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속의 여인들 (마 1:1-6) 하나님 2008. 11. 23
[서 론]
오늘 읽은 성경 본문은 한 인물의 족보입니다. 누구의 족보입니까? 1절을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고 했습니다. ‘계보’ 란 족보를 말합니다.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육신의 족보입니다. 이 족보를 우리는 ‘왕의 족보’ 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족보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자들만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특이한 기록이 있습니다. 모든 여자들의 이름도 아니고 몇몇 여자들(5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름은 보면 ‘다말(3절), 라합과 룻(5절), 밧세바(6절 / 우리야의 아내), 그리고 마리아(16절)입니다.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의 족보에 여자의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된 이 여인들은 좋은 업적을 남긴 자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왕의 족보를 부끄럽게 할 여자들입니다. 이 여인들보다 믿음이 좋고, 좋은 업적도 남긴 본이 될만한 여자들도 있었지만 족보에 기록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여자들의 이름을 예수님의 족보에 굳이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여자들의을 통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깨우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곧 하나님의 큰 사랑을 보여주고자 이 여자들을 족보에 기록한 것입니다. 어떠한 사랑을 보여줍니까?
[본 론]
1. 용서하시는 하나님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된 여자들 중에 행실이 좋지 못한 여자도 있습니다. 3절에 나오는 ‘다말’과 5절의 ‘라합’과 6절의 ‘우리야의 아내인 밧세바’ 입니다. [다말]은 죽은 남편의 대를 잇고자 창녀(몸을 파는 여자)로 가장하여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하여 관계를 갖고 쌍둥이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 자식의 이름이 베레스와 세라입니다. [라합]은 직업이 기생(춤과 노래로 흥을 돋구는 직업여자)이었습니다. [밧세바]는 유부녀로 다른 남자(왕)와 관계를 갖고 자식을 낳았습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들입니까? 보통 사람들 같으면 자기 족보의 명예를 위해 그 사실들을 숨기고자 그 여자들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왕의 족보인 예수님의 족보에도 그런 여인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하나님은 그들의 이름을 숨기지 않고, 다른 여인들과는 달리 족보에 기록하게 하셨을까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하나님께로부터 용서함을 받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나오는 자의 죄와 허물을 기꺼이 용서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 [다윗이 밧세바와 분륜의 죄를 지은 후 자기 죄를 깨달고 눈물로 회개하였을 때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사오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리라”(삼하12:13)]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지옥의 멸망을 받는 이유는 단지 지은 죄 때문이 아닙니다. 죄없는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죄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죄를 회개하지 않는 완악함이 문제입니다.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은 죄를 씻어 주시고, 용서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회개하라. 그리하면 너희 죄가 눈과 같이 희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은 죄가 아무리 악하고, 크고, 남들이 비난할지라도 자책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나가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오늘 족보의 주인공이신 예수님도 자기에게 나오는 죄인들을 용서해 주시고, 긍휼히 여겨 주셨습니다.
[어느날 간음하다 붙잡혀 예수님 앞에 끌려온 여인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끌고 온 사람들이 돌로 치고자 위험에서부터 그녀를 지켜주시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8:11) 또 동네에서 죄인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께 와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죄사함을 얻었으니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눅 7:48-50)]
오늘 부끄러운 여자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하신 것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어떠한 죄인이라도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면 죄사함을 받고, 하늘에 있는 어린양의 생명책(계 21:27)에 기록될 수 있는 복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자기 죄를 회개하는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니다. 회개하는 자는 그가 과거에 어떠한 사람인지를 묻지 않으십니다. 큰 죄인이라고 내쫓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죄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나는 죄수 중의 괴수’ 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를 버리지 않고 그를 용서하시고, 그를 받아 주시고, 그를 자기의 일군으로 삼으셨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을 보십시오. 그는 유명한 깡패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시고 큰 일꾼으로 쓰셨습니다.
