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도피성을 만들라
성경본문: 신19:1-7절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과 고비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과 염려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살기 좋아진 것만은 사실입니다. 과학 문명과 lT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경제적으로도 많은 발전을 거듭하여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세상이 이렇게 살기 좋아지는데 갈수록 많은 문제들이 생기고, 자살율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영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들이 심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 대한 불안감, 미래에 대한 염려와 걱정에 사로잡혀 있으며,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염려와 걱정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술과 마약, 그리고 쾌락과 도박에 빠져 있습니다. 심지어는 좌절감에 빠져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사람들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 마디로 말해서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치료해주는 도피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지치고 실망한 사람들이 피할 곳이 없습니다. 도피처가 없기 때문에 술이나 마약, 그리고 도박과 퇴폐적인 쾌락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불안과 두려움, 염려와 걱정은 사람을 절망시키고, 마침내는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그 죽음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끝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정말 도피처가 없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은 거룩한 도피성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네덜란드에 <코리텐 붐>이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살았던 집은 겉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집이었습니다만, 그 안에 들어가면 아무나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밀실이 있었습니다. 그 밀실을 가리켜서 <천사들의 밀실>이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그 밀실은 독일군에 쫓겨 다니는 유대인들을 숨겨주기 위해서 만든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독일군에게 체포되는 즉시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독가스실이 있는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따라서 그때 당시에 유대인들은 하루하루를 얼마나 초조하고 불안한 가운데 보냈겠습니까? 이러한 유대인들의 사정을 알고 있는 <코리텐 붐>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도저히 모른 척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들을 자신의 집에 있는 밀실에다가 숨겨주었고 그리고 먹을 것을 제공해주었습니다. 그 밀실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서 유일한 <피난처>였습니다. 만약 그 피난처가 없었다면 그 유대인들은 벌써 죽임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보면,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대인들 못지않게 <피난처>가 꼭 필요하였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살인을 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거주할 때에 너희는 거룩한 도피성을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피성은 가나안 족속들에게는 없는 특이한 제도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거룩한 성읍입니다. 도피성은 모두 6개로 레위인의 성읍 48개 중에서 택한 것입니다.(민35:6-8) 모세는 요단 동편의 세 성읍 베셀과 길르앗 라못과 바산 골란에 도피성읍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때에 요단강 서편의 세 성읍 갈릴리 게데스, 세겜, 헤브론에 도피성을 만들었습니다. 도피성은 이스라엘인들이 사는 지역의 중앙에 세웠습니다. 도피성은 어디서나 쉽게 찾아가 도피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며,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고 그리로 쉽게 피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높이 보이는 곳에 도피성을 세우게 하였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도피성으로 가는 표지판을 세웠고, 그 도로를 잘 닦게 함으로서(신19:3) 살인자가 도망갈 때에 넘어지지 않고 쉽게 피할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이 도피성은 부지중에 살인한 죄인들이 도피할 수 있는 곳으로 복수자의 손에 붙들려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도피성 제도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주어진 거룩한 것이며, 다른 계명들과 같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며, 또한 이 명령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함께 어울어져 있는 성읍입니다. “너를 위하여 구별하라”(7절)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도피성 제도는 우발적 살인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도 혜택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나 이방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제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도피성을 만든 동기와 정신이 무엇입니까?
오늘날 같으면 그처럼 '과실치사'의 경우에도 정당하게 재판을 받고 개인적인 복수는 당하지 않도록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옛날 사회에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즉 이 도피성 제도는 과실치사를 저지른 사람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기 위한 것으로서 당시 주변 이방 민족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제도였습니다. 즉 다른 나라의 것을 모방한 것도 아니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해서 시작한 것도 아니었고, 모세나 여호수아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한 줄을 아시고 마련해 주신 것이 바로 '도피성 제도'입니다. 구약의 도피성제도는 부지중에 살인한자 즉 실수로 살인한 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였습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개인적인 보복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지만 수사관 제도가 확립되지 못한 상황의 특수성 때문에 피살자의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는 살인자의 대한 피의 보복을 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가 주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복자는 감정에 치우쳐 원한 없이 살인하게 된 자에게도 복수를 행할 위험이 있었는데 도피성은 이같은 위험에서 살인자를 구해주기 위한 제도입니다. 이것은 율법의 한 축인 사랑과 긍휼의 정신을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이 제정하신 도피성은 부지중에 살인한 자의 생명만 보호할 뿐이며 고의적인 범죄자는 비록 그곳에 피했다 하더라도 공의의 심판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율법의 다른 한 축인 사랑과 자비의 정신을 잘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도피성제도를 만드신 정신과 목적이 무엇입니까? 첫째, 도피성은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생명 그 자체가 존엄하며, 함부로 죽이거나 상해를 입히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도피성 제도를 통해 생명의 귀중함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방 종교에서는 자식을 우상에게 제물로 바치는 일들도 허다했습니다. 사람의 생명 해하기를 짐승에게 하듯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도피성제도를 통하여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귀한지를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실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해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명이 함부로 손상되는 것을 절대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내 자신의 생명도 소중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이웃들의 생명 하나 하나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둘째, 도피성은 이웃관계(사랑)를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상처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일어나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복수심, 복수 혈전을 근절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즉 도피성제도는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이웃간에 무죄한 피흘림이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셋째, 도피성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은혜를 보여주기 위함 제도입니다. 부지중에 살인 한 자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을 베풀며, 그에게 재기의 은혜를 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영적 도피성을 허락해 주시고 한번의 기회를 더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오직 부지중에 살인한 자들을 위해 허락하신 기회입니다.
