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좋은 은사, 온전한 선물을 받으라

하나님아들 2014. 4. 3. 18:28

좋은 은사, 온전한 선물을 받으라

야고보서 1:16-18

유백선 목사 ybs9191@hanmail.net 상담 : 02) 6221-6468, 010-8346-6468

 

경북 경산에 사는 김성한 씨가 쓴 삶의 이야기입니다.

옹기종기 사는 작은 마을이 어느 날 갑자기 환해졌습니다. 마을 초입에 있는 꽃밭 때문입니다.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들함박웃음을 머금고 향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원래 이곳에는 슬레이트로 만든 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평생을 산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빈집이 되었습니다. 몇 해가 지나지 않아 지붕과 벽이 내려앉았습니다. 잡풀만 무성한 마당에 사람들이 몰래 버린 쓰레기가 쌓였습니다. 여름이면 악취가 퍼져 이웃 간에 다투는 일도 잦았습니다. 그런데 늘 꽃무늬 신발을 신고 다니는 꽃신 할머니가 이사 오신 뒤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할머니가 빈 집터를 꽃밭으로 일구기 시작했습니다. 쓰레기를 걷어 내고 밭이랑을 만들어 채송화, 봉숭아, 소박한 꽃들을 심으셨습니다. 할머니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에도 쉬지 않고 꽃을 돌보셨습니다. 마치 자식을 기르듯 비료와 물을 주셨습니다. 어떤 날은 대도시에 사는 자식과 손자들이 와서 거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꽃밭이 생기자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 사라졌습니다. 동네 사람들끼리 다투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서로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변한 것은 꽃신 할머니의 정성 때문일까요? 아니면 고운 꽃의 힘일까요?

여러분! 무엇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일까요? 사람을 변화시키는 요인들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좋은 만남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좋은 만남이 사람을 변화시킬까요? 좋은 만남을 통해서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좋은 만남을 통해서 올바른 사고를 하게 되니까요. 올바른 사고력을 가진 사람은 바른 습관을 갖고 삽니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이 말했습니다. “진정한 교육변화시키는 힘이다. 우리는 영혼의 변화를 통해 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렇습니다. 영혼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은 자아의 움직임크게 바꿔줍니다. 사람의 영혼을 무엇으로 변화시킬까요?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영혼을 변화시킵니다. 신학자 오리겐이 말했습니다. “변화하지 않으려는 타성과 변화하려는 노력 사이에 갈등이 있다. 영혼은 발전을 의미하며 악의 정의는 발전을 거부하는 것이다.”

인간이 변화하려고 할 때 본능적으로 저항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게으름이요, 다른 하나는 두려움이요, 세 번째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마음으로 원하지만 얻지 못합니다. 게으름이 사람을 깊이 잠들게 합니다.(잠 19:15) 인간은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안전그물이 사라집니다. 변화를 꺼리는 사람은 한 가지 잣대로만 평가하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두려움변화의 에너지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나르시시즘(자기애)은 자기 환상 속에서 만족을 얻습니다. 지금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어느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나요?

