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 오경

[스크랩] 에덴 동산에서 추방

하나님아들 2014. 6. 24. 16:31
제목:에덴 동산에서 추방
본문:(창3:20-24)
주요내용:복음론
작성자:한성진(합동총신졸)
자료출처:http://cafe.daum.net/agaser

요 약
에덴 동산 추방은 인류사에 최고의 비극 사건이지만 예수 안에서 영원한 축복으로 바뀌었다. 예수로 말미암아 다수 자손 파멸의 위기에서 많은 아들들이 생명에 이르고, 예수 안에서 가죽옷도 영원한 구원의 복음으로 바뀌고, 선악과를 먹은 운명도 생명과를 먹는 운명으로 바뀌었으며, 지상의 땅만 갈다가 갈 저주의 사람들이 축복의 심령 천국의 땅을 갈다가 가게 되었으며, 영원한 실낙원이 예수 안에서 복락원으로 바뀌었다.

설 명

◎ 그리스도 복음의 권세

(중요 요점)
☞ 저주도 예수 안에서 축복으로 바뀜
현재의 고난도 예수 안에서 축복 덩어리

1. 산 자의 어미(20절)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예표
다수 후손 파멸 위기 → 많은 아들들을 생명으로

2.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심(21절)
모르면 옷 → 알면 복음

3.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22절)
선악과 인생 → 생명과 인생

4.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심(23절)
저주의 지상 땅 → 축복의 천국 땅

5.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심(24절)
실낙원 → 복락원

(본문)
20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3:20-24)


(강해)
이 시간에는 '에덴 동산에서 추방'이라는 제목으로 인류의 시조인 아담 부부가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한 사건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시되 영생의 존재로 창조하셨지만 참으로 아쉽게도 범죄함으로 그 복을 누리지 못하고 동산 밖으로 추방당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 최고의 비극사건은 창 3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시간 우리 인생이 아담 안에서 받게된 비극과 그 비극을 축복으로 바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럼 먼저 아담의 타락으로 우리 인생이 당한 비극은 무엇입니까?

1. 집단적인 불행을 영원히 당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20절에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했습니다.
여기 하와란 '생명'이란 뜻입니다. 아담이 아내의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것은 하와가 모든 산 자의 어미 즉 전 인류의 어머니가 될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이런 이름을 지었다는 것은 등골이 오싹할 만큼 놀랄 일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사실 그렇게 이름을 짓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자손 대대로 생육하고 번성하되 무수한 불행들을 낳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 때 하나님께 자식을 낳을 수 없다고 부르짖어야 했었습니다.
그럼 그 불행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수고와 고통과 슬픔과 죽음과 나아가서는 영원한 지옥 불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의 대규모적인 비극입니다. 즉 그들이 겪을 비극은 두 사람으로도 족할 텐데 그의 수많은 자손들까지도 동일한 비극을 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지금 예수 없는 사람들의 비극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없다면 우리는 세상에 태어난 것만 해도 비극입니다. 자녀를 많이 갖는 것도 모두 지옥 보낼 것이므로 더욱 비극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없이 하는 모든 것을 알고 보면 그 본질이 모두 죄악입니다. 비록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타락 전에는 낳으면 모두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낳으면 죄인일 뿐입니다. 이것이 예수 없는 타락한 죄인들의 인생관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들은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저주를 영원한 축복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오시므로 우리가 영광스런 구원의 반열에 참여하게 되고 하와는 육신의 어머니에 그치지 않고 영광스런 교회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의 의미요 소망입니다. 예수 없이 우리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가 있기에 태어난 것도 감사하고 평안할 때나 환난의 때에나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아담이 아내를 하와라고 이름을 지은 것은 장차 나타날 여자의 후손(15절) 즉 그리스도에 관한 믿음 때문이었다 라고 주석하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이 없다면 가죽옷도 귀한 복음이 되지 못합니다.

