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목사와 성도의 높고 낮음에 관한 성경적 기준과 입장 |
글쓴이 : 관리자 (218.♡.30.73) 날짜 : 2008-08-03 (일) 23:37 조회 : 4 추천 : 1 |
목사와 성도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다양한 신학적인 견해와 신앙적인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논쟁이 벌어진다면 끝 없는 논쟁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인의 견해 입장에서 답변으로 올려 보겠습니다. 혹 다른 견해가 있으시다면 다른 답변으로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적인 입장에 어떤 견해가 가까운가 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목사와 성도간의 높고 낮음의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전통적으로 목사 직분은 선망의 대상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민주주의의 발달과 대중 대체의 발달로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많고 다양한 신학교와 목사들의 신앙과 신앙생활의 문제가 외부로 다양하게 표출되면서 이와 같은 문제까지 드러나게 된 것 같습니다. 목사와 성도는 누가 높고 낮은 것일까요? 1. 구원론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목사와 성도의 입장을 구원론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똑 같습니다. 똑 같은 죄인었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당연 누가 높으냐 낮으냐 하는 문제 또한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롬3:23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으며(똑 같은 죄인이었으며). *요1:12(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고 영접하므로 구원 받았습니다). *똑 같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같은 형제입니다. 이와 같은 원리는 구원론의 입장에서 볼 때에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과도하게 목사직분을 높인 나머지 다양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연 반작용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론적인 입장에서 볼 때에 결국 똑 같은데 왜 과도하게 목사직분을 높이느냐 하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문제는 복합적인 요소들로 인하여 단순하게 정리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살펴보아야 하는 부분은 교회적인 입장에서의 목자 직분입니다. 2. 교회론적인 입장. 교회론적인 입장에서 목사와 성도간의 문제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질서와 직분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물론 높으냐 낮으냐 하는 문제는 세상적인 가치관이요 생각입니다. 하나님앞에서는 모두 평등합니다. 누가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의 면에서 구별된 부분은 영적인 입장에서 인정해야할 것입니다. 물론 은사와 직분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1)부르심에 차이가 있습니다. 부르심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어야할 것입니다. 구원을 위한 부르심과 사역을 위한 부르심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명을 위한 부르심으로 명명되는 부분입니다. 마10:1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마 10:1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이와 같은 부르심이 있습니다. 물론 교회를 통하여 세움을 입는 경우를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살펴보아야 하는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부르심을 따라 목사가 되었는가 자기 뜻으로 목사가 되었는가? *부르심의 목적을 따라 목사가 되었는가 세상적인 생각과 목적으로 목사가 되었는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는가 단지 행정적인 과정만 이수하여 세움을 입었는가? *부르심은 받았지만 세움을 받을 만한 준비가 되었는가 되지 않았는가? 이와 같은 부분은 중요합니다. 직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르심의 목적에 부합되지 않을 때에는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르신 분으로 부터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2)직분상 질서가 있습니다. 엡4:11-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엡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위 말씀을 보면 사도로 선지자로 복음전하는 자로 목사와 교사로 세우심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기 직분들은 교회에서 인도자 직분자들입니다. 이와 같은 직분들을 그가 세우셨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그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세우시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하여 세우셨을까요? 그 이유는 그 다음 구절의 말씀인 :12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목사로 번역된 직분은 원어적으로는 목자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목사 직분을 목자로 바꾸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은 본문의 배경이 있습니다. 목자는 양치기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양에 비유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목자를 세우신 것입니다 물론 그들을 돌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목자가 해야 하는 일은 아래와 같습니다. *양으로 하여금 꼴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여 꼴을 먹도록 해야 합니다. *양이 질병(영적, 육적)에 걸리면 병을 치료해야할 것입니다. *털이 길면 털을 깎아주어야할 것입니다. *맹수로부터 지키고 보호해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양과 함께 생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안정화 되고 정착되면서 다양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대형화 문제입니다 목자로서 하나님의 양들을 보살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속적인 목표를 이루는 도구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은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대형교회에 다니는 분들 가운데 이와 같은 분들이 많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목자의 사명 감당은 하지 못하거나 않으면서 직분만 강조하는 경우입니다. 물론 두 부분의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심각한 문제점들이 나타나면서 다양한 거부현상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는 목회자는 목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해결될 것이고 성도는 목자의 돌봄을 받는 곳으로 가야 해결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과 가치관이 속화되면서 성경적 가치관 보다는 대형건물과 문화적인 욕구 충족이 가능한 곳을 선택하면서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모두 회개하고 정신을 차려야할 문제로 생각됩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직분상 질서는 있습니다. 질서가 무너지면 혼란이 오기 때문에 서로간에 주의해야할 것입니다. 3)사역의 특성이 있습니다. 목사와 성도간에는 사역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목사는 부름을 받을 때에 받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세 구절의 말씀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①가르치며 지키게 하라. 목사직분은 목자로서 하나님의 양에게 바른 진리를 가르쳐서 지키며 살도록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사역을 위한 다양한 행정적 영적인 권위를 사용하게 됩니다. 문제는 가르칠 수 있는 준비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 온전치 못한 것이 우리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가르칠 수 있는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적용된 진리(기록된 진리와 그에 대한 확신). *성장하는 신앙(자신의 부족함과 무능함의 발견함에서 오는 겸손과 성장).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삶). *신학적인 또는 목회적인 조화와 균형 잡힌 성경적 진리의 준비. *성도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과 가르침을 위한 준비. 