멸성이라는 용어가 신학용얼 사용 될 때에는 부패와 죽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한 인간의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고, 특히 종말론적인 용법에서는 죽음과 무관하며, 죽음의 제물이 될 가능성도 없는 인간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2)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일반계시의 증거
진화론, 유물론은 인간의 내세적 삶을 의심하며 부인했지만 역사적으로 불멸성에 대한 강하게 존재해 왔고, 형이상학적으로도 단일한 영혼은 해체되거나 분리되지 않음을 추론하였다. 또한 목적론적으로도 인간의 능력이 생전에 결코 충분히 개발될 수 없음을 보고 미래적 생존을 하나님이 준비하셨음을 말하고 있으며, 도덕적으로도 정의가 최고의 지배자가 되고 현재의 부당함이 시정되는 미래의 한 상태가 있어야함을 말하고 있다.
3) 영혼의 불멸성에대한 일반 계시와 특별계시의 증거
(1) 뻘콥은 일반계시 차원에서 진화론과 유물론 등이 강하게 반대해 왔지만, 형이상학적으로, 목적론적으로, 도덕적으로 항상 강하게 존재해왔음을 말하고 있다.
(2)구약에서의 불멸성의 교리
구약에서는 창조주와 구속주, 그리고 그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실 언약의 하나님으로서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하나님의 형상을 따른 창조(전3:11), 스올의 교리(시16:10,49:14,15), 죽은 자를 불러내거나 혹은 신접한 자에 대한 빈번한 경고, 죽은 자의 부활 교리, 죽은 후 하나님과 교제하며 누릴 신자들의 복에 대한 구절들에서 증거 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시16:9-11, 73:24,25).
(3) 신약의 불멸성의 교리, 의인의 영혼이나 악인의 영혼이 모두 계속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에서(마10:28, 마11:21-24), 부활(눅20:35,36), 하나님과 교제하는 신자들의 복된 삶(롬2:7,10)등에서 증거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4)인격의 불멸성에 대한 반대와 그에 대한 현대의 대안들
유물론과 생리학적 심리학이 정신이나 영혼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단순한 두뇌 활동의 산물 혹은 기능일 뿐이라고 말하며, 기관이 사라지면 그 기능도 멈춘다는 것을 근거로 인격의 불멸성을 반대하지만, 뻘콥은 이러한 사고는 두뇌의 기능을 필연적으로 생산적인 기능 이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며, 이 기능은 수용적, 혹은 전달적 기능일 수도 있음을 가지고 비판하고 있다.
3.중간상태
1) 중간상태에관한 성경의 견해
뻘콥은 성경을 근거로 신자의 영혼은 몸과 분리되면 그리스도 앞으로 가며(고후5:8, 빌1:23, 눅 23:43, 고후 12:3,4, 고후5:1, 히12:23), 악인들은 영원한 고통의 장소인 지옥에(눅 16장) 머물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2) 역사적으로 본 중간상태의 교리
초기에는 예수님이 곧 재판장으로 오실 것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중간상태는 그리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았으나, 즉시 재림하시지 않는 다는 것이 분명해 진 이후로 중간상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고 뻘콥은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알렉산드리아학파에서 중간상태에 관한 교리가 영혼의 점진적 정화의 교리로 바뀌어 갔고, 결국 카톨릭의 연옥교리를 마련하였다고 파악하고 있다. 연옥교리와 장소의 개념을 수반하는 중간상태를 주장하는 카톨릭의 견해에 반대하여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으로 다시 돌아갔지만, 어떤 사람들로부터 잘못된 견해들은 계속해서 나타났음을 말하고 있다.
3)스올-하데스에 관한 해석의 제시
뻘콥은 스올이나 하데스와 같은 용어들이 항상 동일한 의미로 쓰이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즉 스올이 종종 죽음의 상태나 몸과 영혼의 분리 상태를 지칭하는 추상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는 것이다(마16:18,계1:18, 삼상2:6, 행2:27,31, 계6:8,20:28). 또한 지하세계, 죽음의 상태, 무덤, 지옥 등의 어떤 경우도 동일한 단어로 나타낼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시49:14, 55:15, 잠15:11, 15:24 눅16:23).
