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영감이 넘치는 축제 예배

하나님아들 2014. 1. 11. 13:12

 

                         영감 넘치는 축제 예배

                                                                                성경본문: 대하5:7-14절

부산에 가면 ‘가야밀면집’이란 곳이 있습니다. 그 얼마나 유명한지 차를 타고 와서 1시간을 기다렸다 먹고 갈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시설이 좋거나, 주차장이 넓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허름한 집에다 주차장은 좁고 교통도 불편해 한번 찾아가려면 애를 먹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야밀면집은 사시사철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그 이유는 맛이 있기 때문이었는데 언제나 손님들로 가득찬 가야 밀면집을 보면서 ‘맛만 있으면 환경이 좋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찾아 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우리만의 맛이 있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예배의 맛, 풍성한 교회만의 맛이 있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기도하고 연구하고 만들어가야 합니다.

축구선수나 골프 선수가 갑자기 실력이 뚝 뛰어지고 스럼프에 빠지게 되면 다시 처음으로, 기본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침체되고, 기쁨이 사라지고 있다고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기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로의 회복, 예배에로의 회복, 거룩함에로의 회복입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있는가? 하나님이 내속에서 역사하고 있는가? 가장 기본적인 부분부터 점검하고 반성해야 그 해답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한 예배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내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되는 시간이 거룩한 예배입니다. 세상 종교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종교의식, 예배를 드립니까? 그들은 자신의 소원하는 복을 얻기 위하여, 구원을 받기 위하여, 평강과 안식을 얻기 위하여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의 예배의 본질은 그들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미 베풀어주신 구원받은 자만이 예배를 드릴 수 있고, 이미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받은 자, 평강을 얻는 자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을 드리는 것이 예배의 본질입니다. 무엇을 얻기 위하여, 자아실현을 위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을 주께 돌려드리는 의미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예배는 자신을 도와달라고 애걸하거나 열망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약속, 베풀어주신 은혜와 복에 대한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 그 자체가 찬양과 감사의 축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헌금을 드리는 것도 더 많은 물질의 복을 받기 위하여 투자하듯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물질에 대한 감사로 십일조를 드리며,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차원에서 예물을 구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축제예배입니다.

신학교에서 예배학을 가르치고 있는 조기연 교수님도 예배의 축제성을 강조했습니다. “기독교 예배의 출발은 안식 후 첫날에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제자들이 모여서 떡을 떼었던 데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들의 예배는 부활의 기쁨을 나누는 장이요,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맛보는 자리였다. 이러한 기쁨과 감격과 대망의 축제가 바로 오늘 교회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본래 부활의 축제였습니다. 초대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는 의식으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축제적인 예배의 성격이 오랜 역사를 통해서 ‘의식’이 되고 ‘예전’화 되면서 원래의 역동적인 성격이 희석되거나 퇴색되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는 축제의 예배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축제예배의 본질과 그 방법을 오늘 솔로몬의 예배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어떻게 구상하며, 그 형태를 만들어내었지를 연구하면서 오늘날 우리의 예배의 더욱 영감이 넘치는 축제의 예배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축제의 예배가 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축제의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고, 그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는 예배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후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어디로 모십니까? 7절에 보면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본전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 예루살렘 성전에 모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그 자치가 신적인 것이거나 어떤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거룩한 기구이며, 그 안에는 하나님의 계명이 기록된 돌판이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성전이 성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언약궤가 성전에 안치되어 있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성전에 언약궤가 없다면 그것이 아무리 화려해도 또 거기에 사람들의 정성과 열정이 아무리 많이 부어졌다 해도 그곳은 거룩한 성전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언약궤는 성전 건축의 완성이자 성전의 중심적 역할을 합니다. 예배에 있어서 중심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독교의 예배는 어떤 의식이나 행위를 중요시 여기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모든 예배 순서가 진행되어야 하며, 예배의 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기독교의 예배는 무엇보다도 말씀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배의 핵심이며, 믿음의 본질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여기서 신령과 진정은 성령님과 말씀이 중심이 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진정으로”라는 말은 진리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진리가 없는 예배는 참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배에서 말씀을 중요시하는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실 때 참된 예배가 됩니다. 말씀속에 성령이 역사하실 때 사막에 샘이 흘러 넘칩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광야에서 샘물이 솟아나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르는 경이로운 생명의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예배를 깊이 연구해 보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모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모리아 산의 제사는 가장 훌륭한 예배의 모델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그곳에 제단을 쌓고 이삭을 제물로 드립니다. 자기 아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자신의 이성과 경험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드린 것이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하여 자신의 최고의 가치를 다 드린 것입니다. 즉 예배는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최고의 것,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아들 이삭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 예배의 본질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모리아산에서 자신의 열정과 순종의 피를 드립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과 온전한 헌신을 드립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그의 제사를 받으시고 그에게 나타나셔서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인정하노라며 칭찬하셨을 뿐만 아니라 네가 복의 근원이 되어 열방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게 될 것이다.”라는 놀라운 축복을 선언하셨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라는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며, 큰 감동을 받게 됩니다. 이런 예배가 참된 예배이며, 영감이 넘치는 축제 예배입니다.

