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법
성경본문: 신12:28-32절
어느 날 선교사의 어린 아들은 앞마당에서 낡은 가구를 손보고 있는 아버지 곁에 서 놀다가 주위에 있는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가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주으며 놀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필립, 빨리 땅에 엎드려!' 어린 필립은 무슨 영문인지 모른채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다시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얘야, 아빠 보이지? 이쪽으로 기어와라. 천천히 조용조용 이쪽으로 와라. 어서!' 필립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기기 시작했습니다. 필립이 아버지의 곁으로 왔을때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네가 있던 나무 위에 커다란 독사가 있었단다. 자, 저 나무가 보이니?' 필립은 아버지의 품에 안겨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이야기 속에는 참으로 소중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도 아들이 '왜 그러세요, 아빠?'라든가 '무슨 일인데요? '라고 되물으며 그곳에 가만히 있었더라면 독사에게 물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유는 몰라도 아버지의 말씀이기에 아무 대꾸 없이 따랐던 그 즉각적인 순종으로 인해 그 아이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아담은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을 통하여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다스리고 지키면서 자신을 닮은 후대들을 낳아 번성하여 땅에 충만히 거하게 하는 삶을 살아가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과악의 나무에서 나는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아담은 네가 정녕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살지 못하고 육신의 연약함 가운데 두려움과 고통속에서 하루 하루 힘든 노동을 하면서 육신의 양식을 위해 그렇게 자신의 생명을 지키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아마 아담은 그러한 삶의 고난속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임을 깊이 체험하고 뼈져리게 배웠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세상)에서 불러내어 광야에서 왜 40년 동안 그들을 훈련시켰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동물과 같은 육신적인 존재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임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고난의 과정을 통하여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함이 가장 필요한 것임을 알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에게 생명이 되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임을 알기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불신속에 빠져 광야에서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멕시코에 사는 홍인종들은 "믿는다"는 말과 "순종한다"는 말을 한 단어로 쓰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믿음과 순종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믿으면 당연히 순종하게 되지 않습니까 ?"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노아를 보십시오. 노아는`홍수'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때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두말 없이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혀 전망도 보이지 않는 일을 당신에게 하라고 하시지는 않습니까? 그렇다 해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왜 하늘의 영광과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저주아래 있는 영혼들, 지옥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죄없으신 예수님이 친히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순종하여 그 예언의 말씀을 성취할 때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참된 양식을 하나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바로 생명의 양식이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 바로 영생을 얻는 길입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분명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다면 새 사람을 입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언제든지 자신의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자신의 생명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항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먹어야 살고, 그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지킬 때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얻으며, 만족함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육신의 연약함 가운데 넘어져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게 되면 영적인 배고픔과 갈증에 시달리게 되며, 큰 고통과 두려움이 뒤따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속사람이 영적인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거주할 때에 어떤 방식으로, 어떤 기준과 원칙으로 살아가야 합니까?
1. 너희는 가나안 땅에 거주할 때 여호와의 목전 앞에서 선과 의를 행하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거주할 때 이렇게 살아라는 기준과 원칙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너희는 이방 신들을 섬기지 말며, 가나안 문화와 풍습을 본받지 말며, 그들과 구별되게, 다르게 살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살고 있지만 정신이나 사고, 문화와 풍습, 신앙관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만약 너희가 가나안 신들이나 문화와 풍습에 적당하게 혼합하면 결국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속히 멸망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종이 되거나 이방 사람들에게 사로잡혀 비방과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거주할 때에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 원칙과 기준이 무엇입니까? 28절에 보면 “내가 네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너와 네 후손에게 영구히 복이 있으리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보면 여호와의 목전에서 선과 의를 행하게 됩니다. 선과 의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 결과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와 네 후손에게 영구히 복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거주할 때 하나님 앞에서 선과 의를 행해야 합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성화 삶을 위해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영적 투쟁을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석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우리는 비록 세상속에서 살고 있지만 세상의 풍습이나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을 입어야 합니다.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선과 의를 행할 때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탐욕과 욕심을 내려놓고 세상속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2. 너희는 이방 신들을 연구하여 그들의 신앙을 본받거나 혼합시키지 말라.
