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세상속에서 영향력 있는 자가 되라

하나님아들 2014. 1. 11. 13:14

                       세상에서 영향력있는 자가 되라

                                                                                   성경본문:단2:46-49절

우리는 세상속에서 영향력있는 자로 이미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받은 자이며,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만물의 영장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는 명령을 받은 거룩한 존재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신이 영원토록 함께 하는 자들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라고 이미 약속을 받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속에서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이다”(벧전2:9)라고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확실한 약속의 메시지와 우리속에 내주하고 계신 성령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속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며, 큰 영향력을 주지 못하는 별볼일 없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면 정말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큰 그림을 그리세요. 큰 꿈을 꾸는 꿈쟁이가 되세요, 꿈대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속에서 자기 분야에서 꼬리가 되지 말고 머리가 되어야 합니다.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아니라 꼭 필요한 존재, 영향력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대현동을 장악해야 합니다. 대구 땅을 우리 손안에서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온 세계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탁월한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한 인물 가운데 세상속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인물로 두 사람을 선택하라고 하면 요셉과 다니엘입니다. 이 두 사람은 이스라엘 나라에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 아니라 애굽에서, 바벨론 나라에서 큰 영향력을 준 인물입니다. 요셉이나 다니엘은 시대가 다르고, 나라가 다르지만 공통점은 노예의 신분으로, 포로신분으로 하찮은 신분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세상을 바꾸며, 세상을 이끌어가는 영향력있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그 당시에 큰 영향을 주는 인물은 요셉입니다. 요셉은 많은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그 당시에 초강국이었던 애굽의 2인자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사서 노예로 팔려가 보디발이라는 이집트의 장군의 집에 종이 되기도 했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붙잡고 애굽의 총리가 되는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요셉은 애굽이라는 제국에서 뛰어난 지혜로 기근의 위기속에 있는 애굽 전체를 살릴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모와 형제들, 가족들을 모두 살리게 되는 큰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또한 다니엘은 바벨론 나라에 포로로 잡혀온 노예이지만 느부갓네살 왕이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바벨론 나라 전체를 이끌어가는 탁월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4대의 황제를 걸쳐 총리가 되었고, 그의 영향력은 황제 이상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바벨론과 바사제국을 실제적으로 이끌며, 영향력을 준 사람은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탁월한 영성과 뛰어난 실력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총리였고, 그의 지혜 앞에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말 한마디는 전설이 되었고, 그의 결정은 곧 법이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속에서 영향력있는 자가 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그 해답을 다니엘을 통하여 얻고자 합니다. 다니엘은 우리에게 세상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세상을 바꾸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멘토입니다. 다니엘은 비록 바벨론 제국이 자신의 나라를 멸망시키고, 자신의 부모와 백성들을 칼날로 죽인 사람들이지만 그런 사사로운 감정이나 상황에 얽매이는 인생을 살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을 우상의 도시라고 비난하거나 도피주의나 비관주의로 살지도 아니하였습니다. 또한 바벨론 나라를 세상에서 멸망시키는 독립운동이나 결사대를 조직하여 암살하는 역할을 감당하지도 아니하고 예레미야 선지자의 메시지에 따라 바벨론의 역사와 문화속에 녹아 들어가 그 나라를 전체를 먹어 버리는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질문; 우리가 세상속에서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권세와 능력을 힘입어 탁월한 영성(거룩함)을 갖추어야 합니다.

바벨론 제국에서 다니엘의 인생에는 푸른 신호등이 커져 있었습니다. 이미 왕궁에서 자신의 성공은 보장 되어 있습니다. 비록 조국은 망하였지만 자신은 바벨론의 왕실에 있게 되었고, 자기 백성은 고통과 슬픔가운데 있어도 자신은 엘리트 그룹에 속하여 왕을 모시는 권력핵심으로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이제 3년의 연수과정만 거치면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을 설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러한 풍요와 안일한 삶 속에서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해내고 있습니다. 8절을 보면,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결심하고”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왕국에서 어떤 결심을 하였습니까? 이 결심은 자신의 성격이나 취향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체질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다니엘이 왕의 진미와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는 것을 결단코 허용할 수 없는 결심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였고 영적인 문제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제사의식이나 우상에게 드린 제물을 먹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 그 음식이 자신을 왜 더럽히는지 본문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앞뒤 문맥을 통하여 생각해 볼 때 바벨론 신에게 제물로 받쳐진 우상제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도저히 우상제물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그 음식이 자신의 영혼과 신앙과 생활을 오염시키고, 결국 자신을 타락시키는 것임을 인식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영적인 분별력을 가진 뛰어난 영적인 존재였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목숨 걸고 지켰던 것은 이들의 신앙이었습니다. 성공하거나 돈을 벌거나 명예와 권력을 얻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목숨 걸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지고자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믿음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결심하였습니다. 이것은 목숨을 건 행동이며,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호화로운 왕궁생활, 출세와 성공의 길, 자신의 포부를 펼칠 수 있는 기회, 그 모든 것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잡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9절의 말씀처럼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이들은 채소를 먹고서도 더 건강해졌으며 자신의 믿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남들보다 10배나 뛰어난 지혜와 재주도 주시고 특별한 능력까지 주셨습니다. 그 이후로 다니엘은 나라의 정권이 바뀌고 왕이 바뀌어도 60년 이상 왕궁에 남아 큰 영향력을 주는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속에서 시대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풍조를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결단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틴 루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행복해 보이려고 몸부림치지 말고, 거룩해지려고 몸부림쳐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행복해지는 것보다 거룩해 지려고 몸부림쳐야 합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 성도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살전4:3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우리는 이 세상에서 행복을 추구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거룩함이 하나님의 뜻이며, 거룩함은 우리가 세상속에서 영향력을 미쳐야 할 중대한 사명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세상의 부패를 비난하고 세상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니엘처럼 거룩하기 위한 소망이 필요합니다. 먼저 내가 거룩해져야 합니다.