넷째, 도피성 제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와 구원을 예표합니다. 그 도피성에 피신한 살인자는 최종판결에서 사면 판결이 나오거나 대제사장이 죽으면 면죄를 받고 본래의 자기 성읍에 돌아갈 수 있게 했습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으면 면죄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히5:5절) 도피성제도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이 모든 죄인들의 죄를 면케하고 생명을 얻게 했음을 기억나게 합니다. 도피성은 가까운 곳에, 길이 잘 정비되어 있는 곳에, 또한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간판을 세워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세우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된다는 단순한 구원의 복음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도피성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해 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기만 하면 구원함을 얻고, 보호하심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행16:31절에 보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족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고, 롬8:1-2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리스도는 모든 시대에, 모든 인생들에게 영원한 도피성으로 존재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죄인이라 해도 도피성이 되신 그리스도에게 달려와 그의 품에 안긴다면 보호를 받고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도피성을 들어갈 수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만들어 놓으신 도피성에 누가 들어갈 수 있습니까? 첫째, 도피성은 가나안 땅에 있는 자들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도피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업 내에 동편에 셋, 서편에 셋이 고루 분포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먼 곳에 있는 사람이라도 한 나절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도피성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도피성에는 이스라엘 사람만이 아니라 타국인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오면 누구나 아무런 구별 없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신분과 종족과 그 어떤 차별도 없이 구원을 받습니다. 이는 복음의 편재성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믿을 수 있도록 복음이 편만하게 전파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또 성경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읽혀지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도피성 제도를 통하여 위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하시는 복음의 하나님이시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은 오늘날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믿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까이, 즉 마음에 있고 입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롬10:8-13)
둘째, 도피성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간절하게 필요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부지중에 살인죄를 범한 자는 지금 살고 싶지만 자신의 힘으로, 노력으로 도저히 살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도피성으로 가면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 앞에 '영원한 도피성'은 이미 세워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최고의 은혜, 무조건적인 선물, 가장 요긴한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길이 저와 여러분 앞에 활짝 열려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로 피해 들어가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 '죄 사함과 구원'이라는 이 놀라운 은혜와 엄청난 축복은 그냥 '무작위'로, '복불복'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도피성' 되신 예수님을 찾아가서 그 분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그 언약 안에 거하는 자에게만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짐이 괴로울 때, 죽음의 고통이 나를 짓누를 때일수록 “도피성”이 되어 주시는 주님께로 즉시 달려가 그 넓은 품에 더욱 깊이 안겨야 합니다.
셋째, 부지중에 살인을 범한 자들이 생명의 보존함을 위하여 들어갈 수 있습니다. 도피성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자는 살인자 모두가 아닙니다. 고의로 살인하지 않은 자만이 보호를 받은 것입니다. 살인자는 도피성어귀에서 그 성의 장로들에게 살인 사건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을 해야 했고, 제사장들은 그 설명을 들은 후에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될 때에만 그 살인자를 받아들여 그 성에 거주하게 했습니다. 만일 고의성이 있다고 여겨지면 보복 자에게 넘겨주어 응당 보응을 받게 했습니다.(신19:11,12) ‘부지중에’ 라는 말은 사전에 그를 미워하거나 또는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살인이 일어난 경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나무를 자를 때에 도끼날이 자루에서 빠져 근처에 있는 사람을 죽였을 경우와 같은 때에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고의가 아닌 우연한 사고에 대하여 보호를 해 준다는 것은 인간의 불완전성과 실수에 대하여 누구나 분명히 인식하고 용서해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3. 오늘날 도피성 제도가 주는 의미와 교훈을 무엇입니까?
