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접하는 자의 구원의식
사도행전 28: 1-10
유백선 목사 ybs9191@hanmail.net 상담 : 02) 6221-6468, 010-8346-6468
여러분! 커피를 좋아하십니까? 아프리카 내륙 동부에 있는 케냐 공화국은 고급 커피를 생산하기에 아주 적합한 자연환경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커피만 먹고 살 수 없잖아요? 케냐는 극심한 가뭄과 분쟁이 계속되면서 정부가 2011년에 식량 위기를 선포했습니다.
5세 이하의 어린이 200만 명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 소속 간호사 다니엘 와요이케 씨가 태어난 지 100일 된 우미(Umi)를 안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오늘도 마을을 돌아다닙니다. 무엇이 살아있었는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말라버린 땅을 걸어갑니다. 몇 달 째 이글거리는 태양이 강렬하게 내리쬐고, 숨을 쉴 때마다 먼지가 코와 입, 폐까지 들이닥치는 길을 걸어갑니다. 겨우 숨만 유지하고 있는 작은 아기를 만납니다.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났지만 1.7Kg도 안 되는 작은 아기, 여기서 몇 백 그램의 체중을 더 잃는다면 아기는 굶주림으로 하늘나라로 갈 것입니다. 이 아기(우미)가 저를 만나는 건 행운입니다. 기다릴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지금도 수많은 아이들이 누군가 찾아와주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달려가고 싶은가요? 먼지폭풍을 뚫고 걸어가, 한 숟가락의 설탕물을 먹이고, 물 한 컵을 마시게 해주고 싶으신가요? 눈물 대신 음식을 주고, 죽음 대신 생명을 붙들어주고 싶으신가요? 우리가 그 일을 하게 해 주세요. 우리가 당신을 대신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우리는 국제 NGO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입니다.”
여러분! 한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생명을 구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왜? 많은 생명을 구할수록 행복이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한 생명을 구하는 행복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중국의 고대 사상가 공자가 말했습니다. “인격 완성의 두 가지 축이 인(仁/사랑)과 의(義/올바름)이다. 지사(志士/어질고자 뜻을 세워 노력하는 사람)와 어진 사람(仁人)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인(仁)을 해치는 법이 없다. 도리어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 인(仁)을 이룬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 인(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목숨을 십자가에 내던져 모든 죄인들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의 은총을 받고 사도가 되어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 1:12)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믿음은 우리가 예수님이 하신 일에 동참하게 하게 합니다. 왜냐구요?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삶을 삽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성화(聖化)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이 더딜까요?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하기 때문입니다. 성화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여러분!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을 따르는데 거스르는 모든 육체의 소욕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배를 타고 로마로 호송되어 가다가 큰 광풍(유라굴로)을 만났습니다. 사도 바울이 탔던 배 안에 276명이 함께 있었습니다. 이 광풍 때문에 배가 파손되고, 배 안에 있던 모든 화물들을 다 버렸습니다. 그 원인은 사도 바울의 말을 듣지 않아 큰 손해를 본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한 가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한 말씀을 듣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본다. 요행을 바라는 사행심이 모험을 하게 된다.’ 한 번 따라해 보세요. ‘사행심은 믿음이 아니다.’ 사행심이란 위험한 일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인데, 이런 사행심은 결코 신앙이 아닙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던 사도 바울이 없었다면 이 배는 난파해서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함께 배를 탔던 사람들이 인정했습니다. 큰 풍랑이 일었을 때, 사람들은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계시를 들었습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들 다 네게 주셨다.”(행 27:24절)
여러분! 인생의 위기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죠. 하나님의 계시를 듣지 못했던 사공들은 도망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행 27:31절) 사도 바울은 광풍으로 14일 동안 먹지 못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했습니다.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한 것이요, 너히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34절) 하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니 다 안심하고 받아먹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의 고소로 인해 재판을 받기 위해서 배를 탔습니다. 함께 배를 탔던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큰 광풍을 만나고 나서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초라하게 보인 사도 바울의 말에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사람들은 마지막 기회에 사도 바울을 존중했습니다. 존중한 사람이 명령을 수행합니다. 배에 탔던 사람들은 바울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한 번 따라 하세요. ‘마지막 순종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생명을 구원하는 길입니다.’
