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바울의 참회록

하나님아들 2014. 1. 11. 12:26

                                바울의 참회록

                                                                                      성경본문: 딤전1:12-17절

죄 아래 있는 인간은 내적으로 모두 다 절망에 처했습니다. 텅빈 가슴을 안고 그 허무와 공허를 채울 수 없어 몸부림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못나가므로 자기가 어떠한 사람인지 알 수도 없습니다. 겉만 번지르 하지 속은 텅빈 가슴처럼 공허하게 살아갑니다. 돈과 지식이 아무리 많으면 뭘합니까? 세상이 부귀영화를 다 얻으면 뭘합니까? 병들고, 늙으면 별 볼일이 없으며, 죽으면 끝장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인생은 허수아비 인생입니다. 허수아비는 뭡니까? 논이나 밭에 새나 짐승을 쫓기 위해서 짚으로 만든 인간입니다. 겉은 찬란하게 입히고 좋은 모자를 씌웠으나 가보면 생명이 없고 속은 지푸라기 밖에 없고 텅비었습니다. 인생이 어떻습니까? 겉은 요란하게 찬란하고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온갖 것을 다 행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지만 실제로 모든 사람의 가슴은 텅비었습니다. 사람의 가슴은 비고 혼돈되고 마귀의 흑암의 세력이 끝까지 부여잡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허무와 무의미를 이기지 못하고 텅빈 자화상 때문에 몸서리치다가 자살하고 있습니다. 2004년에 일본에서는 매년 3만명씩 자살합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자살 방지법을 제정하고 자살하지 않도록 돕는 위원회를 만들어 현재는 자살율을 엄청나게 줄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전쟁이 일어나서 매년마다 3만명씩 죽습니까? 그렇다면 이것은 국제적인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만 해도 매년 3만명씩 자살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사회보장제도가 가장 잘 되어 있다는 스칸디나비아도 역시 해마다 자살이 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의식주 문제로 자살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허무함과 무의미를 이기지 못하고 몸서리치다가 자살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최근에 들어서면서 자살증후군이라는 무서운 풍조가 퍼져가고 있습니다. 2013년도 현재 집단자살, 동반자살, 자살하는 사람들이 남자 7000명, 여자 5000명으로 한 해에 12000여명으로 34분에 한명씩, 하루에 42명씩 자살함으로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참된 자화상을 잃어버린 공허한 인간은 결국 허무함을 이기지 못하고 생명까지 버리는 비참한 존재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삶은 무어라고 해도 텅비고 공허한 삶입니다. 아무리 요란스럽고 찬란하게 세상으로 꾸며 놓아도 마음에 빈가슴은 아무도 세상으로 채울수가 없습니다. 예레미야가 말하기를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으니 생명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버린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팠으나 물을 보존하지 못하는 깨어진 우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인생이 하나님을 버리고 난 다음에 공허한 그 삶속에 아무리 세상것으로 채워 놓으려고 해도 허무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만족을 주지 못해요. 돈도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잠시 있다가 그만 물거품처럼 사라집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이 그런 탄식의 시를 적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내용이 없을수록 외면이 더 요란하고 찬란합니다. 빈수레가 더 요란한 것처럼 사람들은 혼돈에 서 있습니다. 자화상을 잃어 버리고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지 못하고 혼돈속에 있으며, 삶의 주소, 번지를 모르는 방랑자가 되어 있습니다.

불란서에 세계적인 철학자요, 수학자요, 과학자였던 파스칼이 지은 ‘팡세’라는 책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그 ‘팡세’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아~ 인간이여, 내가 비참해서 벗어나려고 아무리 찾아봐도 아무 소득이 없구나. 내 자신속에서는 진리도 선도 찾을 수가 없구나! 철학자들은 그것을 찾아 주겠다고 너에게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지킬 수 없다. 그들은 너의 참된 선이 무엇이며, 너의 참된 간구가 어떤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네가 왜 비참한지 그 원인조차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너의 불행을 건져줄 수 있단 말인가!” 이 팡세라는 작품을 통해 파스칼은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토로했습니다. 그 당시에 파스칼은 그렇게 훌륭한 과학자요, 수학가요, 철학자였지만 자기의 마음속에 허무와 공허를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방황과 고뇌의 종지부를 찍은 후 파스칼은 하나님의 은총에 감격해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은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과학자의 하나님도 아니요, 수학자의 하나님도 아니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믿는 자의 하나님인 것을 내가 알아 내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고 난 다음 그 앞에 엎드려서 나갈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그를 품어 주시고 잃어버린 자화상을 찾게 된 것입니다. 그 텅빈 가슴이 꽉 들어차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본래 형상을 회복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창조주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만남으로 삶의 혼돈은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공허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므로 매워지고 혼돈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 내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흑암에 잡힌 인생은 누가 해방시켜 줍니까? 사람들은 아담, 하와 이후로 흑암의 세력인 원수 마귀에게 잡혀서 심신이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원수에서 해방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와 해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만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며, 길과 진리와 생명이십니다. 바울은 도대체 무엇을 붙잡고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참회록을 기록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의 참회록 핵심 내용이 무엇입니까?

