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신앙을 갖자 (막 16:1-20) 절기 13. 3. 31
[서 론]
오늘은 기독교의 여러 절기중 부활절입니다. 부활이란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죽어 장사 지냈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절은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뿌리는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곧 예수님의 죽음과 그의 살아나심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다른 종교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않으면 교회를 다녀도 진정한 기독교 신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가 우리 죄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속죄제물, 화목제물이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 곧 그의 살아나심을 통해 우리도 죽음을 이기고 영생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받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게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가리켜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복음을 믿으라’ 고 말할 때 그 복음이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라'는 말은 예수님을 통하여 죄사함과 영생을 받으라는 뜻입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아 예수님의 부활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십시다.
[본 론]
1. 예수님의 부활 증거
예수님의 부활은 없는 것을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도 부활 승천했다고 가르치지만, 마리아의 부활과 승천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없습니다. 마리아가 죽은 다음에 쓰여진 성경 어디에도 마리아가 부활 승천했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수없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보여주는 증거는 무엇일까요?
⑴ 빈 무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자 장사 지내기 위해 그의 시신은 내렸습니다. 그의 시신을 세마포(수의)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큰 돌을 굴러 무덤 문을 막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죽게 한 무리들은 아무도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군병들로 보내 그 무덤을 단단히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마 27:66)
그런데 3일 째 새벽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여인들이 무덤을 찾아가 보았더니 예수님의 무덤은 이미 열려 있고, 그의 시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몸을 쌌던 세마포(수의)와 수건(머리)만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어떻게 없어진 것일까요? 무덤 입구는 돌로 막고 군인들이 단단히 지키고 있습니다.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데 사람들이 와서 시신을 훔쳐갈 수 있습니까? 또 시신을 훔쳐갔다면 들고 가기 쉽게 수의를 싼 채로 가져가야지 수의를 벗겨 내고 시신만 달랑 들고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빈 무덤은 누가 그의 시신을 도적질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 사실을 빈 무덤 속에 있던 한 천사가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한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6절을 읽어볼까요?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 16:6)
⑵ 목격자입니다.
예수님이 무덤에서 살아나셨다면 그를 목격한 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면 그가 살아났다는 것을 누가 믿겠습니까? 무덤속의 시신이 없으니 예수님이 살아나신 것이라고 말한다고 사람들이 믿겠습니까? 얼마나 의심이 많은데요.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여러 날, 여러 사람들에게 나타나 자신이 살아남을 직접 보여 주시고, 말씀도 하셨습니다. 여자뿐 아니라 남자에게도 나타나셨고, 한사람에게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도 나타났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목격자를 살펴 볼까요?
① 막달라 마리아
3일째 새벽에 무덤을 찾아갔다가 빈 무덤을 보고 슬퍼할 때 예수님이 찾아왔습니다. 9절을 읽어볼까요?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허깨비를 본 것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② 두 제자
두 제자 글로바와 다른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 그들과 동행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두 제자는 그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인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믿지 못하는 두 제자에게 길을 가면서 성경의 말씀으로 그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엠마오에 이르러 함께 식사하실 때 떡을 떼어 주실 때 제자들의 눈이 열려 비로서 그가 예수님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눈에 이미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2제자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 예수님이 부활하심과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다른 제자들에게 전했습니다. 12-13절을 읽어볼까요?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두 제자가 길을 가면서 허깨비를 본 것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③ 여러 제자들
막달라 마리아가 와서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말해도 제자들은 믿지 않고 의심했습니다. 또 다른 두 제자가 돌아와서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말해도 다른 제자들은 믿지 않고 의심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들을 닫고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의심을 책망하시고 자신의 상처난 손과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여러 말씀도 하셨습니다.
14-16절을 읽어볼까요?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많은 제자들이 허깨비를 본 것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⑶ 경비병들입니다.
무덤을 지키던 경비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자신들이 지키던 무덤에 큰 문제가 발생했으니 보고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경비병 중 몇 사람이 이른 아침 성에 들어가 자신들을 보낸 무리(대제사장)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른 새벽에 일어난 일들, 곧 천사가 내려와 돌을 굴러 내고, 돌 위에 앉은 것과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일, 그리고 여인들이 무덤에 찾아온 일을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파숫군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라. <우리가 잘 때에 그의 제자들이 와서 그의 시신을 도둑질하여 갔노라.> 이 말로 무슨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잘 말하여 주겠노라.’(마 28:14)
자신들이 잠들었을 때 시신을 훔쳐갔다니 어디 말이나 되는 말입니까? 경비병들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깨어 지키는 일이 아닙니까? 그리고 경비병이 하나도 아니고 여럿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잠들었는데 제자들이 왔는지 어떻게 알며, 또 제자들이 훔쳐가는 것을 보았으면 왜 훔쳐가도록 내버려 두겠습니까?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파숫꾼들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에서 살아나신 것을 믿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빈 무덤이 증거하고, 목격자들이 증거하고, 빈 무덤이 증거하고, 경비병들이 증거합니다.
2. 예수 부활의 의미
예수님이 부활하심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까요?
