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
사무엘상 15:17-23
유백선 목사 ybs9191@hanmail.net 상담 : 02) 6221-6468, 010-8346-6468
시인 이정록 씨가 쓴 <시인의 서랍> 산문집에 “그늘 농사”라는 삶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별명은 ‘농사 천재’입니다. 동네 으뜸 농사꾼인 청년 회장이 어머니에게 붙여준 이름이지요.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혼자 텃밭을 일구면서 농사비법을 터득하셨답니다. “어쩌다 농사 천재라는 별명을 얻었어요?” “뭐 있겄냐? 그늘을 잘 다루는 거지. 나도 옛날에는 햇살만 좇아 농사졌지. 그늘이 뭔지 몰렀어. 근데 마당에 가로등이 생겼잖니. 가로등 밑은 아무 것도 안 되어. 들깨도 안 되고, 강낭콩도 안 되고, 녹두도 넝쿨만 뻗고,... 그래서 내가 가로등 밑자리 여남은 평을 동네 청년들헌테 내놓은 거여. 시멘트 입혀서 동네 주차장으로 쓰니께 얼마나 좋으냐? 그런데도 텃밭으로 빛이 쳐들어오는 겨. 그래서 거기다 비늘하우스를 세우고, 귀퉁이에 방울토마토 네 그루를 심었는데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열리는 거여. 그 방울토마토로 동네잔치를 혔다.” 그거 하나로 농사 천재가 된 거예요?“ ”내가 올해 결정적으로 고추 재배법을 발견혔지. 고추란 게 햇볕이 좋아야 탄저병에 안 걸리고 붉게 여무는 건디, 난 반대로 아삭이 고추 네 포기를 담벼락 밑 가장 후미진 데다 심었어야. 하루 종일 햇빛이 두 시간 들라나? 그러니까 여물지도 못하고 자꾸 풋고추만 매다는 거여. 그놈을 동네 사람들헌테 나눠 주니께 뭍은 이름이여.“ ”그러니까 우연히 붙은 이름이네요?“ ”어미를 우습게 보는 겨? 나눠 주면서 동네 청년들한테 한마디씩 보탰지. 인생도 그늘 농사라고. 아내 그늘, 자식 그늘, 지 가슴속 그늘을 잘 경작혀야 풍성한 가을이 온다고 말이여. 걱정거리 없는 사람 있겄냐? 그 그늘진 담벼락에 고추도, 취나물도 나오는 거여. 그늘이 짙으면 노을도, 가을도, 단풍도 되는 거여.“
여러분! 지금 마음에 그늘진 곳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늘진 곳도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산삼은 그늘진 곳에서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자라나서 귀한 약재로 쓰입니다. 세상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잘 활용하면 시(詩)가 되고, 감동의 재료로 쓰입니다. 지금 곁에 있는 사소한 것들을 껴안고, 사랑하고 말로 풀어내면 그게 산문이 됩니다. 모든 인생을 압축하면 한 편의 소설이 되기도 하구요. 로자베스 모스 캔터<자신감>가 말했습니다. “성공은 마술도 아니고 저절로 얻어지는 행운도 아닙니다. 성공은 모든 세세한 부분을 철저히 완성시키기 위한 지속적이고, 강도 높은 노력에서 나옵니다. 어쩌면 평범한 인간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평범한 삶의 첫 출발점에서 무엇을 바라보느냐?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인생의 목적을 위해서, 세세한 일에 완성도를 높여나갈 때 성공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누구인가?” 사실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최고의 영광입니다. 왜?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역사의 주관자이시고, 역사의 종결자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진행이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안에서 인간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인간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쓰신다는 것은 선택 받았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 최고의 영광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택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적인 선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한 사람씩 부르시고, 한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선택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을 위대한 진리로 믿고 증거했습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엡 1:4) 하나님의 선택은 죄가 들어오기 전에,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영원한 언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특별한 선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특별한 일을 하기 위해서 선택하시고, 쓰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사무엘은 선지자로 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암울했던 시기에 사무엘을 선지자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영적으로 암울한 시기에 살았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 기준에 맞춰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쓰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왕이 되고 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울 때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말씀했습니다.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소와 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삼상 15:3)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했습니까? 사울 왕이 아말렉 왕 아각과 가장 좋은 것, 소와 양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 자기 기준, 자기 소견대로 판단하고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한다. 그가 돌이켜 나를 따르지 않고, 내 명령을 행하지 않는다.”(삼상 15:11)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불순종의 영이 지배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이 누구입니까? 누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쓰시는가?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나는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있는가? 쓰임을 받을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쓸 만한 사람인가?’ 이것을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나는 하나님께 쓰임 받을 만한 사람인가?’ 이 확신, 존재감이 있어야 인생을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성공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시고 사람을 쓰실까요? 첫째 기준은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삼상 16:7) 여기서 “중심(레바브/bb;le/lebab)”은 "마음, 속사람, 의지, 가슴, 영혼, 이해력“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와 용모를 보지 않습니다.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음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씀이 좋습니다. 이 말씀이 복음입니다. 외모와 용모가 뛰어나지 않아도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보세요. 현대인들은 ‘외모와 용모도 경쟁력이요, 실력이다’고 말하잖아요? 세상 사람들은 먼저 눈에 보이는 외모와 용모를 보고 쓸 사람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이 성형외과에 몰려들어 자신 없는 부위를 고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어느 부위를 성형하고 싶으세요? 마음을 하나님의 믿음으로 성형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마음이 가난하고, 청결한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아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천국이 저희들의 것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다.“(마 5:3,8)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의 중심을 보실까요? 그 중심에 하나님의 믿음이 있는가? 이것을 보십니다. 왜? 하나님의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니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한 사람은 하나님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 속사람이 하나님의 영과 소통하고 있는가? 속사람이 강건해야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에 영혼을 사랑하는 열정이 있는가? 가장 하나님의 마음을 듣고, 이해력이 있는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먼저 이것을 살펴야 합니다.
