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자유를 주시는 예수

하나님아들 2014. 3. 18. 18:00

 

     자유를 주시는 예수 (눅 4:16-21)                 절기               12. 12. 16

 

 

[서 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탄생하신 날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성탄절이 가까우면 온 거리에 성탄의 소리를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르게 왔다가 모르게 지나가는 상태로 되었습니다.     점점 성탄의 즐거움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탄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산타 할아버지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성탄절은 산타로부터 선물을 받는 날이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을 감사하는 날입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으로 오신 날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그가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오실 때는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가 하신 일이나 그가 말씀하신 것을 살펴보면 그 분이 오신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예수님이 자신이 어떤 일을 하려고 오셨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8절을 읽어볼까요?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한마디로 요약하면 예수님은 우리 인생에게 자유를 주고자 오셨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자유를,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자유를,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고자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 8:36)     예수님은 속박이 아니라 자유를 주시고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우리 인생에게 어떤 자유를 주실 수 있을까요?

 

[본 론]

                            1. 죄의 짐에서 자유

   이 세상에 죄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죄인입니다.     마음으로 죄를 짓고, 생각으로 죄를 짓고, 행동으로 죄를 짓습니다.     큰 죄를 짓든, 작은 죄를 짓든, 많은 죄를 짓든, 적은 죄를 짓든 다 죄인이라는 사실에는 동일합니다.

   작은 죄를 짓고, 적은 죄를 지었다고 죄인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다 죄인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가 지은 죄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남의 죄가 아니라 자기가 행한 죄때문에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죄가 조금 있다고 지옥 판결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죄가 조금 밖에 없다고 천국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한 평생 지은 죄짐을 모두 없애야 지옥불에 가지 않습니다.    모든 죄를 깨끗이 씻음받아야 천국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나의 모든 죄를 없앨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나의 죄의 짐(멍예)을 벗을 수 있을까요?     사람은 죄를 지음으로 마음의 평안이 없고, 기쁨을 잃고, 두려움이 생기며, 죄의 값인 고통과 재앙을 받게 됩니다.     내 힘과 선행으로 죄의 짐을 벗을 수 없습니다.

   내가 죄의 짐으로부터 자유함을 받는 길은 하나 뿐입니다.    곧 나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죄없는 자로 인정받는 길(의인)은 하나 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바로 우리(나)의 죄를 없애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붙어있는 죄의 짐을 벗겨주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바를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 3:5)     우리 죄를 없애고자 오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불교의 석가모니나, 유교의 공자는 우리 죄를 없애고자 온 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없애기 위해 어떻게 하셨습니까?    물로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닙니다.    죄사함의 기도를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 죄를 없애고자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속죄제물, 화목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요일 2:2)      곧 그는 우리 죄를 없애고자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벧전 2:24)

   예수님을 믿으면 그가 흘리신 피로 값없이 나의 모든 죄가 용서받고, 깨끗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우리가 예수 안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엡 1:7)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죄로 인한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     죄의 사면장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예수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예수님을 믿으면 내가 지은 모든 죄의 멍에를 벗게 되고, 죄의 짐으로부터 자유(해벙)함을 입게 됩니다.

   ① [임동선목사님이 신학생 시절의 체험입니다.    그가 강원도 진부교회에 있을 때 어느날 저녁 피곤해서 누웠는데 갑자기 몸이 둥둥 떠 올라갔습니다.    잠든 것도 아니고, 눈도 떠 있고, 의식도 분명한데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정말 아름답고 화려한 천국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천사들에 이끌려 지옥의 광경을 구경했습니다.     죄짓은 사람들이 너무나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끔찍했습니다.

   이 깨어 보니 온 몸은 물독에 빠진 것처럼 땀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정신없이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주여 내가 지옥에 갈 자입니다.    내가 그런 죄를 지었습니다.’    바로 그때 똑똑히 들리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붉은 피가 네 모든 죄를 사하였느니라’     그 소리를 듣자 감사, 감격의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습니다.]

