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은혜와 교제의 감사
고린도전서 1: 4- 9
교회 주소/ 서울 노원구 상계5동 136-55 유백선 목사 ybs9191@hanmail.net
상담 : 02) 6221-6468, 010-8346-6468,
국내 유수기업의 컨설팅 자문을 해주고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가르치는 한근태 교수님이 강의를 다니면서 수많은 고수들을 만났습니다. 또한 최고경영자과정 주임 교수를 하면서 700여명의 고수들을 만나면서 고수가 어떤 사람인가?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은 어떻게 고수가 되었는가? 고수와 하수를 가르는 50가지 통찰력을 담아 <일생에 한 번은 고수를 만나라(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사는 법)>이란 책을 냈습니다. “나는 고수들을 만나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세상에는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깨달음이 왔다. 최고가 되려면 최고에게 배워야 한다. 고수를 만나야 고수가 된다. 고수는 혼자 힘으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잠들기 전 10분이 나의 내일을 결정한다. 고수로 가는 길은 몇 가지가 있다.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잡종이 강세다. 고수는 일이 없을 때 사람을 만난다. 반면에 하수는 일이 생겨야 사람을 만난다. 그러니 일이 풀리지 않는다. 고수는 미리미리 일처리를 하면서 변수에 대비하는 능력이 있다. 고수는 복잡한 문제를 간단하게 만든다. 날마다 다른 사람과 밥을 먹어라. 한계에 도전하는 경험을 가져라. 왜? 도전이 기회를 만드니까. 사람들은 도전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까지는 사람들은 절대 자신의 잠재력을 알지 못한다. 비울수록 채워진다. 고수는 호기심이 강하다. 호기심은 배움의 출발점이요, 성공의 필수조건이다.
예를 들면, 1967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건설사 대표 4명(현대, 대림, 삼환, 삼부토건)을 초대하여 소양강댐 계획을 말한다. 건설사 대표들의 머릿속이 복잡해 있었다. ‘이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까? 어떻게 해야 이 공사에 참여할까? 낙찰가, 입찰가는 얼마 정도 될까?’ 그런데 현대건설의 정주영 대표는 달랐다. 회사로 돌아와서 다른 임원들을 다 보내고 재무담당만 불러 현금을 얼마나 갖고 있나? 당장 현금보유를 두 배로 늘리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소양강댐으로 인해 상습침수 지역을 벗어나게 될 곳을 지도상에 그리고 그 땅을 집중적으로 매입하기 시작한다. 그곳이 압구정동이다. 이처럼 고수는 보는 눈이 다르고 정보에 대한 해석도 다르다. 홍콩의 리카싱은 부자지만 존경을 받는다. 왜? 그는 10-11-9의 원칙을 삶의 철학으로 삼았다. “10% 이익을 얻는 것이 합리적이다. 11%를 가져도 무리는 없다. 하지만 그럴 때는 9%만 가지라.” 그러면 돈도 얻고 인심도 얻게 된다. 덕으로 곳간을 채워야 한다. 고수는 자기만을 보는 대신 이웃을 보는 사람이다. 작은 욕심 대신 큰 욕심을, 단기적인 욕심 대신 장기적인 욕심을 부리며 사람을 얻는다. 이익보다 사람을 남겨라. 내가 하면 자랑이 되고, 남이 하면 칭찬이 된다. 긍정을 긍정하라. 절제의 정도가 승부를 가른다. 귀인을 만나고 귀인이 되어라....“
여러분! 지금까지 어떤 고수들을 만난 경험이 있습니까? 그 고수들과 더불어 얼마나 교제하고, 어떻게 교제를 했습니까? 믿음의 고수들, 기도의 고수였던 조지 뮬러 목사님은 몸이 허약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일찍 일어나 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말했습니다.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을 하나님께 기꺼이 바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들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능력과 여러 가지 도움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아침 기도와 말씀 묵상은 내 모든 사역의 발전소와 같은 역할을 했다. 기도하는 심령과 눈에 신비한 성령의 빛이 가득하다. 생명력 있는 생활로 나가며 어려운 일이 닥쳐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다.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 거룩한 동행을 통해 평안을 얻는다.” 그렇습니다. 주님과 교제하는 그 시간이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지금 내가 가장 즐겁고, 행복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개척하고 아볼로에게 고린도교회를 맡겨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며 선교활동을 하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다가 에베소에 머물러 있었는데, 고린도교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을 들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신앙적인 지침과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와 더불어 교제하고 있다고 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은혜로 표현했습니다. 본문 4절을 보세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예수’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세요?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 종교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말은 예수님은 구원자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부활하게 하신 후에 그리스도(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성령 충만을 받고 유대인들에게 증거했습니다.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행 2:36)