사울이 왕으로 쓰임을 받았다가 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까? 그의 중심에 하나님의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는 사람은 급한 마음으로, 탈취물에 현혹됩니다. 본문 18절을 보세요. “왕이 어찌하여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급한 마음으로 ‘이것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하나님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둘째 기준은 현재 겸손한 사람이 쓰임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스스로 작게 여기는 사람을 머리가 되게 하십니다. 본문 17절을 보세요.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습니까?” 높아진 상태에서 스스로 작게 여기는 겸손함이 쓰임을 받습니다. 현재 겸손한 사람은 스스로 작게 여깁니다. 현재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겸손을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과 동등한 본체였지만 자기를 비우고,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여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빌 2:6-7) 현재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높여줍니다. 현재 겸손한 사람은 과거의 업적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업적으로 자기 잘못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실적을 냈느냐? 어떤 업적을 행했느냐? 이것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사울 왕은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책망을 받고, 지적을 받았을 때, 자신의 행동을 뭐라고 강변했습니까? 본문 21절을 보세요. “백성이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왔나이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너희 능력보다 깨끗한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보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용기와 순종하는 결단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 왕에게 아주 극적인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하라.” 말씀하셔서 그 명령을 받고 갔습니다. 그때 사울은 행구 사이에 머리를 밑으로 박고 엉덩이를 내밀어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얼마나 순진하고 겸손했었습니까? 그때 사울은 스스로 작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현재 사울은 왕이 되고 나서 마음이 변했습니다. 겸손의 지속성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지금 나를 살펴보십시다. 현재 스스로 작게 여기는 겸손의 지속성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사울 왕이 행한 오류를 지금 내 자신도 범하고 있지 않는가? 어떤 지위를 얻기 전까지 겸손하다가 지위를 얻고 나서 교만합니다. 스스로 기념비를 세우고, 그 공을 기리기 위해서 무리한 행동을 합니다. 중요한 직분을 맡고 나서 겸손을 가장한 교만의 지배를 받고 있지 않는가? 큰 권력을 얻고 나서 버림을 받지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마지막 부분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주여, 주여,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말하되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한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2-23)
여러분!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은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바뀌어도 절대 겸손합니다. 현재 겸손한 사람은 항상 하나님을 의식합니다. 현재 겸손한 사람은 늘 하나님께 집중합니다. 현재 겸손한 사람은 잘못을 지적할 때 감정으로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회개하고, 마음과 행동을 변화시킵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는 순간에 무릎을 꿇고 잘못을 시인하고 통회하며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를 빛낸 두 사람, 주기철 목사님과 조만식 장로님의 신앙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만식 장로님이 오산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 주기철이 제자였습니다. 주기철이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된 후에 조만식 장로님이 교회 청빙위원 대표로 찾아왔습니다. 제자였던 주기철 목사님을 담임 목사님으로 청빙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날 조만식 장로님이 손님과 이야기하다가 그만 예배시간에 늦었습니다. 설교하는데 조 장로님이 들어오자 설교하다가 말했습니다. “장로님, 그대로 서서 계십시오.” 만약에 오늘날 어느 목사님이 이렇게 했다면 장로님이 어떻게 반응을 보였을까요? 조만식 장로님은 담임 목사님의 말에 순종하여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서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예배 후에 조금도 서운한 감정이나 어두운 기색 없이 주 목사님에게 말했대요. “목사님, 주일날 하나님께 경건하게 준비하여 예배드려야 했는데, 그만 사람에게 매여 있었습니다. 올바로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세요. 조 장로님의 신앙적인 겸손을 보고 성도들이 예배시간에 미리 와서 준비하고, 예배의 중요성을 깨우쳤다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믿음의 겸손으로 섬기는 사람을 위대하게 사용하십니다. 현재의 겸손을 가진 사람에게 큰 일, 중요한 일을 맡깁니다. 베네딕트는 수도원을 창설하여 자기 겸손의 생활 규율(10가지)를 정하고 스스로 실천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늘 눈앞에 두고 잊지 않고 생활하자. 자신의 뜻을 이루고 욕망을 채우기 위해 즐기지 않는 생활하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며 복종하자. 비위에 거슬리는 일, 모함, 억울한 일, 모욕을 참고 묵묵히 인내하자. 마음속에 들어오는 모든 악한 생각, 은밀한 죄를 숨기거나 용납하지 않고 하나님께 고백하며 사함 받는 생활하자. 온갖 비천한 것, 나쁜 환경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자. 혀를 억제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찡그리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마음으로, 몸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 항상 겸손하자...
셋째 기준은 믿음의 인내로 순종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능력과 지혜를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쓰심에 능력과 지혜가 부족한 것이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믿음의 인내로, 자기 위치를 알고,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을 압니다. 하나님은 왕에게 권력을 주셨지만 제사장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성하고 남의 일을 간섭하고, 침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은 내게 맡기신 경륜, 내게 주신 일에 충성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다리고, 순종하라는 것이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상황 변화에 따라서 목적을 바꾸지 말라는 것입니다. 급한 마음을 버리고, 탐욕과 욕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탐심과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의 명예욕, 물질의 욕망을 버려야 총명과 지혜로 일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 사역을 권력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거짓으로 포장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솔직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믿음으로, 절대 순종하고, 절대적인 겸손으로 하나님께 거룩하게 쓰임 받는 영광을 얻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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