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람의 모습 (눅 22:47-62) 믿음 12. 10. 28
[서 론]
오늘 본문은 주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기 직전의 내용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기도하신 후 한 밤중에 산에서 사람들에게 붙잡혀 대제사장 가아뱌의 집에 끌려가 새벽에 심문을 받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려 사람들 중에 특별히 3사람을 주목하여 생각해 봅시다.
[본 론]
1. 배반하는 유다
먼저 유다를 생각해 봅시다. 47절을 읽어 봅시다.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을 앞장서 와서’ 누가 등장합니까? 유다입니다.
유다는 누구입니까? 47절을 보니까 열둘 중의 하나라고 했습니다. 열둘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예수님의 12제자(=사도)를 말합니다. 곧 여기에는 나오는 유다는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를 가리켜 흔히 ‘가룟유다’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인 유다가 예수님을 잡고자 하는 사람들을 이끌고 밤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입맞추려고 가까이 왔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유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48절)
곧 유다의 입맞춤은 인사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내는 신호(암호)였습니다. 유다는 이끌고 온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입맞추는 자가 예수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고 가라’(막 14:44) 유다의 그 신호를 보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붙잡았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그를 죽이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앞장섰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처음부터 따랐던 제자였습니다. 그는 다른 제자들처럼 예수님이 주신 능력으로 나가 전도도 하고,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고, 병자를 고치기도 했습니다. 또한 제자들 중에 돈궤(재정)를 맡기도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배반(믿음을 지켜야 할 대상을 등지고 저버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여지껏 가졌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한 순간에 저버리고,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팔아 넘기는 일을 했습니다. 자기가 믿고 따르던 예수를 배반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러 가지 추측과 이유를 말할 수 있겠지만 성경은 분명한 한가지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사탄이 역사했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 13:2) 유다는 마귀에게 틈을 준 것입니다. 자기가 믿고 따르던 스승을 원수들의 손에 팔아 넘겼으니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오늘 유다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배도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배도자란 자기가 믿던 종교(신앙)을 배반하고, 다른 종교(신앙)을 갖는 사람을 말합니다. 곧 성경에서 말하는 배도자란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좇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는 그런 무리들을 가리켜 ‘이단’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무리를 가리켜 이단이라고 합니까? 한때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따르던 자들이 어느날 예수를 부인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지 않고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의 무리가 이단입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은 대부분이 전에 예수님을 열심히 믿던 자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가리켜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벧후 2:1)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히 10:29)
이단에 빠진 자들을 보세요. 대부분이 전에 예수님을 믿던 집사. 권사, 장로들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자기를 피로 사신 예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예수님이 세우신 그의 교회들을 짓밟으려고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들 속에 사탄이 들어가 사탄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기고 죽이는 일에 앞장선 것입니다.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을 앞장서 와서’(47절) 오늘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가장 앞장서는 무리가 바로 이단입니다.
타종교도 아니고, 정치도 아니고 이단입니다.
한때 자기가 그토록 믿고 따르던 예수를 이제는 부인하고, 그 예수가 세운 교회를 짓밟는 일에 앞장서고 있으니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세상이 끝날 마지막 때이기에 유다와 같은 배도자들이 더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사탄에게 미혹을 받아 예수를 부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예수를 떠나 다른 사람을 좇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를 핍박하고 짓밟는 일에 앞장설 수 있습니다.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일입니까?
내가 결코 유다와 같은 주를 배반하는 배도자가 되지 않기를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우리를 삼키려고 우리 주위를 배회하는 이단들을 조심하고, 그들의 달콤한 말에 미혹을 받지 마십시다. 따라해 보십시오. ‘주 예수를 부인하는 배도자 유다가 되지 말자’
2. 사랑하는 예수님
다음에 예수님을 생각해 봅시다. 51절을 읽어 봅시다.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예수님이 무슨 일을 행하셨습니까? 귀가 떨어진 사람의 귀를 만져 낫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 내용은 이러합니다. 유다를 따라 올라온 사람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과 함께 있던 제자 중 하나인 베드로가 갖고 있던 칼을 빼어 ‘말고’라고 하는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쪽 귀를 베어 떨어뜨렸습니다.(요 18:10) 베드로는 예수님을 보호하려는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까지 참으라.’(51절)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십자가)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 18:11) 그리고선 오른쪽 귀가 떨어진 ‘말고’의 귀를 만져 주셨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오른쪽 귀가 온전히 회복되었습니다.
얼마나 사랑이 풍성하신 예수님이십니까? 보통 사람 같으면 자기를 잡으러 온 사람이니 그의 귀가 떨어지면 얼마나 속이 시원하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자기의 원수이지만 귀가 떨어져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을 못 본척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능력으로 온전히 고쳐 낫게 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원수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죽이려고 찾아온 원수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셨습니다. 원수를 만지는 것을 참으로 어렵지만 그의 귀를 만져 낫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 6:27-28)
예수님은 말로만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몸소 사랑을 실천하여 본을 보이셨습니다.