오늘 족보속의 여자들은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줍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고 하늘 생명책에 기록될 수 귀한 존재임을 잊지 마십시오. 죄를 회개하고 하늘에 있는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기를 바랍니다.
2. 차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된 여자들 중에 이방인(유대인외) 여자들도 있습니다. 이방인이란 유대인 외의 다른 나라 사람을 말합니다. 5절에 나오는 ‘라합과 룻’입니다. 라합은 가나안 여자이고, 룻은 모압 여자입니다. 그들은 유대인 여자가 아닙니다.
구약시대에는 여자들과 이방인은 심한 차별과 멸시를 받았습니다. 유대인은 순수한 자기들만의 혈통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같은 유대인이라도 다른 나라 사람들의 피가 섞인 사마리아 유대인들을 무시할 정도였습니다.
여자들에 대한 차별은 당시 족보상에도 나타났습니다. 당시 족보에는 여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남자들의 이름만 기록되어 있고, 여자들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 여자들도 자기 족보에 기록되지 못하는데 멸시받는 이방인 여자들이 유대인의 족보에 기록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없는 일인데 오늘 예수님의 족보에는 이방인 여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이방인 여자들의 이름을 기록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차별하신다면 죄인이나 이방인 여자들의 이름이 자기 아들의 족보에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심을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는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와와 과부를 붙드시고’(시 146:9) 그리고 하나님은 에훗과 같은 왼손잡이, 삼갈과 같은 농부, 입다와 같은 깡패, 다윗과 같은 소년을 차별하지 않고 사용하셨습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차별이 심합니다. 지역차별(수도권과 지방), 학벌차별(일류대와 지방대), 성별차별(남자와 여자), 외모차별(정상인과 장애인), 소유차별(가진 자와 없는 자), 신분차별(정규직과 비정규직)등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은밀하게 차별이 심합니다.
[어떤 대학에 다니는 이모씨(24)의 고백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도록 학점, 토익, 봉사활동 등을준비했는데도 매번 서류전형에서 떨어졌어요. 그래서 한번은 시험삼아 은행 입사원서에 출신 대학만 '서울대 경영학과'로 고치고 내봤어요. 그랬더니 한번도 통과하지 못했던 은행 서류전형에 턱~ 하니 통과되더군요“.)
오늘 족보의 주인공이신 예수님도 이 세상에 계실 때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자이든 여자이든, 배운 자나 무식한 자이든, 건강한 자든 병든 자든, 의인이든 죄인이든, 어느 지역의 출신이든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대우해 주셨습니다.
[어느날 예수님이 세리 마태의 집에 들어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사람 차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비난했습니다. “저가 어찌하여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막 2;16) 그들은 예수님이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어울릴 사람이 있고, 멀리해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외모나 세상적인 것으로 사람을 구분하거나,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방인 여자가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것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차별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습니다. 내가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차별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 주십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이유로도 차별하지 않고 하늘 생명책에 기록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약 2:1) 사람을 차별하면 그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라도 무시하거나, 차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의 천사가 날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3. 보잘 것 없는 자를 쓰시는 하나님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된 여자들 중에는 보잘것 없는 여자들도 있습니다. 5절에 나오는 ‘라합’과 ‘룻’, 그리고 16절에 나오는 ‘마리아’입니다. 이들은 집안이 좋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라합은 직업이 천한 기생이요, 룻은 남편도 죽고, 자식도 없는 여자요, 마리아는 가난한 시골 처녀입니다. 이들은 세상적으로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여자들입니다.
