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나?

하나님아들 2014. 1. 11. 13:13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성경본문: 민11:18-23절

성경을 연구해 보면 믿음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는 많은 차이가 있으며, 두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 영적으로 거듭나지 않는 자들은 두 사이에서 갈등하지도 않고 그대로 세상의 방식이나 현실위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현실상황속에서 끊임없이 기도하며, 갈등합니다. 고민과 갈등속에서 믿음이 성장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현실의 벽에 무릎을 꿇고 주저 앉기도 합니다. 우리가 고민과 갈등의 상황속에서 어느 길을 택해야 합니까? 현실상황을 붙잡아야 합니까? 아니면 믿음을 붙잡아야 합니까? 저는 믿음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어느 화창한 봄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보는 어린 소녀가 있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창공은 신기하고 놀라운 광경이었고 여행으로 마음은 들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비행기가 공중에서 일종의 공기 진공상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비행기가 갑자기 10-20m씩 급작스럽게 하강하게 되고 기체가 안정을 잃게 되었습니다. 기내에 있던 손님들은 모두 놀라서 사색이 되어 십자가를 붙잡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두려움으로 회개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비행기가 심하게 요동할 때마다 맨 앞좌석에 앉아 있던 소녀는 무척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다른 승객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얼마 뒤 비행기가 다시 안정권 안으로 들어온 뒤 손님들은 소녀에게 다가가서 이상스럽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비행기가 진동하며 무서운 속도로 떨어질 때 무섭지 않더냐." "아뇨, 전혀 무섭지 않았어요." "우리는 모두 두려웠는데 너는 왜 무섭지 않았지." "그건요. 우리 아빠가 이 비행기를 조종하고 있거든요. 저는 우리 아빠의 조종하시는 능력을 믿거든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능한 능력을 가진 아빠가 조종사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비행기가 요동할 때에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창조주이십니다. 만유의 주이십니다. 그분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머리털 하나까지도 세신 바 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두려워하십니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염려하고 걱정하십니까? 하나님의 능력은 짧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합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울며 통곡하고 있습니까? 그들의 울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18절) 지금 누구 들으라고 하는 말입니까? 이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상황을 보고 한탄하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자존심을 건들며, 불신앙을 품어내는 악한 울음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곁에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항상 보해주시며, 지켜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모세가 그들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면서 주로 원망하고 울부짖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제가 볼 때에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육신의 문제들입니다. 우리가 주로 사람들과 싸우며, 경쟁하는 것이 영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주로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자신의 욕망,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경쟁이며, 싸움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왜 울며 통곡을 합니까? 그들의 궁극적인 문제를 무엇입니까?

1. 우리의 가치관, 내 중심을 하나님 앞에 철저히 내려놓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운 사건을 만날 때마다 본색이 들어납니다. 그 본색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남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속성입니다. 이런 원망과 불평이 무슨 영향속에서 베어있는 것입니까? 그들속에는 애굽의 문화와 죄악이 젖어 있기 때문에 원망이 수시로 흘러나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원망과 불평이 튀어나는 것은 그냥 튀어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이 애굽에 있기 때문에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원망합니까? 겉으로 볼때는 먹을 것이 없음으로 원망하지만 내면적으로 보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주목하며,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상황을 주목하며, 바라봄으로 원망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볼 때에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보이는 것이 모래 밖에 없는 넓은 광야에서 누가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인간적으로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말입니다. 어떤 면에 과학적이고 현실감각이 있는 언어처럼 보입니다. 또한 고기를 먹고 싶어 죽겠는데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안보며, 또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확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현실상황 앞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울며 통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만 그런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오늘날도 우리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문제로 얼마나 염려하고 걱정하는지 모릅니다. 인생의 문제에 있어서 먹고 마시는 문제가 70-80%를 차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먹는 문제, 입는 문제, 마시는 문제가 조금만 자신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도 안색이 변하며, 입술이 튀어나오며, 원망의 소리가 메아리칩니다. 이것은 아직도 우리의 신앙수준이 어린아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먹는 문제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정말로 수준 떨어지는 생각입니다. 차라리 솔직하게 “하나님이여 지금 우리가 고기를 먹고 싶으니 제발 우리에게 맛 있는 양식과 고기를 주세요 라고 기도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힘들고 어려울 때 믿음으로 기도하세요, 비로 먹은 것, 마시는 것, 입는 것을 구할 때에서 책망하지 아니하시고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려고 하면 쉬운데 우리의 이성과 경험, 내 가치관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유혹하며, 세상이 만만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믿음보다는 현실을 더 치중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현실을 따라가다가 수없이 실패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현실상황을 더 의지하고 붙잡으려고 합니다. 마음이 원이로되 우리의 육신이 약하여 또 넘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적으로 너무 괴리감이 있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지 못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날만 뿐 아니라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라”(18-20)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아멘, 할렐루야 그대로 받아들이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그런데 자꾸 믿음없는 소리만 합니다. 주여, 이 백성이 보행자가 남자만 60만명인데 한 달동안 고기를 어떻게 먹인다 말인가? 양떼, 소떼를 잡은들 족하리이까? 바다의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까? 참으로 이상하게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적으면 잔소리가 많습니다. 자꾸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합니까? 불신앙적인 질문을 합니다.

