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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령과 능력의 역사

하나님아들 2014. 4. 3. 18:41

성령과 능력의 역사

                                                       사도행전 10:30-38

 

유백선 목사  ybs9191@hanmail.net  상담 : 02) 6221-6468, 010-8346-6468

 

 

 전 세계 50여개의 나라에서 호평 받는 <뉴욕타임스>에 인기 칼럼이 있습니다. 저널리스트 피터 로벤하임이 쓴 “내 이웃이 되어 주실래요?” 라는 칼럼인데요. 미국에서 부유층이 사는 마을(로체스터 외곽)에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아주 평온한 도시에 어느 날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피터가 조용한 밤산책하고 돌아오는 길구급차를 보았는데, 이웃집에 살던 부부가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의사인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사건이었지요. 같은 마을에 산 지 7년이 되었지만 누구도 이 부부를 알지 못했습니다. 피터는 불현듯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 부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평소 잘 알고 지냈다도울 일이 있지 않았을까?’ 그 생각이 날마다 무심코 지나치는 이웃들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화기를 들고, 어떤 때는 이웃집 초인종을 누르며 말했어요. “하룻밤 재워 주실래요?” 이웃들은 피터의 요청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거절했어요. “저는 좀 바빠서요.” “내 사생활을 드러내고 싶지 않군요.” 여러 사람들에게 이웃이 되어주길 원했지만 다 거절했어요. 그런 피터에게 처음으로 초대한 이웃80세의 루이스 노인이었어요. 그 집에서 밥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지요. “아내는 5년 전에 세상을 떠났어. 52년간 결혼생활을 했지. 사람들은 모두 대단하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아. 난 이제야 아내를 알아가는 중이니까.” 52년을 함께 살았는데, 이제야 아내를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식들은 모두 외지로 떠나고 루이스 노인 홀로 아내를 추억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몇 달 뒤에 편지가 하나둘 피터에게 날아들었습니다. “이웃과 알고 지내면서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벽 너머에서 소음이 들려와도 이제 화내지 않아요.” “나와 이야기하러 와 줘서 고마웠어요.”

 

 

 여러분!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기 원합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살고 있는데 정말 행복한 것일까요? 삶의 행복이웃과의 친밀도에 달려 있습니다. 친밀함을 느낄 때 행복도 느껴집니다. 친밀함은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서 서로 이해하고, 사랑할 때 생깁니다. 지금 내 이웃과 얼마나 친밀한 관계 속에 살고 있습니까? 어느 순간부터 현대인들인간관계가 피상적이고, 형식적이고, 이익중심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회, 삶의 공간에서 먼저 이웃에게 손을 내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불신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신의 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성령이 떠난 사람은 하나님과의 친밀도가 낮습니다. 하나님과 친밀도가 떨어지면 상대방을 이해하는 비중도 낮아집니다. 하나님과 친밀함이 낮은 사람은 존중하는 마음도 약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믿고 신뢰하는 마음이 약합니다. 하나님은 존중하는 사람을 형통하게 하십니다. 존중은 얽힌 대인 관계를 푸는 해법입니다. 존중은 행복한 삶을 위한 영성입니다. 존중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이요,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 2:30) 지금 나는 하나님을 얼마나 존중히 여기며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존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을 존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자신이 만나는 사람을 존중합니다. 왜냐? 하나님의 마음하나님의 뜻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존중은 다른 사람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훌륭한 인격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사도행전 10장에는 아주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방인 고넬료 첫 그리스도인이 되는 사건입니다. 고넬료는 이탈리아 부대의 백부장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경건한 믿음삶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고넬료는 제 9시쯤에 환상을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고넬료에게 말했습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다.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해변에 사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물러 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왜 환상을 보여주셨을까요? 왜 시몬을 초청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당시에 로마 군인굉장한 권세가 있었습니다. 권세가 있는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면 로마를 복음화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130만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는데, 그 사람에게 친절과 사랑으로 대하고, 복음이 들어가면 그들의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굉장히 지성인이요, 인정받는 장교였거든요. 그런 고넬료가 다신 종교의 로마 사회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어떻게 로마 장교(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졌을까? 당시에 훌륭한 정치가군인들 중에 ‘정치는 로마가 낫고, 철학과 문화는 그리스가 낫고, 종교는 히브리 종교가 제일이다’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넬료는 종교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교를 따랐던 것 같습니다.

