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위한 일을 하라
요한복음 6:26-33
교회 주소/ 서울 노원구 상계5동 136-55 유백선 목사 ybs91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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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 기자가 쓴 “수달의 꿈”이란 우화(寓話)가 있습니다. 젊은 수달이 강 한가운데 커다란 섬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나뭇가지며, 흙과 돌을 퍼 날랐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쌓이는가 싶으면 거친 물살에 휩쓸리고, 폭우에 떠내려갔습니다. 젊은 수달은 힘도 빠지고 속이 무척 상해 있었습니다. 그때 나이가 지긋한 수달이 찾아왔습니다. 젊은 수달은 경험 많은 수달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경험 많은 수달이 젊은 수달에게 자신이 만든 섬을 보여 주었습니다. 경험 많은 수달은 가끔씩 둘러볼 뿐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자 섬이 점점 형태를 갖추었습니다. 젊은 수달이 물어봅니다. “나는 열심히 노력하고 애써도 안 되던데... 어떻게 저렇게 큰 섬을 만들었습니까?” 경험 많은 수달이 말했습니다. “자네가 하려는 생각을 버리게. 그러면 거대한 물의 흐름이 느껴지지. 그리고 그 물을 흘러가게 만드는 더 큰 생명력을 감지할 수 있다네. 나는 다만 그 힘이 적당한 때와 장소에 섬을 만들어 내도록 방해하지 않았을 뿐이라네.” “그런데 조바심과 두려움, 걱정 때문에 잠시도 기다릴 수가 없는데요.” “모든 것이 ‘내가 한다’라는 생각 때문이라네. ‘내가’만 빠지면 그 자리에 생명력이 들어서지. 그때 모든 걱정과 두려움은 허상임이 드러나고 기적은 일상이 된다네.”
여러분! 사람들은 저마다 큰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뭔가 큰 성과를 내고, 크게 만들고 싶어 하죠. 무엇이 일의 성과를 내는 것일까요? 동기부여와 인센티브로 사기를 북돋아주면 높은 성과를 낼까요? 이런 것들은 단기적인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에너지가 소진되어 지속적인 성과를 창출할 수 없습니다. 일의 성과를 내려면 다양한 에너지의 원천을 골고루 활용해야 합니다. 그 다양한 에너지가 무엇입니까? 쉼을 통해 신체적인 에너지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회개와 죄 사함을 통한 감성적인 에너지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진리를 알고, 진리를 행하여 지성적인 에너지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성령의 인치심과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영적인 에너지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무엇이 일의 성과를 방해하는 것일까요? 내가 하려는 생각입니다. 내가 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거대한 물의 흐름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성과를 냅니다. 내가 빠져야 그 자리에 생명력이 들어섭니다. 내가 한다는 생각이 앞서면 걱정이 마음을 누릅니다. 내 생각이 꽉 차 있으면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내 생각으로 채워져 있으면 마음에 두려움도 함께 채워져 있는 것입니다. 내가 빠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내 안에서 일해야 합니다. 내 안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야 기적이 일상이 됩니다.
