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온전한 예배를 드리자

하나님아들 2014. 3. 18. 18:07

 

    온전한 예배를 드리자 (말 1:6-14)                    믿음                12. 7. 1

 

[서 론]

   우리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예배입니다.     주일낮, 오후예배, 수요예배, 새벽예배 등...     예배가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예배란 하나님을 찾고, 높여드리는 의식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예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창 35:1)

   그러기에 예배는 우리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합니다.     예배에 실패하면 신앙도 실패합니다.     교회의 부흥도 예배에 달려 있고, 개인의 축복도 예배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진정한 예배자가 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부흥시켜 주실 것입니다.    축복을 받고 싶습니까?     먼저 온전한 예배자가 되십시오.     그리하면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 시간 예배를 다시 생각해 보십시다. 그리고 온전한 예배자로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 론]

                             1. 예배를 통한 축복

   예배의 기원(시작)은 제사입니다.     지금의 예배 방식과 과거의 예배 방식이 달랐습니다.    과거에는 피흘림의 제사 형식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제사에는 피흘릴 제물이 항상 있어야 했습니다.     그 제물로는 양, 염소, 소, 비둘기 같은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 예배드리고자 할 때 먼저 제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제단위에 제물(동물)을 죽여서 올려놓고 불로 태웁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그 제물을 받으시고, 제사드리는 자에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사람들은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항상 제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물을 드릴 때 하나님은 그 제물을 받으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① 노아를 보십시오.    노아가 홍수심판때 1년 이상을 방주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노아는 하나님께 제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의 제사를 받으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을 너희의 손에 붙였노라.’(창 8:1-2)

   ② 야곱을 보십시오.     그가 애굽으로 이사갈 때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제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나타나 용기와 축복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 가겠고,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라’(창 46:3-4)

   ③ 사무엘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불레셋 족속과 전투할 때 사무엘이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큰 우레를 발하여 적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삼상 7:10)

   ④ 다윗을 보십시오.     그가 인구조사의 일로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백성에게 임하여 많은 사람이 죽어갔습니다.    그때 다윗이 제단을 쌓고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진노가 그쳤습니다.  ‘여호와께서 천사를 명령하시매 그가 칼을 칼집에 꽂았더라.’(대상 21:;27)

   ⑤ 솔로몬을 보십시오.    솔로몬이 왕이 된 후 1,000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 솔로몬이 구하는 지혜뿐만 아니라 부귀와 영광도 주셨습니다.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리니’(대하 1:12)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에게 제물을 갖고 예배(제사)하는 자에게 은혜와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배를 귀하게 여기십시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예배받기를 원하심을 잊지 마십시다.     예배는 괴로운 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통로입니다.      예배를 잘 드리면 정말 복을 받습니다.

나는 지금껏 예배를 어떻게 드렸는지 생각해 보십시다.

 

                             2. 예배를 받지 않는 이유

   그런데 하나님은 예배를 받기 원하지만 모든 예배를 다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도 있고, 거절하는 예배도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가 그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두 형제가 한 날, 같은 장소에서, 각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온전한 제사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방식대로, 자기 멋대로, 자기 좋을 대로 드렸습니다.     그리고선 하나님이 자기 제사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나의 예배는 누구의 제사를 닮았다고 생각합니까?

아벨의 제사일까요?      가인의 제사일까요?

   오늘 읽은 말라기서를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 1:10)      예배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왜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온전한 제사를 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가장 중요한 것이 제물입니다.      그 祭物(제물)로는 양, 염소, 소, 비둘기 등을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온전한 제물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병든 것, 흠있는 것, 상한 것을 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흠없고, 깨끗한 것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백성들이 어떤 제물을 드렸습니까?     온전한 제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는 제물을 드렸습니다.      8절을 보면 ‘눈 먼 것, 저는 것, 병든 것’ 을 드렸다고 했으며, 13절에도 ‘훔친 것, 저는 것, 병든 것’ 을 가져 왔다고 했습니다.

    그런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향해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① 악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8절)     ② 더러운 떡을 바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7절)     ③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라고 했습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6절)     ④ 제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10절)     ⑤ 저주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흠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14절)

   그러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8절)       지도자(높은 분)에게 그런 ‘눈멀고, 절고, 병들고, 흠있는 것’으로 예물로 드린다면 그가 좋아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온전한 정신을 가진 지도자라면 그 예물을 받지 않을 것이며, 그러한 예물 드린 자를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예물을 드리는 행위는 상대방을 멸시하는 행동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더 웃기는 일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그런 ‘더러운 떡’(병들고, 절고, 병들고, 약하고, 흠있는 것)을 드리고도 복을 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9절)

    하나님은 그런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도리어 책망하십니다.  ‘보라.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제물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말 2:3)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도 축복이 아니라 책망과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더러운 떡’을 드리는 예배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시며, 나의 예배를 받지 않으시며, 도리어 책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와 축복을 구하지만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그냥 습관적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마지 못해 억지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면 예배를 드려도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나의 예배를 돌아보십시다.