이 세상은 힘과 경쟁의 시대입니다. 힘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그 힘이 돈이든, 지식이든, 권세이든, 건강이든 말입니다. 그래서 돈 없고, 배우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하고, 빽이 없으면 성공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보잘 것 없는 여자들을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약하고, 보잘것 없는 사람들을 들어 귀히 쓰시기를 좋아하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쓰신 인물들을 보면 대개 세상적으로 보잘 것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탈출시킨 위대한 모세를 보십시요. 그가 수백만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굽을 탈출시킬 능력이나 빽이 있어서 하나님이 쓰셨습니까? 아닙니다. 모세는 도망자였고, 직업이 목자였고, 나이는 이미 80세나 되었습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을 구원할 만한 능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쓰겠다는 하나님께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겸손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도망자 신세로 살고 있는 무명의 사람 모세를 들어 출애굽의 기적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오늘 족보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은 어떠합니까? 예수님은 어떤 사람을 그의 제자, 일군으로 삼으셨습니까? 세상적으로 힘있는 자 곧 가진 자나, 권세 있는 자나, 배운 자를 제자로 삼지 않았습니다. 이름없는 보잘 것은 없는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보잘것 없는 그의 제자들이 후에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들이 되었습니다. 거대한 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로마를 기독교 국가로 변화시켰습니다. 아무도 그런 보잘 것 없는 자들이 세상 역사를 바꾸어 놓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일을 두고 예수님이 ‘겨자씨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 한 알은 참으로 작고 보잘 것 없지만, 그것이 자라면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새들이 깃들이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제자들로 시작된 천국 복음은 처음에는 작고 보잘것 없는 겨자씨와 같지만, 후에는 크게 자라 온 세상에 퍼질 것이라고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신천지는 이 겨자씨가 이만희씨를 가르친다고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보잘 것 없는 여자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것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자라도 귀히 쓰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위대한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학문이나 집안이나 건강을 보면 보통 사람보다 더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세계 최고의 교회를 세운 조용기 목사님은 폐결핵 환자였고, 세계 최고의 부흥사였던 무디 목사님은 무식한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귀히 쓰심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하나님은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 1:27-29)
왜 하나님은 약한 자, 보잘 것 없는 자들을 들어 쓰기를 좋아하십니까? 그런 자를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똑똑한 자를 쓰면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지만, 약한 자를 쓰면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약함과 없는 것과 빽없음을 인하여 탄식하지 마십시다. 세상은 그런 나를 업신여기고, 사용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나를 귀히 사용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들어 귀히 쓰시도록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십시다.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 2:21)
4.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
오늘 왕의 족보에 기록된 여자들은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고 자랑스럽겠습니까? 다른 여자들은 왕의 족보에 기록되지 못하고 있는데 자기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한번 족보에 기록되면 지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족보에 기록되면 사람들이 잊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 여자들이 귀한 족보에 기록될 수 있었습니까? 자기들의 지혜나 빽이나 능력이나 공로로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값없이 족보에 기록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과 상관없이 좋은 것을 주시고, 쓰시기를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을 사사(이스라엘의 구원자) 쓰심도 그의 가문이나 그의 능력을 보고 쓰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주께 고백하기를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삿 6:15) 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그를 쓰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기드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 6:12) 이처럼 하나님은 값없이 은혜를 베푸셔서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됨은 무엇을 보여 줍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값없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않겠느냐”(롬8:32)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땅의 복만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복(영생)까지도 값없이 주십니다.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믿고 그에게 나가면 값없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소경이 예수님을 믿고 나가면 값없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 앞에 나가면 값없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죽은 자가 예수님 앞에 나가면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로부터 값없이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선택이지만 우리에게 믿음과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도다.”(시 107:9)
하나님과 예수님은 가만히 있는 자, 게으른 자, 미지근한 자가 아니라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 값없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의 소원과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함을 보여야 합니다.
[결 론]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왕이요,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된 여자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당시 여자들의 이름이 족보에 기록되지 않는 때에 굳이 기록할 필요도 없고, 또 기록하고 싶지도 않은 여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여자들의 이름을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함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곧 죄인을 용서하시며,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며, 보잘것 없는 자를 쓰시며, 좋은 것을 값없이 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이런 동일한 은혜를 주십니다. 곧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용서하시고, 차별하지 않으시며, 우리를 귀히 쓰시며, 좋은 것을 풍성히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값없이 얻기 위해 더 열심히 예수님을 믿으십시다.
그리하여 하늘에 있는 족보, 곧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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