오늘 본문은 빈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 어제 배고픔을 해결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다음 날에 또 거기에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안 계셨습니다. 제자들도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배들을 타고 예수님을 찾으러 가버나움에 갔습니다. 바다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인사했습니다.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까? 떡을 먹고 배부름을 위해서입니다. 본문 26절을 보세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들)을 본 까닭이 아니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여기서 “표적(세메이아/σημεια/semeia)”은 “(초자연적으로 나타난 기적의) 지시, 신호, 표시, 이적”을 뜻합니다. 여러분은 기적과 표적이 어떤 뜻인지 아세요? 기적(테라스/τερας/teras)은 상식을 뛰어넘는 기이한 일입니다. 기적은 밖으로 드러난 초자연적인 능력입니다. 기적은 외적인 현상으로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표적(sign)은 기적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인지, 기적의 목적이 무엇인지, 기적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타내는 내면의 표현입니다. 표적은 영안이 열려야 내면적인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왜 표적을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사람들이 빈들에서 배고파했을 때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고픔을 해결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기적을 보고, 기적의 목적을 알기 원하셨습니다. ‘왜 오병이어로 기적을 행하셨을까? 그 기적의 의미가 무엇인가?’ 알기 원하셨습니다. 나에게 기적을 보여주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나의 생명을 살려주신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나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게 하신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표적을 보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요 20:31)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성령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서 기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히 2:4)
왜 표적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살려주신 의미를 알아야 값진 인생을 살기 때문입니다. 내가 배고플 때 굶주린 배를 채워 주신 이유를 알아야 배고픈 사람들을 고통을 알고, 섬기는 것입니다. 내가 아프고, 병들었을 때 낫게 하신 이유를 알아야 병든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치유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실패했을 때 위로와 소망을 주신 이유를 알아야 실패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실패를 성공의 디딤돌로 이끌어 줄 수 있습니다. 내가 성공했을 때, 그 의미를 알아야 감사하고, 겸손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위한 일로 섬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하나님의 일입니다.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장작불을 땔 때 난로 앞에 새겨놓았던 글이 있습니다. “장작을 몸소 패면 겹으로 더워진다.” 무슨 의미입니까? 몸이 추워서 불을 쬐려고 하면 불속에 들어가도 찬 기운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장작을 패면 패면서 열이 나서 덥고 불을 피워서 덥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재산이 많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버지는 돈을 벌면서 얻는 행복을 물려줄 수 없습니다. 땀을 흘리고, 얻은 노동의 가치를 물려받을 수가 없습니다. 공짜로 얻은 것은 더 큰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늘 얻어먹는 것은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 언제나 복이 있는 삶을 살려면 복된 길로 향하는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이 주어지고, 주신 복을 깨닫고, 주신 복을 즐기고, 복의 가치를 지켜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만들어 주셨을 때 그냥 편하게 놀면서 지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에덴의 행복을 가꾸고,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에덴의 행복이 안일한 삶이 아라는 것입니다. 자유를 주셨지만 방종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에덴의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로 듣고, 믿고, 순종하고, 생명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때, 그 복의 개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축복의 원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에게 주신 축복을 유지하고, 지킬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된 여건을 주신 것이 아니라 복된 사람으로 사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복을 복으로 알아야 분복을 즐기고, 복을 복되게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알아야 은혜 위에 은혜가 더해지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증거했습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16)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은혜 위에 은혜가 더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행하신 오병이어(五餠二魚)의 표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기적을 행하셨을까? 도대체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표적을 보이신 목적이 무엇일까?’ 이 표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서 감사의 능력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들고, 감사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시고, 나눠줘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순종하고, 말씀의 능력을 알기 원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보면서 표적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다시 찾아온 이유가 떡을 먹고 배부른 이유였습니다. 떡을 먹고 배부른 사람은 먹고 돌아서면 또 배가 고픕니다. 빵을 먹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는 사람은 기적을 보았고, 배를 채웠지만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찾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픈 곳을 치유받기 위해서입니까?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 행복하기 위해서? 재물과 부귀영화를 위해서? 축복을 받기 위해서입니까? 배고픔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서입니까?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나의 관심이 예수님의 관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나의 믿음이 예수님의 믿음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안에 예수님의 능력이 있고, 내 삶에 예수님의 기적이 일상화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을 찾고, 무엇을 위해서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까?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합니까?
여러분! 예수님께서 무엇을 위해서 일하라고 하셨습니까? 본문 27절을 보세요. “썩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하라.” 여기서 “썩을 양식(브로신 텐 아폴뤼메넨/βρωσιν την απολλυμενην/brosin ten apollymenen)”이란 “완전히 파괴하는 양식, 죽게 하는 음식, 잃게 하는 먹는 행위, 손상시키는 음식, 멸망시키는 영혼의 양식”을 뜻합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메누산 에이스 조엔 아이오니온/μενυθσαν εις ζωην αιωνιον/menythsan eis zoen aionion)”은 “영생하게 하는 양식, 영생에 거하는 양식, 죽지 않게 하는 양식, 영생에 들어가게 하는 양식, 계속해서 영생하게 하는 양식”이란 뜻입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일할 때 두 가지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지금 썩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가?’
사람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하려면 행복으로 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 과정에 일이 있습니다. 행복한 삶을 사는 과정에서 삶의 일을 세 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생업입니다.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자기도 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입니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G. Bernard Shaw)가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바보스러운 사람은 자기 직업을 의무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부양해야 할 의무감에 사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어느 장로님에게 “어떤 일을 하십니까?” 물었더니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쩔쩔매며 겨우 대답했대요. “신탄진 담배 공장에 나갑니다.” 어떤 집사님은 “탁주 공장에 나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생업이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나가는 것입니다.
