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너희는 이렇게 살아라

하나님아들 2014. 1. 11. 12:27

 

                           너희는 이렇게 살아라

                                                                                    성경본문: 유다서1:17-21절

어느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 주변에는 술집이 많았다고 합니다. 특히 교회 옆에 있는 술집은 일반 술집이 아니고 여자들이 나와 있는 뭐 그런 술집 이었나 봅니다. 성도들이 교회를 오다가 그 술집 때문에 시험에 들거나 힘들어 할까봐서 목사님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목사님은 성도들과 함께 작정기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 술집 불나서 망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그 기도가 응답이 된건지 어찌된건지, 정말로 그 술집에 불이 나서 그 술집이 쫄딱 망했습니다.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술집 사장이 교회를 향하여 법정에 고소를 했습니다. 이유인즉, 교회가 술집 망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에 불이 났다는 것입니다. 법정앞에 선 두사람이 섰습니다. “술집 주인이 말하기를 재판장님, 저 교회에서 기도해서 술집에 불이 났다니까요. 목사님이 말하기를 재판장님, 에이~! 기도한다고 불이 납니까~!” 여러분들은 생각하기에 “누가 더 믿음이 좋습니까?”

유다서는 짧은 서신서인데 요셉의 아들이며, 예수님의 형제인 유다가 기록한 것입니다. 이 서신서의 의도는 교회에 침투해 있는 거짓 교사들과 이단들을 경계하며, 그들의 가르침을 쫓아가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다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성도들에게 자신의 신앙생활을 거룩한 믿음 위에 굳건히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며, 긍휼을 베푸는 삶을 살라고 간곡하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의도적으로 ‘이 사람들과 사랑하는 자들’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사람들” 은 누구를 지칭하고 있습니까? “이 사람들에 관하여” 유다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4절에 보면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영적으로 보면 이들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며,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하는 암적인 존재가 되었고, 짐승같은 존재였습니다. 10-11절에 보면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화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바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이들은 자신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 교사들로서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도록 성도들을 유혹하고,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위태롭게 하는 악한 자들입니다.

반면에 사랑하는 자들은 누구를 의미하고 있습니까? 교회에 있는 거룩하심을 입은 참된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즉 생명의 복음에 깨어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믿음으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자들이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지금 “이 사람들과 사랑하는 자들”은 교회 안에 함께 존재하고 있습니다. 마치 곡식과 가라지, 양과 염소가 함께 있듯이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과 교회내에 함께 있으면서 성도들에게 나쁜 영향력을 끼치며, 믿음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들은 같은 교회를 다니며,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추구하는 방향과 삶은 180도 차이가 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가정에서, 교회안에서, 세상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 기준과 원칙을 잡아주지 않으면 혼돈되고, 방황하는 삶을 추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을 얻게 할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이후에 이렇게 살라는 길을 안내해 주는 교과서와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기준과 원칙은 성경에 이미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대로 살면 승리자가 될 것이며, 영광과 위엄과 권세와 능력이 영원토록 함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단 사설이나 거짓 교사들의 영향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며, 거룩한 믿음위에 굳게 서기 위하여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21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우리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몇가지 중요한 원칙을 세우며, 실천해야 합니다. 유다는 지금 우리에게 어떻게 믿음생활을 추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까?

1. 우리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거룩한 존재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피로 씻음받은 거룩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질적으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즉 세상 사람들은 돈이 최고이다, 출세와 성공을 목적으로 살며, 자신의 이름 석자를 위하여 몸부림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며, 그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잘되기 위하여 공부하고, 출세하고, 돈을 벌고 있지만 우리들은 공부해서 남주고, 돈 벌어서 남주고, 출세하고 성공해서 남주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신이 내주하시는 거룩한 성전이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거룩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그러므로 우리는 영광스러운 신분인 동시에 세상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할 거룩한 부담감을 간직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 다니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에 거룩함을 향하여 자신을 세워져가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7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유다는 너희가 거룩한 믿음으로 자신을 세우려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이미 한 말을 기억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5:48절에서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셨고, 그의 사도 베드로는 벧전1:16절에서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라고 권면하고 있으며, 사도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라”고 권면하며,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4:8)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택한 백성들에게 거룩하라고 계속하여 명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여 평생토록 거룩한 생활을 추구해야 합니다. 거룩함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후에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물고기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우리는 끊임없이 거룩함을 향하여 도전하며, 몸부림쳐야 합니다.