4) 죽음뒤의 영혼의 거처에 관한 로마교회의 교리
뻘콥은 먼저 연옥(Purgatory)을 말하고 있는데, 연옥은 완전히 깨끗함을 받지 못한 자, 즉 여전히 소죄(小罪)를 짓고 있어서 그 죄에 합당한 형벌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하늘나라의 최상의 복락과 즐거움으로 들어가기 전에 정결의 과정을 겪는 준비의 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로마 카톨릭은 땅위에 있는 신자들의 기도나 선행, 특히 미사의 제사에 의해 연옥에 있을 기간이 경감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교황은 연옥에 대해 사면권, 고통감소권, 고통을 끝내게 할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사4:4, 미7:8, 슥9:11, 말3:2,3, 마12:32, 고전3:13-15, 15:29).
그다음 선조림보(The Limbus Patrum)이다. 선조림보는 구약시대 성도들의 영혼이 죽은 후부터 주의 부활하시기까지 머물러 기다리는 장소로 보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이곳에 내려가셨다고 로마 카톨릭은 말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로마 카톨릭은 유아 림보(The Limbus Infantum)를 말하고 있다. 이곳에는 이방인의 자녀든 그리스도인의 자녀든 세례 받지 못하고 죽은 모든 어린이들의 영이 거하는 장소로서, 천국에서는 제외도지만 실제적인 고통을 겪지 않으며, 자연적인 능력으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충만한 자연적 행복을 누린다고 로마 카톨릭은 말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5) 죽은 후 영혼의 의식적 존재상태
뻘콥은 크게 3가지로 말하고 있다. 먼저 영혼수면설(Psychopannychy)이다. 이것은 죽으면 영혼은 영적인 개체의 존재로 살아 있게 되지만, 무의식적 휴식의 상태로 존재한다(행7:60, 고전15:51, 살전4:13, 시6:5, 30:9, 115:17, 146:4, 전9:10, 사38:18,19, 마7:22, 23, 25:37-39,44, 요5:29, 고후 5:10, 계20:12)는 주장을 펴는데, 아라비아의 작은 종파와 중세시대, 영국의 어빙파, 미국의 여호와의 증인들에 의해서 옹호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멸절설을 말하고 있다. 멸절설이란 인간이 불멸하도록 창조되었지만, 죄 속에서 계속된 영혼은 하나님의 적극적인 사역에 의해 그 불멸성의 선물을 박탈당하여 궁극적으로 멸망하거나 혹 영원히 의식을 박탈당하여 비존재와 같이 된다는 것이고,
세 번째로 조건적 불멸설은 불멸성이 자연적인 영혼의 은사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사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영혼은 궁극적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되거나, 모든 의식을 상실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요10:27,28, 17:3, 롬2:7, 6:22,23, 갈6:8, 마7:13,10:28, 요3:16, 롬6:23,8:13, 살후1:9). 이러한 모든 주장은 성경과 다른 주장임을 분명히 뻘콥은 말하고 있다.
6. 중간상태는 재시험의 기간이 아님
중간상태를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서 기대할 수 있을 법한 것들에 관한 일반적인 사색과,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혜사역을(벧전3:19, 4:6, 요3:18,36, 막16:15,16, 롬10:9,12, 엡4:18, 벧후2:3,4, 요일4:3) 가급적 포괄적으로 만들려는 욕구에 기초하여 제2시험설(second probation)이 주장되고 있다고 뻘콥은 파악하고 있다. 이것은 중간상태에서 어떤 부류의 사람들 혹은 아마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이 구원은 현세에서와 동일한 방식, 곧 구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주어진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뻘콥은 성경은 사후 불신자의 상태를 확정된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중간상태의 행위가 아니라 육신을 입었을 때 행한 일들에 근거하여 심판이 행해짐을 말하는 것을(눅16:9-11, 전11:3, 요8:21,24, 벧후2:4,9, 유7-13, 마7:22, 23,10:32,33, 25:34-46, 눅12:47,48, 고후5:9,10, 갈6:7,8, 살후1:8, 히9:27)근거로 분명히 반대하고 있다.