 

 

 고넬료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자세로 살았습니다. 그의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경건하다’는 것입니다. 경건영적인 생활실생활을 포괄하는 총칭적인 의미입니다. 고넬료의 경건은 사람(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였습니다. 요새 믿음 생활하는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제 마음대로 살고, 이기적이고, 함부로 말하고, 무시하고, 상처를 줍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계신 생활을 하였습니다. 보세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두려움이 있어요. 그 인격을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함부로 말하지 못합니다. 상대방의 자존심과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없으니까요. 지금 나의 경건 자세는 어떻습니까?

 

 

 여러분! 고넬료의 경건은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고 모든 경우에 기도했습니다. 고넬료가 어떤 기도를 드렸을까요? 세속적인 욕망을 위해서 기도했을까요? 빨리 진급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을까요? 경건한 신앙을 가졌던 고넬료의 입장에서 기도해 보았습니다. ‘하나님, 지금 내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진리를 가르치는 지도자를 보내주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밝히 알기 원합니다. 경건하게 살고자 애쓴다고 하지만 제대로 주님의 방향에 맞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이런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으셨을까요? 고넬료는 항상 기도하며 유대 사람들을 구제하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 나의 경건을 고넬료의 경건에 비교하다면 나의 믿음과 경건지수가 얼마나 될까요? 경건은 사람이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경건이 중요합니다. 내가 얼마나 기도하고 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나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가 더 중요합니다. 왜냐? 기도하나님과 관계이기 때문이죠. 내가 좋아서 구제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구제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구제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4)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하나님께 상달되었을까요? 나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통보를 받으신 적이 있나요? 한때 기독교를 비판했던 사상가 C. S 루이스(Lewis)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이런 말을 했어요. “주님의 뜻을 벗어나 걷는 걸음어디인지도 모르고 헤매는 것과 같다.”

 

 

 고넬료는 천사의 지시를 받은 후에 하인 두 사람과 경건한 부하 한 사람을 불러 욥바로 보냈습니다. 욥바에서 환상을 보았던 사도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맞이하고 가이사랴에 들어갔습니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영접하기 전에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넬료는 베드로가 들어올 때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며 영접했습니다. 여러분! 당시에 지배 계층있던 로마 장교가 로마의 속국민 베드로발 앞에 엎드려 절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왜 고넬료는 베드로를 이렇게 맞았을까요? 고넬료는 베드로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영접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너희를 영접하는 자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마 10:40-41) 지금 우리는 어떤 자세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있습니까? 복음 전도자를 어떤 자세로 대하고 있나요?

 

 

 여러분! 언제, 누구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실까요?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십니다. 본문 44절을 보면,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성령님은 유대인,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이방인이라도 나사렛 예수의 복음을 들을 때 성령님께서 임하십니다. 본문 38절을 보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성령을 받으려면 어떤 자세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까? 고넬료 가정에 모인 사람들어떤 자세로 베드로가 전한 복음을 듣기 원했습니까? 본문 33절을 보세요.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자세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말씀 선포자를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으라. 평안의 복음을 들으라.’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가 말했어요. “21세기 문맹자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학습하고 교정하고, 재학습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이전에 내가 무엇을 배웠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지금 배우려는 의지입니다. 배우려는 열정과 노력이 성장의 동력입니다. 학습을 멈추면 늙어갑니다. 심령이 늙지 않으려면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생명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열정,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자세로 들어야 할까요? 하나님 앞에서 듣는 자세를 갖출 때 성령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를 배우고, 내 생각, 삶의 시정하고, 말씀을 실천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여러분! 왜 성령을 받아야 할까요? 성령을 받으면 상상을 초월하는 활기영적인 능력으로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성령을 받으면 영적인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성령을 받고, 영적인 기쁨이 있어야 복음을 전하는 동력이 생깁니다. 성령을 받으면 내가 받은 축복을 다른 사람도 받기 원합니다. 짐 겔러리(Jim Gallery)가 말했어요. “주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실 때는 그 축복을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데 사용하기를 기대하신다.” 만약에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기독교는 철학이나 세상의 초등학문과 다를 바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왜 고넬료에게 성령을 주셨을까요? 고넬료는 히브리식의 종교에 심취하고, 유대교를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에게 성령을 주심으로 인해 유대교인을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넬료는 땅의 경건한 삶을 살았는데, 성령을 받고 영생의 경건을 알고, 약속 받는 사람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베드로를 통해서 경건한 유대교인을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이유도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능력을 행하기 위함입니다.

