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나님아들 2014. 3. 18. 17:56

 

      나사로야 나오너라 (요 11:32-44)              믿음                   13. 2. 17

 

[서 론]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그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코자 보내주신 유일한 구주(구세주)이십니다.     다른 구원자는 없습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

   그런데 오늘 우리 주변에는 예수님 외에 다른 이름의 구원자를 전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소위 이단들입니다.    예수님은 말세가 되면 그런 자들이 많이 일어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구주)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마 24:4-5)     그러므로 예수외에 다른 이름을 구원자로 전하는 자들을 조심하고 미혹받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이 세상에 사람으로 계실 때 수많은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그 기적들 중에 죽은 자를 살리신 일도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12살 된 외동딸을 살리기도 하셨고,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기도 하셨고, 오늘 본문의 나사로를 살리기도 하셨습니다.

   이 시간에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을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나사로를 살리실 때의 가장 극적이 장면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무덤을 향해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요 11:43)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죽은 나사로가 수족이 베로 동인 채로 걸어 나왔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따라해 봅시다. ‘나사로야 나오라’

 

[본 론]

                     1. 예수님을 찾는 자매

   예수님이 세상에서 사셨던 나라는 유대(이스라엘)입니다.     당시 그 나라의 수도는 예루살렘이었는데 그 도시 근방(2km)에 베다니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 부모를 여의고 오빠 나사로와 여동생 둘(마르다, 마리아) 삼남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1절을 읽어볼까요?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이 나사로의 가정은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5절을 읽어볼까요?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면 베다니 마을을 지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꼭 이 집에 들러 쉬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사로 가정은 예수님으로 인해서 참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세상 일이 항상 행복하고, 평탄하고, 형통한 것만이 아닙니다.    생각지 않은 어려움과 시험과 문제가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던 나사로의 가정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나사로의 가정에 큰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그 문제는 오빠 나사로가 갑자기 중병이 들어서 앓아 눕게 된 것입니다.    1절을 다시 읽어볼까요?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오빠를 부모님처럼 믿고 의지하고 살았던 누이들은 오빠가 앓아 눕자 매우 당황했습니다.

   오빠가 병들었으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치료를 받아야 하겠지요. 약을 구하여 먹이든지, 의사를 찾아 가든지, 아니면 용한 무당(점쟁이)을 부르든지, 아니면 신앙심이 깊으면 금식하며 기도하든지 해야 하겠지요.

나사로의 동생 마르다와 마리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자매는 예수님을 모셔오기로 결정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오빠를 능히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에 예수님이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자매는 멀리 떨어져 (요단강/ 요 10:40) 있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빨리 오셔서 오빠를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3절을 읽어볼까요?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전갈을 받은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멀다고 거절하지 않으시고, 고쳐 주시겠다고 밝혔습니다.

4절을 읽어볼까요?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즉시 떠나지는 않았지만 이틀이 지난 후 제자들에게 나사로의 집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11절을 읽어볼까요?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에 오시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사로는 이미 죽어 무덤에 장사되었고, 두 자매는 큰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찾아오신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그 가정에 다시 큰 기쁨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그 가정의 문제를 해졀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예수님을 찾았던 두 자매의 모습!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평탄할 때는 그 사람의 신앙이나 인격이나 참된 모습을 알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어려움을 당할 때 그 사람의 참 모습, 참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길때 누구를 찾고자 해야 합니까?     사람이나 돈이나 점쟁이를 찾지 말고 전능하신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얼마나 귀한 약속입니까?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우리에게 이런 약속을 해 줍니까?     부처 석가모니도, 신천지 이만희씨도 그런 약속을 하지 않았습니다.     약속도 해 주지 않았는데도 따라가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러므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오늘 두 자매처럼 예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그 분은 거절하지 않고 찾아 오십니다.     때론 오늘 나사로의 집에 늦게 오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늦게 오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늦게 오실지라도 우리의 문제를 아름답게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님만을 찾는 신자가 되십시다.

 

                     2. 죽은 나사로

   예수님께 전갈을 보낸 두 자매는 예수님이 속히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록 거리가 멀지만 예수님이 지체하지 않고 오시면 오빠 나사로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빠의 병이 점점 심해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을 기다리는 두 자매의 마음은 타들어 갔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일찍 오시면 좋겠는데 왜 이리 늦으실까’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나사로는 죽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에 왔을 때는 이미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17절을 읽어 볼까요?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나사로가 죽자 그 날 바로 무덤에 장사지낸 것입니다.     우리나라처럼 3일장, 5일장으로 지낸 것이 아닙니다.

   왜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병들었으니 속히 와달라는 소식을 듣고도 즉시 오지 않았을까요?     또한 예수님은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병을 고칠 수 있으니, 찾아온 사람들에게 ‘나사로가 나았으니 걱정말고 돌아가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살았을 때 가지 않고 죽었을 때 가려고 했습니다.     곧 병든 자가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심으로 자신과 하나님이 영광을 얻고, 또 제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믿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4절과 15절을 읽어 볼까요?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마을에 오신다는 말을 들은 두 자매는 어떠했을까요?     예수님이 늦게 오신 것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이 있지 않겠습니까?     언니 마르다가 먼저 일어나 마을 밖까지 나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보자 마르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21절을 읽어 볼까요?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좀더 일찍 오시지 왜 이제 오시느냐’는 원망이 섞인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죽은 나사로가 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3절을 읽어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하지만 마르다는 예수님이 나사로를 지금 살리실 수 있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먼 훗날 부활 때에 나사로가 살 것을 믿는다고 대답했습니다.    24절을 읽어 볼까요?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마르다가 집으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동생 마리아가 급히 일어나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울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32절을 읽어 볼까요?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예수님은 마르아가 울고, 또 따라온 다른 모든 사람들도 우는 것을 보고 자신도 우셨습니다.     35절을 읽어 볼까요?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그리고 마리아에게 죽은 나사로를 어디에 두었느냐고 물었습니다.     34절을 읽어 봅시다.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예수님이 따라 무덤에 가보니 무덤은 굴이고, 돌로 막고 있었습니다.     38절을 읽어 볼까요?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유대인은 보통 굴을 파고 그 안에 무덤을 만들어 그 무덤 입구를 돌로 막습니다.

