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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광야 인생을 사는 이유

하나님아들 2014. 4. 3. 18:32

광야 인생을 사는 이유

                                                         신명기 8: 1- 6

 

유백선 목사 ybs9191@hanmail.net  상담: 02) 6221-6468, 010-8346-6468

 

 

 1947년에 미국 메인 주에서 태어난 스티븐 킹(Stephen Edwin King)은 2살 때 아버지가 가정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어머니가 힘들게 일을 했지만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스티븐은 어렸을 때부터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후로 아무리 피곤하고 아파도 매일같이 2,000자 분량의 글을 쓰며 작가의 꿈을 키웠습니다. 잡지에 글도 몇 번 실었지만 무명작가원고료생계를 잇기에 턱없이 적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탁소에서 침대보를 빨고, 건물 경비를 하며 틈틈이 글을 썼습니다. 그의 아내도 밤낮으로 일했지만 살림은 늘 빠듯했습니다. 갓난아이가 중이염에 걸렸을 때 약 살 돈이 없어서 전화를 끊어야 했습니다. 자동차 변속 기어가 고장 나도 수리비가 없어서 조심조심 차를 몰고 다녔습니다. 그는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고 남은 돈은 원고를 부치는 우편 요금으로 썼습니다. 그런데 여러 출판사에 보냈던 원고들이 모두 되돌아왔습니다.

 

 묵묵히 네 번째 소설을 쓰던 날,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족을 보고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겠다.’ 그러면서 여태 써놓은 원고를 몽땅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이튿날 아내가 원고 뭉치를 들고 와서 말했습니다. “여보, 중간에 포기해서는 안 돼요. 특히 성공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는 더욱 그렇지요.” 아내의 격려 한 마디에 용기를 얻어 다시 펜을 들었습니다. 그는 무명작가 생활 15년 만에 마침내 빛을 보았습니다. 한 출판사에서 그의 소설을 읽고 재미있다는 답변을 보내온 것입니다. <캐리>라는 소설책이 그렇게 나와 500만 부나 팔렸습니다. 공포 소설의 고전이라고 불리게 된 <캐리>는 1976년에 영화로 제작되어 그해 최고의 영화로 손꼽히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가 펴낸 <쇼생크 탈출>, <미저리>, <돌로레스 클레이본> 등도 영화로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여러분! 인생 여정에서 꼭 지나가야 할 장소가 광야입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는 척박한 땅이요, 두렵고 외로운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광야로 나가는 것을 무척 꺼립니다. 그럼에도 왜 광야를 꼭 지나가야 할까요? 광야는 인생을 훈련하는 장소요, 인간의 욕망과 세속적인 향락이 정지되는 곳입니다. 광야의 삶은 필요한 것이 늘 부족하고, 고단하고, 고통이 지속되는 곳입니다. 하지만 그 광야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만납니다. 야곱이 밧단 아람으로 가던 길(루스)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훈련을 받습니다. 광야에서 믿음으로 사는 훈련을 받습니다. 광야에서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체험합니다. 광야에서 나의 권리를 포기하는 법을 배웁니다.

 

 

광야에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리즈 커티스 힉스(Liz Curtis Higgs)가 말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한다면 당신이 누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의 현재 모습이 중요하다.” 왜? 주님이 생명의 나침반이요, 인생의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주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깨달음을 얻기 원하십니다. 왜? 깨달음이 있어야 존귀하게 살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이 없으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습니다.(시 40:20) 깨달음이 있어야 행복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난입니까? 아닙니다. 가난하면 불편할 따름이지 불행이 아닙니다.

 

 

일본 메이지대학교 사이토 다카시 교수가 말했어요. “가난마음가짐의 문제이다. 가난한 시절은 숨겨진 보석상자이다. 가난을 미래의 에너지로 바꾼다면 가난은 마이너스가 아니다. 가난의 깨달음을 마음 속에 간직한 사람은 인생의 크고 작은 실패 앞에서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가난 속에서 인생의 영원한 스승을 만난다.” 재난이 인생을 불행하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깨달음이 내 안의 기적을 깨웁니다. 이 깨달음이 없을 때 인간의 본질을 잃어버립니다. 더 큰 문제는 깨달음을 오래 지속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값을 치르고 얻은 깨달음을 너무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또 다시 불행을 반복하고, 불행이 지속됩니다. 소중한 것을 쉽게 잊어버리고, 고통의 악순환을 겪으면서 삽니다. 불행과 고통의 반복은 깨닫고 나서 행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세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40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여기서 “기억하라(자칼/zakar)”는 말은 “마음에 품다, 언급하다, 회상하다, 회고하다, 표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을 왜 40년 동안 광야의 길을 걷게 하셨을까?’ 마음에 품고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광야 길을 걷게 하신 이유를 회고하라는 것입니다. 왜냐? 마음에 품고 생각해야 잊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품고 생각해야 삶에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광야 길을 걷게 하셨습니까? 첫째낮추고 시험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2절을 보세요. “너를 낮추시고,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여기서 “낮춘다(아나/ana)"는 말은 “내다보고 있다, 위협하고 있다, 괴롭히다, 고통, 모독하다, 겸손한, 고통을 주다, 겸손하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낮춘다는 것은 고통을 줍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마음을 낮추기 원하십니다. 왜? 마음을 낮춘 만큼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낮춘 만큼 상처를 받지 않아요. 마음을 낮춘만큼 불평, 원망이 없습니다. 마음을 낮춘 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마음을 낮춘 사람이 큰 자입니다. 주 앞에서 낮춘 사람을 하나님께서 높이십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

