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기적을 체험한 자의 응답
누가복음 17:11-19
교회 주소/ 서울 노원구 상계5동 136-55 유백선 목사 ybs91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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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웃음연구소 이요셉 소장이 쓴 “행복의 목욕탕 이론”이란 에세이가 있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초등학교 시험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보고 웅장하다고 생각했는지 한 가지만 써 보세요.” 한 아이가 쓴 답안을 보고 선생님이 배꼽 잡고 웃었습니다. 아이가 쓴 답은 “엄마 뱃살”이었습니다. 이 말에 웃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빠지지 않고 점점 들러붙는 뱃살은 그야말로 골칫거리입니다. 그런데 이 뱃살보다 훨씬 큰 고민을 가진 한 엄마가 8월에 찾아왔습니다. 웃음을 통해 인생을 변화시키는 행복여행에 온 가족을 데리고 울산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표정이고, 두 아이는 엄마의 권위에 물가로 끌려온 강아지들 같았습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말했습니다. “4주 이혼 조정 신청 전에 마지막으로 여기 온 거예요. 2박 3일이 지난 후에 효과가 없으면 책임지세요. 우린 이혼합니다.” 이 소장이 속으로 생각했답니다. ‘이런 내가 왜 자기들 이혼을 책임지나? 오늘 처음 봐 놓고선.’ 그런데 행복 여행 내내 마음을 당황스럽고, 황당하고, 신경 쓰게 했습니다.
평상시 그녀의 고민은 불통, 먹통, 깡통, 답답증이었습니다. “소장님, 우리 남편과 말이 안 통해요. 답답해 미치겠어요. 더 이상은 안 돼요.”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 목욕탕 이론을 적용합니다. 묵은 때를 벗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때밀이로 밀어버리면 살만 아픕니다. 푹 담가 놓기만 하면 다 벗겨지기 마련이지요. 근심이나 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 날 행복의 목욕탕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실컷 웃고 자빠지고, 박장대소하고 아이처럼 재미있게 놀게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문제에서 벗어나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둘째 날 행복의 목욕탕에 들어갔습니다. 실컷 소리 지르고, 울고, 용서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전 모든 게 남편 잘못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제 탓이었어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때는 불었을 때 벗겨야 합니다. 오늘을 넘기지 말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남편과 나누세요.” 그날 밤 부부는 새벽 3시까지 두 손을 꼭 잡고 사랑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음 날 부부가 이렇게 소리 질렀습니다. “나는 오늘도 행복을 선택한다. 하하.”
여러분! 오늘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선택은 매 순간 내면의 잠재력을 해방시킵니다. 지금 이 순간 내면의 잠재력에 유의할 때 삶은 탄력이 붙고, 더욱 큰 의미를 갖게 됩니다. 순간이 중요해질 때 인생이 중요해집니다. 내 안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벗고, 마음속의 벽을 걷어내야 합니다. 선택을 잘해야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삽니다. 선택을 잘못하면 행복을 놓칩니다. 레오 버스카글리아가 말했습니다. “걱정은 결코 내일의 슬픔을 없애주지 못한다. 그저 오늘의 기쁨을 말려버릴 뿐이다.” 그래서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행복하려면 올바른 선택을 미루지 않아야 합니다. 행복은 사랑의 수고를 통해서 얻습니다. 행복은 삶의 빛이 되어준 아름다운 만남을 통해 얻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만남으로 행복을 선택하고, 축복이 열리기를 원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누가를 통해서 증거하신 복음이 있습니다. 이 복음은 다른 복음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기사입니다. 본문 11절~13절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님을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들어가셨던 이 마을은 나병으로 인해 버림받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 마을에 들어가셨을까요? 나병환자들의 고통을 아시고, 치유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나병환자들이 겪는 고통이 무엇입니까? 나병에 걸리면 가족을 떠나야합니다. 부모와 형제들과 관계를 단절해야 하는 고통이 너무 큽니다. 이전에 좋은 관계를 가졌던 친구들, 이웃들, 모든 사람들로부터 멀리 떠나야합니다. 격리되는 고통, 심적인 아픔을 누가 함께 하겠습니까? 버림받고 소외되는 고통을 누가 이해할까요? 사람은 누구나 질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질병에 걸리면 병문안을 가는데, 나병에 걸리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찾아가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나병은 어디가 아파도 통증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병이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의 무감가긍로 서서히 죽게 되는 나쁜 질병입니다. 바로 그 마을에 예수님께서 들어가셔서 나병환자들을 만났습니다. 나병환자들이 받았던 첫 번째 은혜가 예수님과 만남이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변화됩니다. 예수님께서 마을에 들어오셨을 때 그 마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만났던 것이 아닙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들 이외의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만나러 나오지 않았을까요? 믿음이 없어서 인생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너나 가 봐라. 예수를 만난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냐? 예수를 만난다고 해서 하늘이 준 천벌이 낫겠냐고... 기적은 무슨 기적?...’
