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고난 (요 19:1-37) 절기 13. 3. 24
[서 론]
이번 주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날이 있는 주간입니다. 예수님은 금요일 오전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한주간 동안 예수님의 고난을 좀더 묵상하자고 해서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흔히 이 기간 동안에는 금식을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잘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곧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 것이며, 죽은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번 그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장소)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음모자)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군병)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가시관)하며 채찍질(매맞음)하며 십자가(처형)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 삼일(무덤)에 살아나리라(부활).’(마 20:18-19)
이 시간에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까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눕시다.
[본 론]
1. 고난의 발자취
① 배반자 유다
예수님의 마지막 식사는 유월절 저녁식사였습니다. 이 식사때 제자들에게 성찬식을 제정해 주셨습니다.
‘받아 먹으라’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시면서 제자 중 한 사람이 자기를 배반할 것을 말했습니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요 13:21)
그리고 떡 한 조각을 유다에게 주면서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요 13:27)고 하셨습니다. 그를 책망하거나, 막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유다 자신은 자신의 생각이 발각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떡 한 조각을 받자 그 곳을 떠나 예수를 팔고자 대제사장들의 무리에게로 찾아갔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3년 동안 있었던 유다였지만 예수님을 배반하여 그를 원수들에게 팔았습니다.
오늘도 유다처럼 예수님을 오래동안 믿고 따르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거나(이단에 넘어감), 예수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 자신을 돌아봅시다. 나도 유다처럼 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배반하거나, 그의 곁을 떠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② 겟세마네 기도
예수님은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신 후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시고, 홀로 떨어져서 이 땅에서의 마지막 기도를 드렸습니다.
무릎을 꿇고 울며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한란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 얼마나 힘쓰고 애써 기도하였는지 땀이 핏방울처럼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피곤을 못이겨 잠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 26:40-41) 그날 밤 예수님과 함께 깨어 기도한 제자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나도 제자들처럼 기도해야 할 때인데도 잠들 수 있습니다.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언제 시험에 들지 못합니다. 자신의 신앙이 장차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지금 나는 기도할 시간에 잠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③ 도망치는 제자
3번의 기도를 마친후 예수님은 잠들어 있는 제자들을 깨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어나라.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마 26:46) 잠시 후 그 동산에 몇 시간 전만해도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롯유다가 무리들을 이끌고 나타났습니다.
유다는 예수님께 입을 맞추고자 가까이 왔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신호였습니다. 사람이 어찌 그렇게도 악해지고 변할 수가 있을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유다를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눅 22:48) 신호를 보내자 칼과 몽둥이를 들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예수님을 붙잡았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붙잡히자 제자들은 모두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결과였습니다.
그 한순간의 핍박을 피하고자 예수를 버리고 도망간 것입니다. 나도 제자들처럼 도망칠 수 있습니다. 한 순간의 고난과 핍박의 두려움을 면해 보려고 있어야 할 자리에서 떠나버립니다. 지금 나는 제자들처럼 도망치고 있지는 않은가요?
④ 침묵하시는 예수
한 밤중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결박하여 먼저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끌고 갔습니다. 그 곳에서 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로부터 일차 심문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많은 질문을 하였지만 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그들의 질문에 자신을 변호하거나,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자기의 말을 듣지 않고 죽이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죽이려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는 자들에게 무슨 말을 한들 듣겠습니까?
이때 그 곳에 몰래 들어왔던 베드로가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자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3번 주르 모른다고 부인할 때 예수님이 미리 말씀하신 것처럼 닭이 2번 울었습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사람들이 이런 말, 저런 말을 할 때 분노하거나, 자신을 변명하지 않고 침묵할 수 있을까요? 침묵하면 잠시후 조용해 것입니다. 침묵하지 못하고 같이 흥분하거나, 변명하기 때문에 일이 점점 커질 수 있습니다.