여러분! 생명을 구원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는 믿음이 생명을 구원한다고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과 함께 로마행 배를 탔던 사람들은 큰 광풍으로 재물을 잃었습니다. 몸을 실었던 배도 버려야했습니다. 큰 광풍 때문에 명예도 잃고, 자기 경험, 자기 판단의 정확성도 버려야했습니다. 의지도 꺾여버렸습니다. 바람에 흔들리고, 조류에 표류하다가 간신히 구조된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구조된 사람들은 나중에 그 섬이 멜리데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여기서 “구조되다”는 말은 “구원 받았다. 생명을 보존 받았다”는 뜻입니다. 죽을 상황에 있었던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오직 신(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큰 광풍에 14일 동안 시달리고 흔들거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인생이란 이런 것입니다. 표류하는 인생은 목적이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표류하는 인생은 불안하고, 두렵고, 허무한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삶의 가치를 잘 모릅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가?’ 알지 못합니다.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알 수 없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알 수 없어요. 오로지 ‘뭔가에 휩쓸려 다니고 있구나.’ 이 사실만 알 뿐입니다. 그러다가 구원을 받은 후에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성공철학의 거장 나폴레옹 힐이 쓴 <놓치고 싶지 않는 나의 꿈, 나의 인생>에서 말했습니다. “성공의 17가지 원리 중 첫 번째로 명확한 목표를 꼽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카네기가 말했어요. “명확한 목표는 성공에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요? 98%의 사람들이 목표 없이 실패자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목표를 습관화 하지 않는 사람은 표류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향해가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 파선한 배를 타고 있던 276명이 어디로 가려고 했습니까? 로마로 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배를 타고 로마에 가지 못했습니다. 큰 광풍 때문에 멜리데 섬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큰 광풍에 시달렸던 276명이 누구 때문에 구원을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던 사도 바울 때문입니다. 멜리데 섬에서 누구 때문에 대접을 받았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 바울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 덕분에 후한 대접을 받았던 것입니다. 지금 나는 누구 덕분에 후한 대접을 받고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구원 받은 한 사람, 그리스도인 한 사람 덕분에 후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2절을 보세요.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큰 광풍 속에서, 참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276명이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비가 와서 옷이 다 젖었습니다. 날씨가 추어서 덜덜 떨고 있습니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구조된 사람들은 원주민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원주민들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원주민들이 특별한 동정으로 불을 피워주었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로마 사람들이 볼 때 원주민들은 미개인이요, 야만인들입니다. 도무지 사람 같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들의 말도 알아듣지 못해요. 그런데 원주민들이 왜 도와줬을까요? ‘이 사람들은 큰 광풍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신의 도움으로 바다에서 구조를 받았다.’ 멜리데 섬에 사는 원주민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저 광풍 속에서 생명을 보호받았던 사람들이라고 여겨서 도와주었습니다.
여러분! 인생이 참 묘한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내가 사람을 도와줬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를 돕는 것이 아닙니다. ‘나보다 훨씬 수준이 높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 거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실은 그 반대의 경우가 많습니다. 수준이 낮은 사람들,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문명의 높고, 낮음, 지식의 많고 적음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새 사람을 입은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골 3:10-11절) 멜리데 원주민들은 어떤 신앙을 가졌을까요? 어떤 구원의식을 갖고 있었습니까? 멜리데 섬 사람들은 신(神)을 두려워하였습니다. 부족 나름의 인도주의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인도주의가 하나님을 알게 하고, 믿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섬 사람들도 십자가 복음을 들어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보아야했습니다.
둘째는 구원 받은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지 봉사하고 섬깁니다. 그런데 봉사할 때 뱀에 물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뱀에 물렸을 때, 항상 구원의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었습니다. 그러자 뜨거움 때문에 독사가 나와서 바울의 손을 물었습니다. 그것을 본 원주민들이 생각합니다. 본문 4절을 보세요.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멜리데 원주민들은 뱀이 공의의 신(神)이라고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원주민들은 바울이 뱀에 물렸으니 독이 퍼져서 얼마 후에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바울이 죽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 것이 기적이요, 죽을 자를 살리는 것도 기적입니다. 죽어야 할 자가 살아있는 것도 기적입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한 것이 기적입니다. 이런 몸 상태로 건강한 것이 기적이요, 평안한 것도 기적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구원 받은 사람에게 언제 기적을 베푸십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는 자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그들이 곧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5,17-18절) 지금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할 때 뱀이 물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뱀이 물린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구원 받은 사람은 뱀이 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뱀을 불에 떨어버렸습니다. 이처럼 구원 받은 사람은 뱀(사탄, 마귀, 귀신들)을 성령의 불에 떨어버려야 합니다.
이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현재 죽을 지경에 있는 사람인데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평안합니다. 걱정거리가 많은 데 걱정을 안 해요. 왜? 항상 구원의식을 갖고 사니까요. 이것이 믿음이요, 믿음의 위력입니다. 사람들은 봉사하고 섬길 때 비판하고, 힐난하고, 물어뜯습니다. 하지만 구원의식을 갖는 성도는 물어 뜯김을 당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항상 마음이 평안한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구원의식을 가진 사람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전적으로 의탁하고, 묵묵히 봉사하고, 복음을 전할 뿐입니다. 믿는 사람은 항상 구원을 의식하며 사는 것뿐입니다. 그때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집니다. 원주민들이 사도 바울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본문 6절을 보면, “생각하며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로 사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과 함께 하고 계심을 의식합니다.
셋째는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지 기도하고 치유합니다. 왜냐? 십자가의 복음을 전할 때 어떤 상황, 어떤 처지에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을 보세요. “멜리데 섬의 추장 보블리오의 집에 사흘을 머무는 동안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권세로 사는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영적으로 우위에 있어야 합니다. 왜? 영적으로 우위에 있을 때 힘의 대결에서 사탄을 이길 수 있으니까요. 예수의 능력이 있어야 병마를 이기고, 하나님을 믿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합니다.
제임스 패커(James Packer) 목사님이 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책에서 말했습니다. “내가 안다고 여기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알기 원할 때 그 앎은 새로운 앎으로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려면 그분을 체험적으로 만나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체험적 지식으로 충만해야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바르게 섬기고, 바르게 살 수 있다.” 여러분! 지금 내 기도로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나타나고 있습니까? 지금 내 믿음으로 몇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내 봉사가 구원의 능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이제 기도의 능력을 얻어 생명을 구하고, 하나님을 아는 체험적인 믿음으로 주의 구원을 이루는 예수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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