그 상황을 믿음으로 보지 못하고 내 생각, 내 수준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원망하과 불평이 나옵니다. 현실적으로 계산해 볼 때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 상황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충만하면 그 현실의 벽을 뛰어넘을 수가 있습니다. 내 생각의 벽을 뛰어넘을 수가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주님, 말씀대로 하옵소서. 주의 종은 믿나이다” 별로 말이 없습니다. 그대로 믿고 확신합니다. 내 생각이나 경험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잡을 때 불가능이 가능해지며, 홍해바다가 갈라지며, 여리고성이 무너지며, 골리앗이 한방에 끝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2. 하나님의 손이 짧아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의 손이 짧아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200만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30일동안 고기를 먹게 하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모세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기를 주시되 물려서 싫증이 날 정도로 일개월 간이나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21-22절에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개월 간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인간적인 계산을 들어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행하실 만한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서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데 왜 이행하시지도 못할 약속을 하시느냐는 말입니다. 이 얼마나 믿음이 없고, 어리석은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애굽에 열 번이나 재앙을 내리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날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시며,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한 달동안 그들에게 고기를 먹이시지 못하겠습니까?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해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순간적으로 인간적인 생각과 현실에 사로잡혀 하나님께 불신앙적인 표현을 하였습니다. “모세가 가로되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일개월 간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까” 이 말씀을 보면 매우 합리적이며, 계산적인 이성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간적인 눈으로만 보고 계산하고 있습니다. 그 백성 가운데 역사하시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보다는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어 이성과 경험을 더 의지하고 판단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모세로 하여금 불신앙적인 말을 하게 만들었고, 모세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떨어지지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한달동안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먹게 하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모세는 곧이 듣지 않았습니다. 보행자가 육십만명인데 어떻게 한달동안 고기로 백성들을 배불릴 수 있겠냐는 반문하였습니다. 거기다 한술 더떠서 양 떼와 소 떼와 바다의 모든 고기들을 모은즉 족하겠냐고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계산한 바를 이야기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너는 왜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느냐? 그의 믿음이 적은 것을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인간의 계산법을 역사하지 않습니다. 내 머리로 계산하면 절대 답이 안 나오는 상황들속에 하나님은 자신의 법칙을 사용하십니다. 믿음의 계산법에 의하면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고,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광야에서 육십만명을 먹이는 것이 하나님의 계산법입니다. 오늘도 이러한 믿음의 계산법을 따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풍성히 경험하는 은혜를 얻기를 바랍니다.

