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기도문 !!

[스크랩] 기도응답을 받기 위한 조건들

하나님아들 2014. 2. 15. 19:12

기도응답을 받기 위한 조건들

 

 

 


끈덕짐(Persistence)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 8).

<헬라어 성경에 쓰인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라는 단어들의 시제가 현재 진행형인데, 이는 계속해서 구하라, 계속해서 찾으라, 계속해서 두드리라는 의미이다>

1. 끈기 있는 기도에 관한 성경상의 본보기들
끈기는 기도에 성공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참으로 신실하며, 진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우리를 시험하고 우리의 믿음의 분량을 달아보시려고 자주 즉각적인 기도응답을 유보하신다.

(1) 야곱은 끈질긴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는 새벽까지 씨름하고서,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라고 외쳤다.

(2) 모세는 기도에 성공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드려서 성공을 거두었다(민 14:1).

(3) 엘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받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비를 내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450명의 알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한 후에 엘리야는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잠시 기도한 후에 엘리야는 자신의 종을 보내어 바다 쪽을 바라보아 조금이라도 구름이 일어나는지를 알아보라고 했다. 그 종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돌아오자 엘리야는 "다시 가라"고 했다. 왜냐하면 엘리야는 무릎을 꿇고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응답해주실 때까지는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않아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줄 때까지는 자신이 기도하는 그 자에서 움직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끈덕졌다. "다시 가라". 마침내 일곱 번째에 이르러서 종은 사람의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을 보았노라고 소리치며 돌아왔다. 그 징조로 말미암아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려 하심을 알아다(왕상 18:1).

우리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기도하다가 중단하고 한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렇지 않았다. 엘리야는 끈덕진 정신, 절박하게 매달리며 졸라대는 정신을 갖고서, 하나님으부터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기까지는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엘리야가 기도에 성공한 비결은 끈덕짐이었다.

(4) 다니엘이 끈덕지게 기도하여 결국 기도응답을 받았다. 단 10:2,3을 읽어보라. 다니엘은 3주 동안을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었다. 12, 13절을 보면, 천사가 나타나서 다니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국 군이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국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군장 중 하나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었다."

이 경우에 있어서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늦어진 이유는 스스로를 바사국 군(君;페르시아의 왕자, the Prince of Persia)이라고 부르는 마귀가 이 천사를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니엘이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끈덕지게 기도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3주 후에는 그의 기도가 응답되어졌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점은 기도란 영적인 전투이며, 사단은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어지는 것을 방해하려고 힘쓴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을 때까지 끈기있게 기도하는 것, 중단하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종종 그리스인들이 기도에 성공하지 못하고, 응답 받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들 중의 하나가 바로 끈기의 부족이다.

(5) 복음서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연인의 이야기는 기도에 있어서 끈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한 또 다른 본보기이다. 그 이야기는 마 15:21-28에 기록되어 있다. 그 연인은, 자신의 딸이 귀신에게 사로잡혀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부르짖으며 예수님께로 나와왔다.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 여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 여인이 계속해서 똑같은 말을 반복해 소리치면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뒤따라왔기 때문에 제자들은 당황하게 되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분명히 그 여인은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그리스도의 그 말씀에도 실망하지 않고서 도움과 자비를 얻고자 여전히 부르짖고 있었다. 그녀는 예수님앞에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 하니라"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신실성을 살펴보려고 일부러 그런 말씀을 하셨다. 그리스도가 하신 이 말씀을 언뜻 보면, 그분께서 그 여인을 무시하며 야박하게 믿음을 시험해 보시자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그녀의 강하고 끈덕진 믿음이 그녀의 대답 속에 나타나고 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세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바로 이 말이 예수님께서 듣고 싶어 하셨던 대답이다. 그 여인은 화를 내면서 "나를 개 취급하지 말라!"고 소리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반응을 보이는 대신에, 깊은 믿음, 끈질긴 믿음, 겸손한 믿음을 갖고서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즉시로 대답해주셨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다고 네 소원대로 되리라" 바로 그 순간 그녀의 딸이 고침 받았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성공의 비결은 바로 그녀의 끈기(끈덕짐)였다. 끈덕진 기도 속에는 막강한 힘이 있다. 끈덕진 사람이 기도에 성공할 것이다.

(6) 누가복음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끈덕진 기도의 중요성과 능력에 관해 두 가지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눅 18:1-8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불의한 재판관에 관해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나님을 불의한 재판관에 비유하려는 의도로 그리스도께서 이 예화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그분의 목적은 끈기 있는 기도의 능력과 효과에 대한 강력한 예화를 주시려는 것이었다. 끈덕지게 구함으로 심지어 불경건하고 불의한 재판관조차도 항복하게 할 수 있었다면,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 곧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끈기 있게 간구하는 자들의 기도에 더 잘 응답해 주시지 않겠는가! 우선 그 재판관은 불의한 사람이었다. 두 번째로, 그는 이 여인과 이 여인의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세 번째로, 그는 그녀의 원수를 처벌하는 일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단 한가지, 바로 그녀의 끈덕진 졸라댐 이외에는 그 재판관이 그녀를 도와줄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계속적으로 끈질기게 구하고, 구하고, 또 구함으로 그녀는 재판관을 압박했다. 재판관은 미칠 것만 같았다. 마침내 그는 그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불의 하시지 않다. 그분께서는 당신께서 택하신자들, 곧 당신의 아드님의 고귀한 피값을 주고 구원하신 자들인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우리편이시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원수 마귀를 대적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동정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문제들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 그러니, 만일 우리가 끈덕지게 기도한다면, 어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며 응답해 주시지 않겠는가! 그렇다. 그분께서 당신의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속히 풀어 주실 것이다.(눅 18:8).

눅 18:1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 비유를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정확한 목적을 불 수 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끈기있는 기도 속에는 능력이 있다.

(7) 끈덕진 기도의 능력에 관해서 그리스도께서 해주신 또 다른 이야기가 누가복음 11장에 있다. 눅 18:1-8 말씀은 사단에게 대항하는 싸움에 있어서의 우리 자신의 문제들에 관련된 기도의 중요성과 능력을 가르치고 있다. 누가복음 11장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끈기있는 기도의 능력을 가르쳐 주신다. 눅 11:5-13에 있는 이 예화를 살펴보자.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빌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집안에 있는 사람은 이미 자녀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고, 일어나서 떡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밖에 있는 이웃 사람은 필요하다면 밤새도록 이라도 문을 두드리겠다고 마음먹고서는 문 두드리며 요청하기를 계속했다.

집안에 있는 사람이 이웃 사람에게 떡을 준 것은 그 사람이 자시의 이웃이라든지, 혹은 친구라는 이유 때문에서가 아니라, 단지 그 사람의 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 문을 이웃 사람이 계속해서 끈질기게 큰소리로 두들겨대는 바람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이 말씀은 기도에 있어서의 끈기의 크나큰 가치를 보여 주는 훌륭한 예화이다. 끈질긴 사람에게 인간도 그러했거든 하물며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야 기꺼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기 않겠는가! 이 예화 속에 등장하는 '집안에 있는 사람' 과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단순한 친구로서만이 아닌 자신의 자녀로 대하신다. 그분은 진정으로 우리를 염려하시며 우리를 참으로 사랑하신다. 만일 우리가 끈질기게 기도한다면, 그분께서 분명히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실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거나 귀기울이지 아니하시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실제로는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을 시험하셨던 것처럼 그분께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중인 것이다. 우리는 끈질겨야만 하며, 포기해서는 안된다. 다니엘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의 기도가 즉시로 응답되어지지 않았던 것이 사단의 방해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끈기가 결국 사단의 방해를 물리치고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응답을 받게 해주었다.

기도해야 한다는 큰 부담이 우리의 마음에 느껴지면, 그것은 성령님께서 친히 우리와 더불어 기도하고 계시다는 증거이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니라"(롬 8:26).

2. 예화가 주는 교훈들
우리가 기도에 성공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들 중의 하나는 끈기의 부족이다. 끈기가 부족한 것은 믿음과 헌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어야만 한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헌신해야 한다.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것과 같은 믿음과 헌신과 자기 부정의 정신을 반드시 소유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믿음, 헌신, 자기부정은 우리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를 지도록 그리스도를 이도 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정신, 헌신과 자기부정의 정신을 소유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이기적이며 세상 적인 마음을 갖고서 단지 우리 자신의 유익이나 추구한다면, 확실히 우리는 성령님을 근심시켜 드리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기도의 영을 소유할 수가 없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는 크나큰 사역을 위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기꺼이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만 한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만 살고 잇느냐?"는 질문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과 재산과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바치고 있는가?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왕국과 길 잃은 영혼들을 위한 희생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기도에 성공할 수 있겠는가? 기도에 성공하는 것은 마음 자세에 달려있는 것이지 단순히 말하는 것에 달려있는지는 않다. 기도에 성공하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단지 입술로만 기도문을 읊조린다든지 기도한 후에 기도한 바를 잊어버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기도, 즉 진정한 기도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계속적으로, 끈질기게, 상습적으로 아뢰어 올리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어떻게 기도에 성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정한 해답이다.
하나님을 기뻐함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1. 하나님을 기뻐한다 힘의 의미
(1)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것들과 동일한 목표들과 목적들을 가짐.
(2)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것들과 동일한 원칙들을 채택하고 실행함.
(3) 하나님과 그분의 인격, 그분의 행위들, 그분의 섭리적인 다스리심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기울임.
(4) 하나님께서 목표를 이루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모든 방법들에 대해 전폭적으로 지지 찬동함.
(5) 우리의 모든 느낌, 감정, 애정이 하나님께 집중되도록 함. 그분은 우리의 '중력의 중심(our center of gravity)'이시며, 우리의 영혼이 누리는 모든 만족스런 것들의 근원이시다.
(6) 하나님과 그분의 인격, 그분의 섭리, 그분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의지함.
(7) 하나님의 뜻에 복종함.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기뻐할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뜻이나 우리 자신의 욕망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뜻을 실행해야 한다. 자녀가 자신의 부모님께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의 부모님을 기뻐할 수가 없다.
(8)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함. 어떤 결과를 당하게 되는 상관하지 않고서 망설임 없이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철저히 하나님을 위해서 살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로 결심한 마음 상태,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며 그 순종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하여야 한다. 바로 이런 정신으로 예수님께서 당신의 천부이신 하나님께 순종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시 40:8).

