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십일조의 정신과 삶

하나님아들 2014. 1. 11. 12:23

                             십일조 정신과 삶

                                                                                   성경본문:마23:23-24절

“돈이 최고이다” 는 물질만능 시대에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리라는 것은 큰 도전이며, 성도들에게 많은 부담감을 줄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하루 하루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십일조를 주제로 설교하는 것이 저에게는 왠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일조를 중심으로 설교를 하는 것은 올바른 십일조가 성도들의 믿음을 성장하게 만들며,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볼때는 수입의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이 부담감을 느낄 수 있지만 실상은 십일조 자체가 큰 은혜이며, 약속하신 큰 복을 받는 길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복에 대한 표지이며, 이웃사랑, 축복의 통로가 되는 길입니다. 십일조는 교회를 활성화시킬 뿐만 아니라 각 성도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며, 물질의 복을 받게 만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심령의 기근이 찾아올 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업에 우환과 근심이 몰려오며, 하나님의 주신 재물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여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는 사실 믿음만 있다면 큰 부담감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에서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드리는 것임으로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십일조는 우리 성도들에게 주신 은혜의 법이요, 믿음으로 자원하여 드리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한 젊은 의사가 알프스 몽블랑 정상을 정복했습니다. 알프스 등산로의 풀발 지점 샤모니에서는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환영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의사는 정상에 깃발을 꽂고 하산하던 중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마자 마음의 긴장을 풀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안전을 위해 감았던 로프마저 거추장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프를 풀어 버리고 안내원의 도움 없이 자기가 앞장서겠다고 하였습니다. 안내원은 위험하다고 만류하였습니다. “선생님, 아직 몽블랑 정복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샤모니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의사는 계속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렇게 서로 다투면 하산하다가 얼마 가지 못해서 앞서 가던 의사는 급경사에서 미끄러져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를 도와 줄 장비가 없었으며, 더구나 그가 스스로 로프를 풀어 버렸기 때문에 안내원은 발만 동동 구르며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결국 앞서 가던 의사의 시체는 비탈 아래 기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자기를 환영할 준비로 바빴던 그 시각, 의사는 자신을 지탱하던 로프에 싫증을 느껴 그것을 풀어 버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정복한 그 산 자락에 묻히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로프’처럼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가볍게 여기고 지키지 않으면 한 순간에 큰 낭패를 당하며,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구약시대나 오늘날에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행위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드릴 때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십일조의 정신을 망각한 채 단지 습관적으로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십일조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마태복음23: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을 드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율법의 더 중요한 바 '의와 인과 신'을 버렸다고 책망하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기서 박하와 회향과 근채는 가정에서 조금씩 재배되어 향료로 쓰이는 식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사소한 것까지 구별하여 십일조를 드렸다는 것은 그들의 십일조 생활이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토록 철저한 십일조 생활을 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왜 책망하셨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십일조의 근본 정신이 결여된 형식적인 십일조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일조의 외적인 준수만을 중시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십일조의 근본 정신인 의(義)와, 인(仁)과 신(信)이 겸비된 십일조를 드릴 것을 훈계하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까? 또한 십일조를 어떤 정신과 자세로 드리는 것이 바람직합니까?

1. 십일조는 본래 하나님의 것이다 라는 공의의 차원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십일조의 근본정신으로서 말씀하신 '의' 와 '인'과 '신'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릴 때 첫째 정신은 바로 “공의”라는 차원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 는 공의, 즉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공정한 몫이 주어지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공평성을 의미합니다. 십일조가 갖고 있는 이 공의의 정신은 기업이 없었던 레위인과 제사장들을 위해 십일조가 드려진 것에서 나타납니다.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의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민수기18;21~23) 레위자손은 이스라엘 중에 기업이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회막의 일을 위해서 헌신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세상에서 직장을 갖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전적으로 헌신된 목회자, 사역자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십일조에는 전적으로 교회에서만 사역하는 자들의 의식주의 필요를 채워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정신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즉 십일조는 본래 하나님의 것이다는 공의의 차원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성도가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 오늘날에도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임으로 당연히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죄악을 범하는 것입니다. 말3:8-9절에 보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곡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음으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베풀지 아니하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은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공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공의의 차원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온갖 좋은 자동차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값도 천차만별이고 차종도 다양합니다. 그리고 고급차에는 온갖 편의사항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급편의사항들 가운데는 거의 모두가 자동입니다. 문도 자동으로 열리고 닫힙니다. 운전석의 좌석은 주인을 기억하고 있다가 주인이 차에서 편하게 내릴 수 있도록 뒤로 물러갔다가 다시 타게 되면, 처음 상태로 복귀합니다. 아무튼 상상을 초월하는 많은 편의장치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동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핸들과 브레이크입니다. 핸들과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 자동차는 아무리 비싼 고급차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핸들은 자동차가 정확하게 진행하게 도와줍니다. 핸들이 고장 나면 차가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나면, 차를 세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차가 어떻게 움직이느냐? 보다 얼마나 정확하게 멈추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모두가 운전자에 의해 조작이 잘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자기 멋대로 살아 가려고 하는 시대 상황속에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진리이며, 우리가 귀담아 달아야 할 신앙의 핵심입니다.