다니엘 학습법의 저자 김동환씨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학부형들은 더 이상 믿음의 자녀들에게 쓰레기 같은 인본주의 성공 신드롬을 주입시키지 마십시오. 그것은 생명의 길이 아닌 죽음의 길입니다. 주일 예배에 빠지고 그 시간을 아껴서 공부한다고 한들 실제로 성적은 많이 오르지 않습니다. 만일 성적이 올라서 그가 서울대 의대를 간다해도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것은 결코 성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우리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들으면 세상속에서 성공하라, 출세하라, 높은 권력을 가지라는 말처럼 들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핵심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닮아져가는 모습, 거룩함이 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영향력입니다. 성공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려놓는 십자가의 길이 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며,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영향력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 합니까? 가정이나 교회에서가 아닙니다. 타락과 부패가 가득한 세상속에서 영향력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그 자리에서, 그 직장에서, 그 현장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속에서 큰 영향력을 주는 자가 되려고 하면 돈이나 세상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그런 것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한 탁월한 영성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권능이 함께 하시는 영성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함, 뛰어난 영성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우리는 세상 사람들보다 뛰어나고, 탁월한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로서 세상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고 탁월한 실력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슴은 뜨겁고, 머리는 냉철한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세상속에서 영향력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영성은 있는데 실력이 없으면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자기 분야에서 머리가 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타가 인정하는 탁월한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벨론 왕궁에서 살려고 결심하며, 몸부림치는 다니엘과 그의 세친구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복을 주시며, 뛰어난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까? 단1:17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에게는 특별히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아는 능력이 있게 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뛰어난 지혜를 주셨지만 그는 현실상황에서 열정적으로 100% 노력하였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나라에서 그저 평범한 인생으로, 소시민적 여유를 꿈꾸며 살지 않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 보려고 몸부림치며,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처지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새로움을 꿈꾸는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다니엘의 모습을 보시고 그에게 탁월함과 뛰어난 실력을 허락하셨습니다. 단1:17절에 보면 다니엘은 지식에 있어서 탁월했고, 세상의 학문과 재주에 있어서도 뛰어났습니다. 이것은 바벨론의 뛰어난 학문적 배경에 전혀 뒤지지 않는 탁월한 실력과 여러가지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인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친구들은 바벨론이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속에서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학문과 모든 자기 개발에 충실하였습니다. 단1:20절을 보면 “그들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그 나라의 박수와 술객보다 10배나 나았다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박수와 술객은 점쟁이 마술사가 아니라, 일종의 공부를 많이 한 뛰어난 현자였습니다. 즉 그들은 최고의 지성인이며 권력핵심 엘리트였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나라의 모든 실력자보다 뛰어났고, 결국 모든 경쟁자를 물리치고 왕에게 실력으로 인정받았고, 바벨론 제국의 총리로 발탁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보여주는 선교이며, 세상속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영향력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결코 약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강한 자이며, 뛰어난 지혜와 능력을 지닌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속에서 실패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자가 되어야 하며, 우리가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가 사는 사회, 직장, 세상을 변혁시킬 수가 있습니다. 점점 악해져만 가는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이 시대의 학문과 지식보다 더 탁월한 실력과 영성을 소유해야 합니다. 세상보다 뛰어나지 않고는 절대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속에서 평범하게 살도록, 그저 그렇게 죄인으로 살아가도록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선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탁월함과 실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내 이웃을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이 시대의 탁월한 변호사이며 목사로서 서울에서 밝은교회를 목회하시는 주명수 목사님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도는 두 날개를 가지고 세상에서 비상하는 존재인데 그 한쪽 날개는 영성이고, 다른 한쪽 날개는 지성 즉 실력과 탁월함이라”는 것입니다. 한쪽 날개로 날을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거룩함을 추구하는 영성이라는 날개와 실력이라는 탁월함의 날개를 모두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성도들 가운데 한쪽 날개로만 날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구별됨 없이 스펙만 쌓으려고 한다면 신앙을 더럽히고 말 것이고 결국에는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반면에 거룩함만을 추구하고 자신의 실력과 탁월함을 쌓지 못하면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가 되어 세상에서 뒤떨어진 인생으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거룩함이라는 영성의 날개와 지성이라는 실력과 탁월함이라는 날개를 가지고 세상속에서 영향력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우리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인격과 리더십을 갖추어야 합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어떤 감동을 줍니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줍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얼마나 크고 대단한지를 친히 꿈 해석을 통하여 보여주었습니다. 꿈해석을 통하여 느부갓네살은 역사의 주관자가 자신이 아니라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꿈해석을 들은 후에 느부갓네살 왕은 큰 감동을 받아 다니엘에게 엎드려 절을 합니다. 그리고 다니엘에게 많은 예물과 향품을 선물로 줍니다. 그 당시에 다니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온 노예이며, 황제의 신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황제가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다니엘에게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예물과 향품을 선물로 준다는 것은 그 시대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느부갓네살 왕은 왜 이렇게 다니엘에게 엎드려 절을 합니까? 다니엘의 지혜와 능력에 감명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인격과 겸손함에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인격과 겸손함을 잘 보여주는데 30절에 보면 “내게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심은 내 지혜가 모든 사람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 해석을 왕에게 알려서 왕이 마음으로 생각하던 것을 왕에게 알려 주려 하심이니이다” 절대로 다니엘은 자신의 이름이나 지혜를 높이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왕에게 고백하기를 “자신 스스로의 능력으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알게 해 주셨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28절에 보면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다니엘은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지 않고 이 모든 영광을 자신이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그 겸손함과 탁월한 인격 앞에 왕이 무릎을 꿇고 절을 한 것입니다.(47절)

