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을 채우라 (눅 14:15-24) 믿음 2013. 1. 13
[서 론]
오늘 본문의 말씀을 가리켜 ‘큰 잔치 비유’라고 부릅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청한 내용입니다. 이 잔치 비유는 흔히 <전도>에 대한 말씀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말씀 중에 ‘나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23절)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나가 사람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는 말씀은 어떤 모습을 연상시켜 줍니까? 전도하는 모습이 아닙니까? 오늘 ‘큰 잔치의 비유’ 를 통하여 전도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십시다.
[본 론]
1. 주인의 모습
먼저 큰 잔치를 배설한 주인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다. 잔치를 베푼 주인의 기쁨은 무엇입니까? 잔치 자리가 가득히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잔치를 베푼 주인은 그 자리를 채울 많은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16절) 자리를 채울 생각이 없다면 많은 사람을 초청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잔치를 배설했는데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면 얼마나 썰렁하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잔치를 벌린 주인에게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초청한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핑계로 참석하기를 거절했습니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18절)
잔치 자리가 많이 비게 되었으니 어떻게 했을까요? 주인은 빈 자리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을까요? 아닙니다. 주인은 그 빈자리가 채워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급히 방법을 썼습니다. 주인은 종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21절) 그래서 종들이 급히 나가 만나는 사람들을 데려왔으나 그래도 자리가 비었습니다.
종들이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22절) 그러자 주인은 종에게 또 이렇게 말합니다.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23절)
이번에는 만나는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데려와서 잔치 자리를 가득히 채우라는 했습니다.
여기서 주인의 어떤 모습을 볼수 있습니까? 잔치 자리가 가득히 채워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주인은 빈 자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어떻게 해서라도 채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종들에게 나가서 아무나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오고 싶어 하지 않는 자라도 억지로라도 데려와서 잔치의 기쁨을 함께 누리도록 했습니다.
물론 이 비유는 일차적으로는 천국의 비유입니다. 곧 여기서 ‘큰 잔치’란 천국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주인은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리고 종은 하나님을 먼저 믿은 신자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초청받고 있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 모든 불신자들을 말합니다.
곧 하나님은 천국을 예비해 놓으시고 모든 인생들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천국의 복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죄인이라도, 어떤 사람들이라도 차별하지 않고 원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올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나가서 믿지 않는 자들을 데려오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비유를 땅의 교회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그의 몸된 교회를 이 땅에 세웠습니다. ‘내가 이 반석위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 그러므로 교회의 주인,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입니다.
그럼 교회를 세우신 예수님의 소원은 무엇일까요? 세상에 선한 일 많이 하라고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의 몸된 교회가 구원받는 사람으로 채워지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으로 채워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나가서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을 ‘전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부룬너’ 라는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교회는 전도하는 교회입니다. 불은 불이 붙어 있을 때 불이듯이, 교회는 전도할 때 진정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자리가 비어 있으면 예수님은 어떠 하실까요? 오늘 잔치를 베푼 주인처럼 예수님도 무척 슬퍼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이 종들에게 말한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빨리 나가서 어떤 사람이든지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그러므로 ‘나 혼자 교회 다니고, 예수님 믿으면 됐지, 다른 사람까지 강권해서 교회에 데려갈 필요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버립시다. 우리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은 그의 교회가 구원받는 사람으로 가득히 채워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진돗개전도법’이란 전도로 유명한 박병선 집사님은 그가 2002년 2월3일 부인을 따라 교회에 처음 출석했을 때 교회의 텅텅 빈 빈자리를 보고 이렇게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 빈 자리를 제가 채우겠습니다.” 그는 진돗개를 길러본 경험을 전도에 활용해서 진돗개 전도법을 개발했습니다. 곧 한번 전도할 사람을 물면 절대로 놓지를 않는 것이 진돗개 전도법입니다. 그렇게 전도해서 1년 동안에 무려 750여명을 전도하였습니다. 어떤 주일에는 한번에 60명을 교회로 인도한 적도 있습니다. 순천시 시의원이기도 했던 그는 10여명의 시의원을 전도해 기독의원회를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 생수교회를 향하신 예수님의 가장 큰 소원은 무엇일까요? 우리 교회의 빈자리가 구원받는 사람으로 가득히 채워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빈자리를 보시고 그의 종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금년에는 주의 이 명령을 잊지 말고 신앙생활을 하십시다. 교회의 빈 자리를 내가 채우겠노라고 고백하십니다.