이어령 박사의 딸 이민아 목사는 그녀의 글에 의하면 30대 초에 예수님을 영접했으나 10년이 넘도록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의 신앙생활 즉 나름대로 세련되고 고급 신앙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둘째 아들이 자폐아였는데 중학교에 들어가야 할 때 캘리포니아에서 그를 받아주는 학교가 없어서 하와이로 갔습니다. 하와이에서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으로 세 가지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첫째, 아파트 구하기, 둘째 아들의 학교 찾기, 셋째, 교회 정하기를 하나님께서 친히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동안 이민아씨는 큰 교회에서 주일 오전예배만 참석하고 교제도 안하고 소그룹 모임도 회피하면서 편한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도 체험하지 못한 미지근한 신앙이었습니다. 그런데 하와이에서 아파트를 구해준 중개업자인 장로님의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에 가보니 40여명쯤 되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에 등록하자 마자 목사님은 영어 잘하는 분을 하나님이 보내주셨다고 좋아하시면서 청년부 성경공부 시간에 통역을 맡아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갑자기 설교의 통역을 맡았으니 통역을 하려면 목사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잘 들어야 했습니다. 또한 매주일 예배를 사모하며, 거룩하게 준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에 그의 믿음이 살아 움직였고, 감동이 넘치며,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체험하는 거룩한 예배가 회복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축제 예배는 말씀을 긴밀한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말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영감이 넘치는 축제 예배가 되려고 하면 반드시 말씀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 말씀이 우리의 심령과 골수를 찌르고,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역사가 체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게 임할 때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예배를 추구하는 거룩한 예배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축제의 예배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스스로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높이기 위하여 철저히 준비된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감이 넘치는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자신을 먼저 스스로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11절에 보면 “이 때에 제사장들이 그 반열대로 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정결하게 하고 성소에 있다가 나오매” 누구든지 자기 안에 있는 죄 문제의 해결이 선행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결단코 죄있는 인간과는 교제하지 않으십니다. 이사야서59: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통 가운데서 구원치 아니하시며, 그들의 부르짖음에 듣지 아니하십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 때문입니다. 죄악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를 내었고, 또한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웠서 이스라엘 듣지 않게 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롬3:23) 그렇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그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으며, 그와 교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안에 있는 죄를 씻어 성결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죄로 더러워진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담가서 빨아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의 피로 성결케 된 자만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며, 그 앞에 설 수 있게 됩니다.

둘째, 우리는 거룩한 마음과 헌신된 마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에서 중요한 것은 거룩한 마음입니다. 마음이 거룩하지 않으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의 헌신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시에 온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헌금을 준비하고 드려야 합니다. 또한 6일동안의 거룩한 삶과 몸과 물질과 재능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높이기 최선을 다하여 정성껏 예배를 준비해야 합니다. 13절에 보면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은 다윗 때부터 찬양대의 대표자로 뽑혀 그 직무를 감당했던 레위인입니다. 여기서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여호와를 찬송한다는 말은 많이 준비되고, 훈련되어 있는 찬양대원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 288명의 찬양대원과 120명의 오케스트라가 구성되어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일제히 한소리 훌륭한 하모니를 이루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408명의 찬양대원들이 딴소리가 나지 않고 일제히 소리를 발하였다는 것은 목소리와 악기들이 모두 일체가 되어 화음을 이루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일체가 되어 화음을 만들기 위하여, 그들은 철저히 연습하고 훈련하고 준비하였을 것입니다. 찬양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높이는 최고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인생과 삶의 주인공이시며,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찬양드리는 것입니다.