(9) 하나님을 기뻐한다 함은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에 깊은 관심을 기울임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가 말하거나 행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우주 내에서 최고의 선으로 간주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증진시키는데 최고의 행복과 기쁨을 찾는다.

(10) 하나님을 기뻐한다 함은 기도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과 계속적으로 사귀며 친교 나누기를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뻐한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인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커다란 기쁨이다.

2.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라는 말의 의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추구하는 것들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일들을 추구하고 있고,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분과 우리 모두를 기쁘게 해줄 일들을 우리에게 이루어 주실 것인데, 이는 하나님과 우리의 마음이 하나로 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이 약속의 실현 여부를 주님을 기뻐함에 달려있음
하나님께서 이기적인 요청에는 응답해 주시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의 화합 속에서 하나가 되어 있으며 하나님을 충만히 기뻐할 때에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소원들을 이루어주실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마음 상태일 때는 우리의 소원과 하나님이 소원이 늘 동일하다.

사람들이 주님을 기뻐하건 말건 따지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셔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수많은 사람들이 온갖 종류의 이기적인 욕심을 낼 턴데, 왜 하나님께서 그 모든 욕심을 채워주셔야만 하는가! 그런 상황은 악하고 위험천만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할 때에, 그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소원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들의 모든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여 참으로 옳고 안전한 것이다. 그들의 기도는 항상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아뢰어지는 간구일 것이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기뻐하면서, 동시에 이기적으로 금지된 사항들을 추구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기뻐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항상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크나큰 격려가 된다.

누군가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있다는 증거는 그 사람의 모습 속에 나타난다. 그런 사람은 즐거운 마음 상태를 누린다. 그런 사람은 즐거워하고 만족해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면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삶의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기뻐하며, 따라서 그는 항상 즐겁고 행복하며, 항상 기도하며, 항상 감사한다.

반발하는 자세, 비관하는 자세, 행복해 하지 않는 자세, 은혜를 모르며 감사하지 않는 자세, 낙심하는 자세는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 자세이다.

4. 기도응답을 못 받는 이유
(1) 신앙을 고백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그들의 최고의 기쁨은 하나님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신실하게 교통하며 교제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복종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의 기도가 응답되어지지 않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들은 비록 기도의 외양은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뻐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도 않으며,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하지도 않았다.

(2) 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응답되어지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소원하시는 것과 동일한 것을 그들이 소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언가 이기적인 유익을 소원한다. 야고보 사도는 이런 사람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 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약 4:2, 3).

하나님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자는 세상적인 것들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의 최고의 소망은 하나님 자신과의 교통, 즉 하나님을 알아가며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가장 귀중한 보물로 생각하며 그 밖의 모든 것들을 다 가치없는 것들로 여긴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들에게는 오직 하나님만이 가치가 있고 중요하다. 시편 기자는 말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시 73:25). 이 시편을 쓴 기자의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서 있었다. 이렇듯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이 바로 세상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서, 친구들에 대해서, 모든 것들에 대해서 죽은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과 자신 사이의 교통을 가로막는 어떤 존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5. 하나님께서 당신을 기뻐하는 자들을 기뻐하심
(1)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하나님을 기뻐하면, 그분께서는 다른 사람보다 더 우리를 기뻐해 주실 것이다.

(2)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실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얼싸안으면 하나님을 얼싸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싸안으실 것이다. 이것이 '마음의 법칙(the law mind)'이다. 사람이 신실하게 하나님을 찾을 때면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그 사람에게로 돌리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당신 자신의 영을 사랑하시듯이 그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러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 4:8).

(3) 여러분이 여러분의 존재 전부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철저하게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완전히 못박히는 것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당신의 기도가 응답 받기를 바란다면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라.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기 전에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어질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말라. 하나님과 그 밖의 것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나뉘어진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지 말라. 하나님께 여러분의 마음 전체를 몽땅 드리라. 당신의 자아를 비롯하여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을 몰아내어 여러분의 마음을 완전히 비우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과 그분의 사랑, 의로움, 성결, 복으로 여러분의 심령을 가득 채워주실 것이다.

깨끗한 양심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21, 22).

1.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분께 받는다"는 말의 의미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되어졌고,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을 충실히 실행하고 있다고 느낄 때에 우리의 양심은 우리를 책망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양심이 우리를 책망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책망치 않으신다.

나는 여러분의 현재의 마음 상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러분은 과거에 여러분이 하나님께 크게 범죄 했음을 깊이 깨닫고 있다. 여러분은 과거에 여러분이 하나님께 크게 범죄 했음을 깊이 깨닫고 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과거의 모든 죄악들을 하나님께서 용납치 아니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그러나 또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값을 위해서 죽도록 그분의 독생자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죄악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죄악들을 용서해 주셨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의 과거의 죄악으로 인한 "정죄함이 없다"(롬 8:1).

여러분의 과거는 모두 용서받았다.

만일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온전히 헌신하고 있으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깨끗한 양심으로 살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향하여 더 이상 화내시지 않고 미소를 보내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깨끗한 양심을 가진 여러분을 더 이상 책망하지 않으신다. 여러분 자신의 양심이 진정으로 깨끗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현재의 삶을 인정하시며, 여러분은 마음에 평안을 누린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의 마음이 신실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싫어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에 성실하게 순종하고 있는 사람을 향해 화를 내시거나, 그런 사람을 미워하실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들의 자녀가 겸손히 순종하고 성실하게 옳은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세상의 부모들이 어떤 반응을 나타내겠는가? 화를 내거나 미워하겠는가? 그렇지 않다. 자녀들이 선한 일을 행하고 순종할 때에 그들의 부모의 마음은 행복감과 기쁨으로 넘친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 행하기를 기뻐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단히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신할 수가 있다.

우리의 양심이 언제 우리를 책망하는가? 우리가 불순종하며 범죄할 때이며 이기적인 태도로 행동할 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빛을 따라서 그분께 순종하지 않을 때이다.

이제, 여러분이 자신의 이기심과 불순종을 신실하게 회개하고자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온전히 순종한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결과를 볼 수있겠는가? 여러분의 양심이 더 이상 여러분을 책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여러분은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더 이상 책망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여러분의 양심의 창조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는 불순종을 책망하시고, 순종을 인정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기를 신실하게 추구하며 깨끗한 양심으로 그분의 행하는 모든 사람들의 기도를 받아들이시며 응답해 주신다.

2. 깨끗한 양심을 가진다는 말속에 내포된 의미들
(1) 자기의(自己義)를 내세우지 않음.
깨끗한 양심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 것으로 돌린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라는 말이 깨끗한 양심을 지닌 자의 간증이다. 바울의 간증이 이러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다(고전 15:10)

바울은 그리스도께로 회심하기 이전의 자신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교회를 대적한 행위들 때문에 그의 양심이 그를 책망했으며, 자신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것을 하나님께서 용납치 않으심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과거의 일이었다. 바울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으며,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하고 구원해 주셨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당시에는 자신이 깨끗한 양심을 지녔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과 수고를 인정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고했다
바울은 요일 3:22잘 말씀을 성취하였던 것이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을 확인함.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이고,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으며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기심이 없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받아들이시며 여러분의 마음 상태를 인정하신다고 믿을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과 삶을 기뻐하신다는 것도 믿을 수 있다. 이 근거 위에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 만일 여러분 자신이 범죄하고 있음을 깨닫는다면 먼저 여러분의 양심이 여러분을 용납치 않을 것이고, 아울러 여러분은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용납치 않으시며 여러분의 기도를 받아들이지 않으심을 알게 될 것이다.

(3) 자신이 하나님과 완전히 일치한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확신함.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은 오직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뿐이다.

하나님의 영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완전히 다스리시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며 느끼시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낀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지지, 찬동하며 그분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에는 마치 예수님께서,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함"(요 17:23)이라고 기도하셨던 바와 같은 마음의 연합이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반드시 들으시며 응답하실 것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요구를 거부하면, 그것은 그분께서 당신 자신을 거부하시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신의 마음과 뜻에 완전히 일치하는 기도를 거부하실 수가 없다. 여러분의 기도의 정신과 동기가 "주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다"라는 말씀과 일치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다.

(4) 자신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앎.
"오, 주님,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라는 기도가 깨끗한 양심을 가진 자의 마음 자세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순종하는 마음 자세를 보시고서 여러분을 인정하신다. 순종하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해주려는 것이 세상 아버지들의 소원이 아니겠는가?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시다.

