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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기도문 강해5>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하나님아들 2014. 1. 1. 16:13

<주기도문 강해5>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3)기도하는 노인

⑷밀레의 만종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습 중에서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기도하는 모습이 이렇게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그 은혜가 우리를 아름답게 만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로 아름다워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주기도의 네 번째 주제인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에 대해서 배우겠습니다.

Ⅰ.기도의 우선순위에 대해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주기도문 강해를 하면서 기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은 순서 같은 것은 아예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형식을 다 갖추었다고 진정한 기도가 아니라 기도의 내용이 충실하고 거기에 믿음과 진실이 있을 때 진정으로 기도하는 것임을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기도의 순서는 어쩌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기도의 우선순위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의 주제인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는 세 가지 기도 주제 - ①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위해, ②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위해, ③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한 다음 순서로 기도할 것을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사적인 필요를 위해 기도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느냐 하는 것을 말씀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추구할 것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영광과 나라를 위해 살기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먹고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따르는 신앙의 삶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를 못합니다. 하나님보다는 ‘나’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있고 내가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있고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 존재합니다. 주객이 전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먹고 사는 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먹고 살기 바쁘면 주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건강한 게 우선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몸이 아프거나 피곤하면 주님을 예배하는 것이나 주를 위해 일하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내 필요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내 필요를 채워주지 않으면 하나님을 섬기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솔직히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이용해 먹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아니 자기가 하나님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그 믿음이 어떤 믿음입니까? 요1:12절은 영접하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잘 들으십시오, 내가 죄인이고, 내 죄를 위해 주님이 십자가를 져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을 가졌을 때 그 믿음이 구원받을 만한 믿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데 주님이 쓰는 기준은 주님을 영접했는가 안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나의 주인, 나의 왕으로 모셔 들였는지 여부를 살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접이 순종과 사랑을 위한 것인지를 살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살펴보실 때 주님을 구원자로 믿을 뿐만 아니라 내 삶의 주인이요 내 영혼의 왕으로 영접하여 순종하고 사랑하는 것이 분명할 때 주님은 진정한 믿음, 구원받을만한 믿음으로 인정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주인과 왕으로 영접하고 순종하고 사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지금까지는 나는 나 중심으로 살아왔습니다. 하나님도 믿지 않았고, 불신앙과 죄 가운데 살았습니다. 나는 망할 짓을 했습니다. 이미 멸망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면 죽고 심판받고 지옥 갑니다. 나는 나를 망하게 할 뿐입니다. 그래서 이젠 나를 신뢰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내 영 혼 몸을 맡길 수가 없습니다. 오직 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께 맡기는 길만이 내가 사는 길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나를 믿고 나를 의존하고, 나를 위해서 살지 않고 주님을 믿고 의존하고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나의 주인 나의 왕으로 믿고 영접했고, 주님을 믿고 의존하고 따라가고 순종합니다. 네,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진정한 믿음을 원하십니다. 진정한 믿음이 아니고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진실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을 진실로 믿는다면 이제 나의 필요를 우선으로 여기지 말고 주님을 먼저 생각하고, 주님의 영광, 주님의 나라,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Ⅱ.이 기도는 빈부와 상관없이 참된 삶을 살기를 구하는 기도할 것을 말씀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하는 기도는 아굴의 기도를 생각나게 합니다. 아굴은 잠30:7-9에서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합니다.

이와 같은 아굴의 기도는 풍요를 구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풍요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그 위험에 빠지지 않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잘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풍요로우면 하나님을 모른다 하기가 쉽습니다. 어려우면 주님을 찾고 의지하지만 편해지고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지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부패성입니다. 이런 부패성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부패성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또 아굴의 기도는 가난을 숙명처럼 여기고 살아가거나 가난을 미덕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의 기도가 아닙니다. 그는 풍요가 위험한 것처럼 가난도 역시 매우 위험한 것임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아굴은 가난 앞에서 흔들리는 자기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가난이 깊어지면 무슨 짓이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임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가난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구하며, 가난하여 범죄치 않도록 자신에게 물질의 축복을 허락해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우리 안에 있는 부패성을 보고 기도해야 합니다. 돈 뿐만이 아니라 조금만 육신이 편해지고, 부와 명예가 올라가고 그러면 사단이 그렇게 자기를 높이고 타락한 것처럼 우리도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을 주지 마시라고 기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명예와 권세를 주시지 말라고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을 피하여 산 속에 들어가서 살 필요도 없고, 벌리는 돈을 안 벌 필요가 없습니다. 웨슬리는 돈을 벌 수 있다면 많이 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멋지게 사용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중 누군가에게 주님이 돈 잘 버는 재능을 주셨거든 많이 버십시오. 부자 부모님이 있어서 유산을 물려주거든 받으십시오. 취직을 하는데 실력을 인정받아서 고액의 연봉을 주겠다고 하면 사양하지 마십시오. 장학금을 탈 수 있으면 양보하지 말고 타십시오, 단 물질적 풍요가 찾아왔을 때 주님 뜻대로 사용할 수 있는 믿음, 물질을 다스릴 수 있는 영적 실력을 갖추거든 그런 축복을 달라고 하십시오.