⑴ 예수님은 유일한 구원자다
이 세상에 많은 성자가 있고, 종교를 만든 교주들도 많이 있지만 죽음을 이긴 자는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죽음에 삼키고 말았습니다. 불교의 부처님도 죽고 다시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죽음도 이기지 못하는 자들이 우리에게 어찌 영생과 축복을 줄 수 있습니까?
[요즘 극성을 부리는 이단 신천지는 자기들의 교주 이만희씨는 결코 죽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의 영이 이만희씨의 육체속에 임하여 이만희씨의 육체가 영생불사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 예수의 영이 들어가 영생불사체가 되었다면 늙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죽지 않는다는 그가 지금 80세가 넘어 젊음을 잃고 늙어가고 있습니다. 조만간에 그는 죽을 것입니다. 자신의 늙음도, 병도 이기지 못하는 그를 이긴 자요, 생명나무요, 어린양이요, 구원자로 믿고 따르니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
그런데 다른 이와 달리 죽음을 이기신 분이 있으니 곧 예수님이십니다.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그의 무덤은 비었고, 그의 시체는 없습니다. 영광스러운 몸으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그 분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계 1:17-18)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 생명의 종교’ 라고 부릅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셨습니다. 혹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승천하지 못하고 다시 죽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살아 나셨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행 1:9-11절을 읽어볼까요?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길이라고 모두 같은 길이 아닙니다. 모두 같은 곳으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어떤 길은 서울로 인도하고, 어떤 길은 광주로 인도하고, 어떤 길은 부산으로 인도합니다. 길은 길이지만 끝이 다릅니다. 같은 목적지로 가지 않습니다. 올바른 길을 선택해야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처럼 종교도, 신앙도 똑같은 길이 아닙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종교도 있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종교도 있습니다.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 천국으로 인도하는 사람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만이 우리 인생의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십니다. 왜냐하면 그 분만이 죽음을 이기고 살아 나셨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목격한 베드로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그 분만이 우리 인간의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보여줍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구원자가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죄사함과 영생을 주실 분임을 믿기를 바랍니다. 다른 구원자를 찾거나, 미혹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⑵ 믿는 자도 부활한다
부활은 예수님 한분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자도 부활의 은혜를 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
하나님은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로 삼으셨습니다. 첫 열매라 함은 나중에 맺는 열매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곡식을 보십시오. 첫 열매만 있습니까? 첫 열매를 따면 그 다음부터 더 많은 열매들이 계속해서 나오지 않습니까?
부활도 그러합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에 그를 믿는 자도 부활합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으니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0) ‘각각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고전 15:23)
장차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 곧 나의 부활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죽음을 이기고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 (썩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고,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영생을 누릴 것입니다. 예수님을 살리신 하나님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살리실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유일한 구원자임을 보여 주며, 또 그를 믿는 우리도 예수님처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할 것을 보여줌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3. 부활 신앙의 능력
우리가 부활신앙(=죽어도 다시 산다)을 가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죽자 제자들은 사람들이 자기들도 붙잡아 갈까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문들을 잠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두려워하며 숨어 있던 제자들이 더 이상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가 예수님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은 붙잡혀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하고, 심지어 죽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런 핍박과 모욕과 협박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나가 ‘예수 믿으세요’ 전했습니다.
어떻게 제자들이 그렇게 180° 변할 수가 있었을까요? 제자들이 모여 ‘목숨을 걸고 예수가 부활했다고 전하자’고 결의를 했을까요? 어찌 사람이 자기 목숨을 포기하면서까지 살아나지도 않는 분을 살아났다고 외칠 수 있습니까? 또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핍박과 죽음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제자들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것은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부활신앙을 가지면 나의 삶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나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슬픈 인생이 기쁜 인생으로 바뀌고, 의심 많은 자가 확신의 사람으로 바뀌고, 불평하던 자가 감사하는 자로 바뀌고, 주를 전하지 못하는 자가 전도자로 바뀌고, 세상 것을 좋아하던 자가 세상 것을 버릴 수 있게 됩니다. 주를 위해 헌신하는 못하던 자가 헌신하는 자로 바뀝니다. 땅에다 보물을 쌓던 자가 하늘에다 보물을 쌓게 됩니다.
부활의 소망없이 믿는다면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6-19)
자기의 부활을 믿는 자는 부활을 믿지 않는 자와 살아가는 모습이 다를 것입니다. 자신이 다시 살아나 영생을 누릴 것을 믿는 자가 어찌 부활을 믿지 않는 자와 똑같은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자신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결 론]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죽고 살지 못했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될 것입니다. 내가 다시 사는 일이 없는데 나의 신앙이 무슨 기쁨이 되고, 소망이 되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에서 살아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신자의 부활을 보증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죽음을 이기고 살아날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스러운 새 몸을 입고 영생을 누릴 것입니다. 이제부터 부활의 소망, 곧 부활신앙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기를 바랍니다. 부활신앙을 갖으면 세상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소망중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사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예수님을 높이 찬양하며 살아 가십시다. 그 분만을 나의 유일한 구원자로 고백하며, 또 부활의 주를 증거하며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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