이와 같은 준비 없이 가르침의 직분을 강조한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분들이 제대로된 가르침을 받지 못하는 가운데 영적으로 방황하거나 식상해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성경적 바른 진리를 충심으로 가르치려 해도 받지 않는 문제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라면 가르침의 직분을 강조하는 것 보다는 가르칠 수 있는 직분자로 성장하는 것이 우선문제일 것입니다. 만약 성장이 없다면 나서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역은 단지 사명이 있다는 말로 변명해서도, 할 수도 없는 심각한 문제로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준비가 없는 분들 일수록 직분을 강조하면서 순종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을 먼저 가르쳐야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입장에서 볼 때에 바른 진리를 가르쳐서 지키면서 살도록 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부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19:19-2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②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라. 엡4:11-12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교회에 지도자의 직분을 주신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일입니다. 즉 장성한 신앙의 사람으로 양육하는 것이며 봉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직분의 특성상 평등하지 않은 것 같은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상호간에 이와 같은 직분의 특성을 이해해야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진리와 기준은 중요한 것입니다 목자와 성도들 모두에게 중요한 진리요 기준입니다. 엡4:11-12절 말씀입니다. "엡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런데 이와 같은 직분의 특성상 사역을 감당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것은 이와 같은 말씀을 강조하면서 순종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성경적 진리일 때에 그 앞에 엎드려야할 것입니다. 목사직분자 앞에 엎드려야 한다는 말이 아님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온전한 성도로 잘 양육이 된다면 자동적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앞에 엎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인간적인 생각과 가치관으로 대립 혹은 상호 의견이 발생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를 말하기 이전에 먼저 목자로 부름 받고 세움을 입은 사람들이 유념해야 하는 베드로의 귀중한 권면의 말씀이 있습니다. ③양의 본보기가 되라. 벧전5:2-3절 말씀입니다. "벧전 5: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중요한 두 가지의 문제만 살펴보겠습니다. 한 가지는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며 입니다. 이 말은 여러가지 뜻이 있습니다만 주인 행세를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목자는 목자장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 행세를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양무리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양무리의 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본이 되라는 말씀은 잘 아실 것입니다. 먼저 말씀을 행하라는 뜻입니다. 물론 본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런데 먼저 행하지 않고 말만 하기 때문에 발생하거나 윤리와 도덕적으로 심각하게 연약한 부분으로 인하여 발생합니다. 만약 이와 같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양무리의 본이 될 자신이 없다면 스스로 사역 일선에서 물러나야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양들인 성도를 위해서입니다. 교회와 교회의 직분은 세속적인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명으로 인하여 물러날 수 없다면 사역을 위한 준비를 위하여 물러나야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온전치 못함에도 불구하고 본이 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어야할 것입니다. 나를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이 나타나야할 것이며 예수님이 나타나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4)은사적인 측면이 감안되어야 합니다. 사역의 특성상 가르침 혹은 다스림의 사역을 감당하는 직분자들이 강조될 수 있습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강조될 수 있는 준비와 수준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감안해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는 은사적인 측면입니다. 고전12: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 각 사람은 교회의 구성원 모두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직분의 특성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서로 강조하는 부분에 따라 다른 것 같은 부분이 있지만 은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똑 같이 성령의 나타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의 나타남은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를 통하여 나타나는 성령의 나타남을 통하여 온 교회는 서로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 교회는 그와 같은 분위기 혹은 수준에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와 같은 가르침 또한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신학적인 견해 차이일 것입니다. 성령론에 대한 다양한 견해 차이는 교회를 위한 중요한 진리가 왜곡 증거되거나 무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회복해야할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됩니다. 5)상호 유기적 관계적인 측면도 무시되거나 경시되면 안 될 것입니다. 목사와 성도와의 관계는 직분의 측면에서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좀더 근원적인 상호 관계의 측면에서도 살펴보아야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견해는 바울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목사와 성도차별 없이 포함) 그의 몸입니다. *엡5:23 - 교회의 머리 되심 *엡5:30 - 우리는 그 몸의 지체. 목사와 성도는 함께 몸의 지체입니다. 함께 각자가 받은 것을 감당하므로 건강한 주님의 몸으로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부분외에도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각자 강조하기 원하는 부분에 따라 다른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목사가 감당해야 하는 성경적인 측면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목회자를 공격하는 공격용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본 글의 목적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함께 세워져 가야 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아래의 말씀을 서로 기억하면서 아름다운 주님의 몸으로 세워져 갔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첫 번째는 히13:17절의 말씀입니다. "히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본 구절은 인도하는 분들이 많이 인용하는 구절의 말씀입니다. 그럴 때에는 대부분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뜻으로 인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먼저 인도자 자신이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경성한다는 말과 회계할 자라는 말씀입니다. 경성한다는 말은 양들의 영혼을 위하여 항상 깨어 있다는 뜻이요 회계란 계산한다는 뜻입니다. 정말 양들의 영혼을 위하여 이와 같은 신앙적인 자세와 수준인가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인용하고 싶은 구절의 말씀은 갈6:6절 말씀입니다. "갈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목사와 성도는 상호 대립관계에 있어야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한 형제로서 각자가 받은 은사와 재능과 직임을 따라 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부족함이 많지만 함께 서야 하겠다는 신앙적인 자세가 되어야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상호 비방하는 것을 멈추고 성경적 진리와 원리를 따라 상호 협력하여 아름다운 주님의 몸을 이루어 가는 도구로 쓰임 받았으면 합니다. 사무엘신학원 홍샘목사 |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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