(5) 자신의 행위나 자기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 점이 없음.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믿음으로 자신의 죄악들이 용서되어졌음을 알고 있다. 현재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고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겸손하게, 그러면서도 담대하게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간다. 여러분의 마음은 죄악으로 가득차 있지도 않으며, 과거에 범했던 죄악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자신의 자애로우신 천부(your loving Heavenly Father)로 인정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대제사장, 곧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담대히 기도함으로 당신께로 나아오라고 여러분을 초청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다.

3. 만일 우리가 깨끗한 양심을 갖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로 간구한 바를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요일 3:21))

(1) 우리가 깨끗한 양심을 갖고 있을 때, 기도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감독하시는 분은 성령님 이시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지를 보여 주신다. 우리의 마음속에 기도해야 한다고 하는 열망을 안겨 주신다. 우리의 마음속에 열망의 불길을 타오르게 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인내하며 기도하게 하신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도록 이끄신다. 이렇듯,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의 제공자(the source of prayer)이시며 우리 속에서 기도하는 분이 실진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확신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그분께서 분명히 응답하실 것이다.

(2) 모든 참된 기도의 정신은 마 6:10에 요약되어 있다.
"(아버지의) 나라에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시다" 깨끗한 양심을 지닌 사람은 이런 영적인 마음 자세를 소유할 것이다. 그가 어떤 특별한 문제들을 기도하든지 그 특별한 문제들을 근본적인 뿌리 곧 그가 구언하는 은총인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는 기도에서 뻗는 나뭇가지들(branches)과 같다.

하나님께서 지극히 소원하시는 바는 그분의 의의 왕국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 위에서도 세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런 마음과 정신을 가질 때 하나님의 마음과 정신에 일치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소원하시는 바와 동일한 것을 갈망하며 바라야 한다. 우리의 마음 자세가 이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는 것을 즐거워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문자적으로 꼭 일치하는 응답을 주시지는 않을 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근본목적에 부합되도록 응답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명심하라. 기도할 때에 깨끗한 양심을 갖는다는 것은, 여러분의 기도가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참된 의도와 동기를 가짐을 뜻한다는 사실.

4. 깨끗한 양심은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요일 3:22).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근본적인 이유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조건을 구별하는 것을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신다. 그러기에 그분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심을 크게 기뻐하시며 흡족해 하신다. 만일 하나님이 무한히 사랑하는 분이 아니셨다면 그분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조건은 우리가 깨끗한 양심을 가지는 것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요일 3:22 말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마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수가 있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수 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그러므로 우리편에서의 순종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거나 복을 주실 수가 없다. 만일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과 불순종하는 자들의 기도에 응답하셔야 한다면 그러한 하나님을 거룩하다고 할 수는 없다. 만일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자들과 악한 자들이 기도에 응답하신다면 그것은 곧 그들의 죄악을 인하여 그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죄악을 간과하신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분명히 죄악을 미워하시며 배격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자들과 더러운 양심을 지닌 자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풍성한 복을 내려주실 수 있는 조건은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깨끗한 양심을 지녀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없이 크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당신의 사랑과 복을 쏟아 부어 주시길 간절히 바라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큰 바다와 같아서 결코 다함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시길 간절히 바라시지만, 그 응답의 유무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느냐의 여부시에 의해 좌우된다. 만일 여러분이 깨끗한 양심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마음으로 순종하고 있지 않으면,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해 주신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를 바라기 이전에 먼저 여러분의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 만일 여러분의 삶 속에 고백하지 않은 죄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이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순종만이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것이다.

5. 기도하게 전에 마음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함
기도하기 전에 여러분 자신의 마음 상태를 신중히 살펴보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존전으로 성급히 달려가지 말라. 여러분은 온전히 순종하고 있는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으로 깨끗한 양심을 지니고 있는가?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겔 14:3)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속에 주님보다 앞세우는 어떤 우상을 갖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께서 그 우상을 보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네가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고 말씀하신다. 달리 표현해서, "네가 그 우상을 붙잡고 있는 한 네가 하는 기도는 헛된 것이다. 네 기도는 응답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여러분의 우상을 내어 버리라. 겸손하게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자신의 죄악들을 고백하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이다. 다소의 사울은 허영심 많고 교만한 바리새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하여 용서받고서 사도 바울이 되었다. 그는 기도에 있어서 엄청난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실 것이고, 여러분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랑과 은혜를 허락하신 사랑과 은혜를 깊이 생각해 볼 때 다음과 같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용서해 주신다. 둘째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깨끗한 양심을 주시며, 마음의 평화를 주시며, 믿음 안에서의 기쁨을 주신다. 셋째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의 은사를 주신다. 넷째로, 그분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님의 중보를 제공하시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간구하며 기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다섯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기도에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우리가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여러분도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 만년의 야곱처럼, 여러분도 기도로 하나님을 설득할 수가 있다.

바로 지금,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기로,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올바른 일을 행하라! 하나님께 순종하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을 행하라! 이렇게 행할 때 여러분은 기도할 수 있다. 이렇게 행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실 것이다.

효과적인 기도를 할 수 없는 마음자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이다. 여러분은 기도하여 하나님을 설득할 수 있는가?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이고 여러분의 기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과 지옥의 차이점을 시사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그 짠맛을 잃으면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만일 여러분이 기도의 영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지금 즉시 여러분의 영혼을 감찰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고하라! 그리고 바로 지금 하나님께 여러분의 죄악을 고백하라!

항상기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1. 왜 우리는 기도도해야만 하는가?
(1)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어떤 특정한 부분들뿐만이 아니라 삶의 전 부분을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다.

(2) 우리의 본성이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의 현장 속에서 고통과 압박을 느끼며, 수많은 종류의 부족함을 느낀다. 인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은 어느 곳에서나 기도해 왔는데, 이는 인간 본성이 도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악인마저도 심한 고통을 느낄 때에는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한다.

(3)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생각은 모든 인간의 정신 속에 내재되어 있는 기본적인 관념이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 사는 사람이든 모두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지 않으시며 응답하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면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4) 하나님과 교제는 인간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자연스런 욕구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 우리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해주실 수 있으며 또 해주실 것임을,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해주시기 않을 것임을 우리는 믿고 있다.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행위가 그분을 향한 우리의 태도와 행위, 그리고 그분께 아뢰는 우리의 기도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목적 중 하나는 우리를 당신께로 이끌어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시는 방법은 그분께 대한 우리의 사람과 순종, 그리고 그분의 은총을 성실하게 구하는 우리의 기도의 유무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이 없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에게 유익을 주실 것을 기대하겠는가? 예를 들어서, 우리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이켜서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고 있다. 다른 복을 받기 위한 방법도 죄사함 이란 큰복을 받는 방법과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기도로 하나님을 구하며 찾아야 한다.

2. 왜 우리를 항상 기도해야 하는가? 왜 낙심하지 말고 계속 기도해야 하는가?
누가복음 18장에 기록된 첫 번째 예화 속에 등장하는 가난한 과부는 본보기가 될만한 인내를 보여주었다. 그 여인은 재판관을 계속 찾아갔고,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단순히 인내만으로 그 연인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 재판관은 하나님이나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자기 자신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서는 염려했는데, 이 연인은 지속적인 방문과 호소로 그의 평화와 안녕을 깨뜨리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그는 그녀의 말을 듣고서 요구대로 해주는 것이 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이야기를 본보기로 사용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도에 있어서 끈기가 필요함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이제, 우리가 시도할 때 인내해야 하는 이유들을 살펴보자.

(1) 우리는 삶을 사는 동안 계속해서 기도의 영향력을 필요로 하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기도가 우리를 하나님의 존전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계속적인 기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신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때문에 우리가 항상 하나님을 인식하며, 늘 의식적으로 그분의 은혜와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일이다.

(2) 하나님 자신께서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신다. 왜? 어째서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필요로 하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여러분에게 보다 많은 은혜와 복을 주시길 진심으로 소원하고 계신다. 그러나 여러분이 여러분의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이 귀한 복들을 주실 수 없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며 하나님을 의지해야겠다고 느끼고서 어린아이와 같은 태도로 성실하게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서 아무것도 해주실 수가 없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자 않은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겠는가? 이러한 원리는 죄의 사함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모든 다른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여러분은 반드시 기도로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음을 보여드려야 한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높이며 경배한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반드시 보여드려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실 것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태도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바라시는 것들을 우리에게 마음껏 풍성히 주실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께 기도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네희가 얻지 못함을 구하지 아니함이요"(약 4:2 하반절).

끈덕진 기도를 대신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성경을 읽는 것조차도 기도를 대신할 수는 없다. 기도는 우리의 영에 활력을 주는 영적인 호흡인데, 이는 기도가 살아 계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이유이다.

(3) 기도만큼 유용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면적으로 나아간다. 기도는 우리를 변화시킨다. 기도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기도는 우리의 죄악을 고백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성경 읽기는 대단히 유익하다. 다른 성도들과의 교제 역시 매우 좋은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더 놀라운 것은 진정한 기도 곧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하나님과 나누는 교제를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이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미워하게 한다.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과 세상의 모는 유혹과 매력에 대해 죽게 한다. 기도는 우리의 영혼 속에 능력과 영적인 활력을 불어넣는다.