21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먼 고생길을 떠나는 자식에게 보따리를 챙겨주시는 어미의 심정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제 에덴을 떠나 거친 땅을 일구며 살아갈 아담 부부에게 손수 질기고 튼튼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주석가들은 이 부분을 원시계시로 이해합니다. 즉 이 때 희생된 짐승은 구약 희생 제물의 예표요 나아가 장차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상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게시는 이 가죽옷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보아야지 예수 없는 가죽옷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작업복일 뿐이며 떨어지면 누더기 되어 던져질 옷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만약 예수가 없다면 아무리 하나님의 크신 구속의 사랑으로 마련된 희생 제물이라도 그것은 아무 의미 없는 하나의 종교로 보일 뿐입니다. 본문의 가죽옷의 의미가 그토록 귀한 것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모른다면 그것은 마치 성경을 읽고 율법에 따라 동물제사를 드리면서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던 유대인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면 그 귀한 성경도 하나의 고전으로 보이고 밉니다. 평생 소원이 있다면 성경 66권을 이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보다 보다 더 각인의 심령에 와 닿는 생명의 양식이 되도록 주석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보더라도 거기서 예수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거기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하셨습니다. 그래서 수건을 벗고 성경을 보라고 했는데 수건을 벗고 보는 법이란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내용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후3:14에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아무리 귀한 하나님의 연단의 손길일지라도 예수를 잘 믿도록 하시는 것으로 보지 않으면 그것은 일생을 받아도 소득 없는 무가치한 고통일 뿐입니다. 우리는 신구약의 모든 세계의 역사도 예수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그 역사가 풀려집니다. 우리는 저주받은 아담 후손으로서 의미 없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는데 예수로 말미암아 삶의 의미를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3. 인생은 선악과의 인생으로 영생할 길조차 막혔습니다.

22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셨습니다.
이 말은 인간의 범죄에 관한 하나님의 한탄 섞인 말씀입니다. 본문은 아담은 이제 선악과를 먹었으니 생명과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불행한 우리 인생에게 생명과조차 먹어서는 안되다니 얼마나 비극적입니까? 사람들간은 지금 죽지 않고 사는 방도를 찾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과의 길을 막으신 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만약 죄인이 생명과를 먹으면 다시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영원한 죄인이 되어 구제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볼 때는 선악과는 먹었지 영생할 길도 없지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이것이 선악과 인생인 우리들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답답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선악과의 운명을 생명과의 운명으로 바꾸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2:7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또 요6:51에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셨습니다.
즉 예수 믿으면 영원히 산다는 교훈입니다. 그러니까 생명과는 바로 영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성도에게도 육체의 죽음은 있지만 이것은 오히려 성화의 복된 과정이요 온전히 간수하시는 견인 은총의 특별한 은혜일 뿐 다시 영광의 형체로 변화되어지게 됩니다.

4. 인생은 일생 저주의 땅을 갈다가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23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했습니다.
마치 삼손이 원수들에게 눈 빼임을 당하고 맷돌을 돌리면 죽어가야 했던 그 비참한 운명과 같습니다. 이처럼 타락한 인간은 오직 먹고 자고 일하고 먹고 자고 일하고 이렇게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다가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직업은 다를지라도 결국 본질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없는 삶은 토지만을 갈다가 죽는 의미 없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예수님께서 지상의 토지가 아니라 이제는 심령의 옥토 밭에 하나님 나라를 일구게 하시고 나아가 저 영원한 천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3:20에서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잘 믿고 믿음으로 살면 이제는 저주의 세상 밭이 아니라 우리의 활동 하나 하나까지도 저 천국에 축복을 쌓는 삶이 됩니다. 우리는 잠시 지상의 논밭을 갈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며 감사하므로 감당할 때 그것까지도 모두 생명으로 바꾸어지며, 하나님께 충성한다는 마음으로 매사에 임할 때 그 보수를 우리는 하나님께 받습니다.

6. 예수님 없는 인생은 영원히 실낙원일 뿐입니다.

24절에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그룹천사로서 지키게 하신 목적은 에덴 동산에 사람의 접근을 막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사 그 누구도 들어가다가는 죽을 수밖에 없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없는 인생에게 하나님 나라는 영원히 들어갈 수 없는 실낙원일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실낙원은 복락원으로 바뀌었고, 에덴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의 문도 활짝 열리었으며 또 앞길을 막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데리러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14:6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히10:20에는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막는 천사가 아니라 영접하여 인도하는 천사요, 이제는 죽이는 화염검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우리를 보호하시는 화염검이 되었습니다. 계21:24-25에 보면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하셨습니다.

<결론>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에덴에서 추방당한 이 사건은 예수 밖에서는 영원한 저주입니다. 예수 없는 인생이야말로 참으로 불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이 불행이 다 축복으로 바뀝니다. 은혜로 바뀝니다. 복음으로 바뀝니다. 생명으로 바뀝니다. 현재의 고난도 예수 안에서 보면 보화 덩어리로 다가옵니다. 그 뿐 아니라 죽음까지도 성화와 영화와 견인의 특별한 은총으로 바뀝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고 저주를 축복의 강물로 바꾸시는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탄식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하신 이 귀한 축복을 믿음으로 마음껏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운영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