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

하나님아들 2014. 1. 11. 12:26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

                                                                                               성경본문:빌4:19-13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까? 세상은 돈이 네 행복을 보장해 준다고 강력하게 물질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식이나 자아실현으로 얻을 수 있다고 우리를 향하여 손짓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이런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눈에 보이는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입니다. 행복은 소유나 자신의 명성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마음에 달린 것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소유나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 하나님의 통치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마음에 모신 자는 천국을 얻은 자이며,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 ‘최후의 만찬’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위해 유럽 전역에 예수님을 닮은 사람을 찾아다녔습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다가 인자하고 거룩하게 보이는 한 사람을 모델로 하여 예수님을 그렸습니다. 제자들을 한 사람씩 다 그리고 가룟 유다를 닮은 사람을 찾는데, 쉽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빈치는 10년 동안 찾아 헤매다가 어느 날 길가에 술 취해 쓰러져있는 사람을 가만히 보니 가룟 유다를 닮았기에 그 사람을 모델로 하여 가룟 유다를 그렸습니다. 그림을 다 그리고 모델 품삯을 그 사람에게 주려고 하니 10년 전에 다 받았다고 하면서 돈 받기를 거절했습니다. 그와 만나서 진솔한 대화를 나눠보니 당신이 10년 전에 내게 찾아와서 예수님의 얼굴을 가리키며 자신을 모델로 하여 예수님의 얼굴을 그렸는데 이제는 타락하고 부패하여 가룟유다의 모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10년 사이에 사람의 모습이 그렇게 달라진 것입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이 누구와 교제를 나누는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가룟 유다처럼 험해질 수도 있고, 예수님처럼 거룩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얼굴이 바뀔 수 있습니다.