고대 사람들은 풍성한 수확, 전쟁의 승리, 번영과 평화, 생로병사의 문제 등은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인식했습니다. 전능하신 신에 의하여,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서 결정되고 성취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신이나 우상을 만들어 놓고 종교의식과 관련된 의무들을 충실하게 지킴으로 평화와 번영을 누린다고 믿었기 때문에, 수많은 신전을 세우고 다양한 종교 행위를 충실히 행하였습니다. 사람이 분별력을 상실하면, 창조주를 떠나 우상을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떠나면, 누구든지 정욕대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상숭배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극대화시켜 보여주는 표본이요, 실상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우상을 만들어 호소하거나 종교심을 이용하여 극복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된 것이며, 결국에는 허무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거주할 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너희는 이방신을 본받거나 이방신들을 탐구하여 그들의 신앙을 본받거나 혼합시켜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30절에 보면 “너는 스스로 삼가 네 앞에서 멸망한 그들의 자취를 밟아 올무에 걸리지 말라 또 그들의 신을 탐구하여 이르기를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섬겼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 여기서 “그들의 신을 탐구하여...”라는 말은 가나안 사람들이 각종 신들이아 우상을 섬기는 동기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연구해 본다는 것입니다. 이 당시에 가나안 족속들이 각종 신들을 섬기는 동기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기복주의와 자기 소원성취를 하기 위하여 각종 신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신들의 마음을 잘 달래주고 제사를 통하여 기쁘게 해 드림으로 신의 능력과 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욕망에서 신들이나 우상을 만들어 놓고 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희는 이방신을 섬기듯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슨 구원을 받기 위하여, 복을 얻기 위하여, 자기의 소원성취를 위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점점 신앙이 우상숭배의 영향을 받아 기복주의 신앙으로,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이상한 신앙으로 흘러갈 것을 우려하여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방신들을 탐구하거나 그들의 신앙의 동기와 목적을 따라 가지 말 것을 분명히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문화와 종교적 관습 뒤에 있는 우상숭배에 정신에 대해서 삼갈 것을 엄중하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멸망한 사람들의 자취를 따라가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멸망한 자들의 자취를 따라가면 따라가는 사람도 멸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멸망한 사람들입니다. 모세는 가나안의 우상숭배가 얼마나 악한지를 교훈하기 위해 인신제사를 예로 듭니다. 자녀를 불살라 제사 드리는 신을 ‘몰렉’이라 하는데 몰렉은 ‘왕’ 또는 ‘왕자’라는 뜻으로 인간을 희생 제물로 삼는 신입니다.(왕하23:10) 몰렉 신에게 제사를 드릴 때 보통 어린아이를 불태워 바치는 인신 제사가 행해졌는데, 인신 제사 관습은 지중해 지역에 두루 퍼졌으며 가나안 사람들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신앙이 타락했을 때 힌놈의 골짜기에서 유아들을 희생 제물로 드리는 악을 행했습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점, 궁합, 사주 등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멸망한 자들의 자취를 따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의 악한 풍습, 미신을 따르는 것은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헛된 우상이나 미신에 빠져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잃어버린다면 그보다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왜 주일날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를 드립니까? 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까? 나의 소원성취나 복을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어떤 좋은 것을 얻기 위함이나 구원함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은혜에 감격하여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며, 그 분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악한 세상 풍습이나 이방 신을 섬기는 태도와 자세를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마음과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명령과 규례를 지켜야만 합니다,
3. 너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법도와 규례대로 행하고, 그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
가나안 땅 입성을 앞두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가감하지 말고 지키라고 합니다. 왜 굳이 모세는 이런 말을 한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마귀(사탄)이 하나님의 말씀(명령)을 더하거나 빼거나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각종 유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합리화거나 적당히 살도록 희미하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키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지금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희석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다른 무엇인가를 섞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희석시킵니다. 이 사실을 잘 아신 예수님께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7-18)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32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과 법도와 규례를 지켜 행해야 합니다. 