   나사로는 죽은 지 벌써 나흘이나 되었기에 썩는 냄새가 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마르다가 돌을 옮겨 놓으라는 예수님의 지시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39절을 읽어 볼까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죽어 무덤속에 누워 있는 나사로의 모습! 썩는 냄새를 풍기는 나사로의 모습!      그 모습이 혹 나의 모습이 아닐까요? 나는 살았다는 이름을 가졌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영적으로 죽어 냄새가 나는 신자는 아닐까요?

   예수님은 사데교회와 라오디게아교회 성도들을 향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데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그리고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해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올바로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데교회처럼 자기는 살았다고 믿지만 주님 보시기에 영적으로 죽은 신자들도 많습니다.     또 라오디게아교회처럼 자신은 부자라고 생각하지만 주님이 보시기에는 가난하고 병든 신자들도 많습니다.

   사람이 새롭게 살아나려면 자신은 지금 죽어 냄새가 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죽은 줄 알아야 예수님이 오셔서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죽지 않았고,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믿으면 예수님이 살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정말로 새롭게 변화시켜 주시기를 원한다면 ‘내가 죽은 나사로요, 죽은 나사로가 나다’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습니다.     나는 살아 있는 자라고 믿으면 주님이 나를 살릴 수가 없습니다.

   내가 죽은 나사로임을 깨닫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자에게 새 생명이 임하는 것입니다.  ‘주여 나는 죽어 냄새가 나는 사람입니다.   나를 살려 주옵소서’

 

                    3. 죽은 자를 부르시는 예수님

   이제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고자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고자 어떻게 하셨을까요?

   먼저 사람들에게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돌을 옮겨 놓아야 나사로가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동생 마르다는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릴 것을 아직 알지 못하고, 단지 시체를 한 번 보고자 하시는 줄로만 생각했습니다.

   마르다는 썩고 있는 오빠의 시체를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장사한 지 벌써 나흘이나 되었기에 시체가 썩는 냄새만 나는데 돌을 치워서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39절을 읽어 볼까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40절을 읽어 볼까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무슨 말입니까?     죽은 나사로가 살아날 것이니 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친히 돌을 옮겨 놓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을 명하여 ‘옮겨지라’ 하면 돌은 그 분의 음성에 순종하여 옮겨질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이 돌을 옮기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은 혼자 일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때 순종하면 기적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돌을 옮겨 놓자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하늘을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41-42절을 읽어 볼까요?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죽어 냄새가 나는 무덤 문 앞에서 기도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나사로가 살 것을 아직 믿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기도를 우습게 여길 것이지만, 나사로를 살 것을 믿는 사람은 기도에 ‘아멘’으로 응답할 것입니다.

    기도를 마친 후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는 드디어 무덤 속을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죽은 나사로에게 나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43절을 읽어 볼까요?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과학이나 사람의 이성으로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된 사람을 부르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 죽은 사람이 ‘나오라’는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나오라’는 음성을 듣고 나올 수 있었다면 진작 스스로 무덤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모든 눈은 무덤 동굴의 입구로 쏠렸고, 모든 귀는 가장 작은 소리라도 들으려고 기울였습니다.

과연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어 냄새가 나는 사람이 ‘나오라’는 그의 음성을 듣고 살아 나올 수 있는가를 모두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어두운 무덤속에서부터 한 사람이 걸어 나오는 것입니다.

온 몸은 베(수의)로 동인 채, 얼굴은 수건으로 싸인 채로 걸어 나옵니다.     바로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입니다.     44절을 읽어 볼까요?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이를 보고 있던 사람들은 놀라움으로 처음엔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의 장면이 벌어졌습니다.     누이들은 저희 오라비의 생명을 도로 찾게 되자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결 론]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예수님 외에 아무도 죽음의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종교는 죽음의 벽 을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현인들과 위인들이 위대한 명언들을 남기고, 사람들을 감동시키지만 죽은 자를 살리지는 못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죽은 시체를 보고 ‘나오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음성은 생명의 음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

   예수님이 죽은 야이로의 딸을 향해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하시니 죽은 소녀가 그 음성을 듣고 살아났습니다.     죽은 청년의 관을 향해 ‘창년아 일어나라’고 말슴하시니 죽은 청년이 관 속에서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주의 음성은 생명의 음성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풍랑을 향해 ‘잔잔하라’하시면 잔잔해집니다.     귀신을 향해 ‘나가라’하시면 떠나갑니다.    병자를 향해 ‘깨끗해져라’하시면 깨끗하게 났습니다.     죄인을 향해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하시면 죄가 씻음을 받습니다.     없는 것을 향해 ‘있으라’하시면 생겨납니다.     어둠속에 ‘빛이 있으라’하시면 생깁니다. 

   오늘 주의 생명의 음성이 여러분에게도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고통과 슬픔과 두려움과 어둠과 절망속에 있는 여러분을 향해 주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죽은 나사로에게 말씀하신 ‘나사로야 나오라’하신 귀한 음성이 들려지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주님안에서˘♡
글쓴이 : 지팡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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