지금도 영적인 나병에 걸린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꿈도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안식도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적도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새로운 삶의 변화도 없고, 인생의 반전도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성공적인 결과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살후 3:2)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입니다.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다.”(벧전 1:21) 믿음이 은혜 받게 하고, 은혜를 받아야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합니다.
반면에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왜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을까요? 실낱같은 작은 믿음으로 예수님께 한 가닥의 희망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뭔가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기적을 꿈꾸고, 예수님께 부르짖어야겠다.’ 하나님은 히브리서 기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히 11:1) 여러분! 믿는 사람은 기적을 꿈꾸고, 믿는 사람이 예수님께 부르짖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일어서고, 믿음이 있어야 예수님을 만납니다. 행복은 예수님을 선택하고 믿음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예수님께 부르짖게 됩니다. 본문 13절을 보세요. “소리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여기서 “예수 선생님(예수 에피스타타/Ιησου επιστατα/ Iesoy epistata)”이란 말은 “예수로 임명된 자, 감독, 관리자, 사령관, 주인”이란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자로 임명되신 분이여, 구원의 관리자여, 구원의 주인이여”라는 뜻입니다. “불쌍히 여기다(엘레에손/ελεησον/eleeson)”라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로) 측은히 여기다, 동정하다, 긍휼히 여기다, 괴로워서 도움을 찾는 사람들 돕다, 불쌍한 사람들을 돕다, 자비를 경험하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들의 부르짖음에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예수님은 나병환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4절을 보세요.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예수님께서 어떻게 고쳐주셨습니까? 나병환자들의 환부를 만져주셨습니까? 피부에 약을 발라주셨나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처방하셨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예수님께서 왜 말씀으로 처방하셨을까요? ‘너희가 믿음으로 일어서서 나를 만나러 왔으니 믿음으로 가라. 그리고 그 믿음을 보이라. 믿음으로 시작했으니 끝까지 믿음을 견지하고, 믿음으로 보이라.’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순종하여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나의 판단, 나의 지식을 버리고 오직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행동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믿지 못하고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부르짖다가 현실을 생각하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될 것 같지 않아...’ 중간에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왜?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롬 8:6,7) 믿음으로 순종하다가 자기 이성으로 판단하고, 계산하여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다가 의심하여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약해지면 현재 내 몸의 상태를 생각하고, 안 될 거라고 생각하다가 포기합니다. 내 믿음이 소망 파괴형 생각에 뿌리를 둔 사람은 생명을 고갈시키고, 건강 기능을 약화시킵니다.
한약으로 난치병을 치료하는 노의준 원장이 말했습니다. “치료는 치료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게 어려운 것입니다. 한약으로 난치병을 치료한다니까 사람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몸의 병은 몸이라는 그릇에 담긴 손님이라.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것이 우선이지요.” 여러분! 만약에 내 몸에 불치병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믿고 가겠습니까? 믿고 순종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야고보 기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약 5:15) 내 안의 병을 치유하기 원하십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오직 믿음으로, 끝까지 믿음을 견지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확신해야 합니다.