제 자신도 믿음으로 모든 것을 강력하게 추진하다가 교회를 건축하고 재정의 어려움을 당하고, 성도들의 부정적인 말을 듣다가 보니 나도 모르게 자꾸 현실적인 사람으로 바꾸어지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즉적적인 순종보다는 그것을 높고 많이 생각하고, 계산하는 이상한 습관이 내 몸이 생겨났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된다는 확신보다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현실적이며, 이성적으로 계산하려는 제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며,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현실상황에 얽매여 있을 때가 많습니다. 큰 위기와 급박한 상황이 다가올 때 하나님이 하실 것에 대하여 철저하게 신뢰하지 못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에만 눈이 고정되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에 낙망하며, 큰 실패감에 빠져들게 됩니다. 왜 이런 함정에 빠져들게 됩니까? 내 힘으로, 내 지혜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연역한 존재인지를 망각한 것입니다. 우리가 위급한 상황속에서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고 믿으면 아무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1930년 불황이 세계적으로 휩쓸 때 미국에도 극심한 불황을 겪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미국이 그렇게까지 불황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인데 사람들이 "불황이다. 불황이다"하고 "큰 일 났다. 큰 일 났다"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은행에서 돈을 찾아가게 되서 은행이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은행이 문을 닫으니, 기업체와 회사들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이 때 대통령으로 당선된 루즈벨트 대통령이 매일 저녁 라디오 방송 시간에 나와서 루즈벨트 정부는 이 불황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다는 신뢰감을 국민들에게 넣어주자 국민들이 다시 정부를 신뢰하여 돈을 은행에 예금하게 되어 은행이 일어나고 공장이 다시 돌아가고 회사가 번창하게 되자 불황은 극복되었습니다. 우리의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할 수 없다는 자세가 할 수 있다는 자세로 바뀌면 현실상황은 반드시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으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소망을 둔 긍정적인 믿음만 가지면 모든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내 앞에 있는 사건, 어려운 상황들을 반드시 극복하고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이성과 경험, 내 기준을 내려 놓으세요, 하나님의 능력을 내 이성과 경험으로 제한하려고 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고 그대로 믿고 순종하세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더 지혜롭게 능력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질 것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면 큰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손이 짧아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친히 그의 능력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기를 먹고 싶다고 원망하며, 불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무슨 말씀을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30일 동안 코에서 냄새가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풍성하게 고기를 먹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의 원망의 소리까지도 들으시고, 그들이 먹고 싶어하는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능히 그들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고기를 조금이라고 먹을 수 있었던 애굽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베풀어 주심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고 돌이키도록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하루 이틀이 아니라 한달 동안 그들에게 고기를 베풀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엉뚱한 말을 하고 있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2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신인동형동성론적 표현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인간의 신체(손)에 비유하여 설명하십니다. 여기서 “손”(하야드)은 힘을 상징하며, 그의 권세와 능력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호와의 손은 바로 애굽을 치심으로 출애굽을 가능하게 했던 손이며, 홍해바다를 가르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손이며,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라는 말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모세를 질책하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너는 과거에 보여주었던 하나님의 능력을 이제 네게 의심하느냐” 믿음이 약해진 모세를 꾸짖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말씀을 선포합니다. 너는 왜 나의 능력과 권능을 믿지 못하느냐? 그의 적은 믿음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모세를 책망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그 말씀하신 대로 30일 동안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놀라운 역사를 친히 일으킵니다. “바람이 여호와에게로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 곁 이편 저편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 내리게 한지라.”(31절) 진 사방으로 하룻길 되는 지면위에 지금의 거리로는 약 30-40킬로미터가 되며, 두 규빗은 1미터쯤 됩니다. 그것이 30일 동안 매일 한결같이 하나님이 풍성하게 내려 주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방법으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놀라운 역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30일 동안 코에서 냄새가 날 정도로 자연산 메추라기 고기를 마음껏 먹었습니다. 모세가 그 사실을 믿든지 못믿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친히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내 생각으로 제한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한이 없으시며, 그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는다면 그분만 의뢰하며, 내 인생을 맡기십시오. 그 분을 바라보며, 따라갈 때 담대함과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의 손이 짧아 졌느냐? 하나님의 손은 어떤 손인가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건져내시고 홍해를 가르시며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으로 만나를 내리시며 고기를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시고 계시며 일용할 양식을 주시며 먹이고 입히시는 분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안에 인생의 해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짧아지지 않는 것을 믿습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확신합니까? 그렇다면 이제 담대하게 닥친 문제를 향하여 믿음으로 도전하세요. 주저앉아 있는 성도가 있다면 이 말씀을 붙잡고 다시 일어나세요. 하나님의 능력은 짧아지지 않았다고 외치면서 그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때 그 믿음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여 일하십니다. 그 분께서는 이루지 못한 일이 없는 큰 능력과 지혜를 소유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움직이며, 다스리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못하실 일이 있습니까? 그 분 앞에 불가능한 일이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과 드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니이다”(렘32:17) 우리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마세요. 지금도 여호와 하나님의 손은 짧지 아니하고 그의 능력은 한없이 크십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내 이성으로, 내 경험으로 내 이해할 수 없다고 제한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세요. 그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 : 광야의 소리
글쓴이 : samju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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