그리고 그런 영적 실력은 기도만 해서 갖춰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그렇게 훈련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에 대해 감사하고, 절약하고,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일에 사용하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이 많아도 소박하게 살아가고, 한 푼 한 푼을 가치 있게 사용하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할 때라도 비굴하게 살지 않는 훈련도 해야 합니다. 빌리고 꾸는 것이 습관화가 되지 않고, 얹혀살고 빌붙어 사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요즘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족속들이 있는데, 그들의 이름을 일명 [캥거루족]이라고 합니다. 2, 30대의 청년들이 취직도 안하고 그저 부모에게 빌붙어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일본에서는 한 400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한국도 만만치 않습니다. 어쩌면 한국은 더한지도 모릅니다. 부모에게 얹혀살고, 형제에게 얹혀살고, 부인에게 얹혀사는 사람들, 구걸하는 사람, 노숙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다니면서 손 벌리는 사람들, 카드 빚내서 명품사고, 부모님한테 용돈 타서 쓰는 주제에 명품에 메이커 좋아하는 사람들, 공부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고액과외하고, 유학하고, 세월만 허비하는 청소년들까지 합치면 이 나라의 반 가까이가 캥거루족입니다.

두려워해야 합니다.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남에게 얹혀사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돌보아야 할 사람들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게 주신 부를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실하게 살고, 근면성실하게 살아서 가난을 벗어나야 하고, 가난할지라도 지킬 것은 지킬 것은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드릴 것은 드리고 줄 것은 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Ⅲ.이 기도는 매일의 삶을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기를 위해 기도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셨습니다. 만나를 주실 때 안식일 전날만 빼고 하루 분의 양만 취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매일매일 하나님을 의지하고, 매일 매일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살도록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에서의 하루하루가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해서 살아가도록 만드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그런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루를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매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오직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만 살기를 구해야 합니다. 나의 하루하루를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알뜰하게 살기를 구해야 합니다. 이런 삶의 태도로 평생을 한결같이 살기를 구해야 합니다. 기도는 이런 삶의 태도를 늘 견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부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부패성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인 것입니다. 나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나를 주장하고 나를 뽐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신을 깜박 놓으면 그렇게 됩니다. 기도의 끈을 잠깐 놓으면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잠깐만 놓쳐도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함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매일의 양식을 하나님께 구하며, 한 걸음 한 걸음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걸었던 것처럼 우리도 매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고, 매일 매순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게 되기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깨어 기도하며 사는 사람은 도적같이 주님이 오신다 해도 걱정이 없습니다. 갑자기 주님 앞에 가게 되더라도 걱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매일 매일의 삶의 은혜를 구하며 살 때에 알아야 할 것은 매일 매일 주님이 주시는 것은 내게 최상의 것을 주신다는 것을 알고 감사함으로 구해야 하고, 주신 것을 누리며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의 만나를 지겨워했습니다. 만나를 주시면 고기는 왜 안 주시느냐고 불평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최상의 것으로 먹이고 입히신다는 믿음을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기가 쉽습니다. 지금 주신 것에 깊이 감사하지 못하고 늘 부족함을 느끼고, 더 나은 것을 주시지 않는 것에 대해 불평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져서는 안 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오늘 주신 것에 대해서는 지극히 감사하고 내일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오늘보다 내일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러나 거꾸로 오늘의 은총에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면 내일은 오늘보다 못한 것을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요구를 따라서 무엇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 주님이 주신 것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를 보고 내일의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함으로 기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빌4:6).

앞에서 보여드린 그림 다시 한 번 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노인은 빵과 스프 한 그릇을 놓고 깊은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마 이 노인은 진수성찬, 왕의 진미를 먹게 되었을 때나 말라버린 빵 한 조각을 먹게 되었을 때나 동일하게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는 매일의 양식이 최상의 것임을 믿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Ⅳ.이 기도는 나만의 풍족함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우리의 풍족함을 위해 구할 것을 말씀합니다.