2. 사람들의 모습
그런데 나가서 사람을 전도하지만 사람들이 교회에 잘 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신앙을 가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오늘 큰 잔치를 배설하였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 큰 잔치에 거의 관심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주인이 초청한 사람들도 그 잔치에 관심을 갖지 않고 도리어 자기 일에만 관심을 갖고 참석하기를 거절했습니다.
거절한 내용을 볼까요? 18-20절을 읽어 봅시다. ‘나는 밭을 샀으니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니 못가겠습니다’
‘나는 소를 샀으니 소를 시험하러 가니 못가겠습니다’ ‘나는 결혼했으니 신혼재미 때문에 못가겠습니다’라고 거절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잔치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일이 더 중요하고, 더 좋기 때문에 잔치가 아무리 크고 좋아도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장래의 아름다운 천국보다 현재 이 세상에 있는 것들(밭, 소, 장가)을 더 사랑하고 관심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믿는 자들의 전도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도리어 자신들을 귀찮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은 내가 하나님 믿기를 거절하면서까지 사랑했던 세상 것들은 금방 사라집니다. 항상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거절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뒤따르게 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8-9)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오기를 거절하는데도 전도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전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하여 잔치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미리 초청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큰 잔치가 있는 지도 모르고, 또 올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인의 종이 자기에게 와서 큰 잔치가 있으니 꼭 참석해 달라고 간청해서 참석한 것입니다.
종이 와서 잔치에 참석하라고 전해 주지 않았으면 그들은 그 잔치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롬 10:15) 어떤 소식을 전해주는 자의 발이 있어야 들을 수가 있습니다. 전해주는 자가 없는데 어떤 반응을 보일 수 있겠습니까?
신앙도 그렇습니다. 누군가 먼저 사람에게 가서 예수 복음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들은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주의 몸된 교회로 나올 수 있습니다. 전해 주는 자가 없으면 들을 수 없고, 듣지 못하면 나올 수 없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이렇게 교회에 나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까? 내가 스스로 알아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 누군가 여러분에게 와서 ‘교회 한번 와 보라’, ‘예수 한번 믿어보라’고 전해주는 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나가 만나는 사람마다 ‘천국과 예수’에 대한 소식을 전해 주고 ‘와 보라’고 외쳐야 합니다.
우리가 나가 전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미련한 것처럼 보이는 전도를 통하여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전도를 거절하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나의 전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돌아올 사람도 많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거절한다고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전도를 통해 구원받을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비행기를 탔는데 옆 좌석에 구면이 있는 젊은이가 앉았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에게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전혀 무감각, 무반응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무척 실망했습니다. 목사님은 집에 돌아오는 내내 청년의 태도가 마음에 걸리며 서운했습니다. 목사님은 다짐했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게 될 거다. 그 땐 꼭 전도하리라”
목사님이 그 청년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저는 목사님 옆에 앉았던 청년의 아버지입니다. 아들의 바로 뒷좌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제게 전화를 하셨나요?” “목사님께서 아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기독교에 관심이 생겨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더 알기 원합니다” 아들은 거절했지만 생각지 못했던 아버지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거절하는 사람을 보고 전도하기를 포기하지 말고, 나의 전도를 통해 구원받을 사람이 있음을 믿고 나가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전도하십시다.
3. 종의 모습
오늘 잔치가 사람으로 가득할 수 있었던 것은 종들의 순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잔치 자리가 많이 비게 되자 주인이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가 직접 사람들을 찾아 다녔습니까? 아닙니다. 종을 보내어 사람들을 데려오게 했습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21절과 23절을 읽어 볼까요? 어디로 가서 사람들을 데려오라고 했습니까? ‘시내의 거리와 골목과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서 사람을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종들은 순종하여 사방으로 다니며 사람들을 데려왔습니다.
이 종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그 종은 참으로 좋은 종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인의 명령을 온전히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그 종은 주인의 명령에 불평하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예’로 순종했습니다.
사실 시내와 골목과 길에 나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지금 잔치가 준비되었으니 같이 가십시다’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쉽게 그 종을 따라가지 않을 것입니다.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일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종은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나가 전하여 사람들을 데려왔습니다.
