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놀라운 변화

하나님아들 2014. 3. 18. 18:03

 

     놀라운 변화 (막 5:1-20)                     믿음                         12. 9. 15

 

 

[서 론]

   오늘 본문에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 놀랍게 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곧 귀신들려 행복했던 자기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던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온전한 사람으로 다시 회복된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면 어떠한 사람도 새롭게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본문 사건을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십시다.

 

[본 론]

                              1. 무덤 사이에 사는 사람

   오늘 본문에 보면 이상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2-3절을 읽어 봅시다.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a man with an evil spirit)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어떤 사람이 등장합니까?     귀신들린 남자가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어디서 살고 있습니까?     집이 아니라 무덤(굴)에서 살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얼마나 무섭고, 무덤에서 살겠습니까?

정상이 아니니까 무덤을 집으로 삼고 사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의 삶은 비참하고, 불쌍합니다.    5절을 읽어볼까요?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밤낮 괴성을 지르며, 스스로 자기 몸을 해치고 있습니다.     또 눅 8:27에 보면 ‘오래동안 옷을 입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옷도 입지 않고, 무덤에서 살며, 밤낮 소리지르며, 자기 몸을 해치며 살고 있으니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그런데 그가 그렇게 된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된 것이 아닙니다.     눅 8:27절에 보면 그는 ‘거라사인 도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곧 그는 도시 시내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그는 이상해지더니 집을 나가 무덤에서 살면서 괴상한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누가 그 사람에게 그런 불행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이 그 사람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이런 일이 어디 그 사람에게만 일어나겠습니까?     여기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어느날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큰 슬픔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큰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지금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해서 내일도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매스컴을 보세요.     하루 동안에도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일어납니다.     그런 일이 누가 자기에게 닥칠 줄이야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일로 생각했는데 오늘 자기에게도 일어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내일 내가 어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일엔 그 자랑거리가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불행한 일로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 여지지 말고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도 그 사람처럼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불행한 일을 만나 괴로워할 때 다른 사람들이 나를 피하고 이상하게 여기면 얼마나 가슴 아프겠습니까?

   혹시 여러분 주변에 오늘 무덤에서 지내며, 소리지르며, 자기 몸을 해치는 그 사람와 같은 사람이 없습니까?     우울증에 빠져 다른 사람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 술에 늘 취해 사는 사람, 몹쓸 병에 걸려 괴로움을 받는 사람, 도박이나 게임에 빠져 있는 사람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은 그런 사람들을 버리고, 무시하고,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런 사람에게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사람의 영혼과 나의 영혼의 가치가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런 버려진 사람도 하나님을 만나면 새롭게 변할 수 있습니다.     인생이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알거나, 만나면 하나님께로 인도하세요.     그런 사람을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다가가야 합니다.

 

                             2. 사람을 망하게 하는 귀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정상적인 사람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자기가 원해서 무덤을 거처로 삼고, 밤낮으로 소리지르며, 옷을 벗고 살며, 자기 몸을 해치며 살았을까요?

그렇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이 사람이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2절을 읽어볼까요?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그 사람에게 무엇이 들어갔습니까?     귀신이 들어갔습니다.     무슨 이유로 인해 귀신이 그에게 들어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귀신이 그 사람속에 들어가니 그의 인생이 하루 아침에 비참해지고, 불행하게 된 것입니다.

   귀신 이야기가 나왔으니 잠시 귀신에 대해 알아 봅시다.     귀신의 시작은 잘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믿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영혼이 귀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타락한 천사도 아닙니다.     귀신은 사탄이 일꾼으로 부리는 악령입니다.

   육체가 없는 영이기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귀신은 좋은 귀신이 없습니다.    성경은 귀신을 가리켜 ‘더러운 귀신’, ‘악한 귀신’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귀신들인 사람을 보면 몸이 지저분하고, 행동이 악해지고, 말이 지저분해집니다.

   그런데 귀신은 동물의 육체가 아니라 사람의 육체를 거처로 삼기를 좋아합니다.     사람속에 들어가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괴롭히고, 망하게 합니다.     곧 질병을 주고, 자기 몸을 해치게 하고, 남에게 나쁜 일을 행하게 하고, 그로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도록 파괴시킵니다.     일을 못하게 합니다. 결국 사람을 망하게 합니다.

   그런데 귀신은 죽지 않는 영이기에 사람의 과거를 잘 압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귀신들린 사람이 그 땅에 처음 온 예수를 만났습니다.     2절을 읽어볼까요?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처음 예수를 만났으니 보통 사람같으면 예수 이름을 모릅니다.     그런데 귀신들린 사람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 이름을 불렀습니다.     7절을 읽어볼까요?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그래서 귀신들려(신내림) 일하는 무당이나 점쟁이는 찾아온 사람들의 과거를 참 잘 알아 맞춥니다.