    ② [제가 고1때 체험한 은혜입니다.    주일날 설교때  ‘죄를 회개해야 산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죄를 회개하기로 결심하고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자 교회로 바로 와서 죄를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튿날 다시 교회에 와서 죄를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속에서부터 분명한 음성을 들렸습니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그 음성을 듣자 갑자기 마음속에서부터 샘솟는 기쁨이 솟아났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 죄를 없애 주고자 오셨습니다.    우리에게서 죄의 짐을 벗겨 주려고 오셨습니다.     그 일을 이루고자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습니다.     모든 죄짐에서 자유함을 얻습니다.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믿는 자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천사가 요한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천국에 있는 흰 옷을 입은 자들을 향해 ‘이들은 어린양의 피에 그 옷(행실)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4) 고 말해 주었습니다.

 

                           2. 마귀의 눌림에서 자유

   예수님은 우리를 마귀의 눌림으로부터 자유함을 주고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     마귀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괴롭히고, 망하게 하고, 병들게 합니다.      한마디로 사람을 사로잡아 누르는 일(고통)을 합니다.

   [욥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잘 경외하며 평안한 그의 가정에 마귀가 찾아와서 어떤 일을 하였습니까?

재앙을 쏟아 붓기 시작했습니다. 자녀들을 죽였습니다.    욥의 사업들을 하나씩 망하게 했습니다.     욥의 몸을 병들게 하였습니다.     부부 사이도 갈라놓았습니다.     그래서 욥의 아내는 그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마귀는 사람들의 육체와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마귀에게 눌림을 당합니다. 그 결과 사람의 몸은 병들고, 가정은 깨어지고,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악해지게 합니다.     그리고 비정상적인 일을 행하게 합니다.     자살도 마귀가 사람을 사로잡아 행하는 일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자기 졸개로 부리는 영들이 바로 귀신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실제로 괴롭히는 자는 귀신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귀신을 두려워합니다.     귀신을 거스렸다가는 자신에게나, 가정에 우환이 찾아올까봐 두려워합니다.

   누가 우리를 이 마귀의 눌림으로부터 건져 줄 수 있습니까?     예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방을 다니시며 마귀에게 눌린 자들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두루 다니시며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행 10:38)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시고자 오셨다고 말했습니다. ‘나를 보내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눅 4:18)      마귀에게 사로잡혀 괴롭힘을 당하는 자를 건져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마귀의 눌림으로부터, 귀신의 괴롭힘으로부터 자유를 얻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와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권세를 갖고 계십니다.     그래서 마귀와 귀신은 예수님의 이름앞에 떨고 두려워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도 자기 이름(예수)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막 16:17)      그래서 지금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모든 눌림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➀ [최낙중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가 전도사시절 농촌 마을에 교회를 개척하여 학생들을 전도하여 성탄절 새벽송을 돌게 되었습니다.     교인 집이든 불신자 집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찾아가서 성탄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새벽 4시쯤 귀신들린 집을 방문했습니다.     마침 그 집에서 무당들이 징을 치며 굿판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그 집 밖에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 노래를 큰소리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징소리가 그쳤습니다.     그리고 집주인이 겁에 질린 모습으로 달려 나와 ‘굿하는 집에 웬 찬송가여. 이제 우리 집은 망했어’ 라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찬송가 소리가 들리자 일어나 춤추던 무당과 앉아서 징을 치던 무당이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해 그 집이 모두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➁ [여주경찰서 앞에 한민수라는 거구가 살았는데 귀신들렸습니다.     한번 발작을 하면 밭과 산을 달리며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여주읍을 소란케 했습니다.     그를 말릴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느날 그 집 식구들이 그를 교회로 데리고 나와 맡겼습니다.     그래서 사택 옆방에 그의 거처로 삼고, 그 교회의 임동선 전도사님과 성도들이 찬송을 부르며 그의 병이 낫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수일 후에 그의 몸안에 있던 귀신이 많이 울더니 그의 입에서 거품을 내고 몸을 오그라뜨리더니 결국 나가갔습니다.     귀신이 나가자 그는 정신을 차리고 매우 선령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귀신들린 자가 고침받자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왔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으면 마귀의 눌림으로부터 자유를 얻습니다.     마귀가 가져다 주는 질병에서 고침받을 수 있고, 마귀가 망하게 하는 사업이 다시 일어날 수 있고, 마귀가 일으키는 가정문제도 해결될 수 있고, 마귀로부터 당하는 마음과 정신적인 고통에서 자유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귀와 귀신은 오직 예수 이름을 두려워하며, 그 이름 앞에 굴복합니다.