그렇다면 거룩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수도원에 가서 고립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아니요, 금욕적인 삶을 살며 고행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엄격하게 지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매일 교회 나오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일상적인 삶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욕망과 탐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하며,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섬기는 자로 남고자 자기 비우고 묵묵히 주님께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정말 거룩한 사람입니다. 이를 통해 보면 거룩은 외적인 형식, 종교의식에 있지 아니하고 삶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순종하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속에 살면서도 세상에 빠져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려면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야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나의 삶의 기준을 예수님의 기준을 맞추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속에서 거룩한 산제사가 되려고 하면 우리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올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면 예수님처럼 살면 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모델입니다. 거룩은 일평생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한번 받으면 되지만 성화는 내가 자기부인하고 일생 꾸준히 추구해 나가야 할 숙제입니다. 그런데 거룩함을 추구해 나가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럽게 때문에 슬그머니 포기한 분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신앙이 처음 구원받을 때 ‘거룩’에 대한 열심을 내다가 열정이 사그라져 정체에 머물거나 퇴보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있듯이 거룩함을 향하여 추구해야 합니다. 만약에 거룩함을 추구하는 뜨거운 열망이 사라졌습니까?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여 사는 것이 편하며, 익숙해 졌습니까? 이 시간에 정신을 차리고 거룩함을 향하여 깨어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자기부인하고 거룩함을 추구해 나가야 합니다.

2. 우리는 항상 성령의 능력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우리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우리 안에 성령님이 들어와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 안에서 사는 삶입니다.  성령님의 사역이 아니라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고사하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성령의 임재하심으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가지셨던 하나님이신데, 주님이 당신을 대신하여 성령님을 보내어주셨습니다. 성령은 하나님과 우리 주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영이요, 그리스도 예수님의 영이시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기도하라고 강조하면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8)고 하셨습니다. 롬8:26절을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기도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육을 가진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성령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의 힘으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와주시는 가운데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6.25 전쟁때 북괴군은 남한 전역을 거의 점령하고 낙동강 전선 최후 방어선이 위기에 있을 때 고 이승만 대통령은 모든 목사님들을 부산 도지사관으로 불러 기도의 부탁을 했습니다. "우리 한국은 지금 풍전등화의 운명에 있습니다. 지금은 장마철로 비가 올 때입니다. 비가 오지 않아야 우리 비행기가 떠서 낙동강 유역의 적의 진지를 폭격할 수가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적군이 낙동강을 건너게 될 것입니다. 이 지경에서 우리가 의지할 곳은 하나님밖에 없으니 목사님들은 하나님께 기도 드려 주십시오." 그때 모든 목사님들이 부산중앙교회에 모여 일주일 동안 금식철야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그 결과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맑은 날씨가 20여일 동안 계속되어 B29폭격기가 매일 낙동강 가의 적의 진지들을 융단 폭격하였습니다. 적들은 풍비박산, 완전 무력하게 되고 유엔군은 반격을 감행하고 인천상륙작전을 전개하여 적들을 몰아내고 우리나라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를 인도해 주시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여 기도해야 잘하는 기도입니다.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먼저 우리의 전적인 무능력을 발견한 후에 성령이 필요하심을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이 없이는 우리는 기도할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성령이 보내심을 받은 것은 이 문제에서 우리를 올바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기도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2:18) 우리가 하나님께 올바른 틀을 갖추고 기도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한 분이 계시는 데 그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우리에게는 성령만이 주실 수 있는 명철이 필요합니다. 그로 인해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을 조정하고 단어를 사용하는 것 같은 일에도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기도하는 과정의 시작입니다. 내게 기도할 능력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성령만이 내가 기도할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가르치시고, 그 길을 보여주시는 것을 깨닫게 될 때에 성령님의 능력을 온전히 의지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성령님이 주시는 힘으로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은 은혜의 수단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능력있는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며,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이성과 감정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그의 능력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어야 합니다.