여러분! 오늘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부활하게 하셔서 우리의 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에게는 꼭 ‘주님(퀴리오스/κυριος/kyrios)’이라는 칭호가 붙습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계시를 보고 증거했습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항상 교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교제해야 합니까? 첫째 이유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야 영안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삽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슬픔이요, 낙심이요, 실망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를 만나고, 영안이 열리면 십자가 사건을 십자가 복음으로 증거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던 사도 바울이 증거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고전 1:18) 그래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왜?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롬 1:16) 우리가 계속해서 복음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고, 하나님의 능력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사람은 십자가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증거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와 교제하고, 왜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합니까? 본문 6절을 보세요.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여기서 “견고하다(에베바이오데/εβεβαιωθη)”는 말은 “확고하게 하다, 확증하다, 확립하다, 입증하다, 확인하다”라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막 16:20)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때 주께서 함께 역사하십니다. 부활을 증거할 때 기적을 보여주시고, 표적을 보고 기적의 의미를 깨닫게 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말씀, 그 능력을 체험한 사람이 증거합니다.
무슬림의 땅 방글라데시에서 16년 동안 복음을 전했던 박천록(53세) 선교사님이 쓴 <사명(4차원의 믿음으로 1만 명의 무슬림에게 세례를 베풀다)>이란 책에서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저는 (주)동아건설산업에서 5년간 근무를 했습니다. 28세 때 폐병 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죽음 앞에서 절망하는 도중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투병 중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일주일 금식기도 끝에 폐병이 치유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전도사로 교회를 개척했는데, 귀신들린 청년을 고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경험했던 것처럼 저도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다가 감방에 가고, 감옥에서 죄수들에게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갇힌 죄수 집사가 기도응답을 받고 풀려났습니다. 그 후에 저는 이슬람신앙인이 90%가 되는 방글라데시에 선교사로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선교사 신분을 감추고 사장이나 선생 이름으로 살았습니다. 그러자 복음 대신에 사업 이야기와 취업 부탁을 했습니다. ‘이것은 아닌데...’ 그래서 사장 직함을 버리고 ‘브라더’로 바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친근하게 다가와서 빈민들에게 약을 사주고 기도하며 전도했습니다. 빈민가 사역을 하면서 3개 교회(몰라떽교회, 통기교회, 도킨칸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초등학교 2개, 양로원 하나를 세웠습니다. 현지인들이 ‘브라더’라고 부르며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이슬람 세력의 폭력과 탄압이 시작되어 초기 성도들이 고난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방글라데시가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이슬람 국가에서 강압적으로 개종시킬 수 없습니다. 현지인들을 돕고 복음을 전할 때 스스로 개종하고 세례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한 달에 수십 명, 어떤 때는 100명 이상에게 세례를 베풀기도 했지요. 그럴 때면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느꼈지요. 16년 동안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두 번 추방당했습니다... 4차원의 믿음은 물질세계를 초월하여 영의 세계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4차원의 믿음은 역사와 기적이 일어납니다. 가장 효과적인 전도방법은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믿고 그대로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4차원의 믿음으로 내게 주신 은혜를 증거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증거 할 때 모든 은사를 부족함이 없이 주십니다. 본문 7절 상반절을 보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사실 고린도교회는 많은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교회에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왜? 4차원의 믿음으로 복음을 증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까?