(4) 기도는 하나님의 광대한 복들을 받도록 우리 영혼을 준비시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끈덕지게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5) 참된 기도, 신실한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린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그분의 복들을 우리에게 쏟아 부으실 수 있는 위치에 우리를 갖다 세운다. 교회사를 연구해 보면 기도에 거인이었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도 가장 쓸모 있는 사람들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보다 더 많이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 보다 더 많이 우리를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우리가 보다 더 많이 기도하면 할수록 우리는 훨씬 더 거룩해진다. 많이 기도할수록 우리는 더욱 더 그리스도를 닮아간다. 많이 기도하면 기도하는 즐거움을 더 많이 누릴 것이다. 기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우리는 훨씬 더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훨씬 더 거룩해지고 그리스도를 닮아갈수록 우리는 더 많이 기도하게 될 것이다. 보다 더 많이 기도하면 할수록 우리는 기도하는 방법을 훨씬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기도를 하면 할수록 기도의 중요성과 필요성, 그리고 기도의 유용성을 깨닫는다. 기도는 특권,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큰 특권이다. 만일 기도를 단지 의무로만 간주하게 되면, 여러분은 기꺼운 기도를 할 수가 없다. 여러분이 끈기 있게 계속해서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응답해 주실 것이고, 여러분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다.

특권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 여러분이 자신의 문제에 관해 대통령의 도움을 요청하고자 어떤 제재나 간섭도 받지 않고 직접 그에게 나아간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기도함으로써 여러분은 우주의 통치자, 만와의 왕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다. 여러분은 직접 하나님의 존전(尊前)으로 나아가서 자신이 겪고 있는 어떠한 문제를 위해서든 그분의 도우심을 요청할 수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만들어 놓으신 특권이 그 얼마나 손쉬운 것인 가도 생각해 보라. 우리는 기다릴 필요가 없으며, 준비를 하거나 특별한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저 단순히 기도하기만 하면 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늘 현존(現存)해 계시기 때문이며,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한번 예방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몇 주전부터 준비를 해야만 한다. 또한 그를 만나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가 어느 시간, 어느 장소, 어느 상황에서든 지간에 곧바로 교통할 수 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그분께서 만들어 놓으신 특권은 참으로 대단히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엄청난 특권의 유익을 누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3. 왜 사람들은 항상 기도하질 않는가?
(1) 재차 타락했거나 회심하지 않은 마음을 지니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싫어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롬 8:7).
이 말씀은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는 하나님께 적개심을 품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법을 싫어하며,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한다.

(2) 스스로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이나 열망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기도하지 않고도 자신들이 충분히 강하다고 하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으며, 또한 기도하는 것은 자기가 연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는 잘못된 생각을 지니고 있다. 사실상 스스로 자신이 외롭다고 생각하는 자는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이다. 그들의 영적인 무지가 그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이 강한 존재이며, 기도란 허약한 자의표현(a form of self weak-ness)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3)불신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늘 기도하지 못하게 한다. 여기서 불신의 대상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 분이 약속하신 모든 것들이 성취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약속을 불신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실 준비를 하고서 대기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믿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는다.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불신인 것 같다.

불신은 하나님을 우리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인간과 같은 수준에 있지 않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고, 따라서 그분께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 불가능이란 없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그분께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이 모르시는 것은 없다. 하나님은 그 어느 것에도 제한 받지 않으신다. 그런데 불신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제한하려고 한다. 불신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제한하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지대한 관심을 쏟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의 개별적인 삶 속의 모든 부분을 주관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세상만사에 관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스스로를 계시하시며, 계속해서 스스로를 계시하길 바라시며,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우리의 인생에 관한 모든 일들에 대해 전적으로 그분을 의지하면 되는 것이다.

(4) 사람들이 항상 기도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진정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자신들이 영원한 심판을 받아 마땅한 존재임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적인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며, 그래서 기도로 하나님을 찾는 일을 하지 않는다.

(5)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에 대한 잘못된 사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거의 기도하질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도하기엔 너무나 더러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온전한 착해져야만 기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선(善)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우리 자신의 선이 없다. 우리는 모두 죄인들이다. 우리는 그저, "주님, 저와 같이 악한 죄인을 구원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깨끗케 해주시면 용서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인해 감사드리며, 제 기도를 들어주시는 은혜를 감사를 립니다" 라고 아뢰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6)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세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세상적인 문제들과 세상적인 일들로 가득 찬 마음을 가진 이들은 기도에 몰두할 수가 없다.

4. 결론
기도는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일이다. 기도하는 것의 시간낭비가 아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기도한다면, 우리는 그 일을 훨씬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이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더 많이 기도하면 여러분은 공부하는 데 있어서 훨씬 더 성공을 거둘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보다 많이 기도한다면 여러분이 주일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설교할 때에도 또는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어떤 일에 있어서도 훨씬 더 성공을 거둘 것이다. 기도는 마음을 환히 밝혀준다. 기도하는 마음의 불, 즉 전기와 같다. 기도는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성공의 비결이다. 그것은 목회에 성공하는 비결이다. 기도를 하나님과 교통함이 없이 여러분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기도 없이 여러분은 어떻게 그리스도를 위한 증인이 될 수 있으며,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학문만을 신뢰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우리는 기도의 영으로 충만해져야만 한다. 살아있는 믿음으로 충만한 기도는, 다른 방법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성취할 수 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함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네가 시행하리라"(요 14:13, 14).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3, 24).

기도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활동이다. 우리 모두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하자.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영적인 생명의 근원이시며 제공자이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능하게 해준다.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삶의 시련들 한가운데서 우리의 피난처(our rock of defence)가 되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3-16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에서부터 시작하여 겟세마네 동산에 이르는 도중까지의 시간에 하신 말씀들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다른 이에게 해주신 마지막 말씀인 만큼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기 이전에도 제자들에게 기도에 관해서 가르치셨고, 당신께서 친히 본을 보이심으로 스스로의 가르침을 확고히 하셨다. 기도는 예수님의 생활 습관이었다. 이 점은 나사로의 무덤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 속에 나타나고 있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요 11:42). 여기서 '항상'이란 말은 그리스도께서 규칙적이고 계속적인 기도의 습관을 가지셨다는 것과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기도를 항상 들으시고 응답하셨다는 두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요 14:13,14요 15:7,요 15:16요 16:23,24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이름을 사용하여 기도하라고 처음으로 교훈 하신 말씀이라는 점에서 또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자들이 구하는 바는 무엇이든지 받게 될 것이라고 교훈 하신 말씀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할 수 있다. 참된 기도는 단지 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당신의 자녀가 무엇인가를 요구할 때 그것을 주시며, 문을 두드릴 때 열어주시며, 그가 하나님 자신을 만나기를 요청할 때 나타나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구하지 않고, 두드리지 않고, 찾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복을 받겠다는 생각은 불합리하고 어리석은 것이다. 역사를 통하여 가장 거룩하고 가장 경건했던 사람들은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예수님 자신이 기도의 사람이셨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교훈이 되어야 한다. 기도하는 것이 예수님의 지속적인 생활 습관이었다면 기도는 또한 마땅히 여러분의 생활 습관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요 14:13,14에서, 예수님께서는 놀랄만한 주장을 하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또한 요 15:16에서,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서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고, 16:23, 24에서 또 다시,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이제부터는 내 이름으로)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상의 3곳의 구절들 모두에 내포된 근본적인 사상은 동일하다. 이세 구절에는 모두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그리스도 자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것과 그들의 모든 기도가 응답되어질 것임을 가르치고 계시는 장면이 기록되어져 있다. 다만 단 한 가지의 작은 차이점이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가운데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첫 번째 구절에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라고 말씀하시는 반면, 다른 두 구절에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아버지께서 주시리라"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점이다.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14장에서는 '내가 주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다른 두곳에서는 '내 아버지께서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의문을 가질수도 있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요한복음 속에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특징을 연구해보면 쉽게 얻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 자신의 독특하고도 유일무이한 관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다"(요 10:38요 14:10, 11, 20; 요 17:21,23).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요 10:30).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한다"(요 5:19).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한다"(요 5:23).

아버지와 아드님은 하나이시며 동등하시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당신의 관계에 대해서, '우리는 하나(요 17:11)'라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요 7:21)"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와 아드님이 하나이시며 동등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주시며, 또한 무엇이든지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바를 우리를 위해 아드님께서 실현하신다.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이름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그 이름은 신의 이름, 곧 하나님의 이름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이유는 이는 그분이 하나님과 하나이시기 때문이며, 곧 우리의 모든 기도에 응답할 능력과 권위를 지니신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증거는 무엇인가?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하시다는 사실과 그분의 이름으로 간구할 때 아버지께서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또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아드님께서 우리를 위해 시행하실 것임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에 있다. 요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할 것과 (23, 26절), 부활 후에 당신을 보내신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에 대해서 말씀하신다(5, 7, 28절). 또한 당신께서 지상을 떠나가신 후에 제자들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보혜사 곧 성령님을 보내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13절).

이 모든 사건들이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그대로 일어났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여 승천하신 사실과 성령님의 강림은 예수님이 신이심을,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심을 확실하게 증명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의 말씀, 즉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겠다"는 말씀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 아버지께서 주실 것이다"는 말씀을 믿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모든 신자들 속에 내주려하고 오신 성령님의 강람에 근거해서, 하나님과 자신이 하나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주장은 완전히 정당화되어졌다. 그리고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신 그분의 명령은, 그분의 이름으로 하는 우리의 모든 기도에 대한 응답을 우리가 받을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우리에게 대단히 의미 깊고 중요한 것임을 확증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기시에 그분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유일한 증보자이시다(요 14:6행 4:12 딤전2:5).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은 체휼치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4-16).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을 사용 하지만 실은 그 말에 대한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 즉 자신들이 왜 그 마을 사용하는지도 모르면서 쓰고 있다. 기도 끝부분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문구가 마치 판에 박힌 마술 주문처럼 읊어지고 있고, 사람들은 자주 깊은 생각 없이 아주 가볍게 그 말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라는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 곧 여호와라는 이름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 이름임을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그 이름 예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완전한 본성과 인격과 영광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기도 가운데서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할 때 이 진리를 반드시 명심하여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전존재를,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서 행하신 모든 위대한 사역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소유하고 계시는 바와 동일한, 순결하고 거룩하고 영적인 마음 상태를 지녀야 한다는 의무를 우리에게 지운다는 사실이다. 예수님과 영적으로 하나가 되지 않고서는, 예수님이 지니신 것과 동일한 목적과 목표를 갖지 않고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올바르게 기도할 수 없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사시는 목적과 같은 목적을 위해서 살고 있지 않으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는 없다.