제2부 일반적 종말론
일반적 종말론에 대해서 뻘콥은 보통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이세상의 종말에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로서, 그리스도의 재림 전체적 부활, 최후의 심판, 왕국의 완성, 그리고 경건한 자와 악한 자의 최종적인 상태등을 다루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1. 그리스도의 재림
공생애 사역이 끝나갈 무렵 예수께서는 자신이 다시 오실 것에 대해서 여러번 말씀하셨고,(마24:30, 25:19,31, 26:64, 요14:3), 천사들과(행1:11) 사도들(행3:20, 살전4:15,16, 살후1:7,10, 딛2:13, 히9:28)을 통해서 예언을 하셨음을 말하면서 구체적으로 재림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1) 재림(파루시아)이전의 대사건들
뻘콥은 재림이전의 일어날 사건들에 대해서 5가지로 말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첫째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게될것이라는 것과(마24:14, 막13:10, 롬11:25, 마8:11, 13:31,32, 눅2:32, 행15:14, 롬9:24-26, 엡2:11-20) 둘째로, 참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가 구원받을 것이라는 것(슥12:10,13:1, 고후3:15,16, 롬11:25-29), 셋째로, 큰 대배교와 대환란이 있을 것이라는 것(마24:9-12, 21-24, 막13:9-22, 눅21:22-24, 살후2:3,딤전4:1, 딤후3:1-5), 넷째로 적그리스도의 나타나심, 다섯째로 전쟁과 전쟁의 소문, 기근과 지진, 거지선지자의 미혹, 거짓그리스도 해와 달과 별들을 포함하여 무서운 징조(마24:29,30, 막13:24,25, 눅21:25,26)를 말하고 있다.
2) 파루시아, 즉 재림 그 자체
이 재림에 있어서 그 시간은 중보자로서 받으신 계시 속에는 포함되지 않은 것(마24:36) 잉을 말하며, 재림의 방식은 인격적이고(행1:11,3:20,21, 마24:44, 고전15:22, 빌3:20, 골3:4, 살전2:19, 3:13, 4:15-17, 딤후4:8, 딛2:13, 히9:28), 육체적, 가시적 강림이며(막13:26, 눅21:27, 행1:11, 골3:4, 딛2:13, 히9:28, 계1:7), 갑작스럽고(마24:37-44, 25:1-12, 막13:33-37, 살전5:2,3, 계3;3, 16:15), 영광스럽고 승리에 찬 강림(히9:28, 마24:30, 살후1:7, 살전4:16, 3:13, 살후1:10, 고전15:25, 계19:11-16)이 될 것임을 말하고 있다.
3) 재림의 목적
뻘콥은 재림의 목적은 그리스도께서 미래의 시대를 여시고 만물에게 영원한 상태를 부여하시기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마13:49,50, 16:27, 24:3, 25:14-46, 눅9:26, 19:15, 요5:25-29, 고전4:5, 15:23, 빌3:20,21, 살전4:13-17, 살후1:7,10, 2:7,8, 딤후4:1-8, 벧후3:10-13, 유14,15, 계20:11-15, 22:12)
2. 천년왕국에 관한 견해들.
1) 전쳔년설(Premilleialism)
역사적으로 과거에는 이레네우스의 견해 즉 창조시의 6일간과 상응하여 현세대의 기간을 6천년으로 보고, 또 일곱째 날과 상응하여 천년간 지속될 천년 왕국적 복의 기간을 주장하며, 천년의 마지막 때에 마지막 심판이 있을것이며 새로운 창조계가 나타나 거기서 구속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임재속에 영원히 살게될 것이라는 이레네우스의 견해가 지배적이었음을 뻘콥은 말하고 있다.
2) 현재의 전천년설
뻘콥은 현재의 전천년설을 다룸에 있어서 그들의 역사관, 종말관 등을 세세히 다루고 있다.
(1) 그들의 역사관은 하나님께서 역사의 과정속에서 몇 개의 언약에 기초하여 혹은 일곱 개의 다른 세대의 원리에 따라서 인간세계를 다루어 가신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시내산시대,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 ...).