이 종의 모습을 전도하는 모습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전도하는 모습입니까? 오늘도 주의 몸된 교회가 채워지려면 나가서 사람을 데려와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자리가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나가 사람들을 데려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나가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주인의 종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종들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도 자신들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종’(벧후 1:1, 약 1;1)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그의 종된 우리에게 나가 전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그러기에 우리는 내 기분이나, 환경을 핑계대지 말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여 나가 전도하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는 종이 착한 종이지, 주인의 명령을 받고도 핑계를 대거나, 게으름을 피우면 좋은 종이 못됩니다.
① 전도할 때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전도해야 합니다.
주인이 종을 보낼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참 이상합니다. 괜찮은 사람, 곧 배우고, 가지고, 건강한 사람도 있을텐데 하필 잔치 집에 데려오고 싶지 않는 사람들만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구원의 대상이요, 전도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천국은 괜찮은 사람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 22:17) 그러므로 전도할 때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누구든지 전도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고, 천국가야 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부흥 전도자 무디 목사님은 하루에 한 사람에게 반드시 전도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하루는 아무에게도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잠 자리에 들었으나 책임을 완수하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밤중에 거리에 서서 전도할 대상자를 찾는데 술주정꾼 한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다짜고짜 다가가서 "예수님을 아시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술주정꾼은 '예수'라는 말을 듣자마자 화부터 벌컥 내었습니다.
얻어 맞은 무디목사님은 기다시피 하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후 3개월이 지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가서 문을 열어보니 예전의 그 술주정꾼이었습니다. 그 술주정꾼이 고백하기를 그날 밤 ‘예수님을 아느냐’는 말에 크게 화를 냈으나, 그로부터 그 말이 내내 귓전에서 떠나지 않아 예수를 믿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술주정꾼이라고 차별하지 않고 전도했더니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② 전도할 때 사람을 강권해야 합니다.
주인은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길과 산울타리로 가서 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23절)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라는 말은 사람을 억지로라도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사람들이 쉽게 따라오지 않습니다. 몇 번 좋은 말로 신앙을 권해 서 사람이 믿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강권해서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입니다. 오기 싫은데도 억지로 데려오는 것이 강권하여 데려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전도하고자 하는 사람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전도해야 합니다.
[안강자 집사님이 길가던 젊은 여자에게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였습니다. 그 여자가 슈퍼마켓으로 들어가자 그곳까지 따라 들어서 계속 말을 붙였습니다. 그 여자는 물건을 사가지고 도망가듯이 나갔습니다. 안집사는 계속 쫓아가며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자는 '다동'이라고만 말하고 도망갔습니다.
그때부터 안 집사는 그 여자를 찾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기도하기를 한달이 지났습니다. 그후 안집사는 그 수퍼마켓을 찾아가서 그 여자의 외모를 말하면서, 어디 사는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자네 집이 상을 당한 집이라고 했습니다. 그 집에 가서 초인종을 누르니 길에서 만난 그 여자가 놀라면서 나왔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서 기도해 주고 7명을 등록시켰습니다. 강권하는 전도의 본입니다]
[결 론]
성도 여러분, 오늘 ‘큰 잔치 비유’를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의 집(천국)뿐 아니라 주 예수의 몸된 교회가 가득 채워지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자리가 비어 있다는 종의 말에 “나가 사방을 다니면서 사람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기뻐하십니다.
하지만 천국과 교회는 저절로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종들처럼 나가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 전하는 자가 있고, 권하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제 발로 오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전하는 자의 발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예수님의 종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도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예’ 로 순종하고 종처럼 사방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그의 집을 채워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디에 있든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 5:42) 고 했습니다.
교회는 비록 주의 몸이지만 저절로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혹 ‘왜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처럼 부흥되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듭니까? 하나님은 그냥 교회를 부흥시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종처럼 우리가 열심히 나가 전도할 때 빈 자리가 채워지는 일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가서 열심히 전도하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외치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 6:8) 이 물음에 이사야의 고백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는 응답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의 종으로써 우리가 해야 할 가장 큰 사명은 나가 전하는 전도임을 잊지 마십시다. 전도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나가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는 주인의 말씀을 잊지 마십시다.
새해에는 열심히 나가 전하고, 사람들을 강권해서 주의 교회를 가득히 채워 주를 기쁘시게 하십시다. 하나님은 전도에 힘쓰는 자들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여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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