1. 바울은 자기를 높이거나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죄인중에 괴수라고 겸손하게 고백합니다.

인생을 마감할 시대가 되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살아온 삶을 반성하기도 하며, 참회록을 쓰기도 합니다. 참회록은 우리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작업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많은 목회경험과 선교경험을 쌓고, 수많은 교회를 개척하며, 13개의 서신서를 기록하는 영광을 얻는 후에 이제 그의 사역이 마감되는 과정에서 나온 참회록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마감하면서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어떤 고백합니까? 15절에 보면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이었다는 것이 그의 참회록의 결론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자기가 얼마나 나쁜 죄인이었는지를 참회하고 있습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니라.’(13절) 바울은 이런 죄악에 대해 늘 죄송한 마음과 함께 감사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빚진 자라고 말하기까지 하였고, 얼마나 죄인인가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죄인 중에 괴수이다”라고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치열한 죄의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본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기의 의로움에 사로잡혀서 늘 자기 것을 붙잡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다음 자기 의로움을 전부 내려놨습니다. 그는 세상적인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자였고,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으로 인정받았고, 당시 최고의 학벌인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공부를 했고,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또 유대교에 충성을 해서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이단인 줄로 생각해서 교회를 무너뜨리고 예수 믿는 사람 붙잡는데 앞장을 섰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다음 모든 것이 바뀌어졌습니다. 바울은 한 60년을 살았는데 처음 30년 예수님 만나기 전까지 30년은 자기 의로움에 갇혀 살았다가 자기중심의 삶을 살다가 예수님 만난 다음 완전히 삶이 바뀌어져서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예수님만을 위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바울은 60세쯤 되어서 네로 황제 시대에 붙잡혀 참수형을 당해 순교합니다만 그 30년 동안 이룬 업적은 대단합니다. 그는 영적으로 삼천층의 경험을 하였고, 많은 귀신을 추방하였고, 각종 질병을 고쳤으며, 그는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고, 그는 제자 중에 가장 위대한 사도였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자신은 자랑하거나 높이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라고 고백할 뿐만 아니라 죄인중에 괴수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과거 비방자였고, 박해자였고, 폭행자였던 때에 죄인 중의 괴수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영광받아야 할 ‘바로 지금’ 이 자라에서 죄인 중에 괴수라고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 표현을 사용한 서신서 중에서 가장 먼저 쓰인 고린도전서 15장 9절에서는 자신을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좀 더 후에 쓰인 에베소서 3장 8절에서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스스로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실체를 볼 수 있는 경건이 좀더 깊어진 지금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이렇게 죄인중에 괴수이라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억지로 될 수 없습니다. 누구의 강요나 협박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그의 양심을 일깨워 주실 때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가슴 깊이 깨달을 때에만 이런 아름다운 참회록을 할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참회록은 이제까지 쓰여진 모든 자서전들 중에 가장 훌륭한 자서전 중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가 어거스틴을 “성자”라고 부르지만 그 자신은 정작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고백했던 한 인간에 의해 쓰여진 매우 인간적인 책입니다. 어거스틴은 이 책에서 자신의 실망과 실패, 진리 추구를 위한 방황과 자신의 죄, 그리고 하나님과의 만남 등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때 느끼는 불안하고 공허한 마음에서 비롯된 고통과 하나님으로 충만해진 기쁨을 함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참회록』은 한 성공한 위인의 고백이자, 자신의 실패와 죄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참회의 글입니다. 이 고백록은 우리로 하여금 위로를 얻게 하고, 겸손의 삶을 살게 하며, 하나님만 바라게 하게끔 이끄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토록 위대하게만 보였던 어거스틴이 실로 그의 젊은 나날은 도덕적으로 질퍽거리는 삶이였으며, 자신의 지적 재능에 자만하여 어머니의 기도와 사랑을 뿌리치고 하나님의 대적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의 욕망에 사로잡혀 죄악을 범하며, 이단에 빠져들기도 하며, 방황하는 자였습니다. 어거스틴은 구원자를 찾아다녔던 한 죄인이었을 뿐 아니라 궁극적인 진리를 찾아 헤맨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그런 자신에게 하나님을 찾아오셨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중세시대에 가장 위대한 성인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에게 크신 자비와 긍휼하심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그의 참회록은 그 대상이 독자들이라고 하기보다는 하나님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며,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자신의 신앙고백서입니다.