예수님과 같은 정신,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서 쉽사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기도하는 것은 단순히 헛소리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신동모독이라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복음서를, 특별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들이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일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는 새로운 진리를 가르치시는 14장부터 16장까지를 다시 한 번 읽어보라. 그들이 예수님과 동일한 마음과 정신을 지니고 있어야만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고 응답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분께서 가르치신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하나이어야만 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당신의 관계에 관해서 말씀하시길,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서 그분은 제자들에 대해서도 유사한 말씀을 하셨는데,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고 내가 저희 안에 저희가 내 안에 있다"는 말씀이 그것이다. 또 요한복음 15장에서는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는다"고 말씀하셨다. 또,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고, 또다시 말씀하시길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에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다. 이 모든 말씀들의 의미는 명백하다. 그것은 제자들과 주님에 대한 신원판정(Identification)의 결과가 반드시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자들과 주님은 하나여야 한다. 생각과 정신에 있어서 하나여야 하고, 목적과 동료의식과 사랑과 혈연의식에 일치감을 지녀야 한다. 이것에 근거해서만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라는 말을 기도 가운데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는 기도자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참된, 살아있는, 영적인 연합을 가리킨다. 우리의 생명과 그리스도의 생명이 하나이고, 우리의 영(spirit)과 그분의 영이 하나이다. 이 영적인 연합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의 능력의 근원이며, 특별히 기도에 있어서의 능력의 근원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정신과 생각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때, 우리는 하늘의 능력과 복에 관한 약속과 보증을 소유하게 된다. 아울러 우리의 생각과 기도가 예수님 자신의 생각과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기도가 응답되어진다는 약속이 실현되어짐을 볼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일치된 마음과 정신을 갖고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그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친히 그 기도를 드리시는 것과 같고, 우리는 틀림없이 응답을 받는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온전히 드려질 수 있는 기도는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며 그분의 이름 곧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신 그분의 이름을 높이는 기도이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모든 기도마다 응답되어질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겠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분명한 약속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함은 기도응답에 대한 보증과 약속이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의 마음의 신실성과 성결함에 대한 크나큰 시험이기도 하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예수님과 하나이냐는 것이다. 우리는 온전히 예수님께 헌신하고 있으며, 철저하게 예수님께 순종하고 있으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그분을 사랑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영혼들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죄인들이 구원을 갈망하고 계시는 것처럼 우리가 사람들이 영혼을 사랑하고 있는가?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들을 진지하게 하도록 하자.

예수님의 이름을 바르게 사용하는가의 여부는 참된 기도와 이기적인 기도를 구분짓는 확실한 기준이다. 그것에 의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의한 기도와 육신의 뜻에 의한 기도를 구분 지을 수 있다.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것이다. 즉 여러분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올바르게, 신실하게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을 사용했을 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과 하나되어 있지 않았고, 여러분의 생각은 그리스도의 생각과 영적으로 일치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여러분의 정신과 그리스도의 정신은 동일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안내자가 되시도록 해드리자.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교통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교통하기를 힘쓰자.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 행하기를 추구하셨던 것처럼 우리모두 예수님의 뜻 행하기를 추구하자. 우리가 이렇게 행하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모든 기도가 응답되어졌음을 우리가 증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의 참뜻은 무엇인가?
(1) 우리 자신이 본질상 모두 죄인들임을 이해하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죄악 때문에 하나님께 저주받아 영원한 사망의 형벌에 처해지는 것이 마땅한 존재들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죄인으로 판결받는 존재라는 사실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잘 알려진 예화를 들어보자. 여기에 살인죄를 범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살인죄를 범했음을 확인하고서 판사가 그에게 사형을 언도했다. 그리고 그는 형집행일 까지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런데, 아직 형집행이 실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제 행사할 수 있는 어떤 법적 권리도 가지고 있지 못하던 그는 자신의 형집행 때까지 교도소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용 받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친구나 친척들을 방문하기 위해서 자유롭게 나갈 수가 없다. 그는 단지 사형선고를 받은 한 죄인으로 간주된다. 정부에서 볼 때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무가치할 뿐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회심하지 않은 죄인으로서 본질상 우리가 처해있는 상태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권리도 갖고 있지 못하다. 죄인으로서의 우리는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을 기대할 수도없다. 죄인으로서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아무런 권위나 자격이 없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단지 판결받는 죄인, 사형선고를 받은 죄인들이다.

죄인은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거룩하고 의로운 존재이신 하나님께서는 판결받은 죄인의 기도를 들어주실 수 없다. 판결받은 죄인으로서의 우리의 이름은 하나님의 공의의 보좌 앞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다. 죄인들에게 반드시 중보자, 곧 하나님께 인정받은 중보자가 죄인 편에 서서 죄인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기꺼이 나서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받아주시는 이름을 가진 유일한 중보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인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는 길, 그분께 기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있다. 우리는 죄인들이기 때문에, 우리자신의 이름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여야 하는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그분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그것은 우리 자신이 판결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써 우리의 죄값을 치루셨기 때문에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특권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는 특권을 우리가 누린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기도 가운데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할 때,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 대하여 죄인으로 서있는 우리의 위치를 명확히 인식하여야 하며, 진정으로 회개하며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인으로 판결하시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세우지 않는 우리의 기도를 듣기를 거부하시는 것이 절대적으로 공정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아물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께 속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2)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그것은 우리가 과거의 모든 죄악과 자기의(自己義)를 진실하게 포기하고서 돌이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름이나 혹은 다른 어떤 사람의 이름을 사용하여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하지 말아야만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감으로써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을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왜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없는가? 그는 믿음의 조상이었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위대한 인물이었다. 왜 우리는 모세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는가? 그는 확실히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없는가? 그가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던가! 왜 우리는 동정녀 마리아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없는가?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이었다. 왜 우리는 성인들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가?

천주교는 성인들의 중보직(중보권, the mediatorship of saints)을 사용하여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지금 언급한 모든 사람들은 본질상 우리와 똑같은 죄인들이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속죄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들도 역시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한 중보자가 필요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오직 단 한 분의 중보자가 계시는데, 그분은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딤전 2:5). 하나님의 아드님이시며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셨다. 그분만이 홀로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 시며 중보자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며 용납하시는 유일한 인물이시며 유일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기도해야 한다. 그분만이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는 우리의 유일한 길이시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할 때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너무나도 자주 그저 습관적으로, 형식적으로, 의례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지를 명확히 알아야만 한다. 기도할 때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그리스도를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하여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어질 것을 우리가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무엇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합당하게 사용하는 기도인가?
(1) 그리스도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어떤 것을 간구하는 기도를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기도할 때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 간구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간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광이 아닌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간구해야만 한다.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고전 1:19, 20). 그리스인도인으로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하였으며,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인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하였으며,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인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소유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서만 그것을 간구하여야 하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 구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어떤 것을 소원하는 기도를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것을 소원하는 기도를 하면, 그때는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의 요구를 들어주실 것이다.

단지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와 같은 태도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주시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게 해드릴 것들을 간구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이라는 말을, 그 말에 의해서 온갖 종류의 이기적인 기도들까지 몽땅 응답받을 수 있는 일종의 마술적인 주문(a kind of magical formula)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여 하는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간구하는 것들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쓰여져야 함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서,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서 우리는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교훈을 받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일용할 양식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쓰여져야 한다. 다른 말로해서, 내가 음식을 먹고 몸에 영양을 공급하여서 내 몸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에 쓰여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공기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호흡되어져야 한다. 우리가 입고 있는 의복은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의복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옷을 사거나 입어선 안된다.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 구하는 모든 것들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구해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유익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유익을 위해서 구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어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가 없다.

성경 속에 있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만 우리에게 주어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우리가 기도 중에 붙잡고 매달릴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단 하나도 없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약속들의 성취를 요구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로 간구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란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와 전혀 상관없는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유익과 영광을 위해서 기도를 드리는 한 우리가 기도로 당신께 나아가는 것을 환영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 중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가 마음속에 있는 모든 이기심을 제거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온갖 것보다 훨씬 더 넘치도록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복주실 것이다(엡 3:20).

(2)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삼는 기도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 분만을 전적으로 의지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를 용납해 주실 것임을,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대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임을 기대해야만 한다. 여러분은 죄용서를 받기 위해 그리스도 한 분만을 의지하고 있는가? 구원과 영생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 한 분만을 의지하고 있는가? 칭의를 위해서 그리스도 한분만을 의지하고 있는가?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기도응답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 한 분만을 의지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시기 위해선 여러분이 여러분의 기도의 열정이나 여러분의 눈물, 여러분의 감정, 또는 여러분이 행한 어떤 것을 의지해서도 안되고, 오직 여러분의 중보자, 여러분의 대언자, 여러분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한 분만을 의지해야 한다.