부산에 있는 풍성한 교회는 주일 예배를 이렇게 준비하며, 온 정성을 다하여 준비한다고 합니다. 교회에서는 토요일이면 예배 리허설 시간을 가집니다. 리허설은 사전에 기획된 큐시트(Cue-Sheet, 예배시나리오)를 통해 진행됩니다. 큐시트에 따라 모든 예배의 순서를 철저히 연습합니다. 최선을 다해 최고의 작품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예배국의 모든 팀원들이 모여 리허설을 하고 주일예배 1시간 전에 모여 예배를 위한 중보기도회를 가집니다. 이때는 목사님의 영감 있는 설교와 예배의 모든 진행가운데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넘치도록 집중적으로 기도합니다. 예배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찬양의 경우 한 주간 새벽기도를 2회 이상 빠지면 리더는 물론, 싱어, 드럼 등 어떤 분야에서도 찬양자로 세우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가 설 경우 영감 있는 예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앞에 선 리더의 경우에는 더 철저히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매주일의 예배 리허설 외에 행사가 있는 경우에는 리허설이 더 철저하며, 거룩한 예배를 준비하며, 기획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를 가볍게 여기지 마세요. 예배는 온 마음과 정성과 목숨을 다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한번 드리는 예배에 내 생명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나는 가수다”에 CCM 가수로 유명한 소향이 선다는 말을 듣고 저는 그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그 때에 소향이 1등을 못하였지만 그 노래의 가사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고 그 노래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는 자들은 이미 가수로 인정받은 탁월한 자들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곡을 선정하여 편곡한 후에 1달 동안 피나는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연습하는 과정을 보면 정말로 존경스럽습니다. 그 무대에 한번 서기 위하여, 음악을 사랑하는 대중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하여 그 곡을 수백번 부르고 다듬고 연습을 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나서 그 무대에 서서 부르는 모습을 보면 정말로 혼심을 다하여 부른다는 것을 가슴으로 느껴집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많은 회개를 하였습니다. 예배의 프로정신이 너무도 적다는 생각이 제 마음을 짓눌렸습니다. 우리는 모든 예배의 프로가 되어야 합니다. 프로정신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는 자나 기도하는 자나 찬양하는 자들과 모든 예배자들은 온 마음과 정성과 생명과 전 삶을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3. 축제예배는 예배드리는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가 가득해야 합니다.

슈바르츠는 영감 있는 예배는 예배의식이나 형식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며, 어떤 방식의 설교나 내용이 달린 것이 아니라 그 예배가 “참석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예배인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가?” 하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예배와 병든예배를 뚜렷하게 구분지을 수 있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합니다. 예배에서 가장 귀한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예배는 아무리 좋은 설교나 프로그램이나 영상이 뛰어난 연출효과를 지니더라도 예배에서 얻을 수 있는 독특한 영감과 기쁨을 얻지 못합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을 얻지 못합니다. 그런 예배는 감동이 없고, 흥분과 감격이 없습니다. 반면에 영적인 감동이 있는 예배속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성령의 생수가 강같이 흘러 넘칩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체험합니다. 그 예배를 참석한 성도들의 마음속에 기쁨과 감격이 넘치며, 엄청난 변화가 일어납니다. 엄청난 고백과 찬양이 흘러 넘칩니다. 세상에서 느낄 수 없는 영감, 평안과 안식을 누리며, 주여,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고 살고 싶습니다는 고백이 흘러나옵니다. 이 성전을 떠나기 싫어합니다. 이런 예배가 살아 있는 거룩한 예배이며,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가 가득찬 축제예배일 것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는 <개미>, <타나토노트> 등으로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입니다. 그는 <뇌>라는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엔돌핀이라는 이름의 뇌내 마약물질이 바로 그것이다. 즉 엔돌핀(endorphin)이란 몸 안에서 만들어지는 몰핀이라는 뜻이다. 우리로 하여금 쾌감을 느끼게 하고 고통을 견디게 하려고 우리 몸이 분비하는 물질이다. 우리가 웃을 때나 누군가를 사랑할 때, 바로 이 물질이 분비된다. 류머티즘 같은 병을 앓고 있을 때, 성적 매력이 넘치는 어떤 사람 옆에 있다 보면 아픔이 덜해지는 것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조깅을 할 때 한참 달리다보면 일종의 취기 같은 상태를 느끼게 된다. 근육의 고통을 상쇄하기 위해 우리 몸이 엔돌핀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되면 우리의 영혼과 몸에서 엔돌핀이 솟아날 것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감격, 엄청난 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예배에 누구의 영광이 가득하며, 누가 주시는 감동과 기쁨이 넘칩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전에 가득합니다. 14절에 보면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하나님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찼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 하나님께서 그 성전과 예배를 거룩하게 받아주셨다는 객관적인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그 성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가 있었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감격이 온 회중에게 흘러 넘쳤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역대기 기자는 하나님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였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둘째,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차였다는 것은 그 안에 성삼위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것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임재나 현현이 종종 구름으로 형상화되기도 합니다.(출16:10)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키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신이 임한 곳에는 번개와 뇌성으로 뒤덮이면서 영광의 구름이 온 산에 가득하였습니다. 거기에는 나팔 소리가 있었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에는 기쁨과 평강이 가득찼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임하면 그 모습이 영광스럽고, 거룩해집니다. 모든 사람이 그 앞에 두려움과 환희가 넘쳤습니다. 우리는 예배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찬 광경을 목격해야 합니다. 성삼위일체 하나님이 임재하신 것이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에 영감이 넘치는 축제예배가 일어나며,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뜨거운 열정과 사모함으로 이런 예배를 기대합시다. 또한 이런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먼저 자신을 정결하게 합시다. 하나님의 임재속에 들어갑시다. 세상속에서 6일동안 예배를 사모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추구하며, 온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출처 : 광야의 소리
글쓴이 : samju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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