타이타닉 침몰 사건은 이 시대에 우리에게 엄청난 교훈과 신선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타이타닉에는 그 배에 승선한 모든 사람 2,208명을 구조할만한 구조선이나 구명조끼가 준비되어 있지 못했고 그중에 상당수인 1,513명은 결국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때 당신이 거기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이 배에 탄 사람 중에는 선박 회사 사장인 브루스 이스메이(Bruce Ismay)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하인, 비서, 수많은 선객을 버려두고 구명보트에 올랐고 이 일로 그는 목숨은 구했지만 나머지 일생을 세상과 여론의 비난을 받으며 구차한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많은 영웅들을 낳기도 했습니다. 존 스미스 선장은 끝까지 구명보트 승선을 거부하고 승객들을 구조하다가 죽었습니다. 뉴욕의 유명한 메이시 백화점 주인 스트라우스 부부는 남편이 구명보트 승선을 거절하자 부인도 승선을 거부하고 자기 하인에게 모피 코트를 건네준 다음 구명보트에 태운 다음 부부가 나란히 손을 잡고 기도하며 최후를 맞이합니다. 월레스 하틀리라는 사람이 지휘를 맡은 연주대 8명은 배의 침몰 10분전 까지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찬송가를 연주하여 승객들에게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희망을 선물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가슴이 뛰는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동적이며, 신선한 행복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과정과 단계를 걸쳐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행복에는 많은 고난과 고통의 과정이 있고,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며, 행복에 도달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어려운 과정과 단계를 걸쳐 행복의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고 행복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떤 과정과 단계를 거쳐야 합니까? 오늘날 이 시대에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우리는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쓴 성경 중에서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서신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성경은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더불어 옥중에서 쓴 ‘옥중 서신’입니다. 바울은 가장 열악한 환경인 옥중에서 가장 기쁨을 말하는 서신을 기록했다는 말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기쁨의 사람 사도 바울의 실재적인 모습을 사도행전에서 이미 보여 준 바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매 맞고 감옥에 닫혔습니다. 발에는 착고를 채웠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감옥 속에서도 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무슨 찬송할 일이 있었을까? 그러나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송은 착고를 풀어지게 했습니다. 옥터가 흔들리게 하였고, 옥문이 열리게 했습니다.(행16:40) 이렇게 기도와 찬송은 사람들의 묶여있는 것에서 해방을 주며 자유를 줍니다.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때 행복합니까? 우리는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울 때 행복합니다. 11절에 보면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여기서 “자족”라는 말은 환경과 상관없이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자기 충족감을 의미합니다. 자족하는 사람은 환경이나 주변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아니합니다. 어떤 상황에 있든지 만족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상황속에서 자족할 수 있는 사람은 믿음의 절정에 도달한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풀무불속에 들어가면서도 찬송하여 들어갔고, 다니엘은 사자굴속에 들어갈 때에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였고, 욥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환경을 뛰어 넘어 자족하는 믿음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바울이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고백하는 것은 그의 믿음의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바울은 어떤 환경에 있든지 자족하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족하기를 배웠다” 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자족이란 내 행복이 상황에 달려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약’이라는 사고에 갇혀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저렇게 된다면 행복할 텐데.” “경제적으로 어느 수준만 도달하면 행복할텐데, 어떤 직장만 잡으면… 이것만 할 수 있다면… 그럼 나는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렇지 않다. 그렇게 되면 너는 또 다른 것을 원할 것이다 너는 항상 더 많은 것을 원할 것이다.” 한번은 하워드 휴즈가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인간이 행복해지려면 얼마가 필요할까요?”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현재보다 조금만 더’ 있으면 됩니다. 만약 우리의 생각이 “조금만 더 있으면...”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면 이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하루 빨리 이런 생각에서, 욕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도대체 얼마나 더 가져야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욕망은 절대로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다 가져도 절대로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돈, 지식, 예쁜 여자를 다 내 것으로 만든다고 만족할 것 같습니까? 절대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을 헛되도다” 라는 솔로몬의 고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명언입니다. 세계적인 부호였던 석유왕 록펠러에게 어느 날 신문기자 한 사람이 찾아와서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로 만족하십니까?” “아니오. 그러면 얼마큼 더 가져야 만족하시겠습니까?” ‘조금만 더’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조금만 더”가 도대체 얼마 만큼일까요? 이 세상의 것으로는 만족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정말로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자족하기를 배우라, 감사하기를 배우라” 그렇습니다.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족하는 마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자족할 수 있는 자가 행복을 얻을 것이며, 안식과 평강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족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까? 첫째, 자신의 현실에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요셉은 그 어떤 상황에서든지 현재를 충실히 살았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형들의 시기와 모함으로 말미암아 부모와 생이별을 하고 먼 이국 땅에 팔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총무역할을 하다가 그의 아내로부터 누명을 쓰고서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자리에서든지 요셉은 사람이나 환경에 대해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원인 제공을 한 형들을, 보디발의 아내를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봤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그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를 가리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돌보셨다. 그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쏟으시고 은총을 베푸시어 간수장의 눈에 들게 해주셨다. 하나님께서 그를 돌봐주시어 그가 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잘되게 해주셨던 것이다.”(창39:21~23) 여기서 ‘잘 된다’라는 말은 지금 처한 상황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의미입니다. 바울 사도는 어떤 고백을 하고 있습니까?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부하게 살 줄도 알고,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안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현실에 만족하며, 충실하였습니다.

둘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키워갈 때 자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분이 내 곁에서 나를 얼마나 세밀하게 살피고 돌보고 계시는지를 알고, 그러한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라도 하나님 아버지 품에 뛰어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넉넉하신 사랑으로 나를 안아주시고 나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한량없이 풍성하신 나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믿는 여러분을 언제나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빌4:19) 삶속에서 한번 두번 이러한 하나님 체험이 더해가면서 우리는 믿음이 성장하게 될 것이며, 자족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 현실에 대해 불만족하게 합니까? 자기 욕심과 집착 때문입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반드시 이래야만 돼!” 이렇듯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 붙들려 살 때 현실에 자족하지 못합니다. 자기를 놓을 수만 있으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고 만족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을 버리면 더 이상 상처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감을 회복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버리는 자가 진정 살리라.. 내가 죽어야 산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죽을 때, 내려 놓을 때 자족하는 마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2. 우리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하면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12절에 보면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여기서 “비결을 배웠다”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몸으로 배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배웠다는 말을 사용할 때에 단순히 지식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고난과 역경의 체험을 통하여 배운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그 배움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과정을 통하여 직접 전수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유로운 몸으로 복음을 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감옥에 갇힌 채로 그냥 놔두셨습니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감옥에 갇혀 있는 일이 복음을 전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바울을 감시하러 오는 로마 군인들은 이미 바울의 소문을 다 듣고 왔습니다. 배를 타고 오면서 바울의 하나님을 경험한 276명의 사람들이 소문을 다 퍼뜨렸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감시하러 온 군인들은 이미 마음이 열려서 바울에게 왔던 것입니다. 그들이 나중엔 로마의 고위층이 되고 313년에 로마는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경험을 체험한 바울은 이제 어떤 형편에든지 감사하며, 자족하기를 배운 것입니다.