⑤ 채찍을 맞으신 예수
이른 아침이 되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끌고 이방인인 빌라도 총독(재판장)에게로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시켜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처형당할 죄가 없음을 알고 풀어주려고 애를 썼지만, 사람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박을 것을 계속 요구하였습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눅 23:21)
그래서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러자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을 끌고자 수없이 채찍질을 하여 온 몸이 찢어지고,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나무로 엮은 관을 씌우고 갈대로 때리며, 침을 뱉으며, 손으로 때리며, 꿇어 절하며 조롱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요 19:3) 예수님은 육체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받으신 그 아픔을 얼마나 느낄 수 있나요? 무감각합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당하는 고통을 보고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울고 함께 울 수 있는 감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맞으신 채찍의 아픔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치 내가 채찍에 맞는 그 느낌, 그 감정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⑥ 십자가를 진 시몬
채찍질과 조롱을 끝낸 후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자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끌고 골고다(해골=갈보리) 언덕으로 끌고 갔습니다. 17절을 읽어 볼까요? ‘그들이 예수님을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골고다)이라는 곳에 나가시니’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지쳐 자꾸 쓰러지자 군병들은 시몬이라는 사람을 붙들어 예수의 십자가를 지워 예수의 뒤를 따르게 했습니다. 예수님의 뒤에 많은 사람들이 따라 왔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그 상한 모습을 보고 가슴을 치며 슬피우는 많은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돌이켜 그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루살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
사람들이 나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워 준다면 시몬처럼 지고 갈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쳐진 나의 모습을 생각하면 쉽게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를 따르려면 삽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제가 주의 십자가를 지고 뒤따라 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⑦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사형장인 골고다 언덕에 이르자 군인들은 십자가 위에 예수님을 눕혀 놓고 그의 양손과 양발을 대못을 못박았습니다. 가시 하나가 손을 찔러도 아픈데 못박힐 때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셨으니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예수님이 달린 십자가가 공중으로 세워지고, 그 좌우에 두 강도의 십자가도 함께 세워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제사장, 장로, 군병, 강도, 백성)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고 조롱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네 자신도 구원하라’(눅 23:35)
하지만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고통으로 괴로워하지만 않았습니다. 그는 고통과 조롱속에서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그리고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한 강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그런데 예수님이 달리신 그 십자가 가까이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여러 여인들과 사랑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까이서 예수님의 아픔과 고통을 더 보고,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십자가에 가가이 갈 수 있었습니다.
나도 예수님의 십자가에 가까이 갈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 십자가에 달린 그의 상한 모습이 너무 무서워서 멀리 피하려고 하지는 않을까요?
⑧ 백부장의 고백
12시 쯤 되었을 때 갑자기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그 어둠은 예수님이 숨을 거두는 시간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죽음이 임박해 오자 예수님은 큰소리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그리고 ‘다 이루었다’(요 19:30) 고 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러자 지진이 나서 땅이 진동하며 바위들이 터졌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성전 안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마 27:;51) 이러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 본 한 사람이 있으니 백부장(장교)입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을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 27:54)고 고백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 16:15)고 믈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어떤 분이라고 믿으냐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단 신천지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지 않고 이만희씨를 구원자로 믿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로 믿어야 바른 신앙입니다. 나도 백부장처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⑨ 창에 찔리심
예수님이 죽으신 후 사람들이 빌라도 총독에게 가서 그 시체들을 십자가에서 치워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군병들이 먼저 두 강도들의 십자가에 가서 그들의 다리를 꺽어 숨을 거두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로 와보니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꺽지 않고 대신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러자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34절을 읽어볼까요?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창으로 예수님을 찌른 군병이 혹시 나는 아닐까요? 내가 죄를 짓고, 주께 불순종하는 것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사랑하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십자가에 주님을 묶고 못을 박고, 가차없이 주님을 향해 채칙으로 때리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말없이 자기를 때리는 그 사람을 바라보고만 계셨습니다. 그 사람은 꿈에 너무도 안타까워 “안돼, 주님을 때리지 마세요. 주님을 더 이상 아프게 하지 마세요”라고 울면서 달려가 말렸습니다.
그러다가 때리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넋을 잃었습니다. 주님을 때리던 사람은 바로 자기였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이제까지 예수님을 실망시키고, 아프게 하고, 배신한 것이 바로 자기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다시는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2. 우리가 해야 할 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① 그의 희생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받은 은혜를 쉽게 잊어버립니다. 교회에서 성찬식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천주교에서는 죄사함을 얻고자 성찬식을 하지만, 교회는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희생을 잊기 않기 위해서 합니다.
성찬식을 세우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또 잔을 가지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4-25)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나의 죄를 씻어 주고자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가장 큰 방법은 예수님을 배반하여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유다처럼 예수를 버리고 떠나거나, 다른 이를 찾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행동이 예수님을 다시 못박은 행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곁을 떠날 때 베드로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우리는 베드로의 고백처럼 어떤 어려움과 유혹이 오더라도 끝까지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행동입니다.
② 예수님을 널리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여 영생을 주고자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서는 소수의 사람만이 구원받을 수 있지만, 예수님의 복음이 널리 전해지는 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기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막 16:15-16) 그러므로 우리는 많은 사람이 구원(영생)을 받을 수 있도록 나가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의 은혜를 보답하는 행동입니다.
[결 론]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지옥)에서 구원하고자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희생하셨습니다. 그의 죽음은 우연히 일어난 것도 아니며, 값싼 죽음 (병들어 죽거나, 늙어서 죽음)도 아닙니다. 그가 희생제물처럼 온전히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그 고통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분노하거나, 대항하거나, 변명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모든 죄를 위해 죽으심을 믿으십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그의 희생과 사랑을 잊지 마십시다. 그의 은혜를 잊고 그를 떠나거나, 다른 이에게로 가지 마십시다. 끝까지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십시다. 그리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날마다 널리 전하며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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