주님은 일용할 양식을 주실 것을 기도하라고 하실 때에 [우리에게]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에게가 아니라 우리에게 입니다. 여기에 주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주변에 있는 궁핍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섬기기를 위해 기도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라고 말씀하였습니다(엡6:18). 이 말씀은 우리의 기도 영역이 이웃을 위하여, 형제를 위하여,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그리고 인류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으로 확대되어야 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들의 관심과 섬김이 그만큼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나의 필요만을 구하는 데서 머무르지 말고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이웃의 필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의 필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 인류의 필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궁핍과 곤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고 그들를 어떻게 돕고 섬길지를 알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의 일원 중에 궁핍과 곤란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을 어떻게 돕고 섬길지를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동포 가운데, 지구상 곳곳에 임한 가난에 시달리고 재앙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고, 그들을 어떻게 돕고 섬겨야 할지를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중에 주님이 명하시는 대로 우리는 섬겨야 합니다.

우리들의 책임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온 땅에 가득하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이렇게 기도하고 이렇게 사는 것은 우리에게 버거운 일입니다. 그런 기도 안 하고 그냥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직무 유기요,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자세나 태도는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평안을 구하기보다 주님의 평안을 구해야 합니다. 주님 뜻대로 기도하고 주님 뜻대로 살았을 때 찾아오는 평안을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나라에 동참하기를 원하시고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 주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할렐루야.

Ⅴ.마지막으로 이 기도는 노동을 통해서 주시는 축복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기도는 노숙자나 거지가 오늘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는 기도문이 아닙니다. 물론 그들도 그렇게 기도할 수 있겠지만 결단코 그런 이들을 가르치는 기도가 아닙니다. 이 기도는 일용할 양식을 구할 때에 근면 성실하게 사는 삶을 통해서, 노동을 통해서 주시는 축복을 구하는 기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말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합니다. 일을 하고 싶어 하지도 않고, 일자리를 구하지도 않고, 일을 맡겨 주었을 때 성실하게 일하지도 않으면서 일용할 양식을 구합니다. 그런 기도는 잘못된 기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서 얻어야 할 것도 기도를 통해서 얻으려고 합니다. 직장 잘 다니면서 잘 먹고 잘 살기를 기도해야 하는데, 직장 안 다니면서 어떻게 안 될까요 라고 하면서 기도합니다. 공부 안 하면서 좋은 성적 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것도 똑같은 경우입니다.

조금 전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보여 드린 그림 중에 [밀레의 만종]이 있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의 기도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기도입니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고, 그 일터에 하나님이 은혜를 내려 주셔서 좋은 수확하게 되기를 바라며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를 불로소득을 얻는 방법으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대박을 구하는 마술적인 요법이 기도가 아님을 알기 바랍니다. 우리는 노동을 신성시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일하지 않고 양식을 구하는 것은 불로소득을 구하는 것이지 그런 건 기도가 아닙니다. 일은 하기 싫어하면서 좋은 것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대박을 꿈꾸는 것이지 기도가 아닙니다.

서양 금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You do the possible then God will do the impossible."

“너는 가능한 일을 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하실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노동은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가능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가능한 일을 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런 태도로 사는 것은 게으름입니다. 하나님은 게으름을 결코 장려하지 않습니다. 게으른 자의 기도는 듣지도 않으십니다. 오히려 기도할지라도 그는 더 가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게으름을 즐기며 기도하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성실하게 일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십시오. 노동을 사랑하며 축복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이삭이 백배를 얻은 것과 같은 축복, 야곱이 빈손으로 시작하여 거부가 된 축복, 요셉이 애굽의 곡식으로 가득한 창고의 열쇠를 틀어 쥔 축복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기도할 때 일감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게으르고자 하는 부패한 속성을 못 박고 성실함으로 일할 수 있도록 마음을 일깨워 주실 것을 기도하십시오. 땀을 흘리고 그 땀의 대가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에 주님이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넘치는 은혜를 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까지 들은 말씀을 종합해 보면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먹고 살기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먹고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임을 인식하고, 참되게 살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을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따라 살아가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나만의 풍족함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우리의 풍족함을 구하는 기도이며, 일하지 않고 잘 살려는 심보로 기도하는 게 아니라 근면 성실하게 일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는 그럼 기도입니다. 주님은 이런 기도를 하면서, 이런 삶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넘치는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참된 기도를 배우시고, 주님이 주시는 넘치는 축복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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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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