세계의 문호 톨스토이는 그리스 정교를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청년이 되면서 당시 세계적인 추세였던 합리주의와 인본주의 물결에 휘말려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인간이 노력하면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었고 세계와 인류역시 무한이 발전해서 지상천국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점점 허무해져 갔습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기록한 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는 예수를 떠나고 난 다음 나의 생활은 공포심과 혐오감과 심적 고통으로 꽉차 있었다. 나는 전쟁터에서 많은 살인을 했고 결투를 벌여 사람을 죽이기도 했고 도박을 하고 농노들을 희롱하고 착취했다. 나는 간통을 저지르고 사기를 치고 도둑질을 하고 폭행과 살인을 했다. 내가 범하지 않은 죄는 하나도 없다. 나는 흉악한 죄인이다.” 예수님을 떠나고 인간의 이성과 과학으로 무한이 발전하고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그가 나중에 처참한 이그러진 자화상에 대한 고백을 했습니다. 그의 삶은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갑작스런 형의 죽음과 많은 사형수들의 죽음을 본후 인간존재의 근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배우고 신봉했던 철학과 과학을 통해서 답을 얻으려 했지만 만족할 만한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와서 십자가 밑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자화상을 새롭게 하고 구원을 얻었다고 참회록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인간은 하나님없이 존재할 수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버렸다가 처참하게 이그러지고 허무하고 무의미하고 공허한 삶을 살다가 예수께 돌아오므로 텅빈 그가 가득해지고 이그러진 자화상이 바로서고 새로운 삶의 용기와 소망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화상을 잃어버린 공허와 혼돈의 삶을 사는 인간이 살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자화상이 회복됩니다. 인생의 참된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2. 바울은 하나님 앞에 참회를 한 후에 긍휼하심을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모든 영광과 존귀를 주께 돌리는 삶을 추구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보면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1:12) 위의 구절은 중간에 위치한 ‘감사함’은 단어의 수식관계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세 가지의 감사하는 이유를 말할 수 있으며 모두가 타당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바울 자신을 “능하게” 하셨기 때문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부르시고 사명을 주실 때, 그냥 내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에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공급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맡은 주님의 사명은 여러분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하며, 이것은 중요한 감사의 조건입니다. 둘째는 바울 자신을 “충성되이” 여긴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먼저 쓰임 받을 만한 그릇이었기 때문에 선택받은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자격 없는 바울을 긍정적으로 평가를 하셨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충성스러운 사람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셋째로 바울에게 “직분을 맡기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직분을 주셨다는 것, 세상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집사로서, 교회학교 교사로서, 성가대로서, 각종 섬김의 직분을 가졌다는 것은 주님께 쓰임 받는 일임으로, ‘나 같은 것’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해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디모데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였으며,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어떻게 긍휼을 베푸셨는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며 감사의 이유를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바울은 왜 긍휼하심을 입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울 자신을 위한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딤전1:16) 구원에 대한 가능성이 제로였던 바울을 살려주시고 사도로 임명해 주신 이유는 그가 잘나서가 아니라 장차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에 사용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비방하고 박해하고 폭행하였던 바울 같은 사람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구원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오래 참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영생을 얻게 하는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천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후배들이여, 절망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중의 괴수인 나에게도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이 그 분의 긍휼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눈동자처럼 사랑하며,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십니다. 할렐루야! ”

한경직 목사의 참회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로 우리의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그 분은 피난민과 가난한 사람을 위해 봉사하며 한국 기독교의 눈부신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20세기가 낳은 한국의 가장 뛰어난 목사인 그는 한국에 많은 교회가 서도록 했을 뿐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그리고 미주 지역에 해외 선교사를 파견하는 등 선교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여러 교육 기관과 사회봉사 기관을 설립하여 교육자로서 또 사회 봉사자로서 사회 복지에 기여하였으며, 나라가 위험할 때는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사회의 갈 길을 제시하였습니다. 복음주의 전도운동에 다양한 업적을 남겼고, 오늘날 한국 교회가 세계에서 가장 생명력 있는 교회로 부상하는 데 절대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에 공로를 인정받아 종교 노벨상이라 일컫는 템플턴상(Templeton)을 1992년 4월 29일에 베를린 필하모니 음악당에서 수상하였습니다. 템플턴상 수상 이후 귀국하여 축하예배를 드리는 자리에서 한경직 목사는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고백을 하였습니다. “먼저 나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나는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이런 죄인을 하나님이 사랑하고 축복해 주셔서 한국교회를 위해 일하도록 이 상을 주셨습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성도들이 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합니까? 자신이 의롭고 선하며 능력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할수록 베푸신 은혜가 크고 놀라워 감사하게 됩니다. 주님의 은혜를 깊이 느낄 때 말할 수 없는 감사가 솟아 나오게 되고, 풍성한 열매가 맺힙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긍휼하심을 입은 우리들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 바울처럼 감사 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자격 없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귀한 사명을 주신 것에 역시 감사하고 하루하루 충성을 다하며 살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도 바울처럼 주를 믿어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복음을 전하며,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외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정말로 예수의 제자이라고 칭함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추구하였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디모데처럼, 폴리갑처럼, 어거스틴처럼, 충성된 믿음의 사람처럼 믿는 자들의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 영원하신 왕,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통해 내가 얼마나 죄인 됨을 깨닫고 십자가 앞에 이르게 되었을 때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을 입은 우리들도 바울처럼 사나 죽으나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찬송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출처 : 광야의 소리
글쓴이 : samju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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