 

 

사도 바울예수님의 낮아지심을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과 같이 되셨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6-11)

 

 

여러분! 마음이 낮아진 사람은 광야에서 새로운 생각을 합니다. ‘광야의 인생이 고단하고 힘들지만 축복의 시점이구나.’ 마음이 낮아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실 은총을 기대합니다. 크고 작은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영적분별력을 갖게 됩니다. 광야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가? 실천하지 않는가? 시험하는 장소입니다. “시험하다(나사/ansa)”는 말은 “시험하다, 시도하다, 모험하다, 증명하다, 입증하다, 분석하다, 증명하다”는 뜻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시험하실까요? 왜 테스트(test)가 필요합니까? 시험은 객관적인 능력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시험은 출제자의 의도와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알고 있는 것과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것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길 수가 있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여겼는데,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은 제사(예배)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믿음)을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중심,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원치 않으신 것이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서 주도하고, 진리의 영이 인도하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배의 회복이 있어야 관계의 회복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인애(仁愛)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그렇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는가?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믿으라.’ 하십니다. ‘너의 과거, 너의 현재, 너의 미래가 나에게 있다. 그러니 믿고, 맡기고, 따르라. 순종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라.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라.’ 그런데 이스라엘은 믿지 않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과거(노예의식)로 회귀하는 습관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시험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가? 지키지 않는가?’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삶을 사는 동안 계속해서 시험하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도 광야를 지나오면서 계속 불평, 원망, 투덜거림, 지도자 불신, 과거로 회귀하는 습관을 반복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불신과 반항하는 태도를 지속하면 약속의 땅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순종의 시험을 통과해야 기쁨이 있고, 축복이 임합니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가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아노라.” 하나님의 시험에 통과한 사람은 열악한 환경을 이길 수 있습니다. 좋지 않는 환경에서도 천국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직장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직장을 잃고, 암에 걸리고, 마라와 같은 쓰디쓴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소망을 갖게 됩니다.

 

 

둘째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3절을 보세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만나를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다.” 생각해 보세요. 창조주 하나님께서 왜 선택한 사람들을 굶주리게 하실까요? 굶주림을 통해서 양식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굶주림을 통해서 영적인 양식의 가치를 가르치시려고... 굶주림강력한 기대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40일 금식하신 후에 마귀가 유혹을 했습니다.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빵)가 되게 하라.”(마 4:3-4) 인간은 돌로 떡을 만들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로 떡을 만드실 능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지금 여러분은 빵으로만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고 있습니까?

 

 

마귀는 배고플 때, 가난할 때, 기근에 시달릴 때, 유혹합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데 왜 그렇게 가난하고 배고픈 삶을 사는 거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저렇게 떵떵거리고 잘 사는데... 하나님께서 너를 버린 거 아니냐? 아니면 너의 신앙이 잘못 된 거 아니냐?’ 잠언 기자(30:7-9)가 말했습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으니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사람은 멀리해야 할 것이 헛된 말과 거짓말입니다. 오직 필요한 양식을 구합니다. 자족하는 믿음이 가난을 이겨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왜 만나를 주셨을까요? 매일 하늘의 양식으로 공급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가? 순종하지 않는가? 시험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루 빨리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정착하고, 농사도 짓고, 양도 치고 싶었을 겁니다. 집도 짓고, 왕궁도 짓고 싶었을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게 했습니다. 하늘의 만나를 매일 내려주시면서 날마다 말씀을 순종하는가? 순종하지 않는가? 그것만 시험하신 것입니다. 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소유의 문제보다 존재의 문제가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물질의 풍요가 타락의 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좋아질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죠.

 

 

가난한 나라에서 절름발이 아이가 있었습니다. 수술비가 없어서 절망할 때, 믿음이 순결하고, 마음씨 좋은 의사를 만났습니다. 아이를 보더니 똘똘하게 생겼습니다. ‘내가 이 아이 다리를 고쳐줘야겠다.’ 모든 비용을 부담하여 아이를 고쳐주었습니다. 20년이 지난 후에 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디서 사는지 아세요? 녀석은 지금 사람을 죽여서 감옥에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다리 고쳐준다고 해서 그가 사람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경건을 가르쳐야 합니다. 믿음의 가치를 알아야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그 삶이 생동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삽니다.

 

 

셋째징계를 마음으로 생각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5절-6절을 보세요.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여러분! 징계를 왜 생각해야 할까요? 징계는 사랑하는 사람이 더 높은 고도의 인생을 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지킵니다. 깨달은 대로 살고, 행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겸손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합니다. ‘나의 삶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 나의 길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겸손하게 진리를 지킵니다.

 

 

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했습니까? 번성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시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더 깊이 이해하고, 더 깊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다. 왜?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약 1:12) 하나님은 광야의 시험을 통해서 더 강한 믿음으로 단련합니다. 광야의 시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소유보다 진리를 알기 원하십니다. 환경보다 나의 존재를 변화시키기 원하십니다. 왜?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서도 축복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광야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약속의 땅을 일구고, 보존하는 주인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출처 : EXTREME-1
글쓴이 : Extreme-1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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