(2) 또 그들의 종말론의 특색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이중적인 것으로 표현하는 것임을 뻘콥은 말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의 재림은 칠년의 간격을 사이에 둔 독립된 두 개의 사건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사건은 파루시아로써 모든 의로운 죽은자들은 일으키심을 받고, 살아있는 성도들은 변형된 성도들을 그리스도께서 공중에서 만나는 것이고, 대환란과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칠년 기간 마지막에 나타나심 즉 주님의 지상강림으로 나누고 있다. 이 강림은 성도들과 함께 하기 위한 것으로, 남아있는 민족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며(마25:32이하), 염소와 양이 분리되고 대환난으로 죽임당한 성도들이 일어날 것이며 적그리스도가 멸망하고 사탄은 천년동안 갇히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적이고 가시적이며 지역적이고 물질적인 유대인의 왕국이 천년왕국이 이 시작되며, 이 왕국에서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세상은 매우 빨리 회개할 것인데 어떤 사람은 복음에 의해 회개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인격적 강림이나 성도들의 복음 보고 생기는 부러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로 위대하고 끔찍한 심판과 같은 전혀 다른 수단에 의해 회개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천년왕국 후 사탄은 잠시 놓여나고 곡과 마곡의 무리가 거룩한 성을 대적하여 모일 것이지만, 그러나 하늘로부터 내리는 불에 삼키우고 사탄은 짐승과 거짓선지자들이 던지움을 받은 무저갱에 떨어지고, 잠시 후 죽은 악인들이 부활하여 크고 흰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고(계20:11-15). 그 다음에 새하늘과 새땅이 있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3) 끝으로 뻘콥은 예수그리스도의 영적통치만을 기다리거나, 계시록 20장의 천년을 다소 길거나찗게 지속되는 불확정적인 기간으로 간주하거나, 그리스도와 다천년동안 다스리는 장소에 대한 문제 등을 다루는 전천년설의 변형된 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3) 전천년설에 대한 반대
뻘콥은 분명하게 .이 이론이 이스라엘과 하나님 나라의 미래에 관한 예언적 설명의 문자적 해석에 기초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성경은 문자적인 의미로만 사용되지는 않았다는 것과, 성경에는 재림연기설(요한과 예수님이 유대인의 신정이 가까움을 선포했지만,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믿지 않았으므로, 그 왕국의 건설을 재림시까지 연기하셨다는 주장)이 전혀 없다는 것, 또 성경은 부활과 마지막 심판, 세계의 종말에 대해 동시적인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마13:37-43, 47-50, 24:29-31, 25:31-46, 요5:25-29, 고전 15:22-26, 빌3:20,21, 살전 4:15,16, 계20:11-15)을 근거로 비판하고 있다.
또 계시록 계20:1-6에 근거하여 1절에 있는 쇠사슬과 2절에 있는 결박을 비유적으로 해석하며, 종종 천년을 길고도 불명확한 시간으로 이해하고, 4절의 영혼들을 부활한 성도로 바꾸어 해석하는 것들은 잘못된 것으로, 이 구절들은 언급되고 있는 부류의 사람들(순교한 성도들과 짐승을 경배하지 않은자들)이 죽은 자로부터 부활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게 살아서 다스렸다고만 말하고 있는 것이며, 또 이 구절들 속에는 그리스도와 그의 성도들이 땅위에서 다스렸다는 의미는 결코 없으며, 계4:4, 6:9과 연결해서, 이것은 오히려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장면이라고 바른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4) 후천년설
뻘콥은 후천년설이 16세기와 17세기동안에 화란 개혁파신학자들인 코케이우스, 알팅, 두사람의 비트랑가, 다우트레인, 비치우스 호른백, 코엘만, 부라켈 등에 의해서 주장되었고, 이들 대부분은 천년왕국이 세상의 종말 곧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으며, 복음이 엄청난 효력을 발휘하게 되어 예수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한 풍성한 보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고, 이 황금시대에는 유대인들도 미증유의 방법으로 이 복에 동참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또 이들은 전천년설의 두 가지 핵심적 개념, 즉 그리스도께서 천년동안 이 땅을 다스리시기 위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다는 것과, 그가 오시면 성도들이 부활하여 그와 함께 천년 왕국에서 다스리게 된다는 사상을 거부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 날에는 천년왕국은 진보에 의해 점차적으로 생겨나게 될 것이며 세계개혁의 정책을 받아들임으로서 이 새로운 세대에 스스로 참여해야만 한다는 주장까지 나타나고 있다.