3.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는 이유들은 무엇인가?
우리 모두는 본질상 죄인들이란 사실 때문에 우리 자신의 인격이나 우리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설명하였다. 본질상 우리가 죄와 허물로 죽은 자임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다. 사형선고가 우리에게 언도되었다. 우리 자신의 양심이 우리가 죄인이란 사실을 증거한다. 우리의 영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음성인 양심은 우리에게 우리가 판결받은 죄인들임을 가르쳐 준다. 만일 우리가 죄인인 우리 자신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면 그 행위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우리의 죄값을 위한 속죄물이 되게 하시려고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셨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시고 높이 셨으며 그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그런데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고서 우리 자신의 공로나 자기 의로움을 의지하여 우리 자신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경멸하며 모독하는 죄악을 범하는 것이다. 그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속죄와 중보직의 제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하나님께서 그 어떤 인간의 기도도 들어주실 수가 없다.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 접근하는 데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의지할 중보자도, 대제사장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참으로 그리스도의 속죄와 중보직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더러운 옷(사 64:6)을 입고서 만왕의 왕 앞에 나타남과 같다. 구약시대에 지성소로 들어가 그곳에 임재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대제사장은 거룩한 예복을 입어야만 했었다. 그들이 이 거룩한 예복을 입지 않고서는 성전 안에 계신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었다. 이 구약의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의도하신 상징적인 교훈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거룩한 예복을 입지 않고서는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갈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와 동떨어진 채로 하나님께 접근한다는 것은 전능하신 창조주를 경멸하고 모욕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경솔하게 사용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우리의 기도 가운데서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표현을 단지 형식적으로나 의례적(儀禮的)으로 사용해서는 결코 안된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이들이(Many professing christians)기도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도 자주 그리스도의 이름이 가볍게, 생각없이 함부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올바른 마음 자세, 올바른 정신 자세를 갖춤이 없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며 기도한다. 대단히 자주 그리스도인들이 이기적인 기도를 아뢰며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도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께 속하였으며, 자신들에게 이기적인 기도를 드릴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기도가 응답되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 가지 예화를 들어보자. 어떤 회사의 사장이 경리사원에게 회사의 예금통장과 도장을 주면서 은행에 가서 오백만원을 찾아오라고 했다. 경리사원은 은행으로 가서 그 자신의 이름이 아닌 예금통장에 적혀있는 이름으로 오백만원을 청구한다. 만일 그 경리사원이 자신의 이름을 사용했다면, 그는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돈을 인출한 뒤에, 경리사원이 그 돈을 갖다가 자신을 위해 제멋대로 새옷이나 가전제품 등을 사는 데에 쓰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오, 그것은 안될 말이다. 그 경리사원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 돈이 사무실 운영비, 사원들의 월급, 건물세 등을 지불하는 데에 필요한 것임을 알고 있다. 그는 그 돈이 회사를 위해서 사용되어져야 함을 이해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의 의미에 대한 교훈을 준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생각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바른 태도를 갖고서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왕국을 위해서 사용되어져야 한다.

만일 우리가 신실하게 그리스도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고 단지 우리 자신의 영광,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이나 추구하고 있다면,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전혀 놀랍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입술로 '예수님이 이름으로'라고 읊조린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속지 않으신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기도 가운데,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엄청난 잘못이다. 우리가 올바른 마음 자세를 갖고서 올바른 태도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을 수 있다. 우리의 마음 자세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하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어떤 것이든 간구할 수 잇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주실 것이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러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3, 24).

형제와 자매와의 화해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 24).

화해는 기도와 관계된 중요한 주제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이 잘못을 범했던 형제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그 형제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을 실해하기 때문에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마 5:23, 24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도의 중요한 조건 한 가지를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그 말씀은 또한,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때때로 하나님께 기도 드리게 적합하지 않은 마음 상태에 빠진다는 사살도 가르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범하고서 그 사람에게 자신의 잘못의 고백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 기도 드릴 자격이나 권한이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해야 할 대단히 중요한 사살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자신들의 기도에 응답하셔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이것은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가운데 제시해 주신 조건들을 우리가 갖출 때에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시겠다고 진실하게 약속하셨다.

그분께서 정하신 기도를 위한 조건들을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에겐 하나님께 기도드릴 권한이나 자격이 없다.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도를 위한 이러한 조건들 중의 하나가 마태복음 5:23, 24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설명되고 있다. 그 말씀의 의미는 명료하다. 만일 여러분이 자신의 형제에게 잘못했던 것을 깨달았을 때 즉시 그 형체에게로 가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고, 그분께 복과 은총을 간구할 수 없다. 자신의 형제와의 관계를 회복시킬 때까지는 여러분에게 기도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종종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왜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가?"라고 묻는다.

그러한 사람들은 "내가 많이 기도했는데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혹시 여러분이 자신의 형제에게 잘못을 범하였고, 그럼에도 형제에게 가서 용서를 빌거나 화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상기시켜 주시지는 않았는가? 여러분이 형제에게 퍼부는 거친 말, 형제에게 저지른 잘못은 혹 여러분 자신은 잊어버렸을지 모르나 하나님께선 잊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선 여러분의 태만과 부정직을 기억하고 여러분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이다.

여러분이 가서 형제와 화목하기 전에는 여러분의 기도가 아무런 능력도 가치도 지니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신다. "네 같은 동료인 사람에게 잘못을 범했으면서도 잘못을 비나 화해를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신이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인양 내 앞으로 나오느냐?" 때때로 우리는 같은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다른 이들과 사귀지 않으며, 심지어 서로 이야기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다른 이들을 향해 거친 태도를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친절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의 기도를 들어 주실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기 위한 조건에 관계된 이 문제에 대해 부주의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들은 마치 기동응답을 위한 조건같은 것은 전혀 없는 것처럼, 자신들이 할 일을 단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 그 기도에 응답을 기대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이 얼마나 엄청난 잘못인가! 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다른 그리스인도인들의 인격에 대해 나쁘게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이 하는 기도를 역겨워하신다. 그분은 그런 사람이 드리는 기도에 귀기울이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무한히 정직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마음이 정직하지 않은 누구에게도 귀기울이지 않으며 그와 이야기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절대적으로 정직하고 진실하며, 자발적으로 그분께 온전히 순종하며, 기도응답을 위한 모든 조건들을 갖추고자 애쓰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우리가 이런 마음 자세를 갖추기 전에는 우리가 아무리 큰 소리로 기도하고 아무리 오래 기도한다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에게 관해서 기록하시기를,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신다"(시 51:6)고 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신실한 마음과 하나님께서 합당하게 여기시는 올바른 삶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것은 기도응답을 받기 위한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 대한 자신의 관계에 있어서 실제로 부정직하고 불성실한 경우가 자주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1. 자신의 형제. 자매와 화해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1) 우리는 우리가 상처입힌 사람들에게 우리의 잘못을 반드시 고백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어떤 형제나 자매에게 흥분해서 화를 냈다면, 그 사람에게 잘못했다고 고백해야 한다. 만일 어떤 형제나 자매에 관해서 나쁘게 말했거나 비난을 했다면, 그것도 역시 그 사람에게 실토해야 한다.

(2) 우리가 우리의 형제에게 범한 죄악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주의 깊게 검토해야 하며, 그 죄악을 사실로서 시인해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의 죄악을 정당화시키려고 시도해서는 안된다.

(3) 우리는 우리의 잘못으로 인하여 피해를 본 사람에게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아무런 변명도 시도하지 말고, 겸손하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해야만 한다.
잘못을 시인함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우리가 가진 교만을 제거하는 것이다. 겸손은 교만을 제거하고 자기 자신을 기꺼이 낮추는 것이다.

(4) 하나님께서 우리의 양심을 통하여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실 때 마땅히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잘못을 고백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라고 강요받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옳고 정직한 것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5) 만일 우리가 형제로부터 어떤 것을 부정직하게 취했으면 당연히 우리는 그것을 배상하여야 한다. 배상 없는 고백은 가치없는 것이다.

(6) 고백은 또한 충분하고 철저해야 한다. 자신이 저지른 죄의 일부분만을 고백하거나 왜곡된 고백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는 형제에 대한 우리의 잘못을 완전히 고백해야만 한다.
여러분이 어떤 동료 그리스도인에게 잘못을 범했다고 가정해보자.
여러분의 동료는 여러분의 잘못된 행위를 알고 있으며 그것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단지 여러분이 범한 잘못의 일부분에 대해서만 그리고 간접적인 방법으로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다. 여러분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잘못에 대해 넌지시 비칠 뿐이다. 그 사람이 어떻게 느끼겠는가? 그는 당신이 여전히 진정으로 정직하거나 신실한 사람이 아니라고 이해할 것이다. 그런 고백은 여러분이나 여러분의 형제 모두에게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할 것이다. 고백은 흘러내리는 강물처럼 거리낌없이 나와야 한다.

2. 왜 하나님께서는 형제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함을 기도응답의 조건으로 삼으시는가?
(1) 고백의 필요성은 하나님의 공의 속에서 발견된다. 자신의 형제에게 저지른 잘못을 고백하지 않고서는 여러분이 하나님께 대해서나 형제를 향해서나 떳떳할 수가 없다.

(2) 여러분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기 위해서 고백이 필요하다. 자신의 이웃에게 범한 잘못을 고백하지 않고서는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릴 수 없다. 여러분이 불의하게 행하고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기를 미루는 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교제하지 않으신다.