어떻게 잘 알아 맞추는 것입니까?     그 무당이나 점쟁이 속에 있는 귀신이 찾아온 사람의 과거를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 속습니다. 곧 나의 은밀한 과거를 잘 알아 맞추었으니 나의 미래도 잘 알아 맞출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당이나 점쟁이가 시키는대로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귀신은 지나간 일은 잘 알지만 앞으로 있을 일은 모릅니다.

   그래서 무당이나 점쟁이가 시키는대로 행하면 결국 망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귀신은 우리를 망하는 것을 보고 싶어합니다.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아가면 안됩니다.     과거는 족집게처럼 알아 맞춰도 미래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망하기를 원하는 귀신의 거짓말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귀신이 일러주는 대로 행하면 결국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미래의 일은 오직 하나님의 손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미래가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니 하나님을 찾으면 살 수 있습니다.

 

                             3. 인생을 변화시킨 예수님

   오늘 귀신들린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이 되려면 그 속에 있는 귀신이 떠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속에는 많은 귀신이 들어 있습니다.     9절을 읽어볼까요?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누가 사람속의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까?     귀신이 보여야 쫓아낼 수 있는데 보이지 않으니 사람이 쫓아낼 수 없습니다.     귀신이 영이기에 의술로도 쫓아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겨우 할 수 있는 것이 귀신을 달래는 것입니다.     무당이 하는 것이 바로 귀신을 달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달래어 놓으니 나중에 또 다시 찾아옵니다.     그래서 자꾸 무당을 부르게 되고, 결국 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귀신을 제어할 수 있는 분이 있으니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예수님이 그 사람속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8절을 읽어볼까요?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귀신들이 예수님께 한가지를 구했습니다.     자기들이 그 근처에 있는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 근방에 돼지가 거의 2천마리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허락하자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들에게로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13절을 읽어봅시다.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한 사람의 생명과 2천 마리의 돼지 생명과 바꾼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의 가치는 동물의 생명의 가치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코자 아들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코자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것이지 동물의 생명을 구원코자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귀신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은 ‘예수’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막 16:17)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자기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리라고 약속한 사람은 예수 한분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바울이 점치는 귀신이 들린 소녀를 향해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행 16:18)      귀신이 예수 이름 앞에 꼼짝하지 못하고 쫓겨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귀신이 역사하는 것을 볼 때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리라’라는 약속을 믿고 바울처럼 담대하게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향해 꾸짖어 명령을 하십시다.     한번 해 봅시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하고 더러운 귀신아 그에게서 나오라’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나가자 어떻게 되었을까요?     15절을 읽어볼까요?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소문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이 와보니 전에 쇠고랑을 채워도 감당할 수 없었던 귀신들린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이제 정든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절을 읽어볼까요?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그 사람은 예수님을 통하여 인생이 새롭게 바뀌게 되었습니다.     예수때문에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때문에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이 우리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새롭게 변화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눅 4:18)

   그래서 어둠속에 있는 사람, 죄악속에 있는 사람, 절망중에 있는 사람, 질병중에 있는 사람, 악한 영에게 눌린 사람, 불행중에 있는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만나면 새롭게 변합니다. 인생이 달라집니다.     정상적인 삶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환경과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절망적일지라도 포기하지 마십시다.     예수님을 만나면 나 자신이 새롭게 바뀌고, 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갑시다.      예수님을 찾으십시다.     예수님을 부르십시다.      그리하면 살 길이 열립니다.

   오늘 귀신들린 자가 보십시오.     신기하게도 예수님이 그 사람을 찾아간 것보다는 오히려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 앞에 찾아 나왔습니다.     6-7절을 읽어보십시다.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예수님을 보고 피하거나, 도망치거나 했더라면 그의 인생이 바뀌지 않았을 것입니다.    귀신들렸지만 그는 예수님께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와쳤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옴으로써 그를 괴롭히던 귀신이 떠나가고 온전한 사람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찾지 말고 예수님께로 달려 가십시다.     예수님만이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고, 여러분의 자녀를 변화시킬 수 있고,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부르십시다.   ‘하나님 아들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새롭게 하소서!    나를 건져 주옵소서!   악한 영들을 물리쳐 주옵소서!’

 

[결 론]

   성도 여러분, 누구든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님을 만나면 새롭게 됩니다.     오늘 군대 귀신에게 사로잡혀 아무런 소망도 없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새롭게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을 완전히 망쳤던 귀신이 예수 이름앞에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전의 건강한 모습, 온전한 모습을 회복하여 가정으로 돌아갔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그러기에 그의 이름도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부르면 예수님이 만나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렵고 힘들지라도,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을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다.     우리 앞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의 이름을 부르면 만나 주십니다.      예수님을 만나 문제가 해결되고, 인생이 새롭게 변하는 은혜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은혜로우신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오늘 새롭게 변한 그 사람에게 가서 전하라고 했습니다.      19-20절을 읽어봅시다.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내가 먼저 큰 은혜를 체험해야 나가 다른 사람에게도 전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주님안에서˘♡
글쓴이 : 지팡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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