[대표적인 본은 십자가상에서 보여 주었습니다. 아무 죄도 없던 예수님은 부당하게 십자가 사형선고를 받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신채 사형 장소인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 가셨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눕혀 놓고 양손에 대못을 박고, 양발을 포개어 대못을 박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못박힌 십자가를 세워 그의 몸이 공중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군병들과 사람들이 예수를 바라보고 조롱했습니다.
두 손과 두 발의 힘만으로 매달려 있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숨쉬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자신을 그렇게 못박고, 조롱하는 군병들과 사람들을 내려다 볼때 감정이 어떠하겠습니까? 보통 사람 같으면 욕하거나, 저주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자기의 억울함과 원수를 갚아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렸을 때 제일 먼저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자기의 고통을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자기를 못박고 조롱하는 원수들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그 기도는 자신의 원한을 갚아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얼마나 위대하신 예수님이십니까? 우리는 이처럼 사랑이 풍성하신 예수님을 믿는 신자입니다.
우리의 가장 소망은 주 예수님의 모습을 닮는 것입니다. 그를 닮은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외모를 닮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랑의 삶을 닮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는지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수까지 사랑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면 욕을 먹습니다.
오늘 나를 힘들게 하고, 나에게 큰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원수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쳐다보기도 싫고, 말하기도 싫고, 만지기도 싫은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시기를 원할까요? 자신이 원수에게 행한 것처럼 행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곧 용서해 주고, 사랑을 베풀어 주고, 기도해 주고, 축복해 주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오늘 칼을 쓰려고 하는 베드로에게 ‘이것까지 참으라’(51절)고 하시고 사랑의 손을 펴신 예수님! 그 분처럼 우리도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자들에게도 참으십시다. 그리고 사랑과 용서의 손을 내미십시다. 이것이 예수 믿는 자의 참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 6:36)고 말했습니다.
3. 넘어지는 베드로
마지막으로 베드로를 생각해 봅시다. 57절을 읽어 봅시다.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베드로가 사람들 앞에서 3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그는 몇 시간 전만 해도 예수님을 지키고자 칼을 빼어 원수의 귀를 베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예수님을 모른다고 강하게 부인한 것입니다.
그가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게 된 일은 이러합니다. 전날 저녁때 예수님은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하신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그러자 베드로가 대뜸 나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그러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그러자 베드로가 다시 말했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마 26:31-35)
그리고 한 밤중에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사람들에게 붙들려 가자 베드로는 자신을 숨기며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붙잡혀 들어간 대제사장(가야바)의 집 뜰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새벽이라 날씨가 추워 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앉아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가리고 그들 가운데 앉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54-55절을 읽어볼까요?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그런데 사람들이 베드로를 알아보고 이렇게 3번 말했습니다. ‘이 사람도 예수와 함께 있었다’(56절)
‘너도 그 도당이라’(58절)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59 절) 그때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가 마지막 3번째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닭이 울었습니다. 60절을 읽어볼까요?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더라.’
닭소리를 듣자 베드로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밖에 나가서 심히 울었습니다. 61-62절을 읽어볼까요?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오늘 베드로의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우리는 언제라도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아무리 내가 장담하고, 약속할지라도 환경에 약한 것이 우리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부인하지 않겠노라고 장담했습니다. 하지만 둘러선 사람들을 보자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기도 모르게 예수를 부인하고 만 것입니다. 장담이 하루도 못갔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편안하고 고난이 없고, 핍박이 없을 때는 신앙이 변치 않을 것 같이 장담합니다. 하지만 고난이 내게 닥치고, 핍박이 가해지고, 세상의 유혹이 밀려오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오래가지 못하여 신앙의 열정이 식어버리고 맙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의 신앙을 보고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환경이 어려워지면 나도 그 사람과 똑같아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자랑이 오래가지 못하고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을 너무 믿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입니다. 쉽게 무너지고, 쉽게 변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나도 넘어지지 않을까 항상 두려워해야 합니다.
베드로의 넘어짐을 잊지 마십시다. 내 스스로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장담하지라도 주님이 붙잡아 주지 않으면 신앙이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신앙을 믿지 말고 항상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결 론]
성도 여러분, 오늘 3사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롯유다를 보십시오. 유다처럼 자기가 믿던 예수를 부인하고, 예수가 세우신 교회를 짓밟는 배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마지막 종말의 징조입니다.
유다처럼 자기가 믿던 주 예수를 부인하는 자들이 바로 이단입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은 과거에 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교회를 다니던 자들입니다. 사탄은 오늘도 예수님을 배도할 자를 찾아 다닙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단에 빠진 자들에게 미혹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나도 유다와 같은 배반의 자리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자기를 붙잡으러 온 사람, 원수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의 떨어진 귀를 만져 낫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그의 제자입니다.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나에게 아픔과 상처와 고통과 눈물을 주는 자가 있다면 예수님처럼 사랑을 실천해 보십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원수에게 사랑과 용서의 손길을 내밀면 머지 않아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는 예수를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자기는 능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환경이 자기에게 불리하게 다가오자 예수를 모르다고 3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장담했지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라도 신앙이 넘어질 수 있습니다. 나의 신앙은 변치 않을 것 같지만 시련과 유혹이 오면 넘어질 수 있습니다. 나의 신앙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항상 겸손하고 주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나는 언제라도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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