2. 십일조는 자신의 욕심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정신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릴 때 둘째정신은 바로 사랑이라는 차원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 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의미합니다. 신명기14:28-2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매 3년마다 십일조를 드려 성중에 저축하였다가 레위인과 객와 고아와 과부들을 위하여 쓰라”고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레위인뿐 아니라 객과 고아와 과부들 같이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도 십일조로 구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볼 때 십일조에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정신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만들어 인간에게 주시되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신 것은 그것을 가지고 소외되고 불쌍한 사람을 돕도록 하려는 사랑과 자비의 배려인 것입니다.

십일조는 창조의 질서, 영적 생태계 차원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법칙입니다. 성도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아니하면 재정적으로 힘들고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재정적으로 어려우면 분위기가 엉망입니다. 사람들의 얼굴에 기쁨이 없고, 짜증을 냅니다. 좋은 교역자를 더 이상 모실 수도 없음으로 주일학교가 엉망이 됩니다. 그 고통과 피해는 우리 자녀들에게, 다음세대에게 그대로 갈 수 없에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교회가 가난함과 어려움에 처하는데 내 가정과 사업이 잘되고 형통하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사업은 서로 밀접한 상생의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정이 잘 되면 교회가 잘되고 교회가 평안하고 잘되면 성도들의 사업과 직장이 번창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는 차원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물질에 대한 욕심에서, 내 것이라는 욕망에서 이긴 자만이 드릴 수 있습니다. 십일조를 자신의 욕심에 의하여, 자신의 감정에 의하여 십일조를 거절하고 드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자신의 믿음이 무너지고, 삶의 궁핍하게 되며, 그의 마음속에 두려움과 불안의 노예가 됩니다. 반면에 우리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게 되면 하나님은 어떤 복을 약속하고 있습니까? 말3:11-12절에 보면 첫째, 하나님께서 황충이나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의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도록 지켜주십니다. 둘째, 너희 밭의 포도나무의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해 주십니다. 셋째, 너희 땅이 복을 받아 아름답게 될 것이며,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고 부러워할 것입니다.