5) 후천년설에대한 반대
뻘콥은 후천년설이 주장하는 세계의 회개에 대한 기대로 성경은 지금세대에서든지 오는 세대에서든지 우리를 인도하지는 않고 있으며, 오히려 종말 바로 직전 시대는 대배교와 환난과 박해의 시대요,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식어지고,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자들은 심한 고난에 빠질 것이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그들의 고백을 피로써 인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증거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마24:6-14, 21, 22, 눅18:8, 21:25-28, 살후2:3-12, 딤후3:1-6, 계13장). 또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오는 세대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하신 간섭에 의해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될 것을 말하고 있음을 들어 후천년설을 반대하고 있다(마24:29-31, 35-44, 히12:26,27, 벧후3:10-13). 그리고 후천년설에는 자연적인 지보와 교육, 사회개혁, 그리고 법률들의 분야에 있어서의 인간의 노력이라는 현대적 개념이 기독교적 정신 전 영역으로 스며든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3. 죽은자의 부활
1) 역사적으로 본 부활교리
뻘콥은 부활교리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많은 오류가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먼저 성경에 나와 있는대로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마22:23, 행23:8), 또 후메네오와 빌레도와 같이 부활을 순전히 영적인 것으로 취급하며 그것은 이미 지나간 역사상의 사실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자들(딤후2:18)과 영지주의 자인 켈수스(Celsus)를 반대한 오리겐조차도 무덤에 묻혀있는 바로 그 육체가 부활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또 두 명의 그레고리, 크리소스톰, 다마스커스의 요한 등으로 대표되는 동방교회는 영적인 관점을 취하는 경향을 나타내었으며, 천년왕국 주장자들은 천년왕국 통치의 초기에는 의인의 부활이, 그 말기에는 악한자의 부활이 있을 것으로 오해했으며, 중세에는 환상적이고 거의 무가치한 사색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일찍부터 사도신경을 통해서 이미 육신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분명하게 표현하였으며, 이러한 바른 신앙은 모든 위대한 교회의 신앙고백들로 이어졌음을 말하고 있다.
2) 부활에 대한 성경의 증거
구약은 부활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앙이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출3:6, 마22:29-32, 히11:10, 13-16, 19, 시49:15, 73:24, 25, 잠23:14, 욥19:25-27, 사26:19, 단12:2, 겔37:1-14)임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고, 이것이 신약에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그 지점에서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극치를 이루고 있음을(마22:23-33, 요5:25-29, 6:39, 40,44,54, 11:24, 25, 14:3, 17:24, 고전15장, 살전4:13-16, 고후5:1-10, 계20:4-6, 20:13)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4. 부활의 성격
뻘콥은 성경이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일으키셨다고만 말하는 것을(마22:29, 고후1:9) 증거로 부활이 삼위하나님의 사역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부활이 보다 구체적으로 성자의 사역이라고 일컬어지며(요5:21,25,28,29, 6:38-40, 44, 54, 살전4:16), 또한 성령님의 사역으로도 지칭됨을(롬8:11)말하고 있다.
두 번째로 부활이 육체적 부활임을 그리스도의 부활을 근거로(고전15:20,23, 골1:18, 계1:5)증거하고 있다(롬8:11, 23, 고전6:13-20, 고전15특히35-49).
세 번째로 뻘콥은 부활을 반대하고, 멸절설과 조건적 멸절설, 악인들이 부활하지 않고 없어진다는 주장을 하는 안식교나 여호와의 증인들에 반대하여 성경을 근거로 악한자의 부활을 변호하고 있다(단12:2, 요5:28,29, 행24:15, 계20:13-15).
네 번째로 의인에게 있어서 부활의 결과는 영원한 생명이고 주권적 공의의 사역으로서 악인의 부활은 죽음이라는 최고의 형벌이 됨을 밝히고 있다(요5:28,29).
5. 부활의 시기
뻘콥은 부활의 시기에 관하여 전천년주의자는 성도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사이에는 천년의 간격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성경은 죽은자의 부활은 재림, 주의 날의 계시, 그리고 이 세상의 종말과 동시에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 다음에 바로 전체적인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살후1:7-10).