   마귀는 부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공자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신천지의 이만희 이름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눌림으로 고통당하는 자에게 자유함을 주고자 오신 것입니다.

 

                           3. 죽음의 두려움에서 자유

    사람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죽음을 피해 보려고, 죽음을 연장시켜 보려고 여러 가지로 애를 씁니다.     하지만 죽음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게 정해 놓으신 것이기 피할 수 없습니다.(히 9:27)

   ① [프랑스의 의학자 볼테르는 철저한 무신론자였습니다.     글을 잘 쓰는 그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글을 많이 썼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비웃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렇게 욕지거리를 퍼붓는 나를 이 자리에서 쓰러뜨려 보십시오."

    그런 그도 점점 노인이 되어 갔고, 결국 병들어 죽음 앞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의사에게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만약 나의 생명을 6개월만 연장시켜 주신다면 전재산을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볼테르 선생님, 선생님의 생명은 6개월은 고사하고, 이제 6시간도 연장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흔들림이 없던 그의 무신론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조용히 흘러나왔습니다.   ‘나는 지옥으로 떨어져 가는구나.’]

    누가 우리를 죽음의 두려움에서 자유함을 줄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함을 주고자 오셨습니다.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라.’(히 2:;15)

    ② [서울 한신교회는 매우 크고 유명한 교회입니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신 이중표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해서 물로 배를 채우며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늘 술을 먹어서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중표목사님은 영양실조로 18살에 폐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피를 토하고 각혈을 하고, 피골이 상접해도 아버지는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어느날 친구가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이제 못산다. 폐병은 불치병이고 이대로 죽을텐데 예수나 믿고 천당이나 가라’     그래서 친구를 따라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서 ‘폐병쟁이가 왔습니다. 저를 살려주소서.’하고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 다음날 새벽부터 피골이 상접한 몸으로 십리 길을 몇 번씩 쉬어가면서 새벽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얼마후 각혈이 멎어들고 몸이 회복되었습니다.     약이나 수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침받았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죽음의 포로에서 자유를 주십니다.     죽음의 두려움 대신 영생의 소망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요 10:28)

   [예수님은 오빠 나사로가 죽어 슬퍼하는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그리고 죽어 냄새나는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 내어 살려내셨습니다. ‘나사로냐 나오라.’(요 11:43)     또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두려워하는 강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그래서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영생을 믿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또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히 11:35-38)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습니까?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은 죽음의 두려움을 없애 주시고 영생의 소망을 주시고자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죽음의 그늘이 떠나가고 영생의 소망을 바라보며 살 수 있습니다.

 

[결 론]

   성도 여러분,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서 무엇을 가져 가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왕이 되고자 오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에덴 동산의 타락 이후로 참된 자유를 잃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자 오셨습니다.    

   어떤 자유를 주십니까?     죄의 짐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유를, 마귀의 눌림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주십니다.     이런 자유함을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로 참으로 자유하리라’      불교의 석가모니, 이슬람교의 마호멧트, 천주교의 마리아, 통일교의 문선명, 신천지의 이긴자 이만희씨도 이런 자유함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자유를 주시고자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십시다.     그리고 그가 주시는 자유 곧 ‘죄와 마귀와 죽음으로부터 자유함’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누린 자를 자유롭게’하고자 오신 것입니다.

 

 

 

 

 

 

 

 

출처 : 주님안에서˘♡
글쓴이 : 지팡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