둘째는 직업입니다. 직업은 일 자체를 즐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 하실 때 불평하지 마세요. 일하는 것 자체가 감사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퇴직하고, 병들어 일하지 못할 때 그 답답함을 아십니까? 일의 고마움을 알아야 보람 있고, 감사합니다. 일하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자신이 소질과 전문성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즐거운 것입니다. 영국의 처칠은 곁눈 팔지 않고 정치를 즐기는 정치가로 살았고, 피카소는 그림으로, 토스카니니는 음악으로 살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평생 휴식을 갖지 않고도 90세가 넘도록 살았습니다. 왜? 일 자체가 즐거움이고, 휴식으로 여기며 즐겼기 때문입니다. 직업인은 그 일을 위해서 살고, 그 일을 즐기고, 그 일에 자신을 전부 바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전도하실 때 제자들이 음식을 준비해서 왔습니다. “주님, 좀 드십시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을 전도하여 구원 받는 것을 보면서 배고픔이 다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휴식법이었습니다.
셋째는 천직입니다. 천직은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축복이요,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이루신다고 믿고 사명감을 갖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자기의 천직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내 천직이기 때문에 다른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라고 고용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고, 어디서든지 즐거워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얻어맞고, 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거기서 불평하지 않고,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왜? 복음전도자의 사명을 천직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목적과 방향이 잘못되면 피곤합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피곤합니다.
현대 독일의 대표적인 언론가요, 저술가 폴프 슈나이더가 자신의 행복에 관해 사색한 것을 정리하여 <진정한 행복>이란 책을 냈습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로또 백만장자가 행복할까? 고통이 판치는 세상에서 미덕을 행하는 것이 행복할까? 행복은 만들어질 수 있을까? 권력과 돈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나의 행복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종교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까? 옛날부터 행복에 관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이야기를 해왔다. 그러나 행복에 관한 정답이 없다. 만약에 행복의 정답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이 세계를 행복으로 가득 채웠을 것이다. 우주는 행복을 산출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물리법칙이나 진화의 법칙 속에도 행복을 위한 공간이 없다. 행복을 기필코 달성해야 한다고 목표로 생각한 사람은 절대 행복할 수 없다. 단칼에 행복해질 수 있는 처방이 없다. 사소한 인생의 즐거움을 소중히 여겨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라. 삶에 주어진 고통과 두려움을 담대하게 수용하라. 영혼을 풍요롭게 하지 못한 것은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삶의 매순간을 성취된 것으로 바라볼 준비를 하라. 행복이 지상의 최고 목표가 될 수는 없다. 행복이 인생의 최고 목표일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수많은 불행이 야기된다... 전도서에서는 뭐라고 충고하는가? 인생을 실험하지 말라는 것이다.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전 12:1)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여러분! 어떻게 해야 생명을 위하고, 하나님의 일을 합니까? 본문 29절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예수님)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양식을 주십니다. 의와 봉사는 힘겨운 의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과 순교가 고통이 아니고, 수치가 아닙니다. 왜?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이 우리를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시작이요, 일은 삶의 지속입니다. 믿음은 안이요, 일은 겉입니다. 믿음은 동기요, 일은 그 결과입니다. 믿음은 뿌리요, 일은 열매입니다.” 예수님을 확실히 믿으면 무슨 일을 하든지 거룩한 일입니다. 왜? 내 일의 목적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 일의 결과도 거룩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즐거움, 배부름을 생각하고, 일하지 마세요. 왜? 늘 원망과 불평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위한 일은 복되고, 분명한 목적이 있고, 확실한 의미가 있습니다.
부흥사 찰스 피니가 말했습니다. “교회의 신자들이 하나님의 관심보다도 그들 자신의 관심에 더 열중할 때 부흥은 곧 멈출 것이다. 세상 일보다 하나님의 일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위대한 부흥을 이루었다고 자랑할 때 부흥은 곧 끝날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와 인간 자랑은 함께 공존하지 못한다.” 이제 하늘에서 내려주신 하나님의 떡을 세상에 주어 생명을 얻도록 일합시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할 때 영원한 가치가 있고, 활기차고, 행복한 일꾼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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