둘째 이유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야 자기 사명을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던 두 제자는 예루살렘에서 25리 떨어진 엠마오로 갔습니다. 제자훈련을 받았지만 자기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자기 사명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늘 과거의 회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잔치에 갔는데, 포도주가 떨어진 거야. 얼마나 난처했겠어. 그때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말했어. 무엇을 시키든지 그대로 하라고. 예수님이 물을 항아리에 채우라. 그리고 그 물을 떠다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는 거야. 연회장이 물맛을 보더니 좋은 포도주를 내왔다고 칭찬하더라구. 물이 언제 포도주로 변했을까?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고 부스러기가 12광주리에 담았지. 중풍병자를 살리고, 나병환자를 살려주셨지. 희한하더라니까...’ 제자들은 수많은 기적을 보았지만 기적을 보고도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내 사명(mission)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사명은 내가 왜 이 땅에 존재하는가? 존재 의미를 알아야 사명을 감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은혜를 주셨는가? 왜 나에게 믿음을 주시고, 믿음으로 구원해주셨는가? 구원의 의미를 알아야 구원의 복음을 증거합니다. 구원의 의미를 알아야 구원 받은 자로서 사명과 역할을 감당합니다. 본문 9절을 보세요.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여기서 “미쁘다(피스토스/πιστος/pistos)”는 말은 “믿을 만한, 신실한, 신뢰하는, 확신하는, 충성스런”이란 뜻입니다. 어떻습니까? 나는 믿을 만한 사람입니까? 신실한 사람입니까? 신뢰하는 충성스런 일꾼입니까?
셋째 이유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야 죽음의 권세를 이기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죽음의 권세를 이길 수 없습니다. 원로 언론인 강한필 씨는 아내가 난소암으로 5년 6개월 27일(2,042일)을 투병생활 할 때 간병하면서 쓴 일기입니다. “집 옆 공원길을 돌다 네 잎 클로버를 찾았다. 그것도 여섯 개나... 아내는 흥분한 상태로 집에 돌아와 클로버를 책갈피에 끼워 넣고 장식장 위에 보배처럼 올려놓았다.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만들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러나 아내는 갔다. 고통도, 집착도, 미련도, 모든 것 다 털어버리고 훨훨 천사가 되어 날아갔다. 끝내 붙잡지 못하고 보낸 아내가 아깝고 측은해 울고, 내 신세가 처량해 울고 또 울었다.” 인간이 죽음을 이길 수 없는 한계와 안타까움이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여러분! 죽음의 권세와 맞서 싸울 능력이 무엇입니까? 부활신앙으로 세운 메시야공동체입니다. 부활신앙인은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고백이 있습니다. 그 고백 위에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부활신앙인은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고 항상 그리스도와 교제합니다.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내일의 주인공이 됩니다. 왜? 그리스도께서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을 보세요.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여기서 “책망할 것이 없다(아넹클레토스/ανεγκλητος/anegkletos)”는 말은 “결백한, 흠 없는, 비난할 것 없는, 야단칠 수 없는, 고소할 수 없는, 이유를 물을 수 없는”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교제할 때 어떤 은혜를 주십니까? 그리스도께서 부활신앙으로 책망할 것이 없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우리를 비난할 것 없게 하십니다. 부활의 주님이 우리의 죄를 고소할 수 없게 하십니다. 부활의 주님이 우리를 흠 없게 하십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한다.”(살전 5:23)
독일 튀빙겐대학교 석좌 교수로 올해 90세가 된 위르겐 몰트만 교수가 말했습니다. “신앙은 종말에서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는 영생의 시작이요,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며 새 창조의 시작이다. 우리는 죽음의 세계 한복판에서 그리스도 안에 생명의 충만함이 있음을 알고 죄에서 구원하시고 선한 삶이 시작되는 것을 감지한다. 골고다 십자가 뒤에서 부활의 해가 떠오른다. 그리스도 십자가 저편에서 하나님의 새 세계의 아침이 떠오른다. 기독교적인 희망은 성공적인 더 좋은 날을 약속하는 낙천주의가 아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곳에 희망을 물들이는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 영혼의 구세주이며 온 우주를 화해시키는 분이다. 희망은 고통과 걱정 속에서도 위로가 됩니다. 매 주일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요, 완성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권력의 유혹이 죄이다. 또한 타성에 젖은 심장, 슬픔어린 자각, 용기 잃은 의지, 유혹에 빠진 무기력도 죄이다. 희망을 보지 못한 사람은 알코올, 마약, 폭력에 빠져 자신을 파괴한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공동체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있다. 지옥 같은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계셨다. 숨 쉬는 한 희망이다.”
여러분! 그리스도와 만남이 축복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하는 사람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 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경험합니다.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모든 일을 감당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풍족함을 경험하고, 풍성한 은사를 기다리며, 항상 감사하는 부활신앙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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