그리고 뻘콥은 전천년주의자들의 잘못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로 성경은 죽은자의 부활을 언급하면서 반복적으로 이것을 죽은자로 부터의 부활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전천녀주의자들이 이것을 죽은자 가운데서라고 번역함으로써 아직도 많은 죽은 자들이 무덤에 남아있음을 암시하도록 하였다.
둘째로 전천년주의자들은 더좋은 부활(히11:35)이나 생명의 부활(요5:29), 의인들의 부활(눅14:14),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살전4:16)과 같은 어떤 특정한 구절에 호소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지 천년의 간격을 두고 서로 분리된 두 번의 부활이 잇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증거가 아니다.
셋째로 전천년주의자들은 고전15:22-24을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 신자들의 부활, 악한자의 부활을 추론해내고 있다. 그러나 이것에는 즉각적이 아니라는 개념이 바탕이 된 해석이다.
넷째로 전천년주의자들은 계20:4-6에 근거하여 5,절이 첫 번째 부활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두 번째 부활을 암시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4-6절은 땅위가 아닌 하늘의 장면이다. 즉 지금 일으키심을 받은 인격이나 몸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왕노릇하는 영혼들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서 왕노릇하는 이것을 첫 번째 부활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6. 최후의 심판
1) 역사적으로 본 최후의 심판의 교리
뻘콥은 초대교회의 최후의 심판의 교리는 죽은 자의 부활과 연결되어 육신에 있을 때 행한 일에 따라 심판을 받기 위해 부활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며, 중세에는 죽은 자의 부활 뒤에는 바로 전체적인 심판이 있을 것이며 이것이 사람들에게는 시간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에게도 이러한 견해가 대체적으로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칸트, 쉘링, 폰 하르트만 등은 미래의 심판의 사상을 부인했으며,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이 심판을 현존하는 내재적 과정이라고 간주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2) 최후의 심판의 성격
뻘콥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최후의 심판은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섭리와 동일한바 영적이고, 비가시적이며 무한한 과정으로(신9:5, 시9:16, 37:28, 59:13, 잠11:5, 14:11, 사32:16,17, 애5:7) 간주될 수는 없음을 분명히 하고, 성경을 근거(마25:31-46, 요5:27,29, 행25:24, 롬2:5-11, 히9:27, 10:27, 벧후3:7, 계20:11-15)로 마지막 심판의 분명성을 말하고 있다.
7. 심판에 대한 잘못된 견해들
뻘콥은 심판에 대한 잘못된 견해들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 순전히 형이상학적인 심판으로 슐라이에르마허와 다른 독일학자들의 견해인데, 심판을 세상과 교회의 최종적 분리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으로 이해하고 있다.
2) 순전히 내재적인 심판으로 세계의 역사는 세계의 심판이다라는 쉘링의 금언이 진리의 일면을 담고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순전히 내재적이어서 세계의 도덕적 질서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3) 심판을 단일한 사건이 아닌 것으로 보는 견해로 전천년주의자들의 개념이다. 이들은 첫째로 파루시아 즉 주님의 강림시에 부활하여 살아있는 성도들이 받는 심판, 둘째 대환난 직후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주의날)때 있을 심판, 셋째 계20:11-15에 묘사된바 크고 흰보좌 앞에서 받는 악한 죽은 자들의 심판 등을 말하고 있다.
4) 최후의 심판을 불필요하다고 보는 견해이다. 즉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잠들면 구원을 받고 죄 가운데서 죽으면 멸망을 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8. 심판과 그 조력자들
뻘콥은 하나님의 모든 외부적 사역(opra ad extra)과 마찬가지로 최후의 심판 또한 당연히 삼위 하나님의 사역으로 보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성경은 이 최후의 심판을 특별히 그리스도께 돌리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요5:27, 행10:42, 17:31, 빌2:10, 딤후4:1). 이러한 심판의 권한은 마28:18, 요5:27, 빌2:9,10에 근거해서 볼 때 속죄적 죽음에 대한 보상으로서, 또 그의 높아지심의 한 부분으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영예가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께 주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조력자에 관해서는 마13:41, 42, 24:31, 25:31과 같은 구절에서 추론할 수 있는 바는 이 큰 역사에서 천사들이 그를 도울 것이라는 사실과 시149:5-9, 고전6:2,3, 계20:4을 근거로 성도들은 분명 어떤 의미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심판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9. 심판을 받게될 무리들
뻘콥은 심판을 받게될 무리들은 타락한 천사들(마8:29, 고전6:3, 벧후2:4, 유6)과 모든 사람임을 말하고 있다(전12:14, 시50:4-6, 마12:36,37, 25:32, 롬14:10, 고후5:10, 계20:12). 그러면서 신자들의 죄가 비록 용서받은 죄로서이기는 하겠지만도 하나님 앞에서 역시 드러나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마12:36, 롬2:16, 고전4:5, 마13:30, 40-43, 49, 25:14-23, 34-40, 46).