우리가 세상속에서 큰 영향력을 주려고 하면 감동을 줄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감동을 주는 리더십은 큰 소리치며, 폭력과 억압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성시온교회(Holy Church of Zion)'라는 흑인교회에서는 고난주간의 성만찬을 행하기에 앞서 세족식을 베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었듯이 서로 발을 씻어 주며 예수의 겸손을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때에 세족식을 행하는 흑인 교회에 '올리브'라고 하는 백인 대법원장이 이곳을 혼자 방문했습니다. 세족식의 시간이 되자 그는 ‘마르다’라는 흑인 여성을 불러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정성을 다해서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 숨을 죽이고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백인인 대법원장' 이 흑인의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발을 다 씻어 준 올리브 대법원장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은 내 집에 노예로 있는 사람입니다. 한평생 우리 집 아이들의 발을 수백 번도 더 씻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우리 집 아이들의 발을 씻어 준 바로 이 사람의 발을 씻어 주어야 내 마음이 편안할 것 같아 이렇게 한 것뿐입니다" 올리브 대법원장은 이 일 때문에 대법원장직에서 파면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이제야말로 참으로 하나님께 찬양할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기뻐하며 감사했다고 합니다. 백인 우월주의가 지배하고 있던 사회였지만 올리브는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과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세계 2차대전 때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병력이 부족하고 또 졸지에 일어난 전쟁이기 때문에 각 지방의 젊은 청년들은 영장을 받은 후 큰 도시로 집결해서 기차를 타고 훈련소로 갔습니다. 당시 국민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장정들을 태운 기차는 주로 밤늦게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워싱톤에도 밤마다 유니온 기차 정거장에는 수백 명의 장정들이 몰려들었고 시민들이 나와서 그들의 편의를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그때 시민 가운데 밤마다, 밤늦게까지 다리를 절면서 뜨거운 코코아잔을 쟁반에 들고 젊은 장정들에게 봉사를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임시로 마련된 주방에서 코코아를 끓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장정 하나가 그 노인을 자세히 살펴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라 그 분은 바로 미국의 대통령이었습니다. "각하, 루즈벨트 대통령이 아니십니까?" 루즈벨트 대통령은 육체적으로 자유스러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육체의 불편을 무릅쓰고 밤마다 기차 정거장에 나와 기차로 떠나는 청년들에게 뜨거운 코코아를 들고 다니며 봉사했습니다. 대통령이 친히 기차 정거장에 나와서 따라주는 코코아를 마신 청년들은 크게 감동을 받았고, 감동주는 섬김이 전쟁에서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영향력은 가정이나 교회내에서가 아니라 세상속에서 힘을 발휘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큰 소리치며, 실력으로, 돈으로, 인맥으로 교회를 우지좌지 하려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입니다. 성도는 교회에서 영향력을 끼치거나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세상속에서 빛이 되며, 왕같은 제사장직의 사명을 감당하며, 삶의 현장에서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반면에 교회와서는 겸손하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고, 새 힘을 얻고, 지혜와 능력을 얻는 곳입니다. 우리가 정복할 곳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세상이 우리의 주된 사역지요, 피흘리기까지 싸워서 승리해야 할 가나안 땅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거룩한 영성으로, 뛰어난 지혜와 탁월함으로, 겸손한 인격과 리더십으로 세상에 영향력을 주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출처 : 광야의 소리
글쓴이 : samju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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