(3) 여러분 자신의 마음의 평화을 위해서 고백이 필요하다. 여러분이 자신의 잘못된 행실을 시인하고 고치기 전에는 여러분의 양심이 늘 여러분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4) 여러분이 잘못을 저지른 상대방과의 화평을 위해서 고백이 필요하다. 여러분에 대해 혹 그가 나쁜 감정을 갖지 않는다 해도 그 사람의 마음속엔 여러분이 만들어 놓은 방해물이 있으며,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그에게 가서 허물을 고백하기 전에는 그 방해물이 치워질 수 없다.

(5)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자신이 잘못한 사람에게 가서 고백하기 전에는 다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존경과 칭찬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여러분을 사랑할지도 모르며,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할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여러분이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고백하기 전에는 그들이 여러분을 존경하거나 높일 수 없는 것이다.

(6) 여러분 자신의 자부심을 위해서 고백이 필요하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고백하지 않고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자기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도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여러분 자신의 본성과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기 전에는 여러분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회복할 수 없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받을 수도 없다. 여러분은 반드시 이 문제에 관해 철저히 생가가해 본 후에 진실하게 정직한 고백을 해야만 한다.

3. 자신의 죄악과 허물을 그대로 고백하는 것은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1) 고백은 태산같은 짐을 여러분 자신의 영혼으로부터 벗겨내고, 여러분에게 평안과 기쁨을 되돌려 줄 것이다.

(2) 여러분이 형제에게 잘못을 고백하는 그 행동을 통하여 그 형제도 겸손하게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겸손한 그리스도인의 고백은 달리 어찌 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움직인다. 겸손하게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는 여러분의 해동은 그 행동을 보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악을 고백하도록 영향을 끼칠 것이다.

(3) 고백은 고백한 사람에게 큰 명예가 될 것이다. 고백은 그의 마음이 올바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백은 고백자의 진리에 대한 사랑이 그의 인간적인 본성인 자존심과 교만을 이기고 승리했음을 보여 준다. 고백은 대단히 고결한 행위이다. 아무도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는 안된다. 고백은 해야 할 명예로운 일이다. 아무도 자신의 허물을 시인하기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왜 정직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왜 신실해지는 것을 겁내며, 진실해지기를 무서워하는가?

(4) 고백은 상처입은 사람이 고백자를 용서해주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해를 끼친 사람이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데 상처입은 사람이 달리 어떻게 용서해 줄 수 있겠는가? 고백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형제나 자매 사이에 놓여있는 걸림돌을 제거한다.

(5) 고백은 여러분이 범조함으로 말미암아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던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의 친교(communion)를 회복시키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리스도인들은 잘못을 범했을 때 스스로를 겸손히 낮추고 서로에게 자기의 허물을 고백해야만 한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하늘의 천사들도 즐거워한다.

고백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관한 본보기로는 욥과 그의 세 친구들의 경우를 들 수 있다. 그 친구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욥에게 매정하게 말했었다. 그들은 어려움을 당한 욥을 동정하지 않았고, 욥에 대해서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하나님께서 세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반드시 욥에게 가서 너희의 잘못을 고백해야 한다. 너희는 욥을 위선자라고 비난했다. 너희는 겸손히 너희의 잘못된 행위를 욥에게 고백해야만 한다. 그러면 그가 너희를 용서해줄 것이고, 그가 너희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너희를 용납하고, 너희의 어리석음과 잘못된 행위에 대하여 심판하지 않겠다."

그래서, 욥을 비방하면 위선자라고 욕하던 세 친구들이 욥에게 가서 잘못을 고백하고서 욥의 용서를 받았다. 그런 뒤에 욥이 이 세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했고,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과의 친교와 사귐을 재개하셨다.

여러분은 형제나 자매에게 잘못했는가? 가서 그 사람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고, 또한 그 사람에게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간청하라. 그는 여러분에게 필요한 사람,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야 할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 지금 곧 자신을 낮추며, 신실하고 정직해지며, 하나님과 자신의 양심이하라고 명령하는 바를 실행하라!

올바른 목적을 갖고 기도함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우리가 하나님께 특별한 것들을 간구할 때에는 반드시 정직하고 선한 이유를 지녀야 한다.

하나님은 무한히 지혜로우시며 합리적인 성품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 분은 선한 이유가 없이는 아무것도 행하지 아니하신다.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승인하시고 응답하실 만한 선한 이유를 항상 지녀야 한다. 우리가 기도로 요청하는 바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건전하고 지정적인 이유를 지녔을 때에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임을 기대할 수 있다.

하나님은 무한히 의로우시므로, 우리의 요구는 마땅히 그분의 뜻에 합치되는 것이어야 한다. 달리 표현해서, 우리가 기도로 요구하는 바는 반드시 하나님의 무한한 의로움을 만족시켜 드려야 하고 그 결과 그분의 찬성을 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에 이 중요한 점을 심사숙고하는 습관을 지녔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기뻐하시는 바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고 단지 자기 자신의 목적만을 위해서 간구하는 버릇이 있는가? 여러분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내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이 기도는, 과연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자비를 베풀어 받아주실 만큼 충분히 선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가?" "이 요구는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실, 그런 선하고 비이기적인 성격의 것인가?" 확실히 이것은 기도 문제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특정한 기도를 위한 우리의 동기가 그분의 무한한 지성과 뜻하시는 바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과연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실 수 있으며 응답해주실 수 있겠는가? 우리의 기도가 합리성(reason)과 지성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요구에 승복하시는 것이 잘못이 되고 부끄러운 일이 된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위대한 통치자로서 오직 선하고 합리적이고 지성적인 것만을 행하실 수 있을 뿐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서 올바른 생각이나 묵상이 없이 비합리적이고 비이상적인 것, 이기적인 것을 하나님께 요구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할 수 있다.

오직 하나님의 승인을 받고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내용의 간구(prayer requests)만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꼭 알아야 한다. 기도로 하나님의 것들을 간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한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말은 여러분의 기도 내용이 반드시 이기적이지 않아야 함을 내포한다. 여러분은 이기적인 정신 즉 탐욕으로부터 나오는 기도, 또는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간구하는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리라고 생각하는가? 결코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한 어린이가 어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하면, 어머니는 "왜 그 돈을 달라느냐?"고 묻는다. 어머니는 본능적으로 자기 아들에게 돈을 주기 전에 아들이 돈을 요구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한다. 만일 아들이 공부에 필요한 연필이나 공책을 사는 것과 같은 선한 이유 즉 어머니가 생각하기에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그와 같이 요구한다면 틀림없이 어머니는 아들에게 돈을 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자녀가 단순히 사탕을 갖고 싶은 자신의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돈을 원한다면, 아마도 어머니는 "안돼. 너한텐 더 이상의 사탕이 필요없어. 너는 이미 단 것을 아주 많이 먹었잖니. 사탕을 너무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주님과 우리 사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주님께서는 왜 우리가 기도로 특정한 요구를 하는지 그 이유를 아셔야만 한다. "주님, 제게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왜 그 돈을 필요로 하느냐?"고 하나님께서 물으신다. "제가 신학교에 입학하려고 하는데 등록금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제차 물으신다.

"신학교에 왜 들어가려는 것이냐? 네 동기가 무엇이냐? 나를 섬기려고 입학하려는 것이냐, 아니면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이냐?" 기도로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든지 반드시 선한 이유를 지녀야 한다. 여러분의 동기가 선하면 하나님께서 듣고 응답하실 것이다. 사도 요한은 분명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기록하였다. 반면에, 여러분의 동기가 이기적인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그런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것은 단지 현명치 못할 뿐만 아니라 수치스런 일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무한히 의로운 분이시므로 이기적인 기도에 대해서는 전혀 경청하시는 않는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의 기도가 신실하고 정직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기도이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증진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기도라면, 하나님께서는 사랑어린 공감(共感, loving sympathy)과 은혜로 향상 귀기울이신다.

이것이 기도에 성공하는 비결이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수 있도록 우리는 기도로 간구하는 모든 것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선한 동기를 지녀야 한다.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기도를 드리고자 하는 희망의 실현 여부를 여러분의 기도의 양(量, Amount)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며 기도의 길이(Length)에 달려있는 것도 아니다. 성공의 희망은 여러분의 기도의 질(質, Quality)에 달려있다.

만일 여러분이 왜 자신이 기도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오고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습관에 젖어있는 것이다. 아마도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을 조롱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겠지만, 여러분이 하나님을 조롱한 것은 사실이다. 여러분이 선한 이유없이 다만 어떤 이기적인 욕망을 만족시키고자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무엇을 구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한다.

"나는 왜 하나님께 이것을 요구하는가?"
"그것은 내게 진정으로 필요한가?"
"내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동기가 무엇인가?"
이것은 기도에 성공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 아들아, 내 딸아, 네가 나를 신실하게 사랑한다면, 네가 내 왕국을 사랑한다면, 내가 네게 동감하고 네 요구에 응답해 주겠다." 우리가 올바른 태도와 선한 동기를 갖고서 기도할 때에,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이 하나님께는 무한한 기쁨이 된다.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계시므로, 성도들이 선한 동기를 갖고서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듣고자 귀를 기울이신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존경하고 경배하며 그분의 지고한 영광을 중요시 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에 항상 응답하실 것이다. "그분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귀한 자리에 모실 때 그분께서 우리를 높이실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으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더욱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중하실 것이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겠다"(삼상 2:30)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대해 동감하지 않는다면 하나남께서 여러분에 대해 동감하지 않으시며 여러분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이다.