오늘 하나님께서 사도 야고보를 통해서 우리에게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야고보는 자신이 경험하고 깨달은 것들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진솔한 신앙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시험을 당할 때, 시험을 누가 준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께서 시험을 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 13절에 보세요.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 여기서 “시험(페이라조/πειραζω/peirazo)”은 “(객관적으로 시험하다, 인내하다, 자세히 조사하다, 유혹하다, 증명하다, 시도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나온 “시험하다”는 이 말은 마태복음 4장 1절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신 후에 굶주림을 당하셨을 그때,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을 했습니다. 마귀가 했던 시험이 이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test)하시고, 마귀는 사람을 시험하는데 그 시험이 곧 유혹(temptation)입니다. 누가 우리를 시험한다구요? 마귀가 시험을 합니다. 특히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마귀가 유혹한 것을 하나님께서 시험한다고 생각합니다. 마귀가 욕심을 내도록 유혹하고, 욕심을 잉태시켜서 죄의 유혹에 빠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마귀의 유혹에 빠지면 죄를 짓게 되고, 죄가 점점 커져서 죽게 됩니다. 복음의 진리를 올바로 알지 못한 사람은 늘 마귀의 유혹에 빠지고,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왜 시험을 자주 받을까요? 왜 자꾸 시험을 받는다고 생각합니까? 자기 욕심에 미혹되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자꾸 커져유혹이 더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욕심에서 근심이 나오고, 근심이 사람을 마르게 합니다. 마귀에게 미혹된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자꾸 남의 탓으로 돌리고 변명합니다. 마귀는 욕심이 많고, 교만한 사람의 심령을 지배합니다. 왜냐? 마귀는 욕심쟁이요, 욕심대로 행하도록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속이는 자입니다. 마귀는 그 속에 진리가 없습니다. 마귀에게 속한 사람은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합니다. 마귀는 진리를 말해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가 간곡하게 요청했습니다. 본문 16절을 보세요. “내 사랑하는 형제들속지 말라.” 여기서 “속지 말라(플라나오/πλαναω/planao)”는 말은 “(진리, 도덕, 안전으로부터) 방황하지 말라. 헤매지 말라, 죄를 짓지 말라, 넋을 잃지 말라, (옳은) 길을 벗어나지 말라, 잘못 인도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 속지 말라고 했을까요? 마귀에게 속은 사람은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부정하고 늘 방황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하나님은 주시는 하나님(giving God)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구원을 주시고, 복을 주시고, 좋은 은사를 주신‘ 분입니다. 그런데 마귀에게 속은 사람은 진리를 왜곡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려고 했더니 자꾸 뭘 내라고 그래... 뭘 내야 축복을 한다고 그래...‘ 하나님은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인데, ’자꾸 나쁜 일이 일어나게 하는 것 같아.‘ 그런 생각에 빠지도록 속입니다.

여러분! 마귀가 언제 속이고, 시험하는지 아세요? 첫째는 인생이 힘들고, 외롭고, 괴로울 때 시험합니다. 때로는 시험하는 자가 자꾸 미끼를 던지죠. ‘너의 인생은 왜 그렇게 힘들다니? 너는 왜 어려운 일들만 생긴다니? 너는 왜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니?’ 인생이 힘들 때 하나님을 부정하게 만듭니다. ‘인생이 외롭구나. 인생은 괴로운 삶이구나.’ 느끼게 하여 삶을 포기하고, 자살의 유혹에 빠뜨립니다. 그래서 어느 덧 우리나라가 OECD 국가들 중에서 자살율 1위가 되었습니다. 힘들 때, 외로울 때, 마귀가 시험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목회하던 중에 겪었던 이야기입니다. 자녀 셋을 둔 여자 집사님이 부인병에 걸려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잘못되어 재수술을 받고, 또 문제가 생겨서 세 번이나 수술을 받았습니다. 의사가 최선을 다했다고 했는데, 세 번 수술을 받다보니 환자가 심신이 허약해졌습니다. 의사도 무척 힘들어 했습니다. 6개월이 넘도록 입원하여 어렵게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과 함께 어느 권사님이 여 집사님의 집에 병문안을 갔습니다. 이 권사님은 자녀를 갖지 못해서 남의 아이를 얻어다 키우고 있었습니다. 여자 집사님을 위로하러 심방을 갔던 권사님이 예배를 드리던 중에 실언을 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죄가 많았으면 세 번이나 수술을 받았을까? 남들은 한 번 받지 않는 수술을...” 그 말에 여 집사님의 얼굴색이 하해졌어요. 그걸 보고 또 한 마디를 더했어요. “회개해야 빨리 회복이 될 거야.” 그러자 여 집사님의 속이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가만 있겠어요? 여 집사님이 한 마디 했지요. “당신은 얼마나 죄가 많았으면 남의 집 대(代)를 끊어놓고, 얘도 낳지 못한 주제에...” 권사님이 무안해서 후다닥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그 후로 두 사람이 서로 원수처럼 지내는데..., 목사님이 이 두 사람을 화해시키느라 고생을 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마귀는 순간순간에 말로 실수하게 하여 이간질시킵니다. 그래서 약한 사람, 환자 심방을 갈 때, 말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좋은 은사를 받은 사람이 심방을 가야 합니다. 세상의 신은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합니다. 마귀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하나님의 좋은 은사를 받고 나서 육체의 핸디캡을 이기고 복음을 전했던 사도 바울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다. 왜?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이다.”(고후 4:6-10)

