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마6:13,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

하나님아들 2014. 2. 5. 16:19

6:13,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은 본문 가운데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라는 표현에 집중하여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의 한 대목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수도 없이 해왔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 기도의 정확한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 채 기도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이 기도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기에서 시험이라는 말은 물론 test가 아니라 temptation(유혹)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유혹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시험에 들다또는 유혹에 들다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여기에서 들다라는 말의 원어는 안으로라는 말과 데리고 들어가다라는 두 말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시험에 들다는 말의 의미는 시험 안으로 빠져 들어가다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밀림 속을 헤매다가 늪을 만났는데, 그만 실수로 발을 헛딛는 바람에 그 늪 속으로 완전히 빠져 들어가서 허우적거리며 나오지 못하는 위험한 상태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라는 기도는 단지 시험 자체를 만나지 말게 해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험을 만나지 않을 수도 없지만, 시험을 만나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만일 시험을 받는 것 자체가 죄라면 우리 예수님도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셨으니까 죄를 지은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는 시험을 받을 때 그 시험 안으로 완전히 빠져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는 상태가 되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유혹에 빠져 죄를 짓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시험에 빠져서 죄를 짓지는 않으셨습니다.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유혹)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마찬가지로 창세기 39장을 보시면, 요셉이 보디발 장군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39: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39: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이렇게 요셉은 날마다 유혹을 받았지만 그 유혹에 빠져들어 죄를 짓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다음은 사람은 어떻게 시험에 빠져들게 되는가?”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유혹으로서의 시험이 마귀로부터 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어제 말씀에서 살펴본 대로 모든 유혹은 근본적으로 마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시험(유혹)에 빠지는 것은 단지 마귀가 유혹을 하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유혹에 빠지는 사람 스스로에게도 분명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유혹의 책임을 단지 마귀에게만 돌릴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야고보서 114절과 15절의 말씀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에 따르면, 사람이 시험(유혹)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욕심이 잉태해서 죄를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시험에 빠져들어 죄를 짓게 되는 원인을 살펴볼 때, 두 가지 차원을 고려해야 합니다.

 

먼저, 마귀가 다가 와서 우리를 유혹하므로 그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게 되는 경우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 안에서 죄악 된 욕심이 잉태되어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어 죄를 짓게 되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 둘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기보다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마귀가 사람에게 다가가서 유혹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사람이 유혹에 빠져들어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마귀가 유혹을 한다하여도 사람의 의지가 그 유혹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죄를 짓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사람을 유혹할 때, 무엇보다 사람의 욕심을 자극하고 부추김으로써 결국 사람 스스로 죄를 짓도록 만드는 것입니다.(이때 유혹의 주체는 마귀이지만 죄를 짓는 주체는 분명 사람 자신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게 되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간교한 마귀는 하와에게 다가와서 치밀하게 준비된 대화를 통해서 하와로 하여금 선악과에 관심을 갖게 만들고 선악과를 따먹도록 욕망을 자극합니다.

 

(3:5)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그러자 선악과에 무관심했던 하와가 선악과를 바라보며 자신 안에 잉태된 욕심에 이끌리어 결국 스스로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한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반면에 평소 사람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 안에 잉태된 욕심을 제어하지 않으면 그 욕심을 틈타서 마귀가 개입하여 사람을 유혹함으로 죄를 짓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평소에 사람 스스로가 마귀가 역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놓았기 때문에 마귀의 시험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경우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가룟 유다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입니다. 이 사람들은 평소 물질에 대한 탐욕이 많았던 사람들입니다. 결국 마귀가 그 탐욕을 틈타고 역사하자 그들은 예수님을 배반하게 되고 성령을 속이므로 멸망의 길을 자초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5: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그러므로 외부에서 마귀의 유혹이 있든지 없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내면 곧 마음에서 죄를 유발하는 욕심을 잘 다스리고 제어하는 일입니다.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그리고 이 마음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씀 묵상과 기도야말로 우리의 내면을 깊이 성찰하고 마음속에 잉태된 불순한 욕망을 직시하고 제어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평소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해 우리 마음 속 욕심을 잘 다스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에 잘 새기셔서 마귀의 시험을 만나도 그 시험에 빠져들지 않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JUAE ABBA
글쓴이 : 주애 아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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