사람들이 현실상황속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나친 욕심 때문입니다. 지나친 욕망이 내 마음을 가리우게 만들었고, 더욱 귀한 보물을 발견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내게 없는 것만 보지 말고 내게 있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내 안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안에 천하보다 귀한 생명과 복음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 안에 천국이 있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때에 모든 고난과 아픔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잃은 것만 볼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것에 집착해서 아쉬워하며 가슴 아파할 것이 아니라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족은 소유로 말미암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족에서 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심정처럼 자족하는 마음과 자세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의 형편에서 자족한다면 풍성한 행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헤럴드 러셀이란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공수부대원으로 전쟁에 참가했다가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고 불구자가 된 상이용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고 주님을 섬기는 신앙으로 온갖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런 투지를 인정받아「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에 출연하여 아카데미상까지 받았고, 상금을 모두 자선사업단체에 기부했습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신체적 조건이 당신을 절망케 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그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나의 육체적인 장애는 나에게 도리어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잃어버린 것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남은 것을 사용할 때 잃은 것의 열배를 보상 받습니다.” 정말로 감동적이며, 자족하는 비결에서 성공적인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세기의 성자로 부렸던 ‘헨리 나우렌’ 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의 나이 50세에 이런 질문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내게 성공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성공이 나의 영혼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괴로운 마음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과 함께 살아라.”그는 즉시 모든 명예와 직분을 내려놓고 프랑스 파리의 한 정신장애인 공동체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199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장애인들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았습니다. 말년에 그는 세상을 향해 충격적인 고백을 던지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두 팔을 벌리고 낮은 데로 임하는 행복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리로, 유명세에서 섬기는 자리로, 인도하는 자리에서 인도함을 받는 자리로 내려오십시오. 그때에 당신은 진정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세상에 오셨습니까? 섬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사랑의 선물로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행복, 안식, 기쁨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행복의 원동력이며, 안식과 평강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

3. 우리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슨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까? 13절에 보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것은 단순한 용기나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자족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성경적인 지식이나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가난함과 부함, 풍부함과 궁핍함의 과정을 통하여 일체의 비결을 배운 결과로 나온 결과입니다. 사도 바울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터득했기에 자족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풍부에 처할 때도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또한 궁핍에 처할 때에서 그 상황을 원망하거나 도피하려고 하지 않고 참고 견디면서 일체의 비결을 몸소 배웠습니다. 바울은 비천에 처할 때도 그 비천함을 보라보지 않았고, 풍부할 때도 그 풍요함을 보라보지 않고, 주님을 보라보면서 주님이 주시는 힘을 공급받아 모든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는 자 안에서 내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고백은 이런 과정을 통하여 믿음의 경지에 도달한 것입니다. 자족하는 비결 가운데 최고의 것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는 어떤 상황속에서도, 어떤 위협속에서도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확신을 얻은 것입니다

“흙”의 작가 춘원 이광수 선생은 자신의 잔잔한 기쁨을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아침에 번쩍 눈을 뜨면 담담한 기쁨을 느낀다. 옷을 갈아입고 창을 열어 아침볕에 밝은 하늘과 산을 보면 기쁨은 더욱 뚜렷하게 된다. 이에 소제하고 옷깃을 여미고 앉으면 어디다가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싶은 마음이 난다. 그리고 온 가족이 다함께 조반을 들 때 살아가는 기쁨을 노래하며, 이 모든 것을 누리는 자는 행복한 자라.” 이 얼마나 순수하고 행복한 모습입니까? 그의 삶은 남달리 화려한 것도 아닙니다. 누구나 다 누리는 일상생활의 것입니다. 다만 깨닫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선물입니다. 인간의 욕심에 가로막혀 잠들어 있는 행복의 조건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를 찾아낸다면 행복이 가득할 것입니다.

이제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가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하면 첫째,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족해야 합니다. 자신의 욕망이나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처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의 배워야 합니다. 이미 내가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에서 오는 만족과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셋째,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이며, 이 땅에서 승리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나의 처지와 환경에 나의 시선을 두지 말기를 바랍니다. 나의 마음을 세상의 욕망과 탐욕에 빼앗기기 않아야 합니다. 오직 나의 시선을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며, 내게 능력주신 자 안에서 승리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출처 : 광야의 소리
글쓴이 : samju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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