그들은 구별된 하나님의 성민으로서 거룩하게,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형편에 따라, 내 감정에 따라 가감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해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중국 북경에 가서 교인들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가정예배 처소였는데, 그곳에서는 예배를 드릴 때, 외부에서 온 사람은 절대로 설교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일어서서 말하면 설교요, 앉아서 말하면 좌담이 되어 외부에서 온 사람도 앉아서 말하면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좌담식으로 앉아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 말씀 더하라는 회중의 권유에 따라 두 시간이나 설교를 했답니다. 이야기가 끝나 경청하던 청년 하나가 벌떡 일어나 소리칩니다. “오늘의 교양, 전적으로 접수합니다” 공산당 교양할 때에 쓰는 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전부 접수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에 인간의 생각을 더하지 마십시오. 쓸데없는 이성적 비판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것이든지 주시는 대로 '아멘' 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기 보다는 현실에 맞게, 자기 수준에 맞게 가감하려고 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다고 포기하기도 합니다. 사람을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면 마음속에 염려, 근심이 가득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첫 사람 하와가 왜 뱀의 유혹에 넘어가게 됩니까? 뱀이 하와에게 찾아 와서 유혹을 하는데 창세기 3장 1절을 보니까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사탄이 뱀에게 들어가서 하와를 유혹한 것입니다. 그 때에 하와가 사단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뱀아 물러가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너는 도전하지 마라!” 외치고 사단을 쫓아냈더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창3장 2-3절을 보면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이 말은 하와가 하나님 말씀을 조금 바꿨어요. 물론 이 말씀을 직접 들은 사람은 아담이고 아담이 하와한테 전해주었는데 아담이 제대로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와는 그 말을 조금 바꿔서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사실 만지지도 말라는 말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와가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외에 자신의 감정에 따라 더한 것입니다. “그리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하와는 자신의 이성에 따라 “죽을까 하노라”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자신의 생각에 따라 변질시켰습니다. 즉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이성에 따라 추가하였고, 자기의 감정에 따라 빼버렸습니다. 그 때에 뱀은 하와의 약점을 발견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유혹을 하였습니다. 창3:4-5절에 보면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제는 하나님 말씀을 정면으로 부인합니다. “이 선악과를 따먹어도 너는 절대 안 죽는다. 오히려 네가 먹으면 너희들이 하나님처럼 될 거야.”그 마음속에 의심 뿐만 아니라 교만한 마음까지 심어 놓았습니다.
반면에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40일을 금식기도 하신 후에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시험을 받았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알고 계셨으며, 그 말씀으로 사단의 유혹을 이겨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단의 공격을 막아내며, 사단의 허상을 정확하게 공격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단이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워 놓고 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라고 할 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사단을 향하여 호령을 쳤습니다. 그 후에 사단은 예수님에게 천하 만국을 다 보여주면서 나에게 절하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고 유혹을 할 때에 과감하게 사단아 물러가라 외치며, 주 너의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섬기라고 올바른 길을 제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사단의 유혹을 이기셨고, 우리에게 올바른 신앙의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 후에도 예수님은 자신의 이성이나 감정, 세상 방식을 추구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자신의 기준으로 삼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으시고 철저히 말씀을 준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자신의 생명을 다하여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순종함으로 사단의 유혹을 이기시고, 구원을 완성하셨고, 사단의 머리통을 깨뜨리고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승리하셨습니다.
내 자신의 일생을 내가 그리면 휴지통에 버린 구겨진 낙서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인생을 주님의 화필로 그리도록 맡기면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하나님이 그림을 그려놓고 사래는 사라로 그리고 야곱은 이스라엘로 시몬은 베드로로 사울은 바울로 변화시켰습니다. 네 주인이 되어 주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은 엄청나게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서 내 놓아서 몸 찢고 피 흘려 대속해 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니까 내 인생 전부를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플러스해서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맡겨 놓으면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일도, 내 짐도, 내 문제도 다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맡길 수가 있으니까 믿고 맡길 뿐만 아니라 주님이
의 멋진 작품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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