 

                            3. 온전한 예배를 드리려면

   오늘의 예배는 예전의 제사처럼 더 이상 동물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 제사법을 페지하셨습니다.     만약 지금도 동물의 제물로 제사를 드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동물들이 매일 죽어 동물의 씨가 마를 것입니다.     그리고 동물애호가들이 매일 피겟을 들고 항의할 것이며, 법적으로도 시비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님을 모든 인간을 위한 영원한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그리고 그 아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코자 자신의 몸을 제물로 십자가에 희생하셨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히 10:12)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영원한 제물이 되어 주셨기에 더 이상 우리는 다른 동물을 제물로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8)      그래서 이제는 예전처럼 동물 제물을 갖고 하나님께 나가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제물을 갖고 하나님께 나가 제사(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성경은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이것은 예전의 동물처럼 우리 몸을 죽여 불로 태워 드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거룩한 산 제물’ 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친 ‘흠 있고, 병들고, 눈먼 제물’이 아니라 ‘흠 없고 깨끗한 제물’을 말합니다.     예배드리는 자가 바로 이런 거룩한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요, 온전한 예배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받으시고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온전한 예배를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예배자인 내가 거룩한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예배자를 보고 예배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예배자인 내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렇게나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은 나의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비록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영원한 제물이 되어 주셨지만, 예배자가 올바른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예배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내 자신을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거룩한 산 제물이 될 수 있을까요?

   ① 예배 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예배자는 예배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늦게 예배당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는 더 이상 거룩한 제물이 되지 못합니다.     늦게 와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존경하거나,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때는 시간을 꼭 지킵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는 예배시간이 되면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닫기도 합니다.     예배 시간을 지키는 것이 나 자신을 거룩한 제물로 드리는 일이 됩니다.

   [평양 산정현교회의 조만식 장로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주일날 예배에 참석하려는 조장로에게 손님이 찾아와서 손님과 얘기하다 그만 예배 시간에 늦고 말았습니다.     설교하던 주기철목사님이 늦게 들어오는 조장로에게 “장로님, 오늘은 의자에 앉지 말고 서서 예배를 드리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노장로에게 너무나 가혹한 처사였만 순종했습니다.]

   ② 앞자리부터 앉는 것입니다.     보통 ‘앞자리를 금 자리요, 뒷자리는 동 자리라’ 고 말합니다.     앞에 앉아야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기장에 가거나, 무슨 공연을 보거나 잘 보려면 앞자리로 갑니다.      그래서 앞자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합니다.     예배드리는 자도 앞자리에 앉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였던 록펠러의 어머니가 그에게 남긴 신앙의 유언에 보면 ‘예배 시간에는 항상 앞자리에 앉으라’고 했습니다.    뒷자리는 도망가는 자리요, 불평하는 자리요, 구경하는 자리요, 시험드는 자리입니다.     그러기에 뒷자리에 앉으려고 하지 말고 앞자리에 앉는 것이 나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일이 됩니다.

   ③ 몸가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예배당에 들어오면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로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옆 사람과 잡담>을 삼가해야 합니다.     예배시간에는 옆 사람과는 곡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휴대폰 사용>을 금지해야 합니다.     공부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하면 공부 분위기를 깨고, 자신도 공부를 못합니다.     그래서 학교에 가면 휴대폰을 거두었다가 집에 갈 때 준다고 합니다.     예배시간에도 휴대폰을 끄고, 받지도 말아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하면 그 자신은 거룩한 제물이 되지 않습니다.

   또 <졸지 말아야 합니다>     닭이 졸듯이 예배시간, 특히 설교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가끔 피곤해서 졸 수 있지만 자주 존다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졸면서 은혜받을 수 없습니다.     졸면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기 때문에 시험들기 쉽습니다.     졸고 있는 교인 10만 명보다는 눈을 똑바로 눈을 뜨고 말씀을 경청하는 100명의 교인이 더 힘이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졸면 거룩한 산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④ 예배에 동참해야 합니다.     예배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온 신자이지, 예배를 구경하러 온 관광객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배순서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함께 찬송을 부를 때는 함께 열심히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벙어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또 함께 기도할 때도 함께 뜨겁게 기도해야 합니다.      묵상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함께 말씀을 들을 때 ‘아멘, 아멘’으로 화답해야 합니다.

 ‘아멘’은 하면 할수록 마음에 은혜가 되고, 예배가 살아나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예배에 동참하지 못하고 구경꾼이 된다면 거룩한 산 제물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는 어떠합니까?     내 자신이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거룩한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깨어 있는 의식을 갖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와서 앉았다 가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에베드리면 축복해 주십니다.

   [몽골에서 선교하는 이용규선교사의 ‘내려놓음’의 책에 보면 이런 간증이 있습니다.    주일날 예배를 드릴 때였습니다.     한 소녀가 헐레벌떡 뛰어 예배당에 들어왔습니다.    그 소녀는 주일 아침에 소를 잃어버려서 사방을 찾아 다니다가 예배시간이 다 되어서 소 찾기를 포기하고 예배드리기 위해 달려 왔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입니까? 주일날이라고 잃은 소 찾는 것을 포기하고 예배드리고자 교회로 올 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배가 끝나자마자 소 울음소리가 들려 나갔더니 찾아 다니던 소가 예배당 앞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어찌 일어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그 소녀를 기쁘게 여기시고 소를 그 곳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결 론]

   성도 여러분, 우리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예배입니다.     그러기에 예배는 우리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합니다.    예배에 실패하면 신앙도 실패합니다.     교회의 부흥도 우리의 예배에 달려 있고, 개인의 축복도 예배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께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아무렇게나 예배에 참석한다고, 무조건 예배를 드린다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는 받지 않으시고, 제발 그런 예배는 안드렸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노라.’(10절)

   하나님은 우리가 깨끗한 제물을 갖고 예배드리기를 원하십니다.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11절)      그 깨끗한 제물은 바로 내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내 자신이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은혜를 더하여 주십니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 온전한 예배를 드리도록 힘을 씁시다.     내 자신을 깨끗하고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십시다.     하나님이 거절하는 예배가 아니라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십시다.     어떻게 내가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예배가 살아나면 교회도 살고, 가정도 살고, 나 자신도 삽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되십시오.     진정한 예배자가 되십시오.

 

 

 

 

출처 : 주님안에서˘♡
글쓴이 : 지팡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