 

 

둘째전심으로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임하십니다. 초대교회 공동체가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행 1:14) 성령 충만을 받으려면 마음을 열고 성령님께서 임하시도록 내 마음을 맡기고 간절히 기도하고 몰입하십시오. 그러면 성령님께서 임하십니다. 토마스 브룩스(Thomas Brooks)가 말했어요. “가장 많이 기도하는 사람이 가장 강한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있다.” 고넬료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듣고, 마음을 열고 간절히 기도하는 준비했습니다.

 

 

 기도의 사람, 앤드류 머레이 목사님이 <나를 비우고 성령으로 채우라> 라는 책을 썼는데요. 그가 말했어요. “기도의 사람이 서는 곳에 기도의 부흥이 일어났다. 믿음의 사람이 서는 곳에 믿음의 역사가 나타났다. 우리가 겸손히 마음을 내어드리면 주님은 그 신실하심을 따라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주신다. 그런데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여전히 성령 충만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죄의 근원인 자아의 고집을 꺾지 않기 때문이다. 자아를 버리고 스스로의 노력을 포기할 때, 낮아진 마음으로 오직 예수님의 얼굴만 바라볼 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성령 충만의 능력을 부어주신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며,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삶을 살게 하는 능력이다.”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의 장애물은 내 자아의 고집을 꺾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나를 비우고, 낮아진 마음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십니다.

 

 

셋째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을 때 성령님께서 임하십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새사람으로 삽니다. 리차드 포스터(Richard Foster)가 말했어요. “우리의 몸은 날마다 주님의 존재를 체험할 수 있는 이동식 성전이다.” 어떻습니까? 날마다 내 안에서 주님의 존재를 체험하고 있습니까? 몸 안폐에 공기조금 밖에 없으면 건강한 생활을 못합니다. 폐에 신선한 공기가 가득 차야 혈관에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어 몸에 활력이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건강한 삶을 살려면 성령의 임재로 만족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호두과자를 샀는데, 그 안에 호두가 없었어요. 호두과자를 먹다가 화가 나서 호두과자를 굽는 사람에게 따져 물었어요. "이봐요. 호두과자 속에호두가 없는 거요?“ ”손님, 붕어빵에 붕어가 들어 있나요? 빈대떡에 빈대가 들어 있어요? 총각김치에 총각이 들어 있냐구요.“ 돈에 욕심이 커지고, 욕망이 커지면 성령님께서 내주하지 않습니다. 자연주의 교육자 루소가 말했어요. ”인간을 움직이는 동력이 무엇인가? 10대에는 먹을 것에 의해 움직이고, 20대사랑에 움직이고, 30대쾌락에 움직이고, 40대야심에 움직이고, 50대탐욕에 움직이고, 60대는 명예심에 움직인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에 움직이고 있습니까?

 

 

 여러분! 고넬료와 그의 가정,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믿을 때에 성령님께서 인침을 주셨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성령을 받은 고넬료와 그의 가정, 함께 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할 때 성령님께서 임하게 하십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 온전한 신앙인이 됩니다. 성령님께서 내 안에 충만할 때 온전한 사랑의 능력이 나를 다스립니다. 이제 성령님께서 임재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기름 부어 주셔서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고, 섬기며, 선한 일을 행하고, 악한 영들을 물리치고, 능력 있는 주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출처 : EXTREME-1
글쓴이 : Extreme-1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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