둘째는 심령에 감사가 없을 때 시험을 받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원망의 늪에 빠집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잃으면 매사가 억울하고, 속상합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유혹은 우리의 마음하나님만으로 만족하지 못할나타나는 현상이다.” 지금 나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살고 있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왜 뱀의 유혹을 받았습니까? 사실 에덴동산은 전혀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풍요롭고 안락한 동산이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왜 사탄의 유혹을 받았습니까? 하와와 아담은 감사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의 계시로 받고, 믿고,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탄이 감성적인 하와에게 다가가서 진리를 왜곡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복음을 받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기 원하실까요? 첫째는 온갖 좋은 은사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양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각 사람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좋은 은사를 받았음에도 늘 불평하고,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이 어떤 은사를 받았는지, 자신이 받은 은사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니까요.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이 왜 받았던 달란트를 땅에 묻어 버렸습니까? 그리고 주인에게 불평했습니까? 한 달란트가 얼마나 큰 가치를 지녔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좋은 은사를 받았는데도 불만을 품고, 불평하는 사람은 자신의 받은 은사를 잘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었던 피조물 중에서 유난히 새들이 불평했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의 다리를 연약하게 만드셨나요? 왜 거추장한 날개를 달아 주셨나요?’ 자꾸 불평하다가 새들의 입이 부리가 되었다고 해요. 하나님께서 새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람이 불 때 너희들의 날개를 활짝 펴봐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좋은 은사를 성령의 바람이 불 때 활짝 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는 각각 다르다. 그러니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믿음의 분수대로 하라.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을 하라.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가르치는 일을 하라. 권위 하는 자는 권위 하는 일을 하라. 구제하는 사람은 성실함으로 하라. 다스리는 사람은 부지런함으로 하라. 긍휼을 베푸는 사람은 즐거움으로 하라.”(롬 12: 6- 8)

여러분! 지금 내가 무슨 은사를 받았는지 아세요? 자연적인 은사는 부모로부터 받았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은사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본문 17절을 보세요. “온갖 좋은 은사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여기서 "은사(카리스마/χαρισμα)"는 “기쁨, 선함, 좋은, 긍휼, 유쾌, 부함, 부귀, 재산, 행복, 부귀, 최상의 것, 부여된 은총”이란 뜻입니다. 온갖 좋은 은사는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요, 성령님의 나타남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는 선(good)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는 근본적으로 선(善)합니다. 종말론적으로도 선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사는 온전합니다. 그래서 이 은사를 올바로 아는 사람은 다른 것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어요. 왜? ‘온전함이 이것이다’고 깨닫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세상 것들이 부럽고, 세상 것들이 탐나고, 세상 것들이 좋아 보입니까? 다이아 보석이 탐나고, 명품 가방을 메고 싶나요? 멋있는 옷을 입고 가는 걸 보면, ‘나는 언제나 저런 옷을 입어볼 수 있으려나?’ 부러운 감정이 생깁니까? 그렇다면 아직 온전한 은사에 대한 깊은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온전하고,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은사를 받은 사람은 변덕스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듯이 좋은 은사, 좋은 선물을 받은 사람은 변함없이 신실하고, 변함없이 성실하고, 끝까지 책임을 다합니다. 꾸준한 열심, 시작을 했으면 끝을 내는 종결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왜 하늘의 신령한 은사를 주실까요? 그리스도인이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서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으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변함없으신 사랑을 주시고, 변함없으신 은사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반면에 인간은 그림자가 너무 많아요. 하나님께서 하늘의 은사를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첫 열매가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서 거룩하게 구별하여 바치기 원함입니다. 좋은 은사를 받고, 진리의 영으로 변화를 받고, 중생하는 축복을 받기 원하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리의 복음을 증거하고, 삶의 열매가 맺고, 함께 나누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출처 : EXTREME-1
글쓴이 : Extreme-1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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