미국 미네소타 주의 세인트폴에서 기독교상담센터를 운영하며, 루터교회를 담임하는 윌리엄 배커스(William Backus)목사님이 미네소타 주립대학에서 임상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윌리엄 목사님이 말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리를 환자에게 적용하여 임상 실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 치유효과를 본 실례를 모아 <병을 낫게 하는 믿음의 치유력>이란 책을 냈습니다. “... 존은 열여덟 살이었는데, 결핵으로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심한 통증과 고열, 감소되는 체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의사들은 적절한 치료를 거듭했으나 원인 모르게 병세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한 달이 지나 회복불능상태까지 가게 되었다. 문제는 의사들이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간호학과 학생이 존의 곁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나는 저주를 받아서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생각은 학비를 빌려준 삼촌이 존에게 돈을 돌려받지 못하자, ‘너는 저주받아 이제 곧 죽는다’고 저주를 퍼부었다는 것이다. 존은 그 저주를 그대로 믿었으며 그 믿음이 저주로 하여금 존의 생명을 앗아가는 권세를 갖게 된 것이다. 간호사는 의료진에게 말하고, 의료진은 존이 저주에 대한 믿음을 바꿀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 존에게 예수께서 삼촌의 저주보다 능력 있으신 분이심을 성경을 통해 확신시켜 주면서 존을 예수님께로 인도했다. 존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진리를 확신하며 받아들였다. 존은 삼촌의 저주가 자기를 해치지 못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의료진은 삼촌을 용서하라고 설득하여 적개심을 떨치고 자유하게 되었다. 그러자 존의 몸에서 열이 떨어지고 음식을 먹기 시작하더니 체중이 불면서 결핵도 종적을 감추었다. 존은 진리에 근거한 자기대화로 신체에 새로운 믿음과 긍정적인 감정을 가졌다. 그러자 수일 만에 건강을 회복하고 병도 낫게 되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좋은 소식을 들으러 나와야 합니다. 왜? 복음은 자기와의 대화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시된 진리들은 우리의 영을 강건케 합니다. 영이 강건하면 건강한 내적 생명력을 증진시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상호 응답해야 내적 생명력이 증진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체가 마음에 작용하는 생각과 믿음이 신체에까지 영향을 미치도록 조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을 보호하는 유일한 안전장치는 그리스도 예수와 거룩한 성경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뿐이다. 치유는 믿음으로 순종할 때 내 안에서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고, 순종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음은 육체적인 건강과 전인적인 행복을 얻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받은 두 번째 은혜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은혜 받고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 예수님께 돌아온 사람이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본문 16절을 보세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여기서 “감사하다(유카리스톤/ευχαριστων/eyxariston)”는 말은 “감사를 표현하다, 은혜를 말하다, 고마움을 느끼다, 감사기도를 드리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은혜를 받고 감사할 줄 모르는 아홉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7절~18절을 보세요.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 자가 없느냐?”
여러분!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사실 은혜를 받고 깨달아야 감사합니다. ‘내 몸이 나았다는 사실을 알고, 의식할 때 먼저 무엇을 하느냐? 깨달음의 감사가 있느냐?’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무슨 감사를 하겠습니까? 탈무드에 나온 말입니다. “감사를 모르는 자를 처벌하는 법이 세워지지 않았다. 그것은 감사할 줄 모르는 자는 하나님께서 직접 벌하시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은혜를 받고 감사합니까?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예수님은 감사하러 돌아온 사마리아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병으로 고통 받고, 치료가 될 때 감사합니다. 지금 내가 건강하게 사는 것에 감사하십니까? 지금 나의 건강을 가지고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내가 은혜 안에 살고, 은혜로 병이 낫고, 은혜로 살고 있다고 깨달은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즉시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즉시 감사할 때 그 감사가 행복을 낳고, 감사가 은혜를 더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종교가 윌리엄 로우가 말했습니다. “만족과 행복을 가장 빨리 찾는 비결은 범사에 감사하는 데 있다.” 감사하는 사람은 믿음으로 응답하고, 겸손하게 순종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늘 주님 앞에 엎드리어 받은 은혜를 표현합니다. 이제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나의 체질이 감사의 체질로 바뀌기를 원합니다. 은혜를 깨닫고 감사의 성품으로, 감사의 인격으로 바뀌어 믿음의 도리를 다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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