일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분명이 죄를 저질렀지만, 그 죄의 완전 사면은 그 죄와는 직접적으로 아무 상관없는 대제사장의 죽음과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그 때는 더 이상 복수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 도피성을 나가면 보호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대제사장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예표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만일 신자가 그리스도를 떠난다면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안전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도피성이 되시길 때문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로 인하여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된 것입니다. 도피성은 바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는 것을 한폭의 그림처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대제사장이 죽으면 도피성에 피해 있던 살인자가 자유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살인죄를 저지른 본인은 자신의 '죄 사함'에 대하여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며 또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순전히 제3자인 대제사장에 의하여 그처럼 완전한 사면을 얻고 자기 고향에 돌아가서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의 '죄 사함'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때문에 주어졌습니다. 정작 죄인인 우리 쪽에서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무슨 '고행'을 통하여 이제 죄 용서 받을 만큼 충분한 '죄값'을 스스로 치렀기 때문에 용서받게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선행'의 공로들을 많이 쌓아서 이제 '나의 죄를 사해 주십시오.'라고 언감생신 하나님께 당당하게 요구할 만한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죄 사함을 얻게 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100퍼센트 순전히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공로 덕분일 뿐입니다. 즉 저와 여러분이 받아 누리게 된 '죄 사함'은 그야말로 '공짜로 받게 된 정말 고마운 선물'인 것입니다.
'도피성 제도' 는 만약 그 살인자가 대제사장이 죽기 이전에 마음대로 도피성을 떠나면 그런 '사면의 혜택'을 누릴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즉 그를 쫓던 '보수자'가 그 살인자를 죽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토록 고맙고도 완벽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저버리고 그 구원의 언약 밖으로 나가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다윗은 날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하나님께 피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살인자의 도피성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나를 위해 십자가의 도피성을 주셨습니다. 이곳만이 진정한 피난처요, 안식처이며, 위로받으며, 용서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과 공의의 상징인 도피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을 고백하며 오늘도 그분 속에 거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세상이 줄 수 없는 “의와 평강과 희락” 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구약의 도피성 제도를 통해 살펴 볼때 부지중에 살인한 자들이 고향에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거룩한 기름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이 죽어야지만 돌아갈 수 있습니다. 구약의 도피성제도에서도 속전을 내고서도 고향에 갈수 없고 오직 대제사장의 죽어야만 고향에 갈수 있습니다. 민35:28절에 보면 “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머물러야 할 것임이라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의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합법적으로 도피성을 떠나 자기의 소유의 땅을 돌아갈 수 있는 것은 "대제사장의 죽은 후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이 도피성으로 피해 왔을 때 그를 맞아 들여 주었던 현직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그 도피자가 이제 도피성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대제사장의 죽음'이 마치 그 '살인자의 죄를 없애 주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대제사장이라고 해도 역시 똑같은 죄인에 불과한 한 사람의 죽음이 그런 죄 사함의 '효력'을 발휘할 리는 만무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성취하실 '대속 사역'의 예표입니다. 즉 참된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을 대신 희생제물로 바쳐서 죄인들의 모든 죄를 '대신 갚아 주심'으로써 우리가 '완전하고도 영구적인 죄 사함'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바로 이 '도피성의 대제사장'이 뚜렷이 천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도피성이신 주님께로 피해야만 살 수 있는 죄인들입니다. 주님께 피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탄과 사망의 권세 아래 매이게 되고, 마침내 영원한 지옥 형벌에 떨어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세상에서 끊임없는 환난과 시험을 만납니다. 때로는 속수무책일 때도 있습니다. 그 어디 가서도 위로를 받을 수 없고, 참된 평안과 안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이럴 때 불신자들은 술이나, 마약, 쾌락에 빠져 보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그들에게는 도피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경우에 도피성이신 주님께로 피하면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인간의 죄의 짐과 사망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진정한 '도피성'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 에만 있을 뿐입니다. 인생이 고통과 시험과 두려움을 당할 때에 오직 '여호와께 피하는' 자에게만 진정한 '도피성'의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거룩한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머물러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 시대에 도피성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들어오는 죄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죄를 사해주시고 새로운 생명으로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도피성인 교회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그 문이 열려 있어야만 합니다. 교회의 출입문이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가진 것은 다 뺏겼고 몸에는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마침 그 옆으로 제사장이 지나갔는데 신음소리를 듣고도 피하여 지나갔고, 레위인이 지나갔으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후에 사마리아인이 지나가다가 신음소리를 듣고 달려가 그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쉬고 치료받게 모든 경비를 부담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인을 칭찬하셨습니다. 이 시대 이런 인물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 시대에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합니다. 육적으로도 어려운 이웃을 돌아볼 뿐만 아니라 영혼이 병들어 신음하는 이웃들을 돌봐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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