뉴욕 타임즈에서 20세기의 세계적인 갑부를 16명 꼽았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록펠러입니다. 록펠러의 집은 가난했습니다. 그는 열 살 때부터 신문 배달을 하며 가정을 도왔습니다. 신문 배달로 그가 받은 첫 주급은 1달러 50센트였습니다. 록펠러는 그것을 어머니에게 드렸습니다. 록펠러의 어머니는 ‘이것이 네가 벌어들인 첫 열매구나! 너는 무엇보다 십일조부터 하나님께 드려라. 그리고 앞으로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해라. 하나님의 것을 먼저 구별해 오른 주머니에 넣어 놓은 후에 나머지를 가지고 사용해야 한다’ 라고 가르쳤습니다. 록펠러의 어머니는 십일조 생활을 철저하게 가르쳤습니다. 록펠러는 평생토록 어머니로부터 배운 십일조 정신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그는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십일조를 도둑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33세에 100만 달러를 모으더니 53세 때에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교회와 학교, 그리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구호 활동을 펼친 사업가였습니다. 록펠러는 자녀 교육을 위한 한 강연회에서 부모들에게 ‘당신의 자녀를 위대한 인물로 키우고 싶습니까? 그러면 자녀에게 먼저 십일조를 빠뜨리지 말도록 가르치십시오. 그것은 교회 제도가 아니라 인생의 토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인생의 토대를 내 자신에게 둘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에게 둘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녀들에게 올바른 십일조 신앙을 가르치는 것 이상의 신앙 교육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훈련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며, 존귀하게 여기는 신앙관이 만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3. 십일조는 하나님이 나의주, 나의 하나님이시다는 신앙 고백 차원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릴 때 셋째 정신은 바로 믿음의 표현으로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 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실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다면 십일조를 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창조하신 것들을 주관하시며 오늘도 살아 계셔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심을 믿는 믿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황충을 금하여 주시며 포도나무의 과실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는 등 복을 넘치도록 더하실 것아라는 말씀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께서 계신 것과 또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하나님 앞에 신실함으로 십일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이 있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십일조의 바른 정신을 알 때만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온전한 십일조를 철저히 교육하며, 삶속에서 실천하게 훈련시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으로 여기며, 자신의 양심을 속인 큰 죄악으로 여깁니다. 어느 유대인의 가정에서 가을 새학기가 되자 재정적으로 어려워서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온 가족의 세 끼 식사를 두 끼로 줄였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에서 십일조를 철저히 구별하여 드리는 모습을 보고 친한 친구가 이렇게 충고를 하였습니다. “세 끼 식사를 두 끼로 줄이면서까지 십일조를 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여유가 있을 때라면 몰라도...” 그 때에 유대인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10분의 1은 내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돈입니다. 나는 일생 남의 것을 뺏은 일이 없어요. 비록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남의 것을 뺏을 생각이 없어요. 하물며 하나님의 돈을 뺏는 일은 죽어도 못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기 때문에 절대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이런 올바른 십일조 정신이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민족이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오늘날에도 십분의 일은 하나님께 드리며, 또 다른 십분의 일은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구제금으로 떼어놓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모든 물질의 주인이시다는 믿음의 고백의 차원에서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려야 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십일조 정신을 살펴보면 창14장에 보면 “예루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14:18-20) 하나님이 아브라함이라 불리기 전 아브람이 전쟁에 뛰어 들어, 조카 롯을 구출하고 돌아오면서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리는 장면입니다. 십일조'가 성경에 첫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린 것은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송의 의미로 드렸습니다. 십일조 정신은 승리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제사장 멜기세덱의 축복 기도를 통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에서 이기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자신의 전리품 가운데서 십의 일을 떼어 십일조로 드렸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인 율법을 지키기 위해 행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헌금의 정신은 감사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감사함의 마음이 없이는 진정한 헌금이 드려질 수가 없습니다. 감사함이 없으면 헌금이 조건적이 됩니다. 거기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참된 십일조 정신과 자세는 하나님이 주신 것에서 감사함으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신14장에 보면 “너는 마땅히 매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신14:22-23) 우리는 십일조를 통하여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믿음으로 사는 법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십일조 정신은 여호와를 경외함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리는 참된 정신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물질의 십일조를 하며 그 물질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그 어느 하나도 내 것이 아니며, 모두가 주인되시는 하나님의 것임을 또한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내것으로 착각하지 않고, 청지기 정신으로 물질을 관리한다는 의미에서 십일조를 믿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라기3:10절의 말씀을 주신 배경과 문맥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이처럼 어렵고 힘든 상황인데 십일조를 더 이상 드릴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향한 메시지입니다. 너희들이 왜 하나님의 복이 임하지 아니하는줄 아느냐? 너희가 물질의 욕심에 빠져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기 때문이다는 것을 강력하게 책망하는 배경에서 주신 말씀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이 없음을 인하여 너희가 만약 믿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해 보라는 차원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좋은 의도와 목적에서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들의 믿음 없음을 안타까운 상황과 배경에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더 큰 축복을 받는 조건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물질을 투자하는 식으로 십일조는 드리면 안됩니다. 내가 더 많은 복을 받겠다는 욕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하듯이 십일조를 드리면 올바른 정신이 아닙니다.

온전한 십일조의 정신은 모든 것의 주인이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정신과 자세로 겸손하게 드려야 합니다. 여기에서 ‘온전한 십일조’는 사람들의 이목과 명분 때문에 드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감사와 정직함이 있는 십일조입니다. 저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믿음으로 온전한 십일조 신앙을 갖기 원합니다. 특히 교회의 지도자들, 직분자들은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통해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아름다운 신앙의 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자신의 실상은 모르고 철저한 십일조 생활을 하고 있다는 자기 의에 도취되어 있었던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아니라 정말로 십일조의 근본 정신인 의(義)와 인(仁)과 (信)이 살아 있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출처 : 광야의 소리
글쓴이 : samju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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