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오신 목적 (막 10:42-45) 절기 12. 12. 23
[서 론]
며칠 후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탄생하심을 감사하는 성탄절이 옵니다. 예전에는 성탄절이 가까우면 온 거리에 성탄의 소리를 들어볼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르게 왔다가, 모르게 지나가는 상태로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증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그 분이 하신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본 론]
1.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찾아 부르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찾고 부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죄없는 사람(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온 것이요.”(막2:17)
[어느날 예수님이 세리(세무원) ‘마태’를 그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당시 세무원은 죄인의 무리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많은 직업을 가진 자중에 하필이면 죄인으로 손가락질 받는 세무원을 자기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예수님은 그 세무원 마태의 집을 방문하여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 식사 자리에는 다른 세리들과 다른 나쁜 직업을 가진 죄인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그것을 보고 당시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어찌하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요?” 그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 필요한 것이요.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온 것이요.”(막2:17) ]
왜 예수님께서 죄인을 부르시고, 그들을 가까이 하신 것입니까? 그들의 잘못된 삶을 닮고 싶어서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을 부르신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그들을 고쳐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을 새사람으로 변화시켜 주고자 부르시고 가까이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의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한 것이니라.” 그리고 ‘죄인’을 가리켜 “건강한 자가 아니라 병든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인을 치료하는 의사로 오신 것입니다. 죄인을 치료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들의 잘못된 삶을 회개하고 바른 삶을 살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1)
[삭개오가 그런 사람입니다. 삭개오는 마태처럼 세무원이었습니다. 부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는 죄인으로 취급받았습니다. 삶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날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보고자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곁을 지나가실 때 쳐다 보시고 삭개오를 부르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오늘 내가 네 집에 가서 머물려야겠다”(눅 19:5) 아무도 자기를 가까이 하지 않고 손가락질만 하는데 예수님이 자기 이름을 부르고, 자기 집에까지 들어오시겠다니 얼마나 기쁩니까? 그래서 삭개오는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자기 집에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난후 삭개오의 삶은 완전히 변했습니다. 삶이 고침받았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께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또 만일 남의 물건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로 갚겠습니다.”(눅 19:8) 얼마나 아름답게 변했습니까? 어떻게 그가 그렇게 변할 수 있었습니까? 자기가 결심해서 된 것도 아니고, 남이 협박해서 된 것도 아닙니다. 오직 자기를 부르신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그렇게 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의 마음과 생각을 고쳐주신 의사가 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켜 새사람으로 변화시키고자 오셨습니다. 우리는 나쁜 사람이나 죄인을 싫어하고 멀리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멀리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을 사랑하고 가까이 하십니다. 사람들이 외면하는 그들을 부르십니다.
왜 그들을 부르시는 것일까요? 그런 죄인들도 회개하면 아름다운 새사람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르신 죄인 마태가 새사람으로 변하여 후에 성경의 마태복음을 썼습니다. 또 죄인 삭개오가 변하여 이웃에게 베푸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참된 의사” 가 되시는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죄인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어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여러분의 이웃에 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여러분 자신 외에 다른 사람입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 예수님을 만나 새롭게 고침받고 변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나 새롭게 변하면 다른 모든 것이 변합니다. 나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나”는 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변화만을 고집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까? 자신이 치료받아야 할 병든 자요, 또 자신이 변해야 할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누구를 찾겠습니까? 예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찾아와 부르십니다.
여러분 자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당신은 변해야 할 죄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치료받아야 할 병든 자라고 생각하십니까?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처럼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병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부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삶의 새로운 변화가 없습니다.