10. 심판의 시기
뻘콥은 심판은 예수그리스도의 강림(파루시아)에 수반된 사건일 것이며, 죽은 자의 부활직후에 있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천지의 갱신직전이 될지, 동시적일지, 혹은 그 직후에 일 것인지는 성경적 기초위에서 확정하기란 어려우며, 또한 심판 날이 정확히 24시간의 하루라고 추론할 필요는 없음을 말하고 있다.
11. 심판의 표준
뻘콥은 심판의 표준은 분명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뜻임을 밝히고 있다. 즉 이방인들은 그들의 마음에 새겨진 자연의 법에 따라서, 옛세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의 계시에 의해서만, 그리고 자연의 빛과 구약의 계시 말고도 복음의 빛을 누린 사람들은 그들이 받았던 것보다 큰 빛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의 의의 옷으로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지만 천국의 복락과 지옥의 형벌에 있어서는 육체에 있었을 때 행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임을 말하고 있다(마11:22,24, 눅12:47, 48, 단12:3, 고후9:6).
12. 심판의 다양한 부분들
뻘콥은 심판 때 하나님께서는 사건의 상태, 즉 마음의 생각과 은밀한 의도를 포함한 사람의 과거생활 전부를 심리하실 것인데, 책을 열어 펴는 것이 바로 이것을 상징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즉 책의 비유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관한 언급이라는 것이다(계20:12). 또한 각 사람에 대한 판결은 모두에게 알려져서 하나님의의와 은혜가 찬란하게 빛날 것임을 말하고 있다. 이 판결로 인해서 의인은 영원한 복을, 악인에게는 영원한 불행을 초래할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13. 최후의 상태
1) 악인의 최후의 상태
재림론자(안식교)나 여호와의 증인으로 대표되는 멸절론자들은 영원한 형벌의 장소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고, 현대 자유주의신학에서는 지옥이라는 말은 대개, 사실상 지상에 있는 것이지만, 뻘코은 성경에 근거하여 마18:9의 불의 게헨나, 13:42의 풀무불, 불못(계20:14,25), 옥(벧전3:19), 무저갱(눅8:31), 어두운 구덩이(벧후2:4)등이 장소를 가리키는 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면서 악인은 이곳에 거하게 될 것임을 말한다. 결국 악인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은총이 젼혀 없고, 죄가 완전히 지배하는데서 생기는 생활의 끝없는 혼란, 육신과 영혼의 극심한 고통과 고난, 양심의 가책, 고뇌, 절망, 비찬, 이를 갈등의 주관적 형벌들(마8:12, 13:50, 막9:43, 44, 47, 48, 눅16:23,28, 계14:10, 21:8)을 받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다(마11:22,24, 눅12:47,48, 계14:11, 20:10, 마18:8, 살후1:9, 계14:11, 20:10)
2) 의인의 최후의 상태
신자들의 영원한 상태가 오기 전에 현재의 세상이 사라지고 새로운 창조가 있게 될 것인데(마19:28, 행3:21, 히12:27, 벧후3:12,13, 계21:1), 시102:26, 27, 히12:26-28에 근거하여 이것은 지금 있는 창조물의 갱신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의인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곳에서 거처하게 될 것이며, 영생, 즉 하나님과 영원토록 교제하게 될 것임을(마25:46, 롬2:7, 계21:3), 말하면서 이것은 영적인 것 뿐만아니라 몸에 상응하는 어떤 것도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뻘콥은 천국의 기쁨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인데(단12:3, 고후9:6), 우리의 선한 행위는 공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받는 은혜의 상급의 척도가 됨과,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개인의 즐거움은 완전하고 충만할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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