세상은 약육강식, 파리미드 경쟁만이 존재합니다. 살기 위해 약자를 짓밟아야 합니다. 권력자들은 약자의 피를 빨아 호위호식 했습니다. 약자를 향해 싹쓸이, 몰인정하게 착취했습니다. 노예, 종, 머슴은 말하는 가구에 불과했습니다. 세상은 꼴지를 생각해 주지 않으며, 오직 1등만 기억합니다. 2등부터 짓밟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자를 기억하시고 챙겨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약자들도 살 수 있도록 이삭을 남기고 포도 열매를 남겨 두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긍휼이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룩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거룩은 연약한 한 사람을 가슴에 끌어안음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김병삼 목사님의 설교 인터넷을 보니 ‘샴푸’에 대한 감동적인 글이 있었습니다. “비누가 지배하던 욕실에서 샴푸가 한자리 차지할 수 있었던 건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확실히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그대로 흉내 내서는 삼푸의 자리를 빼앗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 샴푸가 지배하던 욕실에서 린스가 한자리 차지할 수 있었던 건 샴푸의 일을 빼앗지 않고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참 많이 안달하고 힘들어 하는 것이 누군가 나의 자리를 빼앗고, 내가 손해를 볼까 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쓰러뜨려야 내 자리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린스처럼 전문분야에 있는 자를 잘 도와주고, 섬겨줄 때 나의 역할과 위치가 서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죽이지 않고 상대방을 살려주고, 함께 더블어 윈윈 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거룩한 사람,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이웃을 사랑하며, 그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즘 산에 가면 도토리 밤을 다 줍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다람쥐들이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 감을 딸 때도 제일 꼭대기에 있는 감은 남겨 두었다고 합니다. 참새, 까치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이웃을 억압하거나 착취하지 말라고 합니다. 가난한 자, 귀먹은 사람, 맹인을 배려하라고 합니다. 이런 부분을 읽으면 하나님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지며 감동이 밀려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신데 마음이 따스하신 분이십니다. 항상 가난한 자, 연약한 자를 먼저 배려하여 섬겨 주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자비와 사랑을 배운 유대인들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 몇 고랑은 베지 않고 남겨 놓는다고 합니다. 과일을 딸 때에도 전부 거두지 아니하고 고아와 과부와 거류민을 위하여 조금씩 남겨 놓는다고 합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흘러가는 강물 위에 먹을 것을 쌓아서 던져 놓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강물 밑에 살고 있는 가난한 자들이 그것을 건져 먹고서 배고픔의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얼마나 끔찍이도 사랑합니까? 반면에 얼마나 타인과 이웃의 가정에 무관심합니까? 이런 사람은 잔인하고 무섭고 이기적입니다. 살벌합니다. 이런 광야 같은 메마른 세상에 하나님은 너희가 사랑의 샘이 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웃에게 사랑의 물을 주는 사막의 오아시스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에게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사랑으로 이웃을 대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웃사랑이 거룩입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함으로 거룩해지길 소망합니다.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사는 동물입니다. 우리의 생명에 기쁨을 주고 향기를 주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인간에서 사랑을 제거하면 인생은 빛을 잃고 허무감과 무력감에 빠집니다. 사랑을 하지 않으면 인간은 먹고 먹어도 배가 고프고 마시고 마셔도 목마릅니다.

나폴리 속담에 인간은 "왜 사느냐?" 하는 것에 대한 대답을 찾지 못해도 살 수 있지만 "누구를 사랑하느냐? 라는 사랑의 대상을 찾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인간에게 있어서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육에 속한 사람처럼, 정욕대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들처럼 살면 하나님이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넘어지지 않게 해 주실 것입니다. 또한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설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세와 능력이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입니다.

출처 : 광야의 소리
글쓴이 : samju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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