기억하십시다.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죄인을 부르는 이유는 그들의 삶과 인생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고자 함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진정 변해야 할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주 예수여 나는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를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 자에게 찾아오시고, 부르십니다. 그의 인생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십니다. 이처럼 우리의 병든 삶을 고쳐주시고, 변화시켜 주고자 오신 예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2. 예수님은 섬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것은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함이라”(막 10:45)
그 분을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어느날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예수님께 와서 이렇게 구했습니다. “주여, 주의 영광의 날에 우리를 주의 우편에, 주의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눅 10:37) 그 말을 듣고 다른 10제자가 그 두 형제에게 화를 내었습니다.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먼저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먼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함이라”(눅 10:43-45)]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사람에게는 높아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남에게 대접받고, 남을 다스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남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합니다.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직장인들이 높은 자리를 구하고, 장사꾼들이 돈을 모으기를 원하는 것은 결국 더 높은 권세와 더 많은 명예를 얻고자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서로 높아지려는 마음 때문에 미움이 생기고, 싸움이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서로 낮아져서 남을 섬기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사회의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섬기려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남을 섬기기를 싫어하고, 자신이 섬김을 받기를 원하는 우리에게 섬김의 본을 보이려고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는 하늘 영광을 버리고 온전히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는 많은 기적과 권능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자기의 이익을 구하거나, 자기를 높이거나, 남을 지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기를 왕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을 피하셨습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달라고 외치며, 자신이 하지도 못할 헛된 공약을 내세우는 우리 사람들과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에 쓰셨습니다. 값없이 가르치고, 먹여주고, 고쳐주고, 건져주셨습니다. 결코 댓가를 한번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부요케 하고자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도다.”(눅 9:58)
왜 예수님은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는 자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까? 그것은 섬기는 자가 진정 위대한 자요, 하늘에서 큰 자임을 가르쳐주기 위함입니다. 없어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을 자리에 있으면서도 남을 섬기는 자가 큰 자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위를 보면 섬기기 보다는 섬김을 받으려고 아우성을 칩니다. 베풀기보다는 받기를 원합니다. 나누어 주기보다는 남의 손에 든 것조차 빼앗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때에 예수님의 모습을 닮는 사람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매년 성탄절이 다가 오면 자선남비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자선남비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서민이고, 부유한 자는 무관심합니다.
[몇년 전 서울의 한 백화점 정문앞에 구세군 자선남비가 세워지고 종소리가 울러 퍼졌습니다. 백화점 정문 앞이니 백화점에 쇼핑 나온 사람들이 대거 동참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이날 모금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은 좋은 옷을 입고, 고급 차를 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학생, 직장인, 노점상, 택시기사, 오토바이 택배원, 지체장애자, 노인들이었습니다.
곧 헬멧과 마스크로 얼굴을 감싼채 돈을 넣고 가는 오토바이 택배원, 급히 차에서 내려 돈을 넣고 가는 택시기사, 무거운 보따리를 이고 돈을 집어넣는 아주머니, 비닐에 싸온 동전을 꺼내는 초등학생, 몸빼 차림으로 허리춤에서 돈을 꺼내는 아주머니, 쌈짓돈을 꺼내는 중절모를 쓴 노인들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부자들은 어렵고 헐벗은 자들의 고통을 겪어 보지 못했기에 그들의 절박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고자 오셨습니다. 섬기는 자가 섬김을 받는 자보다 더 크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고자 하늘에서 내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으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는 누구에게 권세를 행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기의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고, 닦아 주심으로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자기처럼 섬기는 삶을 살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잘 섬겨야 하지만 사람을 잘 섬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남을 섬기는 자리에 있게 됨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삶이 바로 내가 믿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섬기기 위해 오셨고, 섬김을 가르치셨는데 그를 믿는 우리는 섬기기 보다는 섬김을 받으려 하고, 높아지려고 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나를 몰라 주고, 인정해 주지 않고, 높여 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지 말고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섬겨 보도록 하십시다. 그런 신자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3. 예수님은 생명을 주고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주고자 오셨습니다. 곧 자신의 육신을 희생하고자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자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님은 살고자 오신 것이 아니라 죽고자 오신 것입니다. 그 죽음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일입니다.자기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 있겠습니까? 자기의 생명과 바꿀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재산) 다 기꺼이 주고자 할 것입니다. 노인이나 병든 자들이 흔히 죽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그 말속에는 더 살고 싶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죽음에 대해 말해 보십시요. 못된 놈이라고 역정을 내거나, 미워할 것입니다.