여러분이 신실하게 그분의 왕국을 먼저 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경청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께서 여러분 편에 서지 않으시거나 여러분을 받아주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의 목적과 하나님의 목적이 하나가 될 때, 우리의 관심사와 하나님의 관심사가 서로 일치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교통과 친교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로 이끄신다. 우리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로 연합되어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자 천지를 진동시키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굴복시키는 것이 그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우리는 그러한 마음의 태도, 곧 아주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우리 자신이 굴복되어 있어서 우리로 인해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게 될 그런 태도를 지녀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의 기도에 항상 응답하셨던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세례 받으셨을 때에,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변화되셨을 때에 하늘로부터 들려왔었던 그 말씀으로 설명되어진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마 17:5).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기뻐하셨던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늘상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그리고 자발적으로 복종하셨으며, 당시의 모든 일상생활 가운데서 항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그런 태도를 기뻐하신다. 우리가 이런 마음의 태도를 지닐 때 하나님께로부터 넘치는 복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부르짖기도 전에 그분께서 응답하실 것이며, 우리가 아직도 말씀을 아뢰고 있는 동안에 그분께서 역사하실 것이다.

순종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 28:9).

철저한 순종은 응답받는 기도의 조건이다. 여기서 율법이란 용어는 계시된 하나님의 뜻 전체를, 곧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칭한다. 귀를 돌이킨다는 것은 순종하기를 기꺼워하지 않는 것, 곧 불순종을 말한다. 불순종하는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다.

귀를 돌이킨다는 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에 주의를 집중하기를 게을리 하는 마음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하거나 게을리 하는 모든 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귀를 돌이킨다는 말의 참뜻이다.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바쳐진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깊이 갈망할 때에 여러분의 기도는 응답될 것이다.

그리스도안에 거함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6, 7)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만 한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성령님 안에서 살고 활동하며, 철저하게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연합되어져야 하며, 그리하여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원인이 우리 자신으로부터가 아니라 우리 안에 거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성령님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영적 상태, 곧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그리스도의 영의 직접적인 다스림 아래에 있을 때,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이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지 않는 어떤 것을 위해서도 기도하지 않는 아주 청결하고 거룩한 마음상태 속에 있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거할 때, 우리의 기도는 항상 하나님의 뜻과 일치할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항상 응답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제한 없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약속하셨다는 사실을 눈여겨보라. 이것은 분명히,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은 계시되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어떤것을 갈망하지도 않으며 그런 것을 위해서 기도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롬 8:26,27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마땅히 기도해야 할 것을 기도하도록 성령님께서 친히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

이 말씀의 의미는, 성령님께서 참된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들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인도하시며, 하나님께서 그런 모든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안에 거하지 않으면 기도할 때에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수가 없다. 그런 사람의 기도는 , 그리스도께서 친히 기도하실 적마다 지니셨던 정신과 동일한 정신 속에서 나오는 기도가 아닐 것이다. 결국 그이 기도는 응답되지 않을 것이다.

깊은 갈망

기도에 있어서 말씀을 아뢰는 것과 강한 갈망을 갖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다. 우리는 롬 8:26,27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도들을 위하여 간하시는 성령님의 강렬한 갈망에 관해서 읽는다. 기도할 때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항상 강한 갈망을 갖고서 기도할 것이다.

이러한 깊은 갈망 속에는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방향과 방법대로 기도에 응답하시길 바라는 소망을 포함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이런 식으로 응답해 주셨으면'하고 바라는 방향이나 방법과 같은 그 어떤 조건도 기도 속에 넣어서는 결코 안된다.

깊은 갈망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기도응답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자발적으로 묵묵히 희생하며, 수행하며, 요구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수반한다.

비이기적인 동기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도가 되기 위한 조건의 하나는 그러한 기도를 드리는 사람 자신이 이기심 없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3).

우리가 기도 드린 후 그에 대한 응답을 간절히 갈망해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항상 하나님께서 합당하게 생각하실 만한 동기를 가지고 기도하며 응답을 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드리는 기도의 동기나 목적은 반드시 하나님의 것과 동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해주시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모든 기도에 있어서 여러분이 궁극적으로 목적하는 바는 반드시 하나님으로 하여금 영광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어야 한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어떤 기도를 하든지 간에 그 기도의 근본적인 목적은 반드시 하나님으로 하여금 영광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어야 한다.

믿음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를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2,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리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 21:21, 22).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하실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르치셨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응답받는 기도를 위한 조건의 우리가 이렇듯 전능하신 하나님을 반드시 믿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기도와 관련하여 언급되는 경우 보다 강조되는 믿음의 의미를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을 것임을 확신하는 기대(a confident expectation)이다.

믿음의 기초는 무엇인가? 믿음은 비이성적이거나, 어리석거나, 무모한 것(a leap into dark, 잘 살피지 않고 어둠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우선적으로, 바로 하나님 자신이 우리가 가진 믿음의 기초시라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진 믿음의 기초가 되신다는 사실은 곧 그분이 다음의 두 가지를 소유하고 계심을 가르쳐 준다. (1) 권능, 즉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능력, (2)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자 하는 자발적인 의도(God's Willi-ngness). 우리는 하나님이 전지, 전능, 편재하셔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자발적이시라는 사실도 반드시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자발적이시라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첫째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 속에서 당신 자신을 우리의 무한한 사랑의 아버지로 계시하신 그분의 계시를 통해서, 그리고 두 번째로, 그분의 말씀 가운데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들에 의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을 벗어나 나는 어떤 것도 약속하시지 않는다. 우리의 모든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 즉 달리 말해서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언약하신 바에 일치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과는 관계없이 응답하실 것이 라는 단순한 감정은 믿음이 아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기초를 두었을 때, 즉 우리가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약속들에게 기초하여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약속하신 바를 실천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성경 가운데서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것에 반드시 근거되어야 한다. 만약 기도하려는 내용의 근거가 될 만한 특별한 약속이 성경속에 나타나지 않을 때에는 믿음으로 기도하기 위해 성령님의 인도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인내

우리의 기도가 즉각적으로 응답되어지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반드시 인내하며 기도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말씀은 인내하는 믿음의 표본이다.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약 5:7). 농부가 자신의 수확을 기다리며 가을비와 봄비를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을 확신하고 인내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들을 굳세게 믿으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길 인내하며 기다림은 승리하는 기도의 필수적인 조건이다. 하나님의 시간선택(God's timing)은 최선이며, 그분께서는 응답하시기에 가장 좋은 시간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의 뜻

우리의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제한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문제를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 속에서, 즉 그분의 계시된 뜻 가운데서 우리에게 해주신 약속들에 의해서 알 수 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 15).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뜻, 그분의 목적과 계명들, 그리고 약속들은 성경 속에 계시되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된 뜻을 따라서 무엇을 구하면 그분께서 우리를 들어주시며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요일 5:14,15의 의미는, 여러분이 성경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분도 확실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면서 기도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서, 고후 12:7-10에 기록된 바울의 기도를 보라.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며 기도하는 것은 보다 쉽게 설명하자면 "주님, 제가 주님께 이러이러한 것을 해주십사 하고 간구드립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어떻게 행하시든지 다 좋사오니, 이는 주님께서 무한히 지혜로우시며 선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기도함을 뜻한다. 고후 12:7-10에 있는 바울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가운데 아뢴 기도였고,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마 26:38,39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가운데 아뢴 기도였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때때로 우리는 기도하려는 내용과 관련된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알 수 있을 만한 말씀을 발견할 수 없는 경우를 당한다.

그런 경우에는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셨던 것처럼 기도해야만 한다.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서서"(마 26:39). 이것이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바울이 기도한 방법이며, 또한 삼하 12:15-23에서 다윗이 기도한 방법이다. 다윗 자신의 아이를 치유해 주시를 간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될 만한 어떤 특별한 약속을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이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 못하는 가운데 기도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시는 가운데 기도했다. 그리도, 바울, 그리고 다윗은 어떤 계시된 특정한 약속의 말씀이 아닌, 자신들의 천부이신 하나님께서 가지신 성품 중 하나인 우리가 신뢰할 만한 사랑과 자비에 근거해서 기도했다.

신약과 구약 속에는 계시된 하나님이 뜻이 담겨져 있다. 우리는 반드시 성경을 묵상하고 연구해서 하나님의 뜻을 더욱 잘 알아야 하고, 그로 인해서 보다 효과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성령님의 깨우쳐주심과 이해주심의 의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롬 8:26,27에서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가 기도할 때 도우신다는 것과 우리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하신 다는 사실을 읽게 된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시며 우리 편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시고자 우리를 사용하신다. 우리 속에 거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통해 기도하시며 우리 편에서 중보의 간구를 하실 때에, 우리는 기도가 응답되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중보기도는 결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 기도는 항상 하나님의 뜻과 일치한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요 14:17)이시다. 그분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며(요 14:26).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요 16:13).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에,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 편에서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도록 인도하신다. 이것이 성령님의 중보(仲保)사역이다.

우리는 오직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중보사역에 의해서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느끼시는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무엇을 의도하시는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항상 마음과 뜻이 일치하는 하나님의 영을 모시고 있다(고전 2:11-16).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마음, 곧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 주시며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해 주시므로 우리가 기도시에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거주하시는 성령님이 없이는 성경 속에서 특정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많은 문제들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깨우쳐 주시며 지도하고 이끄시는 성령님을 모셨기에, 즉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했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어질 것이라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창골산봉서방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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