더우기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의 생명을 바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가끔 자기의 생명을 바쳐 다른 생명을 살리는 일도 있습니다.
① [펠리컨이라는 새가 있답니다. 그 새는 모성애가 매우 강하다고 합니다. 어미 펠리컨은 새끼들에게 줄 먹이가 없으면 자신의 가슴살을 뜯어 먹입니다. 어미 펠리컨은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새끼를 위해 기꺼이 자기의 몸과 생명을 바칩니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펠리컨을 ‘사랑과 희생’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② [한국전쟁때 한 고아가 미국인 가정에 입양되었습니다. 그가 처녀가 된 후에 자신이 버려진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망과 불평속에 방황하던 어느날 안쓰럽게 지켜보던 양부모가 그에게 당시의 상황을 말해 주었습니다.
“1.4후퇴때 강원도 어느 지역을 지나는데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단다. 차를 멈추고 가보니 다리 밑에서 한 여인이 아기를 가슴에 안고 있었지. 날씨는 추운데 여인은 자기의 옷을 하나씩 벗어 아기를 싸고 또 쌌단다. 자신의 옷을 모두 벗어 아기에게 입히고는 그녀 자신은 추위에 얼어죽고 말았단다. 그녀의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바로 너란다.”
이 사연을 들은 소녀는 한국으로 달려와 어머니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때마침 눈이 오는 겨울날입니다. 눈 덮인 무덤 앞에서 그녀는 옷을 벗습니다. 알몸이 되도록 옷을 다 벗어 정성껏 차가운 무덤을 덮고서는 조용히 입을 엽니다. “어머니, 그날 얼마나 추우셨습니까?”]
여러분, 이처럼 한 생명이 산다는 것, 한 생명이 구원받는다는 것은 그렇게 헐값으로 되는 아닙니다.
한사람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희생이 치러지고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사람을 살리고자 오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셨습니다. 어디에 희생하셨습니까? 십자가입니다.
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까?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자신은 깨끗하다고 소리쳐도 소용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법을 다 지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영원한 불못인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없애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죄값은 죽음입니다. 죄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은 멀어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죄를 용서받으려면, 죄를 씻으려면 생명의 피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죄값으로 치르는 희생의 피를 보시고 하나님은 죄를 용서해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누가 자기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생명을 바치겠습니까? 그리고 누가 나를 대신하여 자기의 생명을 버리겠습니니까?
오직 예수님만이 그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자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대속물이란 바로 다른 사람의 죄를 없애주기 위해 희생되는 제물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리켜 성경은 ‘희생제물, 화목제물, 속죄제물’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린 자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불교의 부처님도 자신의 생명을 주지 못했습니다. 유교의공자도 자기의 생명을 주지 못했습니다. 통일교의 문선명씨도 자기의 생명을 주지 못했습니다. 천주교의 마리아도 자기의 생명을 주지 못했습니다. 신천지의 이만희씨도 자기의 생명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남을 위해 희생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살고자 오신 것이 아니라 죄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자 오신 것입니다. 그는 그 일을 이루고자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희생하셨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살리는 것은 결코 값싼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못박은 값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때문에 우리는 죄용서를 받고,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행하고자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십시다.
[결 론]
성도 여러분,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혹 어떤 이들은 성탄절이 12월 25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물론 성경은 예수님의 탄생일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탄절이 12월 25일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태어 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탄생의 가장 가장 가까운 날을 찾아 성탄절로 기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하늘 영광을 버리고 낮은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변화시키고자 오셨습니다. 그 분은 지금도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나오는 자를 새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남을 섬기는 자가 진정 큰 자임을 알려 주고자 오셨습니다. 섬기는 자야말로 예수님을 닮는 자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살리고자 오셨습니다. 그는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영생을 주시고자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로운